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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31화

선우씨 가문은 오랫동안 딸만 태어난 가문이었다. 남자보다 여자가 많았고 그래서인지 사위에 대한 경계심은 유난히 깊었다.아직 사위가 생긴 적도 없지만 가문의 고모부들조차 선우씨 가문의 경영에 관여하지 못했다.선우씨 가문의 재산을 지키기 위하여 고모부들은 물론, 고모들까지도 일정한 거리에서 단속했다. 혹여 감정에 휩쓸려 남편에게 속거나 가문의 이익을 내어주는 일이 생길까 봐서였다.그래서 선우민아는 스물일곱이 된 지금까지 연애 한 번 하지 않았다.누군가를 만나면 가문의 어른들도 그 남자를 경계할 것이 뻔했다.아니, 사실은 그녀 자신조차 남자 친구를 경계하게 될 거라는 걸 더 잘 알고 있었다.세상에는 아내의 집안 덕에 성공한 뒤 더 젊고 아름다운 여자로 갈아타는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가.심지어 일부는 아내의 집안을 집어삼키고 원래의 아내를 죽이기까지 했다.그런 세상을 너무 많이 봐왔기에 선우민아는 아무도 쉽게 믿지 않았다.아무리 서로 조건이 맞는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었다.혹은 남자의 집안이 선우씨 가문보다 더 단단하고 가풍이 깨끗하다는 확신이 들기 전에는 감히 마음을 내어줄 수 없었다.지금까지 그런 남자는 아직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대부분은 그녀의 사람 됨됨이 아니라 그녀의 집안 실력을 보고 다가왔다.“저는 두 바퀴만 더 돌고 들어가서 출근 준비할게요.”선우민아는 짧게 말하고는 더는 전창빈과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그녀는 앞서 달리기 시작했고 전창빈은 그 뒤를 조용히 따랐다.한 바퀴를 돌자 그는 발걸음을 멈췄다. 오늘의 조깅은 이걸로 충분했다.숙소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아침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20분 후, 선우민아는 방으로 돌아왔다.전창빈은 주방에서는 이미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그녀는 주방의 문 앞에서 서서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곧장 발길을 돌려 2층으로 올라갔다.집 안은 고요했다. 그녀의 부모님은 아직 꿈속에 있었다.선우민아는 자기 방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세수한 뒤 가볍게 화장했다.그리고 바로 아래층으로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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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32화

선우민아는 최대한 인내심 있게 말했다.“안 돼. 10분 더 자는 건 불가능해. 시간이 너무 촉박해. 출근하고 등교하는 시간대라 도로가 막힐 거야. 늦으면 안 되잖아?”계속 늦게 도착하면 선우민기에게도 곧 나쁜 습관이 자리 잡게 될 터였다.“안 늦어요. 저는 늘 학교에 제일 먼저 도착하잖아요. 기사님께서 조금만 더 빨리 달려주시면 되죠.”“안 돼. 너무 빨리 달리면 위험해. 다른 애들이 늦든 말든 상관없지만 넌 절대 늦으면 안 돼. 얼른 일어나. 안 일어나면 누나 진짜 화낼 거야.”선우민기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동생의 볼을 살짝 집었다.“일어나. 이틀만 더 학교 가면 곧 주말이잖아. 또 쉴 수 있어.”“주말은 너무 짧아요.”결국 선우민기는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방학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틀이나 지났어요. 여름방학이 훨씬 좋아요. 길잖아요.”선우민아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그 긴 여름방학에도 넌 똑같이 놀아도 모자란다고 하지. 놀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항상 부족하잖아. 민기야, 넌 아직 어려서 누나가 네 공부에는 크게 신경 안 써. 2년쯤은 더 마음껏 놀아. 그래야 행복한 어린 시절이 되는 거야. 하지만 그 뒤에는 공부가 우선이야. 