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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8화

Author: 레몬과 향수
한밤중이 되도록 기다리던 소식은 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조회가 끝난 후, 황제는 당 대인을 따로 남겨 당윤의 안부를 물었다. 당 대인은 황공하여 몸 둘 바를 몰랐다.

"신이 밤새 곁을 지켰으나, 아직 깨어나지 못했사옵니다."

"짐은 당윤이 몸을 던져 태후를 구한 용기가 참으로 놀랍구나. 당 대인, 그대는 아주 훌륭한 아들을 두었다."

황제는 입이 마르도록 당윤을 칭찬했다.

당 대인은 억지로 미소를 쥐어짜며 허리를 굽힌 채 감히 반박조차 하지 못했다.

"여봐라, 어명을 받들라!"

황제가 묵직한 목소리로 명을 내렸다.

"당씨 가문의 적자 당윤은 두려움 없이 나서 태후를 구한 공이 크니, 그에게 의용후의 작위를 내린다. 또한 그의 어머니 당씨는 자식을 훌륭히 길러낸 공이 있으므로 정 이품 고명숙인에 봉하고, 황금 천 냥을 하사하노라!"

당 대인은 멍하니 굳어버린 채 한참 동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곁에 있던 상 내관이 나직하게 일깨워 주었다.

"당 대인, 어서 성은에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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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안을 거슬러   제652화

    서 부인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치맛자락을 걷어 올리며 그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소 상궁은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도 굳이 다가가지 않았다. 그저 서 부인이 한 걸음마다 절을 올리며 다가오는 꼴을 냉랭하게 지켜볼 뿐이었다."태후 마마! 죄인이 잘못했습니다!"쿵!바닥에 짓찧는 머리 소리가 무겁게 울렸다. 자녕궁 앞에 다다르기도 전에 서 부인의 이마는 이미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한참이 지나서야 문앞에 도달한 서 부인은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꿇어앉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삐걱거리며 문이 열렸고, 소 상궁이 서 부인을 전각 안으로 안내했다.전각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향냄새가 코끝을 맴돌며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서 부인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으나, 전각 안에 태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그녀의 눈빛이 미세하게 떨렸다.다행히 머지않아 발소리가 들려왔다.서 태후는 한 손에 서책을 쥔 채 여유롭게 걸어 나와 상석에 앉았다. 그녀는 서 부인이 방금 밖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몹시 무심하고 서늘한 눈빛이었다."태후 마마, 죄인이 마마를 뵈옵니다."서 부인은 바닥에 머리를 무겁게 찧었다. "십칠 년 전의 일은 모두 이 죄인의 탓이옵니다! 부디 저를 엄벌에 처하시고 무고한 어린것만은 용서해 주시옵소서!"서명주에게 사혼이 내려진 날부터, 서 부인은 단 하루도 두 다리를 뻗고 자지 못했다. 머릿속에는 온통 왕년에 자신이 저질렀던 악행뿐이었다.더 이상 헛된 요행을 바랄 수는 없었다.서 태후가 그 일들을 파헤치지 못했을 리 만무했다.최근 서씨 가문을 옥죄어오는 모양새를 보면 꼭 무딘 칼로 살점을 천천히 도려내는 것과 같았다.서 태후는 들고 있던 서책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느긋하게 찻잔을 들어 두어 모금 축였다. 발밑에서 서 부인이 애원하든 말든 무심한 안색이었다.눈물 콧물을 쏟으며 오열하는 서 부인의 꼴을 보자 서 태후의 미간에 혐오감이 스쳤다."십 년도 한참 지난 일을 갑자

