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애걸복걸! 도련님의 고백: Chapter 121 - Chapter 130

162 Chapters

제121화 그동안 다 연기였어요?

그날 밤, 심연정이 또 서씨 가문에 찾아왔다.서인준은 얼굴이 잔뜩 굳었다.위층에서는 하시윤이 서정우를 안고 있었다.조금 전 약을 먹은 서정우가 금세 토해버려서 얼굴빛이 잔뜩 누렇게 질려 있었다.배가 아프다고 칭얼대서 하시윤은 배를 문질러 주다가 결국 아이를 품에 꼭 안고 방 안을 천천히 돌고 있었다.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서인준이 들어왔다.아래층에서부터 욕을 퍼붓던 그가 방 안의 공기를 느끼자마자 목소리를 낮췄다.“잠들었어요?”하시윤이 고개를 저었다.서인준은 발소리를 죽이고 다가와 그녀 품속의 아이를 내려다봤다.“또 약 때문에 힘들어하는 거예요?”불만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이 약만 먹으면 정우가 꼭 아파한다고 말했잖아요. 약을 바꿔야 하는데 의사들은 이게 부작용 제일 적은 거라면서 고집을 피우죠. 전에 먹던 약이 좋던데 도대체 왜 바꿨는지 이해가 안 돼요.”하시윤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의학 쪽은 잘 모르지만 서씨 가문이라면 최고의 의사를 붙였을 거라 믿었다.병원에서 약을 바꾼 것도 다 이유가 있을 테니까.“의사 말 따르자고요. 아주머니에게 물어봤는데 약 바꾸고 나서 상태는 훨씬 안정됐대요.”물론 약이 위장을 자극하니 힘든 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그게 아이를 살리는 길이었다.세상일이 다 그렇듯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쯤은 포기해야 했다.서인준은 한숨을 내쉬며 테이블에 기대섰다. 낮게 깔린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다.“그 여자가 또 왔어요. 일부러 나 괴롭히려고 오는 거 같아요. 내가 싫어하는 거 뻔히 알면서 꼭 내 앞에서 얼쩡거리더라고요.”하시윤은 창밖을 흘깃 봤다.날은 어느새 어둑어둑해졌다.“방금 온 거예요?”“네.”서인준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아마 여기서 자고 가나 봐요. 엄마가 손 꼭 잡고 반가워하더라고요. 둘이 그렇게 다정할 수가 없어요.”그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진짜 둘이 친자 검사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어떻게 남보다 더 챙겨요. 친아들인 나는 옆에서 미칠 지경인데 엄마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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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화 그날처럼

성문영은 서인준의 말을 듣더니 얼굴을 굳혔다.“인준아.”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쉬었다.“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야.”그녀는 말을 이어갔다.“정우 몸이 오늘 유난히 안 좋았잖니. 누가 안았어도 그랬을 거야. 연정이 잘못은 아니야.”그러다 문득 생각난 듯 하시윤을 바라봤다.“전에 너도 밥 너무 급하게 먹이다가 정우 토했었잖아.”“맞아요.”하시윤은 재빨리 그녀의 말을 끊었다.“그날 심연정 씨가 연락받고 다음 날 와서는 저한테 아이 돌볼 때는 세심해야 한다고 조언했었죠. 방심하면 안 된다고요.”그녀는 심연정을 똑바로 바라보더니 말을 덧붙였다.“그랬었지요?”심연정의 얼굴은 금세 붉어졌다가 하얗게 질렸다.그날은 한효진 앞에서 일부러 하시윤을 곤란하게 만들려던 말이었다.그게 이제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올 줄은 몰랐다.서인준은 냉소를 흘렸다.“아, 그런 일도 있었어요?”그는 비아냥거리듯 낮게 말했다.“대단하네요. 그런 말까지 해놓고 어떻게 이렇게 태연하죠?”그때 서지혁이 무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예전 하시윤을 나무랐을 때와 똑같은 얼굴이었다.단지 이번에는 이름이 달랐다.“연정아, 나랑 잠깐 얘기 좀 하자.”성문영이 본능적으로 따라가려 했지만 서지혁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엄마, 정우는 엄마가 봐주세요.”그 한마디에 성문영의 발걸음이 멈췄다.큰아들이 어떤 성격인지, 특히 정우 문제면 절대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성문영은 조심스럽게 말했다.“지혁아, 너무 연정이 몰아붙이지 마. 연정이도 그동안 정우 돌보느라 얼마나 애썼는지 우리 다 알잖아...”그러나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이 닫히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쿵.”성문영은 입을 다물고 한숨을 내쉬었다.그녀는 하시윤 품에 안긴 정우를 바라보며 다가가 손으로 아이의 볼을 쓰다듬었다.“우리 정우, 이제 괜찮아? 어디 또 불편한 데는 없지?”정우는 고개를 저었다.토하고 나니 한결 개운해진 듯 얼굴이 훨씬 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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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화 세 식구 나란히

