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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1화

그때 단성훈이 물었다.“아저씨는? 뭐라고 하셨어? 하지율이 그렇게 지분을 빼앗아 가는 걸 그냥 내버려 두신대?”그러자 연정미가 말했다.“하지율이 둘째 오빠 지분까지 손에 넣은 뒤로는 연경 그룹 안에서 하지율을 지지하는 쪽이 아버지 편인 주주들이랑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왔어. 지금은 하지율이 돌려주겠다고 해도 그쪽 주주들이 먼저 반대할 거야. 하지율은 아무 말도 안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자기편을 들어주는 주주들이 알아서 다 막아 줄 테니까.”주주들이 보는 건 감정이 아니라 이익이었다.연상진은 능력도 불안했고 회사도 하지율에게 털렸고, 잔꾀나 계략으로도 하지율을 이기지 못했다.그런 사람을 계속 밀어주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이 바닥은 결국 승자독식이었다.어떻게 이기든 끝까지 이기기만 하면 그만이었다.연태훈 역시 처음부터 그렇게 떳떳한 방식으로 여기까지 올라온 건 아니었다.그런데도 결국 회사 주주들의 지지는 얻어 냈다.지금 벌어지는 일도 결국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 셈이었다.연태훈이 하지율의 손에서 지분을 다시 받아 오고 싶다면 먼저 주주들부터 설득해야 했다.주주들은 전부 이익 앞에서는 검은 것도 희다고 우길 수 있는 여우 같은 인간들이었다.결국 연상진이 했던 생중계조차 도리어 연상진에게 불리한 증거가 되어 버렸다.연정미가 다시 말했다.“그 주주들이 이렇게까지 말했어. 아버지가 끝까지 밀어붙이겠다면 상진 오빠가 사람들 앞에서 주용화를 납치하고 칼까지 들이댄 일도 바깥에 전부 공개하겠다고 했어. 그리고 그대로 법원에도 제출하겠다고 했지.”단서현이 눈을 크게 떴다.“그럼 그 사람들은 네 오빠를 진짜 감옥에 넣겠다고 협박하는 거야?”연정미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이번 일은 쉽게 뒤집기 힘들었다.그렇다고 연상진을 버릴 수도 없었다.정말 연상진을 외면해 버리면 연상진은 분명 미쳐 날뛸 것이다.심하면 완전히 등을 돌리고 되레 자기 가족을 물어뜯으려 들 수도 있었다.그래서 그들은 연상진을 포기할 수 없었다.단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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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2화

그림과 거의 같은 각도가 나오는 병실은 두 군데였다.그중 한 곳이 바로 하지율과 주용화가 함께 있었던 병실이었다.‘이게 정말 우연일까? 아니면...’그 순간만큼은 손형원도 확신할 수 없었다....표서준의 정체가 드러나고 주주들 사이에 숨어 있던 내통자 몇 명까지 찾아낸 뒤에야 지분을 둘러싼 소란은 겨우 끝났다.하지율도 그제야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표서준은 회사 기밀 유출 혐의로 결국 감옥에 들어갔다.관련 금액이 워낙 컸던 탓에 아마 평생 감옥에서 썩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주주들 쪽은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그들은 직접 기밀을 빼돌린 건 아니었고 일이 터졌을 때 옆에서 판만 키우고 불만 지핀 정도였다.그래서 법적으로 손을 쓰기가 쉽지 않았다.물론 그 부분까지 하지율이 직접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만성휘와 이 이사가 알아서 처리할 일이었다.한바탕 버티고 물어뜯고 난 뒤, 연상진도 결국 4퍼센트의 지분 보상받아 가는 선에서 체념했다.이제는 더 이상 난동을 피우지도 않았다.다만 요즘 연상진은 회사에는 신경도 못 쓰고 매일 소아린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하지율이 연씨 가문으로 돌아갈 때마다 멀리서 두 사람이 물건을 집어 던지며 싸우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그리고 하지율이 공짜로 챙긴 10퍼센트 지분에 대해서는 연씨 가문 사람들도 정말 되찾을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닫고 나서는 결국 손을 떼는 수밖에 없었다.하지율은 가끔 자기 가족들이 새삼 대단하다고 느꼈다.그렇게 큰 이득을 자기한테 빼앗기고도 겉으로는 조금도 흥분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으니 말이다.연태훈이나 연재영도 하지율을 볼 때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처럼 말을 걸어 왔다.하지율은 문득 생각했다.‘어쩌면 저 사람들은 지금 자신이 아무리 큰 이득을 가져갔다 해도 나중에는 결국 전부 다시 찾을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건 아닐까?’지분이든 뭐든 잠시 하지율의 손에 맡겨 둔 것뿐이라고 여기고 있으니 이렇게까지 태연할 수 있는 걸지도 몰랐다.어쨌든 이번 일을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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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3화

