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해볼래?”서율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휴대폰 화면에 떠 있는 글자를 다시 읽었다.VOICE REACTION“진짜 내 목소리에 반응한다고?”“응.”“아무 소리에나?”“설정할 수 있어.”태혁이 휴대폰을 가져갔다.화면을 몇 번 건드렸다.“지금은 주변 소음은 최대한 제외하고.”그가 서율을 봤다.“가까운 목소리에만 반응하게.”서율의 얼굴이 다시 뜨거워졌다.“왜 하필 이런 걸 샀어?”“새로운 거 해보고 싶다며.”“이런 걸 생각했다는 게 문제지.”“싫어?”서율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그리고 손을 내밀었다.“줘봐.”휴대폰을 받아 설정 화면을 직접 살폈다.반응 단계.민감도.그리고 정지 버튼.서율이 마지막 버튼을 확인한 뒤 휴대폰을 다시 돌려줬다.“해.”“바로?”“응.”서율이 한발 물러났다.“대신.”“응.”“주인님이 일부러 말시키면 반칙.”태혁이 웃었다.“왜.”“내 목소리에 반응한다며.”“그러니까.”“그런데 자꾸 대답하게 만들면 주인님 마음대로 세지는 거잖아.”“알았어.”“진짜?”“응.”태혁이 휴대폰을 벤치 위에 올려놓았다.그리고 두 손을 보였다.“아무것도 안 할게.”서율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그 표정 뭐야.”“못 믿겠어서.”“시작하기도 전에?”“주인님이잖아.”“그게 이유야?”“충분하지.”태혁이 결국 웃었다.“시작한다.”화면이 바뀌었다.VOICE MODE ON처음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서율이 가만히 기다렸다.“……이게 끝이야?”짧은 목소리가 떨어진 순간.우웅—“어?”반응이 돌아왔다.서율의 눈이 커졌다.그리고.방금보다 조금 선명해졌다.“잠깐.”우웅—또 달라졌다.서율이 입을 다물었다.태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서율이 바로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켰다.하지만 말하지 않았다.태혁이 물었다.“왜.”서율은 고개만 저었다.“할 말 없어?”또 고개를 저었다.태혁이 웃었다.서율의 눈이 가늘어졌다.말시키지 않겠다고 해놓고.지금 정확히 자신이 대답하기
“궁금해?”서율은 태혁의 손에 놓인 기기를 한참 바라봤다.“……응.”“아까보다 대답 빠르네.”“궁금한데 어떡해.”태혁이 웃었다.이번에는 정말 처음 보는 형태였다.리모컨도 없었다.버튼이라고 해봐야 전원 하나.측면에는 가느다란 표시등만 있었다.서율이 손을 내밀었다.“줘봐.”태혁이 순순히 건넸다.“이게 내가 움직이는 만큼 달라진다고?”“응.”“어떻게?”“센서.”“무슨 센서?”태혁이 서율의 손에 들린 기기를 가리켰다.“움직임을 읽어.”서율이 손목을 살짝 흔들었다.아무 반응도 없었다.한 번 더.여전히 조용했다.“안 되는데?”“지금은 전원만 켠 거니까.”“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데.”“그건.”태혁이 벤치에 앉았다.그리고 너무 태연하게 말했다.“당신이 알아내.”서율이 황당한 얼굴로 쳐다봤다.“뭐?”“이번에는 내가 안 알려줄 거야.”“주인님이 준비했잖아.”“그래서.”“그럼 설명도 해줘야지.”“싫어.”서율이 기가 막혀 웃었다.“진짜 못됐어.”“오늘 몇 번째 듣는지 모르겠네.”“계속 들을 만하니까.”서율이 다시 기기를 내려다봤다.잠시 뒤.작은 작동음이 울렸다.서율의 표정이 달라졌다.“어.”태혁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정말이었다.손에는 리모컨도 없었다.서율이 조금 움직였다.반응이 달라졌다.멈추자.조용해졌다.“……진짜네.”다시 움직였다.이번에는 조금 다르게.반응도 달라졌다.서율의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미쳤다.”태혁이 웃었다.“왜.”“이상해.”“싫어?”서율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아니.”그리고 다시 한번 움직였다.우웅—“읏…….”이번에는 예상보다 확실했다.서율이 그대로 멈췄다.그러자 기기도 잠잠해졌다.서율이 눈을 크게 떴다.“잠깐.”“응.”“그럼 내가 가만히 있으면.”“멈춰.”“움직이면?”“다시 시작하고.”“주인님은 아무것도 안 하고?”태혁이 두 손을 펼쳐 보였다.“오늘은.”서율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다 웃음이 터졌다.
