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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51화

“엄마의 뜻이에요. 오빠들이 소송을 건다고 해도 이길 수는 없을 거예요. 저를 건드리면 그만큼 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니까. 얼른 별장이랑 상가를 정리해서 팔고 고향으로 돌아가세요. 지난 수십 년의 호사스러운 삶은 그냥 꿈이라고 생각하시고요.”이윤미가 자리에서 일어나 정군호를 향해 말했다.“아직 상처가 다 낫지 않았으니 푹 쉬세요. 괜히 도우미 아줌마 앞에서 저를 헐뜯는 소리나 하지 마시고. 스스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어떤 현실에 서 있는지 직시하셔야죠. 과거 아버지가 우리 엄마와 결혼하기로 선택했을 때 이미 아버지 운명도 정해졌던 거예요. 그건 아버지의 선택이었고 누구 탓도 할 수 없어요. 정씨 집안은 아버지가 데릴사위로 들어오면서 적잖은 이익을 얻었잖아요. 그건 일종의 거래였을 뿐 억울해할 것도 없는 공평한 일이었어요.”정군호의 굳은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이윤미는 정군호가 이영희에게 불평하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윤미야, 방 비서를 좀 불러줘. 할 얘기가 있어.”이윤미가 병실을 나가려 하자 정군호는 급히 말을 건넸다.이윤미는 잠시 그를 돌아보더니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저와 윤림 씨는 앞으로 결혼할 사이라고 해도 윤림 씨는 제 말만 들을 거예요. 우리가 결혼해도 예물도 혼수도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윤림 씨가 버는 돈도 전부 저에게 들어올 거고 윤림 씨의 몸조차 제 것이에요. 제가 전에 말했죠. 저와 그 사람의 결혼에는 예물도 혼수도 필요 없다고요.”정군호는 말문이 막혔다.“넌 전생에 남자를 본 적도 없어? 예물 하나 없이 시집을 간다니!”그는 방윤림과 그 문제를 따로 이야기할 생각이었는데 이윤미가 미리 그의 속내를 꿰뚫고는 싹을 잘라버렸다.“그 사람의 모든 것이 이미 제 것인데 제가 무슨 예물을 더 바라겠어요? 윤림 씨가 저에게 혼수를 요구하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죠. 푹 쉬세요.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제가 한 말을 꼭 오빠들에게도 전해주세요.”이윤미는 울화가 치밀어 올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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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52화

“새언니, 어떻게 여기 계세요? 아버지를 뵈러 오신 건가요? 아니면 친척분이 입원하셨어요?”이윤미가 물었다.예전에 이윤미는 세 새언니에게 좋은 감정을 갖지 못했다. 이씨 가문으로 막 돌아왔을 때 세 새언니는 그녀를 친동생으로 대하기보다는 이윤정을 추켜세우며 오히려 자신을 곤란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나중에 그녀는 오빠들이 모두 외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소식을 접한 새언니들이 난리를 피운 바람에 집안도 발칵 뒤집어졌다.이윤미는 여자로서 오빠들의 외도를 바라보았기에 자연스럽게 새언니들 편에 서서 그녀들을 감싸줬다.정일범 형제들에게 경고도 했지만 그들은 무시해 버렸다.그 뒤로 정군호가 바람을 피우다 이은화에게 딱 걸린 뒤에야 그들 형제도 함께 벌을 받고 각자의 내연녀들과 관계를 정리했다.그 사건 이후로 조윤 일행은 이윤미에게 훨씬 더 잘해주었다.조윤이 입을 열었다.“윤미야, 나는 너희 큰오빠랑 이미 이혼했어. 이제 난 네 새언니가 아니니까 앞으로는 그냥 언니라고 불러줘. 널 보러 왔어. 먼저 회사로 갔는데 네가 나갔다고 해서 병원에 왔을 거로 생각하고 찾아왔거든.”조윤은 방윤림을 힐끗 보더니 이윤미와 나란히 걸으며 정군호의 상태를 물었다.“많이 나으셨어요. 다만 한 달은 더 입원하고 싶다고 하셔서 아버지를 존중해 드리기로 했어요.”조윤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입원 핑계로 널 쥐락펴락하려는 거지. 