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다시 태어난 구공주, 그녀의 당찬 인생: Chapter 41 - Chapter 50

100 Chapters

제41화

이서영은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다.이경이 정말로 자신의 손을 붙잡아 그 단도의 날까지 함께 쥔 채, 자기 가슴을 가로지르다시피 베어버릴 줄이야.“아악! 아아악... 아아아악!”이서영은 공포와 분노에 일그러진 얼굴로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두려움 때문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 상처가 하필이면 이 중요한 곳에 생겼다는 사실이 그녀를 절망하게 했다.“아아아악...!”‘이런 결말은 전혀 원하지 않았는데 이럴 수가…’칼날은 가슴팍을 가로지르며 깊지 않게 스쳐 갔지만 분명 평생 지워지지 않을 흉터로 남을 상처였다.‘이런 상처를 안고 앞으로 어찌 세현 오라버니 곁을 모셔...’이서영은 주저앉아 두 손으로 가슴을 감싸며 흐느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윤세현과 문정수, 그리고 수하들이 서둘러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땅에 쓰러져 흐느끼는 이서영을 보고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몰랐고 방 안에는 절망이 짙게 깔렸다.‘이게 무슨 꼴이야... 그런 곳에 상처를 입다니 차마 눈을 둘 곳도 없네.’문정수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어서 의원을 부르라! 의원을 데려오너라!”방 안이 한바탕 아수라장이 되어 모두가 정신없이 우왕좌왕하였으나 이서영은 절대로 지금 이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아직, 이경이 눈앞에서 죽는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흑... 세현 오라버니... 저 여자가... 저 여자가 절 죽이려 하였습니다... 부디 저 여인을 벌해주시옵소서... 저 여인은 이미 미쳐버렸습니다...”이서영은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윤세현에게 애원했다. 그러나 이경은 침착하게 조용히 말을 이었다.“그토록 비명을 지르실 것 없사옵니다. 이곳은 다른 곳보다 덜 아플 터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옵소서.”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윤세현이 성큼 다가와 이경의 턱을 거칠게 움켜잡고 그녀를 나무 선반에 내동댕이쳤다.“네가 왜 서영이를 다치게 했느냐.”“세현 오라버니... 저 여자가... 저를 죽이려 하였습니다...”사실 상처는 생각보다 그리 아프지 않았지만 앞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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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화

윤세현의 얼굴에는 살얼음이 깔린 듯 냉기가 번졌다. 하지만 이경의 턱을 잡고 있는 그의 손에 어느새 힘이 조금 풀린 듯했다.이서영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멍하니 서 있었고 가슴에서는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두려움과 당혹감에 그 고통조차 잊은 듯했다.“세현 오라버니, 저는... 저는 결코 그런 마음이 아니옵니다. 어찌 감히 누굴 해하려 하겠습니까... 저 정말...”그러나 이경이 조용히 말을 받았다.“세자 저하께서 그리도 어리석은 분이 아니시니 누가 누구를 모함했는지 저하께서 분별 못 하실 리가 없지요.”이경의 깊고 검은 눈동자가 윤세현의 날카로운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서로가 서로를 온전히 꿰뚫지는 못하지만 순간적으로 상대의 마음을 읽는 듯한 묘한 기류가 오갔다.그 알 수 없는 불편한 감정이, 오히려 윤세현의 마음을 더 차갑게 만들었다.“세현 오라버니...”이서영이 다시 변명하려 했지만 윤세현은 차갑게 입을 열었다.“이서영을 의원에게 데려가 상처부터 치료하게 하라.”“세현 오라버니, 이경이의 말만 믿지 마시옵소서! 이 상처, 분명 저 여인이 낸 것이옵니다. 목숨을 걸고 맹세하오니 저를 믿어 주십시오!”그때, 윤원호가 방으로 급히 들어섰다. 마지막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들은 건 아니었으나 이서영이 피를 흘리며 선 모습을 보고는 곧장 말했다.“됐으니 치료부터 받고 변명은 나중에 해. 네가 뭘 잘못했든 이렇게 피를 쏟고 있으니 내가 가만있을 수가 있나.”“원호 오라버니... 정말 고맙습니다.”이서영은 힘겹게 그에게 몸을 맡겼다.궁녀도 다친 채 비틀거리며 뒤따랐고 윤원호는 혹여 손끝이 피에 닿을까 조심스럽게 이서영을 부축했다. 상처가 어느 부위인지 알기에 쉽게 손댈 수 없어 더 조심스러웠다.“세현 오라버니...”“다들 나가라.”방 안의 공기가 한층 더 얼어붙었고 평소 침착하던 이경마저 그 한마디에 잠시 숨을 고르는 듯했다.결국 윤원호가 이서영을 부축해 방을 나섰고 궁녀도 절뚝이며 그 뒤를 따랐다. 문정수마저 조용히 자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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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화

