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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밤, 가슴속 결의

Autor: 쓔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09-27 00:15:35

문이 천천히 닫히고,

그 조용한 ‘찰칵’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을 때

리아는 잠시 눈을 감았다.

숨을 내쉬었다.

천천히, 그리고 아주 조용히.

하지만 그 숨은 목 끝에서 막힌 것처럼,

쉽게 빠져나오지 않았다.

세르반.

그는 돌아가지 않았다.

문 너머 어딘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그의 존재는 마치 밤공기처럼 느껴졌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온몸으로 체감되는.

리아는 등 뒤 벽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단검을 쥔 손이 떨렸다.

쥐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하얀 손등엔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고,

그 안에서 심장이 미세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엘.”

리아는 고개를 돌려 침상 쪽을 바라보았다.

작은 이불 속에 잠든 아이.

깊은 숨결.

세상 물정 모른 채 평온히 잠든 얼굴.

그 얼굴을 보는 순간,

그녀의 눈동자에 다시금 파문이 일었다.

그동안 숨어 살며 수없이 준비했던 도망 계획들.

만약 들키게 된다면 어떻게 할지,

만약 쫓기게 된다면 어디로 갈지.

하지만… 이상했다.

막상 그 상황이 눈앞에 닥치고 나니,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도망치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문을 닫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 이유가 뭘까.

리아는 천천히,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나는 아직 이 안에 있는 거지?’

답은 간단했다.

단순히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도망치는 건

그녀에겐 또 다른 버림이었다.

한 번은 자신이 버림받았다.

황제로부터, 황궁으로부터, 황제의 아이를 품은 여인으로서.

그리고 이번엔,

자신이 아이를 다시 ‘도망’이라는 이름으로 외롭게 만든다면,

그건 리아 스스로 또 한 번 ‘이 아이를 버리는 것’이었다.

그 생각이 목을 죄었다.

단검보다 더 날카롭게.

리아는 천천히 일어섰다.

어깨 위에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조용히 책상 앞에 앉았다.

책상 위엔 오래된 장부 하나와

지도, 봉투, 그리고 글이 적힌 작은 메모들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그 중에서 가장 오래된 봉투를 꺼냈다.

손끝에 힘을 주어 봉투를 열었다.

그 안엔 노란색으로 바랜, 한 장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만약 모든 게 끝나고, 정말 아무도 남지 않았을 때

엘을 데리고 이 곳으로 오거라.』

편지는 오래된 지인의 글이었다.

황궁 내 정보국의 말단 관리였던 그,

유일하게 리아가 떠나기 전 단 한 사람에게 남긴 부탁이었다.

리아는 그 주소를 천천히 눈으로 따라 읽었다.

서부 외곽, 폐허가 된 성 하나.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곳.

오직 도피자들만이 안다는 숲속 외딴 건물.

“…이제, 그곳으로 가야 해.”

조용히, 그리고 단호하게 중얼였다.

이번 도망은 도피가 아니다.

싸움의 준비다.

방 안으로 돌아와 아이를 바라봤다.

작은 가슴이 오르내리는 것을 바라보며,

리아는 손끝으로 아이의 볼을 살짝 스쳤다.

“미안해, 엘.”

그 미안함은 수백 번 삼켜온 죄책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눈빛에 담긴 감정은 죄책이 아닌 각오였다.

“이번엔… 끝까지 함께 갈게.”

에레본은 홀로 서 있었다.

황궁 서고, 가장 깊숙한 공간.

책장의 그림자 사이로 빛이 스며들지 않는 이곳은,

그에게 있어 언제나 침묵과 사유의 공간이었다.

그는 한 권의 오래된 고문서를 꺼내 들었다.

이 문서엔, 황궁 내 하급 궁녀들의 인사기록이 적혀 있었다.

페이지를 넘기다가 손끝이 멈췄다.

그의 시선이 고정된 이름,

단 한 줄, 마치 잊혀진 잉크처럼 흐릿해진 그 기록.

