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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전쟁보다 위험한 사랑: Chapter 121 - Chapter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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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화

유봉진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원영아, 우선 약 바르러 가자꾸나.”오늘 사냥터에서 벌어진 일은 거의 마무리되었으니 나머지는 추소하에게 맡기면 되었다.조금 전 그는 참으로 잠깐이나마 추월녀가 자신을 찾으러 온 것이라 착각했었다.하지만 선우유미의 말대로 자신의 착각이었음을 깨닫자 그야말로 난처하기 이를 데 없었다.더구나 원영의 상처에서 피가 배어 나오는 것을 보니 괜스레 가슴이 저렸다.그러나 선우원영은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유봉진이 나서 주지 않는 그 태도에 오랫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너는 나를 이렇게 지켜주는 것이냐? 유봉진, 너를 경멸할 따름이다.”“원영아...”“네가 먼저 시비를 걸었다.”추월녀는 차갑게 선우원영을 쏘아보며 무표정하게 말했다.“앞으로는 능력이 되지 않으면 함부로 손대지 말거라. 네가 먼저 손을 댔다가 상대가 되지 않으면 남이 너를 괴롭혔다 하느냐? 이건 길거리의 불량배나 도적 떼와 무엇이 다르단 말이냐?”“추월녀, 너...”“네가 먼저 손을 썼으니 무슨 말로 꾸며도 네 잘못일 뿐이다. 네 남자가 너를 감싸 준다고 하여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네 편인 줄 알았느냐?”추월녀는 다툼을 즐기지 않는 성정인지라, 이토록 날 선 말을 내뱉으면서도 표정에는 한 치의 요동도 없었다. 그저 오늘 날씨를 이야기하듯 태연하였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칼날처럼 곧장 가슴을 파고들었다.“원영 낭자는 입만 열면 남자를 등에 업고 사는 여자를 가장 경멸한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원영 낭자가 복수를 하겠으면 직접 손을 쓰면 그만이지 어찌 진왕 대군에게 빌붙어 혼내 달라고 하는 것이냐?”이 말에 모든 사람의 시선이 선우원영에게로 쏠렸다. 조롱하는 눈길도, 경멸하는 눈길도, 차갑게 외면하는 눈길도 뒤섞여 있었다.유봉진 역시 그녀를 바라보았다.오늘따라 그녀는 자신이 알던 모습과는 조금 달라 보였다. 예전 그가 그녀를 특별하게 여겼던 까닭은, 누구보다도 차갑고 오만하며 죽을지언정 굴하지 않는 기개 때문이었다. 심지어 대군인 그도 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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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화

선우유미가 입을 비쭉 내밀며 말했다.“그래, 밖에서는 모두들 진왕 대군 나리께서 고고하고 냉담한 대진의 꽃에 마음을 빼앗겼기에 월녀... 월녀를...”그녀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지만 추월녀는 오히려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이었다.“저를 버렸다는 겁니까?”“월녀야, 그것은 모두 세상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고 멋대로 떠드는 말이니 화내지 말거라.”선우유미는 괜스레 그녀의 마음이 상할까 두려웠다.그러나 추월녀는 도리어 태연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제가 화를 낼 필요가 있겠습니까? 본래 사실인 것을.”“월녀야...”추월녀는 자신을 위로하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정말로 누구의 위로도 필요 없었으니까.이에, 그녀는 다급히 화제를 돌렸다.“그렇다면 밖에서는 무슨 말들을 하셨습니까?”이 말을 꺼내자, 선우유미는 더욱 화가 났다!“그 남자들은 모두 눈이 먼 것 같더라. 글쎄 그 대진의 꽃이 지닌 오만함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다고 말하며 성격이 남달라 천하의 여인들과도 다르다고 하더라. 심지어 어떤 이는 선우원영이 남자에게 의지하는 여인을 깔보기 때문에 황후마마께 문안 인사를 드리기 싫어한다고 말했다. 