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이제 무슨 소식이든 손쉽게 들을 수 있었기에 예전처럼 소식이 더디게 돌아와 때를 놓치는 일은 없을 터였다.신수빈은 예전과 다름없이 눈을 떴을 때 이미 진시가 다 되어 가는 때였다.아이를 가진 뒤로는 유난히 잠이 많아졌지만 다행히 이제는 서 씨 부인께 아침 문안을 드리러 갈 필요도 없었고 큰 마님께 절을 올리러 갈 일도 면했으니 조금 더 늦잠을 자도 누구 하나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일어나서는 곧장 평양 후부의 자잘한 일들을 정리하며 대패를 하나씩 내어 보냈다.그런데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둘째 마님과 셋째 마님까지 화청에 나란히 앉아 차를 마시며 그녀가 일을 처리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신수빈이 손에 쥔 일을 하나하나 마무리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에도 두 사람은 돌아갈 기색이 없어 보였다. 그녀는 부드러운 웃음을 띠고 입을 열었다.“둘째 숙모, 셋째 숙모께서 오늘은 참 한가하신가 봅니다. 저는 이만 바깥 공기를 조금 쐬고 오려 하는데 두 분도 함께 나가시겠습니까?”셋째 마님은 평소처럼 웃는 낯을 잃지 않은 채, 여우 같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집안을 이렇게 반듯하게 꾸려 나가니 어머님께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더구나. 나도 자주 와서 보고 배워야지. 나중에 아이들을 가르칠 때 뭐라도 전해 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셋째 숙모께서 과찬을 하십니다. 그런 말씀까지 감히 들을 자격은 없습니다.”둘째 마님은 그 말을 듣고 눈을 홱 굴렸다.셋째 마님이야 얼굴 좋고 마음도 여려 저렇게 말하지만 자신은 그만큼 살가운 성정이 아니었다.오늘 이 자리에 앉은 것부터가 애초에 신수빈의 속을 한 번 긁어 놓겠다는 뜻이었다.속으로는 그녀가 걱정과 근심으로 마음을 졸여야 태도 제대로 기르지 못할 거라고 여기고 있었다.“넌 참 마음도 편하구나. 친정에서 그런 일이 났다는데 어찌 이렇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 수가 있는 것이냐?”신수빈은 천천히 그녀를 바라보았다.“감히 여쭙습니다, 둘째 숙모. 제 친정에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씀이십니까?
얼굴이 예쁜 여인은 어디에나 있지만 얼굴도 고우며 머리까지 좋은 여인은 그리 흔치 않았다. 미모가 빼어나고 영리한 데다 마음까지 독한 여인은 더욱더 드물었다.“소신, 이 일은 먼저 왕야께 아뢰어야겠습니다.”이런 결정을 장녕이 제 마음대로 내릴 수는 없었다. 신수빈은 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저 그 감독관의 부인을 잘 지켜 달라는 말만 남겼다.장녕은 부하들이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할까 염려되어 일부러 말을 재촉해 한 번 더 행궁으로 다녀왔다.이 며칠 동안 행궁에서는 선황의 제향 준비가 한창이었고 내일이 바로 정식 제전이 거행되는 날이었다.행궁 안팎의 관리들은 며칠째 향을 피우며 내일 치러질 대전을 기다리고 있었다.장녕이 도착했을 때, 이도현은 강회 하도를 맡아 온 관리들의 지난 업적과 이번 하도 공사에 쓰인 은전을 거친 관련 관원들의 내력을 훑어보고 있었다.“소신, 왕야를 뵈옵니다.”이도현은 고개를 떨군 채 손에 든 문서를 보고 있다가 짧게 응했다. 그러다 곧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어찌 다시 돌아왔느냐? 며칠 동안 경성에 남아 부인의 분부를 따르라 하지 않았더냐?”“왕야께 아뢰옵니다. 마님께서 한 가지 일을 소신에게 맡기셨사온데 소신이 감히 스스로 단정하지 못해서 별도로 전교를 구하려한 것입니다.”“그녀가 시켰으면 그냥 그대로 하면 된다.”이도현은 다시 시선을 내려 문서에 눈을 떨어뜨렸다.장녕은 속으로 중얼거렸다.왕야께서야 그 마님이 무엇을 하려는지 짐작도 못 하고 계시겠지.“마님께서는 대리사 감옥에 있는 그 감독관을 없애라 하셨습니다.”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이도현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미세하게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그녀가 너더러 무엇을 하라 하더냐?”장녕은 지난 이틀 동안 신수빈이 했던 말과 보여 준 행동들을 빠짐없이 고하여 들었다.특히 그 감독관을 속이기 위해 자신이 섭정왕이 가장 아끼는 여인이라며 이 일은 반드시 자신을 위해 나서 줄 것이라고 말하던 대목을
