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Chapter 1121 - Chapter 1130

1622 Chapters

제1121화

그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제가 말한 감사는 아직 제가 유리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 지도 모르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몰랐을 때... 어머니가 유리를 많이 도와주신 겁니다.”잠시 주춤거리던 박한빈이 다시 입을 열었다.“그러니까 유리한테 어머니는 사실... 충분히 좋은 어머니셨어요.”“하늘이에게는 더 말할 것도 없고요.”이건 두 사람이 처음으로 서로의 마음을 터놓은 순간이었고 김서영에게는 처음으로 얻은 확신이었다.그래서 그런지, 박한빈의 말에 김서영의 눈가가 갑자기 붉어졌다.술잔을 들고 있었지만 입으로 가져가지 못하고 허공에 멈춰 버렸다.이내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손은 허공에 떠 있었고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박한빈은 그런 김서영을 바라보다 다시 말을 이어갔다.“걱정하지 마세요. 앞으로도 제가 두 사람 잘 돌보고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가 될 겁니다.”“정말... 그런 날이 올 수 있다면요. 그때는 가끔 저희한테도 들러주세요. 네?”김서영은 아들의 말에 또다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러나 눈물은 이미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고 그녀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대답했다.“그래.”밤은 점점 더 깊어졌다.김서영은 성유리와 하늘이에게 세뱃돈을 건넸다.하늘이는 아직 어렸기에 어른들 사이에 감도는 어딘지 모르게 무거운 분위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평소처럼 순진무구하게 물었다.“할머니, 혹시 아빠랑 싸우셨어요?”김서영은 고개를 저으며 조용히 아이를 안아 올렸다.“그럼 할머니 혹시 우셨어요?”“아니야. 할머니는 기뻐서 그런 거야.”김서영은 하늘이의 땋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우리 하늘이도 곧 초등학생이네. 그러다 보면 금방 또 커버릴 거야.”“아직 6개월도 넘게 남았는데요,”하늘이는 반짝이는 두 눈으로 대답했다.“그리고 곧 유치원 졸업식도 있단 말이에요.”“응. 할머니도 알아.”김서영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고 그저 웃으면서 아주 진지하게 하늘이를 바라보았다.그 눈빛은 하늘이에게 조금 낯설고 어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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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2화

야심한 밤, 하늘에서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분명 근 몇 년간은 금성에서도 좀처럼 눈을 보기 어려웠는데 이틀째 계속해서 마치 그동안 내리지 못한 눈을 죄다 쏟아내려는 듯했다.성유리는 하늘이를 밖에 내보내지 않고 김서영 곁에 머물게 했다.김서영은 성유리의 의도를 알아차렸지만 말없이 받아들였다.설날 다음날, 박한빈은 사진사를 불러 가족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성유리는 하늘이에게 예쁜 원피스를 입혔고 긴 머리도 단정히 땋아줬다.그 덕분에 하늘이는 유난히 생기 있고 발랄해 보였다.그런데 정작 하늘이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왜 그래?”성유리가 먼저 물었다.“요 며칠 계속 기분이 안 좋아 보여.”하늘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럼 왜 그렇게 뾰로통해?”성유리가 다시 다정하게 묻자 잠시 망설이던 하늘이가 입을 열었다.“엄마, 혹시 나한테 뭔가 숨기고 있는 거 아니야?”그 말과 동시에 하늘이는 성유리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눈동자는 아주 진지했는데 마치 그녀의 표정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했다.아이의 물음에 성유리는 잠시 말을 잃었지만 곧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숨긴다니? 뭘?”“잘 모르겠어. 그냥 요 며칠 다들... 안 즐거워 보여.”하늘이는 미간을 찌푸리며 계속 말했다.“엄마랑 아빠 혹시 싸운 거야?”하지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늘이 스스로 고개를 저었다.“아니, 이건 아닌 것 같아.”싸운 거라면 예전처럼 말을 안 하거나 서로 피했을 테지만 요 며칠 두 사람은 평소처럼 대화도 하고 있었다.그렇지만 분명한 건 두 사람 모두 행복하지 않다는 것.“엄마,”하늘이가 다시 성유리를 부르고 나서야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아이를 바라보았다.“엄마, 나한테 숨기지 마.”성유리는 이미 자기 가슴 높이까지 키가 자란 하늘이를 바라보다 결국 입을 열었다.“하늘이는... 할머니 많이 좋아하지?”“당연하지!”하늘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그럼... 며칠 동안은 할머니 곁에 딱 붙어있어. 그래도 괜찮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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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3화

