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잠시 후, 소원희가 이를 악물고 입을 열었다.“왜? 당신 손에 쥔 세력으로 온채아 하나 못 처리할 리 없잖아! 그 여자는 성유준과 허씨 가문의 약점이야. 그 애만 잡으면 두 집안의 숨통을 쥐는 거라고! 나랑 윤혁이의 한을 풀어주는 건 당신 마음 하나면 되는 일이야!”이렇게 사람들 눈치 보며 사는 생활을, 소원희는 단 하루도 더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예전 상가에 있을 때는 성유준에게 실권을 빼앗겼어도, 사람들은 그녀를 보면 고개를 숙이고 조심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누구나 그녀를 보면 피하거나, 심지어 대놓고 비웃고 모욕하기까지 했다.한참이 지나서야 서강진이 대답했다.“지금은 예전과 달라. 조금만 방심하면 DK는커녕, 나 자신도 같이 무너질 수 있어.”하씨 가문과 성유준은 아마 땅을 파서라도 그의 행방을 찾고 있을 것이다.“나는 반드시 신중해야 해. 가장 적절한 시기를 기다려야 한다고.”“적절한 시기가 없는 거겠지...”소원희는 낙담한 목소리로 몰아붙였다.“아니면 당신이 이미 예전 같은 결단력을 잃고, 우유부단해진 거 아니야?”세력만 놓고 보면, 지금 그의 힘은 과거보다 절대 약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했다.그가 20년간 갇혀 있었던 동안, 박시훈이 이어받아 해외에서 세력을 훨씬 더 키워놓았기 때문이다.용병과 사병도 부족함이 없었다.그런데도 그가 출소한 지 꽤 되었지만 여전히 성유준에게 완전히 제압당한 채, 자신과 성윤혁을 위해 상가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이해되지 않았다.“조금만 더 참아.”서강진은 인내심 있게 그녀를 달랬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듯, 눈빛에 계산된 날카로움이 스쳤다.“요즘 온채아 배를 보니까 두세 달 안에는 출산할 것 같더라.”“설마...”소원희의 원망이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아이를 노리는 거야?”그 말을 꺼내는 순간, 그녀도 깨달았다.온채아는 성유준과 허씨 가문의 약점이지만 아이야말로 그들 모두의 약점이었다. 온채아 자신까지 포함해서 말이다.그때가 되면, 그
말은 매우 공손했지만, 온채아는 그의 말투에 숨겨진 날카로움을 단번에 알아차렸다.성유준은 서강진의 말을 단 한 글자도 믿지 않았다.온채아 역시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너무 절묘했다.어젯밤 하씨 가문에서 사건을 철저히 조사해 결론을 낸 직후, 오늘 아침 서강진이 전화를 걸어와 스스로 어제의 단정적인 발언을 뒤집었다.하지만 하도연이든 하지훈이든, 이 일에 있어 타인을 쉽게 끌어들이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많아야 최측근 정도일 뿐.어제 자신이 하씨 가문과 접촉한 사실을 서강진이 알 방법은 없어 보였다.의문을 품은 채 서강진을 바라보자, 그는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성 대표님, 온 선생님, 이건... 정말 죄송합니다. 어쩌면 제 친구가 착각했을 수도 있어요. 오랜 친구라 괜히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행동과 말투 모두 자연스러웠다.온채아는 뭔가를 파악해보려 했지만 단서를 잡을 수 없었다.성유준은 가볍게 웃으며 더는 캐묻지 않고, 대신 온채아를 보며 말했다.“시간도 늦었으니 일단 치료부터 해.”“알았어.”지금 서강진의 상태로는 어제 처방을 그대로 쓸 수 없었다.온채아는 먼저 침 치료로 현재의 증상을 완화한 뒤, 처방을 새로 바꾸었다.그녀는 처방전을 집사에게 건네고 나서, 서강진을 보며 말했다.“앞으로는 제가 직접 방문 치료를 할 시간이 없을 거예요. 강태무 씨에게 연락해서 매주 외래 예약을 잡으세요.”말투는 담담했지만 협의의 여지는 없었다.그렇게 말한 뒤 그녀는 성유준과 함께 돌아섰다.집사가 배웅하려 하자 온채아가 막았다.“괜찮아요. 서 회장님을 부축해서 좀 걷게 하고, 담백한 죽 같은 걸 드시게 하세요.”검은 벤틀리가 마당을 빠져나간 뒤에야, 집사는 서강진을 부축해 일으키며 물었다.“회장님, 저들이 믿은 것 같아요?”그 말을 듣고 서강진은 눈을 가늘게 떴다. 눈 밑에 깔린 서늘함은 숨겨지지 않았다.“어떻게 생각하나? 오늘 성유준 같은 바쁜 사람이 직접 따라올 줄은 몰랐군.”온채아는 상대하기 쉬
