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애걸복걸! 도련님의 고백: Chapter 141 - Chapter 150

162 Chapters

제141화 모녀가 아주 똑같아

하시윤은 이런 자리에서 서지혁 이야기가 나오는 게 달갑지 않았다.그래서 황영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웃으며 넘겼다.그녀는 휴대폰을 들어 메시지를 확인했다.드레스 초안 도면이라고 해도 알아볼 수가 있어야지.하시윤은 대충 확인만 하고 답장을 보냈다.[알아서 해.]서지혁에게서 추가 메시지는 더 오지 않았다.하시윤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황영준이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그녀를 몇 초간 바라보다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하시윤은 못 본 척하고 고개를 숙여 식사에만 집중했다.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주변에 같은 부서 직원들이 있어서 금세 영업 실적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했다.하시윤은 그런 대화에 끼어들 생각이 없었다. 그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식사를 마치고 젓가락을 내려놓을 즈음, 황영준은 이미 식사를 끝내고 있었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다 먹었으면 가요. 이런 데서 굳이 예의 차릴 필요 없잖아요.”그는 식판도 치우지 않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누군가 치워주는 게 익숙한 사람이라는 게 눈에 보였다.하시윤은 자신의 식판을 정리 구역에 두고 식당을 나섰다.로비에 도착하자 또 황영준이 보였다.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문 앞에서 하시윤을 바라보고 있었다.할 말이 있는 표정이었다.하시윤이 다가갔다.“할 말 있으신가요?”황영준은 흠칫하더니 입을 열었다.“연 과장님한테 얘기 들었어요? 우리가 새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심현 그룹이 들어간다는 거요.”“과장님한테는 들은 게 없어요.”하시윤이 말했다.“그런데 최 주임님한테서는 들었어요.”황영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앞으로 심연정 씨가 우리 회사에 올 수도 있어요. 영업 부서 사무직이라 손님 접대까지는 안 하겠지만 마주칠 일은 있을 거니 미리 알아두세요.”그는 이미 하시윤과 서지혁, 그리고 심연정 사이의 관계를 알고 있는 듯했다.하시윤이 물었다.“지혁 씨가 말한 거예요? 저희 일에 대해?”“그럴 필요도 없죠.”황영준이 웃으며 말했다.“하시윤 씨가 서씨 가문에 들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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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2화 왜 안 따라갔어요?

밤이 깊어지자 하시윤은 방으로 돌아갔다.서지혁은 따라오지 않았다.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새벽의 고요를 깨뜨리듯 휴대폰이 진동했다.하시윤은 반쯤 잠든 채로 손을 더듬어 전화를 받았다.누군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누구세요?”곧바로 서지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위로 좀 올라와 봐.”그 말 한마디에 하시윤은 잠이 확 달아났다.서지혁이 이 시간에 보통 일로 전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니 말이다.그녀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을 올랐다.이미 잠에서 깬 아이는 서지혁의 품에 꼭 안겨 있었다.침대 위의 이불을 보니 서지혁이 오늘 밤 아이와 같이 자려고 한 듯했다.정우는 얌전히 품에 안겼지만 얼굴은 금세 울음이 터질 것처럼 일그러져 있었다.하시윤이 다가오더니 급히 물었다.“정우야, 어디 아파?”서지혁이 고개를 숙여 아이를 바라봤다.“정우야, 아까 아빠한테 했던 말을 다시 엄마한테도 해볼래?”정우는 잠시 하시윤을 올려다보더니 작게 말했다.“외할머니가 오늘 왔어요. 아빠랑 연정 이모가 진짜 가족이고 엄마는 나쁜 사람이라고 했어요. 엄마는 나를 구하려고 온 게 아니라 아빠랑 할머니, 할아버지가 돈을 준다고 해서 온 거라고 했어요.”정우는 입술을 삐죽 내밀더니 말을 덧붙였다.“그리고 엄마가 원래 나를 데리고 있었는데 돈 때문에 아빠한테 팔아넘겼대요.”“아니야.”하시윤은 아이를 끌어안았다.“전부 사실 아니야. 엄마는 정우를 팔아넘긴 적이 없어. 돈 때문에 찾아온 것도 아니야.”정우는 그녀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잠시 후 조용히 팔을 뻗었다.“저도 알아요. 외할머니가 거짓말한 거예요. 그래서 화났고 너무 속상했어요.”하시윤은 아이를 꽉 껴안고는 그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췄다. 그런 얘기를 들어야 하는 아이가 너무나도 안쓰러웠다.“엄마는 정우를 엄청 사랑해.”서지혁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내일 이야기해. 내일에 내가 직접 처리할게.”하시윤은 그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사실 정경란의 입장에서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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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3화 환경을 바꿔 보다

