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이것이 대체 무슨 기행이시란 말인가.”
대군저의 담장 너머로 고개를 빼꼼히 내민 영의정이 경악을 금치 못하며 중얼거렸다.
조선을 호령하는 섭정, 진안대군 이헌.
그는 며칠 전부터 궐에서의 정무를 극단적으로 줄이고 호조와 병조의 서류만을 대군저로 가져오게 했다.그것만으로도 조정이 술렁일 판인데, 더 끔찍한 것은 그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장소였다.칼바람이 몰아치는 안채의 툇마루 앞.
이헌은 굳게 닫힌 서연의 처소 문지방에서 정확히 세 걸음 떨어진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었다.비가 오면 비를 맞았고, 눈이 내리면 눈을 고스란히 뒤집어썼다.조선의 절대 권력자가 역적 가문이었던 여인의 문밖에서 미동조차 없이 돌부처처럼 엎드려 있는 기괴한 풍경.가솔들과 흑위대 무사들은 그 기행에 사색이 되어 발을 동
“……이것이 대체 무슨 기행이시란 말인가.”대군저의 담장 너머로 고개를 빼꼼히 내민 영의정이 경악을 금치 못하며 중얼거렸다.조선을 호령하는 섭정, 진안대군 이헌.그는 며칠 전부터 궐에서의 정무를 극단적으로 줄이고 호조와 병조의 서류만을 대군저로 가져오게 했다.그것만으로도 조정이 술렁일 판인데, 더 끔찍한 것은 그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장소였다.칼바람이 몰아치는 안채의 툇마루 앞.이헌은 굳게 닫힌 서연의 처소 문지방에서 정확히 세 걸음 떨어진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었다.비가 오면 비를 맞았고, 눈이 내리면 눈을 고스란히 뒤집어썼다.조선의 절대 권력자가 역적 가문이었던 여인의 문밖에서 미동조차 없이 돌부처처럼 엎드려 있는 기괴한 풍경.가솔들과 흑위대 무사들은 그 기행에 사색이 되어 발을 동동 굴렀으나, 누구도 감히 그에게 다가가 말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살갗이 찢어져 붕대를 감은 그의 두 손과, 문을 향해 고정된 핏발 선 눈동자에는 범접할 수 없는 광적인 신앙마저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방 안의 서연은 숨을 헉 들이마시며 벽으로 몸을 바짝 붙였다.창호지 문 너머로, 이헌의 거대한 실루엣이 시커먼 그림자를 드리우며 고스란히 비치고 있었다.햇살이 비치면 그림자가 길어졌고, 밤이 되어 횃불이 켜지면 그림자는 일렁이며 방 안을 가득 채웠다.‘언제…… 언제 문을 부수고 들어올 작정인가.’서연은 무릎을 끌어안은 채, 바싹 마른 입술을 피가 나도록 짓씹었다.자신은 천민으로 전락했던 계집이고, 그는 십 년 전 자신을 사지로 몰았던 법의 집행자이자 현생의 절대자였다.그가 복권 문서를 건넸다고 한들, 저 맹수가 언제까지 자신 앞에서 꼬리
한겨울의 매서운 칼바람이 대군저의 지붕을 때리고 지나갔다.달빛조차 스며들지 않는 뒤뜰의 우물가.이헌은 상의를 완전히 벗어 던진 채, 살얼음이 낀 차가운 우물물을 퍼 올려 자신의 두 손과 팔뚝에 미친 듯이 들이붓고 있었다.“씻어내야 해…….”그의 눈동자는 광기에 사로잡힌 듯 기괴하게 번들거렸다.“이 역겨운 피 냄새를…… 완벽하게 지워내야만 한다.”벅벅, 벅벅-!이헌은 거친 짚으로 만든 수세미를 쥐고, 자신의 손등과 팔뚝을 가차 없이 문지르기 시작했다.방금 전. 서연의 굳게 닫힌 문 앞에서 복권 문서를 내밀었을 때.그녀가 자신의 손에 묻은 피 냄새를 맡고, 끔찍한 괴물을 본 것처럼 덜덜 떨며 뒷걸음질 치던 그 창백한 얼굴이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았다.자신이 그녀를 지키기 위해 휘둘렀던 율법의 칼날.수백 명의 잔당을 도륙하며 묻혀온 이 비릿한 피 냄새가, 정작 그녀의 영혼을 또다시 질식할 듯한 공포로 몰아넣었다는 그 뼈저린 자책감이 이헌의 숨통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었다.“으아아아아!”이헌은 짐승처럼 절규하며 수세미에 더욱 힘을 주었다.전생의 현대 사회에서도 그랬다.자신은 승소율에 눈이 멀어 법의 허점을 파고들었고, 송지안의 가정을 박살 내며 이 두 손으로 그녀를 사지로 몰아넣었다.그리고 이 현생의 조선에서는, 또다시 이 더러운 두 손으로 피를 묻히며 서연을 벼랑 끝의 공포로 밀어붙이고 만 것이다.“내 손이…… 내 더러운 손이 또 아가씨를……!”치익, 찌이익-.살갗이 무참하게 벗겨지고, 붉은 피가 터져 나와 차가운
