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다시 태어난 구공주, 그녀의 당찬 인생: Chapter 31 - Chapter 40

100 Chapters

제31화

비록 사람들이 이서영을 구공주로 착각한 채 칭송하는 상황에 이서영은 속으로 불만이 있었지만 모두가 그녀와 윤세현이 천생연분이라 추켜세우자 마음은 이미 황홀감으로 가득 찼다. 특히 관아의 관리들과 백성들까지 세자 저하의 새 신부가 얼마나 곱냐며 속삭이는 소리에 이서영은 더욱 흐뭇해져 고개를 숙이고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양 부장군, 저...”그때, 윤세현이 말머리를 돌리며 단호하게 끊었다.“저 사람은 내 부인이 아니다.”이서영의 얼굴에 순식간에 실망감이 스쳤다.밤사이 언젠가 반드시 그 자리를 차지하리라는 야심이 가슴 한편을 비췄다.윤원호도 분위기를 무마하려 웃으며 설명했다.“구공주께서는 뒤에 계십니다.”모두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그들의 뒤쪽, 멀지 않은 거리에서 또 한 명의 여인이 말을 타고 따라오고 있었다.그녀는 새카만 전투복 차림에 몸가짐도 늠름하고 당당하여, 흔히 볼 수 있는 여인의 나약함이나 수줍음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그런데도 그녀의 얼굴은 어떤 치장도 더하지 않았지만 뚜렷한 이목구비가 햇살 아래서 흠잡을 데 없이 맑고 투명했다.조금 전 화려한 옷차림의 아가씨가 분명 모두의 시선을 끌 만큼 아름다웠다 해도이 검은 전투복을 입은 여인은 한번, 두 번, 자꾸만 다시 보게 만드는 묘한 아우라를 풍겼다.볼수록 그 아름다움에 숨이 멎을 듯해, 주변의 병사들조차도 눈을 떼지 못했다.정말이지, 지나치게 아름다웠다.“이, 이분이...”양수호와 현지 관리들은 넋을 잃었고 문정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이 사람들이 진짜 구공주가 누구인 줄 안다면 저렇게 넋을 잃고 볼 수 있을까?’곧장 문정수가 소개했다.“이분이 바로 소문으로만 듣던 구공주이십니다.”말이 끝나자 곧 윤세현을 따라 말을 달려 성안으로 들어갔다.‘전설로만 떠돌던 구공주...’이경의 입꼬리에 옅은 냉소가 번졌다.‘참 유명하긴 하구나, 그 이름값이.’하지만 그 명성이라는 게 허울만 좋은 악명일 뿐이라는 것도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에 번뜩이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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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윤세현은 진정호의 상태를 확인하고 나오자마자 곧장 군영으로 향해 대군 정비에 들어갔다.진정호의 방 안, 이서영은 기운 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임수연을 조심스레 부축했다.“부인, 세자 저하께서 이곳에 오셨으니 진 장군을 대신하여 반드시 이 성을 굳건히 지키실 것입니다.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진 장군께서도 부인께서 이렇게 상심하시는 모습을 결코 바라지 않으실 것입니다.”왕족의 신분인 이서영이 먼저 손을 내밀자 임수연은 놀람과 감동이 교차했다.“현주님, 소첩이 스스로 일어나겠습니다.”“괜찮습니다. 우리 모두 한 지붕 아래 있는 여인들이니 이곳에서는 그리 예를 차릴 필요 없습니다.”이서영의 목소리는 마치 봄비처럼 부드럽고 따뜻했다.“진 장군께서는 세자 저하의 오랜 벗이고, 세자 저하께 소중한 자라면 곧 저에게도 소중한 분입니다.”임수연은 잠시 의아해했다.“현주님과 세자 저하께서는 혹시...”이서영의 두 볼이 발그레하게 물들며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저와 세자 저하는... 그저 마음을 나눈 벗일 뿐입니다. 지금은 세자 저하께서 이미 부인을 두셨으니 그저 뵐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평생 후회 없겠습니다.”그 말에 임수연은 안타까움과 연민이 겹쳐 마음이 저릿해졌다. 소문으로만 듣던 구공주가 억지로 혼인을 맺어, 본래의 인연을 갈라놓았다는 소문이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윤세현 곁에 이서영만 남아 있고 정작 이경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구공주께서는 세자 저하에게 정말 미움만 받고 계신가 보네...’