북연에서 온 사신 웅염이 당당히 나서며 말했다. “폐하, 저희 황제 폐하께서 특별히 저를 보내, 폐하의 생신을 축하드릴 예물을 마련하셨사옵니다.” “다만 오는 길에 자객의 습격을 받아 중상을 입어, 부득이하게 일정이 지체되고 말았사옵니다.” “소신이 늦게 도착했음을 폐하께서 너그러이 용서해주시옵소서...” 이 핑계는 너무도 치졸했다. 분명 일부러 늦게 나타난 것 아닌가! 남제에서 대대적으로 제작한 죽화총이 완성될 때를 노려, 그 공을 가로채려는 속셈이 틀림없었다. 북연 사람들은 어찌 이리도 낯짝이 두껍다는 말인가!남제 조정의 신하들은 속이 상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진작 알았더라면, 군기감에서 그렇게 서둘러 제작하지 말라고 하였을 터인데… 일 년, 아니 반 년만 더 미루었더라면 상황이 이렇게 꼬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때, 황제 소욱은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그대의 귀와 눈이 유난히 밝은 것 같소.” 웅염은 공손히 머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과찬이시옵니다!” 그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폐하, 언제쯤 그 죽화총을 구경할 수 있사옵니까?” “남제는 대국이니, 동위와 같은 소국처럼 배타적이진 않을 줄로 믿사옵니다.” 이 말을 듣고 조정에 있던 모든 신하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누구나 알고 있었다. 과거 동위가 신무기 '화룡'을 제작했을 때, 북연이 이를 노리고 참견하려 했던 일을 말이다. 북연은 '참관'을 빌미로 병기 도면을 훔치려 했으나, 작지만 기개가 있었던 동위는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하지만 북연은 이를 계기로 동위를 무례하다며 대대적으로 군사를 일으켜 침략했다. 가련한 동위는 급히 화룡을 제작했으나, 단 한 대로 북연의 대군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결국 국토는 유린당하고 나라는 멸망하고 말았다. 그 이후 북연은 동위에서 빼앗은 화룡을 통해 전장을 제패하며 위세를 떨쳤다. 지금 웅염이 동위를 언급한 것은 곧 남제에 대한 경고나 다름없었다. 북연은 실로 오만함
장공주는 자신이 황후를 업신여긴다 여겼지만, 정작 이 죽화총의 도면을 그린 이는 다름 아닌 봉구안이었다. 그녀는 교먹이 반드시 개량할 수 있으리라 굳게 믿었으나, 교먹은 처음부터 아무런 방도가 없었다. 교먹은 그저 이 기회를 붙잡아 감옥을 벗어나고자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와보니 주저함이 앞섰다. 특히 황제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일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너는 죄에 또 죄를 물게 될 것이다.” 소욱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협상의 여지는 전혀 없었다. 교먹은 마음이 점점 더 복잡해져만 갔다. 그저 시험 삼아 해보겠다는 생각은 큰 오산이었다.그녀의 이런 얕은 수작은 황제에게 절대 통하지 않을 터였다.장공주는 불안해하며 간청했다. “폐하, 맹교먹은 반드시…” 할 수 있다고 말하려던 순간, 교먹은 고개를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할 수 없사옵니다.” 장공주는 깜짝 놀라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교먹이 방금 뭐라고 했단 말인가? 도대체 왜 안 된다는 것인가? 기존의 도면에 몇 가지 기계를 더하는 것에 불과한데, 장군으로 이름을 날렸던 교먹에게 어찌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교먹의 등에는 이미 식은땀이 흘렀다. 그녀는 죄를 더 짊어질 수 없었다. “폐하… 소인 확신할 수 없사옵니다.”봉구안은 냉랭한 눈빛을 보냈고, 소욱은 교먹에게 더욱 크게 실망했다. 이토록 위급한 순간에 그녀는 안 된다고 말하다니… 그가 기억하던, 절망 속에서도 출구를 찾던 소년 명장은 사라진 듯했다. 장공주는 교먹을 감싸며 다시 나섰다. “폐하, 맹교먹은 그저 잘못될까 두려워 말한 것뿐이옵니다.” “제발 이 아이에게 한 번만 기회를 주시옵소서.” “지금은 힘을 뭉칠 사람이 많을수록 득이 되지 않겠사옵니까?” 그녀는 그러면서도 봉구안을 노려보았다. “황후마마, 어쩌자고 맹교먹을 이토록 몰아붙이는 것입니까!” 소욱이 무언가를 말하려던 찰나, 봉구안이
