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부자의 배신, 이혼만이 답이다!: Chapter 151 - Chapter 160

518 Chapters

제151화

고지후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싸늘했다.“내가 서명하지 않으면?”“채아 씨의 꿈이 이루어질지 말지는... 모르는 일이 되는 거지.”이 말에 고지후가 차가운 눈빛을 번뜩였다. 칼날처럼 날카로워 보는 사람조차 눈이 시릴 정도였다.“하지율, 죽고 싶은 거야?”하지율은 미세하게 눈썹을 움직이며 고지후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왜? 당신이 내 소중한 사람을 이용해 협박하는 건 당연하고 내가 당신 첫사랑 건드리는 건 죽을 짓이라는 거야?”“지후 씨, 우리 사이의 일에 난 한 번도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고 싶었던 적 없어. 임채아 씨가 내 앞에 몇 번이고 나타나 날 건드리지만 않았어도 내가 굳이 손댈 일은 없었을 거야.”“나한테 불만 있으면 나한테 직접 해. 하지만 내 친구한테 조금이라도 손대면... ”하지율은 고지후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또렷한 발음으로 천천히 말을 이었다.“맨발인 사람은 신발 신은 사람 안 무서워해. 채아 씨만 불행하게 되는 게 아니라 당신네 집안 전부, 내가 편히 못 살게 할 거야.”그녀의 눈빛 속에 스친 냉혹한 기색에 고지후는 잠시 멍해졌다.그 순간, 그는 분명히 깨달았다.자신이 ‘순하고 다정하다’고만 여겼던 아내는 전혀 만만한 상대가 아니란 걸.그녀를 진짜로 자극하면 정말 어떤 짓이든 서슴지 않고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었다.침을 꿀꺽 삼키더니 잠시 후 고지후는 이혼서류를 다시 하지율의 품에 던졌다.“이혼해. 하지만 내 재산 절반은 못 줘.”하지율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조건이 뭐든 그냥 말해.”그러자 고지후는 소파에 앉으며 무심하게 말했다.“아무것도 가져가지 마. 그럼 이혼해줄게.”‘아무것도 가져가지 마...’예상대로인 답변에 하지율은 놀라지도, 상처받지도 않았다.고지후는 임채아에게는 아낌없이 주면서도 하지율에게는 늘 계산적이었다.뒤이어 하지율이 말을 꺼내려던 찰나, 고지후가 먼저 끼어들었다.“가서 잘 생각해봐. 지금 당장 결정해도 오늘은 나 시간 없어. 이혼서류도 수정해서 다시 가져와.”“알겠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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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2화

고개를 돌리자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고윤택, 고지후, 임채아, 그리고 응원차 온 장하준이 눈에 들어왔다.장하준의 손에는 임채아와 고윤택의 바이올린이 들려 있었다.임채아는 고지후를 올려다보며 놀란 듯 말했다.“지후야, 지율 씨도 바이올린을 켤 줄 알았어?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윤택이도 아무 얘기 없었고...”그러자 장하준이 비웃듯 말했다.“흉내 좀 내보겠다는 거겠지. 그냥 채아가 바이올린 켜는 모습이 예뻐 보여서 그 흉내 내보겠다고 따라 한 거 아니겠어?”“채아는 A대에서 소문난 음악 천재였잖아. 아무리 흉내 내도 채아의 발끝도 못 따라가지. 그리고 예전에 일부러 채아처럼 꾸미고 다니지만 않았어도... 지후가 사람을 헷갈릴 일이 있었겠어?”임채아는 급히 장하준의 말을 막았다.“그만해, 하준아. 윤택이도 있는데 괜한 얘기 하지 마.”장하준은 ‘흥’ 하고 코웃음 치며 입을 닫았다.그때, 정시온 곁에 서 있는 엄마 하지율을 본 고윤택은 그 예쁜 차림새가 마음에 들지 않은 듯 질투로 인해 눈까지 붉어졌다.이에 큰소리로 외쳤다.“아무리 채아 이모 따라해도 엄마는 절대 채아 이모처럼 못 돼요!”뒤이어 낮고 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사람들 뒤편에서 울려 퍼졌다.“얘야, 너도 네 아빠랑 똑같구나. 눈썰미가 별로야.”곧게 뻗은 키, 정갈한 얼굴, 정기석이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이었다.입가에는 무심한 미소가 어렸고 그의 눈매는 은은한 빛을 머금은 듯 부드럽게 빛났다.자기도 모르게 빠져들게 만드는 그런 눈이었다.정시온이 물었다.“아빠, 어디 갔다 왔어요?”“아는 사람이 있어서 잠깐 얘기 좀 나눴지.”정기석은 고윤택 곁으로 다가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얘야, 네가 정말 몰라서 그래. 너희 엄마가 채아 씨보다 훨씬 더 예쁜 거 안 보여?”예전의 하지율은 고윤택을 돌보느라 좀처럼 자신을 꾸미지 못했다.정확히 말하면 고윤택을 낳은 이후로는 치마도 거의 입지 않았고 화장도 잘 하지 않았다.허름하거나 초췌하지는 않았지만 늘 맨얼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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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3화