임수연은 조심스레 이서영의 손을 꼭 잡았다.“현주님은 마음이 고우시니 언젠가는 밝은 날이 찾아올 것입니다. 부디 힘내시옵소서.”이서영은 아무 말 없이 그저 작게 고개만 끄덕였고 그녀의 눈빛은 투명하게 빛났다....이경이 장군부에 자리를 잡은 뒤로는 임수연이 정식으로 인사하러 오지 않았다.“공주마마, 괜히 속상해하지 마십시오. 들으니 진 장군의 상처가 중하셔서 부인께서도 돌보시느라 여념이 없으신 듯합니다.”“내가 어디 화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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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장군님께서는 정말로 소생할 가망이 없으시답니다. 방금 전에도 현주께서 부인 곁을 지키며 슬픔을 달래드리는 것을 들었습니다.”“장군님처럼 훌륭하신 분이 어찌 이렇게 허망하게...”“그러게요, 부인께서 가장 마음이 아프시겠지요. 그래도 현주께서 곁에 계셔주셔서 다행입니다. 아니었더라면 부인께서도 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셨을 거예요.”“현주께서는 참으로 다정하시고 인품도 훌륭하신 분이옵니다. 세자 저하와의 아름다운 인연을 저 악독한 구공주가 망쳐놓았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요.”“너희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이 말을 들은 이경의 뒤를 따르던 초아는 참지 못하고 곧장 문을 박차고 들어가 방금 그 말을 내뱉은 하녀를 잡아 흔들었다.“공주마마, 이 아이가 입에 담을 수 없는 망언을 했사옵니다! 제가 벌을 내리겠습니다!” 초아는 분노에 얼굴까지 상기됐다. 그때, 문가에 이경의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고운 모습이 나타났다.“초아야, 그냥 어디서 들은 소리나 지껄이는 무지렁이들일 뿐이다. 놓아주거라.”이경은 대범해서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이 몸의 ‘원래 주인’이 진짜로 한 짓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자신이 혼인 전에 이 몸으로 왔다면 이런 혼사는 애초에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괜히 윤세현과 이서영, 두 사람의 인연을 망친 셈이니 마음이 복잡했다. 초아는 공주 앞이라 감히 더 나서지 못하고 억울해하면서도 그 하녀들의 손을 풀어주었다.두 하녀는 구공주가 나타난 걸 보고 너무 놀라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공주마마, 다시는 그런 말을 입에 올리지 않겠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어서 나가라.” 초아가 걷어차듯 재촉했고 이경은 따로 막지는 않았다. 악독한 공주라는 이미지는 더욱 강해질지 모르지만 원래 공주란 함부로 입을 놀리게 두는 존재가 아니었다.특히, 이렇게 당당히 눈앞에서 욕을 듣고도 아무 말 못 하면 그건 오히려 위엄이 없는 일이다. 두 하녀는 겨우 목숨을 건져 밖으로 달아나려던 참에 이경의 냉랭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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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뭐라고? 구공주께서 늠름한 장수들을 좋아한다고?”임수연은 그만 할 말을 잃었고 방 안에 있던 시녀들과 의원들마저 모두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구공주가 남정네들과 염문이 끊이지 않는다는 소문쯤은 누구나 익히 들어 알았으나 지금 이 상황에서 다 죽어가는 진정호에게까지 눈독을 들인다는 말에는 차마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설마... 정말 그런 여인이란 말인가...’아무도 함부로 나서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마침 초아도 다른 심부름으로 자리를 비웠고 유일하게 곁을 지키던 연지 역시 공주께서 무엇을 하시려는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어 내심 불안해하고 있었다.