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온은 혹시라도 소예지가 자극받을까 봐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그러나 정작 소예지는 담담했다. 이제 그런 일은 그녀에게 그저 흘러간 구름처럼 덧없이 느껴졌다.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박시온이 운전대를 잡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예지야, 괜히 마음 쓰지 마, 알았지?”“괜찮아.”소예지는 옅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저었다. 박시온은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흘끗 바라보았다.“너 정말 많이 변한 것 같아. 전엔 그렇게 힘들어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여. 넉 달 전만 해도 전화로 그렇게 펑펑 울었잖아. 고 대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사람이 떠난다고 생각하면 숨조차 쉴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소예지도 그날을 선명히 기억했다. 그녀는 전화기 너머로 하염없이 눈물을 쏟으며 자신이 얼마나 그를 사랑하고 그와의 이별이 얼마나 두려운지 고백했었다.“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니까.”소예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박시온은 그런 그녀를 보며 마음 한구석이 아팠다. 조금 전 팽지현에게 들었던 이야기 탓에 소예지와 고이한 사이의 인연이 얼마나 잔혹한 운명의 장난인지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심유빈이 고이한의 첫사랑이었다면 소예지와의 결혼은 결국 ‘보은’이라는 허울 좋은 핑계에 불과했던 것이다.다음 날 아침, 소예지는 메일함에서 강준석이 보내준 매곡마을 사건 관련 보도 자료 몇 건을 확인했다. 병원과 정부 당국에서 실험실에 압력을 가하고 있었고 실험실에 특별 조사팀을 꾸려 조속히 원인을 규명하라고 요구한 상태였다.소예지는 곧장 강준석의 사무실로 향했다. 그와 추가로 발생한 환자들에 관해 의견을 나누던 중 안채린의 조수가 다가왔다.“강 박사님, 안 팀장님이 뭔가 발견하셨다며 잠시 와달라고 하십니다.”조수는 말을 마치며 의미심장한 눈길로 소예지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알아차린 소예지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강 선배, 이만 가볼게.”실험실로 돌아온 소예지는 방금 도착한 새로운 샘플을 받아 현미경 앞에 앉았다. 샘플 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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