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Chapter 461 - Chapter 470

604 Chapters

제461화

박하린은 손톱이 거의 살을 파고들 만큼 손을 꽉 쥐고 매서운 눈빛으로 최수빈을 노려보았다.그런 그녀의 앞에서 최수빈은 한 걸음 물러선 채 무표정하면서도 담담한 얼굴로 서 있었다. 마치 박하린의 꼴이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보였다.그때, 방송국 사람들이 도착했다.입학 축하연 날이라 진서령이 직접 주시후를 위해 방송 인터뷰까지 준비해놓은 것이었다.주시후는 주씨 가문의 미래 후계자로 예정된 인물인 만큼 어떤 일이든 화려하게 치러야 했기에 당연히 인터뷰를 위한 준비도 일찌감치 마친 상태였다.하승현도 방송국 관계자들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말을 정리했다.“오늘은 입학 축하 자리니 일단 다른 얘기는 접어두시죠.”그는 오늘의 주인공인 주시후에게 무게를 실어주며 시선을 돌렸다.방송국 사람들은 정확한 시간에 맞춰 들어왔기에 현장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맞아, 시후. 나한테는 아직 시후가 있잖아! 시후는 분명 예린이보다 뛰어나.’그 아이는 박하린의 아들이고 유전적으로도 우수했으며 주씨 가문의 정당한 후계자였다.앞으로의 주씨 가문은 분명히 자신들의 것이 될 터였다.‘아직 안 끝났어. 나한테도 남은 패가 있으니까.’오늘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참으로 흥미로웠다.준비를 철저히 마친 주시후는 당당하게 방송 인터뷰를 진행 중이었고 그것도 생방송 채널을 통해 송출되고 있었다.그때, 주예린이 안에서 나와 주시후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모습을 바라보았다.박하린은 굳은 얼굴로 최수빈의 앞으로 걸어가더니 낮고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수빈 씨가 갖고 싶어 했던 거... 이번 생에 다시는 가질 수 없을 거예요.”최수빈이 원하는 주민혁은 박하린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고 그녀가 원하던 주씨 가문 사모님의 자리 역시 박하린의 것이 될 터였다.이제 당당하게 주씨 가문으로 시집갈 수 있게 됐다는 말이다.주민혁은 모든 준비를 다 마쳤고 박하린은 결코 상간녀 따위가 아니었다.최수빈은 그런 그녀를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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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2화

최수빈은 정말 대단했고 모두가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한쪽에 서 있는 박하린은 지금 이 자리에서 아들의 곁에 당당히 서지도 못하고 아들이 말한 ‘엄마’라는 존재를 인정할 수도 없었다.바로 그때, 방송국 카메라가 최수빈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다.“아드님을 어떻게 이렇게 뛰어나게 키우신 건가요? 듣자 하니 벌써 초등학교 1학년 과정을 모두 마치고 3학년 수준까지 진도 나갔다던데요?”기자가 마이크를 들이밀며 질문하자 최수빈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조용히 마이크를 받아들었다.“시후는 분명히 아주 우수한 아이입니다. 하지만...”그녀는 옅은 미소를 머금고 덧붙였다.“여기서 한 가지는 꼭 바로잡고 싶네요. 시후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수없이 많은 답변을 상상한 기자도 이런 식의 대답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순간, 그의 얼굴에 놀라워하는 기색이 그대로 드러났다.‘아니라고? 친아들이 아니라고?’그렇다면 주시후는 사생아란 얘기였다.‘그럼 친엄마는 누구지?’주기훈의 눈빛이 순간 날카롭게 바뀌었고 진서령은 아예 얼굴빛이 확 변해버렸다.‘최수빈의 아이가 아니라니? 쌍둥이라 하지 않았나? 어떻게 한 명만 친 아이일 수가 있는 거지?’“밥은 아무렇게나 먹어도 말은 가려서 해야지!”진서령은 최수빈을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너 지금 뭐 하는 거야? 그깟 일 좀 있었다고 주씨 가문에 이렇게 먹칠을 해? 심보가 아주 고약하구나?!”“네가 쌍둥이 낳았잖아. 아들 하나, 딸 하나! 딸 편애하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 와서 아들까지 부정하겠다는 거야? 저 애는 네 뱃속에서 나온 피붙이야. 네 아들이 아니라고 하면 그게 애한테 얼마나 큰 상처가 될지 몰라? 이런 말 해서 너도 무슨 득 볼 거 없지 않아? 네가 주씨 가문 사람들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렇다고 자기 친아들의 명예까지 짓밟는 건 안 되지.”주시후는 인상을 찌푸렸다.‘엄마가 분명 엄마에 관한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공개될 것이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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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3화