이상하게도 손형원은 그 순간만큼은 차마 묻지 못했다.자신도 모순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복잡한 느낌이 들었다.한편으로는 하지율이 summer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자기가 그토록 높이 평가해 온 화가이자 그동안 그렇게 오래 연락을 주고받았던 summer가 하필 자신의 숙적인 하지율이라니.상대가 남자였어도, 나이 든 여자였어도, 지금처럼 받아들이기 힘들진 않았을 것이다.다음 날.레스토랑 안, 하지율과 주용화가 마주 앉아 있었다.주문을 마친 뒤, 하지율이 먼저 입을 열었다.“화야 씨, 이번 일은 정말 화야 씨 덕분에 넘길 수 있었어요. 괜히 고생만 시켜 드린 것 같네요.”주용화는 옅게 웃었다.“지율 씨가 저를 믿어 주시고 끝까지 맞춰 주시지 않았다면 이 계획은 성공하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그는 하지율을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사실 저도 이번엔 도박을 한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잘못됐으면 우리 둘 다 한 번에 무너졌을지도 모릅니다.”하지만 하지율은 고개를 저었다.“저는 기반도 없고 숨겨 둔 카드도 없어요. 이기려면 결국 걸어 봐야 하잖아요.”하지율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사람이 결과만 원하고 위험은 외면하면 안 되죠. 투자도 마찬가지잖아요. 수익률이 높을수록 위험도 커지는 거예요. 이번에 베팅하지 않았으면 판을 이렇게까지 뒤집는 것도 어려웠을 거예요.”주용화가 물었다.“제가 멋대로 움직였다고 원망하지는 않아요?”하지율은 웃었다.“결국 저를 이기게 해 주셨잖아요. 좋은 건 다 얻어 놓고 이제 와서 괜히 점잖은 척하고 싶지는 않아요.”그 말을 듣는 순간, 주용화의 눈빛 아래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잔잔하게 출렁였다.한참 뒤에야 주용화는 입을 열었다.“지율 씨는 점점 더 윗자리에 설 사람 같은 아우라가 짙어지고 있습니다.”주용화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묘한 진심이 깔려 있었다.“사람이 스스로 기꺼이 목숨까지 걸게 만들고도 오히려 지율 씨에게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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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4화

손형원은 시선을 내리깔고 하지율을 바라봤다.하지만 손형원의 눈빛은 어딘가 이상했다.도무지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까지 뒤섞여 있었다.마치 한 번도 하지율을 제대로 본 적 없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마음먹고 그녀를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는 듯한 느낌이었다.그런 시선이 하지율에게는 몹시 낯설고 불편했다.하지율은 경계 어린 눈빛으로 손형원을 바라봤다.“무슨 일이세요?”하지율의 눈빛은 차갑고 단단했다.주용화를 마주할 때의 느슨함과 신뢰가 섞인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랐다.손형원이 직접 두 장면을 모두 본 적이 없었다면 같은 사람이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다.손형원은 어쩐지 또다시 summer가 떠올랐다.summer 역시 손형원에게 늘 인내심 있고 다정했다.마치 하지율이 주용화를 대할 때처럼 말이다.‘summer가 정말 하지율일까?’하지율은 손형원이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이상한 눈빛으로 자신만 바라보자 점점 더 불쾌해졌다.그러자 하지율이 차갑게 말했다.“손형원 씨, 무슨 일인지 말씀하시죠.”손형원은 입술을 달싹였다.원래는 하지율에게 summer가 맞는지 물어보려 했다.하지만 막상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전혀 달랐다.“연정미는 지율 씨가 사람 시켜서 때린 거예요?”‘연정미...’하지율은 눈썹을 살짝 올렸다.“연정미가 맞았다고요?”하지율은 진심으로 믿기지 않았다.‘M국에서 감히 연정미를 때릴 사람이 있다니.’연정미를 좋아하는 남자는 사방에 널려 있었다.누가 연정미를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만들면 곧바로 남자들이 몰려들어 대신 복수해 줄 정도였다.‘연정미가 맞기까지 했다니 대체 누가 그런 배짱을 부린 걸까?’하지율이 머릿속으로 범인을 가늠하고 있을 때, 손형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지율 씨가 아니에요?”하지율은 비웃듯 말했다.“연정미 씨는 손형원 씨가 제일 아끼는 사람이잖아요. 그런 여자를 때리는 건 고사하고 온라인에서 몇 마디 떠드는 것만으로도 손형원 씨는 사람 손부터 망가뜨리던 분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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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5화

