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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마지막 통화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18 14:01:57

아침은 비가 그친 뒤에야 찾아왔다.

창문을 두드리던 소리가 사라지자,

집 안은 이상할 만큼 고요해졌다.

어젯밤의 대화가 정말 있었던 일인지,

건우는 한동안 확신하지 못했다.

부엌에서 물 끓는 소리가 났다.

그는 잠시 멈춰 서서 그 소리를 들었다.

익숙한 소리였다.

누군가 이 집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낯설었다.

하나는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서 있었다.

머리는 단정하게 묶여 있었고, 어제 젖었던 코트는 의자에 걸려 있었다.

“일어났어?”

목소리가 차분했다.

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젯밤의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커피 마실래?”

“네.”

“근데 건우 왜 나한테 계속 존대해?”

“....형수니까.”

“내가 불편하구나. 너 편한대로 해. 나도 내가 편한대로 할테니까.”

하나는 컵을 건넸다. 손은 안정돼 있었다.

떨림도, 흔들림도 없이.

“경찰에서 오늘 다시 연락 올 거야.”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출근은…”

“당분간 쉬기로 했어.”

검사라는 직함이 그 말 뒤에 붙어야 할 것 같았지만,

하나는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았다.

건우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살폈다.

어제, 거실에서 했던 말들.

창문. 유리 조각. 

‘넌 내가 이상하지 않아?’

그 문장들이 전부 꿈처럼 느껴졌다.

“어젯밤에…”

건우가 말을 꺼내자, 

하나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올라왔다.

“왜?”

목소리 톤이 맑았다.

남편을 잃은 아내가 저렇게 맑은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건우는 잠시 생각했다가

“아니에요.”

말을 삼켰다.

하나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아무렇지 않게 커피를 마셨다.

“형 장례 절차는 오늘 상의해야 할 것 같아.”

현실적인 문장. 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 쪽에서도 연락 올 거야. 신우 씨가 맡고 있던 프로젝트들, 

정리해야 할 게 많거든.”

그 말에 건우의 시선이 멈췄다.

“프로젝트요?”

“응. 해외 투자 건.”

짧은 대답.그는 어젯밤 현장에서 들었던 감식 요원의 말을 떠올렸다.

강도 가능성. 침입 흔적.

-그런데 왜 자꾸 회사 얘기가 먼저 나오는 걸까.

“형이… 요즘 많이 힘들어했어요?”

이번엔 건우가 묻지 않고는 못 견뎠다.

하나는 잠시 컵을 내려다봤다.

“회사 일 때문이었겠지.”

“다른 건요.”

“다른 게 뭐.”

건우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하나는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아주 미묘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건우야.”

“네.”

“혹시 너… 지금 나 의심하는 거야?”

그 질문은 낮의 목소리였다.

차갑지도, 도발적이지도 않았다.

그저 확인에 가까웠다.

건우는 즉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 대답이 너무 빨라서, 스스로도 낯설었다.

하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나도 모르겠어.”

낮은 목소리.

“어제 집에 들어갔을 때, 그 장면이 아직도 안 지워져.”

그녀의 눈이 잠시 멀어졌다.

“피가 바닥에 번져 있었고…신우 씨가 나를 보고 있었어.”

건우의 심장이 잠깐 멈췄다.

“보고 있었다고요?”

“아니.”

하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그렇게 느껴졌다고.”

그 말은 어딘가 어긋나 있었다.

보고 있었다와 느껴졌다 사이의 간격.

“숨은…”

건우가 물었다.

“없었어.”

이번에는 단정했다.

“이미 늦었어.”

그녀의 말이 조용히 떨어졌다.

이미 늦었다.

그 문장이 건우의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점심 무렵,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비서라는 사람이었다.

“대표님이 최근에 정리 중이던 자료가 있습니다.

가족분께 전달해야 할 것 같아서요.”

건우는 약속을 잡았다.

전화를 끊자, 하나가 물었다.

“회사 가?”

“네. 잠깐.”

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 말은 평범했다.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어색했다.

회사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사람들의 시선이 잠깐 모였다가 흩어졌다.

윤신우의 동생.

그 수식어가 건우를 따라다녔다.

비서는 회의실로 안내했다.

“대표님이 어제 오후에 수정하신 서류입니다.”

파일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해외 법인 투자 구조.

지분 변동 계획.

그리고, 최근 통화 내역 일부.

건우의 시선이 멈췄다.

모르는 번호가 반복돼 있었다.

통화 시간은 길지 않았다.