‘약혼자’ 그 세 글자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마치 두 사람이 오랫동안 함께해 온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말이다.성유준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 어딘가를 누군가가 살짝 긁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묘하게 간질거려서, 입꼬리도 저절로 올라갔다.집사는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했지만 온채아의 옆에 선 이 남자가 절대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물론입니다. 물론이죠.”말을 마치고 그는 공손하게 손짓하며 앞장섰다.서강진의 침실에 들어서 침대에 누워 있는 그를 보자마자, 온채아는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안색이 어둡고, 분명 어제보다 상태가 좋지 않았다.서강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병세는 확실히 악화하여 있었다.집사가 먼저 말을 꺼냈다.“회장님, 온 선생님 오셨습니다.”서강진은 그제야 천천히 눈을 떴다. 힘없이 온채아를 바라보며 몸을 일으키려 하다가 집사를 한마디 꾸짖었다.“온 선생님이 오셨으면 나를 부르러 올라오지 그랬냐?”온채아는 다가가 그를 눕혔다.“그냥 누워 계세요. 괜히 더 악화할 수 있어요.”“번거롭게 해서 미안해요. 온 선생님.”서강진은 그렇게 말하며 옆에 서 있는 키 큰 남자를 보더니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성... 성 대표님께서도 오셨어요? 이런, 제대로 맞이도 못 하고...”성유준은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저를 아세요?”“물론이죠.”서강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존경을 담아 말했다.“젊은 나이에 큰 권력을 쥔 분인데, 경성에서 모르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성유준은 그를 흘끗 보며 무심하게 답했다.“과찬이세요.”더 대화를 이어갈 생각은 없어 보였다.서강진도 눈치 좋게 상황을 맞추며 온채아에게 손을 내밀었다.“온 선생님, 부탁드립니다.”온채아는 그의 맥을 짚은 지 채 1분도 되지 않아 손을 떼었다.“서 회장님, 화를 많이 내면 몸에 치명적이에요... 지금 상태로는 저도 방법이 없어요.”서강진은 어젯밤 감정의 기복이 상당히 심했던 것으로 보였다.‘분노는 몸을 해친다’는 말은
병원 문을 나서자마자 성이가 차를 몰고 와 있는 것이 보였다.온채아를 보자마자 그는 재빨리 내려 문을 열어주며 웃었다.“아가씨, 이제쯤 나오실 줄 알았어요.”“고마워요. 성이 씨.”온채아는 웃으며 말했다. 마치 학창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그때도 성이는 항상 그녀 하교 시간을 정확히 맞춰 학교 앞까지 차를 가져다주곤 했다.다만 그때는 늘 뒷좌석에 성유준이 앉아 있었고, 지금은 각자 바쁜 삶을 살고 있을 뿐이었다.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는 열린 뒷좌석 문을 보다가 검은 눈동자와 눈이 딱 마주쳤다.잠시 멍해진 그녀에게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너희 병원은 퇴근하면 벌서게 해?”정말 말 한마디가 독했다.분명 일부러 데리러 온 거면서.온채아는 따지지 않고 웃으며 차에 올라탔다.“왜 왔어?”성유준은 그녀가 듣고 싶은 걸 아는 듯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데리러 왔지.”온채아는 만족스러웠다.“나 서 회장님 집에 먼저 가야 해.”그녀는 솔직하게 말했다.“아침에 전화 왔는데 몸이 안 좋대. 갑자기 병세가 악화한 건 아닌지 걱정돼서.”어제 치료를 했더라도, 환자의 상태는 언제든 나빠질 수 있었다.성유준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가 같이 갈게.”그 말을 듣자 온채아는 한결 마음이 놓였다.