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Chapter 1631 - Chapter 1640

1845 Chapters

제1631화

리아는 그때 그렇게 생각했다.‘조지언... 그냥 이렇게 버리기엔 아깝지.’“그럴 바엔 지언 씨 기분 좀 맞춰주고, 살짝 애교 좀 부려주면 되겠어.” 정은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이 말, 조 대표님이 직접 들으면 기뻐서 당장 날아오르겠어.’“에이, 자꾸 저한테만 묻지 말고요. 정은 씨랑 조 교수님은 어때요?”정은은 솔직하게 답했다.“저희는 다시 만나기로 했어요.”“저도 그럴 줄 알았다니까요!”리아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조 교수님, 이번에 온 거 보나 마나 작정하고 준비해 온 거잖아요. 전진욱 교수님한테 미리 들었어요.”“조 교수님이 전부터 밤낮없이 실험실에서 일만 했다고요. 하던 일 다 정리해 놓고 맥스 군도로 올 궁리였던 거죠.”정은의 손이 잠깐 멈췄다. 칼끝이 도마에 멈칫 박히며, 순간 놀란 기색이 스쳤다.리아는 신나게 말을 이어갔다.“앞으로 3년짜리 과제까지 싹 다 계획 세워 놓고, 연구원들 진로까지 알뜰히 챙겨 놨대요. 이게 무슨 뜻이겠어요?”정은은 고개를 들어 조심스럽게 물었다.“무슨 뜻인데요?”리아가 확신 가득한 표정으로 단언했다.“조 교수님, 여기에서 오래 버틸 각오로 온 거잖아요.”...밥상이 차려졌다.정은과 재석은 이미 조금 전에 식사했기에 젓가락질만 성의껏 거드는 정도였다. 사실상 손님을 위해 식탁을 지킨 셈이었다.반면 지언과 리아는 달랐다. 젓가락을 집자마자 고개도 안 들고 먹기 시작했다. 대화 따위는 뒷전이었고, 오직 먹는 데에만 집중했다. 마치 며칠 굶은 사람들 같았다.걸신들린 것 같다는 말은 과장된 표현이지만, 그렇다고 점잖게 ‘음식을 즐겼다’라고 하기엔 또 너무 잘 먹었다. 뭐...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아주 잘 먹는다는 표현이 맞았다.“맛있어요! 더 먹자! 정은 씨, 밥도 좀 더 줘요!”리아는 개의치 않고 쾌활하게 외쳤다.지언은 주변을 슬쩍 훑어본 뒤 조심스레 물었다.“저기... 정은 씨, 밥 더 있어요? 한 그릇 더 먹고 싶어서...”결국 두 사람이 젓가락을 내려놓았을 땐, 상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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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2화

“네.”하린의 눈가가 금세 젖어 들었다. 단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았다.그제야 리아의 긴장이 풀렸다.“하린아, 일어났어? 건물 뒤꼍에 동백꽃이 활짝 피었더라, 내가...”올리버가 들뜬 목소리로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지만, 눈앞에 리아를 본 순간, 발걸음이 덜컥 멈췄다. 조금 전까지의 환한 미소가 순식간에 굳어버렸다.그의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는 좋지 않은 기억들이 물밀듯 스쳐 갔다.“돌아... 오셨네요.”목소리마저 갈라져 나왔다.리아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웃는 얼굴로 올리버 쪽으로 다가갔다.“왜 그래? 말투 보니까, 마치 내가 반갑지 않은 것 같은데?”올리버는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가요... 하린아, 내가 아침밥 가져올게!”끝까지 말하지도 못한 채, 그는 토끼보다 빠르게 도망치듯 뛰쳐나갔다.리아가 고개를 돌리자, 하린은 이미 침대에서 내려와 세수하고 있었다. 조금 전의 일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하린이가 세수를 마칠 즈음, 아침이 도착했다.문을 열자, 트레이를 들고 서 있는 건 올리버가 아니라, 하린 곁을 지키던 경호원이었다.“올리버는요? 아침 가지러 간 거 아니었어요?”“올리버가 저한테 맡겼습니다. 저더러 가져가라고 하더군요.”“그래요, 두고 가세요.”리아는 방 안에 들어와 하린과 함께 아침을 먹었다.식사가 끝나자,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동백꽃이 핀 언덕으로 향했다.멀찍이 높은 곳에 서 있던 올리버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 중얼거렸다.“분명 내가 제일 먼저 발견한 건데... 하린이랑 같이 보려고 했는데...”‘한발 늦었어. 결국 또 기회는 놓쳤네.’그의 눈빛에는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아침 식탁에는 지언과 재석, 두 형제가 마주 앉아 있었다.“정은 씨는? 왜 같이 안 먹어?”지언이 슬쩍 물었다.“정은이 바빠. 이 시간이면 벌써 일 시작했지.”재석이 태연하게 답했다.“정은 씨는 일하고, 넌? 상처 다 나으면 여기 계속 있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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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3화