기타 수업들은 다음 주부터 다시 시작하자. 사실 너의 반 친구들에 비하면 네 보충 수업이 훨씬 적은 편이야. 누나는 네가 어린 시절을 즐겁게 보내길 바라니까 너무 많은 걸 시키지는 않을 거야.”그녀가 학교에 다니던 때에는 수업이 유난히 많았다. 심지어 집에 선생님을 따로 초빙해 일대일로 수업을 받곤 했다.글, 음악, 무술, 예절, 그녀는 모든 걸 배워야 했다.남동생이 없던 시절 선우씨 가문은 그녀에게 가문의 후계자다운 강인함을 요구했다.그녀가 무술까지 배우게 된 것도 가문에 자매가 많았기 때문이었다.그때는 선우민기가 아직 태어나기 전이라 선우씨 가문의 몇몇 집안은 모두 아들을 하나도 두지 못하고 있었다. 하여 선우씨 가문의 어른들은 이번 세대에서는 남자아이가 없을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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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33화

동생 선우민수가 곧 내려올 거라는 말을 듣자 선우민기의 동작이 자연스레 빨라졌다.선우민아는 선우민기를 기다리다 말고 단호하게 말했다.“이따가 스스로 내려와. 책가방이랑 교과서, 그리고 물병도 챙겼는지 확인하는 것도 잊지 마.”그녀는 절대 대신 챙겨주지 않았다. 매일 아침 선우민기가 스스로 확인하도록 했고 자기 일은 스스로 해야 한다는 원칙을 어긴 적이 없었다.부모님이나 가사도우미가 대신하려고 나설 때면 선우민아는 단호하게 제지했다.선우민기의 부모는 마흔이 넘어서야 그를 얻었다.게다가 외아들 하나뿐이었기에 그들이 직접 가르치면 분명 지나치게 감싸줄 게 뻔했다. 그래서 교육은 전적으로 선우민아의 몫이었다.“알았어요.”선우민기가 이를 닦으며 대답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동생의 방을 나섰다.계단을 내려와 1층에 도착하자마자 선우민수가 작은 가방을 메고 쪼르르 뛰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그렇게 뛰면 위험해. 넘어지면 어쩌려고.”선우민아가 낮은 목소리로 나무라자 선우민수는 바로 멈춰 서서 고개를 들었다.“누나, 좋은 아침이에요!”그녀는 손짓으로 선우민수를 불렀다.“이리 와.”선우민수는 순간 겁을 먹은 듯 눈을 크게 떴다.선우민아가 꾸중할까 봐 무서웠는지 그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그러나 얌전히 걸어와 누나 앞에 섰고 고개를 들며 또박또박 말했다.“누나, 내일부터는 안 뛸게요. 천천히 걸어서 올게요. 근데 오늘은 늦을까 봐 뛰어왔어요. 아침 먹지도 못하고 지각할 것 같아서.”그녀는 그 말에 피식 웃으며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유치원에서도 아침 먹을 수 있잖아. 집에서 못 먹는다고 굶을 일은 없어.”사실 선우민수가 다니는 유치원과 선우민기가 다니는 유치원에서는 아침 식사가 제공되었다.하지만 전창빈이 집에 오게 된 뒤로 두 아이는 집밥을 거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아이들은 배가 부를 만큼은 아니어도 꼭 다섯 입, 여섯 입은 그의 음식을 먹고 가야 했다.그리고 학교에서 아침 운동하고 다시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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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34화

“누나, 창빈 형이 이번 주 토요일에 우리를 위해 캐릭터 모양 간식을 만들어주기로 했어요. 누나, 반대하지 않을 거죠? 이미 유치원 친구들한테 다 말했는데 다들 우리 집에 온다고 했단 말이에요.”어린 선우민수도 체면을 중시했다.엄격한 누나가 혹시라도 거절할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이미 유치원에서 전창빈이 직접 만들어준다고 자랑해 버린 터라 만약 취소되면 아이들 사이에서 망신할 것이 뻔했다.전창빈의 약속 이후로 유치원에서 선우민수는 더 인기쟁이가 되었다.친구들은 모두 전창빈이 만들어주는 귀여운 모양의 간식을 먹어보고 싶어서 선우민수와 더 가깝게 지냈다.만약 선우민아의 동의가 없다면 전창빈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터였다.그녀는 그런 동생의 속내를 읽은 듯 미소 지으며 그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전창빈 씨가 약속했다면 반드시 지킬 거야. 