진승우는 싸늘하게 눈썹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돌려 최수빈을 바라보았다.‘정말 미친 게 분명해... 어떻게 그런 말을 그것도 생방송 중에 거리낌 없이 뱉을 수 있는 거지? 아무래도 이혼한 다음에 하린 씨를 질투한 나머지 이성을 잃은 게 분명해.’손까지 덜덜 떨리는 채로 주시후를 바라보는 진서령의 눈빛이 달라졌다.그녀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주민혁 앞으로 다가가 날카롭게 물었다.“지금 최수빈이 하는 말, 대체 헛소리야 아니면 사실이야? 만약 헛소리라면 지금 당장 사람 시켜서 이 자리에서 끌어낼 거다!”박하린은 축 늘어뜨렸던 손을 조용히 움켜쥐었다.오늘 최수빈이 보여주는 태도는 누가 봐도 그녀를 밟아 눌러놓겠다는 의도였다.이 자리가 어떻게 끝나든 이후로는 온갖 험담과 루머가 뒤따를 게 뻔했다.원래대로라면 오늘 주시후는 누구보다 당당하게 빛나는 ‘후계자’로 주목받았을 것이었다.주기훈은 얼굴을 굳힌 채 재빨리 사람을 시켜 생방송을 꺼버렸다.주예린과 주시후는 쌍둥이로 알려져 있었는데 오늘 주민혁의 전처인 최수빈이 나서서 주시후가 본인의 친아들이 아니라고 폭로했다.게다가 그 아이가 박하린의 아들이라는 말까지 나왔다.폭탄 같은 이 한마디의 파급력은 실로 엄청났고 모두가 최수빈이 그렇게까지 말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생각했다.최수빈은 주민혁과 박하린의 외도를 견디다 못해 결국 이혼한 거라 여긴 것이다.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주예린이 사생아라는 소문까지 나돌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이 모든 일들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가릴 필요가 있었다.“주민혁.”주기훈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오늘 여기서 정확히 말해. 시후는 누구의 아들이지?”출장을 갔다 돌아왔을 뿐인데 집안은 완전히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주기훈이 믿었던 그 ‘좋은 아들’이란 자가 지키던 집이 이 모양 이 꼴이었다.주민혁은 조용히 시선을 들고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시후는 저랑 최수빈 사이에서 입양한 아이가 맞아요.”이 한마디로 그는 자신이 혼인 중 외도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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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4화

