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교먹이 갇혀있던 지하 감옥은 궁 안에서도 매우 중요한 감옥이었다. 그 곳은 황궁과 가까이 위치하고 있었다.중범죄자가 탈옥하면, 궁궐에서 즉시 지원할 수 있도록 설계된 곳이었다.이 시각, 감옥 앞 광장에서는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맹교먹은 비응군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퇴로를 뚫어냈다.지하 감옥을 빠져나와 이미 세 겹의 방어선을 돌파했고, 이제 마지막 관문만 남았다.정문만 돌파하면 완전히 탈출할 수 있었다.관군은 병력으로 벽을 세우고 있었다.한 손에는 방패, 다른 손에는 창을 쥐고, 비응군의 공격을 온몸으로 막아냈다.주변 성벽 위에서는 활을 든 병사들이 늘어서 있었고, 화살이 하늘을 가르며 비처럼 쏟아졌다.비응군 200여 명은 마치 강철의 방패처럼 뭉쳐 맹교먹을 보호하며 나아갔다.그들은 모두 전쟁터를 수차례 겪은 노련한 전사들이었다.죽음 따위는 이미 두려워하지 않았다.맹교먹은 그들을 보며 잠시 감동을 느꼈으나, 그 감정은 오래가지 않았다.손에 쥔 비영령을 더욱 단단히 쥐었다.이 비영령은 그녀가 황성으로 발령받기 전, 은밀히 복제해둔 것이었다.본래 스승 맹건에게 반납해야 했던 진짜 비영령은 이미 가짜로 바꿔치기한 상태였다.일찍이 사저가 자신을 모함하려는 기미를 느꼈던 그녀는, 이 복제된 비영령을 이용해 멀리 북대영에 주둔하던 비응군을 황성으로 불러들였다.그리고 이번이야말로 그녀가 이들을 활용할 결정적인 순간이었다.비응군은 점점 정문에 가까워지고 있었다.그리고 맹교먹은 문 밖에서도 비응군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문 밖에 있던 그들은 문을 열고 있었다.그러나 관군 역시 대거 몰려들어 문을 닫으려 했다.비응군 몇몇이 문틀을 붙잡고 온몸으로 버티며 관군의 방해를 막아냈다.이들 중 몇몇은 등에 화살을 맞고도 끝까지 문을 지키고 있었다.그들은 외쳤다.“소장군! 어서 오십시오!”맹교먹도 탈출을 간절히 원했다.하지만 그들의 속도가 너무 느리게 느껴졌다.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그녀는
교먹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성루를 바라보았다.그곳에는 황제가 서 있었다. 황제는 높은 곳에서 교먹을 내려다보며, 주인을 압도하는 기세로 군림하고 있었다.그는 활을 들고 있었으며, 눈은 매섭게 빛났고, 검은 안광 속엔 날카로운 살기가 담겨 있었다.완벽한 외모를 자랑하는 얼굴에는 짙은 분노가 덮여 있었다.모두가 알고 있었다.황제의 궁술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났으며, 쏜 화살은 결코 빗나가는 법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방금 날아온 세 발의 화살은 그가 얼마든지 교먹을 직접 겨눌 수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그러나 그는 그렇지 않았다.이것은 분명 경고였다.뒤로 물러나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하지만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면, 곧바로 죽음을 맞이할 터였다.소욱은 활을 내려놓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명을 내렸다.“명령을 거역하는 자는, 즉시 참하라.”“명심하겠사옵니다!”교먹은 황제를 본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자신의 끝이 어떻게 될지를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살기 위해 그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비응군은 강했지만, 천군만마를 당해낼 수는 없었다.게다가 지금 그들은 압도적인 열세에 처해 있었다.소욱이 이끈 친위대가 이미 그녀와 비응군을 철저히 포위한 상태였다.하지만 비응군은 여전히 그녀를 목숨 걸고 보호하며 외쳤다.“소장군, 어서 가십시오!”교먹의 눈은 오직 성문만을 향하고 있었다.문은 아직 열려 있었다.그것은 그녀에게 유일한 생명의 길이었다.그러나 이제 문 밖에는 온통 적군뿐이었다.나가더라도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바로 그때, 그녀는 한 익숙한 모습을 발견했다.그녀가 심어둔 또 하나의 패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폐하!”장공주가 어딘가에서 달려나와,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누며 외쳤다.소욱은 그녀를 보자 눈이 순간적으로 날카롭게 빛났다.친위대장은 즉각 명령을 내렸다.“활을 내리거라! 공주마마께 해를 입히지 마라!”장공주는 성루 아래 넓은 광장에 서서 황제를 향해 큰 소리로
