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한 분위기가 점점 더 깊이 퍼져갔다. 불어오는 바닷바람마저도 야릇한 느낌을 주는 듯했다.장소월은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오고 간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이 전연우한테 얼마나 시달림받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했고 통증마저도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깨고 기절하고를 계속 반복했다.밖에 해가 뜨기 시작했을 때, 장소월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어 그대로 깊은 잠에 빠졌다.새벽 다섯 시 반, 전연우는 갓 씻은 장소월을 안고 욕실에서 나왔다. 욕실 수증기 안개 속에서 나온 그녀의 하얀 피부에는 성한 곳이 없었다.전연우는 그녀를 가볍게 침대 위에 내려놓고는 침대 머리맡 서랍 안에 있는 연고를 찾아 그녀의 두 다리 사이에 발라주었다. 빨갛게 부어올랐는데 약간의 출혈도 있었다. 찢어진 정도는 심하지 않았다. 눈 감고 있는 장소월이 앓는 소리를 내며 아픈 듯 눈살을 찌푸렸다. 남자는 더 살살 약을 발라주었다.또 한 시간이 지났다. 전연우는 눈을 붙일 시간도 없이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기성은이 보고했다.“대표님, 배가 육지에 닿았습니다. 출발하셔도 됩니다.”“가서 새 옷 한 벌 준비해와.”기성은이 멈칫하고는 답했다.“네.”기성은 이내 새 옷 한 벌을 가지고 돌아왔다. 사이즈가 장소월에게 딱 맞았다.전연우는 그녀의 머리를 말려주고 옷을 입히고는 그녀를 안고 크루즈에서 내렸다.커다란 부가티 안에서 장소월은 전연우의 다리에 누워 자고 있었는데 전혀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장소월은 호텔에 돌아간 후에야 편이 잠을 잘 수 있었다.해가 또 저물었다.피에 물든 듯한 저녁노을이 보였다.방의 두꺼운 커튼 사이로 희미한 빛이 비춰 들어왔다.장소월은 손가락을 까딱했다. 그녀는 차에 깔린 것처럼 온몸이 시큰해났다. 옆에서 뜨거운 체온이 느껴졌는데 누군가가 그녀의 허리를 안고 있었다.장소월은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었고 ‘오빠’라고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불렀다. 그는 아무런 감정도 없는 짐승이었다.장소월은 불쾌해하
“반 시간 후에 내가 데려다줄게.”“필요 없어.”자신을 놓아준 전연우를 보면서 장소월은 약간 놀랐다.그가 이렇게 쉽게 자신을 놓아준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가 언제 그녀의 말을 이렇게 잘 들었는가?장소월은 이를 악물고 속으로 그를 욕했다.‘짐승 같은 놈!’장소월은 땅을 밟자마자 온몸에 힘이 풀리면서 그대로 주저앉았다. 침대에 누워있는 남자는 기분 좋다는 듯 웃었다.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전연우는 가운 하나만 입고 있었는데 헐렁한 옷깃 탓에 단단한 가슴근육이 다 드러났다. 그는 여유롭게 침대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흰 연기를 뿜어내며 느긋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오빠가 도와줄까?”장소월은 그를 무시한 채 고통을 참고 침대를 짚고 땅에서 일어나 옷을 가지고 욕실로 들어갔다.거울에 비친 그녀의 피부는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손에 쥐고 있는 치마는 그 흔적들을 가릴 수가 없었다.그녀는 순간 무력감을 느꼈다. 거울 속의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능욕이라도 당한 것처럼 초췌하고 창백했다.모든 일이 그녀가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시간을 계산해보면 백윤서는 이미 졸업했을 테고 전연우는 오래전에 그녀와 결혼했을 것이다. 그는 여기에 나타나지 말았어야 했다. 제도에서 남천 그룹을 물려받고 그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했다.장소월은 욕실에서 삼십 분 동안 어물어물하다가 옷을 입고 욕실에서 나왔다. 그녀는 책상 위에 있는 가방을 열어 확인했는데 중요한 물건들은 다 그대로 있었다.전연우는 느릿느릿하게 정장을 입고는 고개 숙여 소매에 있는 단추를 잠그고 떠나려는 장소월에게 말했다.“학교에 연락해 물어봤는데 어제 금방 예술 전시회를 열어서 오늘 휴식일이라던데. 학교로 돌아가는 건...”전연우는 옷을 입고 그녀 앞에 다가가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이미 졸업했잖아. 소월아, 떠나고 싶다 거든... 다음엔 더 좋은 이유를 찾도록 해.”장소월은 다른 곳을 바라보며 태연하게 말했다.“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어. 비켜!”
