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남편도, 아들도 내 발밑에 매달렸다: Chapter 461 - Chapter 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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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1화

“아린아, 나...”[여보, 어머니가 크게 다치셨어. 얼른 병원으로 와!]윤제의 머릿속이 순간 새하얘졌다. 생각할 틈도 없이 전화를 끊고는, 급히 차에 올라 아린이 보낸 주소로 핸들을 꺾었다....윤제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20분이 지난 뒤였다.아린은 미리 머릿속으로 온갖 변명거리를 정리해 두고 있었다. 지금은 병워ㄴ 복도의 의자에 앉아서 두 눈이 벌겋게 부어 오른 채, 눈물을 훔치며 초조한 모습을 연기했다.윤제가 보이자, 아린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품에 몸을 던졌다.“오빠, 어떡해... 다 내 잘못이야. 내가 어머니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어.”수술 중이라는 표시가 켜진 불빛을 올려다보며, 윤제의 이마엔 깊은 주름이 졌다. 긴장에 식은땀이 맺혔다.“대체 무슨 일이야? 어머니가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야?”아린은 윤제의 품에서 천천히 몸을 떼었다. 눈은 벌써 충혈되어 있었고, 얼굴은 한없이 연약하고 불쌍해 보였다.“오늘 오빠 출근하고 나서, 어머니가 전화를 주셨어. 감기 기운도 있고 열도 난다고, 많이 불편하시다면서... 갈비탕이 먹고 싶다고 하시길래, 제가 직접 장을 봐서 끓여드렸어.”말이 이어질수록 아린의 목소리는 한층 더 서러워졌다.“근데... 어머니가 기분이 안 좋으셨던 것 같아. 내가 끓인 국이 맛없다며 화를 내시더니, 그 자리에서 그릇을 던져버리셨어.”“난 그냥 어머니 몸이 아프셔서 그런 거라 생각하고 따지지도 않았는데... 그러다 어머니가 거실로 나오시다가 미끄러지신 거야. 아마 어지럼증도 있었던 것 같아. 그대로 쓰러지면서 머리를 탁자 모서리에 부딪치셨어.”아린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더욱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오빠, 너무 무서웠어. 피가 막... 사방에 번졌어. 119를 부르면 시간 지체될까 봐, 그냥 내가 어머니를 차에 태워서 바로 병원까지 왔어.”윤제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깊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눈썹은 단단히 묶인 듯 꼬여 있었지만, 결국 아린의 어깨를 토닥이며 조용히 위로했다.“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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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2화

윤제는 멍하니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선생님... 수술 성공 확률이 얼마나 됩니까?”“5%도 되지 않습니다.”문호의 목소리는 냉정했지만, 그 말은 칼날처럼 윤제의 가슴을 파고들었다.가능성은 있긴 했다. 그러나 과연 누가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을 걸고 그런 도박을 감히 할 수 있을까? 윤제조차 그 선택 앞에서 숨이 막혀왔다.두 눈이 충혈된 채, 자꾸만 눈물이 고였다.그때, 아린이 슬쩍 문호에게 눈길을 던졌다.문호는 그 신호를 알아챈 듯, 목소리를 높여 압박을 가했다.“보호자님, 빨리 결정해 주셔야 합니다. 환자분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으니, 수술 여부를 확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윤제는 이를 악물었지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머뭇거리는 그에게 아린은 마치 이해한다는 듯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오빠, 어머니가 수술을 안 해도 언젠가 깨어나실 가능성은 있잖아. 하지만... 수술을 했다가 잘못되면...”그녀는 일부러 말을 흐렸다. 하지만 그 한마디는 곧장 윤제의 뇌리를 울렸다.‘그래... 차라리 기다리는 게 나아. 지금 당장 어머니를 잃을 순 없어.’결국 윤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선생님, 수술은 하지 않겠습니다. 