그날 내가 계필이 돌아와 셋째 오라버니께 보고하는 것을 들었는데, 셋째 오라버니마저 이 여인이 특이하다며 만나보고 싶다고 하셨다.”그날 밤 궁중 연회에서 선우원영이 진왕 대군에게 손찌검한 일은 이미 도성 안팎에 퍼졌다.여인들은 선우원영이 거칠고 오만하며 규수답지 못하다고 손가락질했지만, 반면 사내들은 신기하다고 여기며 흥미로워했다.진왕 대군의 신분이 귀했기에, 여인뿐만 아니라 권세 높은 양반마저도 그의 앞에서는 조심스러워 깍듯했다.그러나 이때, 그를 두려워하지 않고 심지어 그를 때린 여인이 나타났으니 사내들이 그녀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남자가 여자에게 호기심을 느끼면 결국 어떻게 될까? 적어도 절반 이상은 연모하는 마음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결국 저 계집은 진왕 대군 나리를 밟고 세상에 이름을 알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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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화

“분명히 저년들이 연합해서 나를 괴롭혔는데, 너는 정말 눈이 멀어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이냐? 내 몸에 상처가 가득한 것을 보지 못했느냐?”선우원영은 눈을 붉혔지만, 추월녀의 뻔뻔한 말을 떠올리자 억지로 눈물을 삼켰다.그녀는 절대 이 빌어먹을 놈 앞에서 울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대진의 하늘을 나는 독수리의 딸이다. 태어날 때부터 보통의 여인들과는 달랐으니 절대 울어서는 안 된다! 다만 지금 유봉진을 보자 그녀는 마음속 깊이 원망이 차올랐다.“유봉진, 나는 너를 위해 멀리 타향까지 왔건만, 모든 것을 버리고 왔건만 너는 어떻게 했느냐? 내가 괴롭힘당하는데도 감히 아무 말도 못 하다니. 대군이라는 신분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냐?”“원영아, 네가 올바르다면 나는 너를 괴롭힌 사람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네가...”“결국 너는 추월녀가 하는 모든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나는 무슨 짓을 해도 다 틀렸다는 것이구나! 추월녀가 좋으면 다시 걸음을 돌리면 될 것을 왜 나한테 달라붙는 것이냐?”선우원영은 마차의 휘장을 홱 걷어내고는 곧장 위에서 뛰어내렸다.“원영아!”뒤쫓아 간 유봉진은 선우원영이 호위무사 한 명을 말에서 끌어 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말을 빼앗아 채찍을 휘두르며 곧장 떠나갔다.“원영아, 어디로 가는 것이냐?”유봉진은 그녀의 옷에 묻은 핏자국을 보고 마음이 미어지는 것 같아 서둘러 말에 올라 쫓아갔다.어려서부터 말 등에서 자란 선우원영은 말타기 실력이 좋았다.그녀가 말을 몰아 장터에 들어가며 멈춰서서야 유봉진은 겨우 그녀를 따라잡았다.선우원영은 사람과 부딪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말에서 내렸다.뒤쫓아 온 유봉진은 선우원영이 사람과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내가 일부러 너를 친 것이 아니다. 너희 집 아이가 제 발로 뛰쳐나온 것인데 나와 무슨 상관이냐? 어찌 네 아이가 내 말을 놀라게 하여, 내가 말 등에서 떨어질 뻔하게 만든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이냐?”“이 망할 계집애가 막무가내구나. 내 아이를 다치게 하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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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화

