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결혼을 지지해요의 모든 챕터: 챕터 171 - 챕터 180

483 챕터

제171화

서현주는 시선을 거두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저한테 물어보기 전에 먼저 본인 이름부터 밝히셔야죠.”남자는 웃으면서 그녀 왼쪽 자리에 팔짱을 낀 채 다리를 꼬고 앉았다.“김민준이요.”이 이름을 듣자 서현주는 잠시 멍해졌다.‘어딘가 익숙하다 했더니 그 사람이었어?’전생에 이 이름을 정말 많이 들었는데 전부 연지훈, 유이영과 관련된 이름이었다.김민준은 똑같이 보유한 집안 아들이었다. 만약 집안 뜻대로 경영학을 전공했다면 밝은 미래가 보장됐겠지만 하필 의학을 전공해서 가족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몇 년이나 공부했는데 그의 가족은 결국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시간을 잘 계산해 보면 김민준은 올해 24살에 이미 박사 학위를 취득했을 것이다.지금쯤이면 아마 의학계에서 떠오르는 신인일 것이다.전생에 죽기 전에 이미 의학계 거장이 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김민준은 의술과 학식뿐만 아니라 진심 어린 마음도 대단했다.그는 유이영과 어릴 적부터 친구였고, 어릴 때부터 유이영을 따라다닌 그가 유이영을 좋아하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고등학교 시절. 연지훈과 유이영이 사귄다는 소문이 돌자 그는 바로 유이영에게 달려가 따졌다.돌아오는 대답은 당연히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대답이었다.그 후로 김민준은 화가 나서 바로 해외로 떠났고, 몇 년 동안 돌아오지도 않았다.전생에 김민준을 처음 만난 건 몇 년 뒤의 일이었다.서현주는 고개 들어 김민준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정말 잘생겼는데 안타깝네. 이영 씨를 구하다가 얼굴이 다 망가질 텐데.”전생에 만났을 때는 이미 얼굴이 망가져서 옛 모습을 알 수 없었다.하지만 서현주는 그의 얼굴이 망가질 거라는 것 때문에 슬퍼하지 않았다.김민준은 유이영의 충견으로 누구든 물어뜯는 냉혹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전생에서 유이영이 불쌍한 척할 때마다 그녀에게 마음이 있는 김민준은 서현주를 가만두지 않았다.서현주는 그런 그에게 당해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전생에 딸이 교통사고를 당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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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2화

고개 들어 김민준과 시선이 마주쳤는데 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뒤돌아 떠났다.그는 유이영에게 인사하지도 않고 바로 대회 현장으로 향했다.서현주는 서서히 미간을 찌푸리며 연지훈과 유이영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연지훈은 그녀를 등지고 있었고, 오직 유이영만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유이영은 웃으면서 물컵을 들더니 일부러 오션 그룹 로고를 보여주면서 흔들었다.불안감이 엄습해온 서현주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루체 피아노 콩쿠르는 늘 공정하고 엄격한 대회였어. 절대 김민준이 후원했다고 뇌물을 받았을 리가 없어.”이렇게 생각하니 서서히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유이영이 손을 씻고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눈앞에 파란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동공이 확장되면서 무의식적으로 화장실로 다시 들어가려 했다.다음 순간 누군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기면서 벽에 밀쳤다.상대는 동시에 그녀의 입까지 막고 있었다.깜짝 놀란 유이영은 숨이 가빠지더니 손발을 부들부들 떨면서 눈을 뜨지 못했다.“왜 울어.”이때 부드럽고 한숨 섞인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들려왔다.눈을 떠 눈물이 그렁그렁한 두 눈으로 눈앞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던 유이영은 결국 눈물을 흘렸다.이 모습에 김민준은 마음이 사르륵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그는 어쩔 수 없이 유이영의 입을 가렸던 손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됐어. 그만 울어. 마음 아파 죽겠네.”상대를 확인하고 눈물이 터져 나온 유이영은 주먹으로 김민준의 어깨와 가슴을 두드리며 울면서 말했다.“왜 그래.”김민준은 웃으며 묵묵히 유이영의 화를 받아들였다.“알았어. 내 잘못이니까 화 풀릴 때까지 마음대로 때려.”유이영은 눈물을 닦아내고 고개 들어 그를 노려보았다.“내 손이 더 아프잖아.”김민준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유이영의 손을 잡았다.“어디가 아픈데? 봐봐.”유이영이 그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막 만지지 마.”김민준의 눈빛은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왜. 연지훈은 되고. 나는 안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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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3화

