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의 모든 챕터: 챕터 651 - 챕터 660

958 챕터

제651화

고이한은 주현우를 이끌고 차량 쪽으로 향했다. 차 문이 열리며, 편정우가 네 명의 연구팀원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고이한은 먼저 손을 내밀어 인사를 건넸다.“편 박사님, 환영합니다.”이전과는 달리 편정우는 한층 부드러워진 태도로 손을 맞잡으며 미소 지었다.“고 대표님.”인사를 마친 그는 고개를 돌려 소예지를 발견하자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자연스럽게 말했다.“예지야.”“교수님.”소예지는 앞으로 나서서 정중히 인사를 건넸고 동시에 정준호 부부에게도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전했다. 소예지와 편정우의 관계는 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었다. 당시 소예지는 거의 그의 연구팀에 합류할 뻔했을 정도였으니.그때 편정우가 몸을 돌려 고이한을 향해 말을 이었다.“소예지는 한때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겼던 제자였습니다. 게다가 내 절친한 친구의 딸이기도 하고요.”고이한의 깊은 시선이 천천히 소예지를 향해 옮겨갔다.“알고 있습니다.”그때 주현우가 재빨리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박사님, 회의실 준비는 모두 마쳤습니다.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좋습니다. 그럼 먼저 회의부터 시작하시죠.”편정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일행은 함께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소예지도 그들과 나란히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고 그 순간 고이한 역시 말없이 그녀의 뒤를 따라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엘리베이터 안은 크게 붐비지 않았지만 소예지와 고이한은 결국 나란히 서게 되었다. 소예지는 아무 말 없이 팔짱을 낀 채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행동이었지만 고이한은 알고 있었다. 그녀가 의식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피하고 있다는 사실을.그의 주먹이 옆구리에서 조용히 움켜쥐어졌다.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문이 열렸고 미리 준비를 마친 주현우가 회의실 좌석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이름 순서에 따라 자리에 앉던 중, 안채린은 자신이 맨 끝자리에 배정된 것을 보고 순간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소예지 쪽을 힐끗 바라보았다.소예지의 자리는 편 박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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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2화

소예지는 애초부터 그의 그늘에 기대어 살던 사람이 아니었다.그녀에게는 분명한 재능이 있었고 스스로 선택한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다. 심지어 그조차 알지 못하는 사이, 2년 전의 소예지는 이미 첨단 과학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고이한의 가슴이 미세하게 조여들었다.안채린의 표정은 완전히 굳어 있었다. 그녀는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이내 믿을 수 없다는 듯 소예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뇌–컴퓨터 인터페이스의 최초 돌파구를 만든 인물이 소예지라니.’‘이게... 가능한 일이야?’그때 영상이 이어졌다.소예지는 실험 원들과 함께 실험대 앞에 서 있었고 전신 마비 상태의 원숭이에게 조심스럽게 뇌 인터페이스를 연결하고 있었다. 몇 차례 정밀한 조정이 이어진 뒤, 그녀의 단호한 목소리가 회의실에 울려 퍼졌다.“테스트를 시작합니다.”회의실 안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해졌다.화면 속에서 전혀 움직이지 않던 원숭이의 몸이 순간 경련하듯 떨리더니 앞다리가 먼저 미세하게 움직였다. 잠시 후에는 뒷다리까지 반응했고 이내 원숭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한 걸음, 두 걸음, 마지막에는 실험대 위에서 민첩하게 두 번 뛰어오르며 완전히 움직임을 되찾았다.바로 그 순간, 영상은 흔들리며 종료되었다.편정우는 아쉬운 듯 입을 열었다.“영상은 여기까지입니다. 원숭이가 연구원을 공격하는 바람에 실험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어요.”고이한은 즉시 소예지를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그의 눈빛은, 마치 공격당한 사람이 정말 소예지가 아니었는지를 묻는 듯했다.소예지는 편정우를 향해 차분하게 말했다.“실험은 3분 만에 종료됐습니다. 이후 원숭이의 신경계에 강한 거부 반응이 나타났어요. 이는 인터페이스의 안정성에 문제가 있음을 의미합니다.”편정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소예지의 그 실험은 분명한 진전이 있었습니다. 다만 자금 부족으로 후속 연구를 이어가지 못했죠. 그 이후에도 우리는 반년 넘게 소재를 개선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 실험은 뇌–컴퓨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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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3화