불을 끄고 눕자 서정우가 하시윤 품에 파고들며 옷자락을 꼭 쥐었다.“엄마.”하시윤이 낮게 대답하며 그를 다독였다.“응, 이제 자자.”하지만 그녀는 감히 눈을 감지 못했다.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정우가 잠들면 바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아이는 전혀 졸리지 않은 듯 품 안에서 이리저리 몸을 뒤척였다.하시윤은 이미 피곤이 몰려왔지만 목소리를 최대한 부드럽게 낮췄다.“정우야, 이제 자야 해. 안 자면 괴물 나온다?”정우는 얌전히 대답했다.“네.”서지혁 쪽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뒤척이는 기척조차 없었다.그가 자고 있는 건지, 아니면 깨어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솔직히 이럴 거면 굳이 셋이 이렇게 좁은 데서 같이 있을 필요가 있나 싶었다.그렇게 시간이 꽤 흘렀다.정우는 여전히 말똥말똥 눈을 뜨고 있었다.결국 잠이 든 건 하시윤이었다.눈을 뜨자 어느새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편하게 잔 덕분에 하시윤은 몸이 개운했다. 하지만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금세 잠이 깼다.서지혁이 서정우의 얼굴을 닦아주고 있었다.목 쪽을 닦자 아이는 간지러운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하시윤은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서지혁은 아직 잠옷 차림이었다.그녀를 보더니 짧게 물었다.“깼어?”정우가 뒤돌아 그녀를 향해 활짝 웃었다.“엄마 깼다!”하시윤은 당황스러워 얼굴이 붉어졌다.“나 어쩌다가 잠들었지?”정우의 침대는 제법 컸다.세 사람이 함께 누워도 넉넉할 정도였다.침대에는 이불 두 채가 있었는데 서지혁이 하나를 덮고 하시윤과 서정우가 다른 하나를 같이 덮었다.사실 이미 한 이불을 덮고 잔 두 사람에게 이 정도는 그리 큰일도 아니었다.하지만 하시윤은 왠지 모르게 어색함을 느껴 서둘러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녀는 방 한가운데에 거의 30초 가까이 서 있다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나 씻으러 아래층에 다녀올게.”그녀가 몸을 돌려 문 쪽으로 가기도 전에 방문이 벌컥 열렸다.들어온 사람은 가정부가 아니라 심연정이었다.그녀는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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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화 괜한 짓

