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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내 남편의 아내: Chapter 31 - Chapter 40

100 Chapters

제31화

심기찬이 웃으며 대답했다.“그건 걱정 마. 절대 믿을 만한 사람이야.”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하온아, 아빠는 너 정략 결혼하라고 강요하는 게 아니야. 단지 네가 강선우에게서 하루빨리 벗어나길 바랄 뿐이란다. 돌아오는 대로 결혼 상대랑 잘 지내봐. 만약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없던 일로 하면 돼.”“알겠어요, 아빠.”심하온이 웃으며 말했다.“그런데... 아직도 안 알려주시네요. 그 사람 대체 누군지?”“하하, 깜빡할 뻔했네. 그 사람은...”심기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옆에서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먼저 끊어야겠다. 회사에 일이 좀 생겨서. 들어가.”심기찬은 그렇게 말하고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이에 심하온은 속절없이 웃었다.‘됐다. 결혼 상대는 돌아가서 천천히 알아보면 되지 뭐.’점점 어두워지는 휴대폰 화면을 보며 그녀는 잠시 멍해졌다.아빠와 이렇게 오랫동안 진솔하게 대화한 것이 아주 오랜만인 듯했다.예전의 자신이 정말 한심하게 느껴졌다.샤워하고 침대에 누웠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겨우 졸음이 쏟아져 잠이 들었지만 한밤중에 또 갑자기 놀라서 깨어났다.그녀는 또다시 2년 전 교통사고의 악몽을 꾸었다.일어나 앉아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흥건했다.이 악몽 때문에 더는 편하게 잠들 수 없었다.심하온은 결국 옷을 갈아입고 침실을 나왔다.산책이라도 해야 할 듯싶었다.이곳은 고급 주택가라 보안이 철저해서 한밤중에 밖에서 산책해도 위험하지 않을 것이다.거실은 이미 칠흑 같은 어둠이었지만 발코니에 불이 켜져 있었다.이 늦은 시각에 누가 저기 있을까?“엄마, 한밤중에 무슨 얘기 하시려고 여기까지 불렀어요?”발코니에서 강다인이 졸음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이제 막 자려던 참인데...”“넌 대체 얼마나 더 날 속 썩일 셈이야?”이건 고현주의 목소리였다.알고 보니 모녀가 한밤중에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심하온은 떠나려다가 이어진 고현주의 말에서 대뜸 걸음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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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됐네요, 엄마. 저희 일엔 간섭하지 마세요.”“내가 어떻게 간섭을 안 하니? 그리고 너 말이야, 2년 전에 그런 짓은 다시는 하면 안 돼. 너무 위험해! 심하온이 죽는 건 그렇다 쳐도 네가 감옥 가면 나더러 돌아가신 너희 친부모님을 어떻게 뵈라는 거야?”심하온은 말없이 웃었다.며칠 사이에 알게 된 진실이 너무 많고, 겪은 일이 너무 많아서인지 그녀의 마음속에는 더 이상 큰 파장이 일지 않았다.그녀는 단지 고현주가 한 말을 듣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더 이상 바보처럼 고현주를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아도 되니까.심하온은 곧바로 방으로 돌아가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사실 그녀가 가져갈 물건은 많지 않았다. 강씨 가문에서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기에 갈아입을 옷 몇 벌과 약간의 생활용품만 작은 여행 가방에 챙겼다.그녀가 작은 여행 가방을 끌고 방에서 나왔을 때, 마침 고현주와 강다인이 대화를 마치고 발코니에서 돌아오고 있었다.“누구니?”고현주는 거실의 실루엣을 보고 깜짝 놀라 재빨리 벽 옆의 스위치를 더듬으며 불을 켰다.거실이 순식간에 환해졌고 심하온은 무의식적으로 눈을 찌푸렸다.“하온아.”고현주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늦었는데 왜 아직도... 