“아…… 주인님…….”서율의 손이 태혁의 셔츠를 단단히 붙잡았다.방금 전까지 웃으며 도발하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었다.태혁은 그걸 보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그게 더 얄미웠다.“왜 아무 말도 안 해요.”“뭘 말해.”“아까는 그렇게 잘 떠들더니.”“지금은 볼 게 있어서.”“뭘.”태혁이 턱으로 거울을 가리켰다.서율이 거울을 봤다가 곧바로 얼굴을 돌렸다.“아, 진짜.”“왜.”“내 얼굴 보지 마.”“싫어.”“주인님.”“응.”“지금 되게 못됐어.”“당신이 해보라며.”맞는 말이었다.그래서 더 할 말이 없었다.서율은 결국 태혁의 가슴에 이마를 기댔다.잠시 뒤.움직임이 잦아들었다.서율이 고개를 들었다.“끝?”“아니.”“또?”“응.”“사람 긴장시키는 게 취미야?”“당신한테만.”서율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그런데 태혁은 리모컨을 내려놓았다.벤치 위.서율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따라갔다.“왜 내려놔.”“이번엔 그거 안 써.”“……갑자기?”“응.”“왜.”태혁이 가까이 왔다.“그것만 기다리고 있잖아.”서율이 뜨끔했다.“아닌데.”“맞는데.”“아니거든.”“그럼 신경 쓰지 마.”그렇게 말해놓고 태혁은 리모컨을 상자 안에 넣어버렸다.뚜껑까지 닫았다.찰칵.서율의 눈썹이 올라갔다.“진짜 끝?”“아쉽네.”“누가.”“당신.”“아니라니까.”“그래.”태혁이 너무 쉽게 인정했다.서율이 입을 다물었다.잠시 정적.결국 먼저 입을 연 건 서율이었다.“근데.”“응.”“저거 버튼 더 있었잖아.”태혁이 웃음을 참았다.서율이 바로 그의 팔을 때렸다.“웃지 마.”“아쉽다며.”“궁금한 거랑 아쉬운 건 다르지.”“그래?”“응.”“그럼 다음에.”“지금 하면 되잖아.”말이 먼저 튀어나왔다.서율이 스스로 멈칫했다.태혁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몇 초 뒤.서율이 괜히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왜.”“아무 말 안 했는데.”“표정이 말하잖아.”“뭐라고.”서율은 대답하지 않았다.태혁
“이걸 언제 준비했어?”태혁이 웃었다.“좀 됐어.”“좀 된 게 언젠데.”서율은 상자 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안에는 작은 검은 기기가 들어 있었다.지난번 데이트 때 사용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양이었다.손바닥 안에 들어올 만큼 작고 매끈한 본체.그리고 별도의 얇은 리모컨.서율이 기기를 집어 들었다.“또 무선이네.”“응.”“주인님 이거 재미 들렸지?”“당신 반응이 재미있어서.”서율이 바로 태혁을 노려봤다.“역시.”“싫어?”“그건 아닌데.”서율이 리모컨을 뒤집어봤다.버튼이 생각보다 많았다.“지난번 거랑 다른 거야?”“완전히.”“뭐가 다른데.”태혁이 상자를 받아 벤치에 내려놓았다.“직접 알아봐.”서율이 웃었다.“또 이런다.”“아까 누가 그랬지.”태혁이 리모컨을 가져갔다.“내가 알아서 해보라고.”서율이 입을 다물었다.자기가 한 말이었다.“……그건 아까 얘기고.”“난 아직 안 끝났는데.”태혁이 버튼 하나를 눌렀다.짧은 진동음.서율이 기기를 내려다봤다.“생각보다 세네.”“아직 제일 약한 거야.”“뭐?”태혁은 대답 대신 전원을 껐다.그게 오히려 더 신경 쓰였다.서율이 그를 빤히 바라봤다.“왜 꺼.”“벌써 아쉬워?”“아니거든.”“그럼 됐네.”태혁이 리모컨을 주머니에 넣었다.서율이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보여주기만 하고 끝?”“당신이 먼저 원한다고 할 때까지.”그 말에 서율이 조용해졌다.483화 내내 태혁이 자신에게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원하는 걸 숨기지 않는 것.부끄러워도 말하는 것.그리고 무엇보다.태혁 앞에서는 굳이 아닌 척하지 않는 것.서율이 기기를 다시 상자 안에 넣었다.“그래.”“뭐가.”“안 해.”태혁이 눈썹을 올렸다.“진짜?”“응.”서율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옷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태혁도 더 묻지 않았다.그게 더 얄미웠다.셔츠 하나.재킷 하나.옷걸이에 걸었다.삼십 초.일 분.결국 서율이 먼저 돌아봤다.“진짜 안 물어봐?”“뭘.”