  • 피안을 거슬러   제651화

    삼군에 수현의 군량이 더해지자, 황제는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분통이 터졌다.등잔 밑이 어둡다고 정군왕이 감히 그의 코앞에서 군량을 사재기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황제는 온종일 전각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미간을 주무르며 연신 한숨만 내쉬었다.인삼차만 몇 번이 들어갔는지 헤아릴 수도 없었다.이를 지켜보던 상 내관이 조심스레 만류했다."폐하, 진한 차는 옥체에 해롭습니다."황제가 고개를 들어 궁밖에 있는 각 가문들의 동태를 물었다.상 내관은 상황을 고하다가 황제의 얼굴에 여전히 은은한 짜증이 서려 있는 것을 눈치채고는 재빨리 말을 돌렸다."서 부인이 태후 마마를 뵙고자 여러 가문을 찾아다니며 연줄을 대고 있다 합니다. 허나 태후 마마께서는 이를 아시고도 철저히 수수방관하시며 일절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십니다."최씨 가문에 사혼을 내린 것만으로도 최씨 가문은 무려 이백만 냥이 넘는 은표를 바쳤고, 이는 고스란히 국고로 환수되었다.황제는 내심 서명주를 첩으로 들이는 것이 서씨 가문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 싶었다.허나 서 태후는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내게 다 생각이 있다."그 한마디에 황제도 더는 토를 달 수 없었다.황제는 찌푸렸던 미간을 펴고 상 내관을 바라보았다."태후께서는 어찌하여 서씨 가문의 큰딸을 기어코 최호의 첩으로 보내려 하시는 것이냐?"그 물음에 상 내관이 옅게 웃었다."서씨 가문은 그저 태후 마마께서 최씨 가문을 압박하기 위해 쓰시는 장기말일 뿐입니다. 태후 마마의 지금 지위라면 얄팍한 명예나 잇속 따위는 진작에 초월하셨지 않습니까."한창 이야기를 나누는데, 자녕궁의 소 상궁이 비단 상자를 들고 찾아왔다."폐하를 뵈옵니다." 소 상궁이 비단 상자를 들어 올렸다. "방금 최 부인께서 입궁하여 바친 물건입니다. 태후 마마께서 폐하께 전하라 명하셨습니다."황제는 의아한 얼굴로 상 내관에게 눈짓을 했다.상 내관이 잰걸음으로 다가가 상자를 건네받았다. 뚜껑을 열어 안을 확인한 그는 흡 하고 숨을 들이켰다.그는

  • 피안을 거슬러   제650화

    서소현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 경악을 금치 못했다."영정이 그 아이를 때려죽였단 말이냐?"소식을 알아온 시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기어들어가듯 답했다."여덟 대쯤 맞았을 때 아가씨께서는 이미 혼절하셨습니다. 허나 큰나리께서 기어코 십여 대를 더 치라 명하셨고, 결국 의원이 당도하기도 전에 숨을 거두셨다 합니다."그 말을 들은 서소현은 숨이 턱 막히며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시녀가 기겁하여 온몸을 주무르고 꼬집은 끝에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광화사에서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서소현은 부들부들 몸을 떨며 악을 썼다."당장 하산하여 영씨 가문으로 가자!"같은 시각, 황궁.날이 어둑해지자 전각 밖으로 살을 에이는 듯한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쳤다.배이수는 전각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얼굴이 새빨갛게 얼어붙어 있었다.상 내관이 이따금 그를 힐끗거렸으나 이내 무심하게 고개를 돌렸다.낭하에서 부산스러운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덕비가 궁인들을 대거 이끌고 다가왔다.상 내관이 황급히 다가가 앞을 막아섰다."덕비 마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폐하께서는 정무를 보고 계십니다."덕비는 굳이 억지로 안으로 들이닥치지 않았다."이곳에서 기다리지."상 내관도 그녀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물러섰다.덕비의 싸늘한 시선이 배이수에게 닿았다.죄지은 기색이 역력한 배이수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불렀다."어마마마.""내가 어찌 감히 수왕에게 어미 소리를 듣겠느냐."덕비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나이는 어려도 배짱은 두둑하더니. 나는 너같이 대역무도한 아들 둔 적 없다."덕비의 노골적인 조롱에 배이수의 귓바퀴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한 시진 전 영슬기가 영씨 집안에서 맞아 죽었다. 시신은 사당에 들이지도 못한 채 밖에 대충 묻혔다더구나."덕비는 상황 파악조차 못 하고 책임감도 없는 배이수를가 경멸스러웠다.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주제에 겉과 속이 다르게 구는 꼴이 한심할 따름이었다.배이수는 수치심에 입만 벙긋거릴 뿐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했다. 그는 다급히