주시후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멍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였고 그중 일부는 노골적으로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특히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들의 눈빛은 더욱 차가웠다.그뿐만이 아니었다.그동안 자신에게 따뜻했던 주씨 가문의 도우미들조차 주시후를 보는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아이는 이를 악물고 차갑게 최수빈을 노려보았다.“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예요! 아줌마야말로 우리 엄마랑 아빠 사이에 끼어든 사람이에요! 아줌마 없이도 우리 가족은 정말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다고요!”박하린은 숨이 멎은 듯 가슴이 턱 막혔고 진승우는 아예 할 말을 잃었다.그는 고개를 옆으로 살짝 돌려 박하린을 바라봤다.그동안 주시후와 함께 놀러 다닐 때, 아이가 박하린을 ‘엄마’라고 부르긴 했었다.하지만 설마 ‘친엄마’일 줄은 전혀 예상지 못한 일이었다.박하린이 다른 이의 가정을 파탄 낸 상간녀이고 그녀와 주민혁 사이에 이렇게 큰 아들이 있었으며 최수빈과 주민혁의 부부 관계는 이미 오래전에 깨져 있었다는 것...이제야 그 모든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났다.진서령은 그 자리에 서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그냥 애가 한 말일 뿐이잖아요...”박하린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분명히 뭔가 오해가 있는 거예요.”“엄마...?”주시후는 박하린을 올려다보며 혼란스러운 눈빛을 보냈다.하지만 박하린은 냉랭하게 입을 다문 채 아들의 부름에 단 한마디도 응답하지 않았다.#주시후_사생아#박하린_상간녀#주민혁_불륜_사실확정#전처가_5년간_남의_아들_길러줌#딸은_사생아_아들은_후계자?이러한 키워드들이 온라인상에서 실시간으로 뜨거운 화제를 모았다.은산시에서 가장 유명한 재벌가 주씨 가문에 이런 스캔들이 터지자 온 인터넷이 들썩이고 있었다.그때, 주기훈 곁으로 비서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귓속말로 무언가를 전했다.순간, 남자의 얼굴은 더더욱 냉랭하게 굳었고 주위를 감도는 기운도 한층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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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5화

사람들 얼굴에 떠오른 표정들은 하나같이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웠다.“자료가 도착했습니다.”현장 바깥에서 들려온 목소리와 함께 육민성이 서류봉투를 들고 나타났다.하승현은 그쪽을 돌아보며 말했다.“기다리고 있었어. 어서 와.”박하린이 눈을 가늘게 뜬 채 육민성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그 안에는 서늘한 기류가 감돌고 있었다.손은 어느새 주먹이 꽉 쥐어진 채로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박하린은 육민성이 또 무슨 말을 꺼낼지 몰라 불안했고 단지 오늘 하루만이라도 자신의 체면을 지켜내고 싶었다.시간을 벌어 숨을 고르고 그다음에 어떻게 수습할지 생각할 여지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하지만 연달아 벌어지는 사건들이 숨 쉴 틈도 주지 않았다. 게다가 주민혁과 따로 대책을 논의할 기회조차 없었다.가슴이 조여들며 답답했고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그런 상황에서 육민성이 등장하자 본능적으로 심장이 두 번 쿵쿵 뛰었다.손톱이 살을 파고드는 게 느껴질 정도로 손을 더 세게 움켜쥐며 박하린은 이를 악물었다.오늘 최수빈은 노골적으로 자신에게 망신을 주러 나온 것이 분명했고 쉬지 않고 몰아붙이는 공격에 한 치의 틈도 없었다.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주저앉을 순 없었다.어떤 방식이든 지금 상황은 철저히 자신에게 불리했다.세간의 시선, 대중의 여론...그 어느 것도 박하린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그렇다고 하여 지금 이 자리에서 주민혁에게 다가가 함께 논의할 수도 없었다.그들 둘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조차 사람들에게는 꼬투리를 잡기 딱 좋은 그림이었으니 말이다.곧 안색이 새하얗게 질린 박하린이 입술을 꽉 깨문 채 겨우 말을 뱉었다.“이 일은 여기까지 하죠. 나머지 판단은 법원이 알아서 해줄 겁니다. 오늘 몸이 좀 안 좋아서 먼저 가봐야겠어요.”힘겹게 입을 연 그녀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허약한 기운이 묻어났다.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박하린에게 쏠렸고 동시에 주시후에게도 향했다.조금 전까지 ‘엄마’라고 불렀던 그 여인이 지금은 아무런 반응도 없이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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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6화