수술하지 마세요.”문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수술실로 들어갔다.약 15분 뒤, 수술실의 문이 열리며 도순희가 침대에 실려 나왔다.아린은 불안한 기색으로 다가가 얼굴을 확인했다. 도순희가 여전히 깨어나지 못한 채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을 확인하자,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윤제는 곧장 비서를 불러서 병원의 특실을 준비하게 했다. 도순희는 장비와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병실 침대 위에서 조용히 숨을 이어갔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생생하게 움직이던 어머니가 지금은 눈도 뜨지 못한 채 누워 있는 모습을 바라보자, 윤제의 가슴은 복잡한 감정으로 뒤엉켰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린은 오히려 ‘이게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윤제가 약해진 지금이야말로, 자신이 옆에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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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3화

윤제는 아린의 손을 꼭 잡았다.“필요한 건 다 사람 시켜서 사 오게 하면 돼. 너까지 고생할 필요 없어. 오늘 하루만 해도 너무 힘들었잖아.”아린은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어머니께 드릴 건 제 손으로 직접 고르는 게 마음이 편해. 걱정 마, 난 괜찮아.”그렇게 말한 뒤, 아린은 천천히 병실을 나섰다.사실 아린이 원한 건 물건을 사러 가는 게 아니었다.‘숨 좀 쉬어야지.’‘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계속 가면을 쓰고 있으면 지치는 법이야.’‘잠깐이라도, 그냥 나 자신으로 돌아가야 돼.’아린은 병동 밖으로 나간 뒤, 사람 발길이 드문 구석을 찾아 멈췄다.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깊게 들이켰다.첫 모금의 매캐한 연기가 폐 깊숙이 내들어오자, 어지러운 감각과 함께 겨우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하지만 제대로 한숨 돌리기도 전에, 아린이 있는 쪽의 문이 덜컥 열렸다.아린은 깜짝 놀라 급히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발로 짓이겨 꺼버렸다.그리고 고개를 들자, 나온 사람은 다름 아닌 문호였다.문호는 담배 연기와 매캐한 냄새를 맡으며 얼굴을 찌푸렸다.게다가 시선을 내리자, 아린의 발밑에서 아직 식지 않은 담배꽁초가 눈에 들어왔다.아린이 잠시 얼어붙은 표정을 짓자, 문호가 굳은 얼굴로 다가왔다.“언제부터... 담배 피우기 시작한 거야?”피할 수 없다는 걸 직감한 아린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꽤 됐어. 한동안 계속...”문호의 눈빛에는 당혹스러움과 서글픔이 동시에 얽혀 있었다.이유도 없이 가슴 깊은 곳이 복잡하게 아렸다.‘이게 정말 내가 좋아했던 그 아린이 맞나? 왜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는 거지.’자신이 처음 아린에게 끌렸던 순간을 떠올렸다.영리하고, 용감하고, 따뜻했던 모습.그에게 아린은 세상의 어떤 찬란한 단어와도 어울리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모습은, 그 기억과는 너무나 달랐다.문호는 문득 과거로 돌아갔다.학창 시절의 문호는 지금보다 훨씬 통통했고, 두꺼운 안경을 낀 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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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4화

