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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외곽, 간판조차 없는 건물의 지하 연구소. 낮은 웅성거림이 가득한 공기 속으로 날 선 대화가 섞여 들었다. 모니터 속에서는 준우가 움직이는 영상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결국, 저놈을 확보해야 한단 소리군.”
연구원 한 명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화면 속 준우의 몸짓 하나하나를 뜯어보던 다른 연구원이 건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친구의 정화 능력만 있으면 약의 결함을 억제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소거할 수 있어. 이론상으론 완벽해지겠지.”
“협력할 의사가 전혀 없어 보이는데. 난감하군.”
“그럼 협력하게 만들어야지. 우리가 늘 하던 방식대로.”
말이 끝남과 동시에 화면 속 준우의 얼굴 위로 붉은 타깃 마크가 덧씌워졌다.
***
정오의 태양이 아스팔트를 달구고 있었다. 준우는 오토바이 시트에 몸을 맡긴 채 신호를 기다렸다. 특별할 것 없는 평일 오후, 평소 가던 카페에서 커피나 한 잔 마실 생각이었다. 그때, 검회색 스타리아 한 대가 미끄러지듯 다가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준우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길눈이 어두운 운전자가 차선을 급하게 바꾸는 일은 흔했으니까. 하지만 차 뒷부분에서 들려오는 기계적인 마찰음은 결코 흔하지 않았다.
트렁크 문이 위로 치켜 올라가더니, 지면을 향해 금속제 올림판이 스르르 내려왔다. 본능적인 거부감이 뒷덜미를 훑었다. 준우가 핸들을 꺾어 차선을 이탈하려는 찰나, 차체 밑바닥에서 발사된 굵은 쇠사슬이 뱀처럼 날아와 오토바이의 앞바퀴를 옥죄었다.
‘뭐야, 이건!’
신호가 바뀌자마자 스타리아가 거칠게 급발진했다. 팽팽하게 당겨진 사슬이 오토바이를 강제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끼이익, 비명을 지르는 타이어 마찰음 사이로 트렁크 안쪽에 매복한 사내들의 실루엣이 보였다. 서너 명의 장정들이 서늘한 눈빛으로 준우를 겨누고 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차가 우회전을 하기 위해 속도를 줄이며 크게 휘청였다. 준우는 주저하지 않고 몸을 날렸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준우의 몸이 아스팔트 위를 볼품없이 굴렀다. 횡단보도에서 대기하던 시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시야가 핑글 돌았다. 왼쪽 다리에서 올라오는 타는 듯한 통증에 신음이 터져 나왔다.
‘젠장, 부러졌나.’
생존 본능이 마비된 신경을 강제로 깨웠다. 지금 주저앉으면 끝이다. 준우는 이를 악물고 일어나 절뚝거리며 인파 속으로 파고들었다. 뒤편에서 급브레이크 소리가 들렸다. 스타리아에서 내린 네 명의 사내가 거리를 좁혀왔다.
“죽이지 마! 주요 샘플이다, 손상시키지 말고 생포해!”
샘플. 그 단어가 귀에 꽂히는 순간 역겨움이 치밀었다.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는 노골적인 적의. 준우는 집중력을 쥐어짜 다리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정화의 힘이 미세하게 감돌자 부러진 뼈가 어긋나며 붙는 기괴한 감각과 함께 속도가 붙었다.
[철컥]
등 뒤에서 들려오는 금속음. 설마, 이 대낮에, 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준우는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미친놈들이다. 그들은 보행자들의 안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준우는 사람들을 피해 근처 공원으로 방향을 틀었다. 탁 트인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품 안에서 리볼버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상대는 이미 전술 대형을 갖춘 채 소총과 기관단총으로 압박해오고 있었다.
“제압하고 억제제 투입해!”