교먹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다.한 걸음만 더 가면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탈출할 수 있었건만, 갑자기 어디선가 긴 창 한 자루가 나타나 그녀를 다시 물러서게 만들었다.성문 안과 성벽 위, 그 광경을 지켜보던 모든 이들은 어찌 된 일인지 알 수 없다는 듯 당황스러워하였다.그리고 천천히, 긴 창을 들고 나타난 자의 모습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그 자는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예전의 맹 소장군과 흡사했다.비응군 병사들은 멍하니 서 있었고, 주변의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그 자가 한 걸음씩 다가올수록, 교먹은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빗줄기가 퍼져 나가며 그녀의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었지만, 교먹은 눈앞의 가면을 쓴 이가 다름 아닌 봉구안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성벽 위에서는 황제가 눈살을 살짝 찌푸리고 이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교먹은 다시 탈출을 시도했다.그녀는 봉구안의 곁에 빈틈을 발견하곤 곧바로 옆으로 몸을 틀었다.그러나 봉구안은 긴 창을 가볍게 던져 그녀의 길을 막아버렸다.교먹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길을 비켜라!”봉구안은 말없이 손을 풀어 긴 창을 손에서 떨어뜨렸다.그 모습을 본 교먹은 의아했다.‘언니가 이렇게 쉽게 나를 놓아줄 리가 없어. 그렇다면… 이건 도전이야!’교먹의 눈은 날카롭게 빛나더니, 순식간에 그녀는 봉구안을 향해 돌진하며 주먹을 휘둘렀다.하지만 봉구안은 단 한 손으로 그 주먹을 받아내며 교먹의 손을 단단히 움켜쥐었다.그리고는 한 번 힘을 주었다.뚜둑!교먹의 팔은 순식간에 탈구되고 말았다.그러나 그녀는 반응이 빨랐다.곧바로 스스로 팔을 제자리로 돌려놓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검을 집어 들었다.이제 무기를 손에 넣은 교먹은 더욱 맹렬히 공격하기 시작했다.빗물은 사방으로 튀었고, 봉구안은 발을 들어 그녀의 하단을 노렸다.교먹은 자세를 바로잡으며 몸을 돌려 반격에 나섰다.그들은 몇 번의 강렬한 주고받기를 이어갔다.…그 순간, 누군가 뒤에서 다가와 장공주의
봉구안은 비응군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맹성주라 밝힐 수밖에 없었다.그렇지 않다면, 비응군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것을 간파한 소욱은 반드시 그들을 제거했을 터였다.맹 소장군이 실존한다는 소식에 사람들의 반응은 각기 달랐다.장공주는 큰 충격을 받았다.그녀는 곧장 소욱을 바라보았다.그러나 황제는 그녀보다 훨씬 차분해 보였다. 마치 이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그의 눈빛엔 서늘한 살기가 어려 있었다.진한길은 모든 상황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맹교먹이 비응군의 생사조차 개의치 않았던 이유를 이제야 깨달았다.그녀가 진정한 맹 소장군이 아니었던 것이다!그렇다면 이는 단순히 정체를 속인 것이 아니라, 황제를 기만한 중대 범죄였다!진한길은 또 다른 의문에 사로잡혔다.“진정 맹성주가 살아 있다면, 어찌하여 맹교먹의 사칭을 묵인한단 말인가?”비응군 병사들은 모두 벙벙한 얼굴로 멍하니 봉구안을 바라보고 있었다.“소장군?”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봉구안은 그들을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검을 내려놓아라. 나는 너희들에게 검을 자신에게 겨누라 가르친 적이 없다.”그녀는 목소리를 바꿔 그들에게 익숙한 음성을 흉내 냈다.비응군 병사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잠시 후, 모두가 천천히 검을 내려놓았다.교먹은 혼란에 빠진 채 복잡한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사저가 감히 자신을 배신하다니!“왜지? 왜 나를 놓아두지 않는 거야!”맹 소장군이라는 신분을 잃고 나니, 그녀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비응군도 그녀를 구하지 않을 것이고, 장공주 역시 더 이상 그녀를 돕지 않을 터였다.사저는 어찌하여 이렇게까지 냉혹할 수 있단 말인가!교먹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차가운 눈빛으로 봉구안을 노려보았다.“오랜 정분이 있는 나를 어찌 이렇게 하대할 수 있어?”“이 순간을 기다려 왔던 게 아니었어?"봉구안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교먹을 바라보았다.그 시선은 서늘하고 냉랭했다. “교먹, 내가 너에게 기회를 주
