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애걸복걸! 도련님의 고백: Bab 301 - Bab 310

362 Bab

제301화 마음을 비우다

다리에 입은 상처를 핑계로 성문영은 회사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쉬었다. 사실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그녀가 마음이 상해 심술을 부리고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정작 그녀가 심술을 부리게 만든 장본인인 서경민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는 매일 바람처럼 바쁘게 오가면서도 그녀의 몸 상태가 어떤지 한마디 묻지 않았다.오히려 가시방석인 건 하시윤이었다. 한 지붕 아래에서 같이 살다 보니 방에서 나오기만 하면 마주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딱히 충돌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분위기가 묘하게 껄끄러웠다.다행히 그런 상황은 이틀뿐이었다.사흘째 되는 날, 성문영은 집에 없었다. 하시윤은 일부러 주차장까지 가서 확인해 보았는데 그녀의 차는 보이지 않았다. 외출한 것이 확실했다.처음에는 성문영이 회사에 출근한 줄 알았다. 하지만 점심때 서지혁과 서인준이 집에 와서 밥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니 성문영은 회사에 나타나지 않은 모양이었다.하시윤은 눈만 깜빡일 뿐, 자리에서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식사를 마치고 다들 서정우를 보러 위층으로 올라갔다.그런데 하시윤은 복도에서 서지혁의 팔을 살짝 잡아끌었다.“지혁 씨, 사모님이 이틀째 집에 안 계셔.”서지혁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신경 쓰지 마.”하시윤이 조금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어디 가셨는지 알아?”“몰라.”서지혁이 무덤덤하게 대답했다.“하지만 다 큰 성인이니 본인이 알아서 잘하시겠지. 우리가 상관할 일 아니야.”하시윤은 그를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싱긋 웃었다.“그래, 알았어.”점심 휴식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지혁과 서인준은 다시 집을 나섰고 그들이 떠나고 30분쯤 지났을까, 성문영이 돌아왔다.정원에 앉아 있던 하시윤의 눈에 그녀의 모습이 들어왔다. 낮은 굽의 하이힐을 신고 양손에는 쇼핑백을 가득 든 채 화사하게 화장을 마친 성문영이 본채를 향해 경쾌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하시윤을 보지 못한 듯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아주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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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2화 너 같은 건 안중에도 없어

하시윤의 목소리에 의아함이 섞여 들었다.“하민지?”하민지가 히죽거리며 대답했다.“응, 언니. 나야.”그녀가 덧붙였다.“언니, 지금 집에서 애 보고 있는 거야?”하시윤이 대답하기도 전에 서지혁이 서늘하게 말을 잘랐다.“그쪽은 왜 이렇게 말이 많습니까? 내가 내 아내랑 통화하는데 그쪽이 왜 끼어들죠? 어디서 함부로 입을 놀립니까?”서지혁의 매서운 질책에도 하민지는 딱히 무안해하지 않았다. 그저 입을 가리고 살랑살랑 웃으며 대꾸할 뿐이었다.“죄송해요.”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언니는 제가 여기 있는 줄 모를 텐데, 제가 괜히 아는 척을 했네요.”전화기 너머로 하시윤의 콧방귀 소리가 들려왔다.이런 얄팍한 수작이라니, 참으로 졸렬하기 짝이 없었다. 은근슬쩍 말을 흘려 마치 서지혁이 뒤에서 몰래 자신을 만나고 있는 것처럼 오해를 유도하려는 속셈을 하시윤이 모를 리 없었다.솔직히 이런 뻔한 수작이 의외로 효과가 좋을 때도 많다. 머리로는 사실이 아닌 걸 다 알면서도 감정이 앞서서 상대방과 머리채를 잡고 싸우게 되기 때문이다.하지만 하시윤은 동요하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서 꼴값 떨며 날뛰는 하민지의 꼴이 우스울 뿐이었다.서지혁은 하민지를 한심하다는 듯 훑어보고는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굳이 그녀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휴대폰에 대고 다정하게 말했다.“끝나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아. 아직 할 얘기가 남아서.”창틀에 몸을 기댄 그가 덧붙였다.“최대한 빨리 들어갈게.”하시윤은 알았다며 대답했다.“술 적당히 마셔. 건강 생각해야지.”서지혁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알았어.”이어서 하시윤이 서정우에게 전화를 넘겨주었다. 서정우는 조잘조잘 예쁜 목소리로 아빠를 불렀다.“아빠! 동생이 아까부터 계속 움직여요. 엄마 배 속에서 덤블링을 하고 있나 봐요.”서지혁이 맞장구를 쳤다.“우리 공주님이 아주 장난꾸러기네.”서정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제가 움직이지 말라고 해도 제 말을 안 들어요. 아빠가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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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3화 내 친구 아니야?

