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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한다고 말해줘: Chapter 111 - Chapter 120

176 Chapters

제111화

임형섭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굴었다.“그게 무슨 뜻이죠?”화가 난 백누리는 씩씩거리면서 뭐라고 더 말하려 했다. 그런데 배에서 소리가 나는 바람에 민망해졌다.임형섭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배고프실 텐데 많이 드세요.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직접 떠서 드시고요.”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진 백누리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뒤끝이 긴 사람이네...”그녀는 신경전을 이어갈 겨를이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음식을 집었다. 매운 음식과 담백한 음식 중에서 매운 것을 골랐다.세 사람은 조용히 앉아서 식사했다. 이때 백누리가 머리끈으로 머리카락을 묶자 하얗고 가는 목이 드러났다.임형섭은 이미지를 신경 쓰지 않고 허겁지겁 먹는 그녀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몸매를 관리한다는 여배우가 이렇게 많이 먹어도 되는 걸까? 생각보다 더 잘 먹는 것 같아.’옆에 앉아 있던 민하윤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했다. 임형섭이 처음에 음식을 가득 주문했을 때 절대 다 먹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백누리가 이곳에 오겠다는 말을 듣고 얘기를 나누다가 갈 거라고 여겼지만 그렇지 않았다.사람들의 인상 속 여배우들은 아주 적은 양의 음식만 먹으면서 몸매 관리를 하기 때문이다.민하윤은 인간미 넘치는 백누리에게 호감이 생겼다. 비록 대학 시절에 백누리의 옆 숙소에서 지냈지만 몇 번밖에 보지 못했다.평소에 별다른 접점이 없어서 스쳐 지나가는 인연인 줄 알았다.하지만 민하윤은 백누리의 성격이 털털하고 계산적이지 않다는 점이 좋았다. 비록 욱할 때도 있지만 친구로서 참 좋은 사람이었다.얼마 후, 임형섭과 민하윤은 배가 불러서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백누리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그녀는 멈추지 않고 계속 음식을 집어 먹었다. 몇 분 뒤, 주문한 음식을 다 먹고 나서야 만족스럽다는 듯이 입을 닦았다.백누리는 의자에 기대앉아 배를 매만졌다.“여배우에게 이런 면이 있을 줄 몰랐네요.”임형섭은 그녀가 많이 먹었다고 질타하는 게 아니라 조금 전의 일 때문에 화풀이하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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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화

임형섭은 미간을 찌푸린 채 그녀를 쳐다보았다.‘여배우들도 참 힘들게 사는구나. 고작 한 끼를 많이 먹었다고 해서 큰일이 날 것처럼 굴다니... 연예계도 혹독하긴 마찬가지야.’“송년회에 연예인들뿐만 아니라 협력사 직원들도 올 거예요. 그러니까 부담가지지 말고 마음 편하게 먹어요.”임형섭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에스티 벤처 투자 본사 직원만 해도 천 명이 넘거든요. 일반인들 사이에서 분명 돋보일 거예요.”백누리는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듣고 보니 그러네요. 제가 아무리 살이 찐다고 해도 못생긴 건 아니잖아요.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르는 고은율은 무조건 저한테 시비를 걸 거예요. 하지만 신경 쓰지 않으면 괜찮겠죠. 그런데 임형섭 씨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 거예요?”백누리는 그가 무언가를 더 알고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자 그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덤덤하게 말했다.“내일 저랑 하윤도 송년회에 참석할 거예요.”갑자기 무언가가 떠오른 백누리는 고개를 돌리고 민하윤을 쳐다보았다.“하윤아, 그날 엘리베이터에서 고은율이 너한테 인사했잖아. 혹시 아는 사이야? 하지만 고은율은 예술 학교를 나오고 국비로 유학했지. 그런데 어떻게 너랑 알게 된 거야?”민하윤은 고은율에 대해 더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린 채 어깨를 으쓱이고는 수어로 간략하게 설명했다.백누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하윤아, 미안한데 무슨 뜻인지 알아보지 못하겠어. 사실 고은율은 낙하산이나 마찬가지거든. 얼마 전에 본사 대표와 연인 사이라는 소문이 퍼졌어. 술집의 은밀한 방에서 두 사람이 엉겨 붙어 있는 걸 봤다는 사람도 있었지. 그리고 인터넷에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자칭하는 사람이 본사 대표와 고은율은 학창 시절부터 만나는 사이라고 했어.”백누리는 긴 한숨을 내쉬면서 말을 이었다.“고은율은 낙하산으로 들어와서 특별 대우를 받고 월급도 나보다 훨씬 많아. 나는 몇 초밖에 나오지 않는 조연부터 시작해서 겨우 이 자리에 올랐어. 여자 주인공 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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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화