유이영의 예선 참가순서는 서현주보다 앞 순서였는데 유이영 수준이라면 에선 통과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유이영의 연주가 끝나고 대회장에 박수가 쏟아질 때, 서현주는 전혀 놀랍지 않았다.서현주는 대기실에 앉아있을 때, 연지훈이 무대 뒤에 서서 이미 1등을 거머쥔 듯한 유이영을 부축하고 있었다.그녀는 시선을 거두기도 전에 연지훈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하지만 연지훈의 시선은 그녀에게 1초쯤 머물러있다가 금세 다른 곳을 향했다.그 옆에 있던 유이영은 그녀에게 환하고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서현주는 그 의미를 따지지 않고 차분하게 시선을 돌렸다.“현주 씨.”옆에서 경박한 목소리가 들려와도 서현주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그저 곁눈으로 파란색 그림자가 자기 옆에 앉은 걸 발견했다.“현주 씨, 곧 무대에 올라갈 차례인데 긴장되지 않으세요?”김민준은 허락도 없이 옆에 앉아 여자처럼 예쁘장한 얼굴을 들이밀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 눈빛에는 차가운 기운이 맴돌았다.서현주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그쪽이랑 무슨 상관인데요?”김민준이 웃으면서 말했다.“당연히 저랑 상관있는 일이죠.”김민준은 또다시 그녀에게 다가가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다.“제가 선물을 하나 준비했거든요. 현주 씨가 놀랄만한 선물이요.”서현주는 눈썹을 움찔하더니 냉정하게 말했다.“저도 드릴 거 있어요.”김민준은 멈칫하다 말고 더 크게 웃었다.“현주 씨, 무슨 짓을 하려는 거죠?”그 말투에는 경멸의 의미가 아주 뚜렷했다.서현주가 웃으면서 말했다.“지훈 씨랑 이영 씨가 같이 찍은 사진을 보실래요? 지금은 없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찍어서 보여줄게요. 첫사랑이 다른 남자랑...”“현주 씨.”강민준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서현주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민준 씨도 별거 아니네요.”김민준은 소문대로 서현주가 마음 좁고, 질투가 심하고, 유이영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그는 침울한 표정으로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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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화

그녀는 탈의실로 들어가 드레스를 벗어 서현주에게 건넸고, 서현주는 능숙하게 가느다란 실로 찢어진 곳을 꿰매기 시작했다.너무 능숙해서 간격마다 일치했다.그녀는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서현주를 바라보았다.“연씨 가문에서 몇 년 지낸 거 아니에요?”서현주가 고개를 숙인 채 담담하게 말했다.“아까 말씀하셨잖아. 운전기사 딸이었다고.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대기실 불빛이 어두워서 서현주는 불빛이 비치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그런데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김민준이 다가와 불빛을 가린 채 다정한 모습으로 웃으면서 물었다.“현주 씨, 이런 것도 할 줄 알아요?”서현주는 계속 옷을 꿰매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잠시 후, 김민준은 웃으면서 다가와 여우 같은 눈으로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현주 씨, 혹시...”‘저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서현주가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불빛 가렸어요.”김민준은 표정이 굳어버리고 말았다.서현주는 김민준을 밀쳐내면서 말했다.“여기서 방해하지 마세요.”마지막으로 실을 쭉 당기니 꿰맨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서현주는 바늘을 제거하고 다 수선된 드레스를 그녀에게 건넸다.“다 됐어요.”그녀는 수선한 부분을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살펴보다가 문제없다는 걸 확인해서야 망설이면서 말했다.“현주 씨, 저를 왜 도와주셨어요?”서현주는 바늘과 실을 제자리에 놓으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심심해서요.”그녀는 말문이 막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뭐라고요?’서현주가 말했다.“얼른 옷부터 갈아입어요. 바로 다음 순서인 것 같은데.”그녀는 그제야 허둥지둥 탈의실로 들어가서 빠르게 옷 갈아입고 나왔다.서현주를 지나칠 때, 그녀의 표정은 어딘가 복잡미묘했다.“현주 씨, 고마워요.”서현주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그녀는 마지막으로 두 번째 선수였고, 서현주는 가장 마지막 선수였다.그녀가 무대 위로 올라간 뒤, 서현주 주위에는 김민준만 남았다. 나머지 선수들은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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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5화