이경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 움찔했고 방금까지 입가에 맴돌던 비웃음도 이내 사라지고 눈길에는 팽팽한 경계만이 남았다.“소인을 모함한 자에게 그저 되갚아준 것뿐이옵니다. 세자 저하께서 어찌 그 일로 이다지도 분노하시는지요.”말끝에 걸린 냉소는 그의 오만함을 조롱하듯 짧고도 차가웠다.그러나 윤세현의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예로부터 구공주가 냉혹하고 독하다는 소문이 자자하더니 헛소문이 아니었구나.”이경은 고개를 젓고 한 치도 물러섬이 없었다.“감히 여쭙겠습니다. 만일 저하께서 누군가의 모함을 입으셨다면 넓은 아량으로 그 모든 것을 용서하실 수 있겠사옵니까?”그녀의 시선은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날카로웠다.윤세현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사실, 이경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니었기에 더더욱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누구보다도 원한을 잊지 못하는 이가 바로 자신임을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그러니 저하께서 이리 진노하시는 것도, 제게 과실이 없음을 알고 계시면서 결국 소인이 저하의 마음에 두신 분을 다치게 하였기 때문 아니옵니까?”윤세현은 여전히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고 굳이 입을 열어 설명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았다. 그에게 여자란 본래 복잡하고 번거로운 존재이기에 자신의 감정까지 일일이 해명하고 싶지도 않았다.하지만 이경이 보기에는, 그의 이런 침묵이 곧 인정이나 다름없었다.‘역시, 저하와 이서영의 사이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아.’스스로도 지금 화가 난 건지, 씁쓸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이경은 오히려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이리 애달파하실 바에야, 어서 서영 언니를 찾아가 상처를 확인하시지요. 그리고...”이경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목소리는 은근히 낮고 숨소리 하나까지 도발적이었다.“칼끝이 서영 언니의 가슴을 그대로 가로질렀나이다. 살이 갈라져 흉터가 남을 터이니 전하께서도 예전처럼 서영 언니를 바라보진 못하실 겁니다.”윤세현의 얼굴빛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참으로 독한 계집이구나.”그런 상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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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화

