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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 - 대형 마트

Author: 최코리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07 17:16:34

016

집을 나선 준우의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이번에 쓰러지면 다시는 관리청의 의료 지원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경고가 귓가를 맴돌았지만, 그건 나중 일이었다. 지금 제 발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영원히 괜찮지 않을 것 같다는 직감이 그를 움직였다.

현수는 입구에서 서성이는 준우를 발견하고는 미간을 좁혔다. 

“나와준 건 고마운데… 그 몸으로 정말 감당하겠어요?”

준우는 굳은 얼굴로 대답 대신 짧은 숨을 내뱉었다.

“집에 누워 있으면 속만 터질 것 같아서요. 가시죠.”

팀원들은 더는 묻지 않았다. 짧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들의 눈빛에는 준우의 고집을 이해한다는 묘한 동질감이 서려 있었다. 준우를 선두로 움직이기 시작한 팀이 도착한 곳은 시내의 대형마트였다. 평일 낮인데도 장을 보러 나온 시민들로 북적이는 장소였다.

“미쳤어. 여기서 터지면 답도 없는데.”

채은이 혜진에게 바짝 붙어 속삭였다. 혜진 역시 차갑게 식은 마트의 공기를 들이키며 주변을 경계했다. 도망칠 곳도, 숨을 곳도 마땅치 않은 개방된 공간. 사고가 터지면 아수라장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준우는 그들의 대화에 끼어드는 대신 공기 중에 부유하는 기운을 쫓았다. 일반인들의 체취와 뒤섞인, 지독할 정도로 비릿한 마나의 잔흔. 2층 에스컬레이터 근처에 다다랐을 때, 정적을 찢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비명의 근원지에는 한 여자가 무너져 있었다. 눈과 코, 입가로 검붉은 피가 울컥 쏟아져 내렸고, 얼굴 위로는 시퍼런 혈관이 기괴하게 돋아나 있었다. 폭주의 전조였다.

“비키세요! 관리청입니다!”

준우가 인파를 헤치며 달려 나갔다. 그는 여자의 목 뒤로 손을 뻗어 마나를 안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손끝이 닿는 찰나, 여자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충격파가 준우를 대리석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끄으, 아아아!”

여자의 관절이 끔찍한 소리를 내며 뒤틀렸다. 순식간에 2미터가 넘는 거구로 팽창한 그녀의 손에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육중한 경기관총이 쥐여 있었다. 

“조용히 해! 시끄러워 죽겠다고!”

철컥, 노리쇠가 후퇴 전진하는 소리가 마트 안의 소음을 일순간 지워버렸다. 곧이어 닥칠 재앙을 직감한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 혼란 속에서 재범만이 방패를 고쳐 쥐며 전면으로 나섰다.

“재범 씨, 막아요!”

현수의 외침과 동시에 총구가 불을 뿜었다.

[드르르륵—!]

불꽃이 튀고 도비탄이 매대를 박살 냈다. 재범은 방패 뒤로 몸을 바짝 웅크린 채 쏟아지는 탄환을 견뎌냈다. 충격이 올 때마다 그의 발 뒤꿈치가 바닥을 긁으며 뒤로 밀려났다. 그 틈을 타 채은과 혜진이 측면으로 산개해 총구를 겨눴다.

하지만 짐승 같은 감각이었다. 여자는 사격 각도가 나오기 직전, 비현실적인 속도로 몸을 틀어 오른쪽으로 도약했다. 그녀의 총구는 다시 무방비하게 노출된 준우를 향했다.

[카가가강—!]

재범이 제 몸을 던지듯 방패를 날려 준우의 앞을 가로막았다. 금속음이 고막을 때렸고, 재범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준우의 멱살을 잡아 일으켰다.

“고마워요, 재범 씨!”

“나중에 술이나 사요!”

준우는 품 안에서 리볼버를 뽑아 들었다. 

[탕! 탕!]

두 발의 총탄이 여자의 관자놀이를 노렸지만, 그녀는 고개를 기괴하게 꺾어 탄환을 흘려보냈다. 그러고는 다시 준우를 향해 총구를 고정했다. 피할 곳이 없었다. 쏟아지는 총탄에 준우의 어깨와 옆구리가 뒤로 젖혀졌다. 혹시 몰라 입었던 방탄 슈트가 충격을 흡수했지만, 둔탁한 타격감까지 지우지는 못했다.

“준우 씨!”

멀리서 현수가 경악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준우는 신음하며 여자를 노려봤다. 여자의 눈에선 이제 눈물 대신 피가 흘렀고, 입술은 무언가에 홀린 듯 달싹거리고 있었다. 고통을 끝내달라는 절규처럼 보였다.

재범이 다시 기회를 포착하고 돌진했다. 여자가 옆으로 피하려 했지만, 이미 채은과 혜진이 사격 각을 완전히 좁힌 상태였다. 퇴로는 오직 뒤뿐이었다. 여자가 뒷걸음질 치려는 찰나, 공기가 울렁이며 규빈이 그녀의 뒤에서 나타났다. 점멸이었다.

“지금이야!”

채은과 혜진의 총구가 여자의 머리 양옆을 점거했고, 전면에서는 재범의 방패가 그녀를 벽으로 밀어붙였다. 

“커억, 커어….”

짐승 같은 울음을 토해내는 여자의 뒷머리를 준우가 움켜쥐었다. 그는 자신의 손바닥에 남은 모든 마나를 쏟아부어 정화의 파동을 밀어 넣었다.

“꺄아아아아악—!”