웨이터가 마지막 메뉴를 올렸다.“입맛에 맞아?”전연우는 물 한 모금 마시고는 그녀를 보았다.장소월의 가방이 옆에 있는 의자에 놓여있었는데 그녀는 가방을 들고 바로 떠나고 싶었지만 경호원들이 있는 탓에 달아난다고 해도 어디로 달아나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나 여기 있기 싫어. 나도 할 일이 있어.”“무슨 일? 말해 봐.”장소월은 젓가락을 꽉 쥐고 말했다.“다음 주에 북사구 오색만에 가야 하는데 아직 준비 못 한 일이 많아서 이곳에 날 계속 남겨두면 아무것도 못 하잖아.”전연우는 조용히 그녀의 말을 다 듣고 그녀에게 세 글자만 말했다.“가지 마.”장소월은 그녀가 무언갈 하려고 할 때마다 전연우가 왜 자꾸 참견하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더는 학생이 아닌데 말이다.“이건 내 일이야. 당신이 뭔데 내 결정을 간섭하려고 해? 지금 우리 둘 관계로 말한다고 해도... 당신...”전연우가 그녀의 말을 끊고 손에 있던 젓가락을 놓으며 의자에 기대어 앉아 물었다.“그럼 한번 말해 봐. 우리가 무슨 관계야?”전연우는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치 그녀를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그의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두 사람 사이의 부정당한 관계를 승인하라고 물어보는 건가?그녀는 그가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라고.장소월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치맛자락을 꽉 쥐고 억지로 말했다.“당신은... 영원히 나와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는 오빠야.”전연우는 사악한 웃음을 드러냈다. 그는 티슈로 입을 닦은 후 일어나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장소월은 신경을 곤두세웠다. 전연우가 그녀의 뒤에 서서 손가락을 튕기자 기성은이 검은색 벨벳 액세서리 상자를 가지고 왔다. 열어보니 안에는 정교한 심플한 쇄골 체인이 들어있었다. 장소월은 은색 쪼각달 모양의 펜던트를 보자마자 온몸이 굳었다.전연우는 몸을 약간 숙이고 그녀의 목에 은색 체인을 걸어줬다. 그리고 그녀의 귓가에 대고 매혹
장소월은 프랑스 패션의 도시로 알려진 오스만 상업 도로에 있는 한 쇼핑몰에 갔다. 그녀는 전에 이곳에서 며칠 동안 카운터 판매원으로 일했었다.장소월은 호텔에서 보내준 픽업 차에 앉아 쇼핑몰로 갔다.쇼핑몰에 들어간 후, 장소월은 옷을 고르는 척했다. 그녀는 경호원이 전연우에게 자신의 행방을 보고하는 듯 사진을 찍는 걸 보았다.장소월은 옷을 고른 후 여성 속옷 가게에 가서 많은 물건을 샀다.차에 앉은 남자는 폰의 진동을 느끼고 꺼내 보니 카드 결제 메시지였다. 그는 폰을 끄고 다시 호주머니에 넣었다. 한 번에 일억 정도 쓰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기성은이 보고했다.“저녁 아홉 시 반쯤 송 비서가 공항에 도착한다고 합니다.”전연우는 담담하게 답했다.“응.”“그럼... 모레 연회에도 평소처럼 송 비서를 데리고 가시나요?”전연우는 눈을 감고 잠시 쉬려고 했다.“드레스는 준비됐어?”“사이즈를 정해야 하는데 브랜드 쪽에서 고른 후 호텔로 보내줄 겁니다.”“응.”전연우는 간단히 답하고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전연우가 회의실로 들어갔다. 이 회사는 해외 지사였는데 임원이 위에서 프레젠테이션하고 있었고 회의는 한 시간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회의실 밖에 있는 기성은은 경호원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이미 예상하였지만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그는 테이블 센터에 앉아있는 전연우에게 다가가 낮은 소리로 장소월이 쇼핑몰에서 경호원을 따돌렸다는 소식을 전했다.그녀가 달아나는 게 확실히 놀랄 일은 아니었다.그러나 지금은 그녀가 멋대로 굴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쇼핑몰에서 도망쳐 나온 장소월은 택시에 앉아 돌아가는 길에 전연우가 그녀에게 준 목걸이가 행여나 문제라도 있을까 봐 떼어내려고 했는데 떼어지지 않았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값비싼 목걸이를 끊어버리고 밖으로 던졌다.경호원은 추적한 위치를 따라 쫓아가 봤는데 한 노숙자가 그 목걸이를 가지고 있었다.장소월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리사는 아파트로 돌아온 장소월을 보며
