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표님의 달달한 아내 사랑: Chapter 3721 - Chapter 3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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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21화

유정은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자, 서정후는 그녀를 슬쩍 보며 말했다.“그래, 너랑 그 조백림이 어찌 된 일인지 말해보지. 혹시 도망치듯 온 거냐?”유정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할아버지, 혹시 전생에 조선시대의 궁예셨어요? 어떻게 이렇게 다 아시는 거예요?”이에 서정후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야 물론이지.”“와, 대단하세요. 존경해요. 인정의 따봉을 드릴게요!”유정은 장난스럽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러곤 얼른 고기를 집어 그 앞 접시에 놓아줬다.“고기 드세요, 고기! 셰프님 오늘 육수에 뭐 넣었는지, 끓일수록 향이 끝내줘요.”서정후는 흡족하게 술을 한 모금 마시려다, 문득 얼굴이 굳더니 잔을 탁 내려놓았다.“어이구, 하마터면 네 말발에 또 넘어갈 뻔했네. 얼른 말해, 조씨 집안 놈이랑 정말 파혼한 거야, 안 한 거야?”유정은 눈을 들어 물었다.“할아버지는 왜 그렇게 조씨 집안을 싫어하세요?”“조변우 그 인간이 처음부터 정상이 아니야. 그런 아버지 밑에서 제대로 자란 아들이 있을 것 같아?”서정후는 단호한 표정으로 분석을 이어갔다.“네가 지난번 파혼하려고 했던 건, 분명히 그놈이 네 한계를 건드린 일이 있었기 때문이지. 한 번 참으면 두 번도 생겨. 결혼까지 하면 걔도 아버지 꼴 날 거다.”“일리 있네요.”유정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며,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래서요, 지금은 연락 안 하고 있어요. 그냥 경성 와서 명절 보내기로 했어요.”“아주 잘한 처사야!”서정후는 기분이 좋아져 목소리까지 높아졌다.“걔가 감히 너한테 매달리기라도 하면, 명절 지나고 내가 같이 내려가마. 네 반경 3미터 이내로 다가오기만 해도 대단한 거야.”유정은 웃으며 맞장구쳤다.“그럴 일 없을 거예요. 겁쟁이라 그런 용기는 없어요.”“그럼 됐지!”서정후는 술을 한 모금 더 들이켰다.“그래야 조심 좀 하는 거지.”유정은 웃음을 터뜨리며 잔을 들어 할아버지와 건배했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알싸한 술기운이 기분 좋게 퍼졌다.그때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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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22화

“우리 엄마도 어찌 보면 먼데로 시집간 거잖아요. 할아버지도 그 기분 아시겠네요?”유정의 말에 서정후는 콧소리를 흘렸다.“너 어릴 때 네 엄마가 널 여기에 자주 맡긴 거, 그거 다 미안해서 그런 거야. 그러니까 이번엔 내가 너를 경성에 붙잡아둘 거다. 너희 엄마도 한 번 당해봐야지.”그 말이 나오자 서정후는 괜히 흥이 난 듯 말을 이었다.“고효석이 이번에 복귀하면서 전우가 보낸 특산품도 가져왔더라. 그리고 널 두고 칭찬이 자자하던데, 난 그 녀석이 진심인 것 같더라.”“조백림 같은 놈은 빨리 걷어차고, 효석이랑 진지하게 만나봐.”또 똑같은 얘기에 유정은 진이 빠진 표정으로 말했다.“제가 조백림이랑 완전히 끝났다 해도, 효석이랑은 안 돼요.”“왜 안 되는데?”서정후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자, 유정은 시선을 내리뜨며 조용히 말했다.“그냥요. 연애 같은 거, 이제 하고 싶지도 않아요. 제 일에 집중하고 싶을 뿐이에요.”“연애한다고 네 일 못 하니? 고효석 할아버지는 내 전우였어. 그 집안 성격, 인품, 배경까지 다 내가 알아.”“조씨 집안보단 백 배 나아. 그러니 고씨 집안에 시집가는 건 이득만 돼.”유정은 하품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날 듯 몸을 움직였다.“계속 그러시면 저 진짜 방으로 들어가서 잘 거예요.”서정후는 못마땅한 얼굴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유정을 가리켰다.