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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택시에 탄 지 한 시간쯤 지나 장가 별장 앞에 멈춰 섰다.

장소월은 집으로 들어가 신발을 바꿔 신었다. 아줌마가 그 모습을 보더니 인츰 다가왔다.

“아가씨, 왜 혼자에요? 연우 도련님이랑 같이 들어오시는 거 아니었어요?”

아줌마는 아직 많이 젊었고 주름이 많지는 않았다.

장소월은 대뜸 아줌마를 꼭 끌어안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녀를 친자식처럼 아껴준 사람은 아줌마뿐이었다.

그러나 뒤에는 전연우가 강제로 전가에 남겨 그와 송시아를 모시게 했다.

“아줌마, 너무 보고 싶었어.”

“어... 저기... 아가씨, 왜 그래요? 혹시 아직 다 안 나으신 건가요?”

아줌마가 장소월을 밀어내더니 걱정스레 손을 그녀의 이마에 갖다 댔다.

괜찮은 거 같은데?

아줌마는 오늘 장소월이 약간 이상해 보였지만 딱히 뭐라 표현할 수는 없었다.

“아니 그냥 안아보고 싶었어.”

“이제 막 들어왔는데 배 안 고파요? 죽 끓여놨는데 얼른 오세요.”

“입맛 없어, 그냥 올라가서 좀 잘래. 점심때 다시 불러줘!”

밤을 꼬박 새우고 차를 탔더니 머리가 조금 어지러웠다.

“아 맞다, 아가씨, 아까 회장님 전화 오셨는데 집 들어오시면 다시 전화 달라고 했어요. 아가씨한테 하실 말씀이 있어 보였어요. 그리고 이건 회장님 출장 가시기 전에 아가씨께 전달하라고 하신 거예요.”

장소월은 실버 쇼핑카드를 건네받고는 머리를 끄덕인다.

“응”

장해진이 전연우 대신 그녀에게 주는 보상인가?

장해진이 무슨 말을 꺼낼지 장소월은 알고 있었고 담담하게 전화를 걸었다.

장해진에 대한 그녀의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는 확실히 좋은 아버지였다. 하지만 그것도 허울뿐이었다...

그는 사실 좋은 아빠가 아니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장해진이 늘 가업을 물려받을 아들을 갖고 싶어 했다는 것을. 하여 많은 애인을 두고 있었지만 그중 누구도 아들이나 딸을 낳지는 못했다.

그래서 결국 전연우를 입양한 거다.

나날이 커가고 있는 딸은 장해진에게 정략결혼의 도구일 뿐이었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장해진은 수단을 가리지 않았고 자신의 딸을 다른 남자의 침대로 보냈다.

어릴 때부터 곁에 있어준 사람은 아줌마밖에 없었다...

그녀가 이 집을 떠날 수 있는 능력만 있어도 여기에 남아있진 않았을 것이다.

통화가 연결되었다.

“여보세요, 아버지.”

“몸은 괜찮은 거니? 의사 선생님은 뭐라 시니?”

통화하는 분위기가 마치 령도가 부하에게 하는 일반적인 문안 인사 같았다.

“이제 괜찮아요. 많이 좋아졌어요.”

“소월아, 너는 나 장해진의 딸이고 전연우는 내 아들이야. 이번 생은 넌 그냥 연우의 동생이어야 해. 알겠니?”

장소월이 소리 없이 웃었다. 이건 장해진이 그녀에게 보낸 경고였다.

직접 보고 얘기하지 않아도 장해진 눈가에 깃든 차가움, 서먹함과 거리감을 느낄 수 있었다.

장해진의 마음속에 그녀가 전연우에 대한 사랑은 가문의 수치였고 먹칠이었다.

장소월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수긍하는 듯 말했다.

“네, 잘못한 거 알고 있어요. 미안해요. 아버지. 다시는 이러지 않을게요.”

“... 카드는 받았니? 시간 날 때 쇼핑이라도 하렴. 맘에 드는 거 있으면 바로 사고. 집에 틀어박혀서 그림만 그리지 말고 나가서 친구도 많이 사귀고.”

“네, 아버지.”

장해진의 대충 끊어버리고 장소월은 방으로 올라간다.

열몇 살쯤 되었을 때라 방안은 온통 핑크색이었고 잔잔한 캔디 향기가 풍겼다. 큰 공주 침대는 모든 여자애들의 로망이었다.

이때 장소월의 전화기가 울렸다.

확인해 보니 전연우였다.

장소월의 손이 떨렸고 전화기가 이내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줍지 않았다.

그냥 망가져 버렸으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전화가 자동으로 끊기고 나서야 장소월은 전화기를 주워들었다. 그러고는 전연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빠 미안해. 말한다는 걸 깜빡했네. 나 이미 집이야. 마침 문자하려고 했는데.」

메시지는 읽음으로 떴다.

답장은 없었다. 그리고 전화가 걸려왔다.

장소월은 무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오빠...”

“소월아. 이런 상황은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할 거야. 다음부터 무슨 일 하기 전에 나한테 전화해!”

그의 목소리엔 화가 섞여있었다. 토론의 여지가 없는 통보였다.

“그래, 알겠어.”

장소월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아무런 흠집을 잡을 수 없는 순종이었다.

부부로 사는 8년간 장소월은 전연우를 잘 알고 있었다. 기가 센 사람이었고 무엇이든 그가 말한 대로 한치의 반항도 없어야 했다.

예전의 장소월도 습관적으로 순종했고 전연우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다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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