한 무리 경호원들이 갑자기 들이닥쳤다. 리사의 비명소리를 들은 장소월은 급하게 방문을 잠그고는 그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옷장과 책상으로 문을 막았다.그녀는 황급히 전화를 들고 신고하려고 했다.경호원이 밖에서 그녀를 경고했다.“아가씨, 저항하실수록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계속 안 나오시면 문을 부술 수밖에 없습니다.”전연우의 부하들은 무슨 일이든 해내는 사람들이었다. 그녀의 방문은 별로 견고하지 않은 평범한 나무문이었는데 그들이 억지로 들이닥친다고 해도 그녀로서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전연우의 사람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문밖에 있는 경호원들이 문을 부딪치면서 펑펑하는 소리가 났다. 장소월은 등으로 책상을 지탱하고 있었다.이십 분 정도 지났을 때 밖이 조용해졌다.리사가 와서 문을 두드렸다.“소월, 경찰이 왔어. 경찰서에 가서 기록을 작성해야 한대.”장소월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진정되었다.그녀는 문을 막고 있던 물건들을 옮기고 밖으로 나갔다. 경찰 몇 명이 갑자기 들이닥친 경호원들을 검문하고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함께 경찰서에 갔다.장소월은 취조실에 앉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리사만 경호원들의 만행을 비난하며 하소연했다.장소월은 자신이 무서워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돌아가기 싫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그녀가 떠난 지 여러 해가 되는데 전연우는 왜 그녀를 찾으려 하는 거지? 또 그녀의 입에서 무엇을 알려고 하는 거지?경호원이 갑자기 나타났다는 건 전연우가 오래전부터 그녀를 감시하고 있었단 것이다...심문이 끝난 건 한 시간 후였다.아홉 시, 전연우는 금방 회의를 마쳤다.호텔로 돌아가려고 할 때,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기성은은 전연우의 명령대로 방향을 돌려 경찰서로 갔다. 놀라웠지만 별말을 하지 않았다. 오자마자 일을 벌이는 사람은 장소월밖에 없었다. 그녀 외에는 누구도
전연우는 그녀에게 검은색 금박 명함을 건네주었다. 리사는 과장되게 입을 가리고 거듭 ‘고맙습니다!’라고 했다.장소월은 명함 위에 눈에 띄게 ‘성세 그룹’이라고 적혀있는 걸 보았다.그녀는 가슴이 철렁했다...장소월이 고개를 돌리자마자 전연우가 그녀의 이상함을 눈치챘다.‘전연우가 성세 그룹 대표라고? 설마 정말 돌아온 거야?’그녀는 억지로 포가디에 올라탔다. 리사도 데리러 온 가족들과 함께 돌아갔다.차에 앉은 그녀는 이 차가 10억 정도 되는 차라는 걸 발견했다.그녀는 거북이처럼 조용히 목을 움츠리고 앉아있었다.“신고할 줄도 알고, 담이 커졌네. 왜 어디 가든 계속 오빠를 속태우게 만드는 거야? 응?”전연우의 손이 그녀의 몸에 닿기도 전에 그녀는 겁먹은 듯 피하면서 그와 거리를 두었다.“전연우, 당신 혹시 돌아온 거야?”전연우는 긴장해 하는 장소월을 보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의미심장하게 웃어 보였다. 그는 옆에 있는 와인을 열어 한 잔 따르고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그는 와인 한 모금 마시고는 호주머니에서 그녀가 끊어버린 목걸이를 꺼냈는데, 어느새 이미 수리되어 있었다.“이리 와. 내가 끼워줄게.”“필요 없어!”“내가 직접 다가가서 끼워줄까, 아니면 너 스스로 얌전히 말 들을래?”장소월은 혐오하는 눈길로 그를 보며 말했다.“날 강요하지마. 내가 싫다고 했잖아.”“어디로 데려가려는 건데? 나 아파트로 돌아갈 거야.”“30평밖에 안 되는 곳이 뭐가 좋다고 돌아가?”전연우는 그녀를 끌어와 자신의 다리에 앉히고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꽉 잡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뒤로 쓸어넘겼다.“다신 떼어내지 마.”장소월은 발버둥을 쳤다.“지금 걸어줘도 나중에 벗어던질 거야. 전연우... 난 도저히 모르겠어. 날 찾아서 대체 뭐하려는 거야? 날 이용할 만큼 이용했잖아. 난 그저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을 뿐이야. 이곳에서 잘살고 있는데 제발 날 내버려 두면 안돼?”“지금 잘살고 있잖아. 더는 내 인생에 끼어들 필요 없잖아!”전