대부분 3분, 5분.

어제도 있었다.

저녁 7시 12분.

사망 추정 시각과 가까운 시간.

“이 번호 아세요?”

건우가 물었다.

비서는 고개를 저었다.

“개인 번호인 것 같습니다.”

그때, 회의실 문이 노크 없이 열렸다.

낯선 여자가 서 있었다.

짙지 않은 화장. 차분한 눈빛. 검은 정장.

“죄송합니다. 방해한 건가요.”

목소리가 낮고 또렷했다.

비서가 서둘러 소개했다.

“전략기획팀 차장, 서유림입니다.”

건우의 시선이 그녀에게 닿았다.

서유림.

그 이름은 처음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건우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대표님 일로…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그녀가 말했다.

건우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유림은 자리에 앉지 않았다.

“어제 저녁, 대표님이 저한테 전화를 하셨어요.”

건우의 심장이 느리게 뛰기 시작했다.

“무슨 얘기였죠?”

유림은 잠시 건우를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

“오늘로 끝내자고 하셨습니다.”

짧은 문장. 그 의미가 바로 닿지 않았다.

“무엇을요.”

그녀는 아주 미세하게 웃었다.

“그건… 나중에 말씀드리죠.”

그녀의 시선이 파일 위 통화 기록을 스쳤다.

“번호, 궁금하시죠?”

그녀가 낮게 덧붙였다.

“제 번호입니다.”

회의실 공기가 천천히 식어갔다.

건우는 그녀를 바라봤다.

형이 죽기 직전 통화한 사람.

그리고 지금, 아무렇지 않게 서 있는 여자.

밖에서는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그 순간, 형의 죽음이 어젯밤 거실에서 

끝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건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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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수의 밤   231. 이게 틀렸다는 걸 보여주는 수밖에

    여자의 시선이 아주 미세하게 멈췄다. 흔한 질문은 아니라는 반응이었다. 그녀는 잠깐 생각하는 시간을 둔 뒤 입을 열었다.“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다만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습니다.”그녀는 말을 더 길게 붙이지 않았다. 설명을 늘리기보다, 결론만 남기는 쪽을 택한 느낌이었다.건우는 더 묻지 않았다.어느 쪽을 선택하든 결국 하나가 밀려난다는 구조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는 얘기였고, 차이가 있다면 속도나 방식 정도일 뿐이라는 걸 이미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그는 고개를 조금 기울이며 말했다.“결국 하나만 남긴다는 얘기로 들리네요.”여자는 이번에는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부정하지 않는 침묵은, 때로는 긍정보다 더 분명하게 들릴 때가 있다.그때까지 조용히 있던 서하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건우야.”목소리는 낮았지만, 이전보다 조금 더 또렷했다.건우가 시선을 돌리자, 서하는 장치가 아니라 건우를 보고 있었다.“아까 했던 말, 기억하지.”그녀는 확인하듯 말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다는 전제 위에서 꺼낸 문장이었다.“둘 다 안 버린다고 했잖아.”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방 안 공기가 다시 한 번 달라졌다.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을 번갈아 보는 시선이 조금 더 신중해졌다.건우는 서하의 시선을 그대로 받아냈다.“기억해.”짧게 끊지 않고, 그대로 이어갔다.“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고.”서하는 잠깐 말을 멈췄다가 다시 물었다.“그럼 여기서도 같은 말 할 수 있어?”이 질문은 이전과 다르게 무게가 있었다. 단순히 감정적으로 꺼낸 말이 아니라, 지금 보고 있는 구조 앞에서도 그 선택을 유지할 수 있느냐를 묻고 있었다.건우는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았다.“여기서도 똑같아.”그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상황 바뀌었다고 말 바꾸는 쪽으로는 안 간다.”서하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다만 숨을 천천히 내쉬면서, 방금 들은 말을 자기 안에서 한 번 더 굴리는 것처럼 보였다.“그럼