“진짜 뻔뻔하다 못해 염치도 없구나? 채아가 바이올린 켠다고 그쪽도 바이올린? 채아가 흰 드레스 입었다고 그쪽도 흰 드레스?”“여기서 민폐 좀 그만 끼쳐. 아무리 흉내 낸다고 해도 그쪽은 결국 무대에도 못 서는 가짜일 뿐이야!”하지율은 살짝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차분히 받아쳤다.“왜? 바이올린이랑 흰 드레스가 채아 씨 전용이라도 되나? 저 사람만 쓸 수 있고 다른 사람은 흉내도 못 낸다는 법이라도 있나?”곧 장하준은 비웃음 가득한 어조로 비꼬았다.“이런 자리에서까지 채아를 따라 하는 속셈, 누가 봐도 뻔하지. 그런 말 들어봤어? 호랑이 그리려다 개 그린다고. 가짜는 아무리 흉내 내도 가짜야.”그 순간 정기석이 웃음을 터뜨렸다.“이봐, 다들 눈이 그 모양이면 안경부터 새로 맞추시지? 지금 지율 씨랑 채아 씨가 나란히 서 있는데... 누가 진짜고 누가 짝퉁인지는 초등학생도 구별하겠네.”장하준의 얼굴이 굳어지려던 찰나 정기석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아니면 근처에 있는 분들 아무나 붙잡고 한번 물어볼까? 누가 더 눈에 들어오는지.”장하준은 입을 꾹 다물었다. 하기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하지율은 원래 타고난 미인이었다.오목조목 예쁜 이목구비에 뼈대부터가 고운 사람이었다.화장을 하지 않아도 그 본판 자체가 다르니 정갈하게 꾸미고 나왔을 때는 그 차이가 더 벌어졌다.임채아가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맨얼굴 상태의 하지율조차 못 따라올 정도였다.그런 그녀가 오늘은 완벽히 준비하고 나타났으니 누가 봐도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한참을 말없이 있던 장하준이 마침내 뱉은 말은 이랬다.“얼굴이 예쁘면 뭐하나, 속은 그렇게 독한데!”정기석은 유쾌하게 웃으며 대꾸했다.“속이 어떻든 모르겠고 채아 씨보다 예쁜 건 분명하니까 그걸로 됐지.”장하준은 분해서 눈을 부릅떴다.“당신...!”“지율아! 시온아! 여기 있었구나!”그때, 멀리서 맑고 경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유소린이 밝게 웃으며 다가오는 것이었다.“이 유치원 왜 이렇게 커? 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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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4화