누나도 주말에 집에서 쉴 거니까 굳이 막지는 않을게. 하지만 조건이 있어. 우리 집에서 떠들거나 뛰면 안 돼. 너희 집에 가서 놀아. 누나는 조용히 쉴 거니까.”“고마워요, 누나! 친구들한테 꼭 말할게요. 시끄럽게 안 놀게요.”허락이 떨어지자 선우민수의 얼굴이 금세 환하게 폈다.“누나, 민기 형은 아직 안 일어났어요?”그녀는 동생의 가방을 받아 들며 부드럽게 대답했다.“곧 내려올 거야. 잠깐만 기다려. 오늘 누나는 미팅이 있어서 유치원 근처를 지나가거든. 데려다줄게.”“정말요? 야호!”선우민수의 눈이 반짝이며 폴짝 뛰었다.“누나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어?”선우민아는 웃으며 소파로 걸어가 가방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테이블 위에는 오늘 배달된 신문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신문은 그녀의 아버지가 매일 읽는 습관 때문에 도우미가 늘 제일 먼저 가져다 두는 것이었다.그녀는 잠시 신문을 펼쳐 훑어보았다.그 사이 선우민수는 가만히 있지 못했다.그는 주방으로 달려가 전창빈이 아침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더니 두 눈을 반짝였다.“전창빈 형, 제가 도와드릴게요!”그는 스스로의 식판을 조심스레 들어 식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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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35화

전창빈은 아침 식사 두 사람 2인분을 식탁에 놓은 뒤 신문을 보고 있는 선우민아에게 다가가 말했다.“아가씨, 식사하세요.”“저도 왔어요. 저도!”선우민기의 목소리가 계단 위에서 들려왔다.곧이어 선우민기가 한 손으로 작은 가방을 질질 끌며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민기야.”선우민아가 불렀다.선우민기는 바로 멈춰 서서 가방을 들고 제대로 메더니 더는 뛰지 않고 한 계단씩 조심스럽게 내려왔다.두 아이의 성격은 참으로 비슷했다.“누나, 좋은 아침이에요. 창빈 형, 좋은 아침이에요.”선우민기는 공손하게 인사했다.“앞으로 또 계단을 뛰어 내려오는 걸 내가 보게 되면 일주일 동안 창빈 형이 만든 음식 못 먹게 할 거야.”“일주일은 너무 길어요.”선우민기는 본능적으로 흥정하기 시작했다.“뭐? 그럼 아직도 뛰어다니겠다는 뜻이야? 그럼 한 달로 늘인다?”선우민기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고칠게요. 바로 고칠게요. 시간이 아까워서 그랬어요. 잘못했어요.”선우민아가 눈을 흘기자 선우민기는 자세를 똑바로 하고는 다시 장난스럽게 혀를 내밀었다.그리고 얼른 전창빈 뒤로 숨었다.선우씨 가문의 딸들은 모두 전창빈에게 어느 정도 체면을 세워주었기에 선우민기는 스스로 전창빈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을 잡았다고 생각했다.앞으로 잘못하면 전창빈에게 도와달라고 할 속셈이었다.전창빈이 도와줄 리 있겠는가. 차라리 나쁜 습관을 고치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어차피 그는 영원한 선우민아의 편이니까.“가서 밥 먹어. 늦겠다.”선우민아는 시선을 거두어들였다.“이번만 봐준다. 다음은 없어. 내가 진짜 벌 줄 때면 네가 뭐라 해도 소용없어. 창빈 형도 못 도와줘. 이 사람은 내 말만 듣거든.”선우민기가 고개를 들어 전창빈을 보았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저는 아가씨의 전속 요리사니까 당연히 아가씨 말씀을 먼저 들어야죠. 도련님이 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아가씨 덕분이에요. 아가씨 말씀을 따르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요.”“창빈 형도 우리 누나를 무서워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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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36화