  • 형수의 밤   230. 더는 물러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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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소리는 정면이 아니라 옆에서 들렸다.건우가 고개를 돌리자, 로비 구석이라고 해야 할지 데스크 뒤라고 해야 할지 애매한 위치에 여자가 서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땐 직원인지 상담사인지 구분이 안 됐는데, 가까이서 봐도 인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서른 중반 같기도 하고, 마흔 초반 같기도 했다. 너무 젊지도 늙지도 않은 그래서 기억에 또렷이 남지 않을 법한 얼굴. 단정한 셔츠에 짙은 재킷을 걸친 차림도 평범했고, 목소리도 높낮이가 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지나친 평범함이 오히려 더 신경을 거슬렀다. 사람은 보통 자기 감정을 감추더라도 어딘가에 흔적을 남기게 마련인데, 그녀는 그런 흔적조차 최대한 남기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보였다.여자는 건우를 보고, 이어 서하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시선이 아주 짧게 멈췄다가 다시 돌아오는 순간을 건우는 놓치지 않았다. 확인하는 눈이었다. 누가 왔는지, 어떤 상태로 왔는지, 이미 어느 정도 듣고 있었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눈. 건우는 인사 대신 곧바로 물었다.“여기 맞습니까.”여자는 대답 대신 아주 옅은 고개 끄덕임을 보였다.“안쪽으로 안내드리겠습니다.”그 말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누가 보냈는지, 왜 왔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묻는 과정조차 생략돼 있었다. 건우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무 많이 알고 있다는 뜻이거나, 혹은 너무 적게 알고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는 뜻일 테니까. 어느 쪽이든 정상적인 곳의 태도는 아니었다.그는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여자는 그런 건우를 재촉하지도 않았다. 둘 사이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먼저 그 침묵을 깬 건 건우였다.“여긴 뭘 하는 데죠.”여자는 잠깐 그를 바라봤다. 질문 자체는 단순한데, 지금 그녀가 어떤 말로 대답하느냐에 따라 이 장소의 정체가 달라질 수도 있는 종류의 질문이었다.그런데 그녀가 실제로 내놓은 대답은 예상보다 짧았고, 그래서 더 불편했다.“고르는 데예요.”건우는 눈을 좁혔다.

  • 형수의 밤   227. 안쪽의 공기

    센터라고 불러야 할지, 그냥 오래된 건물이라고 불러야 할지 애매한 그 장소는, 가까이 갈수록 오히려 더 형태를 감췄다. 도로에서 처음 봤을 때는 단순히 간판 없는 건물 정도로만 느껴졌는데, 막상 차를 세우고 내린 뒤 걸어서 다가가자 이상하게도 시선이 미끄러졌다. 병원도 아니고, 사무실도 아니고, 그렇다고 주거 공간처럼 생활감이 묻어나는 것도 아닌데, 딱 잘라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모양새였다. 애매하다는 건 대개 무해한 인상을 주기 마련인데, 이곳은 오히려 반대였다.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더 신경을 긁는 종류의 애매함.건우는 차 문을 닫고 나서도 잠깐 그대로 서 있었다. 엔진이 멎고, 차체 안에 갇혀 있던 미세한 진동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바깥 공기가 제대로 피부에 닿았다. 늦은 밤은 아니었지만 해가 완전히 남아 있는 시간도 아니라서, 건물 외벽에 걸린 그림자들이 지나치게 길게 보였다. 사람의 흔적이 적은 곳은 대개 소리부터 달라지는데, 여기도 그랬다. 멀리서 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그건 이 장소와 상관없는 바깥세상의 소리였고, 바로 근처엔 사람이 내는 생활음이 거의 없었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도, 계단을 오르내리는 발소리도, 휴대폰 붙들고 웃는 목소리도 없었다. 건물은 서 있었지만, 그 안에서 시간이 움직이는 느낌이 잘 들지 않았다.서하는 차에서 내린 뒤로도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건우보다 반 걸음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는데, 그 거리감이 이상하게 자연스러웠다. 누가 먼저 앞장서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누가 누구를 끌고 가는 것도 아닌 상태. 같이 걷고 있지만 같은 리듬으로 걷고 있다는 감각이 분명했다. 건우는 입구 앞에 멈춰 선 채 유리문을 올려다보았다. 안쪽이 전혀 안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선명히 들여다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반투명 필름이 붙은 듯 흐릿했고, 실내등도 밝지 않아서 바깥에서 보면 그저 어둑한 윤곽만 겹쳐 보였다.그는 문 손잡이에 손을 올리기 전에 아주 짧