탁!영패가 산산이 부서졌다.봉구안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를 단번에 증명해 보였다.“안 됩니다! 소장군…!”비응군 모두가 분노와 고통을 억누르며 울부짖었다.반면, 교먹은 부서진 영패의 조각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움과 절망에 사로잡혔다.언니가 비응군을 이렇게 황제에게 넘겨줄 줄이야!차라리 비응군을 희생시키고라도 자신을 구해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소욱의 눈썹이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맹성주의 이 선택은 과연 위기를 뒤집는 묘수라 할 만했다.그는 황제의 마음을 꿰뚫어 볼 줄 아는 사람이었고, 동시에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진한길, 이만 철수하거라.”“명 받들겠습니다!”관군이 철수하자, 인원의 절반 이상이 자리를 비웠다.비응군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쓰리고 아팠다.오늘 이후, 그들은 더 이상 맹 소장군의 부하가 아니었다.죽을 죄는 면했으나, 산 죄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그들이 오늘 밤 교먹의 탈옥을 도운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으니, 이를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소욱은 엄한 목소리로 명했다.“모두 감옥에 가두어라. 한 달 뒤에 풀어주도록 하라.”“명 받들겠습니다!”이번에는 비응군도 아무런 저항 없이 명령에 따랐다.…비는 점차 잦아들었으나, 마치 하늘이 맑아지는 듯한 기분은 느껴지지 않았다.모두의 마음속에 드리운 먹구름은 여전히 걷히지 않았다.장공주는 억울함과 분노로 가득 찬 얼굴이었다.맹교먹에게 그렇게나 오래 속아왔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폐하, 맹교먹을 절대 놓아두지 마십시오!”장공주의 눈에는 원망과 적의가 가득했다.황실의 금지옥엽인 그녀를 감히 기만하다니!감히 이런 배신을 저지르고도 온전한 몸으로 빠져나가리라 여겼단 말인가!그녀가 이렇게 격노하고 있는데, 하물며 소욱은 어떠할까?그는 맹교먹의 기만에 더 오랜 시간 속아왔었다.그녀는 봉장미를 모함했고, 용호군을 몰살시켰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녀의
검빛이 번뜩이며 날아들자, 교먹은 순식간에 척추가 뽑힌 듯 힘없이 쓰러졌다.그녀는 눈을 부릅뜨고 공포에 질려 고개를 돌렸다.자신의 발…발의 힘줄이 끊어져 있었다!봉구안이 여전히 천천히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교먹은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오지 마… 제발 오지 마! 안 돼…”봉구안은 일말의 자비도 없이 다시 검을 휘둘러, 교먹의 손목 힘줄을 끊어버렸다.찰나의 순간, 교먹의 입에서 참혹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악!”교먹은 속에서 불타오르는 증오를 참을 수 없었다.왜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것인가!그녀는 단지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원했을 뿐이었다!성벽 위에서 장공주는 이 광경을 보며 마음이 후련해졌다.어떻게 그 교먹이 감히 맹 소장군을 사칭할 수 있었단 말인가!소욱의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그는 냉정히 명했다.“교먹을 지금 당장 압송하라. 내일 참형에 처할 것이다.”“알겠사옵니다!”교먹은 자신의 목숨이 끝났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마지막 발악으로 분노에 찬 외침을 터뜨렸다.“폐하! 제가 맹가 부부를 고발하겠나이다!”“제가 맹성주를 사칭한 일, 그들도 다 알고 있었사옵니다!”“제가 죄가 있다면, 그들 또한 죄가 있습니다! 폐하…”그래. 혼자만 죽을 바엔 다 함께 죽는 것이다!맹건이 자신에게 이리 잔인하게 굴었으니, 그녀도 그에게 더 이상 예를 갖출 필요가 없었다.그녀와의 사제 관계는 이미 끝났다!그리고 사모 또한, 늘 사저만을 편애했던 그 여인도 죽어 마땅하다!“그들은 모두 알았사옵니다! 그들 역시 폐하를 속였나이다!”교먹은 최대한 목소리를 높여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외쳤다.소욱은 거짓을 용납하지 않는 성정이었다.하지만 그는 모든 일을 차근차근 처리하는 사람이었다.교먹의 죄를 다스린 뒤, 맹건 부부의 죄를 따질 작정이었다.교먹은 음험한 미소를 띠었다.먼저 모든 것을 폭로한 것은 사저였다.그렇다면 스승과 사모까지 끌어들일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그깟 비응군을 살리기 위해 나섰다가, 결국 이렇게 되
봉구안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폐하, 교먹의 신분을 위조한 것은 오직 저의 아버지뿐임을 아시지 않사옵니까.”이때, 장공주도 입을 열었다.이전과는 달리, 그녀는 더 이상 교먹을 돕지 않았다.“폐하, 맹교먹이 다른 사람의 신분을 속인 것은 이미 불효불군이옵니다. 이제는 자기를 길러준 어른들까지 배반하고, 더불어 대불효의 행위를 한 것입니다.”“그녀와 같은 사람이 말하는 것에 얼마나 신뢰할 수 있겠사옵니까?”“더 이상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헛된 말을 듣지 마시옵소서!”그녀는 또한, 맹 부인이 교먹의 신분 위조를 몰랐을 리 없다고 알고 있었다.그러나 그녀는 맹 부인을 지키려 했다.황제는 결코 비상식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만약 아는 사람이 모두 처벌을 받는다면, 북대영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될 터였다.소욱은 이미 그 이치를 알고 있었다.