“담배는 몸에 안 좋아.”아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문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았기에, 그저 묵묵히 기다릴 뿐이었다.예상대로, 잠시 후 문호가 아린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아린아, 그동안 도대체 무슨 일을 겪은 거야? 왜 이렇게 변해버린 건데?”아린은 가볍게 웃었다.“지금처럼 변한 게 뭐 어때서? 나쁘기라도 해?”“나쁘다고 한 적 없어. 나는 그냥...”문호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잠시 침묵이 흘렀고, 그제야 그는 조심스레 다시 말을 이었다.“혹시... 사랑 때문이야? 지난번에 당신 병력을 조작한 것도, 이번에 시어머니가 깨어나길 원치 않은 것도... 다 남편을 사랑해서, 그 사랑을 잃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건가?”사람은 감정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존재다.문호는 그것을 이해했다.하지만 그는 아린에게서 분명한 답을 원했다.아린은 그의 물음에 피식, 비웃음이 섞인 미소를 흘렸다.“사랑? 사랑은 남자들이 누리는 사치일 뿐이고. 여자에게 사랑은... 그걸 좇는 순간 인생이 무너지는 시작일 뿐이야.”“사랑 때문이 아니라면... 그럼 대체 뭔데? 예전의 넌 이렇지 않았잖아.”문호의 물음에, 아린은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이미 알고 있었다.그녀 자신도 예전의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뜨겁고, 순수하며, 때론 무모할 만큼 솔직했던 여자.하지만 지금의 아린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감내하고, 거짓과 어둠으로 가득한 여자가 되어 있었다.문호를 바라보는 아린의 눈빛에는 다시 짙은 냉소가 스쳤다.“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놀랄 것도 없지. 사람은 다 자기 살길을 찾아 발버둥치며 살아가니까. 하물며 나처럼 기댈 가족 하나 없는 사람이라면, 더더욱...”문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몇 년 만에 아린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니.그 이해할 수 없는 눈빛이, 날카로운 칼날처럼 아린의 가슴을 파고들었다.아린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했한다.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 자신이 부씨 집안 본가로 들어갔던 그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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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5화

“난...”문호는 말끝을 흐리며 얼굴을 붉혔다. 긴장이 그대로 드러났다.“문호야, 나 그 오랜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편하게 지낸 적 없어. 이 사회에서 내 발로 버티려고 애써봤지만, 결국 내가 원하던 결과는 오지 않았어. 그래서 날 지키려고 날카로운 가면을 쓸 수밖에 없었던 거야.”아린의 머릿속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무슨 말을 더 해야 설득력이 있을까?’잠시 후, 문호의 품에서 몸을 떼어낸 아린이 억울하다는 듯 문호를 올려다보았다.“그때 부윤제 집에 얹혀 살던 시절, 윤제는 늘 나한테 관심을 보였어. 그러다 교통사고로 크게 다친 뒤엔, 아예 날 자기 옆에 묶어두려고 했지. 그 지독한 집착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결국 난 해외로 도망쳤던 거야.”“근데 외국에서도 상황이 좋진 않았어. 결국 다시 국내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부씨 집안의 영향력이 어떤지는 너도 알잖아.”“날 찾는 건 그 집안 사람들한텐 식은 죽 먹기였어. 돌아온 뒤 부윤제는 날 끊임없이 괴롭혔고, 결국 자기 애인이 되라고 강요했지.”“그때 난 어쩔 수 없이 널 찾았어. 내 병력을 조작해 달라고 부탁한 건... 딴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야. 도망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부윤제 곁에서 합법적인 신분으로라도 버티고 싶었던 거지.”아린의 목소리는 점점 더 떨렸다.“결혼하고 나서도 알고 있었어. 부윤제와의 관계에서 사랑 같은 건 절대 없을 거라는 걸... 난 그냥 부씨 집안의 힘을 발판 삼아서 내 자리를 굳히고 싶었을 뿐이야. 내가 강해져야만, 언젠가 부윤제 손아귀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으니까.”말을 이어갈수록 아린은 더욱 서러운 표정이었다.문호는 그 말을 들으며 이마를 잔뜩 찌푸렸다.아린은 다시 한번 고개를 들고 말했다.“그리고... 시어머니 말이야. 내가 부씨 본가에서 얹혀 지내는 내내, 그분은 기분이 좋을 땐 웃어도 줬지만, 기분이 나쁠 땐 늘 나를 때리고 욕했어. 너도 그걸 다 봤잖아.”그녀는 팔을 걷어 올리며 도순희가 남긴 생생한 상처 자국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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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6화