사실 성이가 함께 있어도 크게 걱정할 일은 없었지만, 옆에 이 남자가 있으면 이상하게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다만 그녀는 성유준이 이미 서강진을 의심하고 있는 만큼, 자신이 그와 접촉하는 걸 막을 거로 생각했었다.“안 말려?”“왜 말려?”성유준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실제로 시험해 보기 전에는 제대로 알 수 없잖아.”그는 이 사람이 단순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다.서강진의 신분이 아무리 명확하고 깨끗해 보여도 말이다.온채아는 그의 우려를 이해하며 말했다.“그럼 사람 보는 눈 밝은 성 대표가 직접 한번 만나봐.”사람을 판단하는 데는 상업계에서 오래 구른 성유준이 자신보다 훨씬 낫다는 걸 인정하고 있었다.서강진의 집에 도착하자, 여
온채아는 잠시 멈칫했다가 천천히 진료실로 걸어가며 물었다.“어디가 불편하세요?”어제 막 침 치료도 했고 처방도 바꿨기 때문에 문제가 생길 리는 없었다.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숨이 가쁘고 힘이 없어 보였다.“그러네요...”서강진은 숨을 고르며 말했다.“오늘 아침에 일어나니까 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가 힘들어요.”온채아는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알겠습니다. 일단 옆으로 누워 계세요. 진료 끝나는 대로 바로 갈게요. 그 전에 증상이 더 심해지면 구급차 불러요.”어제 직접 맥을 짚어봤기 때문에 그의 상태는 알고 있었다.호흡 곤란은 병세가 악화하면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었다.하지만 어제 치료를 했는데 오늘 바로 이런 상태가 된 건 걱정스러웠다.서강진은 안도한 듯 말했다.“그래요.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전화를 끊은 온채아는 마음을 가다듬고 진료를 시작했다.정오가 가까워져 마지막 환자를 보고 나자, 강태무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온채아도 웃으며 물었다.“무슨 좋은 일 있어요? 기분 좋아 보이네요.”“이거 한번 봐.”강태무는 자신감 넘치게 말하며 자료를 내밀었다.온채아는 그것을 받아들고 확인한 뒤, 더 크게 웃었다.“실험 결과가 이렇게 빨리 나왔어요?”신형 특효약의 실험 보고서였다.그녀는 최소 일주일은 더 걸릴 거로 생각했었다.“응.”강태무는 맞은편에 앉으며 부드럽게 말했다.“네가 급해 하는 거 알아서 요즘 좀 야근했어.”온채아는 살짝 한숨 섞인 웃음을 지었다.“정말 ‘좀’이기만 했을까요?”직접 연구를 해본 경험이 있기에, 그 말이 절대 가볍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강태무는 화제를 돌렸다.“보고서부터 봐.”“네.”온채아는 서둘러 보고서를 펼쳐 읽었다.이번 결과는 그녀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약효가 조금 부족해요.”온채아는 차분하게 특정 약재를 가리키며 말했다.“이걸 아출(莪术)로 바꾸고, 용량을 조금 조절하면 우리가 원하는 수준까지 갈 것 같아요.”“알겠어. 더 수정할
한바탕 격정적인 일이 끝났을 때, 온채아는 막 물에서 건져 올린 사람처럼 온몸이 흠뻑 젖어 땀에 젖은 채 베개에 엎드려 있었다. 더는 남아 있는 힘이 한 점도 없었다.성유준은 물티슈를 꺼내 그녀를 꼼꼼하게 닦아주며 정리해 주었다.“씻으러 갈래?”“안 갈래.”온채아는 재빨리 거절했다.요즘은 끝날 때마다 성유준이 그녀를 욕실로 안고 가서 군소리 없이 씻겨주긴 했지만, 오늘은 가고 싶지 않았다.이 남자는 믿을 수가 없었다. 씻다가도 욕조에 그녀를 눕혀 다시 한번 시작해버리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지금 이 순간 그녀는 그저 잠만 자고 싶었다.원래도 눈매가 요염한데, 지금은 생리적인 눈물까지 눈가에 맺혀 더욱 사람을 홀릴 듯했다.성유준은 목울대를 한 번 굴리며, 아랫배로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욕망을 억눌렀다. 그리고 온채아를 안아 소파에 내려놓고, 난장판이 된 침구를 새로 갈아준 뒤 다시 그녀를 안아 침대로 데려왔다.“그럼 자.”