말을 끝내 삼킬 수밖에 없었던 한효진은 다시 의자에 앉았다. 얼굴을 굳힌 채 입술만 달싹였다.유민숙이 다가가 그녀의 등을 다독였지만 한효진은 손을 저었다.“됐어.”하시윤은 더 말을 보태지 않았다.그녀는 정원을 지나 본채 안으로 곧장 들어갔다.서인준은 집에 없는지 주차장에서 그의 차가 보이지 않았다.하시윤은 곧장 가정부에게 물었다.“어디 가셨는지는 저도 몰라요. 조금 전에 급히 나가셨거든요. 한 삼십 분쯤 됐어요. 회사 일인 것 같아요.”하시윤은 고개를 끄덕이고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서정우는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깨지 않아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고 있었다. 곧 일어날 것 같았다.그녀는 조심스럽게 침대 옆에 앉았다.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휴대폰을 꺼내 서지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검사 결과를 간단히 전달했지만 답장은 없었다.하시윤은 별로 개의치 않은 듯 휴대폰을 내려두고 아이의 등을 천천히 두드렸다....서인준은 가정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심씨 가문 본가로 돌진했다.마침 서지혁이 거실에서 나오고 있어 두 사람은 정면으로 마주쳤다.서인준을 봤는데 그는 놀라지도 않고 물었다.“여기에는 왜 왔어?”서인준이 눈을 깜빡이며 비꼬듯 말했다.“네 식구가 단란하게 밥 먹고 있을까 봐 내가 분위기 좀 깨러 왔어.”서지혁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그 옆을 스쳐 지나가며 말했다.“그 입, 계속 쓸 거면 꿰매기 전에 조심해라.”서인준은 따라가지 않고 거실 입구에 멈춰 섰다. 안쪽에는 심태진 부부가 앉아 있었고 두 사람 모두 얼굴이 굳어 있었다.정경란 옆에는 심연정이 앉아 있었다.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는데 손으로는 정경란의 팔을 꽉 잡고 있었다.서인준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그가 돌아서려는 순간, 심연정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엄마, 왜 정우한테 그런 말을 했어요? 이제 저 어떡해요? 앞으로 그 애 얼굴을 어떻게 봐요?”뒤이어 심태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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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4화 내가 엄청 잘해주지?

