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현은 문득 마음이 동해져서 옷걸이에 걸려 있던 겉옷을 집어 걸치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그러나 몇 걸음 걸어 밤빛 속으로 들어섰을 즈음,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여기서 경성까지는 아무리 말을 재촉해 달려도 꼬박 하룻밤은 걸렸는데, 지금 이미 해시 무렵이니, 내일 조회 전에도 돌아올 수 없다는 현실을 맞이했기 때문이다.밤바람이 서서히 불어와 가슴속에 치밀던 충동을 씻어 내리는 듯했다.그는 손에 든 향낭을 꼭 쥔 채 한동안 서 있다가, 나직이 웃음을 흘리며 몸을 돌려 본채로 돌아갔다.다음 날 이른 아침, 신수빈은 이도현이 직접 써 보낸 글씨를 건네받았다.봉을 풀어 한 번 펼쳐 보니, 그의 글씨는 그 사람과 꼭 닮아 있었다.은갈고리와 쇠칼로 그어 놓은 듯 힘이 서려 있었고, 획마다 기세가 밖으로 뻗어 나가서 종이가 찢길 것 같은 정도였다. 신수빈은 그가 서안 앞에 서서 마음껏 붓을 놀리고 있을 모습을 눈앞에 그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그녀는 사람을 시켜 신병문에게 보내도록 했다.그러자 청하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마님, 밤늦게까지 새워 가며 겨우 완성하신 향낭인데요. 보낼 때 어찌하여 도련님 일은 말씀도 안 올리신 겁니까?”“청하, 너는 몰라. 그 사람은 내가 관가 일에 직접 손을 대는 꼴을 보면 분명 못마땅해할 거야. 내가 그의 마음속에서 차지한 자리는 아직 그가 나 하나 때문에 조정을 흔들 만큼 대단한 자리가 못 된다. 이 정도가 오히려 딱 좋아. 그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자질구레한 일 하나쯤으로 나와 신 씨 집안을 기억하게 하고, 신 씨 집안이 어떤 사람들의 집인지 떠올리게 하면 그만이야. 돈 몇 냥에 눈이 멀어 집안 기풍을 더럽힐 집안이 아니라는 것만 알아 두면 되지. 뭐… 나야…”신수빈은 말을 멈추며 천천히 숨을 고르고는 이내 눈썹 끝에 옅은 비웃음을 띠우더니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내가 어떤 꼴이 되든 상관없어. 그가 아직 나라는 사람에게 질려 버리지만 않는다면, 계속 내 손안의 말로 써 먹으면 그뿐이니까.”청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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