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못할 것 같으냐?”윤세현은 남은 한 손을 휘저으며 바닥에 떨어져 있던 단도를 잽싸게 집어 들었다. 날렵하게 손목을 돌리는 순간, 차가운 칼끝이 이경의 가슴께를 겨누며 가까이 다가왔다.“안 돼!”결국 이경은 더는 담담한 척을 유지하지 못하고 애써 붙들던 침착한 표정이 무너져 내렸다.“안 됩니다... 처음부터 잘못은 서영 언니가 한 일이옵니다. 저에게 벌을 내릴 이유가 없지 않사옵니까? 제발 그만두십시오!”마음 깊은 곳에서 두려움과 억울함이 함께 몰려왔다. 분명히 자신은 죄가 없는데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누가 자신을 모함해도 아무 말 못 하고 그냥 당하고만 있어야 한단 말인가? 정말이지, 세상은 너무나 불공평했다.“놓으십시오!”이경은 힘껏 윤세현을 밀쳤지만 그의 단단한 다리에 가로막혀 오히려 움직일 수도 없었다.두 사람의 거리는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칼끝이 하얀 피부에 닿을 듯 말 듯, 조금만 힘을 주면 피가 흐를 것만 같았다.그 순간, 윤세현의 시선이 이경의 몸 위로 미끄러졌다. 그녀가 두려움에 잔뜩 긴장해 미세하게 떨고 가슴이 크게 오르내릴 때마다, 눈앞에는 어딘가 낯설고 하얀 환영이 아른거렸다.그 하얀 그림자는 점점 두 사람이 한 몸이 된 듯한 기묘한 착각으로 번져갔고 남자가 여인을 와락 안아버리는 듯한 환상이었다.“안 돼...”이경의 눈에 붉은 기운이 번졌다.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억울해서인지 모를 감정이었으나 그녀는 끝내 울지 않았다.“저는 아무 잘못도 없사옵니다! 저를 벌하신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불공평한지 아시겠지요!”오늘 억울하게 당한 이 일이, 언젠가는 반드시 열 배, 백 배로 갚아주리라 속으로 되뇌었다.이경은 눈을 질끈 감고 칼끝의 차가운 감각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언제 아픔이 닥칠지 모르는 두려움에 긴 속눈썹이 떨렸으나, 눈동자 끝에 맺혔던 눈물은 이미 말라 있었다.그녀의 약한 모습은 찰나에 스쳐 가고 이내 다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자신을 다잡았다.윤세현은 한동안 가늘게 뜬 눈으로 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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