윤미야, 내가 예전에 네 큰오빠 편을 들며 너를 곤란하게 만들었던 거, 또 윤정 쪽에 서서 널 괴롭혔던 거... 지금은 전부 후회하고 있어. 그 뒤로는 나도 정말 달라지려고 노력하고 있었고... 이제야 알았거든. 누가 진짜 내 편인지. 이제는 네가 꼭 행복했으면 좋겠어.”“고마워요, 새언니. 저는 마음에 담아두지 않아요.”이윤미는 여전히 입에 익은 호칭을 쉽게 바꾸지 못하고 새언니라고 불렀다.조윤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네 세 오빠 중에 제대로 된 놈 하나 없어. 너희 아버지도 마찬가지고. 앞으로는 그 사람들한테서 좀 떨어져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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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53화

조윤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조용히 이어갔다.“하지만 지금 내가 얻은 게 뭔지 알아? 네 큰오빠는 다른 여자 때문에 내 목숨까지 위협했지. 그 순간 모든 게 끝났다는 걸 깨달았어. 좋은 결혼은 여자를 행복하게 하지만 나쁜 결혼은 상처만 남기는 법이란걸.”조윤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이들도 이만큼 자랐는데 다시 재혼할 생각은 없어. 혼자 지내도 괜찮다고 생각해. 혹시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면 연애는 할 수 있겠지만 다시 결혼할 마음은 없어.”이윤미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큰오빠는 믿고 인생을 맡길 만한 사람은 아니에요. 이미 외도했고 앞으로도 반복할 가능성이 크죠. 이혼하신 건 잘한 일이에요. 이제는 자신에게만 집중하면서 살아가세요. 남들이 뭐라 하든 상관없잖아요. 아이들도 자라면서 이해해 줄 거예요.”조윤은 고개를 끄덕였다.“응, 애들도 다 내 편이야. 애들이 태어난 뒤로 집에 도우미가 있긴 했지만 대부분 내가 직접 돌봤거든. 그래서 나랑 정이 제일 깊어. 나랑 네 큰오빠가 이혼했을 때도 아이 중 누구 하나 그 사람을 따라가겠다고 하지 않았어. 난 다시는 가정을 꾸릴 생각이 없어. 애들이 나와 함께 살고 싶다고 하니까 나도 다 데리고 살고 싶어. 네 큰오빠가 가끔 와서 애들 얼굴이나 보고 생활비 챙겨주는 정도면 나도 그걸로 만족해.”정일범이 아내에 대한 애정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감정이 남아 있었다면 외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식들에 대한 애착은 있었기에 돈으로라도 보상하려 했고 그 탓에 아이들 기억 속에는 그는 언제나 ‘돈만 벌어다 주는 아버지’로 남아 있었다.조윤은 화제를 돌렸다.“넌... 이씨 그룹을 정말 포기할 생각이야?”“포기한다기보다 애초에 제 것이 아니었잖아요.”이윤미가 차분히 답했다.“굳이 따지자면 말하자면 그건 제 몫이 아니죠. 제가 빼앗아야 할 이유도 없고. 제 것이 아니면 저도 갖고 싶지 않아요.”조윤은 한숨을 내쉬었다.“솔직히 말해서 난 네가 가문 이어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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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54화

이은화의 비극적인 결말을 누구보다 똑똑히 보아온 이윤미는 그런 운명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아직 젊었고 아직 살아가야 할 날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죽음을 원하지 않았다.“우리 엄마가 조카들에게 남기신 재산은 제가 알아서 나눠줄게요. 이미 성인이 된 아이들은 각자 직접 관리하도록 하고 아직 미성년인 아이들은 부모님께 맡겨 두었다가 성인이 되면 다시 돌려주면 돼요. 그건 어디까지나 부모의 책임이니... 설마 자기 자식들의 재산을 가로채거나 욕심내지는 않겠죠?”혹여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해도 그건 그들의 문제일 뿐 이윤미가 나설 일은 아니었다.