“좋아.”“꼭 오시는 거죠?”“그럼. 무슨 일이 있어도 할머니가 꼭 갈게.”“그럼 저희 약속해요!”김서영은 하늘이가 내민 새끼손가락을 바라보다가 잠시 멈칫했다.그러자 하늘이는 다급해졌다.“저희 꼭 약속해야 해요. 할머니, 절대로 거짓말하면 안 돼요!”그때 성유리가 뒤에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하늘아, 이제 사진 찍으러 가자.”하늘이는 말없이 김서영을 바라보았는데 이미 눈가가 붉어져 있었다.성유리는 혹시라도 하늘이가 갑자기 화를 낼까 봐 미리 달래려던 참이었다.그런데 하늘이는 눈을 비비며 다시 말했다.“괜찮아요. 할머니, 그때 못 오시더라도... 제가 졸업한 사진 꼭 보여드릴게요. 괜찮죠?”“그래.”그제야 하늘이가 환하게 웃으며 김서영의 손을 잡았다.“가요, 할머니. 저희 사진 찍으러 가요!”...어느새 밤이 깊었다.성유리는 하늘이의 침대맡에 앉아 책을 읽어주고 있었다.하지만 하늘이는 눈을 감지 않고 계속 말똥말똥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하늘아.”성유리가 조심스레 불렀지만 하늘이가 먼저 물었다.“엄마,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가?”“아마... 하늘로 가겠지.”“하늘에 별이 되는 거야?”“응.”“영화에서 봤던 주인공 아빠처럼? 맞아?”성유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할머니도 하늘로 가겠지?”“그래.”“근데 내가 할머니 보고 싶을 때, 하늘에 별이 없으면 어떡해?”성유리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할머니는 하늘의 별이기도 하지만 마당의 꽃일 수도 있고... 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일 수도 있어. 그러니까 네가 보고 싶다고 생각하면 할머니는 언제 어디든 너와 함께 있을 거야.”하늘이는 그 말이 완전히 이해가 된 건 아니었지만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자자.”성유리가 다시 다정하게 말하자 하늘이는 순순히 눈을 감았다.그녀는 아이 옆에 계속 앉아 하늘이의 숨결이 안정되는 걸 확인한 뒤에야 조용히 일어났다.그런데 막 방으로 돌아오려던 찰나, 하늘이 방 쪽에서 인기척이 났다.성유리는 순간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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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4화

박한빈과 김서영이 떠나는 날 놀랍게도 날씨가 맑게 개었다.드물게 내리쬐는 햇살은 온 도시를 환하게 비췄고 순간 이 계절이 봄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김서영은 끝까지 공항까지 배웅하지 말라고 했다.그래서 ‘이별’은 엔젤 월드 입구에서 이루어졌다.하늘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오늘이 지나면 할머니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걸.어린 마음에도 감정을 꾹꾹 눌러 담으려 애썼지만 눈물은 이미 맺혀 있었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할머니의 손을 꼭 쥔 채 놓지 않았다.“할머니가 하늘이한테 줄 선물이 하나 있어.”김서영이 말했다.하늘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할머니가 네 침대 위에 올려뒀단다. 하늘이가 가서 직접 찾아볼래?”하늘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손은 여전히 할머니 손을 꽉 잡고 있었다.“아직 시간 괜찮으니까 다녀와서 할머니한테 선물 마음에 드는지 말해줄래?”하늘이는 망설이다가 성유리를 바라보았다.“다녀와.”성유리의 목소리는 이미 쉰 듯 갈라져 있었다.그래서 하늘이는 더 말하지 않고 마음을 굳히듯 몸을 돌려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그 짧은 틈을 타 김서영과 박한빈은 빠르게 차에 올라탔다.“엄마.”성유리는 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가며 김서영을 불렀고 그녀는 그저 조용히 웃어 보였다.“여기까지만 배웅해. 하늘이 잘 부탁해. 앞으로는... 네가.”성유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그때, 박한빈이 운전사에게 출발을 지시했다.“잠깐만요! 잠깐만요!!”순간 하늘이의 외침이 들려왔다.온 힘을 다해 달려 내려오는 아이의 가슴은 격하게 오르내리고 있었다.차가 막 출발하려는 찰나, 하늘이는 생각할 틈도 없이 쫓아가려 했지만 성유리가 그녀를 붙잡았다.“안 돼! 엄마, 나 놓아줘! 나 할머니한테 가야 돼! 엄마, 제발 놓아줘!!”하늘이는 거의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그 목소리는 아이의 소리라기에는 너무나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가지 마요! 할머니!!”그 말을 끝으로 마치 쏟아지듯 눈물이 하늘이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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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5화