선우민아가 함께 식사하자며 식탁으로 전창빈을 불렀지만 그는 정중하게 사양했다. 그는 자신이 요리사이기 때문에 식사는 주방에서 해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그는 언제나 자신이 선우민아의 개인 요리사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조금 높게 본다고 해서 선을 넘는 일도 하지 않았다.전창빈의 이러한 원칙과 태도는 스스로 위치를 정확히 세우고 있었고 그것이 오히려 선우민아로 하여금 그를 더 높이 평가하게 했다.분명 수십조 자산을 가진 재벌가의 여섯째 아들임에도 선우민아의 개인 요리사 자리에 지원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전씨 가문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내려놓고 철저하게 그녀의 개인 요리사 역할에만 몰두하고 있었다.전창빈이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선우민아와 선우민기 형제도 식사를 마쳤다.그는 주방에서 나와 그릇들을 정리했다.선우민수는 의자에서 내려오며 전창빈에게 말했다.“형, 오늘 누나가 우리 유치원 쪽으로 지나간대요. 누나가 저르르 유치원 데려다준다고 했어요.”그 말은 분명 자랑이었다.선우민기는 역시나 부러운 눈길로 선우민아를 바라보았다.하지만 선우민아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나는 초등학교 쪽으로 가. 길이 달라.”선우민기는 작게 중얼거렸다.“누나는 나를 잘 안 데려다줘...”선우민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우민수는 그 뒤를 따라가며 선우민기를 향해 장난스럽게 얼굴을 찡그려 보이더니 재빨리 가서 자신의 작은 가방을 집어 들고는 선우민아를 따라 문밖으로 뛰어나갔다.“흥! 자랑은... 가는 길에 누나한테 잔소리 들을 수도 있는데.”선우민기는 누나와 동생의 뒷모습을 향해 투덜거렸다.전창빈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그럼 제가 모셔다드릴까요?”“괜찮아요.”전창빈이 아무리 좋아도 누나를 대신할 수 없었다.선우민기는 스스로 작은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평소 그를 데려다주는 전용 차량 운전기사와 두 명의 경호원이 이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전창빈은 그를 현관까지 배웅하고 차에 오르는 것을 확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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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37화

보안요원이 바구니를 하나 가져와 전이혁에게 건넸다.전이혁은 그 바구니를 받아 한가득 담겨 있던 고추를 그 안에 옮겨 담았다. 그리고 라이브 팀이 안내한 카메라 앞에 서서 말했다.“작년에 제가 무심코 아영 씨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습니다. 제 잘못입니다. 아영 씨에게 사과드립니다. 도아림 대표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제가 라이브로 고추 먹방을 하면 매일 이곳에서 아영 씨를 기다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다고요. 저는 매운 걸 못 먹고 평소에도 조금도 먹지 않는 편입니다. 그러나 아영 씨를 볼 수 있다면, 아영 씨에게 용서를 구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는 도아림 대표님의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지금부터 청양고추를 먹겠습니다.”라이브 팀은 당황했다.‘대표님께서 대본을 준비한 적 없는데... 전이혁 씨가 지금 스스로 이런 말들을 해도 괜찮나? 문제가 되지 않겠지?’라이브 팀의 누군가가 몰래 도아림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돌아온 답장은 이러했다.[그냥 두세요. 그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를 알고 있으니까.]잘못 행동하거나 잘못된 말을 내뱉기라도 한다면 전이혁은 도아영을 다시 붙잡기는커녕 오히려 그녀에게서 더욱 멀어질 뿐이다.전이혁은 고추 한 줌을 움켜쥐어 하나씩 입에 넣고 씹었다.입안 가득 매운맛이 번졌고 혀끝이 불에 덴 듯 얼얼했다.입안이 활활 타오르는 듯해 혀를 내밀며 토해내고 싶지만 꾹 참아냈고 몇 분이 지나서야 그는 다른 고추를 입에 넣을 수 있었다.