“아쉽게도, 그 사실을 깨닫기엔 너무 늦었지. 그래도 지금이라도 다시 만회할 기회가 남아 있어서 다행이야.”재석이 낮게 중얼거렸다.지언은 미간을 찌푸렸다.“그게 전부 네 잘못은 아니잖아. 정은 씨가 너랑 헤어진 게, 어머니 때문만은 아니겠지...”“그래도, 그게 정은이한테는 분명한 이유가 됐어. 전부는 아니더라도, 한 부분은 맞아.”재석의 눈빛은 결연했고, 그 눈빛을 본 순간 지언은 더 이상 재석을 말릴 수 없음을 깨달았다.아니, 굳이 말릴 마음도 없었다.‘나 역시 그랬으니까.’강서원이 리아를 곤란하게 만들려 했을 때, 지언의 첫 반응은 경고였다.그다음으로는 리아를 달래며 앞으로는 절대 어머니와 마주치게 두지 않겠다는 약속.재석이 내린 결심은, 결국 자신이 이미 택했던 길과 다르지 않았다.“네 말이 맞아.”지언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어머니가 여기까지 온 건 어머니 스스로 내린 선택의 결과야. 우리는 각자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충분히 했지.”그는 이어서 고개를 끄덕였다.“지금은 나랑 너 둘 다 호주에 있으니까, 결국 집에 자주 가는 사람은 지훈이더라. 다행히 아직 여자친구는 없으니까 그나마 버티는 거지.”“근데도 꽤 힘든 모양이야. 며칠 전에도 카톡 와서 언제 귀국하냐고 묻더라. 집안 분위기 못 견디겠다고.”한때는 집에 발길이 가장 뜸했던 게 조지훈이었다.하지만 강서원이 병을 얻은 뒤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지훈은 거의 매번 어머니의 부름에 불려 가야 했고, 이제는 그간 형제들에게 진 빚을 톡톡히 치르는 중이었다.재석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올라갔다.“지훈 형이 부모님 곁에 좀 더 있어 드리는 게 나쁜 건 아니니까.”지언도 덩달아 웃으며 받아쳤다.“나도 같은 생각이야.”형제는 말없이 묘한 합의를 보았다.한편, 국내에 있는 지훈은 시원한 사무실에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서류를 정리하다가, 별안간 연달아 세 번이나 재채기했다.“엥? 누가 내 이야기 하나?”그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다시 업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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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4화