“내가 보기엔 넌 조씨 집안 놈한테 꽂힌 거야. 너희 엄마랑 똑같이 약도 없어.”유정은 장난기 어린 웃음을 띠며 말했다.“그럼 할아버지는 그냥 포기하세요. 저 그냥 이대로 죽게 두세요.”“헛소리 말아!”서정후는 눈을 부라리며 단호하게 말했다.“어서 입으로 퉤퉤퉤 뱉어!”유정은 입을 내밀며 서정후를 따라 하고는 깔깔 웃었다.“퉤, 퉤, 퉤!”“할아버지, 점점 미신쟁이가 되시네요.”서정후는 잠시 말이 없더니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사람이 나이 들면 겁이 많아지는 거야. 내 몸이야 어찌 되든 상관없는데, 너희들이 다칠까 봐 그게 걱정이지.”그 말에 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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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23화

들판에서 기러기들이 땅을 쪼아대며 날개를 퍼덕인 것을 보아 무척이나 신이 난 듯한 모습이었다. 유정이 다가오자, 녀석들은 꽥꽥 두어 번 울어댔다.부엌에선 유정이 좋아하던 기름떡이 튀겨지고 있었고, 고소한 냄새가 공기 중에 퍼졌다. 이에 유정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서정후는 손에 쥐고 있던 기러기 먹이를 털고, 두 손을 뒤로 하고 집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고효석, 밥 먹으러 와!”유정은 눈을 굴리며 서정후가 손 씻으러 들어간 틈을 타 조용히 따라갔다.“이 할아버지 참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저랑 효석인 절대 그런 사이 아니라고요.”“왜 자꾸 사람을 불러서 이상하게 만들어요? 완전 곤란하게 하잖아요.”“곤란하긴 누가 곤란해?” 서정후가 목에 힘을 주며 말했다.“너, 경성 온 이유가 조백림이랑 그 집안에서 벗어나려고 그런 거 아니었나?”“근데 네가 여기서 남자친구라도 사귀면, 그 집안이 너를 억지로 끌고 갈 수 있을 것 같아?”유정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하지만 전 남자친구 만들고 싶지 않아요!”“할아버지!” 효석이 집 쪽으로 걸어오며 인사를 건넸다.서정후는 대답만 짧게 하고 유정에게 조용히 하라는 눈짓을 한 뒤, 효석의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얼굴 가득 웃음을 띠며 물었다.“무슨 일이냐?”“할아버지, 셰프님이 장아찌 잡수실지 물어보세요.”효석이 웃으며 말했다.“먹지, 먹어야지. 얼른 와. 우리 집에서 담근 장아찌 한번 먹어봐. 바깥에선 절대 이런 맛 못 봐.”두 사람이 멀어지자, 유정은 화장실 쪽에서 나왔다. 그녀는 이마를 짚으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조용히 지내려고 경성에 온 건데, 오히려 일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었다.식사 시간, 유정이 자리에 앉자 유정이 좋아하던 경성 전통 과자들이 접시에 담겨 나왔다.“우리 할아버지가 네가 왔다는 얘기 듣고, 이거 꼭 챙겨주래. 어릴 때 네가 제일 좋아하던 거라면서.”효석이 대추빵을 건네며 말했다.유정은 속으로 놀랐다. ‘고효석 쪽 어른들까지 알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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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24화

고효석은 고개를 저었다.“괜찮아. 어른들은 어른들 나름의 생각이 있으니까. 우리가 정면으로 부딪칠 필요는 없지.”“너무 부담 갖지 마. 그냥 오랜만에 친구끼리 만난 거라고 생각하면 돼.”“마침 나도 시간 있었고, 네가 경성까지 왔는데, 내가 좀 안내해 주는 거지. 그게 다야.”따뜻하고 너그러운 효석의 웃음에 유정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이에 유정은 진심 어린 미소를 지었다.“고마워.”“별말을 다 하네.”효석은 개의치 않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두 사람은 새로 조성된 문화의 거리로 향했다. 차를 근처에 세우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말 그대로 붐비는 곳이었다. 거리 전체에 연등과 설 장식이 걸려 있었고, 기다란 붉은 조명이 용처럼 이어져 있었다. 밤이 되면 모두 불이 들어올 테니 훨씬 더 화려하고 장관일 듯했다.