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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한다고 말해줘: Chapter 501 - Chapter 510

571 Chapters

제501화

구이현은 고개를 숙인 채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고 하도진의 차를 타고 싶어 했다.민하윤이 대체 언제부터 하도진의 곁에 있었는지, 또 무슨 수를 썼길래 그렇게 높은 사람인 하도진이 저렇게까지 사랑 앞에 고개를 숙이게 됐는지, 구이현은 도무지 알 수 없었다.구이현은 제자리에 선 채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바닥 위에 발끝만 가볍게 세운 채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버티고 서 있었다.“이현아, 말 좀 들어. 엄마 아빠가 집에서 기다리시잖아. 두 분이 널 제일 아끼는 거 알잖아? 네가 돌아온 일도 이제 더는 뭐라고 안 하실 거야.”구이현은 한숨을 내쉬고는 나무 그림자 아래 선 두 사람을 돌아봤다.“이 방법밖에 없어? 기사님 부르면 안 돼?”“걱정하지 마. 난 운전을 잘해. 널 무사히 잘 데려다 줄 게.”송지훈은 말하며 구이현의 어깨를 가볍게 밀며 앞으로 걷게 했다.그리고 둘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해외에 그렇게 오래 있었는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안 궁금해? 예를 들면 도진이 옆에 있는 여자가 누구인지, 둘이 무슨 사이인지 말이야.”그러자 구이현은 홱 송지훈을 한번 쳐다봤다.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괜히 더 날이 섰다.“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송지훈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직접 조수석 문을 열어 주었다.“그래. 그냥 내가 입이 근질거린다고 생각해.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들려준다 치고 들어.”산장 밖의 조명은 유난히 밝았다.그 빛을 빌려 구이현은 송지훈을 찬찬히 한번 바라봤다.단정하고 부드러운 인상에 피부는 차갑고 하얬고 눈매는 또렷하며 날렵했다.오빠 친구 중에서 송지훈은 가장 어렸지만 이상하게도 제일 차분하고 냉정한 사람이었다.구이현은 어려서부터 사람의 표정 읽는 데 빨랐다.오빠 친구들 앞에서는 누구에게든 애교를 부릴 수 있었지만 유독 송지훈만은 어려웠다.넘어져 무릎을 까지면 하도진한테 약을 발라 달라고 달려갔고 몰래 과자 먹다 혼나면 친오빠 구준오의 뒤로 숨어 버렸다.시험을 망쳐 학부모 상담이 잡히면 제일 만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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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2화

그러자 구이현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피아노 안 친지 오래됐어요.”“기억나? 그때 네가 꼭 피아노를 배우겠다고 우겼잖아. 오빠한테도 자기는 앞으로 피아노 전공으로 갈 거라고, 최연소 피아니스트가 되겠다고 큰소리쳤잖아. 그런데 누가 알았겠어? 결국 넌 발레로 방향을 틀고 무용단의 수석까지 될 줄은 말이야.”구이현은 입술을 꾹 다문 채 아주 짧게 자신의 과거를 덮어버렸다.“어릴 때라 뭘 몰랐죠. 피아노를 배우면 뭐라도 달라질 줄 알았거든요.”송지훈은 고개를 살짝 돌려 구이현을 바라봤다.구이현의 속내를 모를 리 없었지만 굳이 들추지 않았다.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흐르는 차 안에서 송지훈은 조용히 이야기를 꺼냈다.“도진은 결혼했었어. 고은율이랑 헤어진 뒤 한국 와서 번개처럼 결혼했지.”마치 야식 메뉴라도 말하듯 별일 아닌 것처럼 송지훈은 너무 담담한 말투였다.그러자 구이현은 눈을 내리깔았고 심장이 천천히 가라앉았다.그 순간, 절망이 바닥에서부터 차올랐다.“도진 오빠가 그 여자랑 결혼한 거예요? 아까 산장에서 본 그 여자요?”구이현은 힘겹게 숨을 삼키며 물었다.“도진 오빠는 그 여자를 사랑해요?”송지훈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차는 고가도로 위를 매끄럽게 달리고 있었다.송지훈은 그동안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차근차근 털어놓았다.구이현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줄도 모르고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그동안에... 이렇게 많은 일이 있었네요.”“이현아, 저 두 사람은 여기까지 오는 길이 쉽지 않았어. 도진이 같은 사람은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은 누구도 억지로 시킬 수 없어. 그리고 이번만큼은 누구 눈에도 보여. 도진이는 완전히 진심이야.”구이현은 천천히 숨을 고르고 뒤를 돌아 송지훈을 바라봤다.눈빛은 태연한 척했지만 눈빛은 분명히 흔들리고 있었다.“오빠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송지훈은 고개를 저었고 더는 말을 밀어붙이지 않았다.“집에 들어가. 늦었어. 푹 쉬고...”차 안에는 여전히 피아노곡이 흐르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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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3화