조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변명하듯 말했다.“윤미야, 내가 온 건 아이들 몫을 요구하려는 게 아니야. 어머님이 남기신 유언이 있으니 유언장에 따라 분배하는 건 네에게 달려 있다는 걸 잘 알아. 네가 맡고 있으니 나도 안심이 돼.”이윤미는 이윤정과 달랐다. 만약 이윤정이 재산을 관리했다면 조카들의 몫이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했겠지만 이윤미라면 그럴 염려가 없었다.이윤미는 조카들에게 공정하게 대했고 특별히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적절한 거리를 유지했다.아이들도 받아들이는 속도가 빨랐다. 이윤미가 돌아온 후 아이들은 단지 ‘이모’가 한 명 더 늘었다고만 여겼다.친이모든 아니든 전부 ‘이모’라고 부르면 그뿐이었다.그들에게는 아직 세상이 단순했기에 계산이나 음모 같은 건 없었다.하여 이윤미가 조카들에게 대하는 태도는 세 친오빠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다정했다.“설이 지나면 이씨 가문은 주인이 바뀔 거예요. 그 주인은 제가 아니란 말이죠. 엄마가 남기신 개인 재산은 유언에 따라 공평하게 나눌 계획이에요. 오빠들이 고소하든 말든 저는 상관 없어요. 우리 엄마가 되살아나지 않는 한 오빠들이 아무리 고소해도 그 유언장은 변할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이씨 가문의 본래 재산은 가문의 것이지 엄마의 개인 재산이 아니에요. 우리 중 그 누구도 손댈 자격이 없어요.”잠시 숨을 고른 이윤미는 직설적으로 말했다.“오늘 오신 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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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55화

“병원 밖에 카페가 있는데 커피 한잔하면서 천천히 이야기 나눌까요?”이윤미가 제안하자 조윤은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난 빨리 돌아가 봐야 해. 아이들 숙제를 봐줘야 하거든. 방학 숙제가 너무 많아. 내가 옆에 안 있으면 금세 휴대폰만 붙들고 게임을 하거든.”“그럼 애를 더 챙겨야겠네요. 아이들이 휴대폰 게임이나 영상에 빠지지 않도록요. 사실 우리 어른들도 휴대폰을 놓지 못하는데 하물며 아이들이야 말해 뭐 하겠어요.”아이들이 휴대폰에 빠져드는 것도 결국 부모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습관이었다.어른들은 휴대폰을 하느라 아이들과 놀아주지 않고 아이들이 보채면 그저 휴대폰이나 태블릿을 쥐여 주었다. 잠시 조용해지지만 그 대가로 아이들은 전자제품에 점점 중독되어 갔다.그 뒤로 공부에 흥미를 잃고 성적이 곤두박질치면 부모는 그제야 다급해져서 금지하려 들곤 한다. 그때는 이미 집안이 발칵 뒤집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심하면 휴대폰을 주지 않으면 뛰어내리겠다고 위협하거나 실제로 그런 일을 저지르는 경우도 있었다.세상 모든 아이는 태어날 때 하얀 종이와도 같다. 그 위에 어떤 그림을 그려 넣을지는 부모에게 달려 있었다.부모가 인생의 첫 번째 스승이라 하지 않았는가. 그들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아이의 일생을 좌우지하고 있다.조윤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처음부터 엄격하게 잡지 않은 게 문제야. 지금은 정말 통제하기 힘들어. 내가 간섭하지 않으면 그럭저럭 화목하게 지내지만 공부를 챙기려 들면 그때부터 싸움의 시작이야. 가끔은 아이들 숙제를 봐주다가 내가 심장병 걸릴 것 같다니까.”이윤미는 선뜻 말을 잇지 못했다.조윤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그럼 너희도 얼른 가봐. 나중에 네가 정말 강성을 떠나게 되면 미리 나한테 알려 줘. 떠나기 전에 같이 밥이나 한번 하자. 그때는 더 이상 시누이와 새언니 사이가 아니더라도 친구로는 지낼 수 있잖니. 너는 영원히 우리 애들의 고모야.”이윤미가 강성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윤도 이미 알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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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56화