하시윤은 일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지난 3년 동안 얼마나 많은 회사를 옮겨 다녔는지 모른다.이제 일은 삶의 중심이 아니었다.그녀가 말이 없자 서지혁은 조용히 말을 덧붙였다.“천천히 생각해. 결정되면 그때 일정 짜면 돼.”사실 생각할 것도 없었다.하시윤도 알고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바로 해결할 방법은 없으니 결국은 의사 말대로 환경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는 걸.그녀는 짧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래, 알겠어. 지혁 씨 말대로 해보자.”서지혁이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부드럽게 물었다.“어디 가고 싶은 데 있어?”“딱히 없는데.”하시윤은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그런데 그 파티는 어떻게 할 거야?”“그건 아직 보름이나 남았어.”서지혁은 담담히 말했다.“그건 전혀 문제 될 게 없지. 아니면 어디 잠깐 다녀오고 와서 파티 참석한 다음에 다시 여행을 떠나도 되고.”그 말인즉 마음만 먹으면 휴가는 얼마든지 늘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녀가 임신할 때까지 말이다.서씨 가문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초조한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사실 하시윤만 힘든 게 아니었다.그 집안 사람들도 다 제각각의 스트레스를 안고 있었다.결국 하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생각해 볼게.”그렇게 한참을 정원 벤치에 앉아 있다가 서인준이 다가왔다.입에 담배를 물고 있었지만 불은 붙이지 않았다.정원 앞에 멈춰 선 그는 서정우를 보더니 재빨리 담배를 빼내 손에 쥐었다.“얘기 다 끝났어? 여행 가기로 한 거야?”대답도 듣지 않고 그는 말을 이었다.“그럼 나는 어쩌고?”하시윤과 서지혁은 아무 표정도 없이 그를 바라봤다.서인준이 다가와 서지혁 옆에 털썩 앉았다.“내 말은 형이 여행 가면 회사 일은 누가 맡아? 아빠는 분명 나한테 몇 개는 떠넘기실 거야. 나 그거 감당 못 해. 내게 어디 그럴 능력 있어?”서지혁이 담담히 말했다.“진짜 안 되겠으면 나한테 보내. 내가 처리할게.”“또 어떻게 그래.”서인준이 비스듬히 눈을 올리며 웃었다. 평소처럼 장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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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5화 알겠어요

하시윤은 서지혁의 말에 흠칫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사실 그 사람 사과가 그렇게 필요하지는 않은데.”입만 열면 나오는 형식적인 사과 따위는 아무런 위로도 되지 않는다.그럴 바에는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나을 듯했다.게다가 막상 사과를 받으면 또 괜찮다는 말까지 해야 하니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하시윤은 곁에 앉은 서정우를 바라봤다.“그래도 정우한테는 제대로 이야기해 줬으면 좋겠어.”그날 정경란의 말투는 꽤 날이 서 있었던 것 같다.아이는 어른들의 미묘한 속내를 다 헤아리진 못해도 말 속에 담긴 감정만큼은 금세 느끼는 법이니까.그날 이후 정우는 여러 번 물었었다. 왜 그날 외할머니가 그렇게 화내셨냐고 말이다.그런 정경란 때문에 정우는 많이 겁이 났던 모양이다.정경란이 자신을 싫어하는 건 알겠지만 하시윤은 그 감정을 아이에게까지 끌어다 쓰는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했다.그때 서지혁이 조용히 말했다.“너는 신경 안 쓸지 몰라도, 난 신경 쓰여. 그 사람, 너에게도 분명 사과해야 해.”하시윤은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그래, 뭐. 나한테 사과하는 게 자존심 상하긴 하겠지. 그런 굴욕 한 번쯤은 겪어도 나쁘진 않겠네.”그러고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물었다.“그런데, 지혁 씨. 그렇게 하면 그 사람 기분 상할 텐데 괜찮아? 눈치 안 보여?”“그 여자가 먼저 시비를 걸었잖아.”서지혁이 태연히 대답했다.“내가 왜 눈치를 봐야 하는데?”하시윤은 의자에 앉고는 편하게 등을 기대었다.“사실 조금 궁금했어.”그녀는 서지혁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4년 전에 심연정 씨를 좋아한 건 아니었지만 이 정도로 싫어하지는 않았잖아.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 혹시 중간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일이야 많지.”서지혁이 말했다.“그런데 그걸 다 말하긴 좀 그렇다.”서지혁은 말을 아끼는 태도였다.하시윤도 그 뜻을 눈치채고 더는 캐묻지 않았다.잠시 후, 복도 쪽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서인준이 문 앞에 나타났다.그는 방 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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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화 네가 문 거잖아