『리아 에르네스트. 황궁 서각 하급 궁녀.

임무 성실. 무사고. 발탁 제안 이력 있음.』

이름을 눈으로 따라 읽는 순간,

기억이 뚝—하고 깨져 흐르기 시작했다.

그녀를 처음 본 건, 봄의 끝자락이었다.

처마 밑에 꽃잎이 질 때,

황궁엔 늘 있는 듯 없는 듯 머무는 자들이 있었다.

궁녀, 시종, 말 없는 사람들.

그런 이들은 왕의 시야에서 쉽게 잊히는 법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그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독서의 밤을 맞아 서고에 들렀을 때.

그녀는 책장을 정리하다 책을 떨어뜨렸고,

허리를 숙이며 숨죽여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 목소리.

그 단정한 손.

그리고 고개를 들지 않던 태도.

그는, 그것이 ‘조심스러움’인지 ‘겁’인지 몰랐지만,

그 순간 이유 없는 시선이 그녀에게서 멈춘 것을 기억했다.

그 후, 그는 의도적으로 그녀를 다시 불렀다.

단지 ‘술을 따르게 하라’는 명목으로.

그날 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잔을 들었고,

그는 그 손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말했다.

“오늘은 혼자이고 싶지 않다.”

그 한마디로 그녀의 운명을 바꿔놓은 것.

그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도 그녀를 지켜주지 않았다.

궁 안의 권력은 언제나 비열했다.

그녀가 그의 침실에서 나간 뒤,

이유 모를 반역 혐의가 조용히 그녀를 덮었고,

그는 침묵했다.

그를 둘러싼 귀족들, 후궁들, 정치의 수면 아래 움직이던 수많은 이들.

그 모든 시선과 이권이 그녀를 ‘소모품’으로 만들었고,

그는 그 모든 것에서 한 발 뒤에 서 있었다.

왜였을까.

그때 그는

‘그녀는 그냥 한 번의 밤이었다’

라고 스스로에게 속였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를 잊은 척… 했다.

“폐하.”

그의 생각을 깨운 건, 카시안의 목소리였다.

황제의 침묵 속에 보고서를 내민 수석 정보관.

에레본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가 펼친 종이 한 장.

은발에 붉은 눈동자.

세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의 스케치.

에레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나 입술은 여전히 단단히 닫혀 있었다.

“확인하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담담하게, 무표정하게.

하지만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가 아이를 품고 도망쳤다는 사실.

그 사실을 마주한 지금,

그는 차마 스스로에게 묻지 못하고 있었다.

왜, 3년 동안 그녀를 한 번도 찾지 않았냐고.

그리고… 왜 지금 이 그림 하나에, 가슴이 이토록 무너지는지를...

그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창밖엔 어스름이 내리고 있었다.

서쪽 하늘이 붉게 타올랐고,

그 붉은 노을 아래에서, 에레본의 눈은 마치 오래된 상처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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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제의 아이를 안고 도망쳤다.   그날 밤, 황제의 눈동자

