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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6분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18 14:10:10

집으로 돌아오는 길, 두 사람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신호등이 바뀔 때마다 차 안의 공기가 조금씩 식는 것 같았다.

라디오도 켜지지 않았고, 창문은 닫힌 채였다.

건우는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빼지 못했다.

9시 12분.

9시 18분.

6분.

그 짧은 시간이 자꾸 마음을 긁었다.

집에 들어서자, 현관 불이 자동으로 켜졌다.

빛이 바닥에 길게 떨어졌다.

하나는 코트를 벗어 의자에 걸어두고 그대로 거실에 섰다.

“유림 씨 말, 어떻게 들렸어?”

그녀가 먼저 물었다.

건우는 잠시 생각했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아요.”

“근데 전부는 아닌 것 같지.”

하나의 말이 겹쳐왔다.

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나는 잠시 서 있다가 천천히 소파에 앉았다.

“투자자 얘기, 처음 듣는 거였어.”

“형이 따로 말 안했어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회사 일은 대부분 공유했어.”

그 문장이 아주 자연스럽게 나왔다.

\건우는 그 자연스러움이 오히려 걸렸다.

“그날… 집에 들어가셨을 때.”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나는 시선을 들었다.

“형수가 본 건… 거실이었죠?”

“응.”

“부엌 쪽은 어땠어요?”

하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서랍이 열려 있었어.”

“칼꽂이는요.”

그녀의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기억 안 나.”

짧은 대답.

건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칼은 부엌에서 나온 걸로 추정된다고 했다.

칼꽂이가 비어 있었는지,

흩어져 있었는지,

그녀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럴 수 있다.

충격 속에서는 많은 것이 흐릿해진다.

그런데 9시 18분의 부재중 통화는 오늘 확인했다면서,

부엌 서랍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은 선택적으로 선명해진다.

건우는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저녁이 지나고 밤이 깊었다.

하나는 식탁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통화 기록 화면이 잠깐 비쳤다.

건우는 괜히 눈을 돌렸다.

“9시 18분.”

그가 낮게 말했다.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응.”

“그때… 어디쯤에 있었어요?.”

“집 앞”

“현관 앞이요?”

“응.”

건우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물었다.

“집에 들어가기 전이면…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시간은 기억나요?”

하나는 잠시 멈췄다.

“왜.”

“그냥.”

그는 말을 흐렸다.

“통화 기록이 9시 18분이면…9시 12분 통화 끝나고 6분 뒤 잖아요.”

하나는 눈을 떼지 않았다.

“그래서?”

“그 사이에 형이… 집 밖으로 나갔다 들어온 건 아닐까요?”

그 질문이 공기를 바꿨다.

하나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비는 많이 오고 있었어.”

“그래도.”

건우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집 안에서 누군가를 만났다면.”

하나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한 번 두드렸다.

“건우야.”

그녀의 목소리가 단단해졌다.

“넌 지금 뭘 말하려는 거야.”

그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말로 꺼내면 모양이 생긴다.

그는 아직 그 모양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아니에요.”

짧은 후퇴. 하나는 그를 오래 바라봤다.

“의심하는 거면… 말해도 돼.”

그녀의 눈에는 방어도, 분노도 없었다.

대신 피로가 있었다.

건우는 고개를 저었다.

“의심이 아니라… 확인이에요.”

“뭘.”

“시간이요.”

그는 천천히 말했다.

“9시 12분, 9시 18분, 9시 37분.”

하나는 시선을 떨어뜨렸다.

“시간은 거짓말 안 해.”

그녀가 낮게 말했다.

“사람이 거짓말하지.”

그 문장이 지나갔다.

그날 밤, 건우는 혼자 거실에 앉아 있었다.

하나는 방으로 들어갔고, 문은 닫혀 있었다.

9시 12분 - 유림과 통화.

9시 18분 - 하나에게 부재중 전화.

9시 37분 - 신고.

25분.

그 사이에 형은 누군가를 만났을까.

아니면 누군가가 이미 집 안에 있었을까.