그리고 그는 황후를 떠올렸다.황후도 맹교먹의 신분 위조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황후는 분명 이 사실을 숨겨 맹가를 보호하려 했을 것이다.만약 그가 맹 부인을 처벌한다면, 황후는 분명히 원망할 것이었다.소욱은 원래 내일 처형을 진행하려 했으나, 이제는 맹교먹이 계속해서 불필요한 말을 퍼뜨리기 전에 바로 처벌을 내리기로 결심했다.“맹교먹을 그 자리에서 처형하라.”교먹은 매우 두려웠다.“폐하!”갑자기 그녀는 말의 방향을 바꾸며 말했다.“폐하, 면죄부 금패… 저도 있습니다! 저는 면죄부 금패를 가지고 있사옵니다!”소욱의 눈빛은 냉담했다.그녀가 어떻게 그 면죄부 금패를 입에 올릴 수 있는가?장공주도 분노했다.“맹교먹! 그 면죄부 금패를 구할 때, 그게 무슨 대가로 얻은 것이었는지 기억하지 않느냐? 그 면죄부 금패는 맹 소장군이 목숨을 걸고 얻은 공이었느니라!”“그 면죄부 금패는 네가 가짜 신분으로 얻은 것이 아니었느냐!”“정말로 뻔뻔하기 짝이 없구나!”예전에 늘 그녀를 보호했던 장공주가 이제는 그녀를 혐오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교먹의 마음은 차가워졌다.그녀가 맹성주가 아니었으면, 장공주
“문을 닫아라!” 소욱은 차갑고 날카로운 명령을 내렸다. 쾅!감옥의 대문이 힘차게 닫혔다. 봉구안은 발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성루 위에서, 장공주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그녀는 방금 들은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언니가 황후라고? 맹교먹이 미친 게 틀림없었다! 그래,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맹성주가 황후일 수 있겠는가! 맹교먹은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결국 죽기 전에 한 사람이라도 더 끌어들이려고 하다니. 면죄부 금패는 스승을 구하는 데 쓰였으니, 봉구안 본인은 지킬 수 없을 터였다! 교먹은 벽 위에 있는 황제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폐하! 아직 모르시겠습니까? 맹성주를 사칭한 사람은 저만이 아니라 황후도…” 휙!날카로운 화살이 날아와 교먹의 가슴을 스쳐갔다. 죽음의 공포가 전신을 휘감았다. 교먹은 눈을 크게 뜨며 믿을 수 없다는 듯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자기를 죽인 이는 바로 황제였다! 소욱의 눈빛은 유난히 냉혹했다. 활을 당겨 쏘는 속도는 매우 빨랐다. 너무나 빠르게 장공주조차 반응하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아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장공주는 충격에 얼어붙어, 서서히 소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황제께서 왜 지금 그 손을 대었단 말인가? 교먹은 분명 말하려던 게 남아 있었다. 이 화살을 예측하지 못한 봉구안은 처음에는 화살이 자신을 향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돌아보니 교먹이 화살을 맞고 쓰러져 있었다. 교먹은 몇 번 몸을 떨며, 얼버무리며 말했다. “왜… 왜… 사칭… 왜… 나를… 죽여…” 마지막 단어가 떨어지자, 교먹은 끝내 사망했다. 그녀는 죽음에 눈을 감지 못했다. 봉구안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 장면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을 내비쳤다. “이날이 올 줄 알았더라면, 왜 그때 그랬을까.” 소욱의 눈 속엔 분노가 억제되어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매우 차분했다. 그는 활을 진한길에게
서여국에 오기 전, 봉구안은 이미 모든 대비책을 마련해 두고 있었다.소주와 정국은 이미 세작을 파견하여 서여국 황궁에 숨어들게 했다. 황제가 진짜 봉구안인지 탐색하기 위함이었다.뿐만 아니라 서여국 내부에서도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황제의 자리를 노리는 무리들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이번 일은 오히려 그들의 계략을 역이용할 절호의 기회였다.봉구안은 송려에게 명했다.“내일 장미를 데리고 남제로 돌아가세요. 서여국은 저와 폐하가 남을 겁니다.”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송려는 더 바랄 것도 없었다.하지만 봉장미는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언니, 정말 내 도움이 필요 없어?”봉구안은 확신에 찬 눈빛으로 동생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너만 무사히 남제로 돌아간다면, 난 그걸로 만족해. 난 걱정하지 말고, 우선 무사히 네가 남제에 돌아갈 방도를 생각해보자.”봉장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 언니 말대로 할게.”입으로는 순순히 따랐지만, 마음은 어쩐지 허전했다.잠시 망설이다 결국 그녀는 입을 열고 말았다.“언니, 소주와 정국 일만 정리되면… 이 서여국의 황제는 누가 되는 거야?”