장소월은 전연우가 자신을 대하던 태도가 언제 이렇게 바뀌었는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그녀가 강영수와 함께 있을 때였던지 혹은 그녀와 강영수가 곧 약혼하려던 때였는지...그는 지금처럼이 아니라 그녀를 증오해야 했다.장소월은 자신이 백윤서를 목숨을 잃게 만들지 않고 백윤서가 살아있어서 전연우의 태도가 바뀐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두 사람이 함께 잤다고 해도 장소월은 이런 관계로 인해 전연우가 그녀에게 감정이 생겼다는 걸 믿지 않았다.사랑?그가 미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그는 누구에게도 그가 우습게 여기는 감정을 베풀지 않는 사람이었다.전연우 같은 사람에게는 진심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그가 이렇게 하는 건 소유욕 때문일 것이다. 그는 그녀가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걸 원치 않았다. 사 년 전 장가네, 그리고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도 그의 계획 중의 일부분이었다.그녀가 돌아가는 순간 사 년 전처럼 그가 만들어놓은 악몽 속에서 지내게 될 것이다.전연우는 그녀를 데리고 호텔로 돌아갔다. 장소월은 뒤에서 그를 따갔다. 뒤에는 여섯 명의 경호원이 따라오고 있었는데 그녀는 달아날 곳이 없었다.화려한 라운지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88층에 있는 로얄 스위트룸으로 올라갔다.어두운 복도에는 구름을 밟는 것처럼 부드러운 카펫이 깔려있었다.전연우가 카드를 꺼내 방문을 열려고 할 때, 피곤한 장소월은 문을 들어서자마자 발정 난 짐승으로 변하는 전연우를 떠올리고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나 당신이랑 같은 방 쓰기 싫어.”전연우가 명령을 내렸다.“기 비서, 가서 방 하나 더 내.”“네, 대표님.”장소월은 시름을 놓은 듯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전연우는 방을 열고 들어가 피곤한 얼굴을 하고 정장을 벗었다. 그가 불을 켜려고 할 때, 어두컴컴한 방에서 갑자기 누군가가 그에게 다가가 두 팔로 그의 목을 둘러안았다.“왜 오늘 데리러 안 왔어요?”‘이 목소리는...’장소월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했다. 그녀는 익숙한 얼굴을 보면서 머리가
그녀는 전연우를 넘어 기세등등하게 장소월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시비 거는 듯 입꼬리를 올리고는 말했다.“오랜만이에요, 장소월 씨.”그녀는 무언갈 암시하듯이 손을 내밀었다.얼굴이 창백해진 장소월은 가슴이 답답해나며 아파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뒤돌아 나갔다.휘청거리는 발걸음으로부터 그녀가 이상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송시아는 담담하게 웃으며 손을 거둬들였다. 그녀는 황급히 도망치는 장소월을 보면서 팔짱을 끼고 턱을 쳐들었다.‘전생에 넌 쓸모없는 쓰레기일 뿐. 전에도 날 이기지 못했는데 이번에도 넌 날 이길 수 없어!’‘전생에 서른한 살도 넘기지 못하고 죽었는데 이번 생에는 몇 살까지 사는지 지켜볼게.’송시아라는 세 글자는 장소월에게 있어 치유될 수 없는 상처와 같았다.전생에...그녀의 아이는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어버렸다. 장소월은 아이를 보지도 못했다.기성은이 그녀에게 가져다준 건 유골함뿐이었다.장소월은 아이를 자신의 엄마와 함께 묻었다.그녀는 그 일로 반년 동안 병으로 누워있었고 여러 번 견디다 못해 죽을 것만 같았었다.병원에서 치료받았지만 낫지 않아 전연우에게 알리지도 않고 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그들의 방에서는 남녀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닫히지 않아 그녀는 모든 걸 목격했다.송시아는 머리를 풀고 남자 위에 올라타 있었다.“장소월이 못 낳아주는 아이를 내가 낳아줄게요...”“연우 씨, 이번에는 곧 우리 아이가 생길 거예요.”장소월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그녀는 머리카락을 꽉 잡고 욕실에 있는 물건을 거울을 향해 힘껏 던졌다. 장소월이 이성을 잃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 그녀가 붕괴의 극점에 이른 상황을 제외하고는.그녀의 방은 전연우의 옆 방이었다.깨진 거울 조각이 땅에 널브러져 있었다. 거울 속에는 온통 고통스러워하는 장소월의 얼굴이었다.갑자기 코에 피가 흘러나왔는데 입안도 피 냄새로 가득했다. 가슴으로부터 메스꺼움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피를 닦고 물을 트는 순간 갑