한참을 구경하다가 회운방 매장을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가 오리구이 네 마리를 샀다. 계산은 효석이 먼저 나서서 했다.유정은 원래 두 마리를 더 사서 효석에게 건네주려 했다. 고효석 할아버지께 드리라고. 그런데 결국 효석이 스스로 계산을 한 셈이었다.가게에서 나오는 길에 효석이 전화를 받았다. 통화를 마치고 유정 쪽으로 돌아서며 물었다.“재난 구호 봉사활동이 있는데, 같이 갈래?”“무슨 일이야?”유정이 묻자, 효석이 설명했다. 경성 외곽의 한 시골 마을에 폭설이 내려 길이 끊기고, 학교도 휴교 중이었다. 효석의 친구가 구호 단체에서 봉사하러 간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몇몇 동문들과 함께 지원을 준비했다는 것이었다.원래는 내일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방금 연락이 와서 일정을 앞당겼다고 했다. 약속된 장소에 곧 집결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이런 봉사라면 유정도 당연히 참여하고 싶었다.“좋아, 같이 가자!”유정이 바로 대답했다.효석은 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지금 출발하면 마을까지 네 시간 정도 걸려. 오늘 밤엔 돌아올 수 있을 거야. 서정후 할아버지께는 네가 직접 전화드려. 걱정하시지 않게.”“응, 알겠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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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25화

함께 온 또 다른 여자, 나희연은 유정에게 꽤 다정했다. 여자는 유정에게 요거트 하나를 건네며 웃었다.“강리나는 원래 저런 성격이니까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요.”유정은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괜찮아요.”그 순간 효석이 유정 손에서 요거트를 받아갔다.“유정이는 남방에서 올라왔어. 추위를 많이 타니까 내가 마실게. 아까 따뜻한 커피 사줬거든.”그 말을 들은 리나는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요거트 하나에도 추위를 탄다니, 이런 사람을 데려와서 뭐 하자는 건지 모르겠네. 난 귀찮게 상전 모실 시간 없어.”그 말에 주변 분위기가 묘하게 굳어졌고, 다들 어색하게 시선을 피했다. 그러자 효석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내가 데려온 사람이야. 네가 모실 일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지?”리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효석을 바라보며 말했다.“우리가 몇 년을 친구로 지냈는데, 나한테 그렇게 말해?”효석은 표정을 굳히고 대꾸했다.“그럼 너는 내 친구한테 어떻게 말했는지 생각해 봐야겠네.”두 사람의 기류가 심상치 않자, 주위에서 급히 말렸다.“야, 둘 다 왜 이래?”“아직 출발도 안 했는데 이러면 어쩌자는 거야?”“좀 자제해. 정식 구호단체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얼굴 붉힐 거야?”...남자 둘이 효석을 데리고 떨어졌고, 희연이 리나를 끌어당기며 달래자 다행히 일단은 말다툼이 멈췄다.유정은 효석을 조용히 한쪽으로 불러내고는 이마를 찌푸렸다.“미안해, 내가 이럴 줄은 몰랐어.”효석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너 때문이 아니야. 다들 선의로 모인 거잖아. 물품을 나르든 봉사하든, 마음이 중요하지. 언제부터 선의도 등급을 매겨야 하는 일이 됐지?”유정은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괜찮아. 나 여기 친구 사귀러 온 것도 아니고. 그 애가 날 어떻게 보던 내가 뭘 하려는 진 상관없어.”“그런데 곧 진급 앞둔 사람이 저렇게 욱해도 돼? 부하들 앞에선 어떻게 해?”효석은 쓴웃음을 지었다.“너한테 이런 모습 보여서 민망하네.”“아냐, 고마워. 나 지켜주려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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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26화

