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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같은 집, 다른 시간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22 08:47:30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다음 날 아침부터 집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보기 불편했다.

눈이 마주치면 어제의 말들이 그대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난 선택권도 없었어.

-난 네가 무서웠어.

아침 식탁에는 이미 정리된 컵만 남아 있었고,

하나는 부엌을 정리한 뒤 방으로 들어가 있었다.

건우는 일부러 집을 일찍 나섰다.

갈 곳이 정해져 있진 않았지만, 그 집 안에 오래 있고 싶지 않았다.

마치 마주치는 시간을 단절시키기 위해서

건우는 그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하나를 피하고 있었다,

“나갈게.”

“응.”

짧은 대답. 그 이상은 없었다.

저녁은 더 조용했다.

하나는 먼저 씻고 들어갔고, 건우는 거실에서 사고 기록을 펼쳤다.

대화를 이어가려는 시도조차 없었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마치 다른 시간대에 사는 사람들 같았다.

소파에 앉아 있어도 등을 기대지 않았고,

식탁에 마주 앉아도 시선이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렇게 열흘이 흘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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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수의 밤   57. 다가온 현실

    폐정비소의 공기는 기름 냄새와 먼지가 뒤섞여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건우는 차 안에서 시동을 끈 채 주변을 훑었다. 약속 시간보다 십 분 일찍 도착했지만, 이미 누군가가 먼저 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둠은 조용했지만, 그 조용함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웠다.잠시 후, 모자를 깊게 눌러쓴 남자가 그림자 속에서 걸어 나왔다.그는 말없이 건우의 차 조수석에 올라탔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숨이 거칠었다.“브레이크 라인, 절단된 겁니다.”그의 첫 문장은 돌려 말하지 않았다.건우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지만, 확정된 말로 듣는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다.“사고 전날 교체 기록은 형식이었습니다. 실제 작업은 없었고, 정비소 CCTV는 외부 요청으로 삭제됐습니다.”“외부가 어디죠.”건우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남자는 잠시 망설였다가 말했다.“그 회사 계열 쪽입니다. 지분 정리 직전이었잖습니까. 내부 정리였습니다.”형의 죽음이 우연이 아니라는 가능성이 이제는 가능성의 단계를 넘어서고 있었다.건우가 더 묻기도 전에, 정비소 입구 쪽에서 헤드라이트가 켜졌다.빛이 정면으로 번졌고, 동시에 또 다른 불빛이 후방에서 들어왔다. 진입로는 순식간에 막혔다.남자는 욕을 내뱉고 차 문을 열었다.“저는 여기까지입니다.”그는 그대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건우는 혼자 남았다.차량 두 대가 천천히 다가왔다.도망칠 공간은 좁았고, 충돌을 피하려면 계산이 필요했다. 그는 핸들을 잡은 채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감정이 먼저 올라오면 끝이다.운전석 창문이 반쯤 내려가며 누군가 고개를 기울였다.“충분히 들으셨을 겁니다.”차 안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차분했다.“사고는 사고로 남는 게 좋습니다.”건우는 창문을 내리지 않았다.“사람을 죽이고도 그 말이 나옵니까.”남자는 짧게 웃었다.“죽였다고 확정된 건 없지 않습니까.”그 말은 도발이 아니라, 계산된 태도였다.건우의 휴대폰이 진동했다.하나였

  • 형수의 밤   56. 감정은 증거가 되지 않는다

    번호판은 허위 등록 차량으로 확인되었다.추적은 예상보다 빨리 막혔고, 건우는 그 결과를 듣는 순간 오히려 더 차분해졌다. 상대는 허술하지 않았고, 준비된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단순 협박이 아니라, 체계적인 압박이었다.김태윤은 통화 내내 조심스러운 어조를 유지했다.“정비 기록 관련해서 추가 자료가 하나 더 나왔습니다. 사고 전날 브레이크 패드 교체 내역이 있는데, 정비소 CCTV가 삭제돼 있습니다.”건우는 운전석에 앉은 채로 눈을 감았다.삭제. 누군가 손을 댔다는 의미였다.“회사 쪽이랑 연결점은.”“직접 증거는 없습니다. 다만 정비소가 그 기업 계열 물류 차량을 주로 관리해온 곳입니다.”간접적이었다. 하지만 무시하기엔 선이 너무 또렷했다.“기사는 언제.”“확인 더 하고 가야 합니다. 지금 내보내면 역고발 바로 들어옵니다.”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정이 먼저 나가면, 그건 패배였다.하나는 그날 감찰 2차 면담을 마쳤다.질문은 이전보다 구체적이었고, 그녀의 사적 관계를 계속해서 파고들었다. 특히 건우와의 접촉 기록을 묻는 순간, 조사관의 시선이 미묘하게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윤건우 씨와 사건 관련 논의를 한 적 있습니까.”하나는 숨을 고른 뒤 답했다.“공식적인 수사 정보는 공유하지 않았습니다.”그녀는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하지만 의심은 사실 여부보다 서사의 문제였다.집으로 돌아왔을 때, 현관 불이 이미 켜져 있었다.건우가 먼저 와 있었다.그는 소파에 앉아 파일을 넘기고 있었지만, 시선은 종이에 머물지 않았다.“오늘 어땠어.”그가 물었다. 하나는 가방을 내려놓으며 답했다.“이제 질문이 아니라 방향을 잡으려는 단계야.”건우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내가 뒤로 빠질까.”그 말은 가볍지 않았다.하나는 고개를 저었다.“지금 빠지면, 네가 뭔가 숨기는 것처럼 보일 거야.”그녀는 현실적이었다.“대신.”그녀가 말을 이었다.“감정적으로 움직이지 마.”건우는 그 말이 왜 나오는지 알고 있었다.어제 도