산장은 한적했고 뜰 안에는 은은하게 꽃향기가 떠돌았다.하도진은 까맣게 가라앉은 눈으로 민하윤을 바라보며 한 손으로 잘록한 허리를 감쌌다.“기분이 상했어?”“아니에요.”민하윤은 괜히 센 척하며 시선을 비켜 갔다.하도진은 말없이 민하윤을 끌어안은 팔에 힘을 더 줬다.그대로 자기 품에 단단히 가둬 버리듯 했다.“거짓말... 분명히 기분 상했잖아.”“도진 씨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예요? 저는 기분이 좋고 나쁠 자유도 없어요?”하도진은 한 손으로 민하윤의 뒤통수를 받치고 다른 손으로 가는 허리를 끌어당겼다.그러자 두 사람의 거리는 단숨에 가까워졌다.“당연히 있지. 그런데 뭐 때문에 기분이 상했는지는 나한테 말해 줘야지.”민하윤은 하도진의 몸 어딘가가 선명하게 닿아 오는 걸 느끼고 꼼짝도 하지 못했다.“도진 씨, 일단 저를 좀 놓아주세요.”민하윤은 짜증도 나고 답답했지만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괜히 불만 지펴 놓고 본인이 타 버릴까 봐 겁이 났다.하도진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잠겨 있었다.여름밤의 서늘한 바람과는 달리 두 사람 사이 분위기는 묘하게 뜨거웠다.허리를 감싼 하도진의 손바닥은 따뜻했고 얇은 옷감 너머로 민하윤의 몸매를 천천히 더듬었다.“하윤아, 뭐가 불만인지는 말로 해야지. 안 그러면 난 네가 왜 자꾸 시큰둥한지 영영 모르잖아. 그렇게 속에만 담아두면 너도 답답하지 않아?”하도진은 고개를 숙여 민하윤을 내려다보며 코끝으로 가볍게 콧대를 스쳤다.“저번에 분명 말씀드렸잖아요. 남들 앞에서 저한테 함부로 손대지 말라고요.”그러자 하도진이 피식 웃었다.입김이 민하윤의 얼굴 위로 뜨겁게 스쳤다.“내가 그랬던가? 다시 잘 생각해 봐. 네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내가 진짜로 알겠다고 했어?”하도진의 말은 민하윤도 반박할 수 없었다.요구는 분명 민하윤이 꺼냈지만 하도진이 그 자리에서 제대로 받아들인 적은 없었다.“밖에서 내가 널 터치했다고 화를 내는 거야? 난 그냥 너랑 뽀뽀하고 망고스틴을 직접 먹여 주고 생선 가시를 발라 주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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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4화