어디 가게?”그녀는 의아한 표정으로 심하온이 든 여행 가방을 바라보았다.심하온은 그녀를 흘끗 보다가 무시하고 곧장 현관으로 향했다.“야, 심하온!”강다인이 짜증을 내며 앞으로 걸어가 심하온을 막아섰다.“엄마가 물어보시잖아. 못 들었어? 어른한테 대체 무슨 태도야!”“비켜.”심하온이 차갑게 말했다.“다인아. 새언니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고현주가 재빨리 나서서 상황을 수습하려 했다.“하온이 출장 가는 거야? 왜 이렇게 갑자기 떠난대? 내일 아침에 출발하렴.”심하온이 웃으며 말했다.“고 여사님, 제가 깜빡하고 말씀 못 드렸네요. 저 선우 씨랑 헤어졌어요.”고현주는 숨을 깊게 들이켰다.“뭐... 뭐라고? 헤어져? 언제부터? 왜 헤어진 건데?”너무 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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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병원 복도에서 고현주는 강다인을 끊임없이 나무랐다.“넌 왜 아직도 이렇게 충동적이니? 하온이가 조금만 더 크게 다쳤어도 선우 더 이상 커버 못 해. 네 뒷수습 못 해준다고, 알아듣겠어?”강다인은 불만으로 가득 찬 표정이었다.“난 그냥 걔 거만한 태도가 보기 싫었어요. 엄마랑 선우 오빠가 그렇게 말렸는데도 기어코 떠나겠다고 하잖아요. 뭐 잘났다고, 쯧쯧! 심하온 진짜 선우 오빠를 떠날까 봐요? 천만에!”“그런 거라면 너희가 요즘 도가 지나쳤다는 것밖에 설명이 안 돼. 오죽하면 애가 집을 나가겠니?”고현주는 그녀의 머리를 쿡 찔렀다.다만 그녀도 마음속으론 심하온이 정말 강선우를 떠날 용기가 없다고 여겼다.그토록 강선우를 사랑하는데, 이 남자를 위해서, 대원 그룹을 위해서 많은 걸 희생해왔는데 어떻게 선뜻 떠날 수 있을까? 그저 모양새만 내는 거겠지.고현주는 병실 안의 심하온을 바라보았다. 침대에 반쯤 누워 있는 그녀를 곁에서 지키는 강선우, 아들 녀석이 잘 달래준다면 별문제가 없을 듯싶었다.병실 안에서 강선우는 침대맡에 기댄 심하온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심하온이 피했다.“아직도 아파?”강선우는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하온아, 다 내 잘못이야. 그때 널 잡았어야 했는데. 다행히 의사 선생님이 가벼운 뇌진탕이라고 했지만 며칠 입원해서 경과를 지켜보는 게 좋겠어...”“이만 나가줄래요?”심하온의 얼굴에 짜증이 역력했다.“그건 안 되지. 여기서 널 돌볼 거야.”“강선우 씨!”그녀가 쓴웃음을 지었다.“만약 강다인의 ‘죄를 대신 갚고’ 싶은 거라면 나 그딴 거 필요 없어요.”속마음을 들킨 강선우는 난감한 기색을 드러냈다.“다인이는 단지 일시적인 충동에 실수했을 뿐이야. 일부러 널 다치게 하려던 건 아니었어.”심하온은 아예 그의 말을 무시하고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보았다.그녀가 부른 사람이 왜 아직도 안 오는 걸까?병원으로 오는 길에 심하온은 아빠의 부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그분은 심기찬을 20년 이상 모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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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정윤재는 다른 사람들을 죄다 무시한 채 오로지 심하온의 창백한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는 긴 다리를 뻗으며 몇 걸음 만에 병상 곁으로 다가갔다.“하온 씨 사고 났다고 김 대표님께 듣고 왔어요. 좀 괜찮아요?”그가 말하는 ‘김 대표님’이 바로 심하온이 연락했던 김호철 아저씨였다.그녀는 순간 어리둥절해졌다.김호철이 왜 정윤재에게 그녀에 관한 일을 얘기한 걸까?혹시 루머 뉴스를 보고 둘 사이를 오해한 걸까?“좀 어때요?”정윤재가 물었다.“이제...”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강선우가 일어나 그녀와 정윤재 사이를 막아섰다.“정 대표님,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그는 억지 미소를 지었다.“제 아내는 괜찮아요.”정윤재는 그런 강선우를 차갑게 째려봤다. 