소예지의 팔이 고이한에게 단단히 붙잡히자 그녀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다.“놔.”소예지는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당장 손 놔. 아니면 경찰 부를 거야.”고이한은 그녀를 바라보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소예지의 눈동자 속에 번져가는 혐오와 경멸이 그를 움찔하게 만들었다.그녀가 자신을 이렇게까지 밀어낼 거라고는 차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현실이었다.바로 그 순간, 문이 ‘철컥’ 소리를 내며 열렸다.“고 대표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강준석이었다.그는 차갑게 눈살을 찌푸린 채, 소예지의 손목을 붙잡고 있는 고이한을 노려봤다.곧이어 안채린도 언제부터 있었는지 회의실로 돌아와 있었다. 그녀는 문가에 멈춰 선 채 눈을 크게 뜨고 눈앞의 믿을 수 없는 광경을 그대로 지켜보고 있었다.하지만 고이한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오직 소예지의 눈만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차가운 분노가 소용돌이치자 그제야 그의 손이 조용히 풀렸다.그 순간, 강준석이 한 걸음 다가와 소예지의 팔을 감싸듯 잡으며 자연스럽게 그녀를 자신의 등 뒤로 숨겼다.“고 대표님, 할 말이 있으면 말로 하십시오. 소예지 씨는 이제 당신 아내도 아닙니다. 더 이상 불필요하게 엮지 마세요.”고이한의 눈빛에 번져 있던 감정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정장을 정리하며 평소의 차가운 얼굴로 돌아가 소예지를 향해 말했다.“미안해. 방금 내가 감정이 좀 격해졌어.”강준석은 소예지를 돌아보며 낮게 물었다.“내가 사무실까지 데려다줄까?”소예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고이한의 존재를 의식에서 밀어내듯 그대로 회의실을 나섰고 강준석은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그 장면을 멀리서 지켜보던 안채린은 묘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위로의 말 한마디쯤 건네고 싶었지만 끝내 입을 다문 채 고이한을 바라봤다.그녀는 전혀 다른 시선으로 이 상황을 해석하고 있었다.‘소예지는 도대체 무슨 말을 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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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4화

안채린의 펜 끝이 노트북 위를 세게 그었다.무의식적인 손짓에 진한 먹선 하나가 비뚤게 긋혔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한 치의 주저도 없이 말을 이어가는 소예지를 노려보았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질투와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다.“저는 ‘신경 시냅스 재생 이론’이야말로 뇌–컴퓨터 인터페이스의 거부 반응을 해결할 핵심 키라고 생각합니다.”소예지의 목소리는 명확했고 동시에 날카로웠다. 확신으로 가득 찬 말투는 듣는 이로 하여금 반박할 여지를 거의 남기지 않았다.“저도 소예지 씨의 이론에 동의합니다.”염지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회의실 안이 조용히 술렁였다. 여러 연구자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편정우 역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소예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는 숨길 수 없는 진심 어린 찬사가 담겨 있었다.안채린은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손끝이 주먹 속으로 깊이 파고들 만큼 힘을 주고 있었다.오늘 이 자리에는 각계의 뇌–컴퓨터 연구 실력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도 또다시, 이론의 중심에 선 사람은 소예지였다.그 순간, 의대 시절 당당한 표정으로 소예지에게 그렇게 말하던 과거의 한 장면이 뇌리를 스치듯 떠올랐다.‘실험실에서 나가. 가서 애나 키워. 넌 여기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야.’그 말이 이제는 부메랑이 되어 고스란히 자신을 찌르고 있었다.고개를 돌리려던 찰나, 또 하나의 시선이 눈에 들어왔다.강준석이었다.그의 눈빛은 소예지를 향해 한없이 부드러웠다. 그 안에는 감탄도 있었고 숨길 생각조차 없는 묵직한 호감도 담겨 있었다.‘말도 안 돼.’안채린의 눈이 흔들렸다.‘어떻게 소예지가 어떻게 그런 걸 다 알고 있지?’회의는 정오까지 이어졌고 이후 주현우가 예약해 둔 식당으로 모두가 이동했다. 염지아와 소예지는 앞쪽에서 조용히 대화를 나누며 걸었고 안채린은 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 염지아의 보조 연구원이 옆에서 명랑하게 말을 걸었지만 안채린의 대답은 시종일관 무미건조했다.그녀는 속으로 비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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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5화