“푸하하하, 진짜 웃겨 죽겠네! 설마 지금... 하지율이 정체 숨긴 바이올린 여왕이라도 된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지?”장하준은 눈물까지 흘릴 정도로 웃었다.“하하하, 소설을 너무 많이 봤나 봐? 지금도 그 망상 중이야?”유소린은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지만 하지율이 그녀를 가로막았다.“그만해, 소린아. 곧 공연 시작이야. 이런 인간 때문에 공연 망치면 아깝잖아.”그러자 유소린은 이를 악물었다.“진짜 저 인간, 어디 이상한 거 아니야?”하지율은 가볍게 웃으며 받아쳤다.“옆에 있는 사람이 병 있으니까 옮은 거겠지.”유소린은 바로 표정을 바꿔 겁먹은 척했다.“헉, 그럼 얼른 피해야겠다. 괜히 옆에 있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내 탓할지도 모르잖아. 지율아, 시온아, 우리 가자.”그녀는 지금 하지율과 정시온이 곧 무대에 오를 때라는 걸 알고 있었다.이 타이밍에 시비를 더 만들면 공연 흐름까지 망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더 엮이지 않기로 했다.정기석도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그럼 나도 먼저 가볼게. 다들 꼭 안경 맞추는 거 잊지 마.”세 사람이 자리를 뜨자 장하준은 이를 갈며 내뱉었다.“쳇, 웃기고 있네. 자기들이 뭐라고.”임채아는 멀어지는 하지율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눈썹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지후야, 지율 씨... 진짜로 바이올린 못 켜?”고지후는 고개를 저었다.“모르겠어. 한 번도 켜는 걸 본 적이 없어서.”그때, 고윤택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예전에 엄마가 집에서 악보 보고 있는 걸 본 적 있어요.”임채아는 고윤택을 바라보며 물었다.“악보? 너희 엄마가 너한테 바이올린 얘기라도 한 적 있어?”고윤택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엄마가 외할머니 얘기한 적은 있어요. 엄청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자였다고...”임채아는 며칠 전 악기점에서 봤던 ‘여름밤의 별’이라는 바이올린이 떠올랐다.그 악기는 바로 전설적인 바이올린 연주자 하이현 여사가 남긴 유작이었다.하이현은 한 시대를 풍미한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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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5화

임채아는 분명히 느꼈다. 고지후가 자신을 점점 멀리하고 있다는 걸.그 말을 들은 장하준이 제일 먼저 발끈했다.“여름밤의 별 같은 바이올린을 하지율 같은 여자 손에 맡기는 건 정말 낭비지! 지후야, 그냥 가져와서 채아한테 주면 되잖아. 그렇게 머리 아프게 고민할 필요가 있어? 너희 두 사람 부부잖아. 그럼 그것도 네 거나 마찬가지 아냐?”“그리고 채아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았잖아. 너도 알다시피 채아는 평생 하이현 여사를 존경했고 그분의 바이올린으로 무대에 서보는 게 꿈이었어. 그깟 며칠 빌리는 거 가지고 뭐가 문제야? 안 돌려주는 것도 아니고.”“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돈을 주면 되는 거잖아. 자식도 내팽개치고 돈만 쫓는 사람한테 우리가 2억쯤 툭 던져주면 싱글벙글하면서 알아서 가져올걸?”고지후의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하지율이 최근 자주 돈 얘기를 했던 게 떠올랐다.장하준 말대로일지도 몰랐다.‘거절한 건 단지 돈이 부족해서였을지도...’...그 시각, 무대 뒤 대기실.유소린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와...여기가 왜 귀족 유치원인지 알겠네. 부지만 해도 웬만한 대학교 뺨치는데? 환경도 우리 아파트보다 좋아. 공연장도 진짜 정식 공연장 못지않고.”“게다가 대기실이 다 1인실이야? 연예인 대기실도 이 정도는 안 되겠다.”유소린은 정시온을 보며 말했다.“이모가 너무 촌스러워 보이지는 않지?”정시온은 방긋 웃으며 말했다.“소린 이모, 나중에 크면 더 넓은 세상 보여드릴게요.”그 말에 유소린은 감동해서 정시온을 꽉 안았다.“어머머, 얘 입에 꿀 발랐니? 이모 심장 무너졌어!”그리고는 정기석을 돌아보며 말했다.“기석 씨, 대체 애를 어떻게 키우셨길래 이렇게 말도 예쁘게 하고 바른지... 제가 좀 배워도 될까요? 나중에 저도 그렇게 키우고 싶어서요.”하지율도 그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돌려 정기석을 바라봤다.자신도 궁금했다.‘대체 어떻게 이렇게 반듯한 아이로 키워낸 걸까?’그녀도 고윤택에게 많은 정성과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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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화