김민준은 더욱더 눈살을 찌푸리며 믿지 못하겠는지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지만 이상한 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그녀는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서현주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 현주 씨, 오늘 느낌이 좋아서 예선을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아요.”서현주가 담담하게 말했다.“축하해요.”김민준은 신나게 떠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더욱더 미간을 찌푸렸다.“현주 씨, 아무런 짓도 안 한 거예요?”다음 순서는 서현주였고, 그녀는 이미 무대에서 자기 이름을 부르는 걸 들었다.그녀는 더 이상 김민준과 엮이고 싶지 않아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속내가 더러우니까 뭐든지 다 더럽게 보이는 거예요.”김민준의 눈빛에 잠깐 갈등이 스쳐 지나갔다.‘설마 소문대로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닌 걸까? 설마 내가 오해한 건가?’서현주가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할 때, 김민준은 마음속 저울이 갑자기 한쪽으로 치우치기 시작했다.“현주 씨.”서현주가 여전히 발걸음을 멈추지 않자 김민준은 고민 끝에 말했다.“현주 씨, 잠깐만요.”그 순간 유이영의 목소리도 울려 퍼졌다.“민준아.”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는데 유이영이 어두운 곳에 서 있었다. 그녀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미소가 흐릿하게 보였지만 심장이 뛰는 느낌이었다.“이영아.”가슴이 뜨거워진 김민준은 자연스러운 부드러운 목소리로 변했다.유이영이 그에게 손짓하며 말했다.“거기 혼자 서서 뭐해. 나랑 함께 있어.”김민준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알았어. 바로 갈게.”하지만 발을 떼려는 순간, 무대 위로 올라가는 서현주의 뒷모습이 보였다.그는 유이영 쪽으로 걸어가면서 자기도 모르게 계속 서현주를 뒤돌아보았다.서현주는 화려한 옷차림의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평범하기만 했다.간단하게 교복을 입은 그녀는 등을 곧게 펴고 당당하게 걸어갔다.김민준은 그제야 서현주가 단지 고등학생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몇 번이고 서현주를 멈춰 세우려고 했다.하지만 유이영이 옆에서 자꾸만 재촉했다.“민준아, 뭘 보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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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6화

그 남자는 유이영을 빼앗아 간 사람이다. 그런데도 유이영은 여전히 그를 향해 한없이 마음을 주고 있다.하지만 정작 연지훈은 그 마음을 귀하게 여기지 못하고 서현주와 얽히고설켜 유이영을 끝없이 상처 입혔다. 유이영이 아이까지 가진 상황에서 약혼식도 안 올리는 점만 봐도 책임감이 전혀 없었다.그런데 지금 연지훈은 숨기지도 못할 만큼 노골적으로 분노를 드러냈다. 그의 깊고 어두운 눈동자 속에 차갑고 짙은 위협이 서려 있었고 김민준이 유이영의 손목을 잡고 있는 것을 보자 눈빛이 마치 살을 베어낼 듯 서늘하게 변했다.하지만 김민준은 그런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고 오히려 손에 힘을 더 세게 주며 유이영의 손목을 꼭 움켜쥐었다.그는 예전에 자신이 유이영에게 고백하던 순간, 연지훈이 나타나 그녀를 데려가 버렸던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김민준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연 대표님, 오랜만이네요.”연지훈은 한참 동안 말없이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그 순간, 유이영이 황급히 김민준의 손을 내리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연지훈을 향해 김민준에게는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부드럽고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지훈 씨, 민준이가 해외에서 돌아왔어요. 그러고 보니 민준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처음 보는 거죠?”김민준은 그녀가 뿌리친 자신의 빈 손바닥을 내려다봤고 공허감이 마음 깊은 곳으로 파고들었다.그리고 바로 그때 연지훈이 그들 앞에 멈춰 섰다.“김 선생님, 언제 귀국하셨습니까.”김민준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웃어 보였다.“얼마 안 됐어요. 오랜만에 이영이랑 얘기하느라 연 대표님이 계신 것도 깜빡했네요.”연지훈이 막 입을 열려는 순간,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서현주가 무대 위로 걸어 나왔고 객석에는 이미 예선을 마친 참가자들과 심사위원들이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서현주는 차분한 표정으로 객석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리고 시선이 두 번째 줄 한가운데 자리에 머물렀는데 연지훈과 유이영이 앉아 있었던 그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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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화