건우는 형의 성격을 떠올렸다.

신우는 서두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유림은 말했다.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그 단어가 자꾸 남았다.

서두른다는 건, 이미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는 뜻이다.

건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고, 게스트룸 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그는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대신, 아주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지금은 묻지 않는다.

묻는 순간, 관계가 먼저 깨질 것 같았다.

아직은 확인이 더 필요했다.

9시 12분.

9시 18분.

그리고 그 사이의 6분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비는 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공기는 눅눅했다.

밤새 창문을 닫아두었는데도, 집 안에는 묘하게 젖은 냄새가 남아 있었다.

건우는 새벽 세 시가 조금 넘어 눈을 떴다.

잠든 기억이 거의 없었다.

거실로 나가 물을 마시다가 멈췄다.

식탁 위에 메모지가 놓여 있었다.

9:12

9:18

9:37

하나의 필체였다.

숫자 옆에 동그라미가 여러 번 그려져 있었다.

그는 메모지를 들여다보다가, 조용히 내려놓았다.

아침이 밝았을 때, 하나는 이미 일어나 있었다.

눈 밑이 조금 어두웠다.

잠을 거의 못 잔 얼굴처럼.

“안 잤지?”

그녀가 먼저 말했다.

건우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고, 하나는 메모지를 접어 서류철 안에 넣었다.

“시간이 계속 걸려.”

“9시 18분이요?”

건우가 물었다.

“응.”

그녀는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그때 진동을 느꼈다고 기억하는데… 정확히 어디였는지가 흐려.”

“현관 앞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하나는 잠시 멈췄다.

“그렇게 말했지.”

“기억이 달라요?”

그녀의 시선이 건우에게 향했다.

“건우야.”

그녀가 낮게 말했다.

“충격받은 기억은… 항상 선명한 부분이랑 흐릿한 부분이 같이 있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건우는 묘하게 걸렸다.

“그럼… 집 안에 들어간 뒤에 본 건 확실해요?”

하나는 잠시 말을 고르듯 숨을 골랐다.

“거실은 확실해.”

“부엌은요.”

그녀의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서랍이 열려 있었어.”

“칼은?”

하나는 시선을 떨어뜨렸다.

“피가… 바닥에 있었어.”

질문과 대답이 어긋났고, 건우는 그 어긋남을 느꼈다.

오후, 건우는 혼자 회사로 향했다.

하나는 검찰청에 들렀다 온다고 했다.

회사 건물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직원 몇 명이 그를 알아보고 고개를 숙였다.

대표의 동생.

그 시선이 무겁게 느껴졌다.

유림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았다.

“다시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건우는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잠깐 확인할 게 있어서요.”

유림은 조용히 기다렸다.

“그날… 형이 서두르고 있었다고 했죠.”

“네.”

“어디를 가려는 사람 같았나요?”

유림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어딘가로 이동하려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집 안에서요?”

“아니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전화를 끊으면서… ‘나가야겠다’는 뉘앙스였습니다.”

건우의 손이 멈췄다.

“나간다고 했습니까.”

“정확히 그런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유림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분명히 자리를 뜨려는 목소리였어요.”

건우는 숫자를 다시 떠올렸다.

9:12 통화 종료.

9:18 하나에게 부재중.

그 6분 사이에.

“혹시… 약속이 있었던건 아니었나요?”

유림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외부 투자자와 만남을 조율 중이었습니다.”

“그날이요?”

“가능성은 있습니다.”

건우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형이… 누군가를 두려워하는 것 같았습니까.”

이번에는 유림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두려움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천천히 말했다.

“계산이었습니다.”

그 한 단어가 남았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해가 기울어 있었다.

하나는 거실에 앉아 있었다.

“회사 갔어?”

“네.”

그는 신발을 벗으며 말했다.

“유림 씨가… 나가려는 목소리였다고 하더라고요.”

하나의 손이 멈췄다.

“나가려고?”

“네.”

“그럼… 집 안에 누군가 있었던 게 아니라?”

그녀의 말끝이 흐려졌다.