깜짝 놀란 민하윤은 황급히 손을 휘저으면서 부정했다. 임형섭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오해받기 싫었다.백누리는 수어를 알아볼 수 없었다.“하윤아, 내가 모를 줄 알았어? 이 방에 들어올 때부터 두 사람 사이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는 걸 발견했어. 나는 눈치가 빨라서 단번에 알아차렸지.”[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민하윤은 다급히 수어로 설명했지만 백누리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임형섭은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백누리는 두 사람을 더 놀려주려고 했지만 휴대폰 벨 소리가 울리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다.전화를 받은 그녀는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지금 주소를 보낼 테니 이쪽으로 와주세요.”그녀는 다급히 선글라스를 끼고는 코트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윤아, 촬영에 문제가 생겨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 나중에 또 보자.”백누리가 떠난 후, 방 안은 삽시에 조용해졌다. 임형섭은 오프닝 무대에 관한 얘기를 꺼냈다.“에스티 벤처 투자의 재력은 정말 어마어마한 것 같아. 나랑 같이 참여해서 상을 받아보는 게 어때?”민하윤은 애써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정말 죄송해요. 저는 춤을 출 줄 모르거든요.]임형섭은 그녀에게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깊은 밤, 두 사람은 대학가 근처에서 산책했다. 길가에 대학생 커플들이 데이트하면서 얘기를 나누었다.임형섭은 심호흡하고는 마음속에 깊이 묻어둔 얘기를 하려고 했다. 그는 옆에서 걷고 있는 민하윤을 지그시 쳐다보았다.대학 시절과 달리 한층 더 성숙해진 그녀는 봄의 여신 같았다. 살짝 올라간 눈매는 더없이 매력적이었고 남다른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하윤아, 너를 알게 된 지 벌써 7년이 지났어. 도서관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처음 만났었지. 너는 머리를 올려묶고 이어폰을 끼고 있었어. 포근한 햇살이 창문을 뚫고 내려앉았고 카페 안에 온통 커피콩 냄새였어. 그때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기분이 좋아져.”임형섭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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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화

민하윤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그를 쳐다보았다.[혹시 저한테 할 말이 있어요?]그러자 임형섭은 자신의 목도리를 그녀에게 묶어주면서 미소를 지었다. 목도리에 그의 향기와 온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향수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민하윤은 놀라서 두 눈을 크게 뜨더니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아무것도 아니야. 그런데 오늘 너무 적게 입은 거 아니야?”임형섭은 한숨을 내쉬고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대학교 근처에 있으니까 대학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아.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는 것 같아.”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앞으로 걸었다. 길 양편의 나무는 나뭇가지가 다 떨어져서 앙상했다.가로등 불빛이 어두운 길을 밝혀주었다. 이 길을 걷다 보면 저도 모르게 몽롱한 분위기에 도취할 것만 같았다.“하윤아, 이제는 우리도 나이가 있으니 무슨 일을 하기 전에 심사숙고하지. 젊었을 때의 용기와 열정은 이미 사라지고 없어. 10년 뒤, 20년 뒤에도 우리는 여전히 이대로일까?”임형섭은 허공을 올려다보면서 미묘한 말을 뱉었다.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던 민하윤은 조용히 걸었다.임형섭과 민하윤은 주차장으로 돌아간 후 작별 인사를 했다. 두 차량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내달리고 있었다.두 직선이 어느 한 점에서 만났지만 그 점을 지난 후에 각자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갈 것이다.르네 별장으로 돌아간 민하윤은 2층에 불이 켜진 것을 발견했다. 나지혜의 방은 분명 1층이었는데 말이다.그녀는 무슨 상황인지 몰라서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민하윤은 신발을 갈아신은 후에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복도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조용히 방문을 열었다.하도진이 집에 돌아온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아무도 보이지 않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방 안으로 들어갔다.하도진이 집에 온 걸 하씨 가문 사람들이 알게 되면 큰일 날 것이다. 아마 지금쯤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을지도 모른다.민하윤은 나지혜가 2층에 올라와서 고양이에게 사료를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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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화