그녀는 언니는 반드시 남제로 돌아가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봉구안은 주저함 없이 답했다.“서여국에 숙가 사람들 중 더 이상 남은 이는 없어. 이제는 현명한 이를 추대하여 황제 자리를 물려줄 수밖에 없어.”봉장미는 그 말을 듣고 묘한 감정을 억누르며 고개를 숙였다.하지만 황제와 송려가 있는 앞에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그날 밤 봉장미는 떠나기 전 호원아와 오양련을 따로 불러들였다.이 둘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언니께서 이미 서여국에 도착하셨어요. 앞으로 이 나라 황제는 언니가 될 거예요.”그 말에 두 사람은 놀라며 기뻐했다.하지만 봉장미는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하지만 언니의 뜻은 이번 일은 소주와 정국의 반란을 정리하러 온 것이고, 그 후에는 황제 자리를 사양하시겠다고 하셨어요. 두 분
궁궐 밖 어느 저택.봉장미는 그곳에서 그리운 언니를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안으려던 순간, 언니의 불러진 배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언니, 이게 무슨...?" 봉장미는 어떤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봉구안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회임했어."봉장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크게 벌렸다. "정말?!" 너무나 기쁜 소식이었다!자매는 자리에 앉아 오랜만에 만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할 말이 정말 많았다.옆방.소욱과 송려가 함께 있었다. 송려의 안색이 예전 같지 않았고, 눈 밑에는 검은 다크서클이 드리워져 있었다. 근심이 얼굴에 그대로 새겨져 있었다.소욱이 눈치 없이 물었다. "황후의 지아비 역할은 어떠하냐?"송려는 고개를 떨구며 슬픈 표정으로 자조했다. "신은 재주가 없어 그 역할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소욱은 미간을 찌푸렸다.‘왜 저렇게 우울해 하지? 혹시 봉장미가 변심해서 새 남자를 들였나?’송려는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눈을 반짝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소욱에게 공손히 예를 올렸다."폐하, 감히 여쭙겠습니다만 이번에 황후마마께서 오신 이유가 황제의 자리를 맡기 위함입니까?"소욱은 부정하지 않았다. 송려는 완전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이렇게 된다면 좋았다. 그러면 장미가 그와 함께 남제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다 문득 황제가 생각나 조심스레 물었다."폐하, 어찌하여 서여국까지 오셨습니까?"나라는 하루도 군주 없이 지낼 수 없는데, 황제께서 서여국에 오시면 남제에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어찌할지 걱정됐다.소욱은 눈빛이 깊어지며 말했다. "부부는 한 몸이니까."국사와 관련된 일, 예컨대 그가 소주와 정국의 반란을 해결하러 왔다는 등의 이야기는 굳이 송려에게 말할 필요가 없었다.송려는 망설이다 결국 조언을 건넸다. "폐하, 이 황부의 역할은 확실히 쉽지 않습니다. 신은 폐하께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기를 권합니다."소욱의 칼 같은 눈썹이 찌푸
봉장미는 억울함으로 가득 찼다.눈앞의 두 사람은 그녀의 어머니와 지아비였다.누구보다 그녀의 편이야 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녀를 믿지 않으니 그녀는 더욱 속상할 수밖에 없었다."군주란 정치에 힘쓰는 자이니, 두통쯤이야 대수로운 일인가요?""고모님이 이 자리에 계셨을 때를 기억해보세요.""수많은 상처를 입으시고, 몇 번이나 목숨을 잃을 뻔하셨어도 단 한 번도 이 자리를 포기하신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왜 저더러 포기하라 하시나요?""언니가 대역을 준비했다는 건 알지만, 전 대역보다 더 잘할 수 있단 말이에요.""왜 위험을 감수해야 하나요?""두 분은 정말 제 마음을 모르세요…""언니는 멀리 계시니 지금 서여국이 얼마나 큰 위기에 처했는지 모르시죠.""소주와 정국은 현재 많은 세작들을 보내고 있어요. 궁중은 이미 그들의 침투를 받았고, 또한 그들은 이미 수만 군대를 주둔시켜 서여국을 공격할 기회만 노리고 있어요.""서여국의 흠이 있다면 바로 제가 황제의 자리에 앉은 것이겠죠.""만약 그들이 제가 가짜라는 것을… 제가 남제의 황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들은 즉시 군대를 보낼 거예요! 대역만으로는 절대 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그녀는 원래 성격이 온화하고 순종적이라 보통은 남이 무슨 말을 해도 반박하지 않았다.하지만 이번만큼은 황제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특별히 고집을 부렸다.송려는 왜인지 그녀가 낯설게만 느껴졌다.