준우가 먼저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고막을 찢는 총성과 함께 앞장서던 사내 둘이 어깨와 허벅지를 맞고 나뒹굴었다. 능력자가 아닌지 그들은 그대로 고꾸라졌다. 하지만 승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어디선가 나타난 또 다른 5명의 인원이 순식간에 준우를 포위했다.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에서 뿜어져 나온 것은 탄환이 아니었다. 거대한 그물과 테이저 건의 전선이 공중을 가로질러 준우의 온몸을 덮쳤다.
“크으으윽!!!”
수만 볼트의 전류가 전신을 난도질했다. 근육이 비틀리고 시야가 하얗게 점멸했다. 손에 쥐고 있던 리볼버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소멸했다. 무력하게 쓰러진 준우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빨리 꽂아!”
팔뚝 위로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느껴지더니, 굵은 주삿바늘이 근육을 파고들었다. 검붉은 액체가 혈관을 타고 빠르게 퍼져 나갔다.
“이제 데려가…!”
[투캉!]
정적을 깨는 파열음과 함께 준우 위를 덮치려던 사내의 헬멧이 튕겨 나갔다. 비살상용 탄환이었으나 충격량은 상당했다. 사내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옆으로 고꾸라졌다.
멀리서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흐릿해지는 준우의 시야 속으로 익숙한 형체들이 뛰어들었다. SMG를 갈기며 화력을 퍼붓는 채은과, 일말의 자비 없이 주먹으로 적들을 박살 내는 재범의 모습.
‘다행이다.’
안도감이 밀려왔지만, 몸 안의 거부 반응은 더 격렬해졌다. 준우는 숨이 막히는 답답함에 헬멧을 신경질적으로 벗어 던졌다. 아까 마신 커피와 위액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그때였다. 주입된 약물이 신경계에 닿는 순간, 준우의 의식이 강제로 비틀리며 타인의 기억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것은 단순한 약물이 아니었다. 조작계 능력자의 감각 제어 능력을 코어째 추출해 정제한, 죽은 이의 원념이 담긴 정수였다. 준우의 정화 능력이 침입자들을 밀어내는 과정에서, 약물에 각인된 잔류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여기는…?’
준우의 눈이 뒤집혔다. 유리 감옥 안에서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벽을 두드리는 누군가의 시선이 공유됐다. 나가고 싶다, 살려달라는 비명이 소리 없이 뇌를 울렸다. 2023년 4월. 벽에 걸린 달력이 짧게 스쳐 지나갔다.
옆방에서는 끔찍한 실험이 진행 중이었다. 한쪽 방에서 무언가를 추출하면, 다른 방의 피험자에게 그것을 과다 주입했다. 주입받던 남자의 몸이 비정상적으로 팽창하더니, 이내 끔찍한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흩어졌다.
사람들은 슬퍼하지 않았다. 그들은 바닥에 널브러진 ‘부산물’들을 비커와 용기에 담아 수거했다. 그것은 폐기가 아니라, 또 다른 실험을 위한 재활용이었다. 의식이 멀어지기 직전, 준우는 보았다. 유리창 너머로 버려지던 남자의 가슴팍에 붙은 구겨진 명찰을.
“괜찮아요? 준우 씨!”
채은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준우는 공원 잔디밭 위에서 발작하듯 몸을 떨고 있었다.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고, 눈동자는 초점을 잡지 못한 채 흔들렸다.
“이… 진… 성….”
갈라진 목소리가 준우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주변을 정리하던 0팀 요원들이 일제히 동작을 멈추고 준우를 돌아보았다.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이진성…. 그 실종됐다던 사람 이름, 이진성이었어요.”