‘공주마마께서 설마 진 장군에게까지 그런 일을 저지르시겠는가...’걱정은 되었으나 신분 높은 공주마마의 뜻 앞에 감히 막아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그러나 정작 이경은 주변의 수군거림이나 비난 따위는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저 진정호의 침상 앞으로 다가가서 장군의 얼굴빛을 꼼꼼히 살핀 뒤, 망설임 없이 침상에 가까이 다가섰다.“공주마마, 장군께서는 지금 정말로 몸이 약합니다...!”곁에 있던 의원이 조심스럽게 만류하려 했으나 그 역시 귀한 신분의 공주 앞에서 더는 어쩌지 못하고 마지못해 몸을 낮췄다.“장군께서는 조금만 움직여도 위험할까 두렵사온데 부디... 조심해 주십시오.”이경은 의원을 차갑게 돌아보며 말했다.“더는 이 자리에 머물지 마시오. 물러나시오.”의원은 미안한 듯 임수연을 바라보다 조용히 자리를 떴다.그때 임수연이 급히 막아서며 눈물을 글썽였다.“공주마마, 부디... 저희 장군만은... 제발 아무 일도 없게 해주십시오. 죄는 모두 이 미천한 제가 받을 테니, 부디...”연지가 그녀를 조용히 뒤로 밀었고 이경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침상에 누운 진정호의 옷깃을 풀기 시작했다.그러자 임수연이 더욱 애절한 목소리로 막아서려 했다.“공주마마, 제발, 장군을 건드리지 마십시오! 죄가 있다면 모두 저에게 내려주십시오. 우리 장군은 정말 아무 잘못이 없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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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귀를 때릴 듯한 뺨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침상 곁에 있던 이경이 순식간에 이서영 앞으로 달려가 그녀의 뺨을 힘껏 후려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이서영은 그 힘에 그대로 뒤로 나가떨어져 책상에 부딪혀 바닥에 고꾸라졌고 입을 열 틈도 없이, 너무 아파 정신이 아득해졌다. 순간, 방 안의 모든 이들이 얼어붙었고 숨소리조차 작아질 만큼 정적이 흘렀다.구공주인 이경이 현주인 이서영을 그토록 사납게 때린 것이다. 그 기세가 얼마나 거칠었는지, 누구도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한참 만에야 임수연이 놀라 정신을 차려 소리쳤다.“현주님!”그녀는 허둥지둥 달려가 이서영을 부축했다.이서영의 얼굴은 그대로 퉁퉁 부어올라 있었고 한쪽 뺨이 붉게 부어올라, 이가 흔들릴 정도였다. 분노와 수치, 아픔이 한꺼번에 몰려와 눈물과 콧물이 뒤섞여 얼굴을 덮었다.“으윽...”아무리 아파도 그 순간 이서영이 가장 신경 쓴 건 자신의 체면이었다. 이서영은 서둘러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며 울부짖었다.“네가 감히 나를 때려? 두고 보자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이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내 명예를 더럽힌 죄는 이 한 대로도 모자라.”그러고는 침상 곁으로 돌아가 진정호의 옷깃을 거칠게 걷어 올렸다.연지 역시 처음에는 이서영이 맞아 쓰러진 모습이 안쓰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곰곰이 곱씹어보니 대놓고 혹은 은근히 이경을 방탕하다고 몰아가는 말들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진실이든 아니든, 그런 소문과 험담은 결국 황실의 체면을 짓밟는 것인데 그것을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꺼낸다는 것은 결코 착한 마음씨가 아니었다.‘저 현주님, 겉보기와 달리 속은 전혀 다를지도 모르겠구나...’“내가 너를 모욕했다고? 지금 모두가 똑똑히 보고 있지 않느냐, 네가 얼마나 부끄러운 짓을 저지르는지!”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있으면서도 이서영의 눈에는 이경이 진 장군의 옷깃을 벗기는 모습이 확실히 들어왔다.