자신을 살린 뒤 법과 권력으로 삶을 통제해 온 사내가, 이제는 조선의 무력까지 쥐고 언제라도 자신의 숨통을 뜯어낼 준비가 되어 있는 괴물로 보일 뿐이었다.‘저 피에 젖은 괴물이…… 언제 그 광기를 나에게로 돌릴지 모른다.’그녀의 눈동자에 서린 것은 오직 생존을 향한 원초적인 공포였다.그 공포가 너무도 선명하고 압도적이어서, 이헌은 자신의 심장이 거대한 쇠망치에 얻어맞아 수만 조각으로 박살 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아, 아가씨.”이헌이 다급하게 손을 내저으려 했다.하지만 그가 손을 미세하게 움찔거린 것만으로도, 서연은 숨을 헉 들이마시며 다시금 뒷걸음질을 쳤다.쾅.그녀의 등 뒤로 방문의 문틀이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더 이상 물러설 곳조차 없는 그녀가, 벽에 기대어 벌벌 떨며 자신을 경계하고 있었다.“…….”이헌의 내밀었던 두 손이 허공에서 뻣뻣하게 굳어버렸다.자신은 그녀를 지키기 위해 피를 묻혔다.그녀에게 완벽한 성벽을 지어주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기를 자처했다.하지만 자신이 뒤집어쓴 그 괴물의 허울과 피비린내가, 정작 그녀의 영혼을 끔찍한 공포로 찢어발기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이 차가운 툇마루 위에서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었다.그의 눈시울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시야가 기괴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자신은 그녀에게 구원자가 될 수 없다.자신이 다가갈수록, 자신이 내미는 손길이 짙어질수록, 그녀는 이 끔찍한 핏자국 앞에서 질식할 듯한 공포만을 느끼게 될 터였다.“……송구합니다.”이헌은 핏물이 밸 정도로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그가 천천히, 젖은 눈동자를 들어 올려 서연을 올려다보았다.그의 시선에는 오직 맹목적인 구원을 갈구하는 광적인 신앙만이 가득했다.“저를 위해 피를 묻히셨다 하였습니까.”서연이 그를 내려다보며, 아주 느리게, 그러나 단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권력도, 옥좌도 걷어차고…… 이 좁은 문지방 아래서 죽기를 자처할 만큼, 당신의 죄가 깊다 여긴다 하셨습니까.”“그렇습니다, 아가씨. 제 모든 것을 찢어 바쳐도…… 갚을 수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그렇다면.”서연의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이헌을 꿰뚫었다.“당신이 쥐고 있는 그 칼끝을…… 이제 나에게 넘기십시오.”“……!”이헌의 숨이 턱 막혔다.율법의 사각지대에서 시작되어, 세상을 피로 물들였던 그 지독하고 끔찍한 복수극의 2막.그 무자비한 정치전이 완벽하게 막을 내리고, 이제 두 사람만이 남겨진 이 적막한 툇마루 위에서.도망치고 숨기만 했던 서연이 마침내 침묵을 깨고, 그 권력의 정점인 이헌의 숨통을 스스로 쥐어 흔들기 위해 닫힌 입을 연 것이다.폭풍전야.서연의 발밑에 엎드린 이헌과, 그를 서늘하게 굽어보는 서연.서로의 영혼을 옭아매고 살을 파고들, 가장 지독하고 파괴적인 애증의 3막이, 달빛 아래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그 거대한 서막을 올리고 있었다.차가운 겨울밤의 정적이 짓누르는 대군저의 안채.수개월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도성을 피비린내로 물들였던 광란의 학살극이 끝났다.조선의 모든 권력을 쥐고 흔들던 우의정의 잔당들은
