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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앉아 기다려 옳지

Penulis: 정로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9-08 01:47:06

- 저벅저벅

시간의 흐름은 루시안에게 무의미했다.

햇빛도 달빛도 들지 않고 보초조차 없는 지하감옥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건 식사가 들어올 때나

아델의 갑작스러운 방문이 있을 때뿐이다.

복도 멀리에서 익숙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가물가물한 의식이 또렷해지는 걸 느꼈다.

그는 몸을 일으켜 입술을 혀로 핥았다.

맞아서 터진 입술에서 피 맛이 났고

발에 챈 몸 이곳저곳은 쑤시고 아팠다.

그러나 그런 건 더 이상 그에게 큰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 철컹철컹

분명 마른 빵으로 식사했음에도 허기가 졌고

잠시나마 느꼈던 아델의 온기는 쭉 혼자였던 시간보다

자신의 인내심을 바닥나게 하기 충분했던 감촉이었다.

그는 고작 발소리와 철문을 여는 소리에

누군가를 기다리는 개처럼 반응하고 있었다.

그걸 알아채자,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미쳤군."

낮게 읊조리는 사이 지하감옥에 다시 불이 밝혀지고

철문을 여는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자기도 모르게 시선이 문을 향했다.

대체 내가 뭘 기대한 거지. 

아델라이데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 사람의 얼굴을 뜯어보기 바빴다.

아델이 아니라는 걸 알아채자 어쩐지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부부로 지내던 동안에도 경멸하는 시선만 보냈던 자신이

이젠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니, 거기다 그녀가 아니라는 사실에

실망하는 자기 모습에 헛웃음까지 나왔다.

"하. 내가 진짜 미쳤나 보군."

철문을 연 남자는 한 명이 아니었다. 무장을 한 건장한 남성 두 명이었는데

그들은 루시안의 목에 감긴 사슬을 풀고 일으켜 감옥 밖으로 끌고 나왔다.

"이봐.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설마 자신을 사형시키려는 건가.

공포감에 사색이 되어 외쳤지만, 그들은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지하감옥의 문이 열리고 빛이 눈앞을 덮치자, 루시안은 눈을 뜰 수 없었다.

며칠 만에 보는 태양 빛은 그의 시야를 가리기 충분했고, 자신의 끌고 가는

남자들의 힘에 의지해 억지로 발을 움직여야 했다.

그가 도착한 곳은 하인들이 쓰는 목욕탕이었다.

- 풍덩, 철퍼덕

남자들은 그를 집어 던지다시피 담갔다. 봄이긴 해도 아직 쌀쌀해서

찬물에 목욕하기는 추운 날씨인데 폐위된 황제에게 그런 건 사치였다.

"이게 지금 무슨 짓이야?!"

손이 묶인 채 물통에 담가진 그는 신종 고문인가 하고 긴장했지만 

더 이상 강압적인 행위는 없었다. 대신 남자들의 거칠고 큰 손이

그의 몸 이곳저곳을 문지르며 껍데기라도 벗기려는 듯 살갗을 문질러

닦아낼 뿐이었다. 황제였던 시절 향유가 풀어진 따뜻한 욕조에서 시녀 혹은

정부의 목욕시중을 받던 과거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코와 귀에 비누 거품이 들어가고 찬물이 눈에 들어가는 등 고문 아닌

고문을 당한 것도 잠시 물에서 끄집어 올려져 다시 어딘가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이봐, 물은 좀 닦게 해줘!"

팔자 좋은 요청에도 그들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한참 묶인 채 생활한 탓에 다리가 잘 움직이지 않았지만 

몇 걸음 걸었다고 조금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찬물이긴 해도 씻으니 개운하고 좋다고 느낀 것도 잠시

그는 다시 지하감옥에 갇혔다. 목에는 사슬이 다시 채워졌고

철문은 영원히 열리지 않을 것처럼 다시 닫혔다.

갑자기 목욕을 시켜서 내심 기대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아델을 만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는데 지금 그의 처지에서는 사치였다.

그는 바닥에 옆으로 누워 그대로 눈을 감았다. 

-또각또각

그때 다시 발소리가 들렸다. 아까의 발소리와는 달랐다.

그는 다시 일어나 앉아 문 쪽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이번엔 아델라이데였다. 그녀의 걸음에 맞춰 검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이 휘날릴 때마다 파우더리한 장미향이 가까워졌다.

루시안은 자신이 그녀를 반가워하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델은 철창을 열고 한 발짝 들어섰다.

"그래. 씻으니 좀 봐줄 만하네."

그는 자신의 감정을 들키기라도 할까 봐 애써 눈에 힘을 주고 그녀를 노려보았다.

"왜 그렇게 봐?"

"왜 이제 오는 건데?"

애쓴 보람도 없이 마음과 다른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는 입술을 앙다물고 아델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아직도 네가 황제 같아?"

아델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지더니 루시안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숨소리마저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에 루시안은 시선을 피했다.

아델은 그런 그의 턱을 잡아 돌려 자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게 했다.

그 손길에 몸이 순간 굳어진 루시안은 볼이 상기된 채 숨을 헐떡였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아델의 체취가 코를 가득 채웠다.

"..."

그녀의 시선이 그의 몸을 느릿하게 훑고 내려가 지난번 발로 뭉갰던 곳에 멈췄다.

"역시 애완견은 중성화하는 게 맞는 것 같아. 그렇지?"

그 말에 루시안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무...무슨 소리야!"

턱을 잡고 있던 손가락이 찢어진 옷자락 사이로 드러난

맨 가슴팍을 쓸고 내려가 아랫배에 다다랐다.

"지도 남자라고 존재감을 매번 뽐내거든.

지하감옥에 있으면서도 섹스는 하고 싶나 봐?"

아델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아랫배에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리자, 루시안의 허리가 튕겨 올랐다.

"헉!! 닥쳐!!!"

"내가 편하게 해줄까?"

"편하게라니...무슨!"

"아직 자존심은 남아있나보네."

입술을 핥으며 손가락이 좀 더 아래로 향했다. 한 겹에 가까운 옷 위로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자, 그의 것이 좀 더 윤곽을 드러냈다. 루시안은

애써 다른 생각을 하며 가라앉히려 애썼지만, 그녀의 손가락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옷 위로 드러난 귀두부터 기둥을 쓸어내리더니 좀 더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뭐 하는 거야!"

"기다려! 누가 움직여도 된다고 했지? 개새끼가 말 안 들으면 돼?"

아델이 짐짓 엄격한 표정을 지으며 일갈하자 루시안은 움찔하고는

다시 얌전히 그녀의 손가락만 바라보았다. 

한 침실을 쓰던 시절에 맘대로 그녀의 몸을 취하고 함부로 굴던건 언제나 그였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역전됐는데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그게 더 자존심 상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손가락이 닿으면 안 되는 곳까지

내려가도 그는 하지 말라 소리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뭐...뭐 하려고?"

"아. 넌 날 안 좋아하면서도 구멍에 넣는 건 참 좋아했잖아?

그게 그렇게 좋은지 나도 한 번 해보게."

"무슨 소리야? 안돼!"

루시안의 얼굴이 사색이 됨과 동시에 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러나 아델은 어디서 힘이 났는지 그의 허벅지를 무릎으로

누른 채 손을 거칠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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