낯선 번호로 문자가 도착했다.하지만 그 말투를 보는 순간, 소예지는 단번에 심유빈이라는 걸 알아차렸다.몇 초간 메시지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짧게 답장을 보냈다.[네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네 개나 잘 묶어 두는 거야.]곧바로 답장이 날아왔다.[소예지, 이 메시지 내가 고이한한테 보여주면 어쩌려고?]소예지는 비웃듯 콧소리를 흘리며 다시 타자했다.[뱉은 말은 지키길 바라.]그녀는 휴대폰을 조수석에 던져 두고 시동을 걸었다. 차는 부드럽게 출발해 점점 도심의 불빛 속으로 스며들었다.도심 한복판의 한 카페.안채린은 가방을 들고 안으로 들어섰다. 창가 자리에는 소파에 등을 기댄 채, 무언가에 깊이 잠긴 듯한 심유빈이 앉아 있었다.발소리를 듣고 고개를 든 심유빈은 안채린 얼굴에 짙게 남은 울분과 피로를 단번에 읽어냈다.“무슨 일이야?”조용한 질문에 안채린은 자리에 앉자마자 관자놀이를 세게 눌렀다.“우리가 소예지를 너무 얕봤어.”“아까 통화에서 고 대표가 걔 손을 잡았다고 했지? 그거 진짜야?”심유빈은 확인하듯 되물었다.안채린은 분노가 섞인 한숨과 함께 말했다.“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 그 상황에서 손목을 붙잡은 게 손을 잡은 거나 다름없었어.”어쨌든 두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신체 접촉이 있었다.“내가 강 선배랑 같이 다시 회의실로 안 돌아갔으면 고 대표 아마 바로 다음 순간 소예지를 끌어안았을걸? 그다음엔 아마...”안채린은 이를 악물고 말을 흐렸다.한 남자가 여자를 안았을 때, 그다음에 이어질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뒤집혔다.심유빈의 얼굴도 서서히 굳어졌다.안채린은 그녀를 자극하려는 게 아니었다. 경고를 주고 싶었을 뿐이다.“그러니까 잘 지켜. 괜히 MD 쪽으로 들락거리게 하지 말고. 언젠가 옛정이 되살아나면 그땐 언니가 아무것도 못 해.”심유빈은 말없이 과일주스를 한 모금 마시며 고개를 숙였다.안채린은 오늘 회의실에서 소예지가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로 이야기해 주었다. 그 얘기를 듣던 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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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6화

“소예지가 딸을 낳긴 했어도 어쨌든 고이한의 핏줄인 건 사실이잖아. 듣자 하니 아이를 그렇게 예뻐한다며?”안채린은 답답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마치 자신만 급하고 정작 당사자들은 지나치게 느긋해 보이는 상황 같았다.소예지가 이혼만 하면 그다음엔 심유빈이 곧바로 고씨 가문으로 들어갈 줄 알았다.하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진전도 없었다.“나는 내가 뭘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어.”심유빈은 잔을 내려놓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안채린은 더는 참지 못하고 말을 터뜨렸다.“언니, 고이한이 아직 소예지한테 미련이 있는 것 같아서 무섭지 않아?”그 질문에 심유빈은 잠시 안채린을 바라보다가 오히려 되물었다.“그럼 너는 소예지를 얼마나 알아?”안채린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솔직히 말해 그녀는 소예지라는 여자를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다.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그 여자? 고고하고 자존심만 세고 줄 잘 타는 여자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하지만 심유빈의 눈빛은 서서히 어두워졌다.그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소예지는 뼛속까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야. 배신이랑 불성실을 누구보다도 증오하지.”“그러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선하고 자기 원칙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이기도 해.”안채린은 여전히 믿지 않는 얼굴로 반문했다.“그래서? 난 그 여자가 어디가 착한지 전혀 모르겠는데?”심유빈은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차분하게 말했다.“그 여자는 고이한에게 6년이라는 시간을 전부 바쳤어. 하지만 결국 돌아온 건 이혼 하나뿐이었지.”“나는 장담할 수 있어. 그 여자는 평생 다시는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 설령 더 훌륭한 남자가 나타난다 해도 혼자 늙어갈 운명이야.”안채린은 냉소적으로 웃었다.“그건 그냥 멍청한 거야. 순정도 정도껏이지.”심유빈의 입꼬리가 아주 살짝 올라갔다.그 미소 속에는 계산된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나한테는 그게 오히려 좋은 일이야. 소예지는 남의 잘못엔 관대할 수 있어도 결혼 안에서의 배신은 절대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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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7화