한참 고민하던 소현아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는 천효연의 납작한 배를 바라보며 말했다. “음, 그럼 아가씨도 강지훈 씨의 아기를 가져요. 그럼 자꾸 나한테 와서 자지 않을 거잖아요!” 천효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그녀는 은빛 치아가 부서질 정도로 이를 꽉 깨물었다. 주변 도우미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바보가 이토록 충격적인 말을 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주인님과 효연 아가씨의 잠자리 빈도를 생각하면, 주인님이 허락만 하셨다면 그들의 아이는 이미 몇 명은 됐을 것이다. 이 바보는 입만 열면 효연 아가씨의 급소를 찌르곤 한다! 규영과 미진도 소현아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천효연의 얼굴이 점점 더 일그러지자 규영이 황급히 나서서 분위기를 무마했다. “효연 아가씨, 저희 현아 아가씨는 어린아이와 같은 분이라 이런 걸 잘 모르십니다. 부디 마음에 두지 마세요.” 소현아는 긴장감에 옷자락을 꽉 말아 쥐며 말했다. “제가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나요?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제가 좀 멍청해서 그래요. 혹시 제 말 때문에 화가 난 거라면 말해주세요. 사과할게요.” 그녀는 자신이 조금 떨어지는 지능 때문에 자주 말실수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예전 이것 때문에 자주 괴롭힘을 당했었다. 한때는 차라리 말을 안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상황을 알아차린 엄마가 말해주셨다. 마음속에 말을 담아두면 병이 생기기 마련이니 그냥 용감하게 말하면 된다고 말이다. 그릇된 말을 했을 땐 제대로 사과해서 용서를 빌면 된다고도 하셨다. “맛있는 거 줄게요. 그러니까 화내지 말아요, 네?” 한참을 기다려도 천효연이 대답하지 않자, 소현아는 탁자 위의 간식을 집어 그녀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자 천효연의 불쾌한 향수 냄새가 또다시 코를 찔렀다.소현아는 즉시 코를 틀어막고 싶었지만, 또다시 천효연을 화나게 할까 봐 최선을 다해 참아냈다. 천효연은 자신 앞에 내밀
잔뜩 일그러지는 소현아의 얼굴을 본 천효연의 눈빛이 차갑게 굳었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이 바보가 먼저 선수를 친다고? 천효연은 더 짙은 미소를 지으며 소현아 옆으로 바짝 붙어 앉았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그녀의 배를 만지려 했다. “현아 씨, 아기 태어나려면 몇 달 남았어요? 나도 아이 정말 좋아해요. 전에 현아 씨가 임신했다는 걸 알았을 때, 강지훈 씨가 그랬어요. 아기가 태어나면 나더러 맡아 키우라고요.” 농담하듯 웃으며 말하고 있었지만, 소현아를 쳐다보는 그 눈동자엔 독사 같은 살기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소현아는 불시에 벌떡 일어섰다. 자신의 말에 자극을 받았다고 생각한 천효연은 득의양양하게 아래턱을 들어 올렸다. 소현아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커다란 눈동자를 사방으로 뒤룩뒤룩 굴리고 있었다. 무척이나 불안하고 다급한 표정이었다. “현아 아가씨!” 규영과 미진이 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애처롭게 서 있는 소현아를 본 그들은 급히 달려왔다. 소현아는 자신의 입을 가리켰다. 규영은 곧바로 그녀의 뜻을 알아차렸다. “화장실로 모셔다드릴게요.” 그녀는 손에 든 것을 내려놓고 소현아를 1층 화장실로 데려갔다. 화장실 안에서 구역질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천효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효연 아가씨, 죄송합니다. 요즘 현아 아가씨의 입덧이 좀 심해요. 임산부라 요즘 많이 예민하십니다. 가까이 가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만약 현아 아가씨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주인님 성격 아시죠?” 미진은 느긋하게 가져온 음식을 펼쳐놓으며 경고를 담아 공손하게 말했다. 천효연은 눈썹을 치켜들었다.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고작 도우미 주제에 감히 내 머리 꼭대기에 앉으려고 해?” 미진은 겁을 먹고 눈을 내리깔았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혹시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까 봐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천효연의 얼굴은 얼음처럼 차가워져 있었다. 잠시 뒤, 화장실에서 구역질 소리가 멈췄다.