마치 눈에 거슬리는 장식품을 보는 것처럼.“아내요?”그가 차갑게 물었다.“그럼요. 대표님 아직 모르시나 보네요? 하온이는 제 비서일 뿐만 아니라...”“강선우 씨!”심하온이 버럭 화냈다.“말했잖아요, 우리 이미 헤어졌다고!”그녀는 강선우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아내’라고 뻔뻔하게 말하는 것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이.“하온아, 왜 또 그래?”강선우는 답답한 듯 미간을 문질렀다.“미안해요, 대표님. 요즘 하온이랑 약간의 다툼이 있어서...”“강 대표님.”정윤재가 그의 말을 잘랐다.“저는 오늘 하온 씨 보러 왔어요. 강 대표가 아니라.”“하지만 저는 하온의 남편인데요.”강선우가 도발적으로 웃었다.“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 대표님은 못 들어봤어요?”그는 마침내 깨달았다. 정윤재는 분명 심하온에게 관심이 있었다.‘빌어먹을! 감히 내 여자를 넘봐?’“선우 씨, 제발 헛소리 좀 하지 말아요.”심하온은 너무 화나서 몸을 일으키고 강선우를 밀치려 했다. 하지만 동작이 너무 급하다 보니 어지럼증이 순간적으로 밀려왔다. 그녀는 뒤로 스르륵 넘어졌다.이를 본 정윤재는 두 눈을 부릅뜨고 강선우를 밀치며 팔을 뻗어 심하온을 잡아당겼다.“괜찮아요?”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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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김호철은 눈 앞에 펼쳐진 다소 혼란스러운 상황을 신경 쓸 겨를 없이 다급하게 심하온의 건강 상태부터 물었다.“어디 다쳤어? 의사는 뭐래?”아무래도 그녀가 커가는 모습을 지켜봐 온 사람이기에 갑자기 다쳐서 병원에 실려 왔다고 하니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뒤통수가 찬장에 부딪혔어요. 의사 선생님 말로는 가벼운 뇌진탕이고 심각한 건 아니래요.”심하온이 말했다.그제야 김호철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괜찮다니 다행이야.”그러더니 옆에 있던 정윤재와 강선우를 돌아보았다.그의 눈가에 의아한 기색이 스쳤지만 워낙 똑똑한 사람인지라 금세 상황을 대략적으로 파악했다.정윤재는 심하온을 부축해서 자리에 앉혔다.“그렇게 갑자기 일어나면 안 돼요.”“네... 알겠어요.”심하온이 시선을 내렸다.“고마워요, 정 대표님.”정윤재는 똑바로 서서 차가운 눈길로 강선우를 쏘아보았다.“하온 씨가 왜 가벼운 뇌진탕에 걸린 거죠?”강선우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는 곧 침착하게 말했다.“그냥 사고였어요. 하온이가 실수로 넘어진 겁니다.”“허!”심하온이 차갑게 웃었다.“선우 씨는 거짓말할 때 양심의 가책도 안 느껴요?”“하온아!”강선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 얌전히 협조해줄 것이지 왜 이렇게 점점 더 버릇없이 구는 걸까?“왜 그딴 식으로 하온이를 불러요?”김호철도 얼굴을 굳혔다.“거짓말이라도 시키게요?”“그쪽은 또 누군데요?”강선우가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김호철은 올해 금방 운정시에 왔다. 심씨 가문의 서강 그룹 지사와 대원 그룹은 별다른 교류가 없었기에 강선우도 그를 본 적이 없다.“하온이는 내 조카나 다름없어요!”김호철은 어른의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우리 하온이가 도대체 왜 가벼운 뇌진탕에 걸린 거죠?”심하온과 심 회장님이 한 남자 때문에 사이가 나빠졌다는 얘기를 전에 어렴풋이 들은 적이 있는데 짐작건대 눈앞의 인물이 바로 그 남자일 것이다.하지만 그녀가 이미 정윤재와 정략 결혼하기로 결심했다면 이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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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하지만 강다인이 전과 기록이라도 남으면 소문이 퍼졌을 때 타격을 입을 테고 사람들은 강씨 가문을 비웃을 것이다.“하온아, 우리 한 가족이잖아. 서로 좋게좋게 대화로 풀면 되지. 지금 바로 다인이더러 사과하라고 할게...”“누가 당신들이랑 한 가족이에요?”심하온이 그녀를 흘끗 보며 차갑게 말했다.