분명 황후를 모방해야 했기에 장미의 성격이 변한 것이라 생각하였다.송려는 그런 봉장미의 모습에 실망감이 들었다."그럼 나는? 송가는? 이런 것들은 신경 쓰지 않는 거야?"그는 이 서여국에서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원래 자신은 뛰어난 의술을 가지고 있으니 어디서든 자신의 큰 뜻을 펼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의술로 세상을 구제하고, 병을 치료해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야말로 그의 꿈이자 삶의 목표였다.하지만 이 서여국에 온 후에야 그는 자신이 너무 순진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한편으로는 황후의 지아비로서
5월 초, 차가운 겨울이 가시고 꽃이 피는 계절이 다가왔다.봉구안과 소욱은 서여국으로 향하는 여정에 올랐다. 가볍게 채비하여 가는 길에 각 성읍을 순시했다. 열무신은 동산국으로 향하기로 결심했다. 탈옥한 손추를 체포하고 약쟁이단을 뿌리째 뽑기 위해서였다. ...... 서여국. 봉장미는 이미 언니의 편지를 받았다. 대역을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서여국의 국사를 대역에게 맡기는 것이 불안해, 여전히 국주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첫째는 대역이 실수하여 화를 부를까 걱정되었고, 둘째로는 서여국의 일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서여국 황실의 혈통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이 나라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송려는 여러 번 그녀를 설득하며 함께 남제로 돌아가자고 했지만, 진실을 밝히지는 못했다.그녀의 옛 병이 재발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이날 조회를 마친 후, 봉장미는 갑자기 머리가 찢어질 듯이 아파왔다. 그녀는 손에 든 상소문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고통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폐하!" 그녀 곁에 있던 송려는 상황을 보자마자 즉시 앞으로 나와 그녀를 부축했다. 그의 눈빛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궁녀가 즉시 태의를 부르려 했지만, 그가 저지했다. "태의는 부를 필요 없다! 폐하의 몸 상태는 내가 가장 잘 알아." 말하면서 그는 봉장미를 침상으로 안아 눕히고, 곧바로 침을 놓기 시작했다. 봉장미는 머리가 너무 아파서 그의 팔을 꽉 붙잡았다. "당신... 왜, 제 머리가... 이렇게 아픈 거죠.""마치 폭발할 것 같아요... 정말 너무 아파요..." 그녀의 몸이 아프면, 송려의 마음도 아팠다. 은침을 잡은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두려워하지 마... 괜찮을 거야. 나를 봐, 다른 생각하지 말고. 내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그는 그녀를 위로하였다. 잠시 후 온 머리에 땀이 흘렀다. 봉 부인이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딸이 이토록 고통받는 모습을 보며 분노와 급한 마음이 섞였다. 당시 그 짐
"공자님,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곧 다 됩니다!" 연상은 즐겁게 부산을 떨며, 자신의 이런 행동이 소탁에게는 부담이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곧, 음식들이 다 되었다. 연상은 미역국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기대에 찬 표정으로 소탁을 바라보았다. "소 공자님, 오래도록 장수하시길 기원합니다. 모용길처럼...""아, 이런! 제 입이 이렇게 험합니다. 모용길 같은 악인과 소 공자님은 전혀 다르시죠." 소탁은 국을 먹지 않고 연상에게 물었다."너는 행복하니?" 연상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저야 당연히 행복하죠. 나쁜 사람들이 인과응보로 벌을 받지 않았습니까.""게다가 오늘 의원께서 말씀하시길, 공자님의 눈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하였어요.""전 공자님께서 곧 다시 빛을 볼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연상아, 너와 나는 이뤄질 수 없는 사이야."소탁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도 결국에는 이런 말까지 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연상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담담하게 웃었다. "공자님, 저도 알고 있어요. 공자님은 황실의 귀한 분이시고, 저는..." "네 신분 때문이 아니야. 연상아, 난 너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너에게 짐이 되고 싶진 않다."