북연 사신들은 연일 남제의 군기감에 머물며 기세등등하게 구는 중이었다. 그들은 한 군기고 앞에 이르렀으나, 출입을 금지당하자 크게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사신을 대표하는 웅염이 가장 먼저 소리쳤다. “황제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죽화총을 보여주겠노라 약조하셨다. 너희 따위가 어찌 감히 이를 막겠단 말이더냐!” 군기감의 감장이 직접 나서 예를 갖추며 사죄했다. “대인, 죽화총은 아직 완전히 제작되지 않았사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길 청하옵니다.” 웅염은 남제가 이를 일부러 지연하고 있음을 눈치챘으나, 남제가 이미 몸을 낮춘 상황에서 북연이 지나치게 몰아붙였다가는 도리어 화를 부를 수 있음을 알았다. 며칠을 더 기다린다 해도 문제될 것은 없었다. 떠나기 전, 웅염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어차피 우리 북연에게 보여주게 될 터. 더 이상의 시간은 끌지 말거라!” 그가 떠난 뒤, 군기감의 관리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분개했다. “북연의 횡포가 정말 도를 넘었군!” …저녁이 되자, 소욱은 영화궁에서 봉구안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그는 낮에 있었던 일을 언급하며 조용히 말했다. “맹교먹의 죄가 산처럼 쌓여 있소.” “이번에 큰 공을 세운다 한들, 짐은 그 아이를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오.” 이 말은 이어질 주제를 꺼내기 위한 서두였다. 그는 봉구안의 손을 잡으며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하지만 장공주의 말도 맞소.”“짐은 맹교먹에게 감옥 안에서라도 도안을 그리게 할 것이오.” “그 아이가 성공한다면 당장의 급한 불을 끌 수 있을 터…” “짐은 그대가가 그 아이를 미워하는 것을 잘 알고 있소.” “그러나 이번 일은 대의를 위한 것이니,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사사로운 감정으로 일을 그르치지 말아주시오.” 봉구안은 손을 빼내며 고개를 숙여 말했다. “신첩, 명심하겠사옵니다.” 등불 아래 비친 그녀의 옅은 미소를 본 소욱은, 잠시 감정이 흔들렸다. 그의 목소리가
협소한 공간, 침상 위에서 봉구안은 물러설 곳이 없었다. 소욱은 그녀의 허리를 움켜쥐고 그녀를 한 치의 여유도 없는 곳에 가둬버렸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그의 입맞춤을 피하려 했으나, 이는 오히려 그의 인내심을 바닥나게 했다. 갑작스레 그는 그녀의 턱을 움켜쥐고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의 눈을 마주 보며 물었다. “왜 피하는 것이오?” 봉구안의 눈동자는 고요한 우물과도 같았다. 그녀의 두 주먹은 단단히 쥐어져 있었다. 소욱은 이를 갈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갑작스레 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강하게 훑으며, 숨 쉴 틈도 주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숨결은 거칠어졌고, 뜨거운 손바닥이 그녀의 허리띠에 닿아 단숨에 풀어버렸다. 여러 겹의 옷 위로 그의 뜨거운 손길이 그녀의 매끈한 아랫배를 덮었다. 그는 그녀의 귀가에 입을 가까이 대고 낮고 거친 목소리로 속삭였다. “황자를 낳아주시오.아니, 황자를 낳거라.” 이것은 협상의 말이 아니었다. 명령이었다. 그는 이미 이성을 잃은 듯 그녀의 옷을 마구잡이로 벗기기 시작했다. 봉구안은 고개를 돌려 침상 너머의 휘장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차가웠고, 미간은 단단히 좁혀져 있었다. “폐하, 저는 동침하는 것을 원치 않사옵니다.” 이 말은 마치 평지에 벼락이 치는 듯했다. 소욱은 움직임을 멈췄다. 그는 몸을 약간 들어 올리고 그녀의 얼굴을 강제로 돌려 자신의 시선을 마주하게 했다. “뭐라고 하였소?” 그의 눈에는 분노와 의문이 뒤섞여 있었다. 이미 모든 것이 정리된 상황에서 그녀는 도대체 무엇이 불만인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그는 그녀의 거짓말을 문제 삼지 않으려 했는데도 말이다. 봉구안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은 달빛처럼 차갑고, 소나무처럼 단단했다. “폐하께서 황자를 원하신다면, 기꺼이 낳고자 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옵니다.” 소욱은 분노가 극에 달하자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그는 차갑고 냉랭