성유리는 하늘이를 억지로 다그치지 않았다.그녀는 알고 있었다.이 일은 하늘이에게 오래 아주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는 걸.이별이란 건 인생에서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다.가능하다면 성유리는 하늘이를 언제까지나 품에 안고 세상의 상처로부터 지켜주고 싶었다.하지만 세상에는 아이의 힘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일들도 존재했다.그건 박한빈 역시 마찬가지였다.그날로부터 사흘 뒤, 박한빈이 돌아왔지만 혼자였다.그의 곁엔 텅 빈 유골함 하나만이 남아 있었다.박한빈은 금성에서 소규모 장례식을 치렀다.그 장례는 박성훈의 아내도, 박한빈의 어머니로서도 아닌 김서영이라는 이름으로 치러졌다.박한빈은 부고도 따로 알리지 않았기에 장례에 참석한 이들도 많지 않았다.하늘이와 성유리, 그리고 박한빈 외에 저택에서 함께 지내던 도우미들, 그리고 승마장에서 일하던 직원 몇 명이 전부였다.성유리에겐 하나같이 낯선 얼굴들이었지만 그녀는 알 수 있었다.그들이 온 이유는 김서영의 신분 때문이 아니라 그저 김서영이라는 사람의 친구였기 때문이라는 걸.성유리는 문득 생각했다.어쩌면 이게 그녀가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고.하늘이는 성유리 곁에 바짝 붙어 서 있었고 그녀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검은 코트를 입은 하늘이의 귀 옆에는 성유리와 똑같은 하얀 꽃 한 송이가 꽂혀 있었다.성유리는 하늘이가 울 거라 생각했지만 고개를 숙여 바라보니 하늘이는 오히려 진지한 눈빛으로 묘비 위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리고 조용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할머니, 정말 예쁘다.”그 평범한 한마디에 성유리는 눈가가 금세 붉어졌다.입술을 달싹였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한참이 지나서야 간신히 입을 뗄 수 있었다.“응. 아주 예쁜 분이었지.”장례식이 끝나는 내내 박한빈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성유리는 그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나 먼저 위에 가서 좀 쉴게.”실버 포레스트에 도착하자 박한빈이 먼저 말했다.성유리는 멈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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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6화

박한빈은 원래 김서영의 제안을 거부하려 했었다.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김서영이 이렇게 아프게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을 때, 그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며칠 동안 박한빈은 자신의 솔직한 감정이 도대체 무엇인지도 몰랐다.김서영이 이제 고통에서 벗어난 걸 기뻐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그녀의 말을 들은 자신을 원망해야 하는 걸까도 모른 채 박한빈은 혼란스러웠다.마치 짙은 안개 속에서 헤매는 것 같았다.박한빈은 계속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지만 방향이 어디인지, 앞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그냥 어머니가 보고 싶은 거... 아마 그럴 거예요.”그 순간, 성유리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박한빈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이내 성유리가 그의 손을 꼭 잡으며 조용히 말했다.“괜찮아요. 결국 한빈 씨 친엄마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같은 피가 흐르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가까웠던 사람이에요.”“한빈 씨 어린 시절이 행복하지 않았던 건 사실이지만 그때 제가 어머니였다면 아마... 그것보다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없었을 거예요.”착한 어머니가 되려면 조건이 필요하다.그들의 위치에서는 한 번 추락하는 게 단순히 모든 걸 잃는 게 아니라 산산조각 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박한빈과 함께한 시간 동안 성유리는 그런 모습을 여러 번 봐왔다.파산한 회사, 견딜 수 없는 남편이 고층에서 뛰어내리고, 채권자들이 발걸음도 안 떼고 찾아오던 순간들.그들이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맨 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귀한 인물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야수 같았다.마치 모든 걸 집어삼키려는 듯 눈앞에 있는 걸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것 같았다.그래서 김서영은 늘 박한빈에게 엄격한 규칙을 가르쳤고 잔혹한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착한 어머니와 수호자 사이에서 그녀는 수호자를 택했다.그것이 김서영과 박한빈이 평생 풀지 못할 매듭이기도 했다.이제 박한빈은 어른이 되어버렸기에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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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7화

