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봉진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녀가 정말 어리석은 건지, 아니면 고집이 저리도 지독한 건지.“원영아, 나는 너를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일국의 대군이다. 형님의 왕부에 발을 들였던 여인을 내 부인으로 삼을 수는 없어!”“네가 정말 뭐라도 되는 줄 알아? 내가 정말 너 아니면 안 될 것 같냐고!”선우원영은 분노에 치를 떨었다.첩으로 들어올 자격조차 없을 거라니! 누가 그 따위 신분을 바란다고!그녀는 홱 돌아서 걸음을 옮겼다.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유봉진은 온몸이 싸늘해졌다. 그녀가 정말 떠나려 한다는 생각에 이상하게도 힘이 쭉 빠져나가 버렸다.그토록 긴 시간, 숱한 압력을 견뎌내며 지키고자 했던 사람이었는데 끝내 돌아온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그녀의 호탕함과 꾸밈없는 솔직함은 지금 이 순간, 고집과 무지, 그리고 어리석음으로 변해 있었다.그녀를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보다 오히려 지쳐 더는 쫓아가고 싶지 않은 기분이 밀려왔다.선우원영 역시 느꼈다. 뒤에서 따라붙는 기척이 전혀 없다는걸.‘이젠 따라오고 싶지도 않나 보지?’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돌릴 이유가 없었다. 지금 뒤돌아본다면 졌다고 인정하는 꼴이니까.선우원영은 사실 진심으로 영왕부에 들어가려던 게 아니었다.그저 유봉진을 화나게 하고 싶었을 뿐, 그가 무릎 꿇고 사죄하며 앞으로는 추월녀 따위에 눈길조차 주지 않겠다고 맹세하길 바랐던 것이다.하지만 뒤에서는 여전히 아무 기척도 없었다.더 가야 할지, 아니면 멈춰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순간, 유봉진의 쉰 목소리가 쓸쓸히 울려왔다.“내가 형님의 저택에 들어갔던 여인을 부인으로 삼을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하지 않았느냐. 정말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냐?”“지금은 내가 널 원치 않는 거다. 네가...”선우원영은 홱 고개를 돌리며 그를 노려보았다.그러나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말문이 막혀 버렸다.그는 분노도, 격정도 없이 그저 고요했다. 심지어 눈동자 깊은 곳엔 무력한 체념과 그녀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깊은 절망이 깃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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