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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 피 묻은 반지

Author: 8489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3-26 13:53:57

비는 그날도 내리고 있었다.

마치—

3년 전 그날처럼.

윤서아는 우산도 쓰지 않은 채 골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오래된 주택가.

사람이 거의 드나들지 않는, 기억 속에만 남아 있던 장소.

그리고—

멈췄다.

낡은 철문 앞.

“…여기네.”

한수민이 살던 집.

어머니의 집.

손을 들어 문을 밀었다.

끼이익—

쇠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안쪽 공기가 그대로 흘러나왔다.

오래된 냄새.

먼지.

그리고—

버려진 시간.

서아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발걸음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거실.

낡은 소파.

뒤집힌 액자.

그대로 멈춰버린 공간.

“…엄마.”

대답은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누군가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서아는 시선을 돌렸다.

안쪽 방.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그녀는 잠시 멈췄다가—

밀었다.

삐걱.

방 안은 더 조용했다.

창문 커튼은 반쯤 뜯겨 있었고, 바닥에는 오래된 물건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서랍.

책상 한쪽이 열려 있었다.

누군가 뒤진 흔적.

서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미 왔었네.”

지연.

아니면—

그 뒤에 있는 누군가.

그녀는 천천히 서랍 쪽으로 다가갔다.

남아 있는 물건은 많지 않았다.

사진.

편지.

그리고—

작은 벨벳 상자 하나.

서아의 손이 멈췄다.

이건—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열었다.

딸깍.

안에는 반지 하나가 들어 있었다.

은색.

단순한 디자인.

하지만—

그 표면에 말라붙은 붉은 얼룩.

피였다.

서아의 숨이 멎었다.

“…뭐야 이거…”

손끝이 떨렸다.

반지를 들어 올리는 순간—

손바닥에 닿는 감각이 이상했다.

차갑고—

무겁게 느껴졌다.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거.”

서아의 몸이 순간 굳었다.

“…놔두는 게 좋습니다.”

서아가 천천히 돌아섰다.

문가에 남자가 서 있었다.

검은 정장.

차가운 눈.

그리고—

낯선 얼굴.

“누구예요.”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반지를 바라봤다.

“그 반지.”

짧은 침묵.

“피 묻어 있죠.”

서아의 눈이 좁아졌다.

“…당신, 뭔데.”

남자가 천천히 안으로 들어왔다.

“강도윤입니다.”

짧은 멈춤.

“태성 전략팀.”

정적.

그 이름.

낯설지 않았다.

“왜 여기 있어요.”

“같은 이유입니다.”

“무슨.”

도윤이 말했다.

“진실 찾으러.”

공기가 살짝 변했다.

서아는 반지를 더 꽉 쥐었다.

“이거.”

짧은 침묵.

“뭔데요.”

도윤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증거일 수도 있습니다.”

“무슨 증거.”

그의 시선이 반지에 고정됐다.

“한수민 씨 죽음이.”

짧은 멈춤.

“사고가 아니라는 증거.”

정적.

서아의 손이 멈췄다.

“…뭐라고 했어요?”

도윤이 눈을 들었다.

“당신 어머니.”

짧은 침묵.

“살해당했을 가능성 높습니다.”

순간—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거짓말하지 마.”

“거짓말 아닙니다.”

“사고였어.”

“기록상은 그렇죠.”

짧은 침묵.

“근데 기록이 조작됐습니다.”

서아의 숨이 거칠어졌다.

“누가.”

도윤이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말했다.

“그 반지.”

짧은 침묵.

“당신 어머니가 죽기 직전까지 끼고 있던 겁니다.”

서아의 눈이 흔들렸다.

“…그럼 이 피.”

도윤이 낮게 말했다.

“…당신 어머니 피일 가능성 높습니다.”

정적.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그날.”

짧은 침묵.

“병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관련 있습니다.”

서아의 시선이 번쩍 들렸다.

“…병원?”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출생.”

짧은 멈춤.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정적.

“무슨 뜻이에요.”

도윤이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기록이 비어 있습니다.”

“뭐가.”

“출생 직후 2시간.”

짧은 침묵.

“완전히.”

서아의 손이 떨렸다.

“그게 왜 문제인데.”

“그 시간 동안—”

도윤이 말했다.

“아이를 바꿀 수 있습니다.”

정적.

서아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뭐?”

“그리고 그날.”

짧은 침묵.

“당신 어머니는.”

그의 눈이 반지로 향했다.

“피를 흘렸습니다.”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서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머릿속이—

정리가 안 됐다.

엄마 죽음.

병원.

아이.

지연.

모든 게—

하나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녀가 겨우 입을 열었다.

“당신은 지금.”

짧은 침묵.

“내 인생이 전부 조작됐다고 말하는 거야?”

도윤이 말했다.

“가능성이 아니라—”

짧은 멈춤.

“거의 확실합니다.”

정적.

그 순간—

서아의 눈이 완전히 변했다.

슬픔이 아니라.

분노도 아니었다.

더 깊은—

차가운 무언가.

그녀는 반지를 꽉 쥐었다.

손바닥에 피 자국이 묻었다.

그리고—

아주 낮게 말했다.

“…좋아.”

도윤이 바라봤다.

“네?”

서아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이제 알겠네.”

짧은 침묵.

“뭘.”

그녀의 눈이 번뜩였다.

“누굴 죽여야 하는지.”

정적.

그 순간—

창문 밖에서 누군가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어둠 속.

휴대폰 카메라가 조용히 꺼졌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

“…찾았네.”

윤지연이었다.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언니.”

짧은 침묵.

“이제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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