“하온아...”“심하온!”강선우가 분노하며 그녀를 노려보았다.“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그는 깊은숨을 들이쉬었다.“내 인내심도 한계가 있어.”심하온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녀가 말하려고 할 때, 김호철이 대신 나섰다.“이봐, 젊은이, 지금 장난하는 거야? 당신 가족들이 일부러 우리 하온이를 밀쳐서 뇌진탕까지 걸리게 해놓고 이제 와서 뭐? 인내심에 한계가 있어? 네가 뭘 참았다고 한계는 한계야?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오히려 그쪽들이야말로 피해자인 줄 알겠어! 말해두지만 이 일은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야!”“아저씨, 쟤랑 말싸움할 필요 없어요.”심하온의 얼굴에 피곤함이 역력했다.“너무 피곤하네요. 좀 자야겠어요.”“그래.”김호철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고는 강선우를 노려보았다.“못 들었어? 당장 여기서 나가!”강선우는 심하온을 뚫어지라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때, 정윤재가 옆으로 두 걸음 옮기며 커다란 그림자로 시선을 완전히 차단했다.“나가라고.”더할 나위 없이 단호한 말투에 짙은 압박감이 실려 있었다.강선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그는 정윤재와 눈을 마주쳤지만 말은 심하온에게 향했다.“하온아, 나 지금 진짜 화났어. 너 꼭 후회하게 될 거야!”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려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그가 나가자 고현주도 더 이상 머물 수 없어서 따라나섰다.그들이 떠난 후, 심하온은 병실 안의 공기마저 훨씬 상쾌해진 것 같았다.“정 대표님, 아저씨, 이 늦은 시간에 불러내서 죄송해요.”“얘는 뭘 새삼스럽게.”김호철이 자애롭게 웃으며 말했다.“정 대표도 이제 내 사람이니 너무 부담 갖지 마.”그는 무려 심하온의 미래 남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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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심하온이 말을 잇지 않자 김호철은 이 일에 더 이상 깊이 관여하지 않았다.“이틀 정도 더 입원해서 경과를 지켜보렴. 걱정 말거라. 아저씨가 병간호해줄 사람 보낼게.”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윤재가 밖에서 들어왔다.“강다인 고소 건은 이미 사람 시켜서 진행하도록 했어요.”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하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거예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며칠 구류만 당할 테니까.”아무래도 심하온의 상태가 심각하지 않아서인 듯싶었다.강씨 가문이 또 어떤 수단을 쓴다면 아마 구류도 면제될 것이다.하지만... 정윤재는 절대 그들 뜻대로 되게 내버려 둘 리가 없다.“괜찮아요.”심하온이 웃었다.그녀는 당연히 이번에는 강다인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녀가 원하는 것은 이 사건이 강다인에게 범죄 기록으로 남는 것이다.이것으로 강다인이 그녀에게 깊은 악의를 품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나중에 심하온이 교통사고의 진실을 밝힐 때도 아마 도움이 될지 모른다.정윤재는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여자 간병인 한 명 찾았어요. 요 이틀은 입원해서 경과를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간병인이 하온 씨를 돌봐줄 겁니다.”심하온은 입이 쩍 벌어졌다.정윤재와 아저씨가 똑같은 말을 하다니?사실 그녀는 별다른 이상이 없어서 내일 퇴원해도 괜찮았다. 스스로 충분히 돌볼 수 있으니까.하지만 이 두 사람의 관심과 배려는 그녀의 마음속에 따뜻한 전류처럼 흘러들었다.