손형원은 하지율이 이토록 경계하는 모습을 보자 눈빛이 살짝 가라앉았다.그러더니 곧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안심하세요. 지금은 지율 씨의 손에 관심 없어요.”하지율은 눈을 들어 손형원과 시선을 마주쳤다.“지금은 제 손에 관심이 없다고요? 그럼 지금은 뭐에 관심이 있는데요?”손형원의 깊고 어두운 시선이 하지율에게 머물렀다.손형원은 얇은 입술을 살짝 열더니 무심한 듯 한마디를 던졌다.“요즘은 지율 씨라는 사람 자체가 좀 흥미롭더군요.”그 말에 대한 하지율의 반응은 딱 한 마디였다.“미쳤네요.”손형원은 그 말을 듣고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오히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을 이어갔다.“지난번에 병원에서 지율 씨가 화판을 들고 있는 걸 봤어요. 지율 씨의 손은... 그림 그리는 데는 별 지장이 없는 것 같던데요.”손형원이 몇 번이고 자기 손 이야기를 꺼내자 하지율의 표정은 순식간에 차갑게 굳었다.“손형원 씨, 대체 뭘 하려는 거예요?”손형원은 summer가 하지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뒤부터, 온갖 단서를 하나하나 다시 뒤지기 시작했다.summer의 SNS 기록은 물론이고 얼마 전까지 주고받았던 메일까지 전부 다시 훑어봤다.하지만 대화만으로는 summer가 하지율이라고 단정할 수 없었다.대신 몇 가지 중요한 지점이 눈에 들어왔다.예전에 summer가 오랫동안 메일 답장을 하지 않았던 시기는 공교롭게도 그때 하지율이 주용화와 함께 외부 출장을 나가 있었다.그리고 며칠 전, summer가 요즘 바빠서 한동안 연락하지 못할 것 같다고 했던 시기도 그때 하지율은 바로 지분 문제를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손형원은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머릿속에는 summer와 관련된 생각만 가득 맴돌았다.사실 손형원은 자신도 왜 이 문제에 이토록 집착하는지 알 수 없었다.조금 전에 손형원은 집에서 하지율과 주용화가 함께 내려와 식사하러 가는 모습을 봤다.무슨 마음에서였는지 손형원 역시 뒤를 따라 이곳까지 오게 됐다.손형원은 원래 우물쭈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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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6화

손형원은 손을 들어 종업원을 부르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몇 가지 요리를 주문했다.하지율과 주용화가 여전히 자신을 보고 있자 손형원이 눈썹을 치켜올렸다.“두 분은 아직도 저한테 할 말이 남았어요?”하지율이 먼저 시선을 거뒀다.주용화도 역시 더는 손형원을 상대하지 않고 다시 하지율의 맞은편에 앉았다.주용화의 시선이 하지율을 단단히 붙들었다.“지율 씨, 손형원이 무슨 말을 했습니까?”겉으로 보기에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표정이었다.하지만 하지율은 주용화를 오래 봐 왔다.그래서 하지율은 알 수 있었다.지금의 주용화는 아주 미세하게 그러나 분명히 긴장하고 있었다.하지율이 말했다.“연정미가 누군가에게 맞았다고 들었어요. 손형원은 그게 제가 한 짓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마 그 일로 저한테 따지러 온 거겠죠.”그러자 주용화의 어두운 눈빛이 아주 잠깐 가라앉았다.“지율 씨.”주용화가 낮게 물었다.“오늘 손형원이 굳이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가 정말 그 이유 하나 때문이라고 생각해요?”오늘의 손형원도 이상했지만 오늘의 주용화 역시 어딘가 평소와 달랐다.하지율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가 다시 물었다.“화야 씨, 왜 그러세요? 뭔가 이상한 점이라도 있어요?”주용화가 시선을 내리깔면서 평소처럼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닙니다.”하지만 하지율은 예전처럼 쉽게 넘어가지 않고 조용히 물었다.“화야 씨, 저한테 숨기는 거 있으세요?”주용화는 마치 농담처럼 말했다.“그건 너무 많죠. 지율 씨는 그중 어떤 걸 알고 싶어요?”그러자 하지율도 옅은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제가 묻기만 하면 정말 다 말해 주실 거예요?”주용화가 말했다.“네. 지율 씨가 묻는다면 저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말씀드릴 겁니다.”하지율은 알고 있었다.주용화의 신분은 절대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주용화에게는 감춰 둔 일도 말하지 않은 사정도 많았다.하지율은 입술을 달싹였지만 끝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주용화가 말하지 않은 건, 곧 주용화가 말하고 싶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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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7화