그 부인이 이 말에 놀라 엎드려 울부짖었다.“대군 나리, 부디 굽어살펴 주세요! 바로 저 여인이 말을 마구 달려 제 아이를 쳤습니다. 대군 나리...”“옳고 그름은 의금부에 넘겨 조사해보면 명확해질 것이다.”유상호는 그 모자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오히려 선우원영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낭자께선 어찌 생각하시오?”“잘 조사해야 봐야 합니다. 분명 저들이 내 말을 놀라게 하였습니다!”선우원영은 코웃음을 치며 모자를 내려다보았다.하지만 누군가 자기편을 들어 주니 속이 후련해지며 종일 품었던 울분이 반쯤은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더구나 영왕이 자신의 곤룡포를 벗어 그녀에게 걸쳐주자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지체 높은 영왕 대군이 그녀에게 예의를 지킬 뿐만 아니라 은근히 아첨하는 말투로 말하니 어찌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선우원영은 추월녀의 독한 말투에 상처받았던 자신감이 유상호를 통해 조금이나마 회복되는 것 같았다.그러나 그 부인은 여전히 머리를 조아리며 애원했다.“대군 나리, 억울합니다! 대군 나리, 제발 용서하여 주세요!”의금부가 어떤 곳인지 그 여인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들어본 적은 있었다.거기에 끌려 들어가면 살아나오더라도 가죽이 벗겨진다고 하지 않던가.자신은 죽더라도 아깝지 않으나, 어린 아들만은 결코 그 지옥 같은 곳에 들여보낼 수 없었다.두 명의 호위무사가 그들을 억지로 끌어 일으키려는 찰나 유봉진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잠깐 멈추라!”“봉진아?”영왕이 얼굴을 찌푸렸다.선우원영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셋째 형님, 아이가 아직 어린데 어찌 의금부에 보낸단 말입니까?”유봉진이 선우원영 앞에 다가와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 “원영아, 네가 장터에서 그리 말을 몰아 달린 것부터 그릇된 것이다. 이 일은 우리가 잘못한 것이다.”그는 방금 선우원영의 뒤를 쫓아오며 그녀의 승마 실력이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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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화

“원영아, 제발 더는 제멋대로 굴지 마라. 무슨 일이 있거든 우리 집으로 돌아가 의논하자꾸나.”유봉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러자 유상호가 한마디 던졌다.“어찌하여 원영 낭자가 지금 진왕부에 머문단 말이냐? 이름도 없고 신분도 분명치 않은데... 이건 원영 낭자에게 좋은 일이 아닐 텐데?”그러고는 뜻을 깨달았다는 듯 웃으며 계속해서 말했다.“그렇다면, 봉진이와 원영 낭자에게 곧 경사가 날 것이란 말인가? 언제 셋째 형님인 나를 이 경사스러운 잔치에 초대할 것이냐?”유봉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선우원영의 안색은 더 험하게 굳어졌다 서비가 추월녀를 며느리로 삼고 싶어 한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게다가 유봉진은 모든 일에 그의 모친의 말을 따랐으니 스스로 결정을 내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그는 자신과 평생토록 한 사람만을 사랑하겠다고 약속했으나 늘 서비와 함께 추월녀를 들이는 방도를 모색하고 있었다. 그는 처음에는 비록 정말 추월녀를 들이더라도 평생 그녀만을 사랑하겠다고 말했고, 그녀는 어리석게도 허락했었다! 추월녀가 시집오기도 전에 벌써 그녀를 도와 자신을 괴롭혔으니 훗날 추월녀가 시집온다면 이 진왕부에서 선우원영이 설 자리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선우원영의 얼굴에는 실망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곧 그녀는 냉담하게 코웃음 쳤다.“저처럼 배경 없이 미천한 여인이 어찌 고귀하신 진왕 대군 나리께 닿을 수 있겠습니까?”“그러면 원영 낭자는 소문에서처럼 봉진과 함께 있는 게 아니란 말이오?”“물론입니다.”선우원영은 단호히 부인했다.유봉진이 그녀를 노려보며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분노가 가득 차 있다 보니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뜻밖에도 유상호가 씩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원영 낭자가 봉진의 여인이 아니라면 본왕이 낭자를 영왕부로 초대할 수 있겠소? 듣자 하니 낭자의 승마술과 사격 솜씨는 대진에서도 견줄 자가 없다고 하던데 본왕도 배우고 싶소. 낭자가 본왕의 영왕부에 며칠 머무르며 그 솜씨를 가르쳐줄 수 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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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화