이도현은 두 손을 꼭 쥔 채 탁자 위에 올려두고는 그 편지를 내려다보았다.그의 얼굴빛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한편 그 시각 경성의 대리사 감옥에서는 신수빈이 짐작한 그대로 일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 감독관은 그날 밤 바로 돈을 써서 옥졸을 매수해 집안 사람들에게 말을 전하게 했다. 그는 원래 공부의 말단 아전으로 이번에 강회로 내려갈 때만 그를 따라갔을 뿐이었다.식구들은 모두 경성에 남아 있었으니 이튿날 곧장 밥 바구니를 든 한 여인이 그를 찾아 감옥으로 들어왔다. 대리사 감옥은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날도 적잖은 돈을 내야지만 겨우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신수빈의 마차는 대리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회나무 아래에 세워져 있었다.그녀는 향 한 자루가 탈 동안 지켜보다가 그 여인이 다시 나오는 모습을 바라보았다.눈가가 새빨갛게 부어 있었으니 분명 안에서 실컷 울고 나온 모양이었다.들어갈 때의 담담한 얼굴빛은 온데간데없었고 나올 때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마치 누군가 뒤를 밟고 있는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여인이 어느 정도 멀어졌을 즈음, 신수빈이 금자를 불렀다.“사람 둘 데리고 저 여인을 따라가거라. 눈에 띄지 않게 말이다. 그리고 누구도 저 여인을 다치지 못하게 하거라!”장녕은 마차 곁에 서 있다가 곧 사람 둘을 골라 금자와 함께 붙여 보냈다. 신수빈은 모든 준비를 마친 뒤, 시선을 장녕에게로 돌렸다.“우시위에게 또 한 가지 수고를 부탁하고 싶다.”장녕은 윤 씨 마님이 자신을 바라보는 그 한 번의 눈길에 등골이 살짝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딘가 알 수 없는 기분 나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마님, 말씀을 내리시지요.”“대리사 감옥 안에 있는 그 감독관은 당장 치워 버리거라.”그 말 한마디에 장녕의 가슴이 순간 덜컥 내려앉고 말았다. 그는 황성시에서 수없이 많은 자들을 심문해 왔고 그의 손을 거쳐 간 목숨도 이루 다 셀 수 없었다. 게다가 젊은 시절에는 왕야를 따라 수차례 죽을 고비를 함께 넘겼으니 살고 죽는
그 감독관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역력히 스쳤다.그러나 곧 누군가 자신에게 했던 보장을 떠올렸는지 마음을 조금 추스르더니 코웃음을 내뱉으며 말했다.“참으로 세상을 우습게 아는 소리군요. 섭정왕께서는 공정하고 청렴하신 분이십니다. 한데 어찌 여인 하나 때문에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시겠습니까?”신수빈은 그의 얼굴에 스쳐 지나가는 두려움과 안도의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이 일을 벌이기 전에 분명 누군가에게서 확실한 보장을 받았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신수빈이 가볍게 비웃음을 흘리며 어리석은 자를 내려다보듯 그를 바라보았다.“계속 그렇게 입만 놀리십시오. 제가 오늘 여기 온 건 섭정왕께 허락을 받고 제 오라버니를 뵈러 온 것입니다. 한데 당신은 섭정왕께서 직접 물으실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당신에게 제 오라버니를 모함하라 시킨 자들은 섭정왕을 건드리면 어떤 결과가 따르는지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이런 일을 벌였지요. 그런 자들이 정말 당신을 살려 내보낼 것 같으십니까? 그들이 당신에게 은전을 약속했습니까? 아니면 이 일만 제대로 끝내면 얼굴을 바꿔 새 신분을 주겠다 했습니까? 참 꿈도 크십니다! 지금의 천하는 모두 섭정왕께서 피로 일군 자리고 예전 이부 상서는 고명대신 소리까지 들었던 인물이었습니다. 한데 지금은 어찌 되었습니까? 목숨을 잃고 집안까지 멸문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감히 누가 섭정왕을 거스르겠습니까? 끝내 제 오라버니가 그들 뜻대로 죄를 뒤집어쓰게 된다면 왕야께서 진노하실 것입니다. 그때 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왕야께서 끝까지 캐묻는 일이겠지요. 그러면 결국 당신 같은 자그마한 감독관 하나를 피바다에 던져 제물로 삼고 뒤에 숨어 있는 자들만 살려 두려 할 것입니다.”말을 마친 신수빈은 다시 한 번 차갑게 코웃음을 내뱉었다.이미 죽은 사람을 보듯 그를 힐끗 바라보고는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온몸에서 왕부의 총애를 믿고 제멋대로 구는 첩실의 오만함과 까다로움이 묻어났다.장녕은 그 뒤에서 지켜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이 윤