회사로 돌아온 하지율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그러자 린이 보낸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summer님, 전에 당신도 인생에서 큰 바닥을 친 적이 있다고 했잖아요. 그때는 어떻게 다시 일어났는지 물어봐도 될까요?]하지율은 답장을 보냈다.[저는 운이 좋았어요. 한 사람을 만났거든요. 그 사람이 저를 붙잡아 줬어요.]얼마 지나지 않아, 린에게서 다시 메시지가 왔다.[그 사람은 당신에게 많이 중요한 사람인가요?]그 문장을 본 하지율은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린은 원래 이렇게 사적인 질문을 잘 하지 않는 편이었다.하지만 하지율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답했다.[중요한 사람인 건 맞아요. 하지만 남녀 간의 감정은 아니에요.]린이 다시 물었다.[그 사람이 당신의 어둠 속 한 줄기 빛이었다면,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죠? summer님이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하지율은 천천히 답장을 적었다.[감정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니까요. 그 사람은 저를 도와줬고, 저는 그게 정말 감사해요. 하지만 저는 감사와 구원이 곧 사랑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그러자 린은 곧바로 다시 물었다.[그러니까 summer님의 말은 구원이 꼭 사랑은 아니라는 뜻인가요?]하지율은 바로 답장했다.[감정은 사람마다 다르죠. 적어도 저에게는 감사와 구원이 곧 사랑은 아니에요.]린은 또 한 번 질문을 던졌다.[그럼 감사와 구원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하지만 하지율 역시 연애 경험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었다.그래서 그런 메시지를 보고 한참 동안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그러다 문득, 하지율은 이렇게 되물었다.[린 씨, 혹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나요?]휴대폰을 보고 있던 손형원은 순간 멈칫했다.하지만 곧바로 하지율의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감정이라는 건 참 단순하기도 하고, 또 복잡하기도 해요. 한 번 눈길이 스치는 것만으로도 사랑이 시작될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서도 또 오랜 시간 함께 지내고,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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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8화

그때 린에게서 다시 메시지가 도착했다.[그럼 저도 당신에게는 가치 있는 사람에 속하나요?]하지율이 답장하기도 전에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하지율은 발신자를 확인한 순간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오랜만에 보는 이름, 정기석이었다.하지율은 잠시 숨을 고른 뒤 전화를 받았다.“기석 씨.”정기석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무거웠다.“미안해요. 지율 씨, 바쁠 텐데 이런 전화 드려서요.”하지율은 눈꺼풀이 가볍게 떨리는 걸 느꼈다.무슨 일이 생겼는지 대강 짐작이 갔다.하지율이 조용히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최근 들어 하지율과 정기석이 자주 연락을 주고받은 건 아니었다.하지율은 정시온을 통해 정기석 할머니의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얘기만 간간이 들었을 뿐이었다.정기석의 할머니는 평생을 L국에서 살아왔다.그래서 마지막만큼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최근 정기석과 정시온도 줄곧 L국에 머물며 할머니 곁을 지키고 있었다.얼마 전 정기석은 하지율 쪽에 일이 터졌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전화를 걸어 도움이 필요한지 물은 적도 있었다.그때 하지율이 이미 따로 준비해 둔 게 있다고 하자 정기석도 그제야 안심하고 물러났다.정기석이 낮게 말했다.“할머니가... 아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지율 씨를 한 번 더 보고 싶어 하세요. 지율 씨, 미안해요. 혹시 번거롭더라도 한번 와 주실 수 있을까요?”그 자애롭던 노인의 얼굴이 떠오르자 하지율은 가슴 한쪽이 시큰하게 저렸다.하지율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네. 지금 바로 갈게요.”하지율이 생각할 틈도 없이 곧장 수락하자 수화기 너머가 잠시 조용해졌다.한참 뒤, 정기석의 목소리가 약간 잠긴 채 들려왔다.“지율 씨, 고마워요.”하지율은 작게 웃었다.“기석 씨랑 저 사이에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 없어요.”전화를 끊은 뒤, 하지율은 곧바로 비서에게 연락해 L국으로 갈 전용기를 준비하게 했다.그리고 바로 주용화의 사무실로 방금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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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9화

