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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수의 밤
형수의 밤
Author: 데이지

1. 형이 죽었다.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18 13:57:42

그날, 건우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아픈 건 아니었다. 몸은 멀쩡했다.

다만, 일어나는 순간 모든 게 진짜가 될 것 같아서.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그 문장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정말로 세상이 굳어버릴 것만 같았다.

자신은 살아 있고, 더이상 그의 부모는 없다.

-그게 말이 되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1년.건우는 병실 침대 위에서 1년을 보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모든 게 끝나 있었다. 장례도, 화장도.

향 냄새를 맡을 겨를도 없었고, 마지막 인사를 할 기회도 없었다. 울지도 못했다.

그건 애초에 건우의 몫이 아니었다.

살아 있었지만, 아무것도 겪지 못한 채로 돌아온 셈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로도 그는 잠을 제대로 자본 적이 없었다.

눈을 감으면 보였다.

부모님 얼굴이 비에 젖은 도로 위, 찌그러진 차 안에서,

피를 흘리며 자신을 바라보던 그 눈빛.

-왜 너만 살아 있냐고.

-우리는 왜 죽어야 했냐고.

그 질문이 밤마다 가슴을 파고들었다.

건우는 그걸 밀어낼 힘이 없었다.

힘을 쓰는 것 자체가 사치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건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벨 소리가 집 안을 채우다가, 이내 사라졌다.

다시 울리지 않기를 바랐지만, 바람은 늘 가장 늦게 도착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젖은 손으로 두드리는 것 같았다. 둔탁하고 무거운 소리.

그리고,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도련님… 도련님…”

건우의 눈꺼풀이 떨렸다.

그 목소리를 모를 리가 없었다.

“윤건우… 윤건우…”

강하나.

윤신우의 아내.

이제는 ‘형수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여자.

그리고, 윤건우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

1년 전엔 그들이 함께 미래를 그렸다.

결혼을 생각했고, 그냥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웃는 소리 하나도 아까웠다. 모든 순간이.

그런데 1년 만에 눈을 떴을 때, 하나는 이미 그의 사람이 아니었다.

검은 정장을 입은 형 옆에 서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로. 왼손 약지에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사고로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형은 혼자 회사를 떠안게 되었다.

언제 깨어날지도 모르는 동생을 대신해서 모든 걸 감당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옆에, 하나가 있었다.

형의 아내로.

이해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만, 받아들이는 건 달랐다.

몸 어딘가가 납덩이처럼 가라앉는 기분.

설명은 가능했지만, 감정은 따라오지 못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건우는 겨우 몸을 일으켰다.

발바닥이 차가운 마룻바닥에 닿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현관까지 가는 게 이렇게 먼 일인 줄 몰랐다.

손잡이를 잡는 순간, 

밖에서 비 내리는 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려왔다.

문을 여는 일조차 의식처럼 느껴졌다.

돌아갈 수 없는 쪽으로, 한 발 내딛는 의식.

문을 열었다. 비 냄새가 밀려 들어왔다.

하나가 우산도 없이 서 있었다.

머리카락이 얼굴에 달라붙어 있었고,

옷은 물에 젖어 검게 변해 있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얼굴이었다.

건우는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이 여자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 이미 알아버릴 것 같아 숨이 막혔다.

“하… 나… 아니, 형수님…”

목소리가 떨렸다.

자기 귀에도 낯선 목소리였다.

“대체 무슨 일이에요.”

하나의 입술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말을 삼키는 게 보였다. 몇 번이고.

비는 그녀의 어깨를 때리며 흘러내렸고,

그 물기마저 그녀를 더 작게 보이게 만들었다.

“…건우야.”

그녀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형수님이 아니라, 예전처럼.

건우의 가슴이 반응했다.

그 반응이 더 참담했다.

“어떡해.”

숨이 가빴다.

“신우 씨가… 신우 씨가…”

눈이 흔들렸다.

마치 한 단어만 더 말하면 모든 게 무너질 것처럼.

“죽었어.”

순간, 빗소리가 멀어졌다.

세상이 잠깐 꺼진 듯했다.

건우는 그녀를 바라봤다.

말의 의미가 머리로 들어오지 않았다.

단어는 들렸는데, 문장이 되지 않았다.

“네?”

천천히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갑자기 누가 죽어요?”

하나가 고개를 저었다.

그 움직임이 너무 작아서, 고개를 젓는 건지 무너지는 건지 구분이 안 됐다.

“퇴근하고 집에 갔는데… 집이 엉망이었어.”

“창문이 깨져 있었고… 거실은 난장판이었어.”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은 추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신우 씨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어. 배에 칼이…”

말이 끊겼다.

그 다음을 말하면, 정말로 끝이 날 것 같아서.

끝이라는 단어가 현실이 될 것 같아서.

건우의 머릿속에 형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자신이 깨어났을 때, 침대 옆에 서 있던 그 얼굴.

말없이 물을 건네고, 말없이 창문을 닫아주던 사람.

이제 가족은 형밖에 없었다.

그 형이. 오늘 밤, 죽었다.