마을에 도착하자 상황은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다.마을은 산자락 아래 자리 잡고 있었고, 며칠 전 내린 폭설로 인해 산사태가 발생하면서 무려 서른 가구 가까운 집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집을 잃은 사람들은 갈 곳이 없어 마을 학교나 임시로 설치된 텐트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다.학교는 좁고 난방 시설도 갖춰지지 않은 데다, 텐트 수조차 부족해, 하나의 텐트에 네댓 명이 겨우 몸을 구겨 넣고 지내야 했다. 날은 매섭게 추웠고, 어린아이 중에는 감기에 걸리거나 손발에 동상이 생긴 아이들도 많았다.유정과 다른 사람들이 때마침 도착한 셈이었다.원래 구호단체는 다른 마을로 향할 예정이었지만, 이 마을의 위급한 상황을 듣고 급히 계획을 바꾼 것이었다. 원래 준비된 물자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유정이 따로 준비한 구호 물품 덕분에 일단 급한 불은 끌 수 있었다.유정이 기부한 물품에는 텐트, 방한용 이불, 식량, 감기 및 바이러스 대응 약품까지 포함되어 있었고, 종류도 세분돼 있었으며 매우 전문적이었다.사람들은 감탄을 아끼지 않았고, 유정은 살짝 눈썹을 치켜들며 효석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고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부끄럽네. 사실 준비한 사람은 나 아니야.”돌아가면 경성지사 팀장에게 포상이라도 내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일을 이렇게나 깔끔하게 처리하다니, 감탄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효석은 진심으로 말했다.“그런 사람을 거느리고 있다는 것 자체가 니 능력이야.”하지만 물자를 나누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마을 측에서 피해 주민 명단을 정리해 두고, 인원수에 맞춰 질서 있게 배분하려고 했다. 하지만, 몇몇 주민들이 조급해진 나머지 물자가 부족할까 봐 순서를 기다리지 않고 트럭 위로 올라가 자기 손으로 물건을 가져가기 시작한 것이었다.한 사람, 두 사람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이에 유정은 달려가 막아섰다.“모든 물자는 인원수에 맞춰 공평하게 나눌 거예요. 이렇게 막 가져가시면 안 돼요!”하지만 앞장선 몇몇 남성들은 체격도 크고 고집도 셌다. 유정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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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27화

일행은 다시 도시로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는 길은 한 시간 넘게 이어지는 산길이었고, 날이 어두워지면 위험성이 크게 높아졌다. 그러니 서둘러 마무리하고 출발하는 것이 우선이었다.마을 책임자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젊고 힘 있는 주민 몇 명을 불러내 구호팀과 함께 물자를 나누도록 했다.앞서 벌어진 소동 탓인지, 이번에는 아무도 나서서 물건을 빼앗으려 하지 않았고, 주민들은 조용히 줄을 서서 물건을 받았다.유정도 나서서 물자 배분을 도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손은 얼어 빨갛게 부어올랐다.그 모습을 본 한 주민이 자발적으로 따뜻한 물을 가져다주었고, 고효석도 유정에게 컵에 담긴 따뜻한 물을 내밀었다.“이리 와서 좀 쉬어.”유정은 손끝이 이미 얼얼하게 저려 감각이 거의 없었다. 더는 버티지 않고 컵을 받아 들고 구석으로 가 휴식을 취했다.나희연도 강리나에게 따뜻한 물 한 컵을 건넸다. 리나는 트럭에서 펄쩍 뛰어내리더니 단숨에 반쯤 들이켰다.희연은 유정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리나에게 말했다.“봤지? 생각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더라. 조금도 안 약해 보여.”리나는 유정 쪽을 흘깃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서 사과해.”희연이 권했다.“싫어.”리나는 차갑게 잘랐다.“아까 너 도와준 거, 기억 안 나?”희연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리나는 비웃듯 말했다.