민하윤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제가 도진 씨라면 남의 집에 그렇게 뻔뻔하게 들어와 자지는 않을 거예요. 이 집은 제가 돈 내고 빌린 거고 관리비도 제가 내요. 도진 씨랑 무슨 상관인데요?”하지만 하도진은 조금도 부끄러운 기색이 없이 받아쳤다.“내가 언제 공짜로 잤어? 맨날 너한테 서비스비를 주잖아. 지난번에는 팁도 더 얹어 줬고... 네가 앱에서 사람 불렀으면 나처럼 잘하고 잘생긴 사람은 절대 못 만났을 거야.”하도진은 창피한 줄도 모르고 오히려 어깨를 으쓱거렸고 역할 몰입도 너무 빨랐다.“도진 씨는 진짜 얼굴이 성벽과 다를 게 없을 정도로 두껍네요.”“좋지. 그 정도면 문화재가 되살아난 셈 아니야?”민하윤은 머리가 지끈거렸다.민하윤은 하도진이랑 말싸움해서 이겨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키스를 해도 안 되고 말로 이기려 해도 안 됐다.“여긴 너무 답답하잖아. 그냥 르네 별장으로 들어올래? 각방 쓰고 매달 상징적으로 방값만 조금 내면 돼. 딱 갑을 관계 같은 룸메이트 말이야.”민하윤은 바로 차 문을 열고 내려 버렸다.“사양할게요. 회사에서의 갑을 관계를 굳이 사생활까지 끌고 들어오고 싶지는 않아요. 천 평이 넘는 별장보다 제 작은 집이 더 좋아요.”민하윤은 문을 탁 닫고 아파트 안으로 종종걸음으로 뛰어 들어갔다.뒤에서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한발만 늦어도 붙잡힐 것 같아서 더 서둘렀다.샤워를 마친 민하윤은 분홍빛 실크 슬립 원피스를 입고 침대에 누웠다.하지만 아무리 뒤척여도 잠이 오지 않았다.머릿속에는 온통 하도진이 내뱉은 말들만 빙빙 돌았다.하늘이 희끗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민하윤은 겨우 흐릿한 잠에 빠져들었다.다음 날 아침.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민하윤은 초인종 소리에 잠이 깼다.민하윤은 괴로운 듯 몸을 뒤집고는 베개로 귀를 막으려 했다.그러나 초인종은 끈질기게 울렸다.민하윤은 벌떡 눈을 뜨고 맨발로 침대에서 내려왔다.긴 머리는 자연스럽게 앞으로 쏟아져 내려와 드러난 살결을 적당히 가려 주고 있었다.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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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5화

하도진은 자기 입을 막고 있던 민하윤의 손목을 붙잡아 내리더니 어깨를 짚은 채 몸을 숙여 입을 맞췄다.민하윤은 눈을 감고 긴장한 채 입술을 꼭 다물었다.당연히 하도진이 더 밀고 들어올 줄 알았다.금방이라도 큰일이 벌어질 것처럼 민하윤은 숨까지 죽이고 있었는데 잔뜩 찌푸린 미간 위로 뜻밖에도 서늘한 입맞춤이 가볍게 내려앉았다.하도진은 낮게 웃더니 민하윤을 놓아줬다.“밥 먹자.”‘이걸로 끝이라고?’민하윤은 입술을 꾹 다물고 흘러내린 가는 어깨끈을 다시 끌어올렸다.실크 원피스 자락은 허리까지 밀려 올라가 있었고 곧고 하얀 두 다리는 허공에 드러난 채였다.괜히 온몸에 힘이 빠진 민하윤은 얼른 방으로 도망치듯 들어갔다.느릿느릿 세수를 하고 양치까지 마친 뒤 옷장에서 흰 실크 셔츠를 꺼냈다.민하윤은 잠옷을 반쯤 벗다가 문득 등골이 서늘해져 침실 문 쪽을 돌아봤다.그 순간, 민하윤은 하마터면 혼이 빠질 뻔했다.하도진이 문가에 기대선 채 민하윤을 보고 있었다.하도진의 의미심장한 눈빛이 느긋하게 민하윤을 훑고 있었다.그러자 민하윤은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민하윤은 황급히 잠옷을 끌어 올려 몸을 가리고 시선을 내리깔았다.“왜 올라오셨어요? 나가 계세요.”“밥 먹으라고 널 부르러 온 거야.”하도진은 여전히 문에 기대 있었고 시선은 민하윤 가슴팍의 하얀 살결 위에 머물렀다.잠옷으로도 다 가릴 수 없는 선명한 곡선 때문에 하도진은 목울대를 천천히 굴렸다.하지만 하도진의 얼굴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기색뿐이었다.“나가 계시라고요!”하도진은 피식 웃었다.“우리 사이에 뭘 새삼 피하는 거야? 내가 네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안 닿아 본 데가 어디 있어?”그 말에 민하윤은 얼굴이 더 뜨거워졌고 하도진을 노려보며 급히 옷을 챙겨 입었다.“도진 씨는 정말 어디 아파요?”“조금 그런 것 같아. 그러니까 네가 날 좀 고쳐 줘.”하도진은 문을 닫으며 천천히 민하윤 쪽으로 걸어오자 드레스룸은 순식간에 답답해졌다.민하윤은 본능적으로 불안해져 입술을 깨물고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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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6화