    달빛이 유난히 밝던 밤이었다.리아는 손에 든 쟁반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그녀는 황궁 내 작은 도서각에서 일하는 궁녀였고,그날 밤은 그저 평범한 심부름 중 하나였다.“폐하께 술을 올리라 하셨습니다.”그녀는 머리를 숙인 채 입을 열었다.방 안에선 말없이 불이 타오르고 있었고,가장 깊숙한 의자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에레본. 제국의 황제.그리고, 냉혈한이라 불리던 존재.그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말했다.“…목소리가 마음에 드는군. 이름이 뭐지?”리아는 당황한 듯 고개를 들었다.황제는 천천히, 심지어 다정하게 웃고 있었다.“그렇게 긴장하지 마라. 오늘은… 혼자이고 싶지 않을 뿐이다.”그 말은, 리아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그저… 술을 따르러 갔을 뿐이었어요.”리아는 조용히 중얼이며, 어깨 위에서 자고 있는 엘을 내려다봤다.아이의 숨결은 고르고 평온했다.하지만 리아의 눈동자는 고요한 밤과는 달리, 흔들리고 있었다.그날 밤 이후, 그녀는 황제의 침실로 불려갔다.그리고 단 한 번, 단 하나의 밤.그날이 지나자, 그녀는 황제의 여인이자, 반역자의 죄인이 되었다.“소문은 다 들었어. 리아는 황제를 홀렸다고.”“아니, 리아가 폐하께 반역을 꾀했다던데?”궁녀들의 속삭임은 그녀를 점점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다.황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를 지키지 않았고, 변호하지도 않았다.그리고 그녀가 아이를 가졌다는 걸 알았을 때그는 조용히, 아무 감정도 없이 명령을 내렸다.『그 여자를… 궁에서 내보내라.』“그날 이후, 폐하는 날 단 한 번도 찾지 않았어요.내가 아이를 품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요.”리아는 침묵 속에서 눈을 감았다.돌이켜보면, 사랑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그저 이용당했을 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그러나 단 하나, 확실한 건 있었다.그날 밤 이후로 리아는 혼자가 아니었다.그녀는 아이를 품었고, 그 아이는 살아 있었다.그녀가 도망쳐야만 했던 이유이자,지금까지 살아야 했던 이유.리아는 다시 몸을 일으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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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 조용히. 오늘은 목소리를 낮춰야 해.”리아는 다시 한 번 아이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하지만 붉은 눈동자의 아이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그치만, 아까 봤어요! 숲속에서 누가… 우릴 보고 있었어요!”심장이 순간 철렁 내려앉았다.리아는 곧장 아이를 품에 안고 주변을 살폈다.숲은 고요했고, 새소리조차 잦아들어 있었다.‘설마… 벌써?’그녀는 얼어붙은 채 한참을 서 있었다.작은 오두막, 숲 너머에 자리한 그들의 은신처는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공간이었다.정체불명의 시선은 결코 우연일 리 없었다.리아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재빨리 집 안으로 들어갔다.벽장 안에서 낡은 검은 가방을 꺼냈다.그 안엔 가짜 신분증, 돈, 도피용 경로 지도가 들어 있었다.“엘, 이제 우리가 이 집을 떠나야 할 수도 있어.”“또요…?”작은 아이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리아는 잠시 말없이 그를 안고, 부드럽게 등을 두드렸다.“무서운 사람들한테 들키면… 엄마랑 엘, 같이 있을 수 없게 되니까.”“그럼, 도망가요. 엄마랑 같이 있을래요.”작고 여린 목소리.리아는 아이의 머리칼에 입을 맞췄다.그 순간, 눈동자 한쪽 구석에 고인 눈물을 그가 모르게 훔쳤다.반면, 황궁.에레본은 깊은 침묵 속에 보고서를 다시 펼쳐 들었다.그림 한 장.불길하게 붉은 눈동자를 가진 어린아이.그 그림 속 존재는 그의 피를 지닌 자였다.“그 아이를… 찾을 수 있는가?”황궁 정보국의 수장 ‘카시안’이 무릎을 꿇었다.“조사 중입니다. 유력한 정보가 곧 도착할 것입니다.”“정보가 아니라 아이를 데려와라.”황제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그 아이가 살아 있다면—그 여자가 살아 있다는 뜻이니까.”그날 밤.리아는 엘을 재운 후, 홀로 바깥 계단에 앉아 달을 올려다봤다.붉은 달이, 피처럼 둥글게 떠 있었다.그녀는 조용히, 혼잣말처럼 중얼였다.“에레본… 넌 날 잊었겠지.하지만, 난… 널 매일 잊고 싶었어.”눈을 감은 순간, 기억이 스며들었다.그날 밤.황제의 침실에서 그녀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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