어전.유사양이 황제의 화상약을 가져와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그는 영리한 사람이었다. 황후가 안에 있는 것을 확인한 후, 굳이 황제의 명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자리에서 물러났다.소욱은 자리에 앉아 책상 가장자리에 손을 올려두었다.봉구안은 그의 맞은편에 앉아 그의 소매를 조심스레 걷어 올리며 화상 부위를 드러냈다.군영에서 약을 쓰던 경험이 풍부했던 그녀는 능숙하게 약을 발랐다.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다 끝났사옵니다.”소욱은 의아한 눈빛으로 되물었다.“이렇게나 빨리?”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자, 그는 쌓여 있는 상소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상소문을 가져오시오. 짐이 말할 테니, 그대가 대신 적어주시오.”봉구안은 놀란 기색으로 답했다.“폐하, 자고로 궁 안의 여인들은 정사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법도이옵니다.”더군다나 그녀가 대필까지 한다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소욱의 얼굴이 약간 어두워졌다.“전부 쓸데없는 내용들일 뿐이오. 신경쓰지 마시오.”매일 올라오는 상소문 중 정사를 논하는 것은 극히 드물었다.대부분은 별 의미 없는 상소들이었다.봉구안은 황제가 과장한 줄 알았으나, 그의 요청대로 상소문을 열자 그것이 과언이 아님을 깨달았다.예컨대, 어떤 지방 관리의 상소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황제 폐하, 강성의 솜꽃이 활짝 피어 아름답사옵니다. 이는 모두 황제께서 부지런히 국정을 돌보신 덕택이옵니다. 신은 솜꽃을 한 송이 말려 폐하께 바치오니, 강성 백성들의 존경을 전하는 바옵니다.]그리고 상소 끝에는 말라 비틀어진 초라한 꽃 한 송이가 붙어 있었다.봉구안은 어이가 없었다.소욱은 익숙한 듯 말한다.“답장을 적어주시오… 말린 꽃이 참으로도 아름답구나. 하지만 다음에는 보내지 말거라.”봉구안은 망설였다.“신첩의 글씨체가 폐하와 다르옵니다.”“괜찮소.”이런 상소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사소한 것들이었다.그러다 봉구안은 더 이상한 상소를 발견했다.“황제의 용안은 태양처럼 빛나 만민을 비추고, 황제의
봉 부인은 태어나 처음으로 단독으로 황제를 알현하게 되자, 불안감에 사로잡혔다.황제는 사람을 시켜 자리를 내어달라 했으나, 그녀는 바늘방석에 앉은 듯했다.궁인이 차를 올렸으나, 그녀는 차마 손을 대지 못했다.그녀의 긴장한 모습을 본 소욱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리 조심스러워할 필요는 없다. 짐이 묻고자 하는 건 단지 황후가 태어난 뒤 곧장 맹가로 보내졌던 일에 대해 너희가 얼마나 알고 있느냐는 것뿐이다.”그의 물음에 봉 부인은 더더욱 두려워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부정했다.“폐하, 누군가가 헛소리를 올린 것이옵니다! 황후는 줄곧 봉가에서 자랐고, 맹가와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소욱은 그녀의 반응을 보며, 더 이상 알아낼 수 없음을 깨달았다.더 캐물었다간 봉 부인이 그대로 겁에 질려 기절할 게 뻔했다.그는 나지막이 명령했다.“봉 부인을 궁 밖으로 모셔라.”“명 받들겠습니다!”봉 부인은 혼미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모든 상황을 봉 대인에게 상세히 전했다.봉 부인은 봉구안이 대체한 일을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며 마음을 놓았다.그러나 황제가 이 일에 의심을 품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순간, 봉 대인의 얼굴은 다시 창백해졌다.“이거 큰일이구나!”황제가 의심을 품었다면 반드시 철저히 조사할 것이다.봉 대인은 불안감에 땀을 흘리며 마음 졸였다.“황후가 아직 황자를 낳지 못한 탓에, 내가 이리도 마음을 졸여야 하다니!”…군기감.북연 사신은 초조해하며 소리쳤다.“며칠이나 지났는데, 죽화총은 아직도 제작이 끝나지 않은 것이오! 설마 일부러 시간을 미루는 것이오?”감장은 여전히 태연히 말했다.“곧 끝납니다. 곧이요.”지하 감옥.맹가의 교먹은 죽화총 개량을 명받아, 혼자 독방에 배치되었다.그곳은 주변에 다른 죄수도 없으며, 오직 그녀가 작업에 집중하도록 꾸려졌다.방 안에는 종이와 붓, 작은 책상 등이 마련되었으며, 장 공주의 세심한 배려 덕에 고문은 커녕 기운도 좋았다.정오, 한 간수가 음식을 들고 교먹의 방으
맹교먹이 갇혀있던 지하 감옥은 궁 안에서도 매우 중요한 감옥이었다. 그 곳은 황궁과 가까이 위치하고 있었다.중범죄자가 탈옥하면, 궁궐에서 즉시 지원할 수 있도록 설계된 곳이었다.이 시각, 감옥 앞 광장에서는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맹교먹은 비응군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퇴로를 뚫어냈다.지하 감옥을 빠져나와 이미 세 겹의 방어선을 돌파했고, 이제 마지막 관문만 남았다.정문만 돌파하면 완전히 탈출할 수 있었다.관군은 병력으로 벽을 세우고 있었다.한 손에는 방패, 다른 손에는 창을 쥐고, 비응군의 공격을 온몸으로 막아냈다.주변 성벽 위에서는 활을 든 병사들이 늘어서 있었고, 화살이 하늘을 가르며 비처럼 쏟아졌다.비응군 200여 명은 마치 강철의 방패처럼 뭉쳐 맹교먹을 보호하며 나아갔다.그들은 모두 전쟁터를 수차례 겪은 노련한 전사들이었다.