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Chapter 681 - Chapter 690

816 Chapters

제681화

여자는 주선웅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그 말이 사실이길 바란다. 내가 속지 않길 바란다는 뜻이야. 지금 핑계 대는 게 다 거짓말이라면, 그리고 진심으로 그 여자를 데리고 들어오겠다는 거라면... 넌 이 엄마를 없는 셈 쳐.”말투는 단호했고 눈빛도 서늘했다.지금은 몰락한 처지였지만 그녀는 여전히 가문과 도리를 중요하게 여겼다.주선웅은 어릴 적부터 계산이 빠르고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사람이었다.결혼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아무리 집안에서 정략결혼을 밀어붙여도 단 한 번도 마음을 연 적이 없었다.그런데 이제 보니 이미 마음을 준 여자가 있었던 것이다. 다른 여자가 가슴속에 자리하고 있으니 결혼이란 말을 꺼내기조차 싫었을 것이다.“엄마가 너무 깊게 생각하시는 거예요.”그녀는 또다시 한숨처럼 말을 내뱉었다.“플라잉 테크 입사 건은 왜 나한테 말 한마디 없이 진행한 거야?”그러자 주선웅이 고개를 들었다.“엄마, 저는 늘 제 방식대로 판단해왔어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돌아오자마자 주상 그룹에 입사한다면 너무 노골적이지 않을까요? 괜히 미리 자극을 줄 수도 있고 그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잖아요.”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며 대답했다.“지금 네가 플라잉 테크에 들어간다고 해서 주민혁이 의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네가 돌아온 이후로 그 애는 계속 회사를 넘기려고 했잖아. 그런데 너, 왜 안 받았니?”“엄마.”주선웅은 손에 들고 있던 노트북을 내려놓더니 진지한 눈빛으로 어머니를 바라봤다.“아직도 그 애를 어릴 때처럼 순진한 아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때는 몰라도 지금은 달라요. 이제 완전히 어른이 됐고 예전처럼 단순하지 않아요. 이제는 속이 뭔지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요. 주상 그룹을 제게 넘긴다? 정말 그럴까요? 혹시 껍데기만 멀쩡한, 안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를 회사라면요? 진짜 유산인지, 터지기 직전인 시한폭탄인지도 모르는데... 제가 그걸 확인도 안 하고 덥석 받을 수는 없죠. 전 주씨 가문이 주는 그 어떤 회사도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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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2화

...한편, 최수빈은 사람을 보내 여러 정보를 수소문하고 있었는데 조사에 나섰던 이들이 하나둘씩 결과를 가지고 돌아왔다.그녀는 컴퓨터 화면에 띄워진 보고 메시지를 바라보며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지난번 심종연 그리고 주선웅과의 식사 자리에서 누군가가 약을 탔던 일, 그 사건의 배후가 누구인지 여전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었다.창밖에는 어둠이 짙게 내려앉았고 그녀는 멍하니 화면을 응시했다.[매번 뭔가 실마리를 잡을 것 같다가도 흐지부지돼요.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정보를 막고 있는 느낌입니다.][상대는 우리보다 훨씬 수가 많고 영향력도 커요. 정보를 차단하려 한다면 우리가 그걸 뚫고 들어가긴 쉽지 않습니다.]최수빈은 조용히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미해결된 사건이라 쉽게 이 사건을 잊을 수는 없었다.[누가 정보를 막고 있는 건지 좀 더 깊이 생각해보세요. 만약 약을 탄 그 사람이 지금도 정보를 가로막고 있다면 그건 훨씬 더 조심해야 할 일이에요. 그 사람은 손이 넓고 수단도 많아서 모르는 사이에 그쪽을 해칠 수도 있으니까요.]화면 속 문장을 읽는 그녀의 이마는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바로 그런 우려 때문에 지금까지도 계속 추적을 지시해온 것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쪽 정보만은 철저히 막혀 있었다.최수빈은 키보드를 두드렸다.[계속 조사해요. 뭐라도 나오면 바로 보고해주시고요.]이 사람들은 최수빈이 따로 알고 지내던 정보 수집 조직이었다.잠시 후, 다시 메시지가 도착했다.[혹시 이런 가능성은 없을까요? 주 대표님이 누가 약을 탔는지 모르게 하려는 거요.그날 밤, 그쪽은 주 대표님과 관계를 가졌죠. 너무 절묘하게 타이밍이 겹쳤잖아요. 그쪽이 약에 당한 직후에 주 대표님이 바로 나타났다는 건... 주 대표님을 의심해볼 만한 거 아닌가요?]최수빈은 천천히 손끝으로 이마를 짚었다.그 말들은 이미 그녀의 머릿속을 한 차례 스쳐 간 적 있는 의문들이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주민혁이 약을 탔을 리는 없다고 믿고 있었다.그날 밤, 그녀는 분명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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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3화