서지혁은 묘원 관리인이 들고 있는 출입 기록부를 내려다봤다.말없이 페이지가 넘겨지는 소리를 듣고만 있었다.관리인이 고개를 들어 두 번쯤 그를 훑어봤다.입이 무거운 사람인 걸 알아차렸는지 더 묻지 않고 종이를 내밀었다.“여기 이름하고 전화번호만 적으세요.”그는 펜을 들어 필요한 칸만 채웠다.관리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런데 빈손으로 오셨어요? 성묘하러 오는 사람이 이렇게 아무것도 안 들고 오는 건 처음 보네.”서지혁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다.묘원은 아주 넓었다.동서남북 네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고 한가운데에는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정자가 세워져 있었다.스피커에서는 낮은 불경 소리가 흘러나왔다.서지혁은 정자 안에서 잠시 둘러보다가 시선을 멈췄다.묘지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명절도 아닌 평일이라 찾아오는 이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높은 언덕 위, 하시윤의 어머니 묘지 앞에는 막 바쳐둔 듯한 꽃다발과 과일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서지혁은 4년 전, 하시윤의 집안을 조사했을 때, 이 여자에 대해서는 문서에 몇 줄만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었다.그녀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하병우와 연관된 것은 단지 ‘하병우의 사별한 아내’라는 이름뿐이었다.당시 파일에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던 듯 희미하게 기억했지만 그때는 그쪽에 관심을 두지 않아 자세히 보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묘비 앞에 서서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하시윤이 왜 그렇게 냉정해 보이는 눈빛을 가졌는지 알 것도 같았다.그녀의 얼굴에는 분명 어머니의 그림자가 어렴풋이 비쳐 있었다.묘비 아래 새겨진 생몰 연도를 보고 그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그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서지혁의 시선은 곧 묘지 앞에 놓인 꽃과 과일로 향했다.그는 오늘이 하시윤 어머니의 기일이라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그저 하시윤이 신경 쓰여서 뒤따라왔는데 묘원에 도착한 것이었다.“성묘하러 오는 사람이 이렇게 아무것도 안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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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화 사랑이 고팠던 거야

오후, 심연정의 어머니 정경란이 찾아왔다.그때 하시윤은 서정우를 겨우 재워서 이불까지 덮인 참이었다.방문이 조용히 열렸다.정경란은 딸보다 훨씬 조심스러운 사람이었다. 대낮인데도 문 여는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안쪽을 살피고 나서야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잠들었네?”그녀는 침대 곁으로 다가와 아이 얼굴을 살짝 보고는 조심스레 물었다.“좀 나아졌지?”하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정경란의 태도는 그렇게 적대적이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의 말투에는 미안함이 묻어 있었다.“연정이가 어제 또 사고를 쳤다더라. 그래서 내가 직접 와봤어.”‘사고’라는 표현은 사실 적절하지 않았다.어제 일은 심연정의 잘못이라기보다 서정우의 몸 상태 탓이 컸다.정우는 원래 속이 약한 애라 아무 일 없어도 종종 토하곤 했다.하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정경란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침대 옆에 앉았다.아이의 얼굴을 한번 쓰다듬어보려다 혹시라도 아이가 깰까 싶어 손을 멈췄다.“아이 돌보는 거, 꽤 힘들지?”“괜찮아요.”하시윤의 담담한 대답에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연정이가 요즘 회사 일도 많고 야근에 회식까지 엄청 바빠. 그런데 그 와중에도 틈만 나면 여기 들르더라. 솔직히 말하면 나보다 문영 씨가 우리 연정이를 더 자주 볼걸?”정경란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흘렸다.“아이 돌보는 게 어디 쉬운 일이니. 게다가 정우는 몸이 약하잖아. 연정이가 어제는 좀 성급했지만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정우 일에도 나름 정성을 다했어.”“그래요?”하시윤이 물었다.“그런데 심연정 씨는 아이를 안는 법도 모르던데요. 정우는 위장이 약해서 자주 토해요. 그런데 그런 기본적인 상황에도 제대로 대처 못 하던데 그게 어떻게 정성을 다한 거죠?”정경란은 말발 좋은 하시윤의 그 반박이 낯설지 않은 듯 짧게 웃었다.“하시윤 씨.”그녀가 하시윤의 이름을 또렷하게 불렀다.“혹시 요즘 여기서 지내다 보니 정우가 당신한테 좀 더 정 붙였다고 해서 진짜 엄마라도 된 줄 아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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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화 무슨 자격으로