“그 사람이 구호하러 온 사람처럼 안 보이니까, 마을 사람들이 우릴 전부 보여주기식 봉사하는 인플루언서라고 오해한 거야.”희연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리나를 바라보았다.“유정 씨가 예쁘게 생긴 게 죄야? 강리나, 너 예전엔 안 그랬잖아. 언제 이렇게 편협해졌어?”리나는 잠시 시선을 피하더니, 컵을 옆에 놓고 다시 트럭 위로 올라가 물자 정리에 나섰다.그 사이 희연은 조용히 유정에게 다가갔다. 여자의 컵이 비어 있는 걸 보고, 자기 컵에서 반쯤 덜어주었다.“날이 너무 추워서 따뜻한 거라도 좀 마셔요.”그 말에 유정은 환하게 웃었다.“고마워요.”“이제 거의 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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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28화

유정은 작은 소녀에게 따뜻한 물을 부탁한 뒤, 약상자에서 해열제와 감기약을 꺼냈다. 물이 도착하자, 소녀의 엄마에게 약을 조심스레 먹였다.약을 먹이고 나서 천막 안을 둘러보니, 안에는 과자 몇 개와 생수 두 병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낡은 텐트는 천장과 측면이 군데군데 찢어져 있었고, 찬바람이 쉴 새 없이 들이쳤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밤을 보내란 말인가?지난 며칠 동안 엄마와 아이가 어떻게 이 추위를 버텼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아렸다. 소녀의 엄마가 병에 걸린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다른 친척은 없어?”유정이 아이에게 조심스레 묻자, 소녀는 주춤거리며 대답했다.“할머니랑 삼촌이 같이 살아요. 자기네끼리 나무로 집 지었어요.”그러면서 조심스레 방향을 가리켰다. 유정이 눈길을 따라가 보니, 십여 미터 떨어진 큰 나무 아래에 나무판자로 얼기설기 엮은 임시 쉼터가 보였다.“앞으로는 어른들 줄에 끼지 말고 여기서 엄마 잘 돌봐. 알겠지?”유정은 아이에게 이르고는 바로 밖으로 나와 물자 트럭 쪽으로 가서 효석을 찾았다.효석은 상황을 듣자마자 텐트 하나를 챙겼고, 유정은 두툼한 이불과 옷을 품에 안고 다시 천막으로 돌아갔다.효석은 아이와 여자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상황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이건 너무 심하잖아.”산사태는 순식간이었고, 대부분의 주민은 몸만 빠져나오기 바빴다.집과 살림살이는 모두 산 아래에 묻혔으니,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정도였다.두 사람은 새 텐트를 설치하고 안에 포근한 이불을 깔았다. 이어서 병든 여자를 조심스럽게 옮겨 눕혔다.유정은 다시 한번 트럭으로 돌아가 방한복과 먹을거리를 챙겨 왔다. 그러고는 차에 남아 있던 오리구이 세 마리도 전부 꺼냈다.집이 무너지지 않았던 한 이웃이 냄비 하나를 빌려주었다. 유정은 오리구이를 손으로 찢어 냄비에 담고, 아이에게 불을 피워 국 끓이는 법을 알려주었다.작은 아이는 참으로 씩씩하고도 속 깊었다.“언니, 우리 집을 살려줘서 고마워요!”아이의 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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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29화

고효석은 그 자리에 서서 유정을 바라보다가, 그녀가 돌아오자 웃으며 말했다.“먹을 건 다 나눠줬어. 아까 그게 마지막 빵이었거든. 오늘 밤 너 굶게 생겼네?”유정은 전혀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말했다.“한 끼쯤 굶는다고 큰일 나겠어?”효석의 눈빛은 별처럼 맑고 깊었다. 20년이 흘러 다시 만난 사람이, 여전히 기억 속 모습 그대로일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효석은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오늘 밤 열 시쯤 도착할 것 같아. 그때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유정이 웃으며 말했다.“좋지!”유정도 호쾌하게 받아쳤다.차량 대열은 마을을 빠져나와 다시 시내로 향했다. 날씨는 더욱 흐려졌고, 곧 하늘은 짙은 어둠에 잠겼다. 