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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형수라는 호칭

Author: 루니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0 10:40:44

“형수.”

칠 년 만에 들은 태겸의 목소리가 하필 그 호칭이었다.

세령은 엘리베이터 안의 남자를 바라본 채 한 발도 움직이지 못했다. 예전보다 조금 마른 얼굴, 짧아진 머리,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눈. 달라진 건 많았는데 알아보는 데는 한순간도 걸리지 않았다.

뒤에서 유건이 다가왔다.

“형.”

태겸의 시선이 세령을 지나 유건에게 닿았다. 풀린 셔츠 단추, 호텔 스위트룸 문, 안쪽에 남은 여자의 기척까지 한 번에 훑었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유건이 세령 앞으로 반걸음 나섰다. 마치 태겸의 시선을 막기라도 하듯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내려가자.”

세령은 유건을 보지 않았다.

“비켜.”

“세령아.”

“비키라고.”

목소리가 생각보다 차분해서 유건이 잠깐 멈췄다.

태겸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쪽으로 물러섰다. 세령은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갔다. 유건도 곧 따라붙었다.

문이 닫히기 직전, 태겸과 눈이 다시 마주쳤다.

왜 여기 있느냐고 묻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도.

빈 약지를 보고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시선만 남았다.

문이 닫혔다.

엘리베이터 거울에 세령과 유건이 나란히 비쳤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같은 집에서 아침을 먹었던 부부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깨 하나 닿지 않을 만큼 떨어져 있었다.

유건이 먼저 입을 열었다.

“라온이랑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관계 아니야.”

세령은 숫자가 내려가는 것만 봤다.

“그럼 어떤 관계인데?”

“설명할게.”

“지금 해.”

유건이 입술을 눌렀다.

세령은 대답을 기다렸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왼손을 주머니에 넣자 아까 뺀 결혼반지가 손끝에 걸렸다. 네 해 동안 한 번도 빼지 않았던 반지가 오늘은 낯선 물건처럼 만져졌다.

유건이 손목을 잡았다.

“일단 집에 가서 얘기하자.”

세령은 잡힌 손을 내려다봤다.

“놔.”

“운전하지 마. 내가 데려다줄게.”

“지금 당신 차를 타라고?”

유건의 손이 조금 느슨해졌다. 세령은 그대로 빼냈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닿기 직전 유건이 다시 입을 열었다.

“형이 본 건 신경 쓰지 마.”

세령은 그제야 옆을 봤다.

“왜?”

유건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그냥. 형이 괜히 오해할까 봐.”

세령은 대꾸하지 않았다. 아내가 오해하는 건 괜찮고, 형이 오해하는 건 곤란한 사람처럼 들렸다.

유건은 더 말하지 않았다. 대신 닫힌 엘리베이터 문에 비친 태겸의 자리를 한 번 바라봤다.

문이 열리자 세령은 먼저 걸어 나갔다.

로비를 지나 주차장으로 향하는 동안 유건이 계속 뒤따랐다.

“세령아, 잠깐만.”

발걸음을 멈춘 건 이름 때문이 아니었다. 끝까지 따라오는 그 발소리가 지겨워서였다.

세령이 돌아섰다.

“내가 뭘 봤는지 알아.”

“오해야.”

“여자가 당신 셔츠 입고 있었어.”

유건의 턱이 굳었다.

“그건—”

“침대도 봤고.”

더는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세령은 그의 얼굴을 잠깐 바라봤다. 아침에는 아무렇지 않게 넥타이를 매고, 저녁에 늦는다고 메시지까지 보낸 사람. 그 얼굴로 지금은 변명을 고르고 있었다.

“당신이 뭘 말해도 오늘 본 건 없어지지 않아.”

“그럼 뭘 원하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유건이 한 걸음 다가오려 하자 세령이 먼저 물러났다.

“따라오지 마.”

이번에는 유건도 멈췄다.

세령은 주차장으로 내려가 혼자 차에 올랐다. 문을 잠그고 시동 버튼에 손을 올린 채 한동안 그대로 있었다.

사이드미러 너머로 유건이 보였다.

차 몇 대를 사이에 두고 서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달려오지도, 돌아가지도 않았다.

세령은 시선을 떼고 시동을 걸었다.

출구로 빠져나가는 순간 룸미러 안에 호텔 입구가 작아졌다. 그제야 손끝이 떨렸다.

주머니 속 반지를 꺼내려다 말았다.

대신 운전대를 두 손으로 잡았다.

라온의 얼굴보다 태겸이 먼저 떠올랐다.

칠 년 전 마지막 약속 날에도 그렇게 기다렸었다. 한 시간, 두 시간. 끝내 오지 않은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받은 건 짧은 이별 문자 하나뿐이었다.

그 뒤로 세령은 태겸의 번호를 지웠고, 사진도 버렸다. 이름을 입 밖에 내지 않으면 잊은 줄 알았다.

그런 사람이 오늘 눈앞에 있었다.

남편의 형으로.

그리고 자신은 남편의 외도 현장에서 나오고 있었다.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뒤차가 경적을 울릴 때까지 움직이지 못했다. 세령은 뒤늦게 액셀을 밟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유건에게서 전화가 세 번 왔다. 받지 않았다.

현관문을 열자 아침에 보던 풍경이 그대로였다. 식탁 위 커피잔, 소파에 던져둔 넥타이, 벽에 걸린 결혼사진.

사진 속 유건은 세령의 허리를 감싸고 웃고 있었다.

세령은 한참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아침에 마시다 남긴 커피를 싱크대에 쏟았다. 컵을 씻으려다 그대로 내려놓았다. 지금 손에 잡히는 것마다 괜히 깨뜨릴 것 같았다.

휴대폰을 식탁 위에 올려뒀다.

또 전화가 울렸다.

이번에도 받지 않았다.

잠시 뒤 메시지가 왔다.

[집에 갔어?]

곧이어 하나가 더 도착했다.

[오늘 일은 내가 설명할게.]

세령은 화면을 끄려다가 멈췄다.

세 번째 메시지가 떴다.

[라온이랑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 아니야.]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답장창을 열었다가 아무것도 쓰지 않고 닫았다.

그 순간 다시 진동이 울렸다.

마지막 메시지는 짧았다.

[형한테는 아무 말도 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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