서지혁이 나가고 나서도 서인준은 문가에 서서 꼼짝하지 않았다.하시윤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왜 그래요? 할 말 있어요?”그는 잠깐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아까 위층에서 심연정 엄마를 봤어요. 혹시 형수님에게 뭐 불편한 소리를 한 건 아니죠?”그는 잠시 눈치를 보더니 투덜거렸다.“심연정이 저 모양인 게 다 엄마 닮아서 그래요. 그 여자는 더 심해요. 내가 심씨 가문에서 제일 질색하는 사람이 그 여자예요.”하시윤이 피식 웃었다.“심씨 집안에서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있어요?”서인준은 뜻밖에 진지하게 고민하더니 말했다.“심연정 아버지는 그나마 낫죠. 썩 호감 가는 타입은 아닌데 적어도 거슬리진 않아요.”하시윤은 전에 심태진과 한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정경란과 함께 집에 왔을 때, 거실에서 간단히 인사만 나눈 정도였다.그때는 온 신경이 정경란에게 쏠려 있어서 심태진의 얼굴은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그저 말수가 적고 눈빛이 약간 냉담했던 기억만 남아 있었다.그래도 정경란처럼 사람을 몰아붙이는 기세는 없었다.“그래도 인준 씨 입에서 칭찬이 나오네요. 보기 드문데.”하시윤이 가볍게 웃고는 말을 덧붙였다.“그 여자가 위층으로 올라갔던 건 정우를 보기 위해서였어요. 어제 일 알고 좀 미안했던 모양이에요.”“심연정이 집에 가서 어제 일을 홀랑 다 말해버렸겠죠.”서인준이 말했다.“어제 형이 혼 좀 냈거든요. 심연정이 계속 울어서 엄마가 밤새 달랬대요.”그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진짜 유리 멘탈이지.”하시윤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서인준의 투덜거림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급히 뛰어온 가정부가 계단 쪽에서 목소리를 높였다.“인준 도련님, 큰일이에요! 어르신 몸 좀 안 좋으시대요.”그 말을 들은 서인준의 얼굴이 바로 굳어졌다.“알았어요. 바로 갈게요.”서인준이 급히 뛰어나가자 가정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하시윤을 향해 말했다.“하시윤 씨도 같이 가지 않을래요?”하시윤은 잠깐 당황했지만 거절하기도 애매해서 뒤따라갔다.한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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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화 거절할 구실