죽음 따위는 이미 두려워하지 않았다.맹교먹은 그들을 보며 잠시 감동을 느꼈으나, 그 감정은 오래가지 않았다.손에 쥔 비영령을 더욱 단단히 쥐었다.이 비영령은 그녀가 황성으로 발령받기 전, 은밀히 복제해둔 것이었다.본래 스승 맹건에게 반납해야 했던 진짜 비영령은 이미 가짜로 바꿔치기한 상태였다.일찍이 사저가 자신을 모함하려는 기미를 느꼈던 그녀는, 이 복제된 비영령을 이용해 멀리 북대영에 주둔하던 비응군을 황성으로 불러들였다.그리고 이번이야말로 그녀가 이들을 활용할 결정적인 순간이었다.비응군은 점점 정문에 가까워지고 있었다.그리고 맹교먹은 문 밖에서도 비응군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문 밖에 있던 그들은 문을 열고 있었다.그러나 관군 역시 대거 몰려들어 문을 닫으려 했다.비응군 몇몇이 문틀을 붙잡고 온몸으로 버티며 관군의 방해를 막아냈다.이들 중 몇몇은 등에 화살을 맞고도 끝까지 문을 지키고 있었다.그들은 외쳤다.“소장군! 어서 오십시오!”맹교먹도 탈출을 간절히 원했다.하지만 그들의 속도가 너무 느리게 느껴졌다.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그녀는
교먹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성루를 바라보았다.그곳에는 황제가 서 있었다. 황제는 높은 곳에서 교먹을 내려다보며, 주인을 압도하는 기세로 군림하고 있었다.그는 활을 들고 있었으며, 눈은 매섭게 빛났고, 검은 안광 속엔 날카로운 살기가 담겨 있었다.완벽한 외모를 자랑하는 얼굴에는 짙은 분노가 덮여 있었다.모두가 알고 있었다.황제의 궁술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났으며, 쏜 화살은 결코 빗나가는 법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방금 날아온 세 발의 화살은 그가 얼마든지 교먹을 직접 겨눌 수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그러나 그는 그렇지 않았다.이것은 분명 경고였다.뒤로 물러나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하지만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면, 곧바로 죽음을 맞이할 터였다.소욱은 활을 내려놓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명을 내렸다.“명령을 거역하는 자는, 즉시 참하라.”“명심하겠사옵니다!”교먹은 황제를 본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자신의 끝이 어떻게 될지를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살기 위해 그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비응군은 강했지만, 천군만마를 당해낼 수는 없었다.게다가 지금 그들은 압도적인 열세에 처해 있었다.소욱이 이끈 친위대가 이미 그녀와 비응군을 철저히 포위한 상태였다.하지만 비응군은 여전히 그녀를 목숨 걸고 보호하며 외쳤다.“소장군, 어서 가십시오!”교먹의 눈은 오직 성문만을 향하고 있었다.문은 아직 열려 있었다.그것은 그녀에게 유일한 생명의 길이었다.그러나 이제 문 밖에는 온통 적군뿐이었다.나가더라도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바로 그때, 그녀는 한 익숙한 모습을 발견했다.그녀가 심어둔 또 하나의 패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폐하!”장공주가 어딘가에서 달려나와,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누며 외쳤다.소욱은 그녀를 보자 눈이 순간적으로 날카롭게 빛났다.친위대장은 즉각 명령을 내렸다.“활을 내리거라! 공주마마께 해를 입히지 마라!”장공주는 성루 아래 넓은 광장에 서서 황제를 향해 큰 소리로
사월 하순, 약쟁이 사건이 마침내 일단락되었다.진범은 모용욱. 모용가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무죄 방면되었고, 약쟁이단의 전원은 형장에서 참수당할 예정이라는 조서가 내려졌다.소식이 퍼지자 백성들은 너나없이 거리로 뛰쳐나와 입을 모았다.“아이고, 이 일도 드디어 끝났구먼!”“대리사에서 어지간히 수사를 잘했나 봐!”“모용가는 원래부터 수상했지. 다른 사람들은 몰랐다니,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그러게 말이야. 혹시 그 모용욱이라는 자, 그냥 바람막이 아니었을까?”이유야 어쨌든, 사건이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에 백성들은 안도했다.이제 다시는 길에서 납치당해 약쟁이로 끌려갈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해가 높이 뜬 봄날, 도성은 어느새 예전의 활기를 되찾았다.오월 초, 황성에 또다시 기이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술집과 찻집, 사람들 모이는 곳이면 어디서나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그거 들었어? 