“부인, 보십시오! 구공주가 이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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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실내에 전투가 순식간에 벌어졌다.연지는 구공주 이경의 곁을 지키는 호위무사답게 무공이 보통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은 장군부였고 곁에 모인 병사들도 모두 만만치 않은 실력자들이었다.방 안에는 점점 더 많은 병사가 몰려들었고 이서영은 임수연을 붙잡아 한쪽 구석으로 물러났다.임수연은 지아비를 걱정해 애가 타 있었지만 이서영의 눈동자에는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미소가 스쳤다.‘이 많은 장군부 병사가 이경을 난도질해 버리는 것, 그러면 세자 저하가 돌아와도 내 책임이 아니게 된다. 더군다나 진정호는 한때 세자 저하와 목숨을 함께 건 전우였으니 저하 역시 그에게 정이 깊을 터. 장군이 숨을 거두기 전, 이런 모욕을 준 여인이라면 저하가 돌아와도 절대 용서하지 않겠지. 근데 도대체 저런 기이한 물건들을 들고 진 장군의 상처 위에서 뭘 하는 거지? 설마, 정말 의술을 아는 건가? 말도 안 돼!’“아니, 보시오! 칼을 들었잖아요? 저걸로 장군님의 심장을 꺼내려는 거 아닙니까!”이서영은 이경이 손에 쥔 괴상한 칼을 보고 날카롭게 외쳤다.연지가 힐끗 돌아보니 저 칼은 자신이 얼마 전 가져온, 이경이 특별히 주문해 만든 칼이었다.‘그런데 저걸 지금 왜 쓰는 거지?’“안 돼! 제발 안 돼!”임수연이 거의 미쳐버릴 듯 연지에게 몸을 날렸다.연지는 반사적으로 임수연이 무장한 병사인 줄 알고 한 손으로 힘껏 밀쳐냈다.쾅!임수연은 그 힘에 벽에 부딪혀 바닥에 쓰러졌고 입가에서 피를 토했다.“마님!”병사들의 두 눈이 충혈되어 번뜩였다.연지가 그토록 온순하고 현명한 장군의 부인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사실에, 모두가 분노에 휩싸였다.“죽여라! 저자를 당장 죽여라!”모든 병사가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이서영은 손에 땀이 맺힐 정도로 긴장하면서도 속으로는 이경이 피투성이가 되는 장면만을 기대했다.그러나 그때, 바깥에서 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모두 멈춰라, 그만둬라!”지방관이 도착한 것이었다.이경이 미리 교활을 시켜 지방관에게 상황을 알리고 관원들과 병사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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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문밖에는 지방관 사람들이 지키고 있으니 이경은 밖에서 누가 들이닥칠까 전혀 개의치 않았다. 밖이 아무리 소란스러워도 그녀는 방 안에서 오로지 할 일만 묵묵히 해나갈 뿐, 그 어떤 소란에도 흔들리지 않았다.그때, 마침내 군영에서 소식을 듣고 윤세현이 급히 돌아왔다.“세현 오라버니!”멀리서 윤세현의 준수하고 듬직한 모습이 보이자 이서영은 곧장 일어나 울음을 터뜨리며 달려갔다.아직 다가가기도 전에 그녀의 애달픈 울음소리가 안채 안팎에 가득 번졌다.“세현 오라버니, 드디어 오셨군요!”이제 더는 이경을 해칠 방법이 없었다. 그 고약한 지방관이 이경의 말만 듣는 터라,이서영은 마지막 희망을 오라버니에게 걸 수밖에 없었다.‘부디 세현 오라버니께서 대의를 위해 이경을 벌하실 수 있기를...’하지만 그녀가 달려가려는 찰나, 문정수가 앞을 가로막았다. 윤세현이 여인과 가까이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문정수는 잘 알고 있었다.“현주님, 무슨 일이십니까?”“세현 오라버니, 이경... 경이가 진 장군의 시신을 함부로 하려 하옵니다!”“진 장군이... 돌아가셨습니까?”문정수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고 윤세현의 안색도 변하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바로 안채로 들어갔다.“아직 조금 전까지는 숨이 붙어 있었으나, 지금은... 지금은 아마도...”문정수도 서둘러 그 뒤를 따랐고 이서영 역시 그 뒤를 쫓았다.“어찌 된 일이냐.”윤세현은 찬 눈길로 지방관을 노려보았다.