장미연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건 안 돼요. 루체 피아노 콩쿠르는 공정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회예요. 내가 조직위원회에 요청해서 피아노를 수리한 뒤에 다시 현주 씨에게 연주 기회를 줄게요.”하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심사위원석과 참가자석 곳곳에서 다른 의견이 터져 나왔다.“그건 안 됩니다.”한 심사위원이 단호하게 말했다.“예선 시간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어떤 예외도 둘 수 없어요. 서현주 씨만 따로 시간을 더 주면 그게야말로 다른 참가자들에게 불공평하죠.”참가자석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이어졌다.“그러니까요! 저희 다 결과를 기다리느라 얼마나 지쳤는데 또 기다려야 하나요?”“매번 서현주 씨한테서만 문제가 생기네요. 진짜 왜 항상 저 사람한테만 일이 터지는지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이의와 불평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고 장미연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그녀는 서현주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현주 씨, 이 일의 진상은 곧 밝혀질 겁니다. 현주 씨가 부당하게 손해 보는 일은 없게 할게요.”그러고는 숨을 들이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저는 이번 대회의 수석 심사위원입니다. 규정상 저는 참가자의 연주 순서를 조정할 권한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서현주 씨의 연주 시간을...”“장 선생님.”서현주가 담담하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그러자 장미연은 뒤돌아보면서 단호하게 말했다.“현주 씨, 걱정하지 마요. 이 일은 공정하게 처리될 거예요. 현주 씨가 억울한 일 당하게 두지 않을 겁니다.”하지만 서현주는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선생님. 저를 위해 그러시는 건 알아요. 그런데 정말로 괜찮습니다.”“저, 다른 피아노로 연주할게요. 다른 분들을 더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아요.”그녀의 말에 장미연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괜히 자존심 세우지 마요. 이런 대회에서는 판단을 신중히 해야 해요. 기회는 쉽게 오는 게 아니니까 너무 서두르지 말아요.”그러나 서현주는 정말로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그녀는 예선에서 굳이 돋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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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8화

서현주는 피아노 의자에 앉자마자 심사위원석 쪽에서 들려온 장미연의 목소리를 들었다.“현주 씨, 그 피아노는 아까 현주 씨가 쓰던 것보다 음이 확실히 떨어져요. 하지만 그건 현주 씨가 선택한 거니까 그로 인해 생기는 모든 결과는 현주 씨가 감당해야 해요.”“알겠습니다.”서현주는 차분하게 대답했다.“그럼 시작하세요.”건반을 누르는 순간, 서현주의 머릿속에는 이미 계획이 있었다. 예선은 통과하되 너무 잘해서 눈에 띄지 않는 수준으로 조절하는 것.그녀는 일부러 아주 사소한 음 하나를 틀렸다.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자연스럽고 듣기 좋았고 예선을 통과하기에는 충분한 연주였다.곡이 끝나자 예상대로 객석과 심사위원석에서 뜨뜻미지근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서현주가 일부러 연출한 연주 실력에 딱 맞는 반응이었다.서현주는 의자에서 일어나 고개 숙여 인사했다.그리고 다시 고개를 드는 순간, 장미연이 미간을 살짝 찌푸린 게 보였다. 그리고 몇몇 참가자들은 대놓고 얼굴을 찡그리며 수군거렸다.“뭐 얼마나 대단한 줄 알았네. 별 거 없잖아. 유이영이랑은 비교도 안 되네.”“그러니까 말이야. 저 실력으로 어떻게 감히 유이영이랑 맞붙겠다고 생각했대? 예선 통과하는 것도 힘들겠구먼. 내가 봤을 때 유이영이 예선 1등이고 서현주는 꼴등 각이야.”여기저기서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몇 명은 서로 팔꿈치로 찌르며 장난을 쳤다.“야, 그만 좀 해. 들으면 울겠어. 서현주가 울면 네가 달래줄 거야?”“달래긴 개뿔, 더 욕할 거야.”“그나저나 유이영은 진짜 타고났어. 집안 좋지, 얼굴 예쁘지, 피아노 실력도 뛰어나지, 남자 친구도 잘생겼지, 게다가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남자 사람 친구도 잘 챙겨주고. 정말 완벽한 인생이야.”그들은 목소리를 낮추며 신경 썼지만 정적이 감도는 대회장 안에서는 오히려 더 또렷하게 들렸다.무대 위에 서 있던 서현주도 전부 다 들을 수 있었지만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고 마음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고 변명할 이유도 없었다.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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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9화