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세상은 너무 자연스럽게 계속 돌아가고,

그 자연스러움이 건우를 더 잔인하게 만들었다.

하나는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문턱에 서 있었다.

마치 이 집 안으로 들어오면, 자신이 가져온 소식이 완전히 현실이 될까 봐.

그녀의 눈빛이 집 안을 훑었다.

젖은 현관 매트, 어둑한 거실, 닫힌 방문들.

그리고 다시 건우에게로 돌아왔다.

그 눈에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무엇이,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갔다.

겁에 질린 사람의 눈빛이 아니라,

무언가를 이미 확인한 사람의 눈빛.

건우는 그게 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알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날 밤, 그 집에서 죽은 건 윤신우만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믿음도 함께,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

비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경찰차의 붉은 불빛이 젖은 아스팔트 위에서 길게 번졌다.

신우의 집 앞에는 이미 노란 통제선이 둘러쳐져 있었다.

건우는 그 선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집이 아니라, 다른 공간처럼 느껴졌다.

익숙해야 할 현관이 낯설게 보였다.

“가족분이십니까?”

젊은 형사가 다가왔다.

건우는 고개만 끄덕였다.

“안쪽은 현장 보존 중입니다. 여기서 확인만 하셔야 합니다.”

건우는 통제선 안쪽을 바라봤다.

거실은 불이 켜져 있었다.

바닥에는 흩어진 물건들이 보였고, 소파가 밀려 있었다.

창문 하나가 깨져 있었는데, 

파손된 유리 대부분이 실내 쪽으로 흩어져 있었다.

그는 그걸 한참 바라보다가 시선을 옮겼다.

거실 중앙. 하얀 천이 덮여 있었다.

천 아래의 윤곽이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건우의 목이 마른 듯 굳었다.

형은 저 아래에 있다.

그러나 그는 다가갈 수 없었다.

그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건 고작 얇은 테이프 한 줄이었지만,

그건 건너갈 수 없는 경계였다.

비가 세게 내리면서 깨진 창문 틈으로 빗물이 들이치고 있었다.

현장 요원이 플라스틱 시트로 급히 막고 있었다.

“사망 추정 시각은 9시 전후입니다.”

형사의 말이 들렸다.

“침입 흔적은 확인됐습니다. 강도 가능성으로 보고 있습니다.”

강도.

그 단어가 건우의 귓속에서 헛돌았다.

형이 강도에게 찔렸다고.

그는 다시 거실을 바라봤다.

피는 이미 어둡게 말라가고 있었다.

비 냄새와 섞여 묘하게 눅진한 공기가 느껴졌다.

하나는 현관 안쪽 벽에 기대 서 있었다.

경찰 한 명이 옆에서 진술을 받고 있었다.

“귀가 시간은 정확히 언제입니까?”

“9시 반 조금 넘어서요.”

목소리가 낮고 고르다. 울음이 섞여 있지 않았다.

“남편분과 최근에 다툰 일은요?”

잠시 침묵.

“없었습니다.”

짧고 단정했다.

건우는 그 대답을 들으면서도, 그녀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눈이 자꾸 거실 중앙으로 향했다.

하얀 천 아래, 형이 누워 있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마치 영화 세트장을 보는 것 같았다.

“유리 파손 방향은 안쪽으로 튄 흔적이 많습니다.”

현장 감식 요원이 낮게 말했다.

“외부 충격인지, 내부에서 파손된 건지는 더 봐야 합니다.”

건우는 그 말을 흘려들으려 했지만,

그 문장이 머릿속 어딘가에 걸렸다.

안쪽으로.

그는 천천히 시선을 창문으로 옮겼다.

비는 여전히 바깥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도련님.”

누군가 조심스럽게 불렀다.

관리인이었다.

“저녁에 큰 소리가 나긴 했습니다. 하지만 비가 워낙 세서… 정확히는…”

말끝이 흐려졌다.

비.

모든 게 비 때문인 것처럼 정리되고 있었다.

형사가 건우에게 다가왔다.

“동생분이시죠. 참고인 조사 위해서 잠시 말씀 나누셔야 합니다.”

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들것이 들어왔다.

하얀 천이 조심스럽게 고정됐다.

윤신우의 얼굴이 잠깐 드러났다.

눈은 감겨 있었다. 표정은 놀랍도록 평온했다.

그 평온함이 이상했다.

마지막 순간에 겪었을 공포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형은 저 얼굴로, 자신의 마지막 말을 남겼을까.

건우는 묻고 싶었다.

-형, 그때 뭐라고 말했어.

하지만 대답할 사람은 없었다.

시신이 통제선을 넘어 나갔다.

비가 얼굴을 때렸다.

하나는 여전히 안쪽에 서 있었다.

조사를 마친 듯 형사와 몇 마디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의 눈이 잠시 건우를 향했다.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무언가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의 눈빛이 스쳤다.

아주 잠깐. 건우는 그걸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하나였다.

형은 죽었고, 이 집은 지금부터 증거가 된다.

그리고 이 밤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긴 밤이 될 거라는 예감이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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