소예지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대로 서재로 들어갔다.그 사이 거실에서는 고하슬이 아리와 함께 놀고 있었다. 아리는 마치 친구처럼 고하슬의 말 하나하나에 성심껏 대답해 주었고 아이의 기분에 맞춰 반응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그러던 중, 저녁 식사 준비가 거의 끝나갈 무렵 소예지의 휴대폰이 울렸다.화면을 확인한 그녀의 눈에 익숙한 이름이 떠올랐다.소예지는 받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곧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짧은 메시지 알림음이 다시 울렸다.살짝 짜증이 묻은 얼굴로 휴대폰을 집어 든 소예지는 화면을 보는 순간 표정이 굳었다.[하슬이 열이 좀 있어.]그 문장을 몇 초간 가만히 바라보던 그녀의 손이 멈칫했다.곧장 자리에서 일어난 소예지는 서재를 나와 거실로 달려갔다.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라면 활기차게 웃고 떠들었을 아이가 오늘따라 유난히 기운이 없어 보였다.소예지는 다가가 조심스럽게 딸의 이마에 손을 얹어 보았다.확실히 체온이 평소보다 높았다.“엄마, 나 왜 이래요?”고하슬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소예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안았다.“괜찮아. 엄마가 체온 한 번 재볼게.”체온계를 가져와 딸을 품에 안고 몇 분간 재어본 뒤, 숫자를 확인한 순간 소예지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38도.“어디 아픈 데는 없어?”고하슬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그때였다.초인종이 울리고 소예지보다 먼저 고하슬이 벌떡 일어나 문 쪽을 바라보며 외쳤다.“아빠다! 아빠 왔다!”양희순이 문을 열자, 예상대로 고이한이 들어섰다. 그는 신발도 제대로 벗기 전에 거실로 들어와 무릎을 꿇고 앉더니 딸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몇 도야?”그가 소예지를 바라보며 물었다.“삼십팔 도.”소예지가 짧게 대답했다.“병원 가야 할까?”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하슬이 소예지의 품으로 파고들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싫어! 병원 싫어! 주사도 싫고, 약도 싫어요...”“그래, 오늘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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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8화

부녀는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양희순은 문득 생각에 잠긴 듯, 그 장면을 가만히 눈에 담았다.지금 이 순간의 고이한은 더 이상 냉철한 사업가의 그림자를 두른 남자가 아닌, 아이 앞에서는 한없이 부드럽고 세심한 그저 한 사람의 아버지일 뿐이었다.“사모님, 식사하세요.”양희순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고이한은 딸을 안은 채 식탁 앞에 앉았다. 그러자 고하슬은 아픈 걸 핑계 삼아 금세 엄살을 부렸다.“아빠가 나 먹여줘요. 나 아프단 말이에요.”귀엽게 투정을 부리는 목소리에 소예지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하슬아, 스스로 먹어야지.”말투는 단호했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걱정이 담겨 있었다.고이한은 젓가락을 들며 부드럽게 웃었다.“그래, 아빠가 몇 입만 먹여줄게. 그다음엔 네가 혼자 먹는 거다. 알았지?”고하슬은 금세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다.“그럼 나도 아빠한테 먹여줄래요!”이윽고 두 사람은 예전처럼 장난스러운 놀이를 시작했다.소예지는 말없이 밥을 먹었지만 딸의 상태가 계속 마음에 걸려 젓가락이 좀처럼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저녁 식사가 끝나자 소예지는 끝내 마음을 놓지 못하고 열이 오른 딸에게 해열제를 먼저 먹였다. 밤 아홉 시가 넘자, 아이는 고이한의 품에 안긴 채 그대로 잠이 들었다.소예지가 조용히 다가가 낮게 말했다.“내가 데려가서 재울게. 당신은 이제 돌아가.”그러나 그 순간, 반쯤 잠든 고하슬이 눈을 살짝 뜨더니 작은 손으로 고이한의 셔츠 자락을 꾹 붙잡았다.“아빠. 가지 마.”소예지는 말없이 딸을 내려다보았다.아이가 아플 때면 늘 이렇게 예민해졌다. 평소보다 훨씬 더 애정에 민감해지고 곁에 있는 사람의 온기를 갈구했다.“그래. 아빠 안 가.”고이한은 아이의 작은 손을 꼭 잡은 채 소예지를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안고 올라갈게.”소예지는 아무 말 없이 두 걸음 물러섰고 고이한은 고하슬을 조심스럽게 안아 2층으로 올라갔다. 침실에 도착한 그는 아이를 침대에 눕히고 곁에 앉았다. 소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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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9화