얼마 전에 도성에 도사가 나타났는데, 불로장생의 비법이 있다며. 사람들이 그 집 문턱을 닳도록 찾아간다더라!”“거짓말이지. 세상천지에 불로장생이 어디 있어.”“근데 말이야, 그 도사 무려 삼백 살이 넘었대.”“두 왕조를 거치며 살아온 살아 있는 신선이라잖아!”“그래, 나도 들었어. 요새는 대신들이며 귀족들까지 줄줄이 찾아간대.”“오늘은 심지어 궁에까지 불려 들어갔다더라고.”“폐하께서도 믿고 계신다는데… 그럼 뭔가 있긴 있는 거 아냐?”그때, 누군가 문 밖을 가리키며 외쳤다.“저기 봐! 도사님 오신다!”거리 끝에서 하얀 수염을 늘어뜨린 노인이 보였다.작은 가마에 올라타 있었고, 네 명의 제자들이 앞뒤로 가마를 들고 있었다.그 뒤를 수십 명의 도사들이 수행을 하고 있는 것처럼 따르고 있었고, 그가 지나가는 길목마다 백성들은 무릎 꿇고 고개를 숙였다.“도사님! 제발 불로장생의 길을 가르쳐 주소서!”“도사님, 전 장생은 바라지 않아요. 제 딸 좀 살려주세요. 병이 너무 깊어요.”“도사님은 백병을 다스리신다던데, 제발…”모두가 각자의
소욱은 봉구안의 생각을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었다.방금 전까진 분명 모용길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어째서 갑자기 태조 황제 묘까지 들먹이는 것일까?그래도 그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답해 주었다.“태조께서는 동릉에 묻혔다.”도굴을 막기 위해 태조의 능은 총 열세 곳에 분산되어 있었고, 각각의 무덤엔 무거운 병력이 배치되어 있었다.허나 그 열세 곳 모두가 가짜였다.진짜 묘는 오직 역대 황제만이 그 위치를 알고 있었다.봉구안은 잠시 망설이더니 곧 단호하게 말했다.“폐하, 능을… 잠시 열어볼 수 있겠습니까?”소욱의 눈썹이 즉시 찌푸려졌다.“안 된다.”태조 황제는 이미 서세를 마친 성조였다.그분의 안식을 함부로 깨뜨릴 순 없었다.봉구안도 그가 이 요청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 일은 약쟁이 사건의 진상에 직결되는 문제였다.그녀는 침착히 입을 열었다.“진정 불로장생을 원한 사람은 모용길이 아니라 태조 황제였을 수도 있습니다.”소욱은 너무 놀란 나머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구안아, 지금 네 말은… 너무 황당하구나.”“설마 이 모든 약쟁이 사건의 배후가 태조 황제라는 것이냐?”도무지 믿을 수 없는 얘기였다.동방세가 그린 그 인물은 모용길과 닮았을 뿐, 자신들의 소씨 가문과는 단 한 점도 닮은 데가 없었다.봉구안도 이건 어디까지나 의심일 뿐이라 단정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녀의 직감은 이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모용길이 연막을 치고 모용욱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운 뒤, 모용가 전체를 끌어들인 것만 봐도… 그 자는 모용가의 존망 따윈 개의치 않는 듯합니다.”“그렇다면 그 자가 진정으로 지키고자 한 건, 다른 무엇일지도 모릅니다.”그녀의 눈빛이 깊어졌다.“폐하, 이백 년 전의 일은 저희가 직접 본 게 아닙니다.”“하지만 사관의 기록에 따르면, 태조 황제께서는 남산왕, 서왕, 그리고 모용길과는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사이였다고 합니다.”“남산왕은 태조의 명을 따라 세세손손 봉맥을 지켜왔고, 서왕가는 동부를
봉구안은 이전에 모용가의 선조에 대해 조사하면서, 그들의 초상화를 본 적이 있었다.책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태조 황제가 천하를 개척할 당시, 모용길이라는 인물이 군량과 보급을 아낌없이 헌납했고, 그 공을 인정받아 승상에 올랐지만 불과 세 해 만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향년, 마흔.그런데 지금 동방세가 그려낸 배후 인물의 얼굴이 그 모용길과 너무도 흡사했다.소욱 역시 그림을 비교해보았다.한 손엔 방금 받은 초상화, 다른 한 손엔 책에 실린 옛 그림이 들려있었다.똑같다고 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십중팔구 정도 닮은 듯했다!그는 봉구안과 눈을 마주쳤다.“얼굴이 닮은 거겠지. 아니면 모용가 어딘가에 숨어 있던 서자일지도 몰라.”소욱은 분명히 선을 그었다.그 모용길이라는 인물이 지금까지 살아 있을 리 없다는 것이었다.하지만 봉구안은 강호를 누비며 별의별 기이한 일을 겪은 사람이었다.“충북에는 삼백 살 넘은 노인이 있다 들었습니다.”“신무파 장문도 이백십칠 년을 살았다죠.”“남제가 건국된 지 이제 겨우 이백 년 남짓입니다.”“만일 정말 불로장생이 가능하다면, 모용길이 살아 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봉구안은 담담히 말했다.게다가, 그녀를 더욱 확신에 가까운 의심으로 이끄는 단서가 하나 더 있었다.“폐하, 서왕께선 납치 당시에 그들이 피를 원했다고 했습니다.”