정경란은 이렇게까지 망신을 당한 적이 없던 사람이라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표정은 굳어 있었다.잠시 서 있다가 급한 일이 있다며 성문영을 찾으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서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심연정도 어머니가 속으로 부아가 치민다는 걸 알아챘는지 따라 나갔다.잠시 후, 정경란의 소리가 안까지 들려왔다. 억눌린 분노가 터져 나온 듯했다.“네가 아니었으면 엄마가 이런 굴욕을 당할 일도 없었어.”심연정은 그녀를 달래며 말했다.“엄마, 미안해요. 내 잘못이에요. 그러니까 화 좀 가라앉혀요.”그러면서 어머니에게 목소리를 낮추라고 했다.“내가 목소리를 낮추긴 왜 낮춰?”정경란이 말했다.“너야 그 사람 때문에 몸을 낮추고 들어가지만 정작 그 사람은 너한테 어떤 태도인데?”정경란은 이를 꽉 악물며 말했다.“너 아니었으면 내가 오늘 이런 꼴은 안 당했어.”그 뒤로는 둘의 목소리가 멀어져 더 들리지 않았다.잠시 침묵이 이어지자 하시윤이 낮게 말했다.“도대체 심연정 씨는 지혁 씨가 왜 그렇게 좋다는 거야?”금수저 집안 출신 영애라 마음만 먹으면 선택지는 넘쳐났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서지혁에게만 집착했다.서지혁도 난감하다는 듯 말했다.“나중에 한 번 물어볼게. 왜 내가 그렇게 좋은 건지. 나도 궁금하네.”서정우에게 저녁을 먹여 재운 뒤, 하시윤은 침대에서 아이와 블록을 맞추며 시간을 보냈다.서지혁은 그 옆에 앉아 지켜봤다.하시윤은 시선이 느껴지자 고개를 들고는 물었다.“지혁 씨는 안 내려가도 돼?”“내려가서 뭐 해?”서지혁이 다가와 블록 몇 개를 집더니 별생각 없이 맞추기 시작했다.“가서 대화라도 하라고? 그럴 기분 아니야.”잠시 후, 무언가 떠올랐는지 서지혁이 혼잣말처럼 이어갔다.“나 연정이랑 아주 어릴 때부터 알던 사이야. 나보다 어린 데다가 집안끼리도 자주 오가니까 자연스럽게 내가 챙기게 됐지.”그는 고개를 숙인 채 블록을 쌓으며 말을 이었다.“인준이는 예전부터 연정이를 별로 안 좋아했어. 속을 너무 많이 굴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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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7화 노력

다음 날, 하시윤은 뒷마당에서 금붕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통통한 금붕어들은 사람이 보이자 전부 몰려와 물 위로 입을 내밀고 뻐끔거렸다.서정우는 위층에서 자고 있어서 데려오지는 못했다.아이가 있었으면 신이 난 채로 먹이를 한 줌을 뿌려줬을 텐데 말이다.그녀는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잠시 쉬고 있는데, 등 뒤로 발소리가 들려왔다.곧 옆의 나무 의자가 당겨졌다.자리 잡은 사람은 서인준이었다.그는 유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내일이면 떠난다니, 부럽네요.”그리고 물었다.“형이 이미 비행기표 끊은 거 알고 있었어요?”몰랐지만 하시윤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어제 밤새 당해서 오늘은 늦게 일어났다.눈을 뜨자 서지혁은 방 안에 있었는데 이미 말끔하게 옷을 갖춰 입은 채 창가에서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그녀가 일어난 소리를 들었는지 서지혁은 곧 말했다. 내일 출발할 거라고.그러니 비행기표는 당연히 예약해 놓았을 것이다.서인준은 하품 섞인 기지개를 켰다.“진짜 부럽다니까요. 이렇게 쉬는 시간도 가지고 말이에요.”그러고는 투덜댔다.“그에 비해 내 신세는 참. 나는 언제쯤 저렇게 한가하게 놀아볼까.”“결혼부터 해요.”하시윤이 말했다.“그리고 신혼여행 가면 인준 씨도 저렇게 여유로울 수 있어요.”서인준은 히죽 웃었다.“그 말은 이번에 신혼여행 간다는 걸 인정하는 거네요?”하시윤은 얼굴을 굳히고 그를 흘겨보았다.하지만 서인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입꼬리를 올린 채 말했다.“솔직히 우리 형이 심연정보다 형수님한테 보이는 태도가 훨씬 다정하지 않아요? 두 사람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죠. 다시 한번 생각해 봐도 되지 않을까요?”하시윤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나 좀 살려줘요. 인준 씨 집안 분위기 알면서 왜 그래요. 내가 지혁 씨한테 조금이라도 마음 있다고 하면 사모님이 나 가만두겠어요?”성문영의 이야기가 나오자 서인준은 한숨부터 쉬었다. 얼굴에서 웃음기가 서서히 걷혔다.“나도 우리 엄마 이해 안 가요. 심연정이 무슨 꿍꿍이 굴리는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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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화 또다시 기분이 상하다