“내가 정말 못할 것 같으냐?”윤세현은 남은 한 손을 휘저으며 바닥에 떨어져 있던 단도를 잽싸게 집어 들었다. 날렵하게 손목을 돌리는 순간, 차가운 칼끝이 이경의 가슴께를 겨누며 가까이 다가왔다.“안 돼!”결국 이경은 더는 담담한 척을 유지하지 못하고 애써 붙들던 침착한 표정이 무너져 내렸다.“안 됩니다... 처음부터 잘못은 서영 언니가 한 일이옵니다. 저에게 벌을 내릴 이유가 없지 않사옵니까? 제발 그만두십시오!”마음 깊은 곳에서 두려움과 억울함이 함께 몰려왔다. 분명히 자신은 죄가 없는데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누가 자신을 모함해도 아무 말 못 하고 그냥 당하고만 있어야 한단 말인가? 정말이지, 세상은 너무나 불공평했다.“놓으십시오!”이경은 힘껏 윤세현을 밀쳤지만 그의 단단한 다리에 가로막혀 오히려 움직일 수도 없었다.두 사람의 거리는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칼끝이 하얀 피부에 닿을 듯 말 듯, 조금만 힘을 주면 피가 흐를 것만 같았다.그 순간, 윤세현의 시선이 이경의 몸 위로 미끄러졌다. 그녀가 두려움에 잔뜩 긴장해 미세하게 떨고 가슴이 크게 오르내릴 때마다, 눈앞에는 어딘가 낯설고 하얀 환영이 아른거렸다.그 하얀 그림자는 점점 두 사람이 한 몸이 된 듯한 기묘한 착각으로 번져갔고 남자가 여인을 와락 안아버리는 듯한 환상이었다.“안 돼...”이경의 눈에 붉은 기운이 번졌다.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억울해서인지 모를 감정이었으나 그녀는 끝내 울지 않았다.“저는 아무 잘못도 없사옵니다! 저를 벌하신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불공평한지 아시겠지요!”오늘 억울하게 당한 이 일이, 언젠가는 반드시 열 배, 백 배로 갚아주리라 속으로 되뇌었다.이경은 눈을 질끈 감고 칼끝의 차가운 감각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언제 아픔이 닥칠지 모르는 두려움에 긴 속눈썹이 떨렸으나, 눈동자 끝에 맺혔던 눈물은 이미 말라 있었다.그녀의 약한 모습은 찰나에 스쳐 가고 이내 다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자신을 다잡았다.윤세현은 한동안 가늘게 뜬 눈으로 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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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화

윤세현이 방을 떠난 뒤에야 이경은 온몸의 힘이 풀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마를 훔치자 손바닥에 차가운 식은땀이 잔뜩 묻어나왔고 윤세현의 속내를 알 수 없어 방심할 틈이 없었다.조금 전만 해도 정말 가슴께에 칼끝이 꽂힐 줄 알았다. 마지막 순간에 그가 왜 멈췄는지 이경은 끝내 알 수 없었다.옷매무새를 다듬은 이경은 문 앞에 아무도 감시하는 이 없이 조용한 것을 보고 곧장 밖으로 나왔다.“공주마마!”조금 떨어진 곳에서 연지가 허겁지겁 달려왔고 이어 초아도 숨을 몰아쉬며 모습을 드러냈다.“방금 너희를 풀어주었느냐?”이경이 의아하듯 물었다. 방금 전 자신이 이서영을 다치게 했는데도 윤세현이 이렇게 순순히 놓아주다니 믿기지 않았다.“네, 공주마마.”연지가 고개를 끄덕였다.“전하께서 사람을 보내 풀어주셨습니다.”전에는 계속 갇혀 있었으니 더더욱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그자가 이토록 쉽게 마음을 바꾸다니... 정말 믿기 힘들구나.”이경은 고개를 갸웃했다.“공주마마, 이제 이 낡고 흉흉한 장군부를 떠나 지방관 나으리 댁에서 머무르시지요.”초아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재촉했고 이경이 이렇게 오랜 시간 아무것도 먹지 못해속이 타는 듯했다.장군부 모두가 이경을 증오하고 있으니 더는 머물 수 없었다. 이제 믿을 수 있는 건 지방관 쪽뿐이었다.“좋다. 당장 지방관 댁으로 가자꾸나.”이경은 망설임 없이 곧장 대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마침 대문 앞에서 지방관이 급히 달려왔다. 그는 이경이 무사한 걸 확인하고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공주마마, 북진의 대군이 몰려옵니다. 부디 저희 집으로 몸을 피하소서.”이경이 어디 갇혀 있는지 찾느라 진땀을 흘렸지만, 윤세현 측 사람들은 끝까지 장소를 알려주지 않았다.이번 일로 황실과 크게 틀어진 건 분명했으나 그래도 지금은 이경의 안전이 가장 중요한 상황이었다.“나도 막 너를 찾으려던 참이었다.”이경은 지방관을 따라나서며 물었다.“북진 쪽 상황을 내게 설명해보거라.”장군부 사람들은 더는 이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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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화