이 말을 듣자마자 연상의 눈에 갑자기 한 줄기 빛이 어렸다. "단지 절 걱정하시는 것 뿐이지, 절 싫어하시는 건 아니군요?" 소탁의 목이 갑자기 조여들었다. "나는..." 그의 일생은 큰 기복이 있었고, 혼자 살아가게 될 운명이었다. 한 번도 인연을 찾을 생각을 해본 적 없었고,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할 생각도 해본 적 없었다. 연상이란 아이는 그에게 있어 더 과분한 존재였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이 시간 동안 그녀가 곁에 있어 그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는 사실이었다. "난 너에게 남녀 간의 사랑을 품고 있지 않아. 설령 내가 여자를 찾는다 해도, 그건 아내지 시녀가 아니야." 연상은 그의 말을 듣고 눈이 크게 떠졌다. 시녀? 소탁은 선의로 그녀에게 일깨워주었다
완부옥은 예로부터 여자를 좋아했다. 남자를 대할 때조차도, 가볍게 희롱하거나 농을 던질 뿐이었다.그런 그녀 앞에 서왕이 호의를 드러내자, 그녀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게다가… 분명 그도 남자를 좋아하지 않았던가.서왕은 그녀의 반응이 예상보다 격해 당황하며 서둘러 설명했다.“우리는 비슷한 처지가 아니더냐? 같이 사는 건… 서로에게 나쁘지 않지 않느냐.”“네가 떠나면, 난 또 다른 이와 혼인해야 할 텐데… 너처럼 내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여인은 없을 것이다.”“또다시 나 자신을 숨기며 살아야 할 테니… 차라리 그냥 이렇게 지내는 게 낫지 않겠느냐?”그 말을 들은 완부옥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그 말씀이셨군요.”그가 정말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줄 알고 긴장했건만… 그게 아니라니 다행이었다.……한편 모용길의 죄행이 세상에 밝혀지자, 남제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백성들 또한 믿기 어려워했다.“그 자가 그렇게 오래 살았다고? 분명 불로장생의 술법이 있었던 게지. 폐하께서 그걸 두려워해 제거한 거야.”“약쟁이 사건도 정말 복잡하군. 처음엔 모용욱이 범인이라더니… 이번엔 왜 모용길이 나와? 설마 이번에도 헛다리 짚은 건 아니겠지?”“뭐가 어쨌든 간에 약쟁이는 전부 모용가 짓이란 말이잖아. 그런 집안은 몰아내야지!”분노한 백성들은 결국 모용가로 몰려가 돌과 썩은 달걀을 던지며 고함쳤다.“남제에서 당장 꺼져라!”“모용가 놈들은 천벌 받아야 마땅해! 죄 없는 사람들 고통받게 했잖아!”며칠째 모용가는 백성들의 소란에 시달려, 누구 하나 문밖을 나서지 못했다.……성 외곽의 한 촌락.낡은 농가 안, 여인이 낮은 목소리로 다급히 말했다.“들었어? 약쟁이 사건 피해자한텐 조정에서 보상금을 준다더라. 장순이네도 그랬잖아. 우리도 당장 관청 가자고, 장대복! 내 말 듣고 있는 거야?”장대복은 장순의 친삼촌이었다. 어린 조카를 생각하면 늘 미안함이 앞섰다.“형님은 일찍 돌아가셨고, 그 모자 둘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당신도 알잖아.”
소욱은 미소를 지었다.“부창부수라 하지 않느냐. 함께 손잡고 세상을 다스릴 것이다. 황부도 결국 한 여자의 지아비이지 않겠느냐.”그 말을 들은 서왕은 한껏 조이던 가슴이 결국 힘없이 내려앉았다.그는 즉시 두 손을 모아 절하며 간언했다.“폐하, 그건 절대 안 됩니다!”“폐하께서는 일국의 군주이십니다. 어찌 여인의 그늘 아래 계시겠습니까?”“이 일이 만에 하나라도 세상에 알려진다면, 조롱과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평소 성정이 온화한 서왕이지만, 마음에 걸리는 일이 생기면 은근히 고집이 세지는 성격이었다.소욱은 목소리를 날카롭게 높였다.“그래서 말이지. 이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아.”서왕은 속으로 중얼거렸다.‘폐하도 이게 창피한 줄은 아시는구나…’“황후 마마께서는 폐하께서 황부가 되겠다는 걸 허락하셨습니까?”소욱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황후가 왜 반대하겠느냐? 설마 다른 사내를 맞이해야한단 말이냐?”서왕은 잠시 헷갈려 그 말에 말려들 뻔했다.“그런 뜻이 아니라, 황후마마께서도 이 일이 폐하께 불리할 수 있다는 걸 알고 계신지 여쭈려는 것입니다.”소욱은 눈을 좁히며 말했다.“내 너를 형제로 생각하니까 이런 말도 하는 것이다.”“이미 내가 결정한 일이야. 누구도 바꿀 수 없어.”“너는 그저 국정을 맡아 잘 처리하거라. 내가 황후와 함께 돌아올 때까지 말이다.”그러자 서왕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하지만 폐하 신도 이번에는 휴가를 청하려 했습니다.”매번 국정을 떠맡는 것도 지치는 일이었다.아무리 가까운 형제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지 않겠는가.‘이 나라는 분명 소씨 가문의 일국이지 않는가.’ ‘잠깐… 순간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서왕은 방금 스쳐간 생각에 스스로 놀랐다.감히 황제에게 이런 불만을 품다니. 마음으로도 짜증을 내다니, 감히 내가?’소욱은 인내심을 다잡으며 물었다.“휴가를 내겠다고? 무슨 연유냐?”서왕은 몇 초간 머뭇거리다, 정색하며 대답했다.“왕비와 함께할 시간이 필요합니다.”소욱은