하도진은 낮게 웃더니 서 비서가 빤히 자신을 보고 있는 걸 눈치채자 순식간에 표정을 바꿨다.“뭘 멍하니 서 있어? 저쪽에서 문까지 열어 주잖아. 얼른 옮겨.”그 말에 서 비서는 멍해졌다.‘아니, 왜 또 이상한 척하는 거야?’하도진은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곧 가사 업체 직원들이 도착했다.열 명이 훌쩍 넘는 인원이 질서정연하게 하도진의 맞춤 정장과 시계, 각종 액세서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민하윤은 회의실에 앉아 있는 내내 오른쪽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민하윤은 스타 라이트의 리스크 평가 보고서를 한 번 더 손을 본 뒤 저장하고 노트북을 닫고는 리스크관리부를 나섰다.민하윤이 휴대폰 잠금을 풀자마자 백누리 메시지가 연달아 쏟아졌다.[나 방금 도착했어. 어떤 팬이 날 알아봤어. 화장 안 하고 온 거 너무 후회되네.][완전 매운맛으로 시켰어. 빨리 와.][골목 대감님들이 키우는 비둘기가 왜 다 도망갔는지 알아?]민하윤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천천히 물음표 하나를 보냈다.맥주를 손에 든 백누리는 스카프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네모난 큰 선글라스까지 낀 채 수상쩍게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실종된 사람처럼 잠수 타던 민하윤의 답장이 드디어 도착하자 백누리는 곧장 메시지를 날렸다.[네가 사람 바람맞히고 다녀서 그렇지!][내가 스케줄까지 빼고 파파라치한테 찍힐 위험도 감수하면서 네가 먹고 싶다던 샤브샤브를 같이 먹어 주러 왔는데... 넌 어디야?]미안해서 웃음이 터진 민하윤은 얼른 무릎 꿇고 잘못을 빌고 있는 이모티콘을 보내고 대답했다.사무실 건물 안에는 이제 민하윤 혼자뿐이었다.[헤헤. 리스크 평가 보고서를 수정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어. 지금 바로 갈게. 배고프면 먼저 먹어.]백누리는 한 손으로 답장을 보내다가 옆에 선 잘생긴 남녀를 힐끗 보고 본능적으로 한발 옆으로 비켜섰다.백누리는 손으로 스카프를 더 끌어 올려 얼굴을 가렸다. 누가 알아보고 몰래 찍을까 봐 겁났다.내일 아침 연예 기사에 ‘백누리, 늦은 밤 맥주 들고 샤브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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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7화

백누리는 한 손으로 스카프를 붙잡아 얼굴을 가린 채 본능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아니에요. 괜찮아요. 안 그러셔도 돼요.”순간 너무 당황한 나머지 백누리는 일부러 목소리를 바꿔 내던 것조차 잊어버렸다.구이현은 속으로 의아했다.‘도진 오빠는 원래 이런 사소한 일까지 저렇게 신경 쓰는 사람이었나?’몇 년 만에 보니 하도진은 어딘가 좀 더 사람이 좋아진 것 같기도 했다.상대는 분명 눈에 띄고 싶지 않아 하는데 하도진은 방법을 잘못 쓴 듯했다.백누리는 발렌시아가 스카프로 얼굴을 칭칭 가렸지만 가느다란 몸매만 봐도 미인이라는 게 뻔했다.그렇게 되어 세 사람은 어색하게 엘리베이터 앞에서 굳어 있었다.구이현은 하도진을 돌아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그럼 저희 먼저 올라갈까요? 저분은 다음 엘리베이터 타셔도 될 것 같은데요?”하도진은 참을성은 있었지만 그리 많지는 않았다.하도진은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을 누른 채 백누리를 빤히 바라봤다.“친구분은 언제 오는데요?”백누리는 하도진의 성격을 아직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결국 이를 악물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 층수를 누른 뒤, 눈치 빠르게 웃으며 말했다.“안 기다릴래요. 아직 길이 많이 막히나 봐요. 한참 더 걸릴 것 같네요.”하도진은 별말 없이 손을 거뒀다.곧 엘리베이터는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백누리는 구석으로 슬쩍 물러난 채 선글라스 너머로 두 사람을 대놓고 훑어봤다.그러면서 몰래 휴대폰을 꺼내 민하윤에게 열심히 상황을 중계했다.너무 신나게 뒷얘기에 빠진 나머지 손가락이 거의 불이 나도록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타닥타닥 울리는 자판 소리에 하도진은 결국 미간을 찌푸렸다.“매니저 몰래 샤브샤브 먹고 맥주까지 마시니까 좋죠?”그 말에 백누리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면서 한 손으로는 계속 답장을 치면서 습관처럼 맞장구쳤다.“네네. 당연히 좋... 네?”“남의 뒷담화를 하니까 재밌어요? 또 저를 뭐라고 욕하고 있어요?”하도진은 차갑게 웃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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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8화