  • 형수의 밤   226. 둘 다 안 버린다

    “형.”건우가 낮게 말했다.서하는 고개를 아주 조금 돌렸다.“여기까지 왔지.”그 문장은 질문이 아니었다.이미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의 말이었다.서하는 짧게 대답했다.“왔겠지.”건우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그 대신 손잡이를 조금 더 세게 잡았다.“그럼 우리도 가보면 되겠네.”그 말은 단순했다.그래서 더 확실했다.서하는 그걸 듣고 잠깐 웃었다.소리는 없었지만,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너 진짜…”말을 꺼냈다가, 끝까지 잇지 않았다.대신 고개를 저었다.“알겠다.”그 한 마디로 충분했다.건우는 더 확인하지 않았다.문을 열었다.바깥 공기가 바로 안으로 들어왔다.조금 차가웠고, 집 안보다 가벼웠다.건우는 한 걸음 밖으로 나갔다.서하는 바로 뒤를 따라 나왔다.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그 소리는 생각보다 작았는데, 이상하게 되돌아가기 어려워진 느낌만큼은 분명하게 남았다.둘은 말을 하지 않았다.차로 걸어가는 동안, 시선도 거의 마주치지 않았다.하지만,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이건 선택이 끝난 뒤의 움직임이었다.그리고, 둘 다 알고 있었다.이건 협력이 아니라, 서로를 끌고 들어가는 쪽에 가까운 선택이라는 걸.차 안은 조용했다.엔진이 돌아가는 소리와, 타이어가 도로를 긁는 소리만 일정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라디오도 켜지지 않았고, 내비게이션 안내도 일부러 꺼둔 상태였다. 필요 없는 소리는 전부 걷어낸 채, 둘 사이에 남아 있는 건 오직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감각뿐이었다.건우는 앞만 보고 있었다.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주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손목이 단단하게 굳어 있는 건 스스로도 느껴졌다. 속도를 일부러 올리지도, 그렇다고 늦추지도 않았다. 지금은 빨리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멈추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옆자리는 조용했다.서하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거리의 불빛이 유리창에 스치면서, 그녀 얼굴 위로 아주 잠깐씩 그림자가 지나갔다. 그 변화가 반복될수록,

  • 형수의 밤   4. 문장 사이의 공백

    회의실 창밖으로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잔잔했지만, 오래 갈 비였다.유림은 앉지 않았다. 테이블 끝에 서서, 파일을 내려다보는 건우를 바라보고 있었다.“대표님이 어제 저녁, 제게 전화를 하셨습니다.”그녀의 말투는 단정했다.감정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건우는 파일을 덮지 않았다.통화 기록의 숫자들이 시야에 남아 있었다.저녁 7시 12분.“오늘로 끝내자고 하셨다고요.”그가 되물었다.“네.”“무엇을.”유림은 잠시 침묵했다.답을 고르는 사람의 침묵이 아니라,상대를 재는 사람의 침묵이었다.“업무 관계를요.”

  • 형수의 밤   2. 문 안쪽의 사람

    시신을 실은 차량이 골목을 빠져나갈 때까지,건우는 비를 맞은 채 그대로 서 있었다.경광등 불빛이 젖은 도로 위에 번졌다가 사라졌다.형은 그렇게 떠났다.설명도, 변명도 없이.경찰은 현장을 통제했고, 필요한 절차를 간단히 설명했다.참고인 조사 일정이 잡힐 거라고 했다.말은 또렷했지만, 건우의 귀에는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남은 건 한 문장뿐이었다.저녁 8시 전후.그 시간에 그는 집에 있었다.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하나는 경찰의 안내를 받아 현관을 나왔다.비는 여전히 세게 내리고 있었고,그녀의 코

  • 형수의 밤   1. 형이 죽었다.

    그날, 건우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아픈 건 아니었다. 몸은 멀쩡했다.다만, 일어나는 순간 모든 게 진짜가 될 것 같아서.부모님이 돌아가셨다.그 문장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정말로 세상이 굳어버릴 것만 같았다.자신은 살아 있고, 더이상 그의 부모는 없다.-그게 말이 되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1년.건우는 병실 침대 위에서 1년을 보냈다.눈을 떴을 때는 이미 모든 게 끝나 있었다. 장례도, 화장도.향 냄새를 맡을 겨를도 없었고, 마지막 인사를 할 기회도 없었다. 울지도 못했다.그건 애초에 건우의 몫이

  • 형수의 밤   10. 의심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어딘가 힘이 빠져 있었다.밤이 깊어지고, 어둠이 가득한 방, 건우는 숫자를 다시 적었다.9:129:189:37그리고 그 옆에 한 줄을 덧붙였다.‘왜.’-형은 왜 전화했는가.-위험을 알리기 위해?-아니면 누군가의 도착을 확인하기 위해?그는 처음으로 그 가능성을 떠올렸다.형이 전화한 건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시간을 맞추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면.그 생각은 섬뜩했다.만약 누군가와 약속이 있었다면.9시 18분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건우는 펜을 내려놓았다.기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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