“민성이의 손에 들려 있는 저 문건은 바로 국가에 정식으로 등록된 자료입니다. 이미 15년 전에 등록된 거고요. 이걸 통해서 수빈 씨가 오류를 해결하고 그 초기 프로젝트에 기반해서 혁신을 만들어냈습니다.”하승현이 이렇게 말하는 사이 육민성이 무대 위로 올라갔고 손에 들고 있던 자료를 바로 대형 스크린에 띄웠다.수많은 사람들이 핸드폰을 들어 이 장면을 영상으로 찍기 시작했고 이미 온라인에는 관련 클립이 쏟아지듯 올라오기 시작했다.박하린은 스크린에 떠 있는 ‘국가 등록 자료’라는 문구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심장이 완전히 얼어붙는 것 같았다.누구나 알고 있었다.국가 차원에서 등록된 자료는 조작이 불가능하고 조작할 이유도 없으며 보관 또한 단 한 군데가 아닌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다는 것을.“대단하네. 요즘은 표절한 사람이 저리도 당당한가 봐? 표정 보고 진짜 억울한 사람인 줄 알았잖아.”“학벌 하나 믿고 회사 차렸다더니 결국 해낸 업적은 남의 거 베낀 거 하나네. 진짜 한심해.”“그냥 외국물 좀 먹고 돌아왔다고 우쭐대는 거지. 조국에 기여하겠다던 사람이 이 정도면 민폐 덩어리 아냐?”“주 대표님 아니었으면 저 여자는 그냥 듣보잡이지.”업계 사정에 밝은 사람 하나가 툭 던졌다.“수빈 씨의 논문이 연이어 주요 저널에 실렸는데 듣자 하니 이 하린 씨도 논문을 투고하긴 했더라고요. 그런데 1구역 등재 기준도 못 넘겼다면서요? 타이밍 보니까 수빈 씨랑 거의 같은 시기던데...”“푸하하, 진짜 웃기네. 한때는 실력자라고 생각했는데... 빈 수레가 요란한 거였어. 그때 왜 천공에서 안 받아줬는지 이제 이해가 되네.”박하린은 사람들 한가운데서 온갖 경멸 어린 시선을 감당하고 서 있었다.숨이 막히듯 답답했고 사방에서 바닷물이 밀려드는 것처럼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하승현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이 상황에 대해 더 하실 말씀 있습니까?”박하린은 거의 온몸이 떨리고 있었고 입술을 꼭 깨문 채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절대로 이 자리에서 무너질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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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7화

최수빈은 조용히 병원 복도 한쪽 구석, 긴 벤치에 앉아 응급실 위에 환하게 켜진 불빛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얼굴에는 그늘이 내려앉아 있었고 표정 역시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반면 주씨 가문 사람들은 하나같이 초조함에 복도를 왔다 갔다 하며 정신이 없었다.그 가운데 진서령은 최수빈을 흘끗 바라보더니 곧장 목소리를 높였다.“이 모든 걸 굳이 지금 다 까발려야 했어? 너 같은 재수 없는 인간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거잖아! 어머님은 나이도 지긋하신 데다 고혈압까지 있으셔. 이런 충격을 버틸 수가 있겠냐고! 오늘 어머님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다 네 책임이야, 알겠어?!”그러자 주기훈이 싸늘한 얼굴로 진서령을 막아섰다.“여기 병원이야. 제발 말과 행동 좀 조심해. 소란 피우지 말고.”진서령은 그 말에 목이 턱 막힌 듯 입을 닫았고 그제야 복도는 다시 조용해졌다.하지만 최수빈은 차분하게 고개를 들더니 진서령을 향해 냉소 섞인 웃음을 흘렸다.“이 세상이 언제부터 억울한 사람이 입도 못 열고 욕까지 먹어야 하는 곳이 됐죠? 제가 주씨 가문에 무슨 빚이라도 졌어요?”‘이 정도 상황에서도 아무 말 하지 말라니... 남편이 다른 여자랑 바람까지 피웠는데 내 입으로 뭐라 한마디 하겠다는 것조차 잘못이라는 거야?’“민혁 씨가 정말 잘못한 게 없고 딴 여자를 안 만났다면 제가 왜 입을 열었겠어요?”남 탓할 상황이 아닌데 다들 마치 최수빈이 이 집안에 해를 끼친 것처럼 몰아갔다.밖에서는 최수빈이 철저한 피해자인 것처럼 보일 테지만 이 집안 사람들 눈에 비친 자신은 언제나 뭔가를 빚진 채 살아가는 외부인일 뿐이었다.그들에게 모든 것을 줘도 결국 그들은 최수빈이 부족하다고 손가락질했다.주나연이 팔짱을 낀 채 쏘아붙였다.“할머니가 올케한테 그리 나쁘게 굴지도 않았는데 정말 양심도 없네. 어떻게 그딴 말을 할 수 있어?”그 말에 최수빈은 순간 마음이 쓰라렸다.사실 주시후가 친아들이 아니란 사실을 공개하기 전, 그녀는 미리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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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8화