두 사람은 이혼 협의서에 따라 하기로 했다.어차피 재산은 전부 아이들 몫이었다.정군호가 말한 것처럼 조윤이 아이들을 원한다면 아이들은 모두 그녀에게 맡기면 그뿐이었다.엄마의 사랑은 영원히 변함없는 법이니까.자식들이 곁에 없으면 정일범이 훗날에 재혼하기에도 훨씬 수월했다.정일범의 마음은 이미 들썩이고 있었다. 이혼도 했고 어머니마저 세상을 세상을 떠났기에 다시는 누군가 그를 단속할 수도 없게 되었다.그는 이제 자유로운 몸이라 떳떳하게 여자들과 놀 수 있고 정말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면 또다시 결혼하여 가정을 이룰 수도 있었다.아이를 둘쯤 더 낳는 것도 문제가 없었다.어차피 돈은 넘칠 만큼 있었으니까.조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윤미가 전해달라고 한 말은 이미 다 전했어요. 이제 어떻게 할지는 당신들 스스로 정해요. 앞으로 별일 아니면 나를 귀찮게 하지 마세요. 아이들을 보고 싶으면 직접 전화해서 의견을 물어보고 애들이 원하면 언제든 만날 수 있게 해줄게요.”조윤은 아이들이 정일범을 만나는 것을 막을 생각이 없었다.정일범은 고개만 끄덕였을 뿐 조윤을 붙잡지 않았다.아마도 현실을 돌릴 수 없음을 알고 있었던 건지 정군호 부자 넷은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그리고 이윤미는 모처럼 고요한 나날을 누릴 수 있었다.음력 12월 25일.하예진과 노동명은 강성에서 비행기를 타고 관성으로 돌아왔다.공항 문을 나서자 우빈이가 쪼르르 달려와 하예진의 품으로 들어갔다.“엄마!”우빈은 밝은 목소리고 엄마를 불렀다.하예진도 반가움에 걸음을 재촉하여 우빈을 와락 끌어안았다.“엄마!”우빈은 하예진을 꼭 안더니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우빈아, 왜 울어?”하예진은 당황한 표정으로 아들을 떼어보려 했지만 우빈은 그녀의 목을 꼭 끌어안은 채로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엄마 보고 싶었어요...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요...”그 말에 하예진의 마음은 녹아내리듯 무너졌다.애틋하고 또 미안해서 가슴이 너무 아팠다.아무리 똑똑하고 철이 들었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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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57화

“아주머니께 말씀드렸어. 내가 태윤 씨랑 함께 언니 마중 나오겠다고.”말을 마친 하예정은 노동명에게도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사랑의 기운이 스민 탓인지 늘 투박해 보이던 노동명도 한결 부드러워 보였다.무엇보다 하예진이 드디어 돌아왔다는 사실이 하예정을 기쁘게 했다.하예진은 우빈을 내려놓았다.울음은 그쳤지만 아이는 여전히 엄마 곁을 떠날 줄 몰랐다.곁에 서 있는 노동명이 팔을 벌렸지만 우빈은 고개를 홱 돌리며 매달리지 않았다.노동명은 꼬마의 얼굴을 가볍게 꼬집었다.우빈은 토라진 얼굴로 불만을 터뜨렸다.“아저씨, 왜 제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먼저 엄마한테 갔어요?”노동명이 낮은 목소리로 달랬다.“네가 한참 더 놀다 온다길래 먼저 다녀온 거야. 이제 나랑 네 엄마도 돌아왔잖아. 다음에는 꼭 너한테 물어보고 갈게. 화내지 마. 아저씨가 너 주려고 새 장난감도 잔뜩 샀어.”노동명은 두 팔을 벌려 말했다.“자, 나도 좀 안아보자. 아저씨도 네가 무척 보고 싶었어.”우빈은 눈을 흘기며 대꾸했다.“거짓말! 아저씨는 엄마만 생각하고 제 생각은 안 하잖아요. 저도 엄마만 보고 싶었어요. 엄마랑 같이 있고 싶어요.”하예진이 곁에 없을 때 우빈은 그럭저럭 잘 놀았다.하지만 막상 그녀를 마주하자 쌓였던 서운함이 한꺼번에 터져버렸다.몇 달이나 떨어져 지내며 겨우 영상 통화로만 얼굴을 봤는데 그것마저도 하예진은 너무 바빠 자주 시간을 내지 못했다. 늦은 밤이 되어야 겨우 통화할 수 있었지만 정작 그때는 우빈이 이미 곤히 잠들어 있었다.하예진은 그 모든 것을 떠올리며 아들을 안쓰럽고 미안한 눈길로 바라봤다.