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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너의 시간부터 가져갈게

Author: 정로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8 00:03:47

"칵 퉷!!!"

루시안이 침을 뱉었다. 갇히는 과정에서 폭력이 있었는지

침에는 핏물이 섞여있었고 힘없이 창살 앞에 떨어져 아델에게 닿지 못했다. 

"아직 독기가 덜 빠졌네."

철컹철컹

철창의 문을 열고 한발짝 들어서자 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든 달려들려고 버둥거리고 있었으나

사슬은 정확하게 철창의 30cm 앞까지만 당겨졌다.

아델은 재밌다는 듯이 키득 거리며 버둥거리는 그를 내려다 봤다.

"이야. 길이가 정말 정확하다 그치?"

쪼그리고 앉아 눈높이를 맞추며 조롱하는 그 얼굴은

얼핏 보면 순수하기까지 했다.

황후시절에는 언제나 단정한 드레스와 복장,

그리고 순종적인 눈빛으로 루시안을 바라보던 그녀였는데

이제는 황제의 복장으로 바지와 망토를 걸친 채 위엄까지 풍기고 있었다.

복장이 바뀌었음에도 향수취향은 그대로인 건지

파우더리한 장미향이 그의 코에 스며들었다.

"이 개같은 년. 찢어죽일 년. 내가 널 그냥 둘 것 같아?!

갈갈이 찢어서 성벽에 걸어둘거야. 두고봐.

나랑 눈도 제대로 마주치던 애도 못낳는 년이!!"

황태자 시절부터 큰 키와 대문짝만한 체격,

그리고 아름다운 외모로 제국의 영애들 심장에 불을 지르던

그 답게 3일을 내리 굶겼는데도 힘이 넘쳤다.

묶인 손목에 피가 배어나오고 사슬이 감긴 목도 여기져기 까져 있었으나

분노에 찬 움직임은 멈출 줄 몰랐다.

그런 그의 모습이 재밌다는 듯 턱까지 괴고 바라보던

아델은 그가 지치지만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버둥대던 움직임이 멈추고 숨을 헐떡이는 소리가 

좁은 철창안을 채웠다. 그제야 무릎을 툭툭 털고 일어선 그녀는

손목의 시계를 보여주며 말했다.

"지금 몇 시지?"

루시안은 헐떡이며 입술을 짓씹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 개같은 소리인가.

"멍청한 년, 이젠 시계도 못 읽나보지? 두시잖아!"

- 철썩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귀를 맞은 건지 귀에서 윙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돌아왔다.

"아니지...너무 오래 갇혀있어서 진짜 개새끼가 된거야?"

아델이 고운 미간을 한껏 구기고 고개를 숙였다.

오른손을 탁탁 터는 걸 보니 저 손으로 뺨을 때린 것 같았다.

감히 자신의 얼굴을 때리다니. 아델라이데 주제에.

아픔보다도 충격에 멍해진 루시안은 멍하니 올려다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답해. 시계도 못읽냐고. 이 개새끼야."

아무런 대답이 없자 한글자 한글자 짓씹듯이 뱉어내는 소리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그가 입을 열었다.

"두 시 맞잖아!?"

- 철썩, 철썩, 퍽!

이번에는 뺨을 두 대 내려치고는 명치를 발에 채였다. 

발길질에 몸이 뒤로 밀리고 한참을 기침을 쏟아냈다.

분명 두 시가 맞다. 그런데 왜 계속 이렇게 맞아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린 루시안은 조금 독기가 빠진 표정으로 아델을 올려다 보았다.

그 표정변화를 느낀 그녀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가는 것 처럼 보였다.

"옳지. 우리 개새끼. 이제 좀 감이 와?"

보기보다 매서운 손길에 입술이 터진 채 그는 고개를 돌려 침을 뱉었다.

창살 너머의 아델을 향해 침을 뱉던 깡다구는 어디갔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조용히 앉아있었다.

아델은 손목시계를 그의 눈 앞에 바짝 대고 말했다.

"밤 12시야."