꿈속의 박한빈은 매우 행복했다.짧은 하룻밤이었지만 박한빈은 마치 평생을 산 듯 긴 시간을 느꼈다.눈을 떴을 때, 밖은 이미 밝았다.찬란한 햇살이 박한빈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고 몇 번 눈을 깜빡인 후에야 정신이 돌아왔다.옆을 돌아보니 성유리가 자기 손을 꼭 잡은 채로 침대 옆에 엎드려 있었다.박한빈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성유리의 뺨을 살짝 만졌다.그 한 번의 터치에 성유리는 잠에서 벌떡 깼다.“깨셨어요?”성유리가 먼저 말했다.“몸 아직 아파요?”체온계를 가지러 가려는 성유리를 박한빈이 꼭 잡으며 막았다.그리고 자신의 이마에 손을 댔다.“음, 열이 내린 것 같아.”그제야 성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몸은 좀 어때요? 아파요?”그 말에 박한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럼 뭐 좀 드실래요?”“응.”박한빈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네가 끓여준 죽이 먹고 싶어.”그의 대답에 성유리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알겠어요. 제가 끓여줄 테니까 일어나서 옷 갈아입으세요.”“응.”박한빈은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여전히 성유리의 손을 놓지 않았다.의아해진 성유리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자 박한빈은 다시 한참 그녀를 바라보다가 마침내 손을 풀었다.이내 성유리는 다시 웃으며 인사한 뒤, 계단을 내려갔다.그리고 박한빈은 침대에 앉아 그녀의 뒷모습만 바라봤다.그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그는 움직이지 않았고 한참 있다가 욕실로 향했다.10시간 넘게 잤더니 땀에 젖은 옷을 벗고 씻어냈고 턱에 난 수염도 깔끔히 밀었다.아직 편안한 옷을 입었고 앞머리가 길긴 했지만 아까보다 훨씬 깔끔하고 산뜻해 보였다.박한빈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속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누구에게, 도대체 왜 감사하는지는 오직 본인만 알았다.잠시 후, 박한빈이 밑으로 내려가 보니 하늘이도 깨어나 있었다.아이는 작은 사자 인형을 안고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이윽고 발소리가 들리자 하늘이가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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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8화

여름은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기온이 점점 무더워질 무렵, 하늘이도 졸업식을 맞이했다.아이는 여전히 졸업식의 사회자 역할을 맡았다.원래 선생님은 박한빈에게 학부모 대표로 연설을 하라고 권했지만 박한빈은 거절했다.그가 회의를 마치고 졸업식장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공식 행사가 시작되지 않은 상태였다.성유리는 거기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그녀가 마주한 사람을 보고 박한빈의 표정도 굳어졌고 빠르게 몇 걸음 다가갔다.“하늘이는 항상 정말 잘해왔어요. 저희 유치원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입니다.”조서온이 성유리 앞에 서서 다소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자 성유리는 미소 지었다.“하늘이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그건 당연한 일이죠.”조서온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런 말을 내뱉었다.“앞으로도...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네요.”그 말에 성유리는 잠시 멈칫했다.그녀가 미처 대답하기 전에 박한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성유리.”조서온은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박한빈의 목소리를 듣자 표정이 확 달라졌다.성유리는 웃으며 대답했다.“물론이죠.”그 한마디에 조서온의 눈빛이 반짝였다.“사실 이 도시는 꽤 작아요.”성유리가 덧붙였다.“그래서 기회가 있다면 분명 다시 만날 거예요.”그 말이 끝나자 조서온의 긴장한 표정이 점점 풀렸다.바로 그때, 박한빈이 성유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선생님이 하늘이를 칭찬하는 중이었어요.”성유리가 웃으며 대답했다.“그래?”박한빈은 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남자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의심이 섞여 있었다.그는 본능적으로 우위에 서는 사람이라 그 눈빛만으로도 조서온에게 보이지 않는 압박감을 줬다.조서온은 식은땀까지 흘렸고 상황을 지켜보던 성유리가 결국 박한빈을 살짝 당기며 말했다.“이제 하늘이 공연 시작하니까 저희는 가요.”박한빈은 고개를 끄덕이다 조서온을 한 번 더 쳐다본 뒤 그녀와 함께 앞으로 걸어갔다.“왜 그렇게 표정이 굳으셨어요?”같이 걷던 성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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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9화