  • 피안을 거슬러   제649화

    영슬기를 내쫓고도 서 부인은 분이 풀리지 않았다.그녀는 심복들을 배치해 대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게 했다.체면을 단단히 구긴 서씨 노부인은 곧장 사람을 보내 아들 서유천을 불러들였다."네 처가 하는 꼴 좀 보거라. 기세등등해서 시어미는 안중에도 없구나. 아무리 그래도 네 조카이거늘, 어찌 저리 매몰차게 군단 말이냐!"서씨 노부인이 핏대를 세우며 호통을 쳤지만, 잔뜩 굳어 있는 아들의 표정을 보고 이내 입을 다물었다.서유천은 싸늘한 얼굴로 손을 내저어 주변 하인들을 모두 물렸다.그는 잔뜩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러고는 불쑥 입을 열었다."어머니, 유국공부의 노부인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뜬금없는 질문에 서씨 노부인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유씨 노부인은 차남네만 편애한 나머지, 유국공이 집을 비운 틈을 타 현왕비를 모질게 학대했습니다. 결국 그 가문의 끝이 어찌 되었습니까?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고, 차남과 삼남댁 일가족은 처참하게 죽어 나갔습니다. 사리 분별 못 하던 그 노부인 역시 비참하게 죽었지요."서씨 노부인은 흠칫 몸을 떨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아들을 쳐다보았다."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서소현과 영슬기 모녀는 썩어빠진 종양이나 다름없습니다. 엮이는 순간 같이 죽는 겁니다. 어머니께서 가문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이 계속 그들을 감싸고도신다면, 소자 역시 가문을 지키기 위해 유국공부의 전철을 밟아 혈육을 쳐낼 수밖에 없습니다."그는 잠시 말을 고르더니 쐐기를 박았다."둘째와 셋째, 넷째 아우에게도 이미 서신을 보냈습니다. 그 애들의 뜻도 저와 같습니다."가문을 위해서라면 혈육의 정마저도 기어이 끊어버리겠다는 결의였다.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가문을 지키겠다는 아들의 살벌한 얼굴에 서씨 노부인은 하얗게 질린 입술을 떨었다."금섬 대사께서 슬기가 장차 귀한 신분이 되어 우리 가문을 크게 일으킬 것이라 하셨다!""영슬기는 서씨가 아닙니다! 영슬기는 우리 서씨 가문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서유

  • 피안을 거슬러   제648화

    서씨 노부인은 그 귀한 신분이 바로 영슬기라고 굳게 믿었다.그 덕분에 영슬기를 각별히 편애하며 웬만한 부탁은 다 들어주었다.영슬기를 곁에 두고 오전 내내 시간을 보내던 중, 갑작스러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오늘 아침 조회에서 수왕이 또다시 탄핵을 받았다는 것이었다.여러 어사가 일제히 들고일어나 수왕을 물어뜯었다. 그가 뒤로 군량을 대거 사재기하고 폭설이 석 달간 이어질 것이라는 헛소문을 퍼뜨려 민심을 흉흉하게 만들었으며, 억울함을 호소하려 상경한 백성들을 무참히 때려죽였다는 죄목이었다."그…… 그럴 리 없습니다!" 영슬기가 가장 먼저 펄쩍 뛰며 부인했다. "백성을 때려죽이고 유언비어로 세상을 어지럽히다니요. 어느 것 하나 수왕 전하께서 감당하실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가볍게는 파직이요, 무겁게는 목이 달아날 중죄였다.영슬기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서씨 노부인의 손을 꽉 부여잡았다.서씨 노부인은 손녀를 달래며 사람을 시켜 정확한 진상을 다시 알아보라 명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밖으로 나갔던 시녀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노부인, 온 거리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습니다. 틀림없는 사실인 듯합니다."털썩!영슬기는 다리에 힘이 풀려 침상 위로 주저앉았다. 그녀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할머니, 멀쩡하시던 분이 어찌 하루아침에 이리 되셨단 말입니까. 대체 뒤에서 누가 전하를 음해하는 것입니까?"서씨 노부인 역시 속이 타들어 갈 뿐, 뾰족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큰아가씨, 영씨 가문에서 지금 당장 아가씨를 모셔 오라 사람이 왔습니다." 문밖에서 영가의 어멈이 고개를 들이밀며 다급히 고했다.영슬기는 불길한 예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서씨 노부인의 소매를 꽉 움켜쥐었다.서씨 노부인이 어멈을 향해 물었다. "무슨 일로 아이를 이리 급히 찾는 거요?"어멈이 목소리를 낮추며 대답했다. "어르신들의 뜻입니다."자세한 내막은 입을 굳게 다문 채 한마디도 흘리지 않았다.서씨 노

