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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수는 내게만 허락돼
형수는 내게만 허락돼
Author: 루니

제1화. 호텔 스위트의 여자

Author: 루니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0 10:34:17

문유건의 코트에서 호텔 키카드가 떨어진 건 아침 여덟 시였다.

식탁 의자에 걸쳐둔 코트를 옮기던 순간, 검은 카드 하나가 바닥을 미끄러졌다. 세령은 허리를 숙여 그것을 집었다. 중앙에 찍힌 호텔 로고, 뒷면에 붙은 작은 스티커.

'1708'

욕실에서는 물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어젯밤 유건은 회사 근처 호텔에서 잤다고 했다. 거래처 사람들과 술이 길어졌고, 차를 몰 수 없어서 방을 잡았다고.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메시지 하나가 왔었다.

[먼저 자. 아침에 들어갈게.]

그 한 줄을 믿고 잠들었던 자신이 우스워질 만큼, 검색창에 뜬 호텔 주소는 회사와 멀었다.

결혼한 지 사 년. 매일 보던 얼굴과 매일 듣던 목소리, 익숙해서 의심하지 않았던 것들이 카드 한 장 앞에서 조금씩 낯설어졌다. 믿음이 깨질 때는 소리가 나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이렇게 조용한 모양이었다.

카드 가장자리가 손바닥을 눌렀다. 별것 아닌 감촉인데도 쉽게 놓이지 않았다.

세령은 키카드를 코트 주머니에 다시 넣으려다 멈췄다.

“뭐 해?”

샤워를 마친 유건이 거실로 나왔다. 젖은 머리를 대충 털며 넥타이를 찾는 모습도, 식탁 위 커피를 집어 드는 손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세령은 카드를 손바닥 안에 감췄다.

“오늘도 늦어?”

“아마. 저녁 약속 있어.”

“어제 묵은 데는 괜찮았어?”

유건의 손끝이 넥타이 위에서 잠깐 멎었다.

“뭐?”

“회사 근처 호텔.”

“아. 그냥 그랬지. 잠만 잤어.”

잠만.

세령은 그 말을 입안에서 한 번 굴려보다가 삼켰다.

“다녀와.”

유건은 의심하지 않았다. 현관에서 평소처럼 세령의 어깨를 한 번 감쌌고, 문이 닫히기 직전에는 저녁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연락하라고까지 했다.

십 분쯤 지나 휴대폰이 울렸다.

[오늘 저녁 먼저 먹어. 늦을 것 같아.]

세령은 답장을 쓰지 않고 차 키를 집었다.

확인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확인하지 않은 채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저녁까지 기다릴 자신이 없어서였다.

호텔까지 사십 분.

신호에 걸릴 때마다 차를 돌릴까 생각했다. 전화해서 묻고, 그가 아니라고 하면 믿어주는 쪽이 훨씬 쉬웠다. 사 년을 함께 산 남편을 의심하는 일보다, 자기 의심이 틀렸다고 우기는 편이 덜 아플 테니까.

그러나 아침의 짧은 침묵이 자꾸 걸렸다.

거짓말을 들킨 사람이 아니라, 거짓말을 더 자연스럽게 이어가기 위해 말을 고르던 얼굴.

17층에 내리자 복도는 지나치게 조용했다.

1708호 앞.

벨을 누른 뒤 손을 내리고도 심장이 이상할 만큼 고요했다. 몇 초 뒤 문 안쪽에서 발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잠금장치가 풀렸다.

문이 열렸다.

낯선 여자가 서 있었다.

젖은 머리카락이 어깨에 붙어 있었고, 맨발이었다. 세령의 눈길은 자연스럽게 여자의 몸을 덮은 흰 셔츠로 내려갔다.

유건의 것.

작년 생일에 세령이 직접 골라준 셔츠였다.

“누구세요?”

여자가 먼저 물었다.

세령은 대답 대신 문틈 너머를 봤다. 흐트러진 침대, 반쯤 열린 와인병, 바닥에 놓인 남자 구두.

“문유건 씨 있어요?”

여자의 얼굴이 굳었다.

“아내분이세요?”

그때 안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라온아, 누구야?”

라온.

이름을 부르는 방식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어젯밤 처음 알게 된 사람에게 나오는 말투가 아니었다.

잠시 뒤 유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셔츠 단추를 채우다 말고 문 앞의 세령을 보는 순간, 손이 그대로 멈췄다.

“세령아.”

세령은 남편을 바라봤다.

놀란 얼굴.

그런데 미안해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왜 네가 여기 있어?”

첫마디가 그거였다.

세령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비틀렸다.

“지금 나한테 그걸 물어?”

“아니, 내 말은… 어떻게 알고 왔냐고.”

유건이 한 걸음 다가오자 세령도 한 걸음 물러섰다.

“오지 마.”

“일단 들어와. 설명할게.”

“여기서 해.”

말이 끊기자 유건은 복도 양쪽부터 살폈다. 누가 보고 있는지 확인하는 눈길.

그 순간 세령의 손이 왼손 약지로 향했다.

사 년 동안 한 번도 빼지 않았던 반지가 생각보다 쉽게 빠졌다.

유건의 표정이 처음으로 무너졌다.

“세령아.”

반지는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집에서 얘기해.”

“그 반지 왜 빼.”

세령은 돌아섰다.

“한세령.”

뒤에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따라왔지만 발을 멈추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자 유건이 곧장 뒤따라왔다.

“잠깐만.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이번에는 웃음이 났다. 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 헛웃음.

“그럼 내가 뭘 생각해야 하는데?”

유건은 끝내 답하지 못했다.

엘리베이터 도착음이 울리고 문이 천천히 갈라졌다.

세령의 발이 그 자리에서 멈췄다.

안에 서 있던 남자도 움직이지 않았다.

검은 정장, 예전보다 짧아진 머리, 칠 년 동안 잊었다고 믿었던 얼굴.

문태겸.

칠 년 전,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던 남자.

그리고 지금은 남편의 형.

태겸의 시선이 세령을 지나 뒤쪽의 유건에게 닿았다가 돌아왔다. 세령은 주머니 안에서 반지를 더 세게 움켜쥐었다. 모서리가 손바닥에 박혔지만 손을 펴지 않았다.

태겸의 눈길이 빈 약지에 잠시 머물렀다.

칠 년 만의 재회가 이런 곳일 줄은 몰랐다.

더구나 이런 호칭으로.

“오랜만이네.”

세령의 숨이 얕아졌다.

태겸이 한 박자 늦게 덧붙였다.

“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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