  • 형수의 밤   55. 사라진 우연

    건우는 위치 공유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부터 이미 차선을 무시하고 있었다.지도 위에서 깜박이는 점이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고, 그 속도가 일정하지 않다는 사실이 더 불안하게 느껴졌다. 하나의 차가 막히는 구간에 들어섰을 때마다, 그의 심장은 그보다 더 빠르게 뛰었다.전화를 걸었지만 신호음은 길게 이어졌고, 연결되기까지의 몇 초가 유난히 길었다.“어디야.”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지만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대로 쪽으로 나가고 있어. 신호 걸렸어.”하나의 숨이 약간 가빠 보였다.그녀는 겁을 먹었지만, 그걸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뒤에 차.”건우가 물었다.“검은 세단. 아까 골목에 있던 차 같아.”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건우의 손이 핸들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우연이라는 단어는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신호 바뀌면 바로 큰길로 빠져. 좁은 골목 들어가지 말고.”그는 이미 머릿속으로 동선을 계산하고 있었다.자신이 합류할 수 있는 지점까지의 거리, 예상 소요 시간, 교통 흐름.“건우.”하나가 낮게 불렀다.“괜찮아. 아직.”그 말은 안심시키려는 의도였지만, 오히려 그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아직’이라는 단어에는 시간 제한이 붙어 있었다.건우가 대로에 진입했을 때, 신호 대기 중인 차량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그 사이에서 하나의 차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그녀의 차 뒤로, 문제의 검은 세단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멈춰 있었다.그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차선을 바꾸며 하나의 차 옆으로 붙었고, 창문을 내리며 손짓했다.하나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신호가 바뀌는 순간, 세 대의 차가 동시에 움직였다.검은 세단은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여전히 뒤를 붙었다.건우는 일부러 속도를 늦추며 진입로를 틀었다.차량 흐름이 적은 구간으로 유도하는 대신, CCTV가 많은 구간을 선택했다.뒤차가 거리를 좁히는 게 느껴졌다.“직진해.”그는 통화 중이 아닌데도 중얼거리듯 말했다.하나는 그의 움직임을 읽고 있었다.차

  • 형수의 밤   54. 건드리면 무너질 줄 알았지

    의혹은 기사 한 줄로 시작했지만, 사람을 흔드는 건 그 다음이었다.실명이 적히지 않았음에도 내부에서는 이미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고 있었고, 하나가 복도를 지날 때마다 대화가 멈추는 공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시선은 노골적이지 않았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태도가 더 잔인했다.하나는 출근길에 차 안에서 휴대폰을 끄는 시간이 길어졌다.포털 댓글은 보지 않으려 했지만, 단어 몇 개만 훑어도 충분했다.“이해충돌.” “내부 유착.” “검사도 사람이다.”사실이 아니어도 문장은 사람을 조각낸다.그날 오후, 그녀는 주차장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자신의 차 뒷유리에 붉은 매직으로 긁어놓은 듯한 문장이 보였기 때문이다.-공정한 척 그만.그녀는 한참을 서 있었다.분노보다 먼저 찾아온 건 차가운 체념이었다.이건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건우는 그 사진을 휴대폰 화면으로 확인한 순간, 손끝이 얼어붙는 걸 느꼈다.하나는 아무렇지 않게 “지웠어”라고 말했지만, 그 문장 뒤에 숨은 무게를 그는 읽을 수 있었다.“경찰에 신고하자.”그가 말했다.“증거도 없고, CCTV도 애매해.”하나는 담담했다.“그냥 겁주기야.”그 말이 오히려 건우를 더 자극했다.누군가가 겁을 주기 시작했다는 건, 이 싸움이 이제 공적인 범위를 벗어났다는 의미였다.“그럼 더 멈출 수 없지.”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단했다.하나는 그를 바라봤다.“넌 왜 이렇게 끝까지 가려 해?”그 질문은 비난이 아니었다.이해하려는 시도였다.건우는 잠시 생각했다.형의 죽음 때문인지, 정의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이 잃은 1년 때문인지.“형 때문만은 아니야.”그가 천천히 말했다.“누가 겁을 주면, 물러나야 한다는 구조가 싫어.”하나는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옳음이 항상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날 밤, 건우는 집 앞에서 이상한 차를 발견했다.검은 세단이 골목 입구에 서 있었고, 시동은 꺼져 있었지만 누군가 안에 타 있는 듯한