이 고추 먹방은 도씨 그룹 전체 직원들이 휴대폰으로 볼 수 있었다.도아림은 회사의 업무 단톡방 여러 곳에 이 라이브 링크를 올려두어 5분만 보도록 했다. 괜히 오래 보다가는 업무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도씨 그룹뿐만 아니라 도씨 가문 전체, 그리고 멀리 관성의 전씨 가문의 사람들도 이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었다.도아림은 전씨 할머니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직접 연락했고 심지어 할머니의 카톡도 추가했다. 그리고 전이혁이 고추를 먹는 라이브 화면을 그대로 보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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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38화

이미 이렇게까지 매워진 이상, 더 매워 봐야 거기서 거기였다.전이혁은 결국 가족들이 말한 대로 고추를 한 움큼씩 집어 입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매운맛이 훅 치고 올라와 눈물이 흘렀고 입안은 부은 것처럼 화끈거렸다.도아영도 그 댓글들과 전이혁이 고추를 한입 가득 먹고 있는 장면을 보고 있었다.그러다가 더는 전이혁이 그렇게 매워하는 모습을 볼 수 없어 핸드폰을 꺼버렸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로 업무에 집중되는 것도 아니었다.괜히 속이 불편하고 초조했다.잠시 후, 도아영은 들고 있던 펜을 책상 위에 던지듯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리고 사무실 밖으로 빠르게 걸어 나갔다.문을 나서자마자 마주한 사람은 도아림이었다.“언니.”도아영이 물었다.“밖에 나가려고?”도아림은 모른 척 물었다.“언니, 그 사람은 원래 매운 걸 못 먹어요. 그런 사람이 저렇게 먹으면 위에 무리 갈 텐데.”도아영의 목소리는 어쩐지 평소보다 낮고 조용했다.그녀의 마음에는 여전히 전이혁을 향한 마음이 남아 있었다.도아림이 가볍게 웃었다.“마음이 쓰였으면 나가서 말리면 되잖아. 매운 거 못 먹는 사람이 저 정도로 먹었으면 충분해."애초에 도아림도 전이혁에게 진짜로 바구니에 담긴 청양고추들을 먹이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정말로 다 먹게 하면 위험할 터였다.그저 조금 곤란하게 만들고 전이혁이 정말로 동생을 향한 진심이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을 뿐이다.물론 이제 겨우 첫 번째 관문일 뿐이다.예전에는 전이혁이 도아영에게 구애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전씨 가문은 관성에서도 손꼽히는 재벌 가문이었고 전이혁이라는 사람 역시 행동과 예의가 단정하여 선우씨 가문 모두가 만족해했다.도아림은 직접 전이혁에 대해 조사까지 했었다. 만약 동생이 전이혁과 결혼한다면 틀림없이 행복해질 거라고 믿을 만큼.전씨 가문의 집안 분위기는 오래도록 잘 닦여 있었고 그 점 역시 가문의 어른들 마음에 쏙 들었다.하지만 전이혁은 스스로 그 기회를 놓았다.도아영의 마음이 막 열리던 시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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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39화

“언니, 무슨 일 있어요?”도아영은 마음은 이미 아래층으로 향해 있었지만 그래도 도아림에게 한마디 물었다.“업무에 관련된 거야. 그런데 이야기하려면 시간이 좀 걸려. 지금 나랑 먼저 업무 얘기를 할 거야, 아니면 내려가서 전이혁 씨가 계속 고추를 먹지 못하게 막을 거야?”도아영은 잠깐 망설였지만 결국 전이혁을 먼저 막으러 가기로 선택했다.도아림은 그 선택을 예상했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이제 동생은 전이혁에게 이미 마음이 깊이 묶여 있었다.물론 전이혁 역시 도아영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그가 사랑했던 사람은 애초에 다른 여자가 아니라 도아영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모습이었으니까.결국 전이혁이 사랑한 사람은 처음부터 도아영 한 사람뿐이었다.