‘주민혁의 태도에 대해서는 아직 더 지켜볼 필요가 있어.’마침 그때, 원금영에게서 전화가 걸려왔고 그녀는 최수빈에게 내일 저택으로 와 식사를 하자고 했다.주선웅도 저택으로 돌아올 예정이고 주민혁도 함께 할 거라며 오랜만에 온 가족이 다 같이 모이자고 했다.최수빈은 그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오빠는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내일 저택에 온다고?’하지만 그녀 역시 주민혁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부분들이 있었고 이번 자리는 오히려 적당한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그래서 최수빈은 원금영의 초대를 받아들였다.그 후에는 주선웅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연결음이 몇 번 울리지도 않아서 바로 연결되었다.“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야?”남자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다정했다.이 늦은 시간에 최수빈에게서 전화가 온 것, 그 자체로 반가운 듯했다.“조금 전에 할머니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내일 저녁 식사하러 저택에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오빠도 같이 온다는데... 몸은 괜찮아요?”그녀는 주선웅의 몸 상태가 걱정되었다.어차피 최수빈 때문이기도 했고 부상 후 몸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내가 그렇게 허약한 남자처럼 보여?”주선웅은 웃으며 말했다.“벌써 병원에 며칠째 누워 있었고 상처도 많이 아물었어. 그 정도는 거뜬해. 할머니가 괜히 걱정하실까 봐 일부러 말 안 한 거니까 너도 굳이 알릴 필요 없어.”최수빈은 주선웅의 판단을 존중했고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다음 날, 원금영이 정한 저녁 식사 약속에 맞춰 퇴근 후 저택으로 갈 준비를 했다.밖은 유난히 잿빛 구름이 가득했는데 언제라도 비가 쏟아질 듯한 하늘이었다.“주씨 가문 저택에 왜 그렇게 서둘러 가는 거야?”최수빈이 오늘 저녁 저택에 간다고 했던 걸 기억한 육민성이 물었다.“혹시 마음속에 어떤 판단이 선 거야? 오늘은 그걸 확인하러 가는 거고?”“네.”최수빈의 짧은 대답에 육민성은 고개를 끄덕였다.“만약 네가 뭔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거나, 도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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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4화

“오빠는 차 안에서 잠깐만 기다려요. 제가 우산 들고 갈게요.”최수빈은 우산을 펼쳐 들고 빗속으로 나선 뒤, 차 앞으로 돌아가 조수석 쪽으로 다가가더니 문을 열었다.그러고는 조심스레 주선웅을 부축했다.“걸을 수 있겠어요? 아니면 안에서 사람 불러올까요?”주선웅은 그녀의 팔을 살짝 짚으며 말했다.“그러면 너무 티 나잖아. 할머니가 보면 또 걱정만 늘어날 테고. 네가 내 팔만 좀 잡아줘. 난 가볍게 기대기만 하면 돼.”두 사람은 한 개의 우산 아래, 나란히 발을 맞춰 저택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리고 바로 그 뒤에서 주민혁이 검은 우산을 든 채 차에서 내렸다.빗속에서 두 사람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차갑고 무표정했다.이윽고 주민혁 역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두 사람에게 다가가더니 아무 예고 없이 주선웅의 팔을 툭 붙잡았다.그 짧은 동작에 최수빈과 주선웅 모두 걸음을 멈췄다.그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나타날 줄은 둘 다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형, 몸도 성치 않은데 꼭 저택까지 올 필요가 있었어? 가족 식사 자리라고는 해도 꼭 형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차가운 말투였다. 말끝마다 웃음기가 섞여 있었지만 말 하나하나에 뾰족한 가시가 숨어 있었다.주민혁의 얼굴에는 억지로 지은 듯한 웃음이 떠올랐다.옛 속담에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지만 지금 이 웃음은 그저 조롱에 가까웠다.주선웅의 표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몸은 분명히 굳어 있었다.주민혁은 가볍게 웃더니 마치 뒤늦게 깨달은 사람처럼 말했다.“내가 또 말을 막 했네. 형,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 그냥 걱정돼서 그랬던 거야.형이 할머니한테 걱정 끼치기 싫어하는 거야 이해하지만 지금 이 상태로 굳이 저택까지 오는 건 아닌 것 같아서. 할머니도 나이는 들었지만 정신은 멀쩡하거든. 형 몸 상태가 예전이랑 다르단 건 분명 눈치챌 거야.”최수빈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건 두 사람 사이의 문제였고 그녀가 끼어들 상황도 아니었으니 말이다.만약 주선웅도 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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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5화