현관문이 닫혔다.찰칵.서율은 신발도 다 벗기 전에 뒤를 돌아봤다.태혁이 차 키를 선반 위에 올려놓는 순간.“주인님.”“응.”“잠깐 와봐.”태혁이 서율을 봤다.“왜.”“그냥 와봐요.”평소 같으면 이유부터 물었을 텐데.태혁은 순순히 다가왔다.한 걸음.두 걸음.서율이 기다렸다가 그의 셔츠를 잡았다.그리고 그대로 입을 맞췄다.태혁이 잠깐 멈췄다.예상하지 못한 건 그쪽이었다.서율은 떨어지지 않았다.오늘 하루 종일 밖에서 참았던 것처럼.조금 더 깊게.태혁의 손이 허리에 닿았다.그 순간 서율이 먼저 떨어졌다.“왜.”태혁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서율이 웃었다.“오늘 주인님이 나한테 한 거.”“뭐.”“복수.”“복수?”“응.”서율은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귀걸이도 하나씩 빼 현관 선반 위에 올렸다.태혁의 시선이 따라왔다.“뭘 하려고.”“몰라.”“당신이 시작했잖아.”“그러니까 주인님이 알아서 해봐.”태혁이 웃었다.“또 넘기네.”“싫어?”“아니.”대답이 너무 빨랐다.서율이 피식 웃었다.“오늘 데이트할 때는 그렇게 태연하더니.”“내가?”“응.”“당신만 얼굴 빨개지고.”서율이 가까이 다가갔다.“혼자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태혁이 고개를 조금 숙였다.“아무렇지도 않았던 적 없는데.”서율의 눈이 가늘어졌다.“거짓말.”“진짜야.”“하나도 티 안 났어.”“티 내면 재미없잖아.”서율이 그 말을 듣고 웃다가.문득 멈췄다.“그럼.”손끝이 태혁의 셔츠 단추에 닿았다.“지금은?”태혁은 대답하지 않았다.서율이 단추 하나를 풀었다.천천히.“지금도 재미없을까 봐 참는 중이야?”두 번째.이번에는 태혁의 손이 서율의 손목을 잡았다.서율의 시선이 내려갔다.“왜.”“그만.”“싫은데.”“당신이 하던 거 그만하라는 게 아니라.”태혁이 직접 남은 단추 하나를 풀었다.“그렇게 천천히 하지 말라고.”서율의 입술이 벌어졌다.“오늘 성격 급하네.”“누구 때문인데.”셔츠가 느슨해졌다.서
“오늘 내가 당신 말대로 해줄께.”태혁이 말했다.“하나 골라.”서율은 잠깐 고민했다.“데이트.”“데이트?”“응.”너무 평범한 대답이었는지 태혁이 웃었다.“뭐 하고 싶은데.”“밥 먹고. 카페 가고. 영화 보고 낚시랑 미술관 전시회!!! .”서율이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그냥 연애할 때처럼.”“그게 소원이야?”“요즘 우리 맨날 집에만 있었잖아.”“좋아.”대답은 빨랐다.“내일 나가.”“진짜?”서율의 얼굴이 금세 밝아졌다.태혁이 그걸 보고 웃었다.“데이트 하나에 그렇게 좋아?”“오랜만이니까 그렇지.”“소녀 됐네.”“아진짜아 !!!!!! .”서율이 그의 팔을 때렸다.“그런 말 하지 마.”“왜. 맞는데.”“부끄러우니까.”다음 날.서율은 정말 오랜만에 데이트 준비만으로 한참을 보냈다.원피스를 두 번이나 바꿨고.귀걸이도 골랐다.립 컬러까지 평소보다 화사한 걸 발랐다.방문에 기대 있던 태혁이 물었다.“다 했어?”“응.”서율이 돌아섰다.태혁이 말이 없었다.“왜.”“예뻐.”“…….”“진짜 뭐래는거야!! .”서율이 괜히 가방을 고쳐 들었다.“가자.”“왜 피해.”“안 피해.”“귀 빨개졌는데.”“차태혁!! .”태혁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서율이 그 손을 잡았다.그리고 현관을 나서기 직전.태혁이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이건 뭐야?”“오늘 데이트에 추가할 거.”서율이 열어봤다.잠시 후.그대로 태혁을 올려다봤다.“……진짜?”태혁의 손에는 작은 무선 리모컨이 들려 있었다.서율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밖에서?”“응.”“사람들 있는데?”“아무도 모르지.”“주인님은 알고 있잖아.”“그게 좋은 건데.”서율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싫어서가 아니었다.오히려 그 반대라서 문제였다.태혁이 물었다.“안 할꺼야?”서율은 상자를 내려다봤다.그리고 작게 말했다.“……할래.”“좋아.”“대신.”“응.”“나 이상하게 만들면 책임져.”태혁이 웃었다.“그건 자신 있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