올리버는 속으로 수없이 갈팡질팡 흔들렸다.그 와중에도 하린은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채, 조용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올리버는 더 이상 하린의 눈을 똑바로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내가 조금만 더 용기를 냈더라면...’‘하린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 거야.‘진작 언니를 만나고, 진작 행복해졌을 텐데... 결국 다 내 탓이야.’이런 생각이 가슴을 짓누르자, 올리버는 차마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만약... 이것이 하린의 선택이라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묵묵히 지지하는 것뿐이었다.“그럼, 이거 받을게. 고마워. 그리고 내가... 미안해.”언제부턴가, 올리버의 눈가엔 눈물이 가득 차 있었다. 떨어지지 않게 고개를 숙이고, 연거푸 코끝을 훌쩍였다.“하린, 앞으로 가는 길이 늘 순탄하길 바랄게. 행복하게 살아야 해.”하린은 고요한 미소로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올리버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마지막으로, 안아봐도 돼?”“응.”올리버는 숨을 고르고, 천천히 두 팔을 내밀어 하린을 꼭 껴안았다. 가슴속에 뜨겁고도 쓸쓸한 감정이 한꺼번에 차올랐지만, 오래 붙잡지 않았다.곧 그는 조심스레 팔을 풀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그럼, 나 갈게. 푹 쉬어.”“응.”브로치를 꼭 움켜쥔 올리버는 그대로 달려 나가 버렸다....그 뒤로 이틀 동안, 올리버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전해산 교수가 전한 말에 따르면, 어느 깊은 밤, 올리버가 조용히 짐을 싸서 하린 옆 작은 방을 비우고, 예전처럼 무너져 가는 새 건물로 돌아가 버렸다고 했다.하린은 그런 변화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그녀는 하루 중 대부분을 언니 리아와 함께 보내며, 놓쳤던 시간을 메우려는 듯, 끊임없이 곁을 맴돌았다.리아도 마찬가지였다.‘우리 하린이, 어쩜 이렇게 어린애 같지?’‘자꾸만 달라붙고, 투정도 부리고... 그래도 난 이런 하린이가 좋아.’리아 역시 마음 깊이 아쉬웠던 세월을 되찾으려는 듯,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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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5화

하린은 뱃머리에 서 있었다. 바닷바람에 그녀의 긴 머리칼이 거칠게 휘날렸다.광풍처럼 흩날리며, 자유를 알리는 깃발 같았다.하린은 고요한 눈빛으로 섬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떠나는구나.’하린은 팔 년이나 갇혀 살며 짐승보다 못한 날들을 모질게 버텼다.이 순간, 그녀는 망설임도, 미련도 없었다.“가자, 재석아. 상처 잘 회복해.”지언의 말끝은 묘하게 길었다.재석은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하게 받아들였다.“응, 그럴게.”그 반대편에서 리아가 다가와 정은을 가볍게 안아주곤 물러섰다.“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고맙습니다.”“별말씀을요.”정은은 미소로 답했다.리아는 멀리 서 있는 두 조씨 형제를 흘끗 보더니,“어서 귀국하세요. 아마 정은 씨 요리를 그리워하게 될 것 같네요.”“그럼 변 선생님은 꽤 오래 그리워하시겠네요.”정은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당분간 이쪽 일은 끝나기 어렵지.’리아는 어깨를 으쓱했다.“그럼 뭐, 우리 실험실 보스가 무능하다고 생각해야겠네요.”...사람들은 차례로 배에 올랐고, 곧 닻을 올리자 선체가 서서히 부두를 떠났다.멀어지는 육지, 점점 작아지는 사람들.전해산 교수가 주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주광빈 교수에게 살짝 몸을 기울여 속삭였다.“올리버는 왜 안 나왔어?”주광빈 교수는 입술을 씰룩이며 대꾸했다.“정말 몰라서 묻는 거예요? 아니면 모른 척하는 거예요? 좋아하는 아가씨가 떠나는데, 앞으로 다시 볼 가능성도 거의 없고... 어느 청년이 그걸 견디겠어요?”전해산 교수가 코끝을 긁적였다.“그런가요... 외국인은 이런 감정 잘 모를 줄 알았는데...”“제발 좀... 올리버가 외국인이지 죽은 사람은 아니잖아요.”이별은 언제나 사람을 서글프게 한다. 피부색도, 국적도 상관없이.정은이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이제 됐습니다. 여기까지만 배웅해 주세요. 다들 돌아가세요.”사람들은 하나둘 고개를 끄덕이며 발길을 돌렸다.그때, 멀리서 한 사람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너무 빨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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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6화