서왕의 심문이 시작되자, 손추의 수하였던 자객은 결국 모든 사실을 고백했다.“그… 그 일은 저희가 꾸민 일입니다.”“모용길이 왕가의 피를 원했고, 손추가 직접 그 일을 맡았습니다.”“하지만 그분은 왕이셨고, 무공도 출중하셨습니다. 손추는 선제를 이간질해 부친을 의심하게 만들었고, 결국 모반의 증거를 조작했습니다.”그 뒤의 이야기는 서왕도 이미 알고 있었다.그의 아버지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도 조정에 충성을 다했다.군주의 명이 떨어지면, 신하는 죽는 수밖에 없었다.유배길에 올라서도 그의 아버지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그는 끝까지 선제가 자신의 결백을 밝혀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그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약쟁이단이 아버지의 목숨을 노릴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진실이 드러났을 때, 서왕은 마치 천근 무게의 짐을 내려놓은 듯 가슴이 후련해졌다.그러나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 사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쓰라림으로 번져왔다.그가 정원으로 돌아오자, 멀리 나무 아래서 완부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서왕은 한 걸음에 달려가 그녀를 와락 안아 올렸다.“이번 일을 해결해줘서… 정말 고맙다!”“드디어 모두가 알게 되었어. 부친께서 얼마나 억울하게 누명을 썼는지…”“선제도 진범을 찾고자 했었지만, 결국 오늘에서야 제대로 밝혀졌어. 정말, 정말 고맙다…”서왕은 거듭 고마움을 표현했고, 완부옥은 조금은 지겨워하며 그를 말렸다.무엇보다 이 남자가 이렇게까지 그녀를 직접 껴안을 줄은 몰랐다.조금 불편한 표정이었지만, 완부옥은 조용히 손을 들어 그의 등을 토닥였다.“됐습니다. 됐어요. 그렇게 큰일도 아닌걸요.”“정말 제게 보답하고 싶다면, 폐하께 소환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여쭤봐 주세요.”서왕은 그녀를 놓고, 놀라움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아직도 포기 못 한 것이냐?!”완부옥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런 게 아닙니다.”“그저 소환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은 것뿐입니다.”“정인이 아니더
세상일이란 참 아이러니했다. 열무신은 한 발 늦게 도착했다. 그가 천옥에 도착했을 때, 모용길은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모용길의 시신을 바라보며 열무신은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고, 낮은 포효를 내뱉었다. 사람들은 착한 사람은 일찍 죽고 재앙은 천 년을 간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모용길 같은 자는 200살이 넘게 살다가 죽었는데, 맹성주 같은 이는 관례도 치르기 전에 죽임을 당했다. 이를 생각하니 열무신의 증오심이 하늘을 찔렀지만, 이 빚을 누구에게 갚아야 할지 알 길이 없었다.너무 감정이 격해져서, 열무신은 천옥을 나서자마자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기절해버렸다.황궁. 봉구안은 임시로 자진궁에 거처하고 있었다. 그녀는 회임 중이었고, 점차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자 회임이 실감 났다.정말로 아이가 서서히 자라고 있었다. 소욱이 정해준 태의는 매일 그녀에게 와서 맥을 짚었다. 최근 그녀의 태상은 안정되어, 더 이상 안태약을 마실 필요가 없고 그저 조용히 쉬기만 하면 되었다.아이의 일에 대해서, 봉구안은 걱정하지 않았다. 약쟁이 사건도 이미 해결되어, 그녀의 큰 근심을 덜어주었다. 현재 유일하게 장미에 대해서만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장미의 옛 병이 재발할까 걱정되었다.그것이 만약 재발한다면, 그녀의 몸과 마음에 좋지 않을 터였다.봉구안이 이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황제가 도착했다. 소욱은 약쟁이 사건의 최신 진전을 가져왔다.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열무신이 붙잡은 그 사람들이 증명할 수 있다는구나. 이미 200년 전에 태조는 돌아가셨고, 부활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하엿다. 모든 것이 모용길의 환상이었던 거야.”“짐은 이 사건의 모든 세부 사항을 대중에게 공개할 생각이다. 모용길이 남긴 큰 돈은 모두 약쟁이 매매로 얻은 것이야. 짐은 이 돈을 피해자들과 그 친척들을 위로하는 데 쓸 것이다.”“이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그는 걱정이 가득했다.봉구안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의 이 조치는 백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