신도연은 누이의 몸이 예전보다 한층 더 커진 것을 눈치채고 바로 배 쪽으로 시선을 내렸다.“아이를 가진 것이냐?”“네, 벌써 여섯 달이 되었습니다.”“외조카가 태어나는 걸 내가 볼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신도연은 허리춤에서 옥패 하나를 풀어 손에 쥐었다.“이 옥패는 내가 산과 강, 호수와 바다를 떠돌 때 내내 함께했던 거다. 위에 새겨진 무늬도 내가 직접 새겼다. 외조카가 태어나거든 이걸 아이에게 전해 주거라. 산천과 강물이 분명 아이를 지켜 줄 거다.”신수빈도 이 옥패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오라버니가 강줄기를 따라 상류까지 거슬러 올라가 천산에서 구해 온 옥으로 훗날 직접 무늬를 새겨 줄곧 몸에 지니고 다녔기 때문이다.신수빈이 가볍게 손을 저었다.“그럼 제가 오라버니께서 무사히 나오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그때 오라버니께서 직접 아이 목에 걸어 주시지요.”신도연은 누이가 자신이 옥에 갇힌 일을 마음 아파하고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몸에 아이까지 품고 있으니 괜히 더 상심하게 해서는 안 되었다. 눅눅하고 음침한 감옥 공기 역시 그녀의 몸에 좋을 리 없었다.그는 해야 할 말만 일러 준 뒤 더 머물지 말라 당부하고는 서둘러 자리를 뜨게 했다.신수빈은 그에게 몸조심하라는 인사 한마디를 남기고 신도연이 있는 옥사를 떠났다.장녕이 그녀를 호위하며 함께 나가려고 할 때, 신수빈이 물었다.“내 오라버니를 고발한 그 감독관, 이 근처에 있느냐?”“마님께 아뢰자면 북쪽 쪽에 있습니다.”“그쪽으로 데려가거라.”“마님, 북쪽에는 죄질이 무거운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혹여 마님께서 놀라시기라도 하면 그게 모두 소인의 실책이 됩니다.”신수빈은 장녕을 한 번 바라보며 입가에 옅은 비웃음을 머금었다.“나는 너희 왕야 손에서도 이렇게 멀쩡히 살아 나왔는데 이제 와서 무엇이 나를 놀라게 하겠느냐?”장녕은 잠시 멍해졌다가 곧 고개를 숙이고는 앞장서서 그 감독관이 있는 곳으로 신수빈을 이끌었다.그는 장풍이 누구를 건드려도 윤 씨 마
“내가 강회로 떠나기 전에 섭정왕께서 한 번 날 부르셔서 하도를 어떻게 다스릴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 섭정왕께서는 강회 평원 구간을 제대로 정비하는 데 대략 얼마만큼의 은자가 필요하냐고 물으셨지. 그래서 나는 단기간만 본다면 제방을 쌓고 둑을 보강하는 것만으로도 양안 유역의 백성을 지킬 수 있지만 오래 두고 보려면 상류부터 손을 대야 한다고 말했지. 물길을 나누고 산을 트며 수로를 파는 일까지 모두 큰 공사라 더 큰 비용이 든다고 아뢰었다. 그러자 섭정왕께서 한참동안 생각하시더니 대주 왕조가 세워진 지 아직 이십 년밖에 되지 않았고 여러 해 전쟁이 이어져 국고가 비어 있으니 당장 많은 은자를 내놓기 어렵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선은 단기적인 대책부터 세워 평원 유역만이라도 수환을 피할 수 있게 은자 백만 냥을 먼저 내리시겠다고 하신 거다. 강회로 내려갔을 때 하도 장부에 고작 삼십만 냥만 올라 있는 걸 보고 나도 이상하다고 느꼈지. 하지만 하도 관아 쪽에서는 조정에서 내려온 돈이 애초에 이것뿐이라고 했다. 나는 아마도 호부에서 내려오는 길에 중간에서 층층이 갈취해 먹었을 거라고 짐작했으나 치수는 한시도 늦출 수 없으니 겉으로는 큰소리를 치며 다시 섭정왕께 상소를 올려 추가로 자금을 청하겠다고 했다.”“섭정왕의 이름을 빌려 이런 중간에서 배를 채우는 관리들을 한 번쯤 눌러 두려 한 것이다. 이후 강회 하도 쪽에서도 돈이 충분하다고 했기에 일단 그들이 삼킨 돈을 토해낸다면 먼저 하도 공사를 시작하고 뒤의 일은 차차 따져 물으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모래와 자갈, 공사 자재가 수레마다 제방으로 실려 오는 걸 직접 확인했지만 어디선가 자재를 바꿔치기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하도 감찰사가 직접 감찰한다고 한 구간은 내가 따로 유심히 살펴봤는데 예왕의 봉읍이었다.”“홍수가 밀려오는 시기가 곧 다가온다. 그렇게 부실한 제방으로는 거센 물살을 도저히 막아낼 수 없어. 내 예상대로라면 보름 안에 강회 일대에 홍수 피해가 났다는 소식이 올라올 거다. 그 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