그녀는 다시 허리를 굽혀 아이를 꼭 안아 올리며 속삭였다.“개학하기 전까지는 엄마가 네 옆에 계속 있을 거야.”그녀는 아들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엄마가 너무 바빠서 네 곁에 있어 주지 못했어. 하지만 엄마 마음속에는 언제나 네가 가장 소중해. 엄마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것도 다 네가 더 좋은 삶을 살게 하려는 거야.”우빈이도 엄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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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58화

경호 차량 몇 대가 앞뒤로 호위하듯 따라붙고 두 대의 고급 차가 공항 주차장을 빠져나가 도시 중심 쪽으로 향했다.하예진은 일단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짐을 풀고 잠시 숨을 고른 뒤 전태윤 부부와 함께 서원 리조트로 떠났다.리조트에서 점심을 먹은 그들은 전씨 가문의 어른들과 강성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다 보니 반나절이 훌쩍 지나갔다.하예진이 돌아온 이상 우빈은 당연히 엄마와 함께 집으로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점심을 먹자마자 우빈은 혼자 방으로 올라가 그의 짐들과 장난감을 챙기기 시작했다.잠시 후 그는 작은 캐리어를 끌고 한 손에는 인형 두 개까지 꼭 껴안고 내려왔다.“우빈아, 벌써 가려고?”아이가 짐을 챙겨 내려오는 걸 본 장소민이 못내 아쉬운 듯 물었다.“며칠 더 있다 가면 안 돼?”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우빈의 곁으로 다가가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조금 더 지내다 가면 우리도 좋을 텐데. 네가 없으면 다들 허전하고 네 보고 싶을 건데.”집안에 아이가 하나 있으면 분위기 자체가 달라진다.전씨 가문의 어른들은 모두가 우빈을 매우 좋아했다.장소민은 아이 손에서 작은 캐리어를 건네받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아이 손을 꼭 잡으며 함께 내려갔다.우빈은 걸으며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말했다.“할머니 앞으로 매일 놀러 올 게요. 이모랑 이모부도 휴식하시는데 시간만 나면 놀러 올게요.”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환하게 웃으며 덧붙였다.“엄마가 돌아오셨으니까 이제는 엄마랑 같이 살고 싶어요. 엄마랑 떨어져 산 지 너무 오래됐거든요. 그리고 지율 삼촌이랑 놀 거예요. 할머니, 삼촌 만나면 꼭 전해주세요. 숙제 얼른 끝내라고요. 그래야 설날에 저랑 같이 불꽃놀이 하러 갈 수 있으니까요.”도시 중심에서는 불꽃놀이가 금지되어 있었다.하지만 서원 리조트는 교외에 자리 잡고 있었고 드넓은 잔디밭이 있어 불꽃놀이를 해도 안전했다.전씨 가문은 벌써부터 다양한 불꽃놀이를 준비해 두었다.설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아이들을 위해 화려한 불꽃놀이를 터뜨릴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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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59화

“증조할머니, 제가 보고 싶으시면 엄마한테 전화하세요. 그러면 저랑 엄마가 바로 올게요. 아니, 아마 저랑 엄마는 매일 올 것 같아요. 이모가 여기 있으니까 저희도 이모가 그리울 거거든요.”곧 설이 다가오자 하예정 부부는 다시 리조트로 돌아왔다.그들만 그런 건 아니었다. 다른 가족들 역시 하나둘씩 서원 리조트로 돌아왔다.그것은 전씨 할머니께서 정하신 가법이었다.평소에는 리조트가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출퇴근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다들 시내에 따로 집을 사서 살아도 할머니는 신경 쓰지 않았다.그러나 명절만큼은 달랐다. 