최수빈이 오늘 이 병원에 온 건 오직 한 사람 때문이었다.주씨 가문에서 그녀가 마음을 쓰는 유일한 존재는 바로 원금영이였다.“내가 여기서 이렇게 차분하게 민혁 씨랑 얘기하고 있는 이유, 민혁 씨도 잘 알 거예요. 내가 신경 쓰는 건 딱 하나, 할머니가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그거 하나뿐이에요.”최수빈은 입꼬리를 씩 올리며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왜요? 지금도 내가 민혁 씨한테 뭔가 바라는 줄 아는 거예요? 아니면 지금도 민혁 씨의 그 소중한 여자를 위해서 내가 좀 자비를 베풀어주길 바라는 거예요?”“그럼 말해보세요, 주 대표님. 이번에는 또 뭘 내놓을 참이죠? 민혁 씨의 그 조건과 협상 카드는 뭐죠?”저번에는 신세계 그룹 전체를 미끼로 던졌다. 그렇다면 이번에는이번 사안은 그때보다 훨씬 더 크고 치명적이었다.최수빈은 주민혁의 그런 ‘자기 확신’ 가득한 태도가 우습기 짝이 없었다.무슨 일을 하든 어떤 선택을 하든 결국 그녀가 한 모든 것이 그 사람 눈에는 왜곡돼 보이는 듯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신세계 그룹은 더 이상 주민혁의 것이 아니고 최수빈의 것이며 그녀의 사회적 위치와 존재감도 달라졌다.그런데 이제 와서 주민혁에게 무슨 조건을 제시할 자격이 있단 말인가?지금의 그녀는 약점도 없고,부족한 것도 없었다.최수빈의 눈빛은 한없이 차분했고 그 속에는 싸늘할 만큼 냉철한 이성이 깃들어 있었다.주민혁은 그런 그녀의 표정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나는 누구한테도 이용당하는 장난감이 아니에요. 협조할 사람을 찾고 싶다면 잘못 짚었어요.”이렇게 말한 뒤, 최수빈은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돌려 그 자리를 떠났다.주민혁은 말없이 그 뒷모습을 지켜볼 뿐 끝내 붙잡지는 않았다.다만 그의 마지막 한마디가 조용히 최수빈의 귓가를 스쳤다.“앞으로 하는 일마다 술술 풀리길 바라.”누가 봐도 좋은 말이고 진심인 듯 들릴 수 있는 말이었다.하지만 그 말이 주민혁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최수빈에게는 독처럼 느껴졌다.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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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9화