김호철은 신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정 대표가 알아서 해준다니 난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겠네.”심하온이 말하기도 전에 그는 하품해댔다.“이제 나이가 들어서인지 밤을 새우기 힘들어 아주. 하온아, 나 먼저 근처 호텔에서 쉬다가 내일 다시 보러 올게.”“네, 아저씨. 조심히 가세요.”김호철이 떠난 후, 병실에는 심하온과 정윤재, 단 두 사람만 남았다.아마도 두 사람이 함께 큰일을 겪어서인지 심하온은 별로 어색하지 않았다. 다만 이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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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병원에서 나온 정윤재는 차에 올라 심하온이 방금 한 말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내가 좋은 사람 같다고? 누구한테나 세심하게 배려해줄까 봐?’“바보.”...강씨 가문의 세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 안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엄마, 선우 오빠, 심하온이 정말 나 고소한대요?”강다인이 울상이 되어 물었다.“걔 진짜 미친 거 아니에요!”“그래. 이번엔 하온이가 너무 철없게 굴었어. 사소한 일로 왜 그렇게 심각하게 말하는 건지 참...”고현주가 한숨을 쉬었다.“게다가 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선우 체면을 조금이라도 고려하지 않았어.”강선우는 안 그래도 표정이 일그러졌는데 이 말을 듣자 안색이 더 어두워지고 차 안이 마냥 갑갑하게 느껴졌다.그는 손을 뻗어 창문을 내렸다. 밤바람이 들어오자 그제야 숨통이 트였다.“선우야, 하온이 대체 왜 그러니? 난 왠지 걔가 예전보다 많이 변한 것 같아... 예전엔 온통 너만 감싸고 돌았는데 지금은 왜 그런 태도야? 그리고 그 정 대표는 또 뭐야? 하온이가 어떻게 그 사람을 알게 된 건데?”“몰라요!”강선우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오빠 설마 질투해요? 지금이 질투할 때냐고요?”강다인이 울먹이며 말했다.“하온이가 진짜 날 고소하면 어떡해요?”강선우는 별안간 짜증이 밀려왔다.“단지 가벼운 부상일 뿐이야. 너도 기껏해야 며칠 구류하면 돼...”말을 마치기도 전에 강다인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에 강선우는 또다시 마음이 약해졌다.“걱정 마. 내가 방법을 생각해볼게.”“넌 아까 나오지 말았어야 했어.”고현주가 걱정스럽게 말했다.“거기서 하온이랑 함께 있어 줘야지.”“뭘 있어 줘요? 걔 태도 못 봤어요? 내가 비겁하게 들러붙어야 하냐고요?”강선우가 차갑게 쏘아붙였다.“요즘 내가 너무 잘해줬나 봐요. 애가 점점 버릇없이 군다니까요.”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방금 한 말이 일리 있어 보였다.요즘 툭하면 심하온을 달래주고 그녀의 비위를 맞춰주다 보니 점점 더 머리 꼭대기로 기어오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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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다음 날 오후, 몇몇 동료가 심하온을 보러 병원에 왔다.이 동료들은 심하온과 함께 프로젝트를 했던 팀원들이었다. 심하온이 프로젝트를 위해 얼마나 많은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기에 다들 마음속으로 그녀를 매우 존경했다.게다가 예전에 강다인이 프로젝트를 가로챌 뻔했지만 그들은 굳건한 입장을 표명하지 못했기에 내심 죄책감을 느꼈다. 이번에 심하온을 보러 오면서 다들 두 손 가득 선물을 들고 있었다.“심 비서님, 푹 쉬세요. 프로젝트는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다 처리할 수 있어요.”“만약 정말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긴다면 그때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이번 기간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이제 푹 쉬셔야 해요.”