오늘 밤 식사 자리에서 술을 꽤 마신 서지혁은 머리가 지끈거려 그저 빨리 귀가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하민지가 눈치도 없이 여기 서서 낯 두껍게 구니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하씨 가문이 요즘 살기 편해진 모양이군요. 정말로...”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멀지 않은 곳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어? 이거 서 대표 차 아니야?”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 남자가 다가왔다.“맞지? 내 친구 아니야?”얼굴을 보지 않아도 목소리만으로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연씨 가문의 사생아, 연재윤이었다.하민지는 뒤를 돌아보자마자 얼굴에 가득했던 애교 섞인 표정을 싹 지우고 옆으로 슬쩍 비켜섰다. 지난번 파티에서 본 적이 있는 인물이었다.연재윤이 성큼성큼 다가와 차 안을 들여다보더니 목소리를 높였다.“야! 진짜 내 친구네.”그는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차체에 몸을 삐딱하게 기대더니 말을 이었다.“오늘 여기 있었어? 난 그것도 몰랐네. 이 가게 매니저 녀석도 참, 귀띔이라도 해줘야 할 거 아니야.”서지혁은 그조차 상대하기 귀찮았다.“시간이 많이 늦었어. 난 먼저 갈 테니 할 말 있으면 내일 해.”연재윤은 웃으며 술 취한 한량처럼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물었다.“그런데 이 여자는 누구야? 가만 보니 예쁘게 생겼네.”하민지는 당황한 듯 눈을 깜빡이다가 금세 시선을 내리깔았다.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수줍어하는 척 연기를 시작한 것이었다.등받이에 기대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던 서지혁은 그 꼴을 보더니 갑자기 흥미롭다는 듯 입을 열었다.“시윤이 동생이야. 하씨 가문 둘째. 오늘 이쪽도 식사 자리가 있었다는데 다들 가버리고 혼자 남아서 택시 타기가 무섭다네? 시간 있으면 좀 태워다 주는 게 어때?”연재윤이 미간을 찌푸리며 관계를 머릿속으로 정리했다.“하시윤 동생? 하씨 가문 둘째?”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을 툭 던졌다.“하병우 딸내미? 그 안방 차지한 불륜녀가 낳은 애 말이야?”말투가 워낙 거칠고 무례해서 하민지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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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4화 질투

서지혁이 집에 도착했을 때, 하시윤은 이미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워낙 늦은 시간이라 거실의 은은한 스탠드 하나를 제외하고는 집안의 다른 곳은 전부 캄캄했다.그는 3층으로 올라가 먼저 서정우를 살폈다. 아이는 세상 모르고 곤히 잠들어 있었고 옆을 지키던 가정부는 그가 들어서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서지혁이 손을 내저으며 제지했다.“안 일어나도 돼요. 그냥 정우가 잘 자나 보러 온 거니까.”가정부는 그래도 침대에서 내려와 곁으로 다가오더니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도련님, 요즘 아주 잘 자고 있어요. 전에는 자다가 경기를 일으키며 깨곤 하셨는데 요즘은 배고프지 않으면 아침까지 쭉 자요. 약도 제때 챙겨 먹고 발작도 없었고요.”서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다행이네요.”“정말 다행이죠.”가정부는 서정우를 지근거리에서 돌봐온 터라 누구보다 그 상태를 잘 알았다. 전에는 통잠을 자는 날이 거의 없었고 한밤중에 고통스러워하며 깨면 그녀가 아이를 안고 방 안을 한참이나 서성거려야 했다. 이제야 본인도 통잠을 잘 수 있게 되었으니 정말이지 감개무량했다.가정부가 덧붙였다.“이게 다 하시윤 씨 덕분이에요. 그분이 오신 뒤로 도련님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졌거든요.”서지혁이 작게 미소 지었다.“알았어요. 그만 가서 자요.”아들 방을 나온 그가 아래층으로 향했다. 2층 계단 입구에 다다랐을 때, 1층에 사람이 있는 것이 보였다. 그가 위로 올라간 사이에 성문영이 나온 모양이었다.아까 귀가할 때 주차장을 슬쩍 봤는데 서경민의 차는 보이지 않았다. 요새 하강 그룹의 모든 공업 단지를 이 잡듯 뒤지는 대대적인 조사가 시작되었다더니 그도 꽤 바쁜 모양이었다. 분명 그 단지 안에 그가 숨겨둔 재산이 있을 테니 발각되기 전에 빼돌리느라 정신이 없을 터였다.성문영은 소파에 앉아 와인을 따랐다. 옆에 둔 잔에 가득 부어 한 입에 털어 넣는 모습이 보였다.노르스름한 조명 아래 비친 그녀의 얼굴에는 초조함 대신 여유로운 즐거움이 가득했다. 다리를 꼬고 소파에 깊숙이 파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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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5화 겁