116처음에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과거 성심 통제망의 잔여 오염이었다.준우가 곧바로 단검을 쥐고 나서려 하자, 재범이 그의 어깨를 잡고 멈춰 세웠다.“아까 브리핑한 거 벌써 잊었어?”“아, 맞다. 몸이 먼저 나갔네.”준우는 숨을 가다듬고 차례를 기다렸다.팀은 브리핑대로 민간인 대피부터 시작해 제압과 정화를 순서대로 수행했다.덕분에 폭주자는 이성을 잃지 않은 상태로 멀쩡히 의료진에게 들려갔다.이전과 완전히 다르고 명확해진 제압 절차에 준우는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이렇게 할 수 있었는데도 여태까지 안 했다고? 미치겠군.’준우는 과거의 자신을 떠올렸다.그때 그는 불에 타서 뼈와 근육만 남아 있었다.
115몇 달간은 서로 떨어진 채 바쁜 시간을 보냈다.광고 모델로 일하거나 막노동, 알바로 번 돈을 차근차근 모았다. 그렇게 넷이 모은 자금으로 겨우 리모델링 비용을 마련할 수 있었다.마침내 이들은 컨테이너 박스 정리를 시작했다.우선 준우가 박스를 정화하고 재범이 박스를 모았다. 혜진이 박스 내부 벽을 잘라 큰 공간을 확보했고, 전기와 수도는 기사를 불러서 마련했다.채은은 재빠르게 방들을 꾸몄으며, 각각 장비와 자신들의 물건을 올려둘 곳 역시 마련했다.준우는 자신의 책상 서랍에 카페 쿠폰과 생체에너지 보충제를 넣었다.책장 위에는 책 몇 권과 피규어 몇 개를 대충 놓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각자의 책상을 둘러보니 고스란히 취향이 드러났다.재범의 자리는 칼같이 각이 잡혀 있었고, 혜진은 카메라나 렌즈가 많았으며, 채은은 아기자기하고 분홍빛이 돌았다.현수는 경찰 형사 같은 책상이었고, 승아는 이전에 봤던 책상 모습과
1140팀은 카페에서 길드의 조건을 정하기로 했다.다만 이들은 예약실을 따로 잡아야 했다.이전에 일반 테이블에 앉았다가 사람들이 몰려들어 사인과 사진을 요구했기 때문이다.어딘가 비공식 연예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안 되겠다. 다음번에는 예약실을 잡자.”그렇게 해서 들어온 예약실이었다.카페가 문을 닫을 때까지 대화하고 토론한 끝에, 이들은 다음 조건들을 정리해 냈다.- 비영리 운영- 폭주자 구금 권한 없음- 정화와 구조만 담당- 출동 기록과 회계 공개- 피해자 신병은 의료/복지기관에 인계- 관리청의 부당
113추가적으로 새로운 폭주 대응 체계가 발표되었다.- 관리청과 경찰청의 상층부 교체- 경찰, 소방, 의료진, 능력자 합동 출동 강제- 현장 지휘관에게 긴급 판단 권한 부여- 약물 및 원격 조종 여부 우선 검사- 폭주자를 우선 구조 대상으로 분류- 정화 가능성 확인 전 사살 금지- 대응 기록 외부 감사- 피해자 가족과 의료진의 이의제기 절차 마련현수는 신설된 폭주대응본부의 현장지휘관 자리를 제안받았다.준우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이 정도 변화면 나름 개선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김진서
112며칠 뒤, 국회의사당.성심과 경찰청, 능력자관리청의 결착에 대한 청문회가 시작되었다.증인으로는 현수와 승아, 의료진, 성심 현장대장, 구조된 능력자들이 나와 차례로 증언했다.현수는 차분하지만 단단한 어조로 말했다.“저는 현장 보고를 꾸준히 올렸습니다. 하지만 경찰청은 성심의 자료만 받아들이고 제 보고는 무시했습니다.”승아는 시선을 내리깐 채 말을 이어갔다.“절대로 성심 전체가 알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상층부, 그중에서도 소수만이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구조된 능력자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준우 님 아니었으면 저희는 전부 폭주해서 괴물이 되거나 버려져 죽었을 겁니다.”마지막 순서로 준우가 증언대에 섰다.준우는 제도에 대한 비판 대신 자신이 직접
111김진서의 체포가 확정되자, 정부는 입장을 바꾸기 시작했다.자신들은 다르다는 외침이었다.어찌 보면 손바닥 뒤집기였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자신들은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상징성을 지우기 위함이었다.경찰 특수본은 성심 길드는 물론 능력자관리청과 경찰청을 압수수색했다.특수본에 들어간 현수와 경찰 실무자들 역시 제0관제센터를 공식 압수수색하고 모든 기록을 확보했다.체포된 일부를 제외한 성심 현장대원들은 피해자 구조에 참여했다.그 수가 워낙 많아 성심 전체가 달라붙어도 힘에 부쳤다.준우는 정화의 반동을 이기지 못하고 몸을 휘청였지만, 곁으로 다가온 혜진의 어깨를 빌려 겨우 걸음을 옮겼다.관제센터를 벗어나 바깥으로 나오니 이미 수많은 카메라와 생존자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준우는 시선을 내리깐 채 그냥 지나치려 했지만, 기자 중 하나가 마이크를 밀어 넣으며 급하게 물었다.