놀란 성유리가 살짝 멈칫하자 박한빈이 재빨리 눈치채고는 물었다.“왜?”“나비가...”성유리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자 박한빈이 잠시 멈추더니 무대 음향기기 옆에 앉아 있는 회색 나비 한 마리를 바라봤다.이내 두 사람은 조용해졌다.“한빈 씨는 어머니라고 생각해요?”성유리가 조용히 물었다.“나는 그런 걸 믿지 않아.”박한빈은 단호하게 대답했다.그 냉정한 대답에 성유리는 자연스레 미간을 찌푸렸다.하지만 무언가를 더 말하려던 찰나, 박한빈이 다시 낮은 목소리로 입을 뗐다.“그래도 나는 믿고 싶어. 어머니라고.”...그 몇 달은 특히 빠르게 지나갔다.성유리는 하늘이 유치원 졸업한 게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초등학교 갈 날이 다가왔다고 느꼈다.박한빈은 처음에 하늘이를 위해 사립 국제학교를 보내고 싶어 했다.그렇지만 하늘이는 집 근처에 다니고 싶다고 했고 또 유치원 친구들처럼 무리 지어 다니는 것도 싫어했다.결국 박한빈은 집이랑 가까운 학교에 보내기로 했다.첫 등교일, 성유리가 학교에 하늘이를 데려다주었다.하늘이는 파란색과 흰색 교복을 입고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모습이었다.아직 어리지만 표정은 누구보다 더 엄숙해 보였다.성유리는 하늘이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좀 편하게 있어.”“나는 편해.”하늘이가 빠르게 대답했다.“그럼 좀 웃어볼래?”그러자 하늘이는 카메라를 향해 웃어 보였는데 그 모습은 마치 말을 잘 듣는 로봇 같았다.성유리는 답답해서 중얼거렸다.“점점 아빠 닮아가네.”“아빠 닮은 게 나쁜 거야?”그녀의 혼잣말을 들은 건지, 하늘이가 물었다.그리고 성유리는 아이에게서 그런 말이 나올 줄 몰라 잠시 멈칫했다.이내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좋지. 근데 아직 어린아이니까 좀 더 발랄하고 즐겁게 살아야 해.”“난 행복해.”“그럼 됐어.”성유리는 더 이상의 다그침 없이 그저 하늘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계속 말했다.“엄마는 네가 웃지 않아서 기분 나쁜 줄 알았어.”“아니야. 나도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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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0화

“유리 씨는 당연히 알겠죠. 방해준 씨가 나중에 만난 그 여자, 추형석 씨가 소개한 사람이니까.”“근데 유리 씨는 절대 상상도 못 할 걸요? 그 여자가 사실 최경언 씨랑 더 깊은 관계라는 거, 그리고 나중에 방해준 씨가 그렇게 빨리 몰락한 것도 그 여자의 실명 고발 때문이었어요.”“이거 최경언 씨가 아버지한테 덫을 놓은 거 아닌가요? 근데 궁금한 게, 추형석 씨도 최경언 씨랑 협력 관계였을 가요?”“근데 지금 다들 멀쩡한데 유독 추형석 씨만 행방이 묘연해졌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하다고요.”강지연의 말이 또렷하게, 한마디 한마디 성유리 귀에 쏙쏙 들어왔다.추형석이 실종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 성유리는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무슨 말씀을 하려는 거예요?”이내 성유리가 물었다.“아니, 전 그냥 궁금해서요.”성유리가 굳은 얼굴로 묻자 강지연이 웃으며 대답했다.“어차피 이젠 저랑 상관도 없으니 전 그 사람들이 다 망했으면 좋겠어요. 근데 추형석 씨가 정말 죽었다는 확실한 소식이 없으니까 좀... 실망스럽긴 하네요.”“시간도 늦었으니까 전 마트 가서 장 좀 봐야 할 것 같아요. 이만 가볼게요.”말을 마친 강지연은 인사하고 그대로 돌아섰다.성유리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운전기사가 와서 자신을 불렀을 때야 천천히 차에 올랐다.이 세상에 정말 그런 법칙 같은 게 있는지 모르겠다.낯선 이들이 이미 오랜 시간 성유리 삶에서 사라졌는데도 강지연이 다시 언급하자 그날 성유리는 기적처럼 최경언을 다시 만났다.지금 그는 더 이상 인플루언서가 아니었다.무대 뒤로 물러나 전문 매니지먼트 회사를 열어 인플루언서 육성, 유입 관리, 그리고 수익에 집중하고 있었다.성유리는 최경언 회사 직원에게 붙잡혔다.“아가씨, 참 분위기 있고 이미지도 좋아요. 저희 오디션 프로그램에 한번 나와 보는 건 어때요? 붙으면 저희 회사에 들어올 수 있는데 억대 수익 창출 정도는 껌이에요.”성유리는 그냥 쇼핑하러 온 것뿐이었다.그리고 이런 데 관심도 없었기에 손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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