하린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올리버가 죄책감을 느끼는 건 알아. 그때 상황에서 올리버 마음이 약해진 것도 이해해. 언니가 없을 때, 올리버가 곁에 있어 준 게 좋았어. 최소한 방 안에 틀어박혀서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는 날은 줄었으니까.”더 중요한 건...“올리버를 용서한다는 건 결국 나 자신과의 화해이기도 해. 나에게는 새 삶이 필요하고, 올리버는 용서가 필요해. 그래서 속죄할 기회를 주는 거고... 죄책감에서 벗어나도록...”리아가 눈썹을 살짝 올렸다.“근데, 너 안 무서워? 올리버가 평생 널 못 잊을 수도 있는데?”하린은 단호하게 말했다.“못 잊는 게 오히려 좋은 거 아닌가? 사람한테 가장 소중한 게 추억이잖아.”그 순간, 리아는 순수하기만 했던 동생이 처음으로 낯설었다.“언니, 왜 그렇게 봐? 내가 너무 심했어?”“아니.”리아는 손을 휘둘렀다.“내 동생 하고 싶은 거 다 해.”하린은 웃으며 언니 어깨에 기대었다.리아는 시선을 내려, 그 기대어 오는 무게를 온전히 받아주었다.지언은 두 사람 뒤에 서서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리아는 내 어깨에 저렇게 기댄 적은 없는데...’ ‘나한테 그런 눈길을 준 적도 없는데...’“큼, 헉!”지언은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게 헛기침했다. 목구멍이 타들어 가듯 따가웠지만, 리아와 하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를 마치 병풍 취급했다.하린이 작게 속삭였다.“언니, 형부 좀 소심해 보이는데?”리아가 태연하게 대꾸했다.“네 형부 원래 저래. 신경 쓰지 마.”“그건 안 되지.”하린은 몸을 바로 세우며 웃었다.“형부 눈빛이 칼 같아서, 나 그 칼에 썰리는 스테이크 조각이 되는 줄 알았어. 그러니까 언니, 이제 형부한테 돌아가.”그 말을 남기고 하린은 갑판을 떠나 배 안으로 들어갔다.지언은 재빨리 리아 옆으로 다가섰다.“자기야, 나...”“감기 걸렸어?”“아, 아니.”“근데 왜 자꾸 콜록거려?”“아, 그게... 어제 방 창문을 안 닫고 잤나 봐.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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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7화

리아 일행이 떠난 뒤, 정은은 사흘 동안 올리버를 보지 못했다.우연히 그를 다시 마주친 장소는 부엌 앞이었다.잘생겼던 올리버는 한순간에 초췌한 얼굴에 머리는 헝클어지고, 며칠 면도를 못 했는지 수염은 덥수룩했다.정은은 돌아서다 그 모습에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혹시, 정글에서 생존 훈련이라도 하고 온 거예요?”올리버가 배를 쓸며 낮게 중얼거렸다.“배고파요...”올리버의 시선은 정은 손에 들린 접시로 곧장 꽂혔다.“좋아요, 같이 드시죠. 대신...”정은이 위아래로 올리버를 훑어보며 말했다.“먼저 씻고, 수염도 좀 정리해야 할 것 같네요.”“알았어요! 5분이면 돼요!”그날, 정돈된 차림으로 다시 나타난 올리버는 연구팀 사람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누구도 하린의 이름을 꺼내지 않았다. 하린과 관련된 얘기도 없었다.올리버는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전해산 교수와 주광빈 교수의 눈가가 저릿했다.‘하... 실연이 사람을 이렇게 망가뜨리네.’두 교수는 잠시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재석과 정은이 나란히 앉아 있는 쪽을 번갈아 바라봤다.이제는 그 둘이 같이 있는 그림이 제법 괜찮아 보였다....고요한 날들은 빨리 흐른다. 주변의 풍경과 상황도 눈 깜짝할 사이 변해 버린다.올리버의 별채는 천천히 수리되었고, 정은이 쓰던 방 아래 지하실은 흙으로 메웠다.수많은 비밀을 감춘 그 지하 통로도 영영 봉인됐다.모든 비용은 호주 정부에서 전액 부담했다.리아가 일으킨 ‘큰 파문’ 덕분에, 이제 전 세계가 호주 외딴섬에서 H국이 비밀리에 스파이를 길러내며 정보를 빼돌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국제 사회는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스파이 양성 자체야 흔한 일이지만, 이렇게 통째로 발각되고 확실한 증거까지 잡힌 건 이번 한 번뿐이었다.지금까지 공개된 명단 속 스파이들의 행방은 이미 여든 개국 이상과 연결되었고, 세계의 이목은 모조리 맥스 군도를 주시하고 있었다.맥스 군도의 주민들은 꿈에도 몰랐다.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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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8화