서지혁은 하시윤의 표정을 보며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치챘다.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신분 같은 건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런 건 가장 쉽게 정리되는 문제야.”그는 말을 이었다.“그냥 네가 가고 싶냐는 거지.”하시윤은 고개를 저었다.“굳이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아.”그녀는 누구에게 잘 보이려는 생각도, 인맥을 쌓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괜히 얼굴 비췄다가 쓸데없는 말이나 듣기 딱 좋은 자리였다.서지혁은 품에 안긴 아이를 내려다봤다.녀석도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작은 손으로 그의 볼을 어루만지더니 입을 열었다.“아빠, 화났어요?”“아니.”서지혁은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말을 이었다.“안 그러면 내가 심연정이랑 같이 가야 하잖아.”하시윤은 흠칫했다.그제야 그가 왜 이 얘기를 꺼냈는지 알 것 같았다.“내가 가면 심연정 씨랑 안 가도 되는 거야?”서씨 가문과 심씨 가문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 둘이 파트너로 나오는 건 이미 정해진 수순이었다.“네가 와주면 내가 핑계를 댈 수 있지.”서지혁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생각 좀 해봐.”하시윤은 더 고민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그가 누구와 가든 자신과는 상관없는 문제였으니.하지만 거절하려는 순간, 서지혁이 말을 덧붙였다.“너희 아버지도 아마 올 거야.”하시윤의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그대로 삼켜졌다.그렇다. 그런 자리에 하병우가 빠질 리 없었다.아마 또 조경순이나 하민지를 데리고 오겠지.하민지가 했던 말이 떠오르자 눌러뒀던 분노가 다시 꿈틀거렸다.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들이 아무 일 없다는 듯 잘 사는 게 억울했다.그렇게 생각한 하시윤이 말했다.“잠깐 생각해 볼게.”하시윤은 조금 더 있다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려 했다.그런데 계단 쪽에서 난간에 기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서인준을 발견했다.하시윤도 그 옆에 서서 시선을 따라가 봤다.아래에서는 심태진이 도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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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화 따라가지 마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정우가 놀라 뒤를 돌아봤다.얼굴에는 서운함이 그대로 드러났다.“연정 이모.”그의 말투는 드물게 단호했다.“연정 이모는 이제 엄마 아니잖아요. 저한테 엄마는 딱 한 명뿐이에요. 전에도 말했었잖아요.”심연정은 순간 얼굴이 굳었지만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돌렸다.“뭐 만들고 있었어? 나도 같이 해도 돼?”서지혁은 여전히 손에서 블록을 놓지 않은 채 물었다.“왜 올라왔어?”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묘한 거리감이 섞여 있었다.심연정은 애써 밝게 대답했다.“엄마, 아빠가 어머님, 아버님이랑 이야기 중이라서. 내가 옆에 있으면 방해된다고 정우랑 좀 놀아주라고 하셨어.”그녀는 다가가 침대 위 블록을 보더니 감탄하듯 말했다.“와, 이거 정우가 만든 거야? 진짜 잘했네.”정우는 잠시 생각하다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다시 서지혁을 바라봤다.“아빠, 엄마 불러줘요. 저 엄마랑 놀고 싶어요.”심연정은 옆에서 도면을 집어 들었다.“이걸 보고 만드는 거구나? 나도 해볼래. 정우가 좀 알려줄래?”정우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서지혁은 완성한 블록을 내려놓고 아들을 향해 말했다.“그럼 연정 이모랑 잠깐 놀고 있어. 아빠가 엄마 불러올게.”“어?”심연정은 당황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내려가겠다고?”“응. 잠깐만 정우 좀 부탁할게.”사실 심연정이 필요하지 않았다.정우는 가정부에게 맡기면 되니까.다만 그녀가 따라오는 게 싫었을 뿐이다.심연정이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했지만 서지혁은 먼저 침대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었다.서정우는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아빠, 빨리 다녀와야 해요! 늦으면 제가 먼저 완성해 버릴 거라고요!”“알았어.”서지혁이 짧게 대답했다.“그런데 엄마는 좀 오래 걸릴지도 몰라. 기다려야지.”그 말을 남기고 그는 방을 나섰다.심연정은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려다가 문밖에서 들려온 남자의 낮은 목소리에 멈춰 섰다.“연정이가 정우 봐주고 있으니 과일도 조금 가져다주세요.”그건 서지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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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화 이번 한 번쯤 방법이 없겠어?