“날아 들어온다고요?”초아가 듣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설마... 저 사람들이 진짜로 하늘을 날아서 성벽도 막지 못한다는 말이냐?”지방관은 이경을 겁주고 싶지 않았으나 상황이 급해 어쩔 수 없었다.“예, 그들은 성벽을 넘어 날아듭니다. 매번 천 명이 넘게 들어오고, 끝내는 모두 잡아내지만 그 피해가 너무 커서... 백성들이...”그는 잠시 머뭇거리며 슬픈 얼굴로 말했다.“백성들이 또다시 화를 입게 생겼습니다.”“어찌 이런 일이 있단 말이냐! 두 나라가 싸우는 것뿐인데 어찌 무고한 백성들을 해친단 말이냐!”이경은 분노에 손을 불끈 쥐었다.“백성을 죽이는 건 민심을 어지럽혀, 군심을 흐트러뜨리려는 것이겠지?”성 밖에서 싸우는 군사들은 대부분 가족이 이곳에 남아 있으니 자신이 싸우는 동안 가족이 죽임을 당한다면 얼마나 절망스럽겠는가. 북진의 이 수법은 정말 잔혹했다.지방관이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공주마마의 말씀이 옳사옵니다. 저 비인들은 군심을 어지럽히기 위해 보내는 자들인데 저희로서는 도리가 없사옵니다...”“정말 이 세상에 하늘을 나는 사람이 있단 말입니까?”연지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성벽이 그리도 높은데 웬만한 고수 아니고서야 넘을 수 없지 않습니까? 저도 자신 없사온데...”설마 북진 대군 안에 그토록 많은 고수들이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이 전쟁은 도대체 어떻게 싸워야 한단 말인가?“그들은 정말로 날아다닙니다...”지방관 뒤에 있던 주부 대감이 두려움에 떨며 말했다.“대감, 어서 공주마마를 안전한 곳으로 모셔야 하옵니다. 비인들이 곧 들이닥칠 텐데 꼭 지키셔야 하옵니다!”곧 비인들이 들이닥칠 상황이라, 모두들 이경이 다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랐다. 만에 하나 이경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황실에 그 책임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두가 두려워했다.이때 지방관도 급히 말했다.“공주마마, 부디 저와 함께 내실로 피하시옵소서.”“이런 몰지각한 자를 보았나! 백성이 위태로운데 나만 편히 숨으라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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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화

“세자 저하께서 용기군(龍騎軍)을 이끌고 친히 성 밖으로 나가 싸우신답니다!”성루 위, 모성의 수비병들은 긴장감과 흥분이 뒤섞인 채 서 있었다. 하지만 이경이 성루로 올라오자 그 순간 분위기는 냉랭하게 식어버렸다.‘저 악독한 구공주가 여기서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이곳에 있는 병사들은 모두 진정호 휘하에서 싸워온 이들. 언제부턴가 구공주가 진정호를 모욕했다는 소문이 부대 전체에 퍼져 있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있던 병사들 모두, 이경을 보면 이를 갈았다.하지만 전쟁을 앞두고 함부로 군심을 흔들 수 없어, 아무도 나서서 무례를 범하지는 않았다. 그저 이경이 성루 위에 올라온 것을 차갑게 바라볼 뿐, 예를 갖추는 이 하나 없었고 누구 하나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자도 없었다.지방관은 어색하고도 난감한 표정으로 이경 곁을 지켰다.“공주마마, 저 병사들이...”이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장군부 사람들이니 그러려니 하거라. 신경 쓰지 않는다.”지방관은 다시 간곡히 말했다.“공주마마, 성루 위는 위험하옵니다. 부디 내려가시지요.”그는 한 번도 전쟁 중에 직접 성루에 올라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애초에 무관도 아닌 문관이었으니 전투는 장수들의 몫이라 생각했다. 그의 소임은 오직 이 도시 백성들의 삶을 보살피는 일이었다.하지만 이경은 그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손짓으로 내보내며 말했다.“나는 네 도움이 필요 없으니 먼저 돌아가거라.”다행히 연지에게는 지방관의 인장이 있으니 사람을 움직이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구공주가 성루 위에 있는데 감히 혼자 내려갈 수도 없는 노릇, 지방관은 어쩔 수 없이 한 발 한 발 따라가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공주마마...”이경은 단호하게 말했다.“전쟁이 코 앞인데 겁이 난다면 내려가거라. 아니면 내 앞에서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마라.”이경은 성루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섰다. 멀리 바라보면 달빛 아래 우뚝 선 남자가 있었다. 은빛 갑옷을 입고 당당하게 말을 타고 있는 모습,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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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화