며칠 전, 텅 빈 집무실에서 서류 더미에 엎드려 무너져 내리던 그 아침 이후.이헌은 조선의 모든 권력과 복수의 결과물을 등진 채, 스스로 가장 처절하고 기괴한 감옥으로 걸어 들어갔다.“섭정 대감! 궐내에서 편전 회의가……!”“물러가라. 내 곁에 아무도 오지 마라.”그의 일상은 파괴될 정도로 단순해졌다.아침이 밝으면 핏기 가신 창백한 얼굴로 서연의 처소 앞에 서서, 굳게 닫힌 문을 향해 하염없이 시선을 고정했다.그녀가 잠에서 깰까 두려워 발소리조차 죽였고, 식사 때가 되면 하인들을 물리고 자신이 직접 소반을 들고 와 문지방 아래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아가씨. 식사를 가져왔습니다.”갈라진 목소리가 문풍지를 때렸지만, 돌아오는 것은 서늘한 침묵뿐이었다.이헌은 그 묵언을 가장 큰 형벌로 달게 받으며, 식은 밥이 담긴 소반을 곁에 둔 채 차가운 툇마루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밤이 깊어 이슬이 맺히고, 뼛속까지 시린 겨울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어도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마치 스스로를 징벌하듯, 한기(寒氣)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날이 밝을 때까지 그녀의 문밖을 지키는 맹목적인 석상(石像)이 되었다.자신이 쌓아 올린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이 결국 그녀를 공포에 질리게 만들고, 자신을 역겨운 학살귀로 낙인찍었다는 그 뼈저린 자책.그는 이 끔찍한 고독과 징벌 속에서 스스로 말라 죽어가는 것만이, 그녀에게 바칠 수 있는 마지막 속죄라고 맹신하고 있었다.그렇게 며칠의 밤이 더 흘렀다.“…….”어둠이 무겁게 깔린 대군저.이헌은 오늘도 어김없이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었다.그의
당신의 아버님을 모함하고, 당신의 발목에 노비의 족쇄를 채웠던 그 역겨운 짐승들.”그의 손아귀에 꽉 쥐인 형집행 서류가 구겨지며 바스락거리는 비명을 질렀다.“제가 다 죽였습니다. 이 율법의 칼로…… 그들의 목을 썰고, 가문을 찢어발기고, 그들의 더러운 돈마저 당신의 이름 아래 완벽하게 짓밟아 버렸습니다.”“…….”“이제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아가씨의 목숨을 노리거나 손가락질할 수 있는 놈은 단 한 마리도 남아있지 않습니다.”이헌의 눈시울이 붉게 달아오르며 기어이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서류 위로 툭, 떨어져 내렸다.안도감.살을 에는 듯한 지독한 안도감이 그의 온몸을 관통했다.“다행입니다…… 정말로, 다행입니다.”그는 구겨진 서류에 자신의 이마를 댄 채, 짐승처럼 어깨를 들썩였다.이 미친 학살과 통제의 죗값으로, 자신이 당장 내일 벼락을 맞아 죽는다 해도 상관없었다.수천 명의 피를 손에 묻힌 이 끔찍한 업보 때문에 자신이 무간지옥의 가장 뜨거운 불길 속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받는다 할지라도.그녀가 과거에 겪었던 그 모함의 끔찍한 흔적들을 이 세상에서 완벽하게 지워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그녀의 얇은 창호지 문에 먼지 한 톨 날아들지 않게 완벽한 요새를 구축했다는 이 사실 하나만이, 지옥을 뒹구는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구원이었다.“…….”한참 동안 서류 더미에 얼굴을 묻고 있던 이헌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아침 햇살이 창호지를 뚫고 들어와, 화려한 집무실과 그의 피 묻은 흑색 철릭을 비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