하시윤은 순식간에 화관을 완성했다. 다시 한번 점검해 보니 문제도 없었다.그녀는 일어나 정원 출구로 향했다.“그럼 성공하길 바랄게요.”그 말을 들은 심연정은 다급하게 따라오며 물었다.“그러니까 하시윤 씨는 지혁이를 좋아하는 거 아니죠? 떠날 거죠?”원래라면 하시윤은 굳이 대답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심연정이 이대로는 절대 놓아줄 것 같지 않았다.심연정은 성큼 다가오더니 하시윤의 팔을 움켜잡아 그녀의 몸을 돌려 정면으로 마주 세웠다.다시 묻는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지혁이를 안 좋아하니까 나중에 무슨 일 있어도 이 집을 떠나는 거 맞죠? 맞다고 말해줘요.”심연정은 흥분을 가라앉히고는 말을 이었다.“솔직하게 말해줘요, 하시윤 씨.”하시윤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숨을 내쉬었다.“지혁 씨를 좋아하지 않아요. 특별한 변수가 없으면 저는 떠날 거예요.”대답을 직접 들었는데도 심연정은 여전히 불안해 보였다.“정말이에요? 그럼 만약 지혁이가 하시윤 씨를 붙잡아도, 그래도 떠날 거예요?”잠깐의 정적 뒤에 하시윤은 짧게 답했다.“네. 떠날 거예요.”하시윤의 팔을 잡은 그녀의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지금 그녀는 흥분과 복잡한 갈등 속에서 길을 잃은 듯했다.“지혁이는 잘생겼고 집안도 좋고, 능력도 있잖아요. 지혁이랑 결혼하면 평생 편하게 살 수 있는데 그래도 떠날 거예요?”그녀는 이어서 말했다.“지혁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하시윤 씨보다 조건 훨씬 좋은 그 사람들도 지혁이한테 빠지는 법이죠. 그런데 하시윤 씨가 마음이 안 움직일 리 없잖아요.”하시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지혁 씨, 좋은 사람인 건 맞아요.”그러나 곧 단호하게 이어 말했다.“그렇다고 제가 좋아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하시윤은 심연정의 손가락 하나하나를 떼어냈다.“저는 저 자신을 좋아하고 제 아이를 사랑하는 것만으로 충분해요.”남녀 지간의 사랑 따위는 인생에서 제외시킨 지 오래였다.어머니가 병상에 누웠을 때, 사람이라고도 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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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화 딸을 바라다