“퉤. 진짜 쓰레기 같은 남자네.”백누리는 이를 갈며 휴대폰을 움켜쥔 채 들고 있던 맥주를 본능적으로 뒤로 숨겼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백누리는 총알처럼 밖으로 튀어 나가며 외쳤다.“이만 가 볼게요. 두 분께서는 좋은 밤 보내세요.”하도진은 눈빛을 싸늘하게 내리깔고 일부러 엘리베이터 층수 표시를 한 번 확인했다....민하윤이 지하철에서 내렸을 때쯤 휴대폰의 신호가 다시 잡혔다.그러자 문자 알림이 연달아 몰려 들어왔다.민하윤은 내비게이션을 켜고 도보로 5분쯤 걸으며 메시지를 확인했다.[헐! 네 전남편을 봤어. 그 사람도 여기 있어.][들어올 때 조심해. 걸리면 골치 아플 거야.]백누리의 문자를 보자 민하윤은 이마를 짚었고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우리가 무슨 바람피우는 사이도 아니고...]그러자 백누리는 거의 바로 답장을 보냈다.[아... 진짜 내가 전에 너더러 그 남자랑 다시 잘해 보라고 한 말 다 취소할게.][본인은 젊은 아가씨를 데리고 와 놓고 나한테는 우리가 훈남을 본다고 비꼬더라.][내가 이 나이에 잘생긴 어린 남자를 안 보고 뭐 하겠어? 대표님 같은 늙은 남자랑 밀당이라도 하라는 거야?]민하윤은 입을 삐죽였다.[고마워. 그런데 그만해. 괜히 나까지 같이 얻어맞는 기분이야.]민하윤의 시선은 하도진이 젊은 아가씨를 데리고 왔다는 문자에서 멈췄다.믾아윤은 방금 쓰던 문자를 다시 지워 버렸고 가슴 한쪽에 이상한 감정이 스몄다.그런 느낌은 별로 좋지 않았다.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던 어린 아가씨가 떠오르자 민하윤은 눈빛이 어두워졌다.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중 휴대폰이 갑자기 심하게 울렸다.백누리와의 대화창에는 이를 드러낸 이모티콘이 줄줄이 도배되어 있었다.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난 게 보였다.그 아래로 백누리의 60초짜리 음성메시지가 길게 여러 개 쌓여 있었다.민하윤은 음성메시지를 텍스트로 바꾸려다 말고 마침 앞에 멈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는 바람에 손을 잘못 놀렸다.그러자 그대로 첫 음성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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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9화