산길에는 차가 거의 없었지만, 전 차량이 조심스레 느린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다.효석은 유정을 향해 말했다.“너희 할아버지께는 미리 연락 넣어뒀어. 걱정하지 말라고 전했어.”유정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지만, 여전히 신호는 잡히지 않았다.사방은 까맣게 어두웠고,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길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깊은 산속의 밤, 그 고요함이 오히려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효석이 조용히 말했다.“조금 자. 시내 근처 도착하면 깨울게.”유정은 몸을 의자에 기대며 눈을 감았다.“조금 눈 붙일게. 이따가 내가 바꿔서 운전할게.”이에 효석은 부드럽게 대답했다.“괜찮아. 편히 자.”비포장 산길의 덜컹거림에도 유정은 곧 잠에 들었다.얼마나 지났을까? 갑작스러운 경적에 유정은 눈을 번쩍 떴다. 앞차에서 경고음이 울리며, 누군가 다급히 소리쳤다.“멈춰! 멈춰! 앞에 산사태 났어!”“모든 차량 정지! 후진하세요, 후진!”유정이 정신을 차리고 바라본 순간, 거대한 바위들이 굉음을 내며 산에서 굴러떨어지고 있었다. 귀를 찢을 듯한 소리, 뒤섞인 경적과 고함, 혼란이 도로를 삼켜버렸다.도로는 좁았고, 오른쪽은 절벽으로 이어진 산, 왼쪽은 깊은 낭떠러지였다. 피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경성해는 이미 져 있었다.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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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30화

서정후는 화난 얼굴로 조백림을 노려보며, 유정과 고효석이 구호단체를 따라 재난 현장으로 갔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백림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마지막으로 연락받으신 건 언제죠?”서정후는 잠시 생각한 뒤 대답했다.“한 시간 전쯤.”백림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폐를 끼쳐 죄송해요.”백림은 예를 갖춰 인사한 뒤 차로 돌아가 서정후가 언급한 지역을 검색했다. 마침 뉴스에 그 지역에서 또다시 산사태가 발생했다는 속보가 떴다.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백림은 즉시 위치를 확인하고 차를 몰아 전속력으로 산길을 향해 질주했다.산길 초입, 여러 대의 차량이 좁은 길가에 정차해 있었다.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 삼삼오오 모여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도로는 완전히 막혀 있었고, 구조 요청은 이미 넣은 상태였다. 하지만 구조 장비가 도착해 통로를 확보하기까지는 최소 4시간이 걸린다는 답변뿐이었다.결국 모두가 판단을 내렸다.‘우리가 먼저 길을 뚫자.’여자들은 차 안에서 대기하라는 말이 있었지만, 아무도 마냥 앉아 있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결국 남녀 모두가 도로 정리에 나섰다.유정도 함께 돌을 나르며 30분을 버텼다. 그러다 효석이 그녀를 한쪽으로 끌어냈다. 유정의 손등은 날카로운 돌에 긁혀 붉게 부어 있었고, 피가 맺혀 있었다.이에 효석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여기서 가만히 있어. 돌이라도 떨어져서 다치면, 내가 서정후 할아버지한테 뭐라고 해?”유정은 오후 내내 일하고, 저녁도 거른 채로 버텨오느라 이미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깊게 숨을 들이마신 그녀가 말했다.“다들 배도 안 채우고 버티고 있잖아. 잠깐이라도 다들 쉬자고 해.”효석은 고개를 끄덕이고 사람들에게 외쳤다.“일단 다들 잠깐 쉬죠!”찬 바람은 매섭게 불었고, 가만히 있으면 금세 손발이 얼어붙는 날씨였다. 차 안이라고 해서 상황이 크게 나아지는 건 아니었다. 기름을 아끼느라 시동도 켜지 못했기 때문이다.효석은 야외 경험이 풍부했다. 그는 몇몇 남자들과 함께 산속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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