임채아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서둘러 가방에서 휴지를 꺼냈다.“지율 씨, 정말 미안해요... 제가 닦아드릴게요.”하지만 그녀가 닦으면 닦을수록 커피 자국은 점점 더 번져나갔다.하지율은 그녀의 손목을 꽉 잡고 그대로 밀쳐냈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임채아는 중심을 잃고 바닥에 나동그라졌다.“꺅!”그 소리에 주변 사람들이 모두 시선을 돌렸다.임채아는 푹신한 카펫 위에 주저앉은 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얼굴로 하지율을 올려다봤다.“지율 씨, 정말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하지율은 치맛자락에 번진 얼룩을 내려다보며 냉소를 터뜨렸다.“그래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아예 작정하고 그런 거겠죠.”“지율 씨, 정말 오해예요. 그냥 커피를 건네주려고 했을 뿐인데...”임채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을 흘렸다.“알아요. 지율 씨가 저 싫어하는 거. 저랑 윤택이가 함께 있는 거 보기 싫은 것도요. 그런데...”촉촉한 눈망울을 한 채 그녀는 간절한 눈빛으로 하지율을 올려다봤다.“이번 대회는 윤택이의 기말 성적에도 영향을 주는 중요한 무대예요. 제발, 윤택이를 생각해서라도... 부탁드려요.”또다시 하지율은 짙은 피로감을 느꼈다. 매번 이런 식이었다.하여 그녀는 싸늘하게 말했다.“내 치마를 더럽힌 일이랑 윤택이가 무슨 상관이죠? 임채아 씨, 말을 돌리려는 수작이 너무 뻔해요.”그때, 추첨을 맡고 있던 선생님이 다가왔다.“무슨 일이에요? 무슨 문제가 생긴 건가요?”하지율은 차갑게 대답했다.“이분이 제 옷에 커피를 쏟아서 저는 이제 무대에 오를 수가 없게 됐어요.”선생님은 고개를 돌려 하지율의 옷을 살펴보더니 가슴팍에 커다란 커피 자국이 번져 있는 걸 보고 얼굴이 굳었다.도저히 응급조치로는 감출 수 없는 얼룩이었다.“혹시 여벌의 옷은 있나요?”하지율은 고개를 저었다.선생님은 난감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이거 참... 쉽지 않겠네요.”이번 무대의 의상은 연출에 맞춰 특별히 제작한 것이었다.아무 옷이나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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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화

“채아 씨, 윤택이 얘기 그만 좀 하세요. 그 아이가 무슨 채아 씨의 면죄부인 줄 아세요? 정말 아이를 위한다면 이런 식으로 변명하지 말고 본보기를 보여야죠. 책임을 피하려 하지 말고요.”주변 사람들은 임채아의 눈물겨운 연기에 전혀 동요되지 않았다.오히려 그녀를 향한 시선에는 냉소와 비난이 가득했다.자기 입장에 대입해 보면 애써 준비한 무대 의상이 더러워지고 그로 인해 발표회까지 망칠 수 있게 됐는데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아이의 성적이 걱정된다고? 그렇다고 피해를 입은 사람이 그걸 감수해 줘야 하나?남의 아이는 아이도 아니라는 건가? 실수였다, 고의가 아니었다... 이런 말 한마디로 다 덮고 가자고? 세상에 그렇게 쉬운 일이 어딨어? 세상 사람들이 전부 성인군자인 줄 아나?’임채아는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예전 같았으면 다들 하지율을 몰아붙이며 자신을 옹호해줬을 텐데 오늘은 다들 싸늘한 시선을 보내는 것 같았다.‘뭔가 잘못됐어. 왜 아무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 거지?’...한편, 최혜은과 고윤영은 고윤택이 있는 대기실로 향했다.두 사람이 들어서자 고윤택은 눈빛을 반짝였다.“할머니! 고모! 여기 웬일이에요?”고윤영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오늘 중요한 무대에 선다면서? 고모랑 할머니가 응원하러 왔지! 꼭 좋은 성적 내야 해?”고윤택은 당당하게 고개를 들며 말했다.“채아 이모가 바이올린 엄청 잘 켜요. 우리 이번에 1등 할 거예요!”순간, 최혜은의 얼굴빛이 싸늘해졌다.“또 임채아야?”곁에 있던 장하준이 재빨리 분위기를 읽고 웃으며 인사했다.“비록 집안 배경은 없지만 채아 A대 출신이에요. 요즘 음악계에서도 제법 이름 좀 알려졌고요.”“시간만 더 있었더라면 그 재능과 실력으로 제2의 하이현이 됐을지도 모르죠.”하이현, 한때 예술계를 휩쓸었던 천재.비록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SNS가 활발하진 않았지만 상류층에서는 꽤나 이름이 알려졌던 인물이다.최혜은 역시 그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었다.상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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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8화