배가 고픈 데다 아기들이 발길질까지 하니 더욱 아팠다. “아가들아, 제발 차지 마. 규영 언니랑 미진 언니가 곧 맛있는 거 가져다줄 거야.” 그녀가 배를 쓰다듬으며 아이들을 달랬다. 규영과 미진은 그녀의 애처로운 눈빛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뱃속 두 녀석들이 워낙 시끄럽게 움직이고 있으니 더는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알았어요, 아가씨. 간단히 드실 걸 가져다드릴게요. 여기 앉아서 절대 움직이지 마세요.” 그들은 걱정되는 마음에 거듭 당부했다. 소현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여기 이렇게 많은 언니들이 지켜보고 있잖아요.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절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게요.” 규영과 미진은 사람들에게 다시 신신당부한 뒤에야 먹을 것을 가지러 자리를 떴다. 지난번 일 이후로 다른 사람은 믿을 수 없게 되어 소현아의 음식은 반드시 그들이 직접 준비해야 했다.소현아는 혼자 소파에 앉아서 작게 아기들과 이야기했다. “아가들아, 소월 이모가 전연우 그 나쁜 놈한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내 전화를 왜 안 받은 거지?” “나 소월이가 너무 걱정돼. 근데 너희가 너무 무거워서 몰래 도망갈 수도 없어.” 그녀에게 돌아오는 답은 점점 잦아드는 태동뿐이었다. 소현아는 아기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못마땅한 듯 입을 삐죽거렸다. 누군가 문을 열었는지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었다. 얇은 연노랑 잠옷만 입고 있던 소현아는 추위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곧이어 도우미들의 공손한 인사 소리가 들렸다. “효연 아가씨.” 천효연은 거만한 눈빛으로 그들을 훑어 보고는 곧장 위층으로 향했다. “여기 뒀던 내 꽃병은 어디 갔어?” 계단 모퉁이에 있던 꽃병이 사라진 걸 발견한 천효연이 불쾌한 얼굴로 물었다.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현아 아가씨가 다치실까 봐 잠시 장식품들을 다 치웠습니다.” 소현아? 그 이름을 들은 순간 천효연의 눈동자에 냉기가 스쳤다. “그 바보는 지훈 씨가 방에 가둬놨잖아?” 도우미
엄마와 통화를 마친 뒤, 소현아는 장소월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전연우 그 나쁜 놈이 소월이를 괴롭히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혹시 소월이는 강용 소식을 알지 않을까... 소현아는 강지훈이 강용의 행방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장소월의 당부를 기억하며 감히 묻지 못했다. 통화음이 두 번 울린 뒤 전화가 연결되었다. 상대가 말하기도 전에 소현아는 흥분해서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소월아! 드디어 전화 받았네! 있잖아, 강지훈 그 나쁜 놈이 나 계속 방에 가둬놓고 문밖으로 못 나오게 했어. 나 진짜 답답해 미치겠어!” “널 여기 데려와 같이 놀려고 했는데, 강지훈의 말이 전연우 그 나쁜 놈이 너 안 보낸다고 하더라고. 둘 다 진짜 짜증 나! 내가 간신히 휴대폰 구해서 전화한 거야. 소월아, 그 나쁜 놈한테 말하고 이쪽으로 놀러 와줄 수 있어?” 한참을 떠들었을 때, 저쪽에서 낮고 위험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지훈이 내가 소월이를 나가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고? 언제 나한테 물어봤는데?” 소현아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몇 초 뒤에야 머뭇거리며 다시 말을 꺼냈다. “전... 전연우 씨? 왜 당신이 전화를 받아요?” 전연우가 차갑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쁜 놈이 전화를 받아서 많이 실망했나?” 소현아는 겁을 먹고 눈알만 뒤룩뒤룩 굴렸다. “저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잘못 들었어요! 소월이는요? 이거 소월이 폰이잖아요. 빨리 소월이한테 돌려줘요!” 전연우가 말했다. “소월이는 전화 안 받아. 다시 전화하지 마.” “소월이한테 나라고 말해줘요. 소월이가 제 전화 안 받을 리 없어요.”소현아는 다급함을 감추지 못했다. “앞으로 다시는 소월이 찾지 마. 바빠서 너랑 소꿉놀이할 시간 없으니까.” “그리고 강지훈한테 전해. 내게 터무니없는 누명 씌우지 말라고.” 전연우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소현아가 다시 걸어봤지만, 상대는 받지 않았다. “현아 아가씨, 이제 일어나서 운동할 시간이에요.” 규영과 미
소현아는 얼굴에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이빨 자국을 달고서 원망 어린 눈빛으로 강지훈을 바라보았다. 강지훈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 말을 들은 순간 소현아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내가 소월이한테 전화해도 돼요?” “그쪽에서 받기만 한다면야.” 소현아는 이제 아침에 있었던 불쾌한 일을 까맣게 잊은 듯했다. “저 밖에 나가서 놀고 싶어요!” 강지훈은 단칼에 거절했다. “안 돼.” 신이 나 붕방거리던 소현아는 김빠진 공처럼 순식간에 축 처져버렸다. “하지만 방에만 계속 있는 건 너무 따분하단 말이에요.” “절대 도망 안 갈게요. 여기 아기들도 있잖아요. 그냥 아래층에서 좀 돌아다니게만 해줘요, 네?” 그녀가 지금 머무는 방은 집에 있던 침실을 완벽하게 똑같이 복원한 곳이었다. 소현아는 이곳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최근 며칠 동안 줄곧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그녀는 방안을 끝없이 걷고 또 걸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방은 갑자기 창고로 변해버렸고, 아무리 깨려고 해도 도저히 깨어날 수가 없었다. 