문호는 순간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뒷걸음을 치듯 말했다.“그럼... 별일 없으면 일 봐. 난 이만 갈게. 필요하면 언제든 나를 불러. 난 늘 곁에 있을 테니까.”말을 마치고 나자, 문호는 수줍은 소년처럼 고개를 숙인 채 돌아서려고 했다.그 순간, 아린이 재빠르게 남자의 손을 붙잡았다.문호가 놀라 고개를 돌리자, 아린은 단숨에 다가가 발끝을 들어 올렸다.그리고 남자의 뺨에 아주 가볍게 입을 맞췄다.여자의 입맞춤은 잠깐의 스침에 불과했지만, 고요하던 문호의 마음에는 거대한 파문이 번져 나갔다.문호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얼굴이 삽시간에 붉게 달아오르면서, 불덩이처럼 달아오른 뺨이 드러났다.아린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문호야, 고마워. 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문호는 한참이나 멍하니 서 있다가 겨우 정신을 가다듬었다. 부끄러움에 차마 아린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도 못한 채, 입술 끝을 억눌러가며 웃음을 지었다.“고맙다는 말 하지 마.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행복해.”그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황급히 돌아서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남겨진 아린은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살짝 비튼 채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진문호 쟤는 이제 완전히 내 손아귀에 들어왔어.’‘설령 내가 살인을 지시해도, 잠시 머뭇거릴 뿐 결국엔 따르겠지.’그렇게 생각하니 아린은 씁쓸하게도 웃음이 터졌다.‘감정이란, 결국 양날의 검이지.’‘사랑을 내려놓는 순간, 여자는 무수한 무기를 손에 쥔 처형인이 되는 거야.’‘그리고 이 남자들은... 그 손에 쥐어진 가장 잘 드는 칼에 불과해.’...예진의 병실 한쪽에서 민혁은 보호자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잠들어 있었다.예진은 여전히 불안에 갇혀 있었다. 심리적 압박 탓에 불을 끄고는 도무지 잠들 수 없었고, 민혁은 그런 그녀를 위해 작은 무드등을 침대 머리맡에 켜 두었다.예진이 깊은 숨을 내쉬며 겨우 잠든 것을 확인한 뒤에야, 민혁은 조심스레 눈을 감았다.하지만 오래 지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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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7화

사람 마음은 억울할 때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 위로였다.누군가 달래줄수록, 오히려 더 서럽게 울고 싶은 충동이 치밀어 올랐다.지금의 예진이 그랬다. 눈물은 마치 터진 둑처럼 쏟아졌고, 울음소리는 점점 더 커지며 가슴을 찢어놓는 듯했다.결국 예진은 민혁을 끌어안아 버렸다. 남자의 어깨에 머리를 파묻은 채, 어린아이처럼 매달렸다.예진의 몸은 며칠째 이어지는 공포로 굳어 있었다.‘만약 아무도 날 구하러 오지 않았다면...’그 생각만 해도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만약 조금만 늦었더라면... 그러면 나는 어떻게 됐을까...’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림자들이 마음속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예진은 더욱 격렬하게 몸을 떨며 눈물을 쏟아냈다.오랜 시간이 흐른 뒤, 지쳐버린 예진은 결국 흐느낌을 멈추고 천천히 민혁의 품에서 몸을 뗐다.그제야 보였다.민혁이 입고 있던 고급스러운 실크 셔츠가 눈물과 콧물로 엉망이 되어 있는 것이.예진은 얼굴이 붉어졌다.목이 한결 풀린 듯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보았다.그러나 목소리는 여전히 흐느끼듯 떨렸다.