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황궁의 종이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 종까지 울리자 황궁 전체의 마력이 뒤집혔다. 창문이 떨리고, 벽에 걸린 초상화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하 가장 깊은 곳에 있던 이들은 동시에 알아차렸다. 왕좌가 새 주인을 맞이했다는 것을. 엘로라는 희미하게 빛나는 손목의 문양을 내려다보았다. “이게 왕의 증표인가요?” 세드릭이 굳은 얼굴로 답했다. “왕좌와 맺은 계약이다.” “파기할 방법은?” “가능하다. 하지만 대가는 알 수 없어.” 칼리안이 끼어들었다. “대가가 무엇이든 치를 필요는 없어. 네가 원하지 않으면 거부분명히 살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평소와 달랐다. 창백한 얼굴에는 피로가 짙게 내려앉아 있었고, 한쪽 무릎은 바닥에 닿아 있었다. 손으로 몸을 지탱하고 있었지만 그 손끝마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칼리안은 그녀를 보자마자 가장 먼저 미간을 찌푸렸다. “왜 왔지.” 엘로라는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그저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찾으러 왔어요.” “돌아가.” “싫어요.” “여기는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그럼 당신은요?” 칼리안이 말을 멈췄다. 엘로라는 그의 앞에 섰다. “당신은 여기에 있어도 되는 사람이에요?”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엘로라는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칼리안의 손을 잡았다. 차가웠다. 너무 차가워서 살아 있는 사람의 손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엘로라는 그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
이번에는 달랐다.다급했지만 강요하지 않았고, 두려웠지만 그녀에게 그 두려움을 떠넘기지 않았다. 무엇보다 마지막 음절이 아주 조금 떨리고 있었다.엘로라는 그 미세한 떨림을 기억하고 있었다.그것이 진짜 칼리안의 목소리였다.엘로라의 심장이 얼어붙었다.그러나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기다려요, 칼리안.”그녀는 검은 바람 속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이번에는 내가 당신을 찾으러 갈게요.”자신이 누구를 잃을 수 있는지가 아니라, 누구도 잃지 않기 위해 무엇을 감당할 수 있는지 증명하기 위해서였다.발끝이 검은 안개에 닿는 순간, 서늘한 기운이 발목을 타고 올라왔다.마치 살아 있는 무언가가 그녀를 붙잡으려는 것처럼 끈질겼다.엘로라는 잠시 이를 악물었다.무서웠다.당장이라도 뒤로 물러나고 싶었다.하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남은 것은 오직 하나였다.칼리안의 목소리.그리고 그 목소리가 사라진 방향이었다.“칼리안.”이번에는 대답이 없었다.엘로라는 한 걸음 더 내디뎠다.검은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머리카락이 거칠게 휘날리고 눈을 제대로 뜨기조차 힘들었다.그녀는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그러면서도 계속 앞으로 걸었다.한 걸음.또 한 걸음.발밑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어디가 바닥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그런데도 이상하게 발을 멈출 수가 없었다.마치 이 길의 끝에 칼리안이 있다는 것을 본능이 알고 있는 것 같았다.엘로라는 문득 황태후가 했던 말을 떠
쿵. 잠시 뒤, 다시. 쿵. 마치 문 너머의 무언가가 엘로라가 손을 대기를 기다리며 안쪽에서 손가락으로 두드리고 있는 듯했다. 붉은 혈관 같은 선들이 일제히 꿈틀거렸다. 그중 하나가 문 중앙까지 뻗어 오르더니, 칼리안의 문양과 닮은 검은 자국을 만들었다. 하지만 엘로라는 곧 알아차렸다. 닮은 것이 아니었다. 칼리안의 문양을 흉내 낸 흔적이었다. 문에는 단 하나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왕이 되려는 자는 가장 소중한 것을 버려라.」 엘로라의 표정이 굳었다. 문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렇다면 네가 무엇을 버릴지 선택해라.” 칼리안의 목소리였다. 이번에는 더 선명했다. 너무 선명해서 오히려 불길했다. ’문 너머에 정말 칼리안이 있다면, 왜 목소리가 이렇게 멀게 들리지?’ 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방식이, 그가 마지막으로 그녀를 붙잡았을 때와 미묘하게 다른가. 또
엘로라는 눈을 감았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을 버릴 수 있을까. 어머니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외면할 수 있을까. 아니면 칼리안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을 약함이라 부르며 잘라낼 수 있을까.’ 전부 다 아니었다. 그 모든 감정을 버리는 순간, 그녀는 상처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 입었던 자신을 다시 버리는 셈이었다. 엘로라는 그 사실을 깨닫자 가슴 깊은 곳이 저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은 오랫동안 그 아이에게 조용히 있으라고 명령해 왔다. 울지 말라고, 기대하지 말라고, 사랑받고 싶다고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야 다시 버려지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사라진 적이 없었다. 늘 어머니의 기록을 펼칠 때마다.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칼리안의 손을 놓칠까 두려워할 때마다 여전히 안쪽에서 떨고 있었다. 그 아이를 또 버린다면, 왕좌를 얻어도 자신은 영원히 혼자가 될 것이다. 엘로라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차가운 공기가 폐를 찔렀다. 그 순간에도 문 너머에서는 칼리안의 목소리가 낮게 흘러나왔다. “엘로라. 문을 열어.”
어머니의 마지막 기록을 붙잡고도 끝내 진실을 알 수 없었던 엘로라. 칼리안에게 붙잡힌 채 두려움에 떨던 엘로라. 그리고 왕관을 쓰고 왕좌에 앉은 엘로라. 거울 속 인물들은 모두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눈동자는 조금씩 달랐다. 어떤 것은 원망으로 젖어 있었고, 어떤 것은 공포에 흔들렸으며, 어떤 것은 이미 그녀의 결말을 알고 있다는 듯 차갑게 빛났다. 그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어떤 네가 진짜지?” 목소리는 거울 안쪽에서 울린 것이 아니었다. 바로 귓가에서 속삭인 것처럼 가까웠다. 엘로라는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가 침묵하자, 다른 거울 속의 자신이 비웃듯 웃었다. “사랑받고 싶은 아이?”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오래전 기억이 되살아났다. 아무리 애써도 돌아보지 않던 아버지의 뒷모습. 칭찬 대신 침묵만 남기던 궁전. 자신이 부족해서 버림받았다고 믿으며, 작은 실수 하나에도 사랑을 잃을까 숨죽이던 날들. 거울 속 어린 엘로라의 입술이
“그러다 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하면, 난 더는 견딜 수 없을 거야.” “그럴 리가 있겠어요.” 엘로라가 고개를 내저었다. “이건 진심이야, 엘로라.” “저도 알아요. 저도 진심이에요.”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냥 제가 선택한 결과를 제가 감당하게 해 달라는 말이에요. 제가 부르기 전까지는 오지 마세요.” 칼리안의 손이 내려갔다. 그는 중앙 원의 남쪽 바깥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세드릭도 더는 붙잡지 않았다. 그는 석문 앞에 선 채, 중앙 원과 우회선 사이의 흐름을 지켜보았다. 엘로라는 왕좌를 향해 몸을 돌렸다. “제가 선택한 건 왕좌가 아니에요. 제가 선택할 권리예요.” 왕좌의 등받이에는 헬레나의 문장과 낯선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수호자들의 목소리가 지하를 울렸다. “계승자를 왕좌 앞에 세워라.” 검은 사슬이 다시 엘로라를 휘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