유봉진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녀가 정말 어리석은 건지, 아니면 고집이 저리도 지독한 건지.“원영아, 나는 너를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일국의 대군이다. 형님의 왕부에 발을 들였던 여인을 내 부인으로 삼을 수는 없어!”“네가 정말 뭐라도 되는 줄 알아? 내가 정말 너 아니면 안 될 것 같냐고!”선우원영은 분노에 치를 떨었다.첩으로 들어올 자격조차 없을 거라니! 누가 그 따위 신분을 바란다고!그녀는 홱 돌아서 걸음을 옮겼다.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유봉진은 온몸이 싸늘해졌다. 그녀가 정말 떠나려 한다는 생각에 이상하게도 힘이 쭉 빠져나가 버렸다.그토록 긴 시간, 숱한 압력을 견뎌내며 지키고자 했던 사람이었는데 끝내 돌아온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그녀의 호탕함과 꾸밈없는 솔직함은 지금 이 순간, 고집과 무지, 그리고 어리석음으로 변해 있었다.그녀를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보다 오히려 지쳐 더는 쫓아가고 싶지 않은 기분이 밀려왔다.선우원영 역시 느꼈다. 뒤에서 따라붙는 기척이 전혀 없다는걸.‘이젠 따라오고 싶지도 않나 보지?’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돌릴 이유가 없었다. 지금 뒤돌아본다면 졌다고 인정하는 꼴이니까.선우원영은 사실 진심으로 영왕부에 들어가려던 게 아니었다.그저 유봉진을 화나게 하고 싶었을 뿐, 그가 무릎 꿇고 사죄하며 앞으로는 추월녀 따위에 눈길조차 주지 않겠다고 맹세하길 바랐던 것이다.하지만 뒤에서는 여전히 아무 기척도 없었다.더 가야 할지, 아니면 멈춰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순간, 유봉진의 쉰 목소리가 쓸쓸히 울려왔다.“내가 형님의 저택에 들어갔던 여인을 부인으로 삼을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하지 않았느냐. 정말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냐?”“지금은 내가 널 원치 않는 거다. 네가...”선우원영은 홱 고개를 돌리며 그를 노려보았다.그러나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말문이 막혀 버렸다.그는 분노도, 격정도 없이 그저 고요했다. 심지어 눈동자 깊은 곳엔 무력한 체념과 그녀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깊은 절망이 깃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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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화

유상호는 핏자국이 묻은 옷자락을 힐끔 보더니 곧장 곁의 호위에게 던져 버렸다. 그의 눈동자엔 잠깐의 불쾌함을 스쳤다.호위는 멀어져 가는 선우원영의 뒷모습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스스로 뭐 대단한 인물이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입니다. 감히 대군의 초청을 거절하다니, 누가 그런 용기를 줬을까요.”“무방하다.”유상호도 나름의 계산이 있었다.“대진의 꽃이라 불리는 저 아가씨의 기마 솜씨가 그 누구도 따르지 못한다 하더군. 조금 전 길에서도 보지 않느냐. 진왕조차 따라잡지 못했으니 낭자들 중에서는 단연 독보적일 것이다.”“대군의 뜻은 원영 낭자를 영왕부의 추계 사냥대에 들이고 싶으신 겁니까?”매년 가을 사냥에서 진왕부 쪽에는 국공부의 추 장군이 합류해 늘 승리를 거머쥐었다. 비록 황제가 직접 밝힌 적은 없지만 누구나 알고 있었다. 해마다 어느 대군의 사냥대가 이기느냐에 따라 호룡군의 영패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을.황제의 뜻은 명백했다. 호룡군은 특정 대군의 사병이 되어서는 안 된다. 누군가 도성에서 독주하는 꼴을 두고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패는 언제나 주인을 달리했다.하지만 몇 해째 그 패는 진왕이 쥐고 있었고 도성의 호위 또한 진왕부가 맡아왔다.