남자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난 씻고 올게.”온채아는 눈꺼풀이 떠지지도 않아 대충 대답했다.“응... 얼른 가...”다음 날.항상 자연스럽게 눈이 떠지는 온채아는 두 번째 알람이 울리고 나서야 겨우 느릿하게 일어났다.어젯밤 성유준이 그녀가 출근해야 한다는 걸 감안해 시간을 조절하긴 했지만, 강도까지 줄인 건 아니었다.그래서 너무 피곤했다.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는 순간, 문이 열리고 성유준이 들어왔다. 검은색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그는 매우 상쾌하고, 한껏 만족한 표정이었다.“잘 잤어?”온채아는 일부러 그러는 걸 알고 그를 흘겨보았다.“잘 잤는데, 잘 못 잤어.”말 속의 ‘잤다’라는 단어에 힘을 살짝 주었다.성유준은 눈썹을 치켜들며 그녀 팔에 걸린 캐시미어 코트를 받아 들고 함께 계단을 내려가면서, 그녀의 귀에 가까이 다가가 태연하게 물었다.“어떤 건 잘 잤고, 어떤 건 못 잤는데?”아주 진지한 표정이었다.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슨 기밀 프로젝트라도 얘기하는 줄 알 정도였다
마음속의 울분이 한순간에 원망으로 바뀌었다.‘저 싸가지 없는 X만 아니었어도 진작에 율천이랑 결혼했을 텐데.’이를 갈고 있는 심서정과 달리 애초에 이런 행사에 관심이 없었던 온채아는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그래도 제법 여유가 있었고 누군가 다가와서 인사라면 미소를 지으며 몇 마디 응대했다.아무도 다가오지 않을 땐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경매 품목을 훑어봤다.얼마 지나지 않아 경매사가 단상에 올라왔고 경매가 정식으로 시작되었다.첫 번째 경매 품목은 청나라 시대의 고서화로 수집 가치가 높아 시작가는 20억이었다.이런 물건은
온채아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고는 말도 없이 돌아서서 걸어갔다.그런데 길게 늘어진 드레스가 계속 발에 걸려 너무 불편했다. 온채아는 종아리를 뒤로 툭 차며 몸을 숙여 치맛자락을 집어 들고 성큼성큼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거슬렸다. 민은하가 손에 꼭 쥐고 있던 이혼 증명서만큼 이 드레스가 너무 거슬렸다.온채아는 연회장에 들어서자마자 흠칫 놀라며 걸음을 멈췄다.알고 보니 멀찍이 떨어져 있던 성윤혁이 눈을 깜빡이며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고 온채아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에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경매장에 들어갔다.스태프가 그녀를 V
“내가 버린 쓰레기를 주워가고 싶어서 안달인 것 같네요.”온채아는 담담하게 말하고는 심서정이 가져온 간식들을 한 번 쓱 훑어본 뒤 간호사들에게 말했다.“음식 낭비하면 벌받아요. 괜찮으니까 드시고 싶은 분들은 편하게 드세요.”그 말을 끝으로 온채아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진료실로 돌아와 휴대폰을 확인하자 두 시간 전에 임지연이 보낸 카톡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채아야, 점심에 시간 돼? 같이 밥 먹을까?]시계를 확인해 보니 어느덧 오후 1시를 넘긴 시각이었다.온채아는 사실대로 답장을 보냈다.[방금
너무 낯설어서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그는 온채아를 꼼짝 않고 바라보며 만약 그녀가 인정한다면 차라리 목을 졸라 죽여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그러나 온채아는 고개를 떨군 채 되물었다.“당신은 아니었나요?”서로를 이용했을 뿐, 더 고결한 사람은 없었다.주율천은 그녀의 턱을 움켜쥐고 억지로 자신을 바라보게 하며 물었다.“다시 한번 물을게. 신중하게 생각하고 대답해. 이 결혼, 처음부터 나를 이용해 온 거 맞아?”턱뼈가 탈골될 듯 꽉 쥐어짜는 바람에 온채아의 눈가가 고통으로 붉게 물들었고 이성도 조금씩 사라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