“미안해요...”민혁은 눈을 크게 뜨며 놀란 듯 웃음을 터뜨렸다.“지금... 목소리가 나오는 거예요?”민혁이 곧바로 고개를 저으면서, 다급하게 말을 이어갔다.“아니에요, 미안하단 말은 하지 마요. 예진 씨가 편해진다면... 이 옷이 아니라, 내 옷을 다 손수건으로 써도 괜찮아요.”뜻밖의 말에 예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옆의 보호자 의자를 바라보다가, 다시 민혁의 긴장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순간, 예진의 마음속은 안전하다는 느낌이 가득했다.방금 전까지 예진을 짓눌렀던 공포는 어느새 한 줌의 재처럼 흔적도 없이 흩어져 사라졌다.대신 그 자리를 채운 건, 설명할 수 없는 단단한 안도감이었다.‘이 사람 옆이라면... 안전해.’순간, 병실 안의 분위기가 어색하게 굳어졌다.천장의 불빛은 따스했지만, 그 따스함이 오히려 두 사람 사이를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민혁은 침대 곁에 앉아 예진과 아주 가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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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8화

민혁은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말했다.“문 앞에서 기다릴게요. 약 교체하시죠.”말을 남기고 황급히 병실 문 쪽으로 걸어간 민혁은, 그제서야 숨을 고를 수 있었다.방금 전, 예진과 코끝이 맞닿을 듯 가까워졌던 순간이 떠올랐다.예진의 뜨거운 숨결이 뺨에 스치던 감각.그리고 눈을 감고 있던 에진의 얼굴이 머릿속에 선명히 각인됐다.민혁은 무심코 자기 코끝을 만지며, 바보처럼 웃음을 흘렸다.‘이런 기분... 도대체 뭐지.’한참이 지나서야 간호사가 병실 밖으로 나왔다.민혁은 잽싸게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가서, 태연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간호사가 멀어지는 걸 확인한 뒤에야 다시 병실로 발걸음을 옮겼다.예진은 이미 자리에 누워 있었다. 얼굴에는 여전히 붕대가 감겨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 안의 공기는 묘하게 달라져 있었다.예진은 눈을 감고 있었지만, 민혁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자고 있는 게 아니야.’그는 천천히 다가가 조심스럽게 몸을 숙였다.마치 잠자리 날개가 스치는 듯, 아주 가볍게 예진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그리고는 화들짝 놀란 듯 얼른 발길을 돌려 보호자 침대에 몸을 던졌다.이불을 머리까지 끌어올려 얼굴을 가린 채,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썼다.그 일련의 서툰 반응을 지켜보면서, 예진의 입가에는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사람 목숨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데...’‘괜히 지난 일에 얽매여 있을 필요가 있을까?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한데.’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후, 예진은 알게 되었다.삶은 짧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만이 진짜라는 것을.잘못된 길을 걸어왔다는 걸 깨달았다면, 이제라도 올바른 길을 향해 담대하게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재하는 국제적으로 손꼽히는 성형외과 의사를 찾아서, 예진의 얼굴에 흉터가 남지 않도록 힘썼다.민혁은 또 다른 방식으로 곁을 지켰다.심리 상담사를 불러 매일 함께 치료를 이어갔고, 예진이 두려움에서 하루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손을 잡아주었다.예진은 성실하게 협조했다.둘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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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9화