민하윤은 더는 피할 곳이 없었고 결국 힘이 풀린 채 하도진의 품에 기대고 말았다.어느새 셔츠 앞 단추 몇 개는 풀려 있었고 얇고 하얀 블라우스는 구겨져 있었다.하도진은 뒤에서 손을 넣어 흘러내린 어깨끈을 다시 걸어 주었다.그러고는 민하윤의 볼을 가볍게 꼬집으며 낮게 말했다.“백누리랑 너무 어울려 다니지 마.”하도진은 손끝으로 번진 립스틱 자국까지 천천히 닦아냈다.민하윤은 홱 고개를 돌리고 간신히 표정을 가다듬었고 눈을 부릅뜬 채 쏘아붙였다.“저 다 왔거든요? 도진 씨는 돌아가서 그 여동생이랑 놀아요. 우리 각자 놀면 되잖아요. 제가 누구랑 뭘 하고 놀든 도진 씨가 무슨 상관인데요?”민하윤이 본능적으로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손목이 다시 잡아당겨졌다.하도진의 손바닥은 거칠고 뜨거웠다.하도진은 민하윤의 손목뼈를 천천히 쓸어내리며 입꼬리를 올렸다.“질투할 거면 대놓고 하지 왜 그렇게 빙빙 돌려 말하면서 사람 약 올리는 거야?”민하윤은 하도진의 검고 고요한 눈을 빤히 바라봤다.그러자 민하윤은 귓가가 달아올랐다.하고 싶은 말은 분명히 많고도 많은데 이상하게 목에서 턱 막혀 나오지 않았다.“우리 그냥 집에 갈까?”하도진의 시선이 민하윤의 귓불 위에 오래 머물렀다.엘리베이터 안의 노란 조명은 지나치게 부드러웠다.“갑자기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졌어.”민하윤은 생각할 것도 없이 하도진의 손을 뿌리쳤다.“그럼 도진 씨는 가세요. 저는 먹고 싶거든요?”하도진은 어이없다는 듯 작게 웃었다.민하윤은 정말 손바닥을 뒤집듯 쉽게 얼굴이 바뀌는 여자였다.“그래? 마침 나도 배고프네. 그럼 먹고 가자.”“네?”민하윤도 자신이 어떻게 하도진에게 끌려 다른 룸으로 들어오게 됐는지 모르겠다 싶었다.비록 자리에는 앉았지만 온몸이 불편했다.백누리는 아마 한참 전부터 속이 타들어 가고 있을 터였다.휴대폰에는 60초짜리 음성 메시지가 줄줄이 쌓여 있었다.민하윤은 한참 망설였고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도 몰랐다.고작 조금 늦었을 뿐인데 백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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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0화

백누리는 못내 아쉬운지 돌아가는 길에도 계속 민하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밝아진 화면에는 여전히 두 사람의 대화창이 떠 있었고 문자가 연달아 쌓였다.[조심해. 그 늙은 남자한테 붙잡히지 마.][네 전남편은 진짜 성의도 없네. 옆에 어린 여자들을 달고 다니고... 퉤! 아랫도리 하나 간수 못 하는 늙은 놈 같으니라고...]“아...”민하윤은 살짝 아픈 기색을 보이며 눈을 가늘게 떴다.작게 숨을 들이켠 채 입술을 달싹였지만 차마 뭐라고 하진 못했다.머리 위로 하도진의 낮고 잠긴 목소리가 떨어졌다.“미안해. 아팠어?”백누리는 혼자 분풀이에 푹 빠져 있었다.등골이 서늘한 것도 모르고 길가 찬바람을 맞으며 재채기를 몇 번이나 해댔다.차를 기다리는 와중에도 백누리는 메시지를 멈추지 않았다.[이상하네. 올해는 여름이 좀 늦게 온 거야? 왜 이렇게 뒤가 서늘하지? 벌써 8월인데... 이럴 리가 없는데.]민하윤은 본능적으로 휴대폰 화면을 껐다.그러더니 슬쩍 하도진의 눈치를 살폈다.하도진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오직 민하윤의 머리카락에만 집중하고 있었다.검은 머리끈 하나가 하도진의 손에서 엉망으로 꼬여 있었지만 적어도 겉보기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어 보였다.평소와 다르지 않았다.‘못 본 거겠지...’민하윤은 간신히 살아남은 듯 속으로 안도했다.방금은 정말 머리가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백누리 대신 식은땀까지 흘렸으니까 말이다.하도진이 백누리가 보낸 문자를 몇 줄이라도 봤다면 백누리의 앞날이 얼마나 험해질지 감히 상상도 하기 싫었다.완전히 찍혀 버리는 건 기본이고 예능 하나 제대로 못 나갈지도 몰랐다.민하윤은 불안해서 휴대폰을 뒤집어 화면을 아래로 향하게 놓았다.“그냥 제가 묶을까요?”솔직히 말하면 하도진이 이런 걸 해주겠다고 마음먹은 것만으로도 충분했기에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었다.두피가 은근히 당겨서 민하윤도 조금 아팠다.하도진이 손을 놓자 민하윤의 왼쪽 뒤통수에는 비뚤게 기운 조그만 땋은 머리 하나가 생겨 있었다.민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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