만약 그가 사랑한 여자가 도아영이 아닌 다른 여자였다면 도아림은 절대로 동생이 그에게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도씨 가문의 딸들은 이미 떠나간 사랑을 구걸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다.“언니, 십 분만 기다려요.”“그래. 나는 네 사무실에서 기다릴게. 아니면 네가 조금 있다가 내 사무실로 와도 되고.”도아영은 걸음을 재촉하며 말했다.“잠시 후에 언니 사무실로 갈게요.”도아림은 그런 동생을 내려가는 모습을 끝까지 바라보았다.그리고 도아영의 비서에게 말했다.“전이혁 씨에게 아직도 마음이 남았나 봐요.”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전이혁 씨는 우리 부대표님께서 처음으로 진심을 준 사람이에요. 그때 우리 부대표님께 정말 잘해 주셨어요. 그런 사람 앞에서 마음이 안 움직일 여자가 있을까요?”“그러게요.”도아림이 조용히 말했다.“집안도 좋고 능력도 있고 잘생긴 데다 돈도 많고 마음도 세심한 남자죠. 그런 사람이 한 여자에게 전부를 쏟는데 마음이 움직이는 건 당연하죠. 다행이에요. 이제 전이혁 씨는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것 같으니까.”한 번 멀어졌다가 다시 마주한 인연은 이어진 뒤에는 더 귀하게 느껴지는 법이었다.비서가 말했다.“우리 부대표님은 총명한 사람이라 이번에는 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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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40화

곧 누군가가 큰 컵에 미지근한 물을 담아 도아영에게 건네왔다.그녀는 그 컵을 건네받아 전이혁에게 내밀었다.전이혁은 컵을 받아 들고 단숨에 들이켰다.입안의 매운 기운이 조금 가셨어도 혀끝은 여전히 얼얼했다.“아영 씨의 언니가 나보고 저 고추를 전부 다 먹으라고 했는데 아직 반도 못 먹었어요.”전이혁은 절반도 못 비운 바구니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태어나서 이렇게 매운 것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목 안쪽까지 뜨겁게 달아올라 말하는 목소리마저 쉬어 있었다.해성은 바람이 매우 차다. 만약 이곳이 관성이라면 이렇게 매운 고추를 한가득 먹게 되면 그날 당장 목이 붓고 장이 뒤틀리듯 아파오며 열이 오르는 증상이 잇따랐을 것이다. 그러고는 화장실에 들어가 한참 동안 나오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해성은 기온이 낮아 매일 조금씩 매운 것을 먹는 건 무리가 없지만 그렇다고 전이혁처럼 이렇게까지 과하게 먹는 것은 위장 받아내지 못할 터였다.도아영이 말했다.“그만 드셔도 돼요. 언니한테 말했어요. 이제 안 먹어도 된다고. 언니도 동의하셨어요.”도아영은 직원에게 말했다.“물 한 잔 더 주세요. 물 마시면 바로 병원으로 가요.”너무 많이 먹어서 위염이 올까 걱정이었다.“저는...괜찮아...켁...”전이혁이 기침했다.도아영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가 두 번째 컵의 물을 다 마시자 그대로 그의 팔을 잡아끌어 차 쪽으로 데려갔다.“얼른 들어가 앉아요.”말이라기보다 거의 명령에 가까웠다.도아영은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걸고 그를 데리고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도아림과 해야 할 업무 이야기는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졌다.도씨 그룹 본사, 꼭대기 층 대표실에서 도아림이 창가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손에는 망원경을 들고 회사 대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도아영이 전이혁을 데리고 가는 것을 확인하자 도아림은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어디 가?]도아영은 짧게 음성 메시지로 답했다.[병원에 좀 다녀올게요.]도아림은 속으로 중얼거렸다.‘이 정도로 매운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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