마트 전체를 뒤흔드는 초음파 같은 비명에 대원들이 한 손으로 귀를 막으며 버텼다. 여자의 비대했던 근육이 풍선 바람 빠지듯 줄어들기 시작했다. 거칠었던 숨소리가 잦아들고, 그녀의 몸이 원래의 가냘픈 형태로 돌아와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상처 입은 짐승 같던 출혈이 멎었다. 대원들은 무기를 거두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쓰러진 여자를 내려다봤다. 고요해진 마트 안, 여자가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열어 나지막이 읊조렸다.

“…드디어, 조용해졌어. 고마워요.”

그 한마디를 끝으로 여자는 까무러치듯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준우는 그제야 떨리는 손을 갈무리하며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았다.

***

병실을 박차고 나갔던 객기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싸늘한 피로감으로 돌아왔다. 준우는 구두도 제대로 벗지 못한 채 침대에 몸을 던졌다. 총탄에 쓸린 어깨가 욱신거렸고, 억지로 끌어다 쓴 마나의 잔찌꺼기가 혈관을 타고 모래알처럼 굴러다니는 기분이었다.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던 시야 끝에 휴대폰 화면이 반짝였다. 단톡방에 링크된 기사 제목을 본 준우의 입가에 헛웃음이 걸렸다.

[ㅇㅇ마트, 비허가 능력자들의 난동으로 시민 불안 가중]

“난동이라….”

민간인이 괴물로 변해 경기관총을 갈겨대던 지옥도는 쏙 빠져 있었다. 관리청의 허가 없이 개입한 '불온한 조력자'들에 대한 질타만이 행간을 가득 채웠다. 만약 우리가 구경만 해서 사람들이 몰살당했다면, 그때는 또 어떤 명분으로 우리를 씹어 돌렸을까. 

준우는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려 눈을 감았다. 팀장에게선 여전히 연락이 없었다. 찔리는 구석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정말로 버린 카드라 무관심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차라리 다행이었다. 마침 마트에서 장을 보던 중이었다는 구차한 변명을 준비할 기력조차 없었으니까.

준우는 현수에게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 경찰 쪽 분위기는 어때요?

- 대충 묻긴 하던데,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어요. 잘 넘어간 것 같습니다.

- 다행이네요. 고생하셨어요.

몇 시간이나 눈을 붙였을까. 몸이 조금 가벼워진 느낌에 준우는 겉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사방이 벽으로 막힌 방안보다는 사람 섞인 거리의 소음이 차라리 안락했다. 단골 카페 구석진 자리에 앉아 연유라떼의 끈적한 단맛을 혀끝으로 굴리며 멍을 때리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기척도 없이 옆자리에 스며들듯 앉았다.

“최준우 씨?”

말소리와 동시에 준우의 손이 소리나는 쪽으로 향했다.

[철컥]

작은 리볼버의 해머가 당겨지는 서늘한 소리가 테이블 밑에서 울렸다. 준우의 눈이 맹수처럼 가늘어졌다. 불시에 허점을 찔린 불쾌감이 살기로 변해 카페의 온도를 떨어뜨렸다. 옆자리의 사내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양손을 들어 보였다.

“진정하시죠. 역시 소문대로 예민하시군요. 성심길드 헤드헌터, 유진혁입니다.”

사내는 온몸에 부의 냄새를 두르고 있었다. 맞춤 정장의 실루엣과 손목에서 빛나는 시계, 그리고 테이블에 놓인 특수 재질의 명함까지. 소위 '급'이 다른 곳에서 왔다는 선언과도 같았다. 준우는 천천히 리볼버를 소환 해제했지만, 경계의 끈은 늦추지 않았다.

“성심의 헤드헌터께서 이런 변두리 카페까지는 웬일입니까?”

“당신의 처지가 좀 안타까워서 말이죠. 일종의 경고라고 해두죠.”

“제 상황요?”

“관리청은 당신을 규격 외의 소모품으로 묶어두려 하고, 대형 길드들은 당신을 인간이 아닌 고성능 공기청정기 정도로 보고 있거든요. 들여놓으면 주변이 깨끗해지니까.”

진혁의 말은 가시가 돋쳐 있었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일전에 받았던 제안서들의 살인적인 스케줄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들에게 준우는 인격체가 아니라 효율 좋은 정화 장치에 불과했다.

“그런데 유진혁 씨는 왜 제게 이런 말을 해주는 겁니까? 성심도 결국 길드 아닙니까.”

“글쎄요. 남들 다 모르는 마트에서의 활약이 누군가에겐 생명의 은인이라서?”

“그게 무슨….”

“그때 제 가족들이 거기서 장을 보고 있었거든요. 총구 앞에 서 보니 세상이 참 다르게 보이더군요.”

진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명품 구두가 바닥을 딛는 소리가 유독 선명했다. 

“고마웠다는 인사는 이 정도로 하죠. 쓸모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몸 조심하세요. 당신을 노리는 눈들이 생각보다 많아지고 있으니까. 혹시라도 관리청 때려치우고 싶으면 연락 주십시오. 상품이 아니라 파트너로 모실 용의가 있으니.”

가벼운 미소를 남긴 진혁이 카페 문을 나섰다. 준우는 그가 남기고 간 명함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잉크 향조차 고급스러운 명함의 무게가 평소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이제는 세상이 나를 가만히 두지 않겠구나. 

달콤했던 연유라떼가 어느새 차갑게 식어 있었다. 준우는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씁쓸한 뒷맛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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