심하온이 웃으며 말했다.“와주셔서 고마워요.”“당연히 보러 와야죠. 그런데... 왜 갑자기 뇌진탕으로 입원하신 거예요? 설마...”몇몇 동료들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그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설마 다인 씨가 고의로 밀어서 이렇게 다치신 건가요?”“어떻게 아셨어요?”심하온이 놀라 물었다.비록 그녀가 강다인을 위해 회사 사람들에게 비밀로 할 생각은 없었지만 여태껏 그 누구에게도 이 일을 말한 적이 없다.“지금 회사에 소문이 파다해요! 다인 씨가 심 비서님을 질투해서 일부러 다치게 했다고요. 그런데 누가 제일 먼저 소문을 퍼뜨린 건지는 모르겠어요.”“역시 다인 씨가 한 짓이었군요? 너무 했어요 정말...”“다인 씨 오늘 회사에도 안 나왔어요.”“어쩐지 오늘 저희가 대표님께 반 차 내고 병원 가서 심 비서님을 뵙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바로 허락해주시더라니. 예전에 언제 이렇게 쉽게 허락해주셨어요?”“아무래도 대표님도 심 비서님께 죄책감을 느끼시는 것 같아요.”심하온이 쓴웃음을 지었다.강선우가 죄책감을 느낄까?아마 그녀가 너무 과하게 난동을 부린다고 생각하겠지.동료들이 한참 동안 심하온과 시끌벅적하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녀의 휴식을 방해할까 봐 조심스럽게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났다. 이어서 간병인이 들어와 그들이 가져온 선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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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사실 그때 그 호칭은 다들 농담 삼아 부르는 정도였고 심하온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그녀가 진정으로 신경 쓰는 것은 더 이상 춤을 출 수 없다는 현실이었다...영상의 댓글 창은 이미 수많은 레인보우 이모티콘으로 쇄도하고 있었다.[너무 아름다워! 어떻게 저렇게 황홀하게 출 수 있지!][코어 대박! 몸매 좀 봐. 내가 10년 더 연습하면 저 정도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까?][엄마가 왜 무릎 꿇고 동영상을 보냐고 물으셨어.][역시 새로운 댄싱퀸답네!][잠깐, 댄싱퀸? 내가 기억하기로 심하온이 댄싱퀸이었는데.][맞아, 심하온! 나도 기억해! 역시나 춤을 엄청 잘 췄지!][칫, 심하온이 춤 안 춘 지 얼마나 됐는데? 이제 댄싱퀸은 강다인이야!][그러고 보니 심하온 춤 안 춘 지 꽤 된 것 같네? 그해 국제 무용 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춘 춤이 밤의 멜로디였었나?][맞아, 나도 기억나. 솔직히 말해서 영상 속 이분도 잘 추지만 예전의 심하온과 비교하면 여전히 좀...][너 심하온에게 필터 쓰였지? 나는 강다인이 훨씬 나은데?][절름발이는 순순히 무용계를 떠나야 해.][절름발이? 심하온 절름발이였어?]병원의 소독약 냄새가 갑자기 코를 찔렀다. 심하온은 화면 속의 밝은 미소를 띤 얼굴을 응시했다. 2년 전 비 오는 밤의 자동차 소리가 다시 귓가에 맴돌았다.오른쪽 다리가 또다시 은근히 아파왔다.심하온은 더 이상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춤을 출 수가 없다. 하지만 그녀를 이렇게 만든 주범은 뻔뻔스럽게 [밤의 멜로디]를 추면서 SNS에까지 올리고 네티즌들의 찬사를 즐기고 있다.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원망과 중오가 차올랐다. 심하온은 저도 몰래 손이 파르르 떨렸다.‘강다인, 넌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해...’이때 갑자기 따뜻한 큰 손이 그녀의 손을 감쌌다.“이런 건 보지 마.”아주 부드러운 목소리였다...심하온은 서서히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보니 정윤재가 눈앞에 서 있었다.그의 오른쪽 팔에는 커다란 백합꽃다발이 안겨 있었고 왼손은 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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