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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연락처가 사라진 날

작가: 안나
last update 게시일: 2026-07-03 21:00:23

​하지만 운명은 연수에게 마지막 남은 아주 작은 희망의 불씨마저 잔인하게 밟아버렸다.

​열일곱 살의 어느 날, 연수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가슴의 통증을 느끼며 서준에게 전화를 걸기로 결심했다. 그에게 돈을 달라고 구걸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세상 모두가 자신을 손가락질하는 이 지옥 속에서, “연수야”라고 불러주던 그의 따뜻한 목목소리 딱 한 번만 들으면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을 것 같았다.

​연수는 닳고 낡은 핸드폰을 꺼내 들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 속에서 소중히 저장되어 있던 서준의 번호를 눌렀다. 통화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거나…….]

​기계적인 안내 음성이 수화기를 타고 흘러나왔을 때, 연수는 제 귀를 의심했다. 번호를 잘못 눌렀나 싶어 다시 확인하고 수십 번을 다시 걸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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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미한 실루엣의 그대에게   136화. 우리가 함께한 십 년

    태성은 진경이 건넨 자백서를 한 장씩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그 안에는 진경이 저지른 일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하연수에 관한 거짓 소문을 퍼뜨린 일. 프로젝트 내부 정보를 이민우에게 넘긴 일. 회사 자료 일부를 외부로 유출한 일. 그리고 이민우가 태성기획을 무너뜨릴 조작 문서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까지. 진경은 자신의 잘못을 감추거나 줄이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어떤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를 분명히 적어놓았다. 태성은 자백서를 내려놓았다. “업계에서 다시 일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어.” 진경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회사에 손해가 발생한 사실이 확인되면 배상 책임도 생길 거야.” “그것도 감당할게.” “경찰 조사가 시작될 수도 있어.” “피하지 않을 거야.” 진경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말했다. “내가 한 일이니까.” 그 짧은 말에 태성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한때 진경은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나 이유부터 설명하던 사람이었다.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고, 잘못된 결과가 생겨도 다른 사람의 책임부터 찾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녀는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았다. “이민우가 네 자백 사실을 알게 되면 가만있지 않을 수도 있어.”

  • 희미한 실루엣의 그대에게   135화. 진경의 자백서

    진경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연수 씨를 무너뜨리려고 했던 것도, 네가 그 사람을 믿지 못하게 만들려고 했던 것도 모두 나야.” “네 곁에 서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회사 안에 거짓말을 퍼뜨렸고, 연수 씨가 맡은 프로젝트도 흔들었어.” “이민우에게 내부 정보를 넘긴 것도 사실이야.” 그녀는 자신의 잘못을 하나도 숨기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연수 씨만 회사에서 사라지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네가 그 사람에게 실망하면 언젠가는 나를 다시 바라볼 거라고 믿었어.” 진경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정말 어리석었지.” 태성은 말없이 그녀의 고백을 듣고 있었다. “어젯밤 이민우가 내 앞에 태성기획을 무너뜨릴 조작 문서를 내놓았어.” 진경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렸다. “회사의 비자금과 불법 로비를 조작해서 언론에 흘릴 계획이었어.” “나한테 내부 자료를 넘기고 증거를 완성하라고 했지.” 태성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태성기획까지 무너뜨리려 했다고?” “응.” 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야 알았어.” “내가 손을 잡은 사람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인지.” “그 사람은 연수 씨만 밀어내려는 게 아니었어. 너와 네 회사, 네 가족, 그리고 네가 사랑하는 모든 걸 파괴하고 싶어 했어.” 진경의 눈가가 붉어졌다. “그런데 더 끔찍한 건, 그 사람이 그렇게까지 갈 수 있었던 데에는 내 책임도 있다는 거야.” “내가 가진 질투와 분노를 이용하게 내버려뒀으니까.” 태성은 천천

  • 희미한 실루엣의 그대에게   134화.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

    이른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봄비가 태성기획 사옥의 창문을 쉼 없이 두드리고 있었다. 회색빛 구름이 도심 위를 낮게 덮은 탓에 아직 오전인데도 대표실 안은 어둑했다. 태성은 책상 앞에 앉아 전날 진혁이 전달한 조사 자료를 검토하고 있었다. 강원도에 있다는 사진작가 서정훈의 행방은 아직 완전히 확인되지 않았다. 박성규 상무의 과거 기록도 대부분 지워져 있었다. 정우 산업이 무너진 시기에 작성된 계약서와 자금 내역은 여러 차례 수정된 흔적만 남아 있었고, 이민우가 연수에게 보여준 문서에는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공백이 많았다. 태성은 같은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다가 미간을 짚었다. 그때 책상 위에 놓인 휴대전화 화면이 켜졌다. 전날 밤 도착한 메시지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할 말이 있어. 당신과 하연수 씨에게 꼭 보여줘야 할 자료도 있어. 보낸 사람은 이진경이었다. 태성은 메시지를 받은 직후 짧은 답장을 보냈다. 내일 오전 열 시. 대표실로 와. 그 뒤로 진경에게서는 아무런 답도 없었다. 태성이 시계를 확인한 순간, 대표실 밖에서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곳에 서 있는 사람은 이진경이었다. 평소의 화려한 정장과 빈틈없이 꾸민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짙은 색 코트 안에는 수수한 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고 있었고, 화장기 없는 얼굴은 며칠 사이 눈에 띄게 수척해져 있었다. 눈가에는 밤을 제대로 보내지 못한 흔적이 짙게 남아 있었다. 태성은 그녀를 한동안 말없이 바라봤다. 십 년 넘게 알고 지낸 사람이었지만, 오늘의 진경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 희미한 실루엣의 그대에게   133화. 더 늦기 전에