하시윤은 한효진이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지 알 수 없어, 품 안의 서정우 등을 살짝 두드리며 조용히 있었다.한효진이 다시 말했다.“그 아이는 어려서부터 지혁이를 좋아했어. 항상 지혁이 뒤만 졸졸 따라다녔지. 우리 두 집안이 오랫동안 가까웠는데 자연스럽게 둘을 이어주려고 했어.”그녀는 흠칫하더니 무언가 떠오른 듯 눈에 띄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걔 마음이 이해돼. 성공했다고 해도 별문제는 없었지. 다만 누구도 이렇게 될 거라곤 생각 못 했지.”하시윤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 미간을 좁혔다.한효진은 스스로도 말이 길어졌다고 느낀 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그만하자. 내가 이런 얘길 왜 하니. 너는 올라가 봐. 난 잠깐 혼자 바람 좀 쐬고 싶다.”바람이 제법 불기 시작해 하시윤은 서정우가 감기 들까 걱정되어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리고 서둘러 위층으로 올라갔다.방에서 잠시 아이와 놀아주다가 약을 먹인 뒤 토닥이며 재웠다.약기운은 많이 누그러져 서정우는 예전만큼 보채지 않았다. 그래서 금세 잠이 들 수 있었다.잠결에 아이는 하시윤의 손을 꼭 붙잡았다.“엄마.”하시윤은 부드럽게 대답했다.“응. 자렴.”서정우가 중얼거렸다.“여동생 갖고 싶어요.”하시윤은 조용히 웃으며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그래.”아이의 숨이 고르게 바뀌자 하시윤은 조용히 방을 나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밖은 이미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하시윤은 씻고 나온 뒤 창가로 가서 커튼을 당기려 했다.창문에 가까이 다가가 아래로 내려다본 순간, 긴 복도 쪽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서지혁이었다.그는 방금 돌아온 모양이었다.서지혁도 그녀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어 올려다봤다.얼굴은 어둠에 묻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움직임은 또렷이 보였다.서지혁은 그녀를 한 번 바라본 뒤 바로 시선을 거두고 거실로 들어갔다.하시윤은 조용히 커튼을 닫고는 침대로 돌아가 불을 껐다.서지혁이 찾아오지 않은 것도 이해했다. 내일 떠날 예정이니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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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화 생사

그들은 시간을 정확히 맞췄다.짐 검사를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탑승 준비를 했다.비행기에 올라탄 하시윤은 승무원에게 담요를 받아 허리에 덮었다.그리고 편한 자세를 골라 의자에 기대었다.바로 옆에서 서지혁은 가져온 잡지를 펼쳤다.그는 글자가 대부분인 페이지를 잽싸게 넘겼다.넘기는 소리가 유난히 거칠어 마음속에 억눌린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듯했다.화를 저렇게 오래 품을 줄은 생각도 못 한 하시윤은 고개를 갸웃했다.저렇게까지 속이 좁았나?왜 저토록 화가 났는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비행시간은 한 시간 남짓, 그리 길지 않았다.하시윤은 미리 다운받아 둔 영화 한 편을 틀었다.둘은 가는 비행기 내내 한마디도 섞지 않아 말 그대로 남이었다.착륙 안내가 들린 뒤에야 하시윤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도착했네.”그러자 서지혁은 힘도 실리지 않은 소리로 대답했다.“응.”그 대답 하나가 얼마나 반가운지.아마도 어제 하루 종일, 그리고 오늘 이동하는 내내 그를 불편하게 했던 감정들이 이미 모두 해소된 듯했다.호텔을 예약해 두었기에 공항 밖에서는 호텔 차량이 대기 중이었다.차 안에서도 두 사람은 말 한마디 없었고, 이는 방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되었다.그들이 도착한 곳은 해변 도시였다. 호텔은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커다란 통창 너머로 가까운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예약된 방은 커플 스위트룸이었다. 바닥에는 장미 꽃잎이 깔려 있었고, 넉넉한 크기의 침실에서 유독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하트 모양으로 특별 제작된 커다란 침대와 분홍색 침대 캐노피였다.서지혁은 말없이 캐리어를 끌고 들어가 옷장을 열었다.그리고 캐리어에서 옷부터 꺼내 하나씩 정돈해 걸었다.하시윤이 다가오면서 말했다.“내 건 내가 정리할게.”두 사람의 캐리어는 나란히 놓여 있었다.하시윤도 옷 정리를 시작했는데 옆에서 옷을 걸던 서지혁의 손이 툭 멈췄다.하시윤은 무슨 일인가 싶어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서지혁의 옷 사이에서 작은 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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