민하윤은 휴대폰에 글을 적고 지우기를 반복했다.[조금 전에 친구랑 밥을 먹었어요. 도진 씨는 갑자기 왜 집에 돌아온 거예요? 상처가 다 아문 거 맞아요? 혹시 아무도 모르게 병원에서 도망친 건 아니죠?]그녀는 앞으로 몇 걸음 걸어가서 그의 손에 들린 고양이를 품에 안았다. 그러고는 휴대폰 화면을 그에게 들이밀었다.하도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화면을 응시하더니 차갑게 웃었다.“내가 집에 돌아오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 거야? 다른 남자와 데이트하는 걸 방해할까 봐 그래? 이제는 내가 귀찮아졌다는 거지?”방 안의 분위기는 삽시에 가라앉았다. 민하윤은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서 고양이를 안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이때 하도진은 씩씩거리면서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그는 그녀가 두르고 있는 목도리를 지그시 쳐다보면서 물었다.“내 말이 틀렸어? 켕기는 것이 있으니까 도망치려고 한 거 아니야?”민하윤은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애썼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깜짝 놀란 고양이는 발버둥 치다가 그녀의 손목을 할퀴었다.민하윤은 움찔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고양이는 그 틈을 타서 어딘가로 도망쳤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도진은 민하윤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무슨 일 있었어?”그는 차가운 어조로 물었다. 하지만 민하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양이에게 할퀸 자국을 쳐다보았다.하도진은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아서 몸이 허약했다. 민하윤이 걱정된 그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이리 와 봐. 많이 다쳤어?”민하윤은 어쩔 수 없이 손목을 그에게 들이밀었다. 피부가 살짝 까졌을 뿐, 심하게 긁힌 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소독해 줄 테니 이쪽에 앉아.”하도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약상자를 찾았다. 새끼 고양이의 손톱이 날카로운 편이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그러나 민하윤은 화가 나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녀는 화나거나 토라지면 절대 하도진의 말을 듣지 않았다.민하윤은 끝까지 반항할 생각이었기에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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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화

“오늘 저녁에 르네 별장으로 와요. 아무래도 예방 접종을 맞는 게 좋을 것 같아요.”하도진은 의사와 의논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이때 전화 한편의 의사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하도진, 왜 갑자기 존댓말을 하나 싶어서 장단에 맞춰주었더니... 지금 나랑 장난해? 네 아내를 위해 나를 이렇게 부려 먹어도 되는 거야? 태어난 지 며칠 안 된 고양이가 긁으면 얼마나 긁었다고 그래? 너는 정말 단단히 미쳤어.”“하윤은 고양이에게 긁혀서 피부가 까졌단 말이야.”전화 한편의 의사는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내가 네 가문 의사인 줄 알아? 도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너한테 이런 말을 들어야 해? 오전에 할머니와 할아버지 몰래 도망가는 걸 도와주지 말아야 했어. 내일 들통나면 내가 어떻게 될지 생각해 봤어? 편하게 쉬려고 했더니 고작 이런 일로 연락한 거야? 네 아내는 괜찮으니까 네 몸부터 챙겨. 깊은 상처가 한두 개도 아니고...”하도진은 표정이 점점 굳어지더니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옆에서 듣고 있던 민하윤은 속상해서 고개를 푹 숙였다.그녀는 밴드를 꺼내서 고양이에게 긁힌 곳에 붙였다. 그러고는 붕대와 소독약을 꺼내고 하도진에게 다가갔다.민하윤은 그의 옷을 위로 올리고는 소독약을 상처 부위에 조심스럽게 발랐다.그러자 하도진은 밀려오는 통증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온몸을 덜덜 떨었다.그녀는 가까이 다가가서 입으로 호호 불어주었다.입바람이 피부에 닿자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하도진은 고개를 돌리고 갈라지는 목소리로 물었다.“하윤아, 뭐 하는 거야?”하지만 민하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붕대를 갈아주었다. 하얗고 가는 손가락이 그의 살결을 스쳤다.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하도진은 당장이라도 그녀를 덮치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았다.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녀가 두르고 있는 목도리를 풀어 헤쳤다.이때 민하윤은 휴대폰을 꺼내서 뭐라고 적었다.[혹시 아무도 모르게 병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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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화