그들은 보지 못했지만 서현주는 손을 내려놓은 뒤 무표정하게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두 사람은 슬쩍 손을 들어 손바닥에 입김을 내뿜더니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봤다. 자기들에게서 입 냄새가 진짜 나는지 확인이라도 하듯이.그 모습을 보자 서현주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두 바보 같으니.’잠시 후, 심사위원석에서 점수가 모두 집계됐고 장미연이 결과표를 들고 단상 위로 올라가 마이크를 잡았다. 루체 피아노 콩쿠르의 예선 결과 발표는 1등부터 시작됐다.예선 1등은 예상대로 유이영이었고 이건 서현주에게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전생에서 유이영은 그녀의 곡을 베껴서 연주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실력이 없는 건 아니었다. 기본기는 확실했지만 스스로 작곡할 재능이 부족했을 뿐이었다.게다가 이번 예선에서 유이영은 가장 자신 있는 클래식을 선택했으니 실수가 있을 리가 없었다.이름이 호명되자 객석과 심사위원석에서 우레 같은 박수가 터졌다. 유이영은 의자에서 일어나 흰색 롱드레스를 살짝 정리했다. 그녀의 우아한 실루엣과 단정한 미소는 무대의 조명 아래서 더욱 돋보였다. 그야말로 군계일학, 사람들 시선을 한몸에 받는 주인공 그 자체였다.유이영은 고개를 숙여 연지훈에게 살짝 미소를 건네더니 드레스를 살짝 집어 들고 우아하게 무대 위로 올랐다.그녀가 장미연에게서 예선 1위 상장을 받아 들자 또 한 번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하지만 서현주는 유이영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녀의 관심은 오직 자신의 이름이 언제 불릴지에 있었다.유이영이 내려오고 그 뒤로 여러 참가자가 차례로 호명돼 상장을 받아 갔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끝까지 그녀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서현주의 미간이 서서히 좁아졌다.이번 루체 콩쿠르에는 100명이 넘는 참가자가 있었다. 그중 예선을 통과해 본선에 진출할 수 있는 건 단 60여 명이다. 그런데 벌써 60등까지 불렀는데도 ‘서현주’는 없었다.서현주의 손바닥에 땀이 배었다.장미연이 63등을 호명할 때까지도 그녀의 이름이 들리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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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0화

“두고 봐, 절대 서현주는 아닐 걸. 만약 맞으면...”“맞으면 어쩔 건데?”옆에서 누군가가 신나서 물었다.“나 본선 진출했는데 만약 서현주가 붙으면 그냥 자진해서 포기할 거야.”“헐, 그 정도로 확신해?”“당연하지.”서현주는 고개를 돌려 그 말을 한 사람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빛은 담담했고 표정에 아무런 감정도 비치지 않았다.그 순간, 장미연이 고개를 들었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객석을 훑었다.“조용히 하세요. 지금 결과를 발표하고 있습니다.”단호하고 묵직한 한마디였다.그녀는 손에 든 명단을 내려놓고 마이크 스탠드를 잡았다.“제가 여러 번 말씀드렸죠. 루체 피아노 콩쿠르는 절대적으로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됩니다. 이번 예선의 결과 역시 오직 실력으로 평가된 것입니다. 누가 누구의 자식인지, 혹은 어떤 배경을 가졌는지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루체 콩쿠르에는 ‘빽’이 없습니다.”“물론 결과에 이의가 있는 분들은 언제든 조직위원회에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위원회와 심사위원들이 직접 확인하고 합리적인 설명을 드릴 겁니다.”서현주는 그 말이 허울뿐인 설명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루체 피아노 콩쿠르가 이렇게 권위 있는 대회로 자리 잡은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부정이나 청탁, 금품 수수 같은 일은 없었고 진짜로 공정, 공평, 공개를 지켜온 대회였다.장미연의 단호하고 자신감 있는 어조에 서현주는 마음속으로 이미 어떤 예감을 느꼈다. 마지막 한 자리는 자신의 것일 거라고.하지만 이름이 좀처럼 나오지 않자 객석은 점점 조용해졌고 모두가 숨을 죽인 채 장미연을 바라봤다.장미연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객석의 맨 뒷줄을 바라봤는데 그곳에 단 한 사람만 앉아 있었다. 어쩌면 우연일 수도 있고, 아니면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배척 때문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맨 뒷줄에 앉은 사람은 서현주 혼자였다.장미연은 미소를 지으며 이어서 발표했다.“예선 64등, 마지막 본선 진출자는...”사람들의 시선이 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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