전해산 교수가 혀를 끌끌 찼다.“좋지 뭐. 로봇 친구들이 계속 업그레이드돼서 아예 우리 일까지 다 해 줬으면 좋겠단 말이에요.”주광빈 교수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그러다 일자리 뺏기고 싶으셔요?”전해산은 입을 삐죽였다.“흥, 잘난 척하기는... 주 교수님도 솔직히 은퇴하고 싶잖아요?”‘뭐, 사실 좀 그렇긴 하지.’잠시 뜸을 들이던 전해산 교수가 슬쩍 화제를 돌렸다.“근데, 조재석 교수님 상처도 이제 꽤 나은 것 같은데... 슬슬 떠날 때가 되지 않았나요?”주광빈이 고개를 저었다.“제 느낌엔, 조재석 교수님은 계속 남고 싶어 하시는 것 같은데요.”“그건 좀...”머릿속에 여러 가지 계산이 오가는 전해산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끝을 흐렸다.연구팀 내부 규정상 재석은 분명 이곳에 오래 남을 수 없었다.무엇보다 ‘보안’ 문제가 컸다.팀 내 정식 임명된 인원 외엔 합류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으니까.그나마 지금까지 재석이 머물 수 있었던 건, 연구소 폭발 사건이라는 특수 상황이 있었고, 또 정은을 구하려다 큰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었다.그가 다리를 다친 뒤 연구팀이 치료 명목으로 받아들인 건 누구도 이견을 제시할 수 없는 일이었다.하지만 상처가 다 나은 뒤에도 계속 남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그리고 돈 문제도 있었다.지금은 재석의 의식주 비용을 정은이 개인적으로 부담하고 있었지만, 단순히 돈만의 문제는 아니었다.인력 배치가 얽혀 있었다.예를 들어 식사 준비.연구팀은 돌아가며 음식을 만들었다. 재석이 돈을 낸다고 해도 그건 재료비일 뿐, 인건비까지 다 낼 수는 없다.연구팀은 식당이 아니었고, 구성원 개개인은 요리사도 아니었으니까.전해산 교수와 주광빈 교수 본인은 이런 자잘한 걸로 시비를 걸 생각은 없었다.하지만 연구팀 전체로 보자면 얘기가 다를 수 있다.세상엔 별별 사람이 있으니까.정은은 연구팀 책임자였다.그 자리에 있는 이상, 더 많은 시선을 받고, 더 많은 구설에 오르기 쉽다.그래서 전해산이 걱정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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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9화