올해 진왕과 국공부가 틀어진 뒤로는 추 장군이 진왕부 사냥대에 설 리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새로운 전력이 생겼다. 바로 대진의 꽃, 선우원영.만약 그녀가 진왕부 편에 선다면 여전히 승산은 진왕부에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내부도 지금은 불화가 심했다.유상호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만일 내가 그 대진의 꽃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올해 호룡군의 영패가 바뀔 수도 있겠지.”호위가 낮게 말했다.“하지만 원영 낭자가 진왕을 뒤쫓아 간 것 같던데요. 추 장군을 잃고 대신 선우원영을 얻었으니 진왕부라 해서 반드시 패하리라는 법은 없겠습니다.”“절세미인 추월녀가 있는 한, 그들 사이가 쉽게 달라지지는 못할 거다.”유상호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가자. 국공부에 한 번 들러 보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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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화

“그럴 리가 없어요.”추월녀는 몸을 돌려 부드럽게 걸음을 옮겼다.그녀의 발걸음은 담담했으나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예전에 저랑 진왕 사이에 혼약이 있었고 그 일로 세상이 떠들썩했지요. 영왕이 설마 정말로 저를 마음에 두겠어요? 설령 무슨 뜻이 있다 한들, 전 겨우 첩일 뿐이에요.”“네가 어찌 첩이 될 수 있겠느냐!”추소하의 안색이 확 달라지며 목소리마저 단호해졌다.“월녀야, 네가 원치 않는다면 혼인하지 않아도 된다. 평생 국공부에 머물러도 좋아. 오라비가 평생 지켜 주마! 결코 남의 첩이 되어 서럽게 살게는 두지 않겠다.”첩이 된다면 평생 고개를 들지 못할 뿐 아니라 훗날 낳은 자식들마저 정실의 자녀들 밑에 눌려 살아야 했다.“후.”추월녀가 돌아서며 가볍게 웃었다.“그러니 영왕이 저를 마음에 뒀다 한들 저랑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그저 수작일 뿐이지요.”세상의 사내란 대개 제 잘난 맛에 취한 자들이었다.어설픈 수법으로 여인에게 자신만을 향한 정이라 믿게 만들고 가슴을 요동치게 해놓곤 정작 돌아서서는 또 다른 여인에게 똑같은 짓을 일삼았다.결국 여인의 마음만 흔들어 놓을 뿐, 그들 몸에서 살 한 점 덜어 나가지 않았다.“올해 가을 사냥은 호룡군 영패의 향방이 달린 중대한 일이에요. 각 왕부가 다시 다툴 터, 오라버니의 기마 솜씨라면 분명 찾는 이가 많을 거예요.”편청으로 돌아온 추월녀는 하인에게 저녁상을 차리게 한 뒤, 추소하를 향해 물었다.“오라버니는 어느 편을 염두에 두고 계세요?”추소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해마다 진왕부 편에 섰으니 별다른 고민이 필요 없었던 것이다.그러나 어느 대군의 편에 서느냐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었다. 잘못 고르면 국공부의 앞길이 어그러질 수도 있었다.“월녀야,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추소하는 늘 그렇듯 여동생의 뜻을 먼저 묻고 싶었다.잠시 숙고한 끝에, 추월녀가 입을 열었다.“아직은 뚜렷한 생각이 없어요. 이 일은 조금 더 고민해 보려 해요.”“어쨌든 진왕부에는 가지 않을 테니,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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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화

선우원영은 또다시 반 시진이나 서성이다가 마침내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날이 어두워지기 전 성큼성큼 왕부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아무도 막지 않았다.다들 그녀가 진왕이 애지중지하던 사람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감히 누가 길을 막겠는가.그러나 아무도 제지하지 않자 오히려 선우원영은 화가 더 치밀어 올랐다.“진왕 대체 무슨 뜻이야? 왜 아직도 안 나오는 건데?”문 앞에 서 있던 두 호위는 덜덜 떨며 대답했다.“아가씨, 대군께서는 아가씨께서 기다리시는 줄 모르셨습니다.”“내가 여기서 반나절을 서성였는데 모를 리가 있어?”