  • 피안을 거슬러   제647화

    서소현은 이미 엎질러진 물임을 깨닫고 영슬기의 두 손을 꼭 잡았다."슬기야, 너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왕을 꽉 잡아야 한다. 훗날 네가 아들 덕에 귀해져 자녕궁의 주인이 될지 또 아느냐. 그리만 된다면 이 어미에게도 한 줄기 빛이 생기는 게야."비록 아득하고 험난한 길이 되겠지만, 적어도 희망은 보이니 말이다.영슬기는 굳게 다짐하며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어머니의 당부를 단단히 새긴 영슬기는 다음 날 동이 트기도 전에 산을 내려와 서씨 저택으로 향했다.명색이 서씨 가문의 외손녀인지라, 예전부터 제집처럼 드나들던 곳이었다.덕분에 아무런 제지 없이 무사히 서씨 노부인을 뵐 수 있었다.서씨 노부인은 무척이나 수척해진 얼굴로 간신히 몸을 일으켜 딸의 안부부터 물었다."산바람이 어찌나 매서운지요. 어머니께서는 본디 몸도 약하신데, 풍한까지 겹쳐 통 차도가 없으십니다." 영슬기가 금세 눈시울을 붉히며 구슬프게 말했다. "어머니를 경성으로 모셔 와 조용한 거처에서 요양하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내년 봄이 되어 날이 풀리면, 그때 다시 광화사로 모셔도 되지 않겠습니까."가뜩이나 딸이 눈에 밟히던 서씨 노부인의 마음을 단박에 찌르는 말이었다.서씨 노부인은 지체 없이 시녀를 시켜 은표를 가져오게 한 뒤 영슬기의 손에 쥐여주었다."착하기도 하지. 네가 어미를 그토록 애틋하게 생각하니 네 말대로 하마."영슬기는 예의상 두어 번 사양하는 척하다가 못 이기는 척 은표를 챙겼다. 그러고는 살갑게 노부인의 안위를 살폈다.한창 이야기를 나누는데 서 부인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영슬기를 발견하자마자 미간을 꿈틀거렸다."외숙모." 영슬기가 다소곳이 인사를 올렸다.서 부인은 눈앞의 조카딸이 영 달갑지 않았다. 특히 영슬기가 올 때마다 노부인의 모든 관심은 영슬기에게 쏠리고 그녀의 딸 서명주는 병풍이 되어야 했기에 더더욱 고까웠다.서씨 노부인은 장녀인 서소현을 끔찍이 아끼는 마음에, 외손녀인 영슬기마저 친손녀인 서명주보다 훨씬 감싸고돌았다.서 부인으로서는 진

  • 피안을 거슬러   제8화

    “지영아, 아직도 화가 안 풀렸느냐?”송씨는 못 말리겠다는 듯 말을 이었다.“그날은 오해가 좀 있었단다. 선주는 내가 따끔히 혼내 두었어.”유지영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제가 어찌 작은어머니와 선주에게 화를 내겠어요. 운부 비단은 참으로 구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들었어요. 일부 무늬들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던데, 구하시느라 참 힘드셨겠어요. 감동이에요, 작은어머니.”그 말을 들은 송씨는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역시 그 멍청함은 어디 안 가는구나!’유지영은 노부인을 바라보며 말했다.“집안의 맏언니로서 당연히 동

  • 피안을 거슬러   제7화

    “언니, 설마 이미 경왕 세자와 혼약을 정한 건 아니죠?”그때 갑자기 다가온 유선주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물었다.“어젯밤에 주향이 언니 침소에서 사내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했는데, 그 사람이 경왕 세자인가요?”말이 끝나자마자 싸늘한 정적이 감돌았다.유선주는 재빨리 입을 틀어막으며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유지영을 바라보았다.“언니, 일부러 말한 건 아니에요. 실수였어요. 하지만 언니도 참 어리석네요. 어찌 홧김에 경왕 세자 같은 분과 그런….”짝!유지영은 결국 참지 못하고 유선주의 뺨을 때렸다.주변이 다시 고요해졌다.이내

  • 피안을 거슬러   제6화

    수구 이야기가 나오자 사람들은 일제히 유지영을 바라보았다. 나무 그늘 아래 서서 예식을 구경하던 배준형도 말이다. 유지영은 담담히 붉은 수구를 한 손에 쥔 채로 무대 위에 섰다.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모든 것이 훤히 보였다.그저 구경만 할 생각으로 몰려온 어중이떠중이들도 적지 않았기에, 이를 본 외숙모 한씨가 차갑게 굳은 얼굴로 꾸짖었다.“혼약이 있거나 신분에 맞지 않는 자가 함부로 뛰어들었다가는 중벌을 면치 못할 것이오!”말을 마친 한씨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유지영을 바라보았다.“지영아, 지금 후회해도 늦지 않아.”

  • 피안을 거슬러   제5화

    주향은 비명을 지르더니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 버렸다.나머지 셋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당황한 채 무릎을 꿇고 빌었다.“부관, 저들의 입을 틀어막고 모조리 끌어내세요!”유지영은 저 꼴을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뒤집혔다.‘배은망덕한 것들 같으니!’장 부관은 하는 수 없이 하인들을 불러 넷을 모두 끌어내게 하고 중개 어멈을 부르라고 일렀다.유지영은 그것마저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중개인은 필요 없으니 이만 나가 보세요.”게다가 시간도 늦었으니, 내일 성년례가 끝난 뒤 차차 처리할 생각이었다.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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