강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현아는 못마땅한 얼굴로 밥을 한입 삼키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전연우 그 나쁜 놈도 소월이가 마당에서 그림 그리는 건 허락하던데... 강지훈 씨는 날 침실 밖에도 나가지 못하게 하네. 전연우보다도 더 나빠.” “...” “아래층에서만 놀아. 방을 나서면 규영과 미진이 따라갈 거야.”결국 강지훈이 한발 물러섰다. 소현아의 눈에 다시 별빛이 들어왔다. “음, 당신은 전연우 그 나쁜 놈보다 조금 나아요. 정말 아주 조금.” 아침을 먹고 난 뒤 소현아는 바로 휴대폰을 요구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거의 즉시 연결되었다. “현아니? 지금 어디 있는 거야?” 명세진의 목소리는 흥분을 애써 억누르고 있는 듯 조심스러웠다.오랜만에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소현아는 코끝이 시큰해졌다. “엄마,
강지훈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짙은 피비린내를 풍기며 돌아왔다.옆방에서 샤워를 마친 강지훈은 잠옷을 입고 소현아의 방으로 들어갔다.소현아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2.2미터나 되는 퀸사이즈 침대에서 편안하게 팔다리를 쭉 뻗은 채 말이다. 무슨 꿈을 꾸는지 웅얼거리며 입가에 흘린 침을 닦고 있었다.곤히 잠든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강지훈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침대 곁으로 다가간 그는 이불을 끌어다 그녀의 배를 덮어주고는 코를 꼬집었다.“윽...”잠시 후 소현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편한 듯 눈을 떴다.“강지훈 씨 너무 싫어요. 숨을 쉴 수가 없잖아요. 빨리 놔줘요.”침대 곁에 있는 사람을 본 소현아는 두 손으로 그의 손목을 잡고 떼어내려 했다.강지훈이 말했다. “말해 봐.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제대로 말하면 놔줄게.”소현아는 씩씩거리며 눈을 감고 어쩔 수 없이 입으로 숨을 쉬었다. 가슴이 뻐끔뻐끔 부풀어 오르는 모습이 마치 복어 같았다.강지훈은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입까지 막아버렸다.몇 초 지나지 않아 소현아는 다시 웅얼거리며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강지훈은 그저 잠시 그녀에게 장난을 치고 싶었을 뿐이지만, 한번 맛을 보니 멈출 수가 없었다.그는 손을 떼어 그녀의 허리에 얹고 반바지를 벗기려 했다.소현아는 필사적으로 바지를 붙잡고 엉덩이를 비틀며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다.강지훈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손 놔. 살살할게.”“저 졸려요. 자고 싶으니까 강지훈 씨도 빨리 자요.”그녀는 강지훈이 또 키스하려 할까 봐 입술을 굳게 다물고 낑낑거리며 그를 밀치고는 죽은 척 눈을 감았다.강지훈이 어떻게 하든 소현아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정말로 다시 잠이 들어버렸다.곤히 잠든 그녀를 바라보는 강지훈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다음 날 아침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강지훈의 몸에 꼭 안겨있었다. 그녀의 코끝에 그의 단단한 가슴이 닿아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어젯밤 일이 떠오른 소현아는 그의 가슴을 힘껏 깨물었다.곧이어
분개하고 있던 천효연의 시야에 문득 옆 방문 앞에 놓인 목욕 가운이 들어왔다.목욕 가운 허리띠에는 검은색 은은한 무늬가 수 놓여 있었는데 누가 봐도 강지훈의 것이었다!강지훈이 그녀를 침대에 버려두고 저 바보 같은 여자를 찾아온 것이다!그 사실을 깨달은 천효연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강지훈은 바람기가 있긴 했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천효연은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하여 그녀는 강지훈이 바깥에서 몇 명의 여자를 만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저 바보 같은 여자가 나타난 이후로, 강지훈은 그녀를 안고 있으면서도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그 바보를 위해 그녀에게 손찌검까지 했다!설상가상으로 그 바보는 강지훈의 아이까지 가졌다...천효연은 간신히 벽에 몸을 기댄 채 바닥에 놓인 목욕 가운을 쏘아보았다. 동시에 숨을 죽이고 방 안에서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하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도우미가 다가오자 천효연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어서 요염한 자태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아.”소현아는 입을 크게 벌리고 미진이 밥을 먹여주기를 기다렸다.그녀도 남의 손을 빌려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부터 손목이 끊어질 듯이 아파 어쩔 수가 없었다.아침밥은 강지훈이 직접 먹여주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규영과 미진에게 밥을 먹여주라고 지시하고 서둘러 떠났다.“아가씨, 오늘은 어디 불편한 곳 없으신가요?”어제 주인님의 모습은 너무나 무서웠다. 그가 아이를 해치지는 않았을까, 규영과 미진은 걱정이 태산이었다.그들의 마음을 알 리 만무한 소현아는 고개를 흔들었다가 다시 끄덕였다.“손목이 너무 아파요. 어떡하죠?”두 사람은 안도하며 미소를 띤 채 그녀를 달랬다. “이따가 저희가 마사지해 드리면 괜찮아지실 거예요.”소현아는 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점심 식사를 마친 후, 규영과 미진은 의사의 말에 따라 소현아를 데리고 방안을 걸어 다녔다.