아린은 순간적으로 웃음이 터질 만큼 어이가 없었다.‘부윤제가 이런 말을 하다니...’‘나보고 회사를 그만두고, 이 집안을 위해 살림이나 살라고?’‘대체 고예진이 이 집을 어떻게 길들여 놓은 거야?’아린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표정은 굳어 있었고, 눈빛은 싸늘해졌다.“오빠 말은... 내가 전업주부가 돼서, 오빠 집안 식구들 생활까지 다 챙기라는 거야?”윤제는 그녀의 불쾌한 기색을 읽은 듯, 다급히 손사래를 쳤다.“아니, 그런 뜻은 아니고... 너도 헛수고하는 건 아니야. 매달 생활비로 2억을 줄게. 지금 하는 일보다 훨씬 많을 거야.”“우리는 부부잖아. 한 사람은 바깥일을, 한 사람은 안을 맡아야지. 내 수입이 훨씬 크니까...”윤제는 끝맺지 못하고 말을 흘렸지만, 표정만큼은 확고했다.그 태도는 상의가 아니라 통보였다.그런 윤제를 보자, 아린의 속이 더더욱 뒤틀렸다.‘고예진을 밀어내고 내가 부윤제의 아내가 됐으니, 이제는 이 집안의 힘을 등에 업고 올라설 수 있을 줄 알았는데...’‘결국 나는 또 이기적인 이 가족의 희생양일 뿐이네.’아린은 이를 악물었다. 거절하고 싶었지만, 윤제의 성격도 잘 알고 있었다.지금 정면으로 맞서면, 분명 윤제의 마음은 불쾌해질 뿐이다.결국 아린은 속으로 분노를 삼키고, 겉으론 차분히 대답했다.“이건 아무래도 중요한 문제니까... 며칠만 생각할 시간을 좀 줘.”윤제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대화는 끝내 불편한 여운만 남긴 채 마무리되었다.그때, 갑작스레 발소리가 들렸다. 잠옷 차림의 이안이 계단을 내려왔다.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이안은 망설임 없이 윤제에게 달려가 품에 안겼다.“아빠... 나 좀 아파.”윤제의 눈빛이 순간 달라졌다. 남편으로서는 부족할지 몰라도, 아버지로서는 분명했다.이안은 윤제의 가슴속 가장 소중한 존재였다.그 말을 듣자 윤제는 곧바로 긴장한 표정으로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앉았다.“어디가 불편해? 어디 아파?”그제야 자세히 보니, 이안의 모습이 예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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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0화

윤제는 아이를 안고서 급히 차에서 내렸다.의사들이 달려와서 이안을 침대에 눕히고, 곧바로 응급실로 밀고 들어갔다.윤제와 아린도 뒤따라 뛰어갔지만, 막상 문 앞에서 윤제가 따라 들어가려 하자 건우가 그를 붙잡았다.“지금 들어가 봐야 아무 소용없어. 오히려 방해만 돼. 진정해. 이안은 분명 괜찮을 거야.”윤제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참을 버둥거렸다.그러다 겨우 건우의 말에 멈춰 섰다.아린은 옆에서 억지로 마음을 다잡은 듯, 위로의 말을 흘리며 상황을 지켜보았다.시간은 더디게 흘렀다.30분쯤 지났을까... 응급실 문이 열리고 간호사들이 침대를 밀고 나왔다.여전히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이안은 그대로 병실로 옮겨졌다.담당 의사가 남아 윤제에게 상황을 설명했다.“당장 생명에 지장은 없습니다. 다만... 코피 증상이 언제부터였습니까?”윤제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대답했다.“두 달 전쯤부터... 계속됐습니다.”의사의 표정이 굳어졌다.“혈액검사를 진행 중인데 결과는 내일쯤 나올 겁니다. 하지만 가족분께서는...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아이 상태가 백혈병과 매우 유사합니다.”“백혈병...”그 한마디가 떨어지자, 윤제는 물론 건우와 아린까지 모두 얼어붙었다.윤제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그럴 리가 없어요... 어떻게... 어떻게 백혈병일 수가 있습니까?”의사는 안쓰럽다는 듯 숨을 내쉬었다.“아직은 초기 판단일 뿐입니다. 최종 진단은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죠. 혹시 평소 건강 상태는 어땠습니까?”윤제의 몸은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태어날 때 난산으로 몸이 많이 약했습니다. 음식 알레르기도 많아서, 아이 식단은 늘 엄격히 관리해 왔습니다.”의사는 잠시 고민하더니 다시 물었다.“그렇다면 혹시... 과자나 군것질 같은 걸 자주 먹였나요? 그런 게 아이 면역력에 큰 영향을 줍니다.”아린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짧고 미세한 반응이었지만, 그 순간을 건우가 놓치지 않았다.윤제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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