“그 피를 마시면 불로장생할 수 있다고요.”“이건 아주 중요한 단서입니다.”소욱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서왕 말로는, 그 자가 정신이 온전치 않았다 하던데... 횡설수설하는 미치광이였다고.”봉구안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들을 때는 허무맹랑하게 들릴지 몰라도, 저는 오히려 모용길이 이번 일의 진짜 배후라 생각합니다.”“모용가의 조상사당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곳에 독초를 재배하려면 내부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지요.”“그리고 모용욱의 검거도 너무 순조로웠습니다.”“모든 것이… 너무 ‘그럴듯’했어요.”“어쩌면, 모든 건 모용길이 준
봉구안은 소욱이 자신을 다시 궁으로 데려온 진짜 이유가, 자신이 서여국에 가면 돌아오지 않을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듣고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욱은 조심스레 사과할 말을 고르고 있었지만, 그녀는 문득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소욱은 놀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봉구안은 다시금 고개를 숙여, 부드럽게 그의 입술에 한 번 더 입을 맞췄다. 그 동작엔 위로와 다정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이번 일은 폐하를 탓할 일이 아닙니다. 폐하께서 저를 의심하신 건 제가 드린 믿음이 아직 부족했기 때문이겠지요.”“담대연은 말재주가 뛰어납니다. 누구라도 한 번쯤은 흔들릴 만합니다.”그녀는 시선을 마주하고 또박또박 말했다.“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릴게요. 제 마음속에서 가족이 있는 곳이, 진짜 ‘집’입니다.”“폐하께서는 저의 지아비이십니다. 혈육은 아니지만, 저의 여생을 함께할 유일한 사람이지요.”“서여국이 아무리 좋아도, 폐하만큼 소중하진 않습니다.”소욱의 손끝이 떨렸다.“너… 그 말이 진심이냐?”그는 여전히 확신이 없는 듯한 눈빛으로 다시 물었다.“내가 정말 네 마음속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야?”봉구안은 오히려 되물었다.“폐하가 아니면 누가 있겠습니까?”그러자 소욱은 손가락을 접으며 셈을 하기 시작했다.“사부랑 사모, 그리고 봉장미, 게다가… 네 뱃속에 있는 이 녀석.”“세상 사람들 다 그러더라. 자식은 어미의 인생 그 자체라고… 지금도 내 순위가 그리 높진 않은데, 아이가 태어나면 내 자리는 더 밀려나겠지.”봉구안은 어이없으면서도 웃음이 나왔다.그녀는 진지하게 설명했다.“사부님과 사모님은 저에게 산처럼 큰 은혜를 주신 분들이지만, 그분들도 장미와 마찬가지로 ‘혈육’일 뿐입니다.”“저와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지요.”“아이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폐하를 마음에 두었기에 생긴 아이인데, 어떻게 그 아버지를 제쳐둘 수 있겠습니까?”“폐하야말로 제가 앞으로 비바람을 함께할 사람, ‘집’이라 부를 수 있는 유
아침 조회.조정에는 분노가 들끓었다. 신료들은 하나같이 모용가를 엄하게 조사하겠다며 격분한 목소리로 외쳤다.“폐하 모용가 사당에서 이상한 점이 드러났고, 모용욱의 저택에서는 약쟁이 소굴이 발견되었습니다. 반드시 모용 일가 전체를 철저히 조사해야 합니다!”“신도 동의합니다! 모용욱 혼자만의 짓일 리 없으며, 모용가의 다른 이들도 직접 연루되진 않았더라도 방조하거나 제대로 알리지 않은 죄가 있습니다!”조묘 사건 이후, 모용가는 이미 추락할 대로 추락하였다.이번 약쟁이 사건은 수많은 무고한 관리까지 연루되며 사람들의 불신과 공포를 증폭시켰고,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민심을 수습하려면, 이참에 반드시 철저히 죄를 묻고 엄벌해야 했다.결국 모용 일가는 또다시 전원 구금되었다.이전엔 모용선의 아버지, 모용렴이 자신을 희생해 가문을 구했지만… 이번에는 그럴 틈조차 없었다.옥양산.태황태후는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동요했다.더 이상 모용가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던 그녀였지만, 이번 일은 너무나도 중대했다.“약쟁이라니... 어떻게 모용가가 그런 일에 휘말릴 수 있단 말이냐…”수십 년을 모신 상궁이 다급히 물었다.“태황태후마마, 이제 어찌해야 할지…”태황태후는 부처상 앞에서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떨구었다.“모용가가 정말 죄를 지었다면, 내가 무슨 낯으로 구하겠느냐. 죄가 없다고 해도 나는 이제 황제 얼굴조차 볼 수 없는데… 어떻게 말을 전하겠느냐.”“이건… 하늘이 우리 모용가를 멸하려는 것이 분명하다…”태황태후는 그날로 병석에 눕고 말았다.황궁, 자녕궁.태후는 태황태후의 병세를 전해 듣고 즉시 태의를 보냈다.곁에 있던 계 상궁이 조심스레 속삭였다.“태후마마, 태황태후께서는 예전에 천룡회와 손잡고 폐하를 몰아내려 하셨고, 이번엔 모용가가 약쟁이 일로 큰 소란을 일으켰으니 굳이 정성을 들이실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그 말에 태후는 눈썹을 찌푸리며 나직이 꾸짖었다.“감히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 것이냐! 입을 조심하지 못하겠느냐. 말 그