대기실 안, 이미 소식을 들은 정기석 부자와 유소린이 하지율 주위에 모여 있었다.유소린은 하지율의 드레스에 번진 커피 얼룩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화를 냈다.“임채아, 그 여자 진짜 악질이에요. 지율이 얼굴 예쁜 게 질투 나서 커피를 얼굴도 아니고 몸에다 들이붓다니...”“실력도 없으면서 이런 치졸한 짓이나 하고... 지율이한테 밀릴까 봐 무서운 거겠죠.”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익숙한 비아냥 섞인 목소리가 사람들 뒤에서 들려왔다.“어머머, 별 게 다 웃기네. 가정주부한테 밀릴까 봐 겁났다고? 진짜 배꼽 빠지겠다! 채아는 A대 출신이야. 그런 사람한테 실력 운운한다고?”유소린은 그 말이 또 나오자 못마땅한 얼굴로 쏘아붙였다.“그래서? A대 출신이면 다야? 나도 A대 출신인데?”A대는 M 국의 음악예술대학으로 세계 예술 대학 중 손꼽히는 명문이다.스타 양성이 아닌 정통 음악가를 길러내는 학교라 연기나 무대 퍼포먼스 과목은 따로 없었다.유소린 역시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하고 감각도 있었지만 하지율이나 강병주 같은 천재들을 보면 완전히 평범한 수준이었다.다행히 공부 머리는 좋아서 죽어라 공부한 끝에 겨우 A대에 붙었다.하지만 전공은 음악이 아닌 비인기 학과인 예술경영 쪽이었다.사실상 성적으로는 A대 입학이 힘들었기에 선택한 우회 전략이었다.A대는 음악예술인들의 꿈의 학교였다.운 좋게 들어간 이들도 막상 입학하고 나면 자신이 ‘평범한 편’임을 깨닫게 되는 곳.천재들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실력 이상의 뭔가가 필요했다.유소린도 처음 입학했을 때 그 현실을 뼈저리게 느꼈다.‘하늘 위에는 하늘이 있다’는 말이 딱 맞는 곳이었다.그리고 그 속에서도 하지율은 단연 압도적이었다.같은 Z 국 출신이고 학창시절부터 함께한 유소린은 누구보다 그걸 잘 알고 있었다.하지율이 만약 계속 M 국에 남아 있었다면 이미 그녀의 어머니와 같은 수준까지 올라갔을 것이다.심지어 지금 음악계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강병주조차 하지율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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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9화