    집무실에 홀로 남은 진경은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창밖의 야경은 여전히 화려했지만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르게 보였다. 끝없이 빛나는 도시 한가운데 자신만 홀로 버려진 듯했다. 진경은 떨리는 손으로 탁자 위의 서류를 다시 펼쳤다. 태성의 이름이 적힌 결재란. 그가 밤낮없이 준비했던 프로젝트. 수많은 직원의 생계가 걸린 사업 자료. 진경은 태성이 회사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알고 있었다. 그가 어린 나이에 대표 자리에 올라 비웃음과 견제를 견디며 버텨온 시간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자신이 원했던 것은 그 모든 것을 빼앗는 것이 아니었다. 하연수만 사라지면 태성이 언젠가 자신을 돌아봐줄 것이라 믿었다. 연수의 자리에 자신이 서면 예전의 관계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태성이 연수를 선택하지 않았더라도 자신을 사랑했을 가능성은 없었다. 사랑은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이유로 받을 수 있는 보상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해 자신은 너무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진경은 손으로 입을 막았다. 억눌러왔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자신이 사랑이라고 믿었던 마음은 언제부터 이렇게 뒤틀려버린 것일까. 그리고 언제부터 이민우 같은 사람의 손을 잡고 태성을 위협하는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일까. 그녀는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인 채 흐느꼈다. 그러다 문득 탁자 한쪽에 놓인 또 다른

  • 희미한 실루엣의 그대에게   132화. 사랑이라는 이름의 집착

    “나는 이 일에 동참하지 않겠어요.” 진경의 말이 집무실 안에 또렷하게 울렸다. 이민우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이제 와서 겁이 납니까?” “겁이 나는 게 아니에요.” 진경은 떨리는 손을 감추려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건 단순한 스캔들이 아니잖아요. 언론에 거짓 자료를 흘리고 내부 문서를 조작하는 건 범죄예요.” “이제 와서 법을 걱정합니까?” 이민우가 비웃듯 물었다. “하연수를 모함하고 회사 안에 거짓 소문을 퍼뜨릴 때는 괜찮았습니까?” 진경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정확히 가장 아픈 곳을 찌른 말이었다. 그녀는 연수를 태성에게서 떼어놓기 위해 여러 번 선을 넘었다. 프로젝트 실수를 연수의 책임으로 돌렸고, 회사 안에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흘렸다. 이민우에게 내부 정보를 넘긴 적도 있었다. 처음에는 작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태성이 연수에게 실망할 정도면 충분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작은 거짓말은 더 큰 거짓말을 불러왔고, 지금 그녀의 앞에는 회사 전체를 무너뜨릴 문서가 놓여 있었다. “나는…….” 진경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연수를 태성 곁에서 떼어놓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래서요?” “태성의 인생을 망치고 싶었던 건 아니에요.” 그녀는 고개를 세게 저었다. “회사를 무너뜨리는 일에는 절대 동참하

  • 희미한 실루엣의 그대에게   131화. 사랑과 파멸의 경계

    늦은 밤, 이민우의 집무실. 통유리창 너머로 서울의 야경이 화려하게 펼쳐져 있었다. 수많은 빌딩의 불빛이 어둠 속에서 반짝였지만, 집무실 안의 공기는 얼어붙은 듯 차가웠다. 이민우는 소파에 기대어 휴대전화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조금 전 전달받은 사진들이 떠 있었다. 꽃이 만발한 정원을 나란히 걷는 태성과 연수. 사진 부스 안에서 장난스럽게 웃는 두 사람. 노을이 내려앉은 호숫가에서 서로의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까지. 특히 태성의 어깨에 기대어 환하게 웃는 연수의 얼굴이 이민우의 시선을 붙잡았다. 자신 앞에서는 언제나 차갑고 경계 어린 눈빛만 보이던 여자였다. 그런데 강태성 곁에서는 아무런 두려움도 없는 사람처럼 웃고 있었다. 이민우는 사진 속 연수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확대했다. 그 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아닌 태성이 그 웃음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다. “저렇게 웃을 수도 있었군.”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지만 눈빛에는 온기가 없었다. 처음에는 태성을 무너뜨리기 위한 약점으로 연수에게 접근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연수를 태성에게서 빼앗고 싶었다. 아버지의 진실도, 사라진 회사도, 사랑도 자신만이 돌려줄 수 있다고 믿게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끝내 그녀가 강태성이 아닌 자신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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