윤세현이 돌아오자 지방관은 속으로 깊이 안도하며 다가왔다.“세자 저하...”지방관이 아직 말을 잇기도 전에 몇 차례나 혼절했다 깨어난 임수연이 힘없이 무릎을 꿇어 윤세현 앞에 엎드렸다.“세자 저하, 부디 제 서방님을 살려주십시오. 부탁드리옵니다...”윤세현은 임수연의 처참한 몰골을 흘낏 바라볼 뿐, 곧장 방문 앞으로 가서 문을 발로 걷어찼다.방 안에는 이경이 침상 옆에 앉아 있었다. 곁에는 상자가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피가 묻은 여러 자루의 칼이 담겨 있었고 바닥에는 피에 젖은 천 조각들이 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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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이서영의 얼굴은 심하게 부어 있었고 뺨에는 다섯 손가락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임수연은 아직도 침상 곁에 쓰러진 채, 가슴이 미어지도록 울고 있었다.“당신의 명예를 지키지 못해 정말 미안합니다. 제가 죄인입니다...”그녀가 본 진정호의 심장 부근 상처는 기묘한 모양으로 꿰매어져 있었고 얼굴빛은 전보다 더 창백해 보였다. 튼튼하던 몸도 옷이 흐트러져 이미 이경에게 속속들이 들키고 만 듯했다.임수연은 온통 절망에 사로잡혀, 갑자기 이를 악물더니 침상 기둥을 향해 머리를 들이받으려 달려들었다.“서방님, 곧 사죄하러 가겠습니다!”“마님!”문정수가 재빨리 다가가 머리가 침상 기둥에 닿기 직전, 임수연을 가까스로 붙잡았다.“놓으세요, 제발 저를 죽게 두세요! 서방님 곁으로 가야 합니다, 놓으세요!”임수연의 죽고자 하는 의지는 너무나 강했다. 기둥에 머리를 박을 수 없다 싶자 이번에는 문정수의 허리춤에 찬 검을 뽑으려 들었다.“마님, 정신을 차리십시오! 이런 어리석은 짓은 하시면 안 됩니다!”뒤에서는 여러 사람이 만류했고 문정수도 어쩔 수 없이 그녀를 힘껏 붙잡아 두었다.자해라도 할까 싶어, 단단히 몸을 구속할 수밖에 없었다.임수연이 죽으려 드는 광경에, 윤세현의 시선은 어느새 이경에게로 향했다. 그 눈에는 노기와 함께 깊은 원망이 서려 있었다.“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을 해쳐야 네가 만족하겠느냐.”“저는... 누굴 해친 게 아닙니다...”이경은 숨쉬기조차 힘들어 제대로 말을 잇지도 못했다.“전... 구하려 했을 뿐... 놓으세요...”이때 이서영이 곧장 말을 이었다.“세현 오라버니, 전에 듣기로, 경이가 정기를 가진 사내의 심장 피로 단을 만들어 먹으면 늙지 않는, 사악한 술법을 쓴다고 합니다...”이서영은 눈 속의 미소를 감추며 불안에 떠는 척 연기했다.“세현 오라버니, 어서 진 장군부터 살펴보세요.”그 말에, 윤세현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가 손을 힘껏 내젓자 이경은 끊어진 연처럼 바닥에 툭 쓰러졌다.이경은 막 숨이 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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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이경은 낡고 허름한 방에 가둬졌고 곧이어 방 안으로 던져진 사람은 다름 아닌 초아였다.“공주마마, 괜찮으십니까? 피가 멈추질 않았어요!”초아는 이경의 손등에서 아직도 흐르는 피를 보고는 다급히 기어와 손을 부여잡았고 분노와 속상함이 한꺼번에 북받쳐 올랐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감히 공주마마께 이런 짓을 하다니, 너무합니다!”초아는 이경의 손을 꼭 쥐고 울분을 토하더니 이내 밖을 향해 목청껏 외쳤다.“공주마마께서 다치셨습니다! 아무도 없습니까? 어서 도와주세요!”밖에는 장군부의 경계병 두 명이 지키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구공주를 죽이고 싶을 만큼 분노에 차 있어, 그녀의 상처를 신경 쓸 리 없었다.초아는 문으로 달려가 온 힘을 다해 두드렸다.“아무도 없어요? 공주마마께서 다치셨어요! 의원을 불러주세요!”밖의 경계병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시끄럽게 굴지 마라! 계속 그러면 목숨도 보장 못 할 줄 알아!”