서인준은 일어서려다 그대로 굳어버렸다.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서지혁을 바라봤다.서지혁은 시선을 거두고 뒤쪽에 앉아 있던 부모님에게 말했다.“정우가 위에서 답답해하길래 잠깐 바람 쐬고 오려고요. 금방 들어올게요.”성문영도 자리에서 일어났다.“밖에 나간다고? 연정이는? 왜 같이 안 내려왔어?”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서지혁과 하시윤은 이미 대문까지 나가 있었다.성문영이 다급히 덧붙였다.“오래 나가 있지 말고. 정우 약 먹을 시간 되기 전에 꼭 들어와. 밖에 바람 세니까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그들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정경란이 자리에서 일어섰다.“얘네는 나갔고. 우리 연정이는 어디 간 거야?”그러고는 바로 계단 쪽으로 향했다. 성문영도 따라 올라갔다.서인준은 여전히 제자리였다.“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다 같은 집 안인데 뭘 그렇게 급하게 찾아요. 사고 날 일도 없는데.”말을 마치자마자 서경민이 곱지 않은 눈빛으로 그를 흘겨봤다.그제야 서인준도 자기가 말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게다가 지금은 심태진 부부도 옆에 있었다.그는 어색하게 자리에 앉으며 중얼거렸다.“나를 두고 가? 이것들이 정말. 내가 옆에서 뭐 방해라도 한대? 참나.”심연정은 서정우의 방을 나와 곧장 한효진의 방으로 갔다.한효진의 몸 상태는 한결 나아졌지만 오늘 있었던 일로 체력이 약간 떨어져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쉬는 중이었다.유민숙이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한효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심연정이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섰다.유민숙은 다급히 일어나 그녀를 한효진 옆으로 안내했다.심연정은 자리에 앉아 한효진의 손을 꼭 잡았다.“할머니, 정말 깜짝 놀랐어요. 왜 우리한테 말씀도 안 하셨어요. 다들 얼마나 자책했는데요.”“괜찮아.”한효진은 손을 빼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아. 이 정도야 아무 일도 아니야.”“저도 마사지 좀 배웠어요. 앞으로 자주 와서 해드릴게요.”한효진이 웃었다.“그럴 것까지야 있니?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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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화 불편해?

서지혁은 한참 동안 하시윤을 바라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안 가도 해결 방법은 있어. 하지만 네가 같이 가면 훨씬 수월해지겠지.”하시윤은 그 말의 뜻을 금세 알아챘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그렇구나. 그런 이유였네.”이리저리 핑계를 대는 것보다 자신을 ‘방패막이’로 세우는 편이 그에게는 더 편할 테지.그녀는 담담히 숨을 내쉬었다. 이용당하는 게 불쾌하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도 목적이 있었으니까.“좋아, 그럼 같이 가자.”서지혁은 그녀가 한두 번쯤은 더 거절할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바로 수락하자 잠깐 할 말을 잃었다.이내 그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드레스는 내가 준비할게. 사람을 보낼 테니까 그냥 기다려.”그 말이 끝나자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서정우가 고개를 들어 서지혁을 바라봤다.“아빠, 왜 웃어요?”두 사람 모두 멈칫했다. 그리고 동시에 아이를 바라봤다.하시윤은 다시 서지혁을 바라봤다.그는 웃고 있지 않았다. 놀란 듯한 표정뿐이었다.그래서 하시윤이 대신 설명했다.“아빠 안 웃었어. 그냥 엄마랑 얘기하고 있었단다.”“아, 그렇구나.”서정우는 금세 다시 장난감에 집중했다.이야기가 정리되고 나자 두 사람은 말을 줄였다.시간이 흘러 가정부가 다가와 약 먹을 시간이 다 되었다고 알렸다.“가자.”서지혁이 아이를 안아 들었다.심씨 가문 사람들은 이미 돌아가고 난 뒤라 거실은 조용했다.그들은 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서정우의 방에는 부엌에서 준비한 저녁이 올라와 있었다.약이 위장을 자극하니 먼저 밥을 먹여야 했다.하시윤이 아이에게 밥을 먹여줬다.오늘따라 컨디션이 좋아서인지 서정우는 가만히 있질 못했다.숟가락을 들고도 자꾸 딴짓을 해 밥 한 그릇 먹이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겨우 밥을 다 먹이고 나서 약을 먹기까지 조금 쉬기로 했다.서정우는 침대로 올라가 장난감을 꺼내며 손짓했다.“아빠, 엄마. 같이 놀아요.”그는 자기 앞의 장난감을 두 사람에게 나눠줬다.하시윤은 고개를 끄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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