주선웅은 눈을 떼지 않고 주민혁을 응시했다.그의 얼굴에 떠오르는 사소한 표정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매우 조용한 눈빛으로, 그러나 뚜렷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표정 사이에 스쳐 지나가는 감정의 실마리를 잡고 싶었던 것이다.하지만 주민혁은 마치 이 이야기가 나올 걸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는 듯, 그 말을 들은 순간조차 조금의 동요도 없이 담담하게 서 있었다.“내가 이런 말 할 줄 알았다는 듯이 전혀 놀라지 않네.”주민혁은 슬며시 웃었다.“형 생각은 늘 얼굴에 다 드러나 있으니까. 웬만한 사람이라면 다 눈치챘을 거야. 그래서 전혀 의외가 아니지.”이 상황 자체가 이미 계산된 수순이라는 듯, 담백한 말투에 한 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았다.이에 주선웅은 눈을 가늘게 떴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친형이 자신의 전처와 결혼하려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 반면 지금 이 남자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그렇다면 두 가지 가능성뿐이었다.진심으로 최수빈을 신경 쓰지 않거나, 혹은 이미 이 모든 상황을 예상하고 준비해온 것.어느 쪽이든 경계를 늦춰선 안 될 상대였다.“그러니까 너는 아무 의견이 없다는 거야?”주민혁은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손목의 셔츠 소매를 가지런히 정리했다.“형은 너무 많은 걸 원할 때가 있어. 그게 꼭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건 아니지.”“난 수빈이 한 사람만 원해. 그게 많은 거야? 오직 그 하나만을 바라는 게 욕심이야?”그 말을 들은 주민혁은 가볍게 웃었다.“최수빈은 사람이야. 형이 원한다고 갖는 물건이 아니지. 형은 그 사람을 정말 존중한 적 있어?”그러자 주선웅의 목소리가 낮아졌고 차가워졌다.“왜 존중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형은 세상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잖아. 그럼 내 의견은 왜 묻는 거야? 우리 이미 이혼했어. 형이랑 수빈이가 서로 마음이 있다면... 난 그냥 축하해줘야지.”주선웅은 조용히 그를 바라봤다.“세상의 시선... 예전에는 그런 걸 너무 의식했었지. 그래서 수빈이를 너에게 보냈어.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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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6화

주기훈은 잔잔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눈빛으로 계속 말하라는 신호를 보냈다.“저는 수빈이와 결혼하고 싶습니다. 이 일은 민혁이도 이미 동의했어요.”“짝!”주선웅의 말이 끝나자마자 맑은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정확하고도 거침없는 한 대였다.주선웅은 혀끝으로 조용히 뺨 안쪽을 쓸어내며 고개를 들어 주기훈을 바라봤다. 꽤 힘이 실린 손길이었기에 얼굴 한쪽이 얼얼하고 아플 정도였다.주기훈의 표정은 어둡고 단호했다.“허튼소리 마라!”그의 가슴이 거칠게 들썩였다.“너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아?”주선웅은 꼿꼿하게 선 채 또박또박 말했다.“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허락해 주셨으면 합니다.”“부끄러운 줄도 모르냐? 주씨 가문의 체면은 안중에도 없어?! 소문이 돌기라도 하면 사람들이 우리 집안을 어떻게 보겠어?”주기훈의 목소리는 바닥을 울릴 만큼 묵직하고 단호했다.주선웅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잠시가 아니, 아주 긴 침묵이 흘렀다.“아버지께서 반대하신다면 전 기꺼이 주씨 가문을 떠날 거예요.”이에 주기훈의 얼굴이 완전히 굳어졌다.‘하나같이 다 관계를 끊겠다는 말로 협박이야!’“네가 내 아들이란 건 이미 온 세상이 알아. 주씨 가문을 나간다고 해서 피가 바뀌기라도 하니?”주기훈은 이를 악물었다.“네가 이 집 문턱을 나선다 해도 넌 끝까지 내 아들 주선웅이다. 네 몸에는 내 피가 흐르고 있어.”“아버지는 높은 자리에 계시고 체면을 중히 여기시니 가족 중 누가 실수라도 하면 그게 곧 아버지의 앞길에 흠이 될까 봐 두려우시겠죠. 그래서 전 고향을 떠났고 지금 이곳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뭐가 불만이신 건가요?”눈빛이 고요했다.“이제부터 제가 뭘 하든 아버지는 막을 수 없습니다.”이 말을 끝으로 그는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 숨을 죽인 채 있는 주기훈의 심장은 곧 터질 듯 격하게 요동쳤다.거실에서 주민혁은 최수빈의 옆에 앉아 있었는데 분위기가 차분하고 절제돼 있었다.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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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7화