특히 설에는 반드시 리조트에 모여야 했다. 그게 바로 진정한 가족의 모습이었으니까.그리고 설 뒤로 3일이 지나면 젊은 사람들은 각자 어디로 놀러 가든 상관없었다. 전씨 할머니는 전혀 간섭하지 않았다.딸도, 손녀도 없는 전씨 할머니는 설날 이튿날에 돌아와야 할 딸이 없었다. 대신 할머니의 며느리들은 친정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여 설날 이튿날이 되면 며느리들을 따라 돌아가며 시댁 식구들을 찾아뵈었다. 그리고 북적이는 분위기를 함께 즐기면서 살짝 부러움도 곁들여 웃음을 나누셨다.그렇게 한 해를 또 떠나보내시곤 했다.“그래, 네가 보고 싶으면 내가 너희 엄마를 불러서 널 데려오게 하마. 아니면 내가 직접 우빈의 집에 가서 밥 얻어먹어도 되고. 그래도 돼?”전씨 할머니는 우빈을 품에 안고 장난스레 물었다.“좋아요! 언제 오실 거예요? 지금요? 얼른 짐을 정리하세요. 지금 바로 가요! 우리 집에서 며칠 계시다 가세요.”우빈은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순간 별장 안에는 또 웃음소리가 터졌다.그중에서도 전씨 할머니의 웃음소리가 가장 크고 환했다. 그녀는 우빈을 꼭 껴안으며 연신 보물이라고 불렀다.모두와 작별 인사를 나눈 뒤 하예정 부부는 하예진과 우빈 그리고 노동명을 문밖까지 배웅했다.“예정아, 더 안 나와도 돼. 들어가서 쉬어. 바람도 센데 감기 걸려.”하예진은 발걸음을 멈추더니 동생을 보며 더 나오지 말라고 말렸다.하예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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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60화

이경혜 일행은 하예진보다 먼저 관성으로 돌아왔다.한성근이 성씨 가문에서 요양 중이었기에 하예진 역시 인사를 드리러 가야 했다.윤미라는 전화를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그래야지. 그런데 너랑 예진이는 언제 혼인 신고하러 가?”노동명이 하예진을 힐끗 바라본 뒤 대답했다.“아마 내일쯤 주민센터에 가서 절차를 밟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진이가 아직 말은 안 했지만 내일은 시간을 낼 수 있을 것 같아요.”“웬만하면 내일 해. 주민센터도 설 연휴 들어가면 문을 닫거든. 그리고 너희가 돌아오면 내가 예물 한번 확인해 보라고 할 거야. 문제없으면 바로 예진이 집으로 보낼 거다. 결혼 날짜는 벌써 좋은 날을 받아놨는데 언제로 할지는 사돈댁과 예정이랑 상의해 봐. 예진의 계획을 보면서 편한 날로 하면 돼. 예진이가 지금 정말 바쁘잖아.”윤미라는 큰딸로서 살아온 하예진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어릴 때는 동생을 키워야 하는 짐을 짊어졌고 이제는 이씨 가문 전체를 떠맡아야 했다.더 무겁고 더 고된 짐이었다.윤미라는 속으로 안쓰러움이 차올랐다. 차라리 그런 부담은 내려놓고 그냥 레스토랑만 운영하며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하지만 그것은 이씨 가문의 큰딸로서 피할 수 없는 사명이었기에 하예진은 짊어져야만 했다. 성소현도, 하예정도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없으니 끝내 그녀가 나서야 하는 일이었다.노동명이 차분하게 말을 건넸다.“엄마, 이런 얘기는 집에 가서 해요. 너무 서두르면 오히려 제대로 못할 수도 있어요. 저는 예진이와 제 결혼식이 태윤이랑 예정이가 결혼했을 때처럼 화려했으면 좋겠어요.”윤미라는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했다.“당연하지. 예정이가 받은 건 예진이도 똑같이 받게 할 거야. 우리 예진이를 서운하게 만들 일은 절대 없어.”곧 마흔을 앞둔 막내아들이 드디어 장가간다니 윤미라의 마음은 이미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사실 윤미라는 애초부터 이 며느릿감을 싫어한 것은 아니었다.다만 하예진의 경제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다.하지만 비바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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