019산길을 수 차례 돌아 들어간 끝에야 차가 멈춰 섰다. 사방이 가파른 능선으로 가로막혀 지도상으론 그저 험지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은밀한 은거지나 비밀 시설을 예상했던 것과 달리, 정면에는 'OOO 연구원'이라는 투박한 현판이 대놓고 걸려 있었다. 오히려 너무 당당해서 더 이질적인 광경이었다.차 문을 열고 내리던 채은이 미간을 좁혔다. 건물 외벽은 이미 세월에 깎여 나가 당장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었지만, 그녀의 감각은 전혀 다른 신호를 읽어내고 있었다.“이상해. 왜 아직도 전력이 흐르고 있지?”“전력?”혜진이 되물으며
018소독차 냄새가 밴 공기는 이제 폐 깊숙한 곳까지 익숙하게 스며들었다. 준우는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무심하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이 정도면 집을 병실로 옮기는 게 아니라, 병실을 집으로 등기 이전해야 할 수준이었다. 창밖으로 저무는 노을이 병실 안쪽까지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병상 한편에는 재범과 채은, 혜진이 약속이라도 한 듯 나란히 앉아 저마다의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맞은편, 현수만이 유일하게 노트북 화면의 푸르스름한 빛에 얼굴을 파묻은 채 손가락을 바삐 움직였다.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규칙
002현수의 입술은 쉼 없이 움직였지만, 준우의 고막에 닿은 말들은 의미를 맺지 못하고 흩어졌다.카페 안의 소음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들릴 정도였다. 옆자리에서 달그락거리는 커피잔 소리, 창밖을 지나는 차 바퀴 소리.준우는 초점이 풀린 눈으로 제 앞에 남은 커피 컵만 응시했다.‘도대체 나한테 왜 이런 소리를 하는 거지?’그의 삶은 거창한 대의명분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눈을 뜨면 꾸역꾸역 하루를 버티고, 어둠이 내리면 기절하듯 잠드는 일의 반복이었다.그런데 갑자기 들려온 단어들은 생경했다. 촉매, 뒷배. TV 화면 속
001첫 번째 의뢰를 마친 최준우를 맞이한 건 헬멧 스피커를 뚫고 들어오는 날카로운 기계음이었다. 교차로 신호등 앞에서 기어를 중립으로 놓은 준우가 장갑 낀 손으로 헬멧 옆면을 툭툭 쳤다."여보세요.""지금 OO사거리 근처지? 위치 찍어줄 테니까 바로 가. 폭주자다."불쾌할 정도로 익숙한 팀장의 목소리였다. 대답을 듣기도 전에 끊길 것을 알기에, 준우는 짧게 대꾸했다."네, 신호 대기 중입니다."이 일의 장점은 출근 카드를 찍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지만, 단점은 퇴근이라는 개념도 실종되었다는 점이다. 끊긴 화면 위로 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