건우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형이… 문을 열어줬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하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비밀번호는 알고 있었어요?”

건우의 질문은 조용했지만, 선을 넘고 있었다.

하나는 그를 오래 바라봤다.

“건우야.”

그녀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넌 지금… 뭘 생각하고 있어.”

건우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강도는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요.”

“그럼?”

“형이… 누군가를 만나려고 나갔다가, 그 사람이 따라 들어왔을 수도 있고요.”

말을 끝내고 나서야, 그는 자신이 ‘누군가’를 구체화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나는 시선을 돌렸다.

“그날… 현관 문은 잠겨 있었어.”

“안쪽에서요?”

“응.”

그녀의 말이 너무 빠르게 나왔다.

건우는 그 속도를 느꼈다.

“확실해요?”

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해.”

이번에는 망설임이 없었고, 그 확신이 오히려 이상했다.

밤이 깊었다.

건우는 혼자 거실에 앉아 있었다.

형은 계산적인 사람이었다.

서두르지 않는 사람.

그런데 유림은 말했다.

‘자리를 뜨려는 목소리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는 말했다.

‘현관 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어.’

두 문장이 충돌했다.

형이 나가려 했다면, 문은 열려 있었어야 한다.

문이 잠겨 있었다면, 형은 나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건우는 처음으로, 그 생각을 완성했다.

형은 누군가를 집 안으로 들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비밀번호를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게스트룸 문 앞에서 멈췄다.

문 너머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건우는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아직은 아직은 묻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 처음으로 그는 스스로 인정했다.

자신은 지금, 형의 죽음보다도 그날 밤 하나의 기억을 더 의심하고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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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은 이상하게 조용했다.비도 오지 않았고, 바람도 불지 않았다.창문은 닫혀 있었는데도, 집 안 공기가 어딘가 묵직했다.건우는 소파에 앉아 사고 기록을 펼쳐두고 있었지만,눈은 글자를 따라가지 못하고 같은 줄을 몇 번이나 되짚고 있었다.열흘 전, 서하가 처음 이름을 말했던 밤이 떠올랐다.그날 이후로 그녀는 몇 번 더 찾아왔다.노크 없이. 설명 없이. 마치 이 집의 또 다른 주인처럼.처음엔 경계했다.그다음엔 질문했고, 이제는 기다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그게 문제였다.밤 열한 시가 조금 넘었을 때였다.발소리가 들렸다.이번엔 망설임이 없었다.숨기지도 않았다.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하나의 얼굴. 하지만 눈빛은 하나가 아니었다.서하였다.긴 머리를 풀어 내린 채, 얇은 니트 차림이었다.화장은 거의 없었지만, 이상하게 더 또렷해 보였다.“또 보고 있어?”그녀가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건우는 서류를 덮지 않았다.“형의 죽음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그 말, 이제 지겹지 않아?”그녀가 천천히 걸어왔다.소파 맞은편이 아니라, 옆에.의도적으로.건우는 그 움직임을 모른 척하지 못했다.숨이 가까워졌다.“넌 늘 거기서 멈춰.”“어디.”“형.”그 단어가 공기를 가볍게 베었다.건우는 고개를 들었다.“형은 죽었어.”서하의 말은 차분했지만, 감정이 비어 있었다.“그래도 넌 아직 형이 살아 있는 사람처럼 행동해.”“무슨 뜻이야.”“형이 있으면 안전하니까.”건우의 눈이 흔들렸다.“형이 있으면, 넌 날 마음대로 보지 않아도 되잖아.”그 말이 예상보다 깊게 들어왔다.건우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너랑 하나를 구분하는 게 먼저야.”“구분?”서하가 웃었다.그 웃음은 비웃음이 아니었다.묘하게 서늘했다.“이 얼굴이 누구 건지 너도 알잖아.”그녀가 한 발 더 다가왔다.무릎이 스쳤다.건우는 그 순간, 피하지 않았다.피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넌 지금 누구를 보고 있어.”서하의 목소리가 낮아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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