선우원영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호통쳤다.“너희들은 통보 한 번도 안 했다는 거야? 다들 죽었어?”두 호위는 억울해 죽을 지경이었다.그녀가 손님도 아니고 스스로 왕부에 들어오지 않겠다며 서성이는데, 굳이 누구한테 알릴 이유가 있겠는가. 그냥 들어오면 될 일을! 심지어 그 누구도 막지 않았는데!허나, 이 여인이 까다롭고 고집 세기로 이름난 터라 불만 한 마디도 내뱉을 수 없었다.“아가씨, 지금 곧장 대군께 전하겠습니다.”한 명이 황급히 안으로 달려갔다.잠시 후, 그 호위가 불안한 기색으로 돌아왔다.“아가씨, 대군께서 아가씨께서 어디로 가시든 그것은 아가씨의 자유라고 하셨습니다...”“이 죽일 놈! 사람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야!”분노를 더는 억누르지 못한 선우원영은 곧장 안으로 들어섰다.발길은 곧장 추월각으로 향했고, 문 위에 걸린 ‘추월각’ 세 글자가 눈에 들어오자 홧김에 피가 거꾸로 솟았다.그녀는 곁에 서 있던 시위의 칼을 냅다 빼앗아 단숨에 도약하더니 퍽, 소리를 내며 현판을 반으로 쪼개 버렸다.그럼에도 성이 풀리지 않아 툭 떨어진 현판을 발로 몇 번이나 짓이겼다. 그 탓에 옛 상처가 다시 벌어지며 욱신거렸고 얼굴빛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소동을 듣고 나온 유봉진은 그녀가 그 현판 위를 짓밟으며 울분을 토하는 모습에 순간 숨이 막혔다.“원영아!”여전히 부상 때 입었던 옷차림 그대로인 걸 본 순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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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화

유봉진이 입술을 열었다가 닫았다.사실은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월녀는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나쁜 아이가 아니라고.그리고 영왕은 그녀를 진심으로 아낀 게 아니라, 단지 자신을 조롱하고 모욕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을 뿐이라고.그런데 선우원영은 그걸 곧이곧대로 믿어버렸다.하지만 선우원영이 영왕부로 가지 않고 오히려 반나절이나 그를 기다려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의 가슴은 벅차올랐다.나머지는 상관없는 일일 뿐이었다.“다 지난 일이야, 원영아. 이제 우리 잘 지내면 돼. 앞으로는 누구도 우리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어.”그는 만족스럽게 그녀를 끌어안았다.“다만 월녀에게 괜히 시비는 걸지 마. 사실 나쁜 아이는 아니야.”“아직도 그 계집 편을 들어?”선우원영은 그를 힘껏 밀쳐내며 금세 화를 냈다.유봉진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알았어. 월녀는 너랑 비교도 안 되지. 됐지? 오늘 일은 그냥 잊자. 네가 돌아온 것만으로 충분해. 어서 들어가서 상처부터 치료하자. 하루 종일 그 상태였을 텐데, 아프지 않느냐?”그는 그녀가 돌아와 줘서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느꼈다.선우원영이 떠났을 때 그의 마음은 텅 비어버린 듯 공허했다. 그녀가 떠났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또 다른 이유는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었다. 곁에 아무도 남지 않았고 추월녀조차 그를 외면하니 그는 세상에서 홀로 버려진 듯한 기분이었다.그런데 선우원영이 다시 돌아왔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그래서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오늘만큼은 그저 다 받아줄 수 있었다.셋째 형님 집에 들어간 게 아니라면 그걸로 충분했으니까.만약 정말 영왕부로 들어갔다면 어머니도, 황제도 결코 그녀를 그의 곁에 두도록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렇다면 그와 선우원영은 그날로 끝장일 게 분명했다.유봉진은 흥분된 기운으로 선우원영을 안으로 들이고, 여의녀를 불러 상처를 치료하게 했다.또 하루 종일 굶다시피 한 탓에 선우원영은 지치고 허기진 데다 상처까지 입어 얼굴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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