고이한은 마당 밖에 서 있었다.차가운 밤바람이 그의 단단히 굳은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불이 켜진 2층 창문을 바라보았다. 잠시 그렇게 시선을 머문 뒤, 아무 말 없이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올라탔다.그 시각, 2층 방 안에서는 소예지가 딸 옆에 누운 채 몸을 옆으로 기울인 채 틈틈이 딸의 이마에 손을 얹어 체온을 살폈다.다행히 고열까지는 아니었고 급성 바이러스성 감염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단순한 감기였고 면역력만 잘 버텨준다면 열은 자연스럽게 내려갈 터였다.하지만 2년 전, 딸이 받았던 ‘폐 세척 수술’이 여전히 소예지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다.의학적으로는 비교적 작은 시술이었지만 그날의 기억은 그녀에게 상처처럼 깊이 남아 있었다.그때는 딸의 폐에 남아 있던 가래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을 뿐이었다.뒤엉킨 생각들에 잠시 정신이 흐려졌고 소예지는 그렇게 걱정 속에서 스르르 잠이 들었다.한밤중.고하슬이 침을 잘못 삼킨 듯 갑작스레 켁 하고 기침을 내뱉자 그 소리에 소예지는 눈을 번쩍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빨리 딸의 이마에 손을 얹어 보니 다행히 체온은 확연히 내려가 있었고 그제야 소예지는 길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긴장이 풀리자 그동안 억눌러 두었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듯 몸이 순간적으로 무겁게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물을 마시러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던 찰나, 문밖에서 개가 작은 소리로 짖기 시작했다. 고이한과 말 섞는 일은 내키지 않았지만 이 밤중에 현관 앞에서 계속 머무르게 하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소예지는 휴대폰을 들어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하슬이 체온 정상으로 돌아왔어. 이제 돌아가도 돼.]곧바로 답장이 왔다.[알았어.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해.]이윽고, 문밖에서 차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때 양희순이 소리에 잠에서 깼는지 겉옷을 걸친 채 거실로 나왔다. 물을 마시고 있던 소예지를 발견하자 조용히 다가왔다.“하슬이 열은 좀 내렸나요?”“네, 많이 내려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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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0화

소예지가 아직 아무 말도 꺼내기도 전에 고하슬이 간절한 눈빛으로 그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엄마, 아빠 여기서 나랑 놀게 하면 안 돼요?”소예지는 어젯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몸도 마음도 피곤한 상태였다. 딸아이의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던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아빠, 선물 뭐 샀어요?”“블록 세트.”고이한은 딸을 안은 채 부드럽게 말했다.“아빠랑 같이 만들자.”곁에서 지켜보던 양희순이 조심스레 다가와 물었다.“그럼 점심은 어떻게 할까요?”장도 봐야 했고 식사 준비도 다시 해야 했기에 그녀로선 꽤 중요한 문제였다.그러자 고하슬이 먼저 쨍한 목소리로 외쳤다.“우리 아빠 점심도 먹고 갈 거예요!”그 순간, 세 쌍의 눈이 동시에 소예지를 향했다.마치 이 집에서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그녀뿐이라는 듯이.소예지는 딸의 반짝이는 눈빛을 한참 바라보다가 결국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양희순은 그제야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네, 그럼 지금 바로 장 보러 다녀올게요.”고이한은 딸을 안은 채 블록 상자를 뜯으며 놀이를 시작했다.창문 너머로 햇살이 따사롭게 내려앉았고 바닥 위에는 부녀의 실루엣이 포근하게 번졌다.소예지는 계단참에 잠시 멈춰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말없이 돌아서 위층으로 올라갔다.아래층에서는 간간이 웃음소리가 흘러 올라왔지만 소예지는 굳이 그 공간에 끼어들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딸이 즐겁게 웃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점심 무렵.양희순은 정성스레 차린 식탁을 내왔다. 고하슬은 생각보다 잘 먹었고 무엇보다 고이한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얼굴은 훨씬 밝아져 있었다.식사가 끝난 뒤, 아이는 피곤했는지 고이한의 품에 안긴 채 작은 인공지능 로봇 아리와 속삭이듯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렇게 한참을 중얼거리다 언제 그랬냐는 듯 그의 팔에 고개를 기대고 잠이 들었고 고이한은 아이를 안은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눈가와 입가에는 따뜻한 기색이 감돌았고 눈빛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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