  • 형수의 밤   53. 지켜야 할 것과 놓칠 수 없는 것

    감찰은 예상보다 빠르게 공식 조사 단계로 넘어갔다.형식상은 '이해충돌 여부 확인'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강하나 개인에 대한 신뢰도를 점검하는 절차였다. 회사 측이 제출한 의견서에는 그녀가 사건 관련 자료에 반복적으로 접근했다는 사실과, 해당 기업 대표와 사적인 인연이 있다는 점이조심스럽게 명시되어 있었다.직접적인 비난은 없었지만, 문장은 충분히 의심을 유도하고 있었다.하나는 그 문서를 받아들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건 자신을 제거하기 위한 전략이며, 동시에 건우를 고립시키는 방식이라는 걸.수사에서 배제되면, 그녀는 공식적으로 개입할 수 없게 된다.개인적으로 도울 수는 있겠지만, 그 순간부터 모든 행동이 또 다른 의혹이 된다.“선은 여기까지다, 이 말이네.”그녀는 조용히 중얼거렸다.건우는 시험 접수 확인 메일을 받은 날, 감정이 묘하게 뒤섞였다.다시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결심은 분명했지만, 그 결심이 하나를 더 깊이 위험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저녁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하나는 식탁에 서류를 펼쳐놓고 있었다. 감찰 관련 질의서였다.“이제는 진짜로 시작이네.”그녀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건우는 의자를 당겨 앉았다.“포기할 생각은 없지.”하나는 잠시 웃었다.“네가 그럴 사람이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지.”그녀의 눈빛은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피로가 쌓여 있었다.“근데 하나 묻자.”그녀가 서류를 덮으며 말했다.“넌 이 싸움 끝에 뭐가 남을 거라고 생각해.”건우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진실이 밝혀질 가능성, 형의 억울함이 정리될 그리고 자신이 다시 검사로 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여러 그림이 떠올랐다.“적어도 도망친 사람은 아니겠지.”그가 조용히 말했다.하나는 그 말을 곱씹었다.“도망치지 않는 게 항상 옳은 건 아니야.”그녀의 말은 현실적이었다.“때로는 남는 사람이 더 오래 싸워야 해.”건우는 그 문장을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하나는 자신이

  • 형수의 밤   52. 남겨진 자리

    감찰 통보는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었다. 형식상 ‘사전 검토’ 단계라고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하나의 수사 참여 범위를 제한하는 조치였다. 사건과 관련된 자료 접근 권한은 일시 정지되었고, 내부 보고 라인에서 그녀의 이름은 빠졌다.그 조치는 공식 문서 한 장으로 끝났지만, 의미는 단순하지 않았다.조직은 직접적인 비난 없이도 사람을 고립시킬 수 있었다.하나는 그 문서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이 빠진 자리에 다른 팀이 배정되었고, 그 팀장은 기업 수사에서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인물이었다. 회사 측이 원하는 속도와 크게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결국 이런 방식이네.”그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직접 막는 대신, 위치를 바꿔버린다.안에 있던 사람을 바깥으로 밀어내고, 구조를 조용히 재정렬한다.건우는 그 사실을 저녁이 되어서야 들었다.하나는 설명을 담담하게 했지만,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불안했다.“자료 접근은 막혔어. 공식적으로는 이해충돌 방지 차원이래.”건우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그럼 사건은.”“다른 팀이 맡겠지.”그녀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속도는… 느려질 거야.”그 말은 우회적인 표현이었다. ‘멈출 수도 있다’는 뜻에 가까웠다.건우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자신이 밖에서 던진 파장이, 결국 하나를 안에서 밀어낸 셈이 되었다는 사실이 가슴에 걸렸다.“내가 안 움직였으면.”그가 낮게 말했다.하나는 고개를 저었다.“그럼 신우 씨는 그냥 사고로 남겠지.”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난 그게 더 싫어.”그 문장은 분명했다. 그녀는 밀려났지만, 후회는 없다는 뜻이었다.밤이 깊어질수록, 집 안의 공기는 묘하게 팽팽해졌다.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서로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건우는 시험 준비 자료를 펼쳐 놓았지만, 글자가 쉽게 들어오지 않았다. 법 조문과 판례 사이로 형의 얼굴과 하나의 표정이 번갈아 떠올랐다.“너 진짜 들어갈 생각이야.”하나가 조용히 물었다.건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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