어느덧 아침이 밝아왔다. 이불 아래로 무언가가 자꾸 움직이는 바람에 잠이 깨고 말았다.하도진은 두 눈을 번쩍 뜨고는 품에 안겨서 곤히 잠든 민하윤을 쳐다보았다.그녀의 긴 속눈썹이 시선을 사로잡았다.보일러를 틀어둔 덕에 따뜻하게 잘 수 있었다. 하도진은 그녀를 지그시 쳐다보더니 이불 안에 숨어있던 새끼 고양이를 잡았다.그는 새끼 고양이를 바닥에 내려놓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하도진보다 새끼 고양이가 이 침대에서 자는 횟수가 더 많은 것 같았다.그는 민하윤의 얼굴에 드리운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굳은살이 박인 손가락이 부드러운 살결을 스쳤다.손끝에서 피어나는 미묘한 감각 때문인지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품에 안겨 있던 민하윤은 자꾸 뒤척였다.그러자 하도진은 숨을 죽이고 지켜보다가 조심스럽게 팔을 빼내려 했다. 눈을 뜬 민하윤은 그와 눈이 마주쳤다.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하도진이 입을 열었다.“언제까지 내 팔을 베고 있을 셈이야?”그는 간밤에 잠을 설친 탓에 기력이 없어 보였다.이제야 어떻게 된 일인지 눈치챈 민하윤은 벌떡 일어났다. 그의 팔을 베고 잤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하도진은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입구에 놓인 선물 상자를 가리키면서 말했다.“너에게 주는 선물이야. 얼른 열어봐.”그 말에 민하윤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걸어갔다.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었고 잠옷 단추가 몇 개 풀려 있었다.잠옷 치마 아래로 하얗고 곧은 다리가 드러났다.그녀는 바닥에 앉아서 선물 상자를 하나 집어 들었다. 리본을 풀어보니 익숙한 고급 브랜드 로고가 눈에 들어왔다.민하윤은 그 브랜드의 상품이 얼마나 비싼지 잘 알고 있었다. 작은 지갑을 사려고 해도 몇백만 정도 들 것이다.여러 포장지를 걷어내자 독특한 분위기를 띠는 하얀색 비단 원피스가 상자 안에 놓여 있었다.과한 디자인이 아니어서 부담 없이 입을 수 있었다. 다른 브랜드의 원피스와 달리 원단이 부드러워서 더 마음에 들었다.원피스를 입으면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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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화

민하윤은 아무 말 없이 욕실로 들어갔다. 그녀가 거절한다면 하도진의 성격상 아무리 비싼 것이라 하더라도 바로 쓰레기통에 던질 것이다.고가의 상품을 버릴 바에는 차라리 받는 편이 나았다. 이혼할 때 그의 재산을 한 푼도 얻지 못할 테니 선물 받은 것을 팔아서 저축하면 되었다.그녀가 욕실로 들어간 후, 하도진은 싱긋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바닥에 누워 햇볕을 쬐고 있던 새끼 고양이는 졸려서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있었다. 하도진의 시선이 느껴지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하도진은 새끼 고양이를 유심히 쳐다보더니 가까이 다가가면서 이상한 소리를 냈다.“야옹...”깜짝 놀란 새끼 고양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이빨도 다 자라지 않은 새끼 고양이였지만 눈치가 아주 빨랐다.하도진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고양이 때문에 좌절감을 느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새끼 고양이는 민하윤만 보면 불쌍한 척하면서 품에 안겼다. 그녀의 손에 얼굴을 비비고는 애처로운 울음소리를 냈다.그렇게 하면 귀염받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 고양이는 하도진만 보면 천적을 만난 것처럼 경계 태세를 취했다. 하도진이 가까이에 오면 발톱으로 할퀴고 도망가기도 했다.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고양이에게 이런 취급을 당해서 그런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민하윤은 도대체 왜 배은망덕한 고양이를 키우는 걸까? 고양이는 하도진의 별장에서 지내고 있고 보살핌받고 있었다.고양이는 누가 분유를 타 주고 똥을 치우는지 모르는 건가? 아니, 분명 알고 있으면서 민하윤에게만 애교를 부렸다.하도진은 새끼 고양이를 아무도 모르게 던져버리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때 욕실의 물소리가 멈추었고 민하윤이 가운을 입은 채 걸어 나왔다.수건으로 머리를 감싸고 나온 그녀는 피부가 아주 매끈했고 빛이 났다. 하도진은 저도 모르게 그녀의 깊은 눈동자에 매료되었다.같은 샴푸를 써도 그녀에게서 더 좋은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하도진은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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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화