강지훈의 움직임은 이전 그 어느 때보다 격렬했다.소현아는 배가 짓눌리는 느낌에 불안해졌다. 또한 콧속으로 불쾌한 향수 냄새가 흘러들어왔다.“윽...”너무나 불편하니 그만해달라고 강지훈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가 입을 틀어막고 있어 다급해진 소현아는 그의 입술을 꽉 깨물어 버렸다.순간 입안에 비릿한 피 냄새가 퍼져나갔다.강지훈이 통증에 약간 뒤로 물러섰다.“강지훈 씨 때문에 아기가 눌렸어요. 그리고 당신한테서 이상한 냄새 나요. 토할 것 같아요.”소현아는 찡그린 얼굴로 몸을 일으켜 앉아 퉤퉤 침을 뱉었다.강지훈의 서늘한 표정을 본 소현아는 토끼처럼 재빨리 배를 감싸 안고 구석으로 도망쳤다.험악한 인상에 입가에 피까지 묻히고 음침한 눈빛을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사납기 그지없었다.소현아는 겁을 먹고 몸을 웅크렸다.“의사 선생님이 아기 다칠 수도 있다고 이러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다른 사람 찾아가서 같이 자요. 하지만 자고 나서는 깨끗하게 씻고 저 찾아와야 해요. 낯선 냄새가 나면 토할 것 같단 말이에요.”그녀가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지금 당신 옷에서 이상한 냄새 나요. 도우미 언니들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 같아요. 저도 싫고 아기들도 싫어할 거예요.”강지훈은 그녀의 천진난만한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의 욕망은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격렬하게 끓어올랐다.눈앞의 이 토끼 같은 여자를 당장이라도 삼켜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는 몸에 걸치고 있던 목욕 가운을 벗어 던지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옷 벗으니까 냄새 안 나지? 이리 와.”소현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갈래요. 당신 때문에 아기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다른 사람 찾아가세요.”강지훈의 눈빛이 험악하게 변했다. “네가 올래, 아니면 내가 갈까?”소현아는 밖으로 도망쳐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지만 문까지 도착하기도 전에 강지훈에게 붙잡혀 다시 끌려가고 말았다.그의 무릎에 앉혀진 소현아가 또 울먹거리기 시작하자 강지훈이 소리쳤다.“울지 마!”강지훈도 어
“지훈 씨, 아랫부분으로 도와줄게요...”그녀의 말은 파편처럼 흩어져버렸다. 강지훈은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천효연은 더 이상 요염한 표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손가락으로 강지훈의 다리를 꽉 움켜쥐어 길게 할퀸 자국까지 남겼다.죽을 것 같이 괴로워하는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도 강지훈의 마음속엔 조금의 파동도 일지 않았다.여전히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그는 짜증 섞인 얼굴로 천효연의 입에서 물건을 빼내고 그녀를 잡아 벽에 밀어붙인 다음 다시 아래로 밀어 넣었다.질식하기 직전, 천효연은 삽입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허리를 비틀며 그에게 맞춰 움직였다.“지훈 씨, 정말 대단하네요...”강지훈의 붉게 충혈된 두 눈엔 살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천 조각을 그녀의 입에 쑤셔 넣었다.천효연의 목소리는 입안에 갇혀버렸다. 쾌감에 찡그려졌던 미간이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왜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걸까? 예전에는 분명 신음소리를 내는 걸 좋아했었는데...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천효연은 기진맥진하여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제서야 강지훈은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흥분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다.그는 침대에 널브러진 여자를 힐끗 보고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일어나 욕실에서 간단히 씻은 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새 잠옷을 아무렇게나 집어 들고 소현아의 방으로 향했다.소현아는 간신히 울음을 그치고 규영과 미진의 보살핌을 받으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강지훈이 옆에서 방해하지 않으니 밥상에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와구와구 먹고 있었다.규영과 미진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아가씨, 오늘 너무 많이 드셨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조금만 드시라고 하셨잖아요...”소현아는 퉁퉁 부은 눈으로 그들을 가련하게 바라봤다.“이번 한 번만 먹을게요. 강지훈 씨가 먹으라고 했어요. 못 믿겠으면 직접 물어보세요.”확실히 강지훈이 시킨 것이다. 하여 더 이상 말을 하진 않았지만, 걱정스러움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그때 강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