“비인이다!”갑자기 누군가가 성루 위에서 크게 소리쳤다.그 순간, 성 위의 모든 군사가 긴장감에 휩싸였다.지방관과 주부 대감, 초아까지 모두 깜짝 놀라 그만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정말, 정말로 하늘을 난다니! 저 멀리 보이는 자들은 새처럼 하늘 높이 날아 성벽을 훌쩍 넘어 곧 머리 위로 쏟아질 듯 다가왔다.“공주마마, 어서 내려가시지요!”한 부장이 급하게 뛰어와 이경 앞을 막아섰다. 그 역시 구공주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지만 혹여 이 자리에서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장차 황제가 모성 장수들에게 문책을 할 것이 뻔했다. 그도 형제들이 억울한 누명을 쓰는 건 바라지 않았다.“어서 내려가십시오!”멀리서도 군사들이 잇따라 소리쳤지만 이경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이제는 모두 이 여인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고 가는 곳마다 화를 부르는 여인이라며 속으로 혀를 찼다.부장은 분노와 답답함에 군사들에게 명령했다.“너희들, 어서 공주 곁을 지켜라!”“저들 실력으로는 내게 미치지 못한다.”이경이 두 번째로 활을 들었다. 곁으로 온 몇몇 군사들은 씁쓸하게 이를 갈았지만 비인이 코앞까지 다가오니 그 모든 불만은 잠시 미뤄둘 수밖에 없었다.“쏴라! 비인들을 쏴서 떨어뜨려라!”부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궁수들은 일제히 화살을 메기고 머리 위로 다가온 첫 무리의 비인들을 겨누었다.북진 대군은 역시 교활했다. 비인들을 한꺼번에 몰아 보내지 않고 소수씩 흩어 보내 빗발치는 화살에 맞을 확률을 줄이고 있었다.이때, 이경이 뒤를 돌아 연지와 눈빛을 나누더니 곧 손을 높이 들어 신호를 보냈다.“궁수들은 준비하라!”연지가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가 이끈 병사들은 기존 성벽 병사들보단 수가 적었지만 각자 화살촉에 뭔가가 단단히 묶여 있었다.연지가 불을 붙인 횃불을 들이대자 화살촉마다 불길이 번졌고 이경 역시 불붙은 화살을 활시위에 올렸다.부장의 신호와 동시에 일제히 화살이 쏟아졌다. 명중하는 듯 보였으나 여전히 대부분의 화살은 비인의 ‘날개’만 뚫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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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화