“날 모를 수도 있죠. 그런데 나도 채아 씨 이름 못 들어봤거든요?”유소린은 임채아를 힐끔 쳐다보며 비웃었다.“채아 씨가 지율이랑 같은 급인 줄 알아요? 지율이는 실력으로 월반까지 한 애예요. 채아 씨가 학교 다닐 때는 지율이가 벌써 졸업했을지도 모르죠.”장하준은 배를 잡고 웃었다.“헐, 더 해봐. 입만 살아가지고! 헤세 부리는 건 죄가 아니긴 하지만... 그럼 나도 전생에 옥황상제였어. 믿을 수 있겠어?”유소린은 당장이라도 장하준한테 따지러 갈 기세였지만 하지율이 조용히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시온이 무대가 먼저야.”유소린은 그제야 진정하고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됐어. 지금은 그쪽이랑 싸울 시간 없어. A대 출신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우리 지율이 드레스 더럽힌 것부터 책임지라고.”“해결 방법은 이미 나왔어. 채아 씨 체형이랑 지율이랑 비슷하니까 채아 씨가 입고 있는 드레스를 지율이한테 주면 되는...”하지만 그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장하준이 무언가 깨달은 듯한 표정으로 소리쳤다.“아! 알겠다! 이제 알았어! 이거 다 그쪽들이 짠 계략이지? 우리 채아를 일부러 함정에 빠뜨린 거잖아!”“하지율, 정말 교활하기 짝이 없네! 채아한테 실력 밀리니까 이렇게 치사하게 방해하는 거지?”“이렇게 해서 채아가 무대에 못 서게 만들겠다고? 꿈 깨! 절대 안 돼!”그때, 고윤택과 함께 방에 들어온 최혜은이 이 말을 듣고는 그대로 폭발했다.“하지율!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남의 자식 도우려고 자기 아들까지 망치게 해?”“분명히 말해두는데 오늘 네가 윤택이 무대 망치면 그날로 넌 끝이야!”고윤택 역시 충격받은 얼굴로 하지율을 바라봤다.“엄마, 왜 그런 거예요?”장하준도 비웃으며 거들었다.“이유야 뻔하지. 지가 질까 봐 무서운 거지. 그래서 이런 비열한 수를 쓰는 거고.”하지율은 두 사람의 고성이 쏟아지자 귀가 얼얼해졌다. 하여 귀를 문지르며 말했다.“아니, 이게 무슨 소란이람. 미친개가 목줄 풀려서 돌아다니는 줄 알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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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0화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게 하지율이라는 사실에 최혜은은 당장이라도 그녀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치고 싶었다.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어디까지나 수많은 일을 겪어온 인물답게 최혜은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애써 감정을 눌러냈다.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오늘 이 일이 소문이라도 나면 자신의 명성은 한순간에 바닥으로 추락할 것이라는 걸.‘모두 다 저 하지율 때문이야. 진짜 재수 없게 저런 게 끼어들어가지고... 우리 가문을 뒤흔드는 불청객이라니까!’곧 최혜은은 말을 꺼냈다.“하지율, 윤택이가 이번 발표회를 위해 얼마나 고생하며 준비했는지 너도 알잖아. 네가 같이 무대에 서는 게 부담스러웠던 건 이해해. 그렇다고 해서 일부러 윤택이의 발표회를 망치려고 들 필요까지는 없잖아?”“게다가 너, 집안도 학벌도 없는데 거기다 뭔 재능이 있다고 무대에 서겠다고 해? 올라가서 벌서듯 서 있으려고?”최혜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엔 모욕이 담겨 있었다.하지율의 집안, 학력, 능력을 대놓고 깎아내리며 체면도 배려도 없이 공개석상에서 수치를 주었다.상류 사회에서 가장 중시하는 건 ‘배경’과 ‘스펙’이었다.출신이 부족하면 그만큼 학벌이나 실력으로 메워야 인정받는다.그조차 없으면 적어도 유명 연예인이나 모델이라도 돼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값어치’는 있다는 게 이 세계의 암묵적 기준이었다.그런데 하지율은 그 어떤 카테고리에도 속하지 않았다.그래서였다.그녀는 이 사회에서 가장 쉽게 짓밟힐 수 있는, ‘아무것도 없는 여자’였다.주변 사람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저렇게 무능한데 어떻게 고지후랑 결혼한 거야?”“설마 낙태 못 하게 해서 억지로 들어온 거 아냐?”“그래도 재능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나? 진짜 아무것도 아닌 거야?”순식간에 하지율에 대한 멸시가 방 안을 채워갔다.그녀는 그 모든 시선을 받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농담이 좀 심하시네요. 윤택이가 무대에 못 서게 하려 한 사람은 제가 아니라 임채아 씨예요. 저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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