어전.“폐하, 서왕 전하와 왕비마마께서 무사히 구출되었습니다! 서왕 전하께서 지금 궁문 밖에 대기 중이며, 아뢸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이 말을 들은 소욱은 지체 없이 명하였다.“어서 들라.”얼마 지나지 않아, 서왕은 발걸음을 옮겨 어전으로 들어섰다.그는 문턱을 넘자마자 곧장 무릎을 꿇어 예를 올렸다.“신, 폐하를 뵙나이다!”소욱은 그 기색을 살피고, 정신이 온전한 것을 확인한 뒤에야 마음을 놓았다.“무사하다니 다행이로구나.”헌데, 서왕의 안색은 심상치 않았다.“폐하, 신이 납치당한 이유는… 그들이 신의 피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이 일로 신의 부친께서 돌아가시던 때가 떠올랐습니다.”소욱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그는 눈빛을 가라앉히고 그를 바라보았다.“너의 피를 왜 필요로 한단 말이냐? 그자들이 정말 피를 취하였느냐?”서왕은 고개를 저었다.“아직 취하지는 못하였사오나, 그들의 목적이 분명 피에 있었음을 확신하였습니다. 부친께서 돌아가신 그 사건 역시, 이번 일과 무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소욱의 미간이 좁게 모아졌다.그는 전대의 왕부, 곧 서왕의 아버지에 관한 억울한 일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 일로 선황은 오랫동안 후회하며 침식을 잊고 괴로워했었다.그래서 소욱 또한, 이후 누구에 대해 반역 운운하는 소문이 돌 때마다 쉽게 믿지 않았다.선왕이 저지른 실책을 그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허나 지금 와서 다시금 드러나는 의혹은 그 죽음이 단순한 누명이나 정치적 숙청이 아닌, 무언가 깊은 연관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소욱의 눈빛이 차가워졌다.“자세히 말해 보아라.”……황성 서쪽.봉구안의 행차가 한적한 관로에 이르렀을 때, 한 일행이 그녀를 막아세웠다.오백이 곧장 검을 뽑아 방어 태세를 취했으나, 막아선 이들이 익숙한 인물임을 곧 알아보았다.바로 자재각을 지키던 소욱의 친위 호위병들이었다.그들은 마차를 둘러싸며 호위 진형을 갖추었다.“마마, 저희는 폐하의 명을 받아 마마를 궁으로 모
소욱은 한참을 고심한 끝에, 어느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천명을 믿지는 않았으나, 담대연이 말한 ‘인성’은 부정할 수 없었다.봉구안은 언제나 의리를 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과거 그녀가 이미 단회욱을 마음에서 지웠음에도, 그를 구하기 위해 주저 없이 죽음을 택했던 일은 지금도 눈에 선했다.서여국은 외환보다 내우가 깊은 나라였다.아무리 소주와 정국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안으로는 여전히 혼란이 끊이지 않았다.이번에 봉구안이 직접 서여국에 가게 되면, 그 혼란 속에서 국주로 추대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고, 그녀의 성정상 그 책임을 외면하진 못할 터였다.결국엔 남제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소욱의 가슴을 옥죄었다.담대연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익히 알고 있었다.천하통일. 그러나 그보다 무서운 건, 그 길목에서 아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진한길.”“신, 여기 있습니다!”“황후를 몰래 다시 데려오거라. 사람을 붙여, 은밀히.”진한길은 순간 의아함을 품었다.폐하께서 왜 이리도 갈팡질팡하시는 걸까………한편, 황성 서쪽 교외.담대연이 도착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지하궁의 비밀 통로를 찾아냈다.그가 손을 쓰자 거대한 암석이 옆으로 밀려나며, 숨겨진 지하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담대연은 호위들에게 엄중히 이르렀다.“이곳은 함정과 기계장치가 많습니다. 제 발을 따라오십시오. 절대 멋대로 움직이지 마십시오.”“명심하겠습니다!”……지하궁 내.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서왕과 완부옥은 이미 허기와 피로로 맥을 잃고 있었다.그때, 누군가 그들 쪽으로 다가왔다.그 인물은 이전에 죽은 자의 시체를 발견하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그저 시체를 끌고 나갈 뿐이었다. 마치 이곳에서 죽음은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시체를 처리한 뒤, 그자는 곧장 서왕을 데리고 가려 했다.완부옥은 그를 향해 소리쳤다.“어디로 데려가는 것이냐!”대답은 없었다. 그저 서왕을 밀어내듯 이끌 뿐이었다.하지만, 그들은 이미 내공