“그 애하고는 거리를 두는 게 좋아. 어떻게 되든 나는 절대 동의 못 해.”이 말을 들은 최수빈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회장님도 이제 높은 자리에 계시다 보니 사람을 색안경 끼고 보시는 건가요? 선웅 오빠가 어떤 결정을 하든 제가 간섭할 수는 없죠. 그걸 설득 못 했다고 해서 그 문제가 제게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오히려 최수빈은 주씨 가문과 백만 광년 떨어지고 싶은 지경이었다.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그 집안과 가까이하려 한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주민혁과 이혼했는데 또 선웅 오빠랑 결혼한다고? 이보다 웃긴 얘기가 없지.’“설마 주씨 가문에 금테라도 둘렀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기를 쓰고 시집오려는 사람으로 보여요?”최수빈은 눈썹을 찌푸리며 주기훈을 바라봤다.“회장님을 어른으로서 존중해왔는데... 설마 회장님도 이렇게 편견이 심한 줄은 몰랐네요.”그 말에 주기훈의 표정이 잠시 어색하게 굳었다.“내 말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뜻이 아니야. 나는 단지 지금 네가 능력도 있고 품행도 곧은 사람인 만큼 선웅이와는 좀 거리를 두라는 거다. 네가 마음이 없어도 그 애가 오해하면 오해가 결국 잘못된 선택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주기훈의 눈빛은 짙게 가라앉았다.“넌 똑똑한 애야. 이 정도 말하면 알아들을 거라 믿는다. 그래도 한때 가족이었는데 굳이 서로 난처해질 필요는 없잖니.”말투는 조심스럽고 우회적인 듯했지만 그 속에는 분명한 경고가 들어 있었다.남의 행동에 왜 그녀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최수빈은 아무런 표정 없이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주변 공기마저 서늘해지는 듯했다.“자기 아들 교육 제대로 못 한 걸 외부 탓으로 돌리시다니... 일하실 때도 그렇게 판단하시는지 모르겠네요?”한때는 주기훈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적어도 세상 물정에 찌든 그런 부류는 아니라고 믿었는데... 이제 보니 그저 겉모습만 반듯했던 거였군.’그는 자신의 체면과 성과를 너무 소중히 여기다 보니 주변의 모든 요소를 관리하려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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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8화

주민혁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네가 나보고 따라오지 말라며. 그럼 문 앞에서 듣는 것도 안 되는 거야?”말투는 뭔가 이상하게도 진짜 자신이 뭘 금지당한 사람인 양 서운한 척을 하고 있었다.최수빈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며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고 결국 먼저 입을 연 쪽은 주민혁이었다.“너도 이제는 대충 알겠지. 널 향한 우리 형의 마음이... 그래서는 안 되는 감정이라는 거. 아버지 말이 한 가지는 맞아. 넌 앞으로 그 사람하고는 거리를 두는 게 좋을 거야.”최수빈은 주민혁의 말을 듣고 얼굴을 찌푸렸다.“왜 다들 나한테 이래라저래라하는 거죠? 그렇게 하라면 그대로 따라야 돼요?”주민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최수빈, 충고는 늘 거슬리게 들리는 법이야. 하지만 남들이 하지 말라고 하면 할수록 너는 꼭 하고 싶어지나 보지?”눈빛은 진지했다.“사랑하지 말라 하면... 너는 기어이 사랑하고 마는 거야?”이 말에 마음이 순간 움찔하며 조여들어 최수빈은 차가운 눈빛으로 주민혁을 노려보았다.“무슨 뜻이에요, 그건.”“따라와.”그가 짧게 말했다.“어디로요?”주민혁은 냉철하고도 무심한 분위기를 뿜어내며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아까 나한테 뭔가 물어보고 싶다면서. 조용한 데서, 아무 방해도 안 받는 곳으로 가자.”뭔가 달라 보이는 주민혁의 모습에 최수빈은 순간 착각을 했나 싶었다.예전의 그는 최수빈과 엮이지 않으려 애썼고 가능하면 낯선 사람처럼 굴었었다.그녀가 다가가기라도 하고 모른 척하고 눈길조차 주지 않던 사람이었다.그런데 지금은 최수빈이 대화를 원하면 받아주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이런 변화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지. 괜히 바뀌는 게 아니야.’그렇게 최수빈은 주민혁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고 둘은 함께 저택 안쪽에 있는 그들의 방으로 들어섰다.정확히 말하자면 이제 더 이상 그들의 방이 아니었고 지금은 주민혁 혼자 쓰는 방이었다.방 안의 가구 배치나 분위기는 전혀 바뀌지 않았는데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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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9화