“손형원 씨는 원래 일 처리가 빠른 거 좋아하잖아요. 하지율을 납치하라는 것도 아니고 사람 하나 두들겨 패는 정도야 충분히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그것도 못 하겠으면 솔직히 말하세요. 그러면 저랑 삼촌이 직접 사람 붙이면 되니까요. 손형원 씨가 아직도 정미를 못 놓고 있는 건 다 알고 있어요. 이번이야말로 정미랑 관계를 다시 풀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잖아요.”단성훈의 목소리는 손형원 귀에 파리 소리처럼 윙윙거렸다.손형원은 원래도 하지율이 정말 summer인지 아닌지, 그 문제 하나 때문에 마음이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머릿속은 복잡했고 짜증도 극에 달해 있었다.그런데 하필 단성훈의 전화까지 걸려 와서 불을 붙인 셈이었다.말 그대로 단성훈은 총구 앞에 얼굴을 들이민 셈이었다.손형원의 목소리는 분노와 싸늘함으로 가라앉았다.“사람 한 번 패는 걸로 끝내면 재미없지.”손형원은 천천히 비웃듯 덧붙였다.“적어도 침대에서 못 일어날 정도는 만들어야 하지 않겠어?”손형원이 그렇게 말하자 단성훈은 그제야 만족스럽게 웃었다.“좋아요. 알아서 처리하세요. 무조건 깨끗하게 끝내야 해요.”단성훈은 의미심장하게 목소리를 낮췄다.“최소한 정미가 이 일로 욕먹는 일만은 없어야 하니까요.”손형원은 더 대답하지 않고 그저 싸늘하게 전화를 끊어 버렸다.한편 전화를 끊은 단성훈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단보현을 향해 됐다는 의미로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단성훈이 말했다.“역시 손형원은 지독하다니까요. 연씨 가문 사람들이 손형원을 싫어하면서도 끝내 못 놓는 이유를 알겠어요.”단성훈은 차갑게 웃었다.“이런 더러운 일은 손형원 같은 인간이 하는 게 제일 잘 어울리죠. 어차피 손형원은 평판이 바닥이고... 게다가 정미를 위해 이 정도 일을 해 주는 건 손형원한테도 영광 아닌가요? 아무 가치도 없으면 손형원 같은 사람이 어디 감히 정미 친구라는 자리를 차지하겠어요?”단보현은 옅게 웃기만 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손형원은 한쪽 팔까지 잃었다.지금 손형원의 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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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0화

연재영이 말했다.“그래. 상진은 갈비뼈가 몇 대나 부러졌어.”“단성훈 쪽은 더 심각해. 다리가 부러졌다는 말도 있고, 이도 몇 개나 빠졌다고 하더군.”연재영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었다.“그 사람들은 인정사정이 없었다고 들었어. 단성훈은 거의 폐인이 될 뻔했다더라. 하마터면 남자구실도 못 하게 될 뻔했다고 했어.”하지율은 한참이 지나서야 그 말을 겨우 소화할 수 있었다.그제야 하지율은 왜 연재영이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이 일이 하지율의 소행이냐고 물었는지 이해했다.그 두 사람은 모두 하지율과 사이가 최악이었다.그런 두 사람이 동시에 얻어맞아 병원에 누웠으니 하지율이 가장 먼저 의심받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하지율이 무언가 더 물으려던 순간이었다.수화기 너머로 연재영 비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도련님, 둘째 도련님을 해친 사람이 확인됐습니다. 그런데... 그게...”비서 목소리가 갑자기 흐려졌고 끝내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연재영이 미간을 찌푸렸다.“왜? M국에 아직도 연씨 가문이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거야?”비서는 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조심스럽게 말했다.“손... 손형원의 부하들인 것 같습니다.”순간 공기가 뚝 끊긴 듯 조용해졌다.연재영은 범인이 하지율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주용화일 수도 있고, 소아린일 수도 있었다.아니면 연상진이 밖에서 만든 원수일 수도 있었다.하지만 연재영은 정말 그 사람이 손형원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연재영은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누구라고 했어?”비서는 더듬거리며 대답했다.“손... 손형원입니다.”손형원이 그런 짓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는 놀랍지 않았다.하지만 손형원이 왜 연상진을 때렸는지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아무리 생각해도 연정미를 봐서라도 손형원이 연상진에게 손을 댈 이유는 없었다.연재영은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급히 하지율에게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는 말만 남긴 뒤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그리고 즉시 손형원에게 전화를 걸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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