그 뱀은 영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슥, 하고 순식간에 주실 안으로 기어들어가더니 어디에 숨어버렸는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뱀을 잡기 위해선 황후의 물건들을 건드릴 수밖에 없었고, 이는 반드시 폐하께 고해야 할 사안이었다.때마침 소욱은 밤이 깊어도 봉구안이 그리워져 자유각을 찾았다.호위들은 이 일을 곧장 아뢰었다.소욱의 눈썹이 짙게 찌푸려졌다.그는 친히 방으로 들어가 사방을 뒤적이다, 마침내 침상 위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뱀을 발견하였다.그 순간, 그는 뱀의 눈과 마주쳤다.소욱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이놈을 당장 잡아내라…”막 명하려던 찰나, 그는 그 뱀이 어딘가 익숙하단 걸 느꼈다.이 뱀은… 분명 완부옥이 기르던 그 뱀과 닮아 있었다.완부옥과 서왕이 함께 실종된 걸 떠올린 소욱은 곧 심중에 짚이는 바가 있었다.그는 즉시 명하여 뱀을 그물망에 넣게 한 뒤, 서왕부로 보내어 확인하게 하였다.서왕부의 호위, 유화가 그 뱀을 확인하였다.그는 본능적인 거부감을 억누르며 가까이 다가갔고, 잠시 후 단호하게 말했다.“왕비마마께서 기르던 뱀입니다.”자유각.소욱은 전갈을 받은 후, 이 일에 더없이 의아해졌다.완부옥의 뱀이 어찌 자유각까지 온단 말인가?설령 이 뱀이 길을 안다 하여도, 돌아간다면 당연히 서왕부로 가야 할 터였다.그는 곧 봉구안에게 전령 비둘기를 날렸다.그 시각, 봉구안은 황성을 갓 벗어난 참이었다.편지를 받아든 그녀는 곧장 완부옥의 의도를 알아차렸다.예전에 완부옥이 똑같은 짓을 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그녀는 곧장 회신을 써서 다시 소욱에게 전했다.그러나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봉구안은 잠시 고심한 끝에, 두 번째 편지를 써 보냈다.그 안엔 한 마디 당부가 적혀 있었다.[폐하, 부디 경솔한 행동은 삼가 주시옵고, 무엇보다 폐하의 안전을 우선으로 삼으소서.]소욱은 첫 번째 편지를 받고 곧장 진한길을 불렀다.“서왕의 흔적을 찾을 실마리를 얻었다. 몇 사람을 데려가 뱀을 풀고, 그 자취를 따라가 보아라.”“예, 폐
지하궁은 온통 어둠뿐이었다.완부옥과 서왕은 감금되어 있던 방을 빠져나왔으나, 사방이 캄캄하여 동서남북조차 분간할 수 없었고, 출구를 찾는 것조차 막막하였다.서로 떨어질까 염려된 완부옥은 명령조로 말했다.“제 옷소매를 붙잡아요. 바짝 따라와요.”“알겠다.” 서왕은 그녀의 뒤를 따르는 수행자처럼 움직였다.그가 조심스레 속삭였다.“조심하거라. 혹시 저들이…”“쉿. 소리 들리십니까?”완부옥이 숨을 죽이며 물었다.그 순간, 어둠 속에서 또각또각 발소리가 들려왔다.누군가가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둘은 그 자리에서 숨을 죽인 채, 벽에 몸을 바짝 붙여 섰다.다행히도 어둠이 그들의 몸을 감추었고, 다가오던 자는 그들을 발견치 못한 채 멀어져갔다.발소리가 사라지자, 완부옥은 서왕의 귀가에 바싹 다가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벽을 더듬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출구가 보일 겁니다.”서왕이 대답하였다.“네가 앞장서거라. 나는 네 옷자락을 붙잡으마.”“……”‘참, 한 손가락도 까딱 안 하려 드는군.’예전 소환과 함께 위기에 빠졌을 때는 달랐다.그저 조금 투정만 부리면, 소환은 그녀를 안고서 척척 길을 찾아주곤 했다.‘하… 또 소환이 그리운 하루네.’완부옥은 ‘짐짝’ 하나를 등에 지고서 벽을 더듬으며 조심조심 앞으로 나아갔다.한 걸음마다 온몸이 긴장되었고,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적들의 기척에 늘 귀를 곤두세워야 했다.지나치게 어두운 환경에 눈이 점점 아파왔고, 이윽고 그녀는 이마를 짚으며 걸음을 멈췄다.서왕은 그녀가 지친 줄 알고 말했다.“내가 앞장서마. 넌 내 옷자락을 붙잡거라.”완부옥은 비웃듯 말했다.“이제야 남자였던 게 기억난 겁니까?”“……”그녀의 말은 확실히 가시가 있었다.그러나 생각해보면, 이 모든 위기는 결국 그녀가 그를 구하려다 엮인 결과였다.명색만 아내인 그녀가 이토록 의리를 지닌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다.그리하여 둘은 번갈아가며 벽을 더듬었고, 얼마나 걸었는지 모르게 돌고 돌다가 결국, 처음 그 시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