그 말에 눈을 꿈벅이며 시계를 다시 보았다. 

내가 어두운 곳에 너무 오래 있어서 제대로 안보이는 건가?

아니다. 다시 봐도 두 시 였다. 

"두 시잖아!"

- 퍽퍽퍽퍽

이번에는 뺨이 아니었다. 명치를 걷어 차 넘어지게 하고

복부를 미친듯이 밟아대기 시작했다.

자신보다 한참 작은 체구에 이런 힘이 어디 숨어있었던 건지

생각하다 밀려오는 통증에 정신이 아득해질 쯤 발길질이 멈췄다.

그제야 깨달았다.

시계에 보이는 시간이 몇 시이건 상관 없다.

그는 그녀의 말은 무조건 맞다고 해야 하는 거였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말이다.

바닥에 늘어진 채 한참을 헐떡이던 루시안이 숨을 고르자

아델이 다시 다가와서 시계를 얼굴 앞에 바짝 들이 밀었다.

"이제 몇신지 좀 제대로 보여?

눈동자를 굴려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계는 2시 5분을 가리키고 있었으나 이번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순간 그녀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눈이 잘 안 보이나? 쓸모없게?"

순간 그녀의 손가락이 눈을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아...아악!!!!"

루시안은 눈을 질끈 감고 몸을 뒤로 굴렸다.

손가락은 그의 눈 앞에 멈췄고 이어 키득거리는 아델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실눈을 뜨니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너무나 즐거워 보이는, 

이 감옥 안에서 두 번째 보는 어린아이 같은 표정의 아델이 배를 잡고 웃고 있었다.

"킥킥킥...푸흡!! 하하하하하!!!"

어느새 배를 안고 웃고 있었다. 항상 현명하고 우아한 모습만 보다가

새로운 모습을 감옥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루시안은 멍하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한참 뒤 웃음소리가 잦아들고 헛기침을 한 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너는 내 개새끼야. 공식적으로 내 애완견. 내가 까라면 까는거라고."

이번에도 대답이 없자 턱을 잡아 올려 얼굴을 바짝 대고 말했다.

엄지가 터진 입술을 거칠게 문질렀다.

"니가 말 안하고 버틴다고 안바뀌어. 빨리 바뀐 상황에 수긍하거나

이 치욕이 싫으면 혀라도 깨물어."

손가락 두 개가 입술 안쪽을 파고 들었다. 

"읍...으읍!!"

턱이 붙들린 채 검지와 중지가 그의 점막을 헤집었다.

손가락은 물조차 제대로 마시지 못해 바짝 말라 붙은

혀 뿌리부터 아래쪽을 지나 어금니를 샅샅이 훑었다.

한참을 휘저은 손가락은 타액이 젖은 채 빠져나왔고

그녀는 더러운 게 묻었다는 듯 옷자락에 문질러 닦았다.

"근데 그럴 생각은 없나봐? 내 손가락 조차 물지 못하니 말이야. 타고난 개새끼라 그런가?"

손가락이 목젖을 찌른 탓에 눈물이 찔끔난 루시안은 이를 갈며 외쳤다.

"그냥 죽이던가! 대체 나한테 왜이러는 건데?"

"하아. 루시안. 분명 영특하고 아름다운 제국의 황태자라 그래서

결혼했는데 실제로는 머리에 들은 것도 없고 방탕하기 짝이없는 루시안!!!

아직도 모르겠니?"

아델이 이마를 짚으며 한심하게 내려다 봤다.

"넌 이제 내 허락 없이 보이는 것 조차 사실대로 말 할 수 없는 처지야.

내 개새끼니까 내 맘대로라고. 마지막으로 묻는다.

제대로 대답하면 오늘 저녁에 밥 줄게."

그녀는 손목을 들어 시계를 그의 얼굴에 바싹 들이댔다.

2시 30분 이었다.

"몇시야?"

답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대답하면 그 이후는...

꼬르륵

며칠을 아무것도 먹지 못한 뱃속은 신호를 보내자

루시안의 얼굴이 부들부들 떨렸고 결국 입술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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