2층 계단 입구에 다다르자 거실에 있는 성문영이 보였다. 그녀는 이미 일어난 상태였다.그녀는 소파에 앉아 양손으로 무릎 옆을 짚은 채 몸을 약간 구부정하게 숙이고 머리카락을 산발한 채였다. 어젯밤부터 언제까지 술을 퍼마신 건지 지금도 정신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2층으로 올라오던 서인준은 이미 그녀를 본 모양인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아빠랑 엄마 또 싸우신 거야? 아빠는 안 들어오시고 엄마는 집에서 저렇게 술이나 마시고. 도대체 집안 꼴이 왜 이래?”방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서지혁이 무심하게 대꾸했다.“두 사람 일은 나도 몰라. 신경 쓰기도 귀찮고.”서인준은 그 자리에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제 방으로 향하며 중얼거렸다.“그럼 나도 상관 안 해.”하시윤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어느새 자세를 바꿔 창문 쪽을 향해 옆으로 누웠다.서지혁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그녀를 깨울까 고민하다가 이내 마음을 접었다. 잠이 덜 깬 그녀를 괴롭히느니 차라리 더 자게 두는 게 나을 것 같았다.한참 동안 그녀의 자는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서지혁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옷을 갈아입고 방을 나섰다.그리고 마침 2층으로 올라오던 성문영과 마주쳤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화장기 없는 얼굴은 눈에 띄게 수척하고 초췌해 보였다.두 사람이 마주치자 성문영이 먼저 말을 걸었다.“일어났니.”갈라진 목소리에 본인도 어이가 없는지 성문영은 목을 만지며 헛웃음을 터뜨렸다.“목소리가 왜 이 모양이래.”서지혁이 물었다.“회사 출근 안 하세요?”“내일 가야지. 오늘은 도저히 몸이 안 따라주네.”서지혁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 더 이상 말을 섞지 않았다.아래층으로 내려가다 뒤를 돌아보니 성문영은 계단을 다 올라 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기지개를 켜며 나직하게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 그녀는 아주 홀가분해 보였다.그녀가 계단 끝에서 자취를 감췄을 즈음, 방에서 나오던 서인준과 마주친 소리가 들렸다.서인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엄마.”“그래, 좋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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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6화 이런 법도가 어디 있어요

서인준이 연재윤의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사모님도 입원하셨나요?”“네, 입원했어요.”연재윤이 입을 쩝 다시며 덧붙였다.“아주 유세를 떨어요.”그가 말을 이었다.“의사는 아무 문제 없다는데 본인이 굳이 며칠 쉬다 가겠다니 어쩌겠어요. 입원시켜야죠. 어차피 연씨 가문에 돈은 썩어나니까 그 정도 병원비야 껌값이죠.”연재윤은 입에 문 담배를 잘게 짓씹으며, 말이 나올 때마다 까딱거리는 담배를 내버려둔 채 입을 열었다.“영감탱이가 하도 집구석에 들어와서 며칠 지내라고 잔소리를 해댔거든요. 그런데 마침 그 여편네가 입원해 버렸네? 잘됐죠, 뭐. 나도 오늘부터는 당당하게 집에서 좀 지내려고요.”말을 마친 그는 입꼬리를 올렸다.“인생 참 살맛 나네요.”그렇게 몇 마디 나누는 사이 서경민이 밖으로 나왔다.그는 연재윤을 보고 조금 놀란 눈치였다. 원래는 서둘러 자리를 뜨려 했으나 김여정이 바로 옆방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자 예의상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다만 그리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그저 형식적인 위로와 비즈니스적인 안부 인사를 건네고 금방 나왔다.그는 가기 전 서인준에게 한효진이 안정제를 맞고 잠들었으니 굳이 옆에서 지킬 필요 없다고 일러두었다.서인준이 알겠다고 대답했다.그리고 서경민이 떠난 뒤 몸을 바로 세우며 말했다.“저는 할머니 좀 보고 올게요.”연재윤이 턱끝을 까딱했다.“네.”서인준이 병실로 돌아가 보니 한효진은 정말 잠잠해져 있었다. 집에서 데려온 가정부가 옆에 앉아 그녀를 살피고 있었다. 별일 없을 거라 판단한 서인준은 가정부에게 몇 가지 당부를 남긴 뒤 자리를 떴다.연재윤은 여전히 복도에 서 있었다. 서인준과 시선이 마주치자 두 사람은 가볍게 목례를 나누고 각자의 길을 갔다.서인준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연재윤은 고개를 숙이고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빼냈다. 그리고 필터 부분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짓씹어댄 담배를 손바닥에 꽉 쥐어 뭉개버렸다.잠시 후 연씨 가