“내 몸이 그렇게 마음에 들어? 다 봤으면 얼른 닦아줄래?”하도진은 사악한 미소를 지은 채 그녀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그의 장난에 민하윤은 부끄러워서 주먹을 꽉 쥐었다.그녀는 재빨리 가운으로 그의 하반신을 막고는 생각에 잠겼다.‘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어. 그저 가운을 벗는 걸 살짝 쳐다보았을 뿐이야.’젖은 수건을 짜서 그의 가슴팍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말랑한 촉감이 전해지자 저도 모르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이른 시간부터 이래도 되는 걸까?그녀는 잡생각을 떨쳐내려고 속으로 주문을 외웠다.‘나는 남자의 몸에 아무 관심도 없어.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서 몸을 닦아주는 중이야.’하도진은 일부러 그녀의 손을 잡고는 위아래로 움직였다.“하윤아, 힘을 주면서 닦아야지.”그는 어린아이를 달래듯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오늘따라 그의 말 속에 다른 뜻이 있는 것만 같았다.민하윤은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힘을 주고 닦으면 그의 상처가 벌어질지도 모른다.“여기 말고 다른 부위도 닦아줄래?”하도진은 말끝을 길게 늘어뜨리면서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민하윤은 떨리는 손으로 그의 가운을 벗기고는 수건을 다시 물에 적셨다.그녀는 하도진의 다리를 닦아주었다. 이제는 더 닦을 곳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수건을 깨끗하게 씻었다.하도진은 불만으로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이게 끝이야?”얼굴이 빨개진 민하윤은 고개를 끄덕였다.“아직 닦지 못한 부위가 있잖아. 혹시 잊어버린 거야?”하도진은 평온한 어조로 야릇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었다. 깜짝 놀란 민하윤은 차마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욕실로 돌아갔다.그녀는 심호흡하고는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손을 가슴팍에 갖다 대니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하도진은 그녀의 반응이 재밌어서 더 놀리고 싶었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하윤아, 나 배고파. 얼른 내려가서 같이 밥을 먹자.”민하윤은 찬물로 얼굴을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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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화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천천히 위층으로 올라갔다. 민하윤이 그를 부축하려고 했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내 몸에 손대지 마.”조금 전과 사뭇 달라진 그의 태도에 민하윤은 적잖이 당황했다. 그녀는 제자리에 멍하니 서서 생각에 잠겼다.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여전히 적응할 수 없었다.뜨겁게 사랑하는 커플과 다를 바 없이 달콤한 분위기 속에서 유쾌한 대화를 이어가다가도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굴었다.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낯빛이 급격히 어두워졌고 그녀를 조롱하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하도진은 단 한 번도 그녀를 사랑한 적 없는 듯한 눈빛을 하고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녀는 그의 뒷모습을 지그시 쳐다보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안방으로 돌아가 보니 하도진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기분이 좋을 때는 비싼 선물을 주면서 민하윤에게 잘 보이려고 했던 남자가 낯선 모습으로 변했다.‘왜 기분이 상하면 얘기해주지 않고 멋대로 구는 걸까? 이럴 때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내가 알던 도진 씨가 아닌 것 같아.’이제야 정신이 든 민하윤은 거울을 보면서 옅은 화장을 했다. 단아한 분위기를 띤 그녀는 청춘드라마 속 여자주인공 같았다.그녀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고급스러운 원단으로 제작된 원피스를 입고 다이아몬드 주얼리를 착용하자 남다른 매력을 뽐냈다.예전에 싸구려 옷만 입고 다니던 때가 떠올랐다.민하윤은 어릴 적부터 민희수를 부러워했다. 매일 예쁜 원피스를 입었고 잘 관리한 덕에 머릿결이 매우 좋았다.피부는 하얗고 매끄러웠고 가장 좋은 것이 아니면 입지 않았다. 민희수는 평소에 몇십만 원짜리 양말을 신고 다녔다.반대로 민하윤은 편한 운동복차림을 하고 다녔고 시장에서 제일 싼 신발을 사서 신었다. 머리를 예쁘게 묶을 줄 몰라서 매일 깔끔하게 올려 묶었다.지금의 그녀는 다시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고 살아야만 했다.민하윤은 코끝이 찡해지더니 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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