그 말 앞에서 최수빈은 한순간 깊은 무력감에 빠져들어 냉정한 눈빛으로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을 뱉었다.“이게 민혁 씨가 말하는 그 진짜 대답이라는 거예요?”그녀의 말이 끝나자 방 안은 묘한 정적에 잠겼다.서로의 눈동자가 마주쳤고 그 속에는 복잡하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창밖에서는 빗소리만이 조용히 들려왔는데 빗방울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두 사람 모두 침묵했다.길고도 이상한 정적이 흐른 뒤, 결국 먼저 말을 꺼낸 건 또 주민혁이었다.“더 묻고 싶은 건 없어?”최수빈은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전혀 흔들림 없이 그를 바라봤다.“민혁 씨는... 한 번도 나와 진심으로 이야기하려 했던 적이 없잖아요.”그러니 그녀가 지금 무얼 물어도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없었다.주민혁은 가볍게 웃더니 시선을 창밖에 두었다.“최수빈, 너는 형이랑 거리를 둬야 해. 세상 모든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는 날이 올 테니까.”목소리가 고요하다 못해 어쩐지 공허했다.최수빈이 조용히 주먹을 움켜쥐었다.“말 못 할 비밀이라도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 지경까지 온 건가?’“내 안위를 걱정하라 했죠? 좋아요. 그 경고는 받아들일게요. 하지만 믿으려면 최소한 이유가 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대체 뭐가 위험한데요? 왜요? 설명 하나 없이 그런 소리만 해대면 내가 어떻게 민혁 씨를 믿어요. 그냥 이상한 사람으로밖에 안 보이는데.”전생에서 그들의 관계는 차가웠고 텅 비어 있었다.아버지의 사랑을 기다리던 주예린은 끝내 고열에 시달리다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그 모든 시간 동안, 주민혁은 아무 감정도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때문에 이번 생에서의 최수빈은 더 이상 그를 믿을 용기가 없었다.무조건 믿고 무조건 기대하는 그런 건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이다.같은 함정에 두 번 빠질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기에 이번에는 확실히 알아야 했다.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아무것도 모른 채 과거를 반복하게 될지도 몰랐다.전생에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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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0화

그들 사이의 관계는 결국 물거품이었다. 마치 거울 속 환상처럼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허상이었다.주민혁은 살짝 눈썹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어 최수빈을 바라봤다.그러고는 어이없다는 듯 입가에 짧은 웃음이 스쳤다.“처음부터 끝까지 네 감정은 철저히 계산된 거잖아. 그런데 내가 뭘 어떻게 반응해주길 바란 거야? 날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날 꼭 잡아야만 했고, 그 와중에 넌 날 정말 사랑하는 척 연기를 했지. 내가 널 어떻게 대해야 하는데?”이에 눈빛이 차가워지더니 최수빈은 납득할 수 없다는 듯 주민혁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그 결론들... 대체 어디서 나온 거죠?”주민혁의 눈빛은 싸늘했고 입꼬리는 냉소적인 웃음으로 일그러졌다.뒤이어 그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한 걸음씩 그녀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기세에 최수빈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그리고 등이 벽에 닿을 때까지, 더 이상 물러설 곳조차 없을 때까지, 주민혁은 멈추지 않았다.폭풍처럼 소용돌이치는 눈빛을 한 채 주민혁이 손을 뻗어 최수빈의 턱을 움켜쥐었다.차가운 손가락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최수빈이 손목을 잡고 밀어내려 했지만 뜨겁고 단단한 그의 손은 마치 쇠처럼 움직이지 않았다.눈썹을 확 찌푸린 채 최수빈은 고개를 젖히고 주민혁의 냉랭한 눈을 올려다보며 이를 악물었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연기 잘하더라.”고요한 말투였다.“진심으로 박수라도 쳐주고 싶을 만큼...”그러더니 주민혁은 최수빈을 거칠게 끌어당겨 거울 앞에 밀어붙였다.“봐, 네 얼굴. 그 무고한 표정... 너 스스로 봐도 정말 그럴듯하지 않아?”최수빈은 그에게서 처음으로 위험하다는 기운을 느꼈다.이런 날 선 모습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광기와 날것의 감정이 그대로 느껴졌다.“난 민혁 씨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그래?”그는 최수빈의 허리를 잡아 돌려세우더니 거울 대신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 보게 만들었다.그렇게 최수빈은 화장대 앞, 좁은 공간에 완전히 갇힌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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