초아는 누가 이렇게 함부로 소리치는 걸 처음 듣는 터라, 한동안 어리둥절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예전에는 구공주 곁에서 뭐든 뜻대로 이룰 수 있었으니 누가 그 앞에서 감히 함부로 굴었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그녀를 업신여기고 있었다.“그만 소리치고 이리 와서 앉으렴. 그만 쉬어.”이경은 바닥에 주저앉아 말했다.가방도, 약재도, 도구도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손등의 상처조차 제대로 치료할 방법이 없으니 벽에 몸을 기대 눈을 감은 채, 조용히 기운을 가다듬을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이경은 꼼짝없이 하루 종일 그 방에 갇혀 있었다. 초아는 한참이나 불평하다가 더는 소용없음을 알고 지쳐 쓰러져 잠이 들었다.밤이 깊자 두 사람은 배고픔에 동시에 깼다.“공주마마, 배가 고프지 않으십니까?”초아는 배를 움켜쥐며 억울함을 감추지 못했다.“황궁에 돌아가기만 하면 꼭 대비마마께 일러서 이 사람들 모두 엄벌을 받게 할 겁니다!”이경은 말없이 초아를 바라볼 뿐이었다. 초아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문득 한숨을 내쉬었다.“공주마마,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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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이 세상은 정말 미쳐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하찮은 궁녀가 감히 고귀한 공주를 해치려 들다니 이제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었다.이경은 잠시도 동요하지 않고 차분한 얼굴로 바닥에 앉아 있었다.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았지만 겉으론 아무런 감정의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초아는 이경이 겁에 질려 아무 말도 못 하는 줄 알고 망설임도 없이 몸을 일으켜 앞으로 달려들려 했다.“누구 없어요? 공주마마를 해치려 합니다! 제발, 누가 좀 도와주세요!”초아가 아무리 소리쳐도 밖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 사이 궁녀의 발길질이 이경을 향해 날아들었고 초아는 몸을 던져 막아보려 했지만 그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이서영 역시, 이경이 이렇게까지 무기력하게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모두의 시선이 쏠린 그 순간, 궁녀의 발길질이 이경에게 닿으려던 찰나,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아악!”궁녀가 이경을 차기도 전에 오히려 자신이 먼저 비명을 지르며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바닥에 주저앉은 궁녀는 눈앞에 선혈이 번지는 발을 붙잡고 어디서 다쳤는지도 모른 채 그저 비명을 질렀다.바닥에 번지는 피를 본 이서영은 놀라서 뒷걸음질 쳤고 방 밖에 있던 부하들이 급히 뛰어 들어왔다.“현주님!”이서영은 원하던 그림이 아니란 걸 직감하고는, 곧바로 말했다.“괜찮다, 다들 나가 있어라! 아니, 저 계집애부터 끌고 나가!”경비들은 바로 초아를 붙잡아 밖으로 끌고 나갔다. 초아는 완전히 제압당해 끌려가면서도 공주마마를 두고 떠날 수 없다며 애타게 소리쳤다.“공주마마! 안 돼요! 제발, 공주마마를 해치지 마세요! 저를 놓아주세요!”초아의 목소리는 점점 멀어져 갔고 방에는 이경과 이서영만이 남았다.이경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어둡고도 단단한 시선으로 이서영을 바라보았다.그 얼굴에 여전히 평온만이 감돌 뿐, 두려움도, 분노도, 원망도 찾아볼 수 없었다.이서영은 그런 이경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죽을 때가 다 됐는데도 이리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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