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이미 알아봤어야 했다. 이 사람은 오래전부터 자기 목숨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는 걸.“넌 수도 없이 스스로 생을 끝내고 싶어 했어.”강지안의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그리고 머릿속에는 주민혁의 병력 기록이 떠올랐다.불면, 환청, 자해 충동 등등 빽빽하게 적힌 글자 하나하나가 전부 칼날 같았다.“하지만 그 사람들 때문에 끝까지 마음이 안 놓이는 거잖아. 그렇지?”주민혁은 대답하지 않았고 그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그 사람이 꼭 고마워할 거라는 보장도 없어.”강지안의 말이 그의 생각을 다시 끌어당겼다.“네가 다 알아서 길을 깔아준 게 그 사람 눈에는 그냥 네 멋대로 통제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어. 전공을 네가 대신 정한 것도 미워할 거고 자기 인생이 네 손에 묶어버린 것 자체를 원망할 수도 있어.”주민혁은 시선을 떨궜다. 그러자 자신의 손등에 시선이 머물렀다.거기에는 연한 흉터 하나가 남아 있었는데 작년, 면도날로 손목을 그으려다 남은 자국이었다.그는 그 흉터를 천천히 문지르며 바람처럼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난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그는 애초에 최수빈이 자신을 용서해 주길 기대한 적도 없었고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 주길 바란 적도 없었다.그저 그녀가 무사히, 먹고사는 걱정 없이, 아픔에 시달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랐을 뿐이었다.그 삶에 자신이 없어도 괜찮았다.이런 주민혁의 모습을 보자 강지안은 화가 나면서도 가슴이 미어졌다.“그게 너한테는 사랑이야?”그녀가 생각해 온 사랑은 두 사람이 함께 가는 것이었고 서로 기대고 버티는 것이었다.하지만 주민혁의 사랑은 달랐다. 모든 고통은 혼자 삼키고 좋은 것만 상대에게 남겨두면서도 ‘고맙다’는 말조차 기대하지 않고 심지어 미움받을 각오까지 이미 끝내 둔, 혼자서 희생하는 것이었다.주민혁이 낮게 웃었다. 비웃음과 체념, 짙은 피로가 섞인 웃음이었다.그러고는 세상사를 이미 다 겪어본 사람처럼 무심한 눈빛으로 강지안을 올려다보았다.“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사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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