국내 상급 기관에서 내려온 메일의 요지는 이랬다.정부 측에서 재석에게 임시 임무를 내렸고, 그 기간에 그는 맥스 군도에 남아 연구팀과 함께 움직이며 협력해야 한다는 것.구체적인 임무 내용은 ‘절대 기밀’ 도장이 찍혀 있었다.“아...”주광빈 교수가 옆에서 전해산 교수를 흘겨봤다.“아침부터 뭔 소리예요? 말벌에라도 쏘였어요?”“주 교수님! 이거 좀 보셔야겠는데요!”주광빈이 화면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잠시 뒤...“헉, 진짜 있네요. 조재석 교수님 이름이...”이제는 공문으로 내려온 일... 누구도 더 이상 왈가왈부할 수 없었다.“근데... 도대체 무슨 임무길래 이렇게 비밀스럽게 굴까요?”주광빈은 잠시 생각하다가 낮게 중얼거렸다.“내 경험상, 저건 절대 문서에 못 쓰는 일일 거야. 아니면 아예 빛을 못 보는 내용이거나?”순간, 무언가 떠오른 주광빈이 숨을 들이켰다.“설마... 그 비밀 훈련... 읍!”전해산은 재빨리 만두 하나를 주광빈의 입에 쑤셔 넣었다.그리고 표정은 의미심장했다.“너무 많이 알려고 하면 다칩니다, 조심해요.”주광빈은 억울한 표정으로 만두를 꿀꺽 삼킨 뒤, 성난 듯 또 한입 베어 물었다.“근데 맛은 좋네요.”...방 안.정은도 같은 메일을 확인했다.연구팀에서 메일에 접속해 볼 수 있는 건 자신과 전해산 교수뿐이었다.“대체 이 임무가...”정은은 무심코 재석 쪽을 바라봤다.하지만 곧 붉은색 ‘절대 기밀’ 도장이 떠올라,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궁금하지? 이리 와. 내가 귓속말로 알려줄게.”재석이 자기 무릎을 툭툭 치며, 여우 같은 미소를 지었다.정은은 입꼬리를 씰룩였다.“죄송하지만 전혀 궁금하지 않습니다. 그런 비밀은 혼자 간직하세요. 그런데... 이 수법, 혹시 조지언 대표님한테 배운 건가요?”정은이 의심할 만도 했다.며칠 전 리아를 찾으러 갔다가 지언을 마주친 적이 있었다.그때 지언은 바로 이런 식이었다.손짓, 눈빛, 가벼운 몸짓. 전형적인 아양 섞인 과장된 태도로 리아의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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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40화

역시, 문서 속엔 오미선 교수의 사망 진상 조사 보고서가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서민호 일행이 이조화 교수와 만춘미 교수를 압송해 간 지도 이미 한 달이 넘었다.국가가 나서자, 입을 굳게 다물던 자들도 더는 입 다물고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문서는 사건의 경위를 비교적 상세하게 적시하고 있었다.발단은 섬에서의 일상적인 근무 중에 발생했다.오미선 교수가 우연히 이조화의 노트북을 보게 되었고, 그 안에 비밀 훈련소와 연락이 닿을 수 있는 단서가 있다는 사실을 의심해 이조화에게 물었다는 것이다.이조화는 ‘그건 제 개인용 컴퓨터일 뿐, 섬에서 개인적으로 인터넷을 쓰려고 가져온 것’이라고 해명했다.오미선 교수는 그 말에 별다른 의심을 품지 않았다.하지만 이조화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해, 비밀 훈련소 쪽에 보고를 올렸다.‘오미선 교수는 나를 의심하는 것 같다. 처리해야 한다’라는 취지였다.문서에는 이조화의 자백도 있었다.그녀는 자신이 연구팀의 책임교수 자리를 노렸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일부러 거짓말을 꾸며 누군가를 이용해 제거하려 했다고 진술했다.결국 비밀 훈련소는 ‘잘못된 판단의 위험보다, 차라리 단호한 제거’를 택했고, 오미선 교수는 그렇게 표적이 되었다.비밀 훈련소는 연구팀 내부에 잠복해 있던 또 다른 말단 인물을 꺼냈다. 바로 만춘미 교수였다.“만춘미는 의학 박사였고, 약물학에도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만춘미를 통해 마치 ‘자연사’한 것처럼 보이게 처리하자는 것이었다.계획은 교묘했다.오미선 교수의 체력이 원래 약했던 점을 이용해, 약물 상호작용을 통해 서서히 신체를 망가뜨리는 방식이었다.초기에는 항암제를 경구 복용시키는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약물 작용인지, 혹은 다른 요인인지에 의해 오미선 교수의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졌고, 결국 PO-X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만춘미는 그제야 자신들의 계획이 통하리라 확신했다. ‘바이러스 감염으로 죽게 하면 사람들은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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