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만큼은 오히려 이 자리가 장미자의 무대처럼 보였다.“보다시피, 난 네가 영 마음에 안 들어.”소지연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봤다.장미자가 비웃듯 가볍게 웃었다.“화도 안 나니?”“제가 왜 화를 내요?”소지연은 담담히 웃으며 대답했다.“저는 돈도 아니고 모든 사람한테 꼭 좋아해야 하는 대상도 아니에요. 아주머니가 저를 좋아하든 말든, 저한테는 중요하지 않아요.”예전 같았으면 이런 말이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죽을 고비를 겪고 나서야 알았다. 결국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느냐였다.이 세상에서 진심으로 신경 쓰이는 사람은 단 두 명뿐이다. 윤하경, 그리고 유호천.그 외의 사람들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다.무엇보다 유호천과의 관계 역시 억지로 붙잡을 생각은 없었다.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이었기에 장미자에게 굳이 잘 보이고 싶은 생각조차 없었다.장미자는 이런 태도가 의외였는지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오랜 세월 사교계에서 단련된 사람답게, 그녀는 소지연이 거짓을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제법 도도하네.”장미자가 차갑게 웃었다.“하지만 그 도도함, 내 앞에서는 아무 소용 없어.”그녀는 천천히 손을 들어 소지연이 건넨 물을 한 모금 삼켰다.소지연은 살짝 놀랐다. 아까까지만 해도 건드리지 않던 물을 마실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장미자는 잔을 내려놓으며 코웃음을 쳤다.“역시 별것 없네. 좋은 물은 아닌 것 같아.”말은 물을 두고 한 것이었지만 사실상 소지연을 향한 노골적인 비아냥이었다.소지연은 잠시 눈빛이 흔들렸지만 곧 다시 담담히 굳혔다.잠시 정적이 흐른 뒤, 장미자가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말을 꺼냈다.“됐어, 빙빙 돌릴 것도 없지. 오늘 온 건 분명히 말해두려고 왔어. 너랑 호천이의 관계, 이제 더 이상 반대하지 않겠다.”“네... 뭐라고요?”소지연은 순간 얼이 빠졌다. 처음에는 또다시 헤어지라고 으름장을 놓을 줄 알았는데 예상 밖의 말이 흘러나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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