진서령은 그저 허탈했다.지금껏 자신이 쏟아온 세월과 노력, 모든 헌신이 한순간에 부정당한 기분이었다.주씨 가문을 위해 발 벗고 나섰고 안팎으로 남편의 체면을 챙기며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 이미지를 굳혀왔다.사교 모임, 부인들 모임에서도 다들 그녀를 부러워했다.능력 좋고 배려심 깊은 남편을 뒀다며 말 그대로 성공한 인생이라 자부해왔다.하지만 그 속에 숨겨진 씁쓸함은 오직 그녀만이 알고 있었다.결혼 초부터 남편과 함께한 시간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감정도 그리 깊지 않았다.주기훈은 언제나 자신의 정치적 입지, 커리어 확장을 위해 바쁘게 뛰어다녔고 그의 세상에는 ‘집’이라는 단어가 좀처럼 존재하지 않았다.“알아요, 당신이 정치판에서 얼마나 신중하게 굴어야 하는지. 하지만 최수빈? 걔가 뭐가 그리 대단해서 눈치를 보는 건데요? 당신은 내 남편이고 주씨 가문의 사람이에요! 지금 왜 내 편이 아니라 저년 편을 드는 건데요!”진서령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울부짖었다.남편이 이런 상황에서조차 자신이 아니라 최수빈을 감싸고 있다는 게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주기훈은 가정에는 거의 얼굴도 비추지 않았고 실질적인 집안 살림은 전적으로 그녀의 몫이었다.그럼에도 주기훈은 진서령을 믿었고 그녀는 자신이 그 신뢰를 지켜왔다고 생각했다.“당신을 위해서, 그리고 이 집안을 위해 내 청춘 전부를 바쳤는데 일이 터지니까 제일 먼저 날 내치겠다는 거예요?”그러자 주기훈은 냉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딱 잘라 말했다.“진작 알았더라면, 당신이 주씨 가문을 이렇게 망쳐놓을 줄 알았더라면 그때 당장 이혼했을 거야.”그 말에 진서령은 온몸에 힘이 풀리며 그대로 벤치에 주저앉았다.그러자 주나연이 다급히 달려와 진서령을 부축했다.“아빠, 이제 그만 좀 하세요. 지금은 누구보다 예민한 때잖아요.”실제로 주씨 가문은 지금도 온라인에서 쑥대밭이었다.비난과 조롱은 계속 올라오고 있었고 여론은 가라앉을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심지어 위쪽에서도 이 사안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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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0화

이건 그녀가 바라던 결과는 아니었다.최수빈은 마음속으로 이미 잘 알고 있었다.원금영의 입장도 육민성의 말도 그 모든 상황들이 이치로는 이해된다.하지만 가족 간의 감정은 그런 논리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어르신이 너 때문에 기절할 정도로 화가 났던 건, 그분이 분별력 없는 사람이어서가 아니야. 네가 그동안 얼마나 참고 억울한 시간을 견뎌왔는지... 그게 너무 가슴 아파서였던 거지.”육민성이 최수빈을 바라보니 그녀의 눈가는 어느새 붉게 물들어 있었다.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눌렀다.“수빈아, 그 오랜 결혼 생활 동안 네가 행복했었다고는 누구도 말 못 해. 시후가 네 아들이 아니라는 것도, 그 아이를 5년이나 정성껏 돌봐온 사실도... 우리처럼 가장 가까운 친구들조차 몰랐잖아. 할머니도... 당연히 모르셨겠지.”“난 이거 처음 알았을 때 정말 분했고 그만큼 안타깝기도 했어. 그리고 무엇보다 널 아끼는 그분이 이 사실을 들었을 때의 심정을 생각하니 더더욱 이해가 갔고.”상간녀의 아이를 다섯 해 동안 길러온 거라고 생각하면 그 자체로도 비극이었다.최수빈은 입술을 꾹 다문 채 고개를 숙였다. 눈물이 실처럼 주르륵 흘러내렸다.육민성은 지금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도 위로가 안 될 걸 알았기에 그저 자신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기대도 돼.”그러자 최수빈은 아무 말 없이 그의 어깨에 살며시 머리를 기댔고 조용히 울기 시작했다.연약한 그녀의 어깨가 작게 떨렸다.하지만 지금의 결과는 최수빈이 원하던 바였기에 후회는 없었다.다만 할머니만큼은 여전히 그녀의 마음속에 놓이지 않는 큰 벽이었다.그때, 병원 정문 쪽에서 주민혁이 나왔다.그리고 마침 그녀가 육민성의 어깨에 기대 울고 있는 장면을 고스란히 보게 되었다.자료를 들고 올라오던 비서 려운도 그 장면을 봤고 작게 중얼거렸다.“두 사람, 사이가 꽤 좋아 보이네요. 진작에... 그런 사이였던 거겠죠?”주민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냉담하게 시선을 거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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