구공주 이경의 뒤에 서 있던 연지는 그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가녀린 몸으로 강한 장궁을 거침없이 당기는 그 결연한 눈빛과 손끝에는 두려울 것 없는 강인함이 깃들어 있었다. 분명 작고 여린 여인일 뿐인데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엄이 느껴졌다.연지는 이경에게 이런 모습이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차가운 옆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무릎을 꿇고 예를 올리고 싶을 만큼 경외심이 들었다. 이경이 활을 들어 당길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그 화살이 공중을 가를 때면 숨이 멎는 것 같았다.‘공주님, 참으로 아름다우십니다...’성벽 위의 장수들과 병사들 역시 연지와 다르지 않았다.모두가 얼이 빠져 이경을 바라보다가 이경이 미간을 찌푸리며 분노를 실은 목소리로 외쳤다.“두 번째 무리가 온다! 활 준비하라!”“예!”“예!”“예!”병사들은 정신을 차리고 불을 붙인 화살을 활시위에 올리며 하늘로 날아드는 북진의 비인들을 겨눴다. 비인들이 성벽 위로 몰려들었고 이경이 쏜 첫 화살이 일행 중 한 명을 정확히 꿰뚫었다.“형제들이여, 모두 쏘아라!”부장이 흥분에 찬 목소리로 불붙인 화살을 들고 외쳤다. 연이어 날아드는 화살, 비인들을 향해 빗발치듯 쏟아졌다.“쏘아라!”“쏘아라!”성벽 위에선 환호성이 터졌다. 머리 위를 날아 넘던 북진의 비인들이 하나둘씩 추락했고 살아남은 자는 거의 없었다.늘 백성들에게 두려움만 안기던 북진의 비인들은 이번만큼은 이경과 병사들의 활 앞에 모두 무너졌다. 단 한 명의 백성도 다치지 않고 단숨에 모두 진압된 것이다.성안의 백성들은 모두 농기구와 식칼을 손에 쥔 채 불안하게 기다리고 있었으나 곧 성문에서 “비인 전멸!”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아니 어찌 이런 일이! 설마 세자 저하께서 그 비인들까지 모조리 물리치신 건가?”“아니다, 세자 저하는 성 밖에서 전투 중이시다. 성벽 위에서 비인들을 막아낸 건 우리 병사들이라네.”“전에는 아무리 쏴도 못 맞췄다더니?”“이번에는 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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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화

마침내 대군이 성으로 돌아오고 하늘은 점차 밝아오기 시작했다.하지만 이경은 방에 없었다. 그녀는 밤새 성벽 위에서 장수들과 함께 북진의 비인들을 상대하느라 꼬박 밤을 지새웠다. 이 시각에도 방에서 쉬지 않고 어딘가에서 무얼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윤세현은 자신이 왜 이렇게 초조한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예전 같으면 전장에서 돌아오자마자 피곤함에 곧장 잠들었겠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이경이 병사들과 함께 전투를 이끌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았다.그는 그 여인을 보고 싶었다. 이유도 없이, 왠지 모르게, 게다가 너무나 간절하게 말이다.“구공주께서 지금 지방관 나으리 댁에 계십니다.”문정수가 전한 이 한마디에 막 말에서 내린 윤세현은 다시 말에 올라탔다.그는 곧바로 고삐를 돌려 장군부를 빠져나와, 지방관 댁을 향해 달렸고 문정수도 급히 따라붙었다.지방관 댁에 도착해보니 이경은 역시 방에 없었다. 밤새 한숨도 못 잔 그녀는 지금은 지방관 댁 뒤뜰에 있다는 말이 들려왔다.윤세현이 뒤뜰로 들어서자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수십 명의 여인들이 뭔가를 갈고 다듬고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이경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저분이... 저분이 바로 세자 저하 아니신가!”눈썰미 좋은 하인이 그를 알아보고는 숨을 죽였다.“세상에... 저하께서 저리도 잘생기셨다니...”“정말, 너무 멋지십니다...”여인들은 넋을 잃은 채, 손에 들고 있던 일을 다 잊고 그저 그를 쳐다보았다.전쟁터에서 돌아온 듯, 헝클어진 은빛 갑옷과 머리카락에는 전장의 먼지가 그대로 묻어 있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조차 오히려 그의 강인한 기운을 더욱 또렷하게 보여주고 있었고 도무지 눈을 뗄 수 없는 위풍이었다.저런 남자를 보고 마음이 안 흔들릴 여인이 어디 있으랴.“구공주는 어디 계시냐?”문정수가 가까이에 있던 여종에게 물었다. 여종은 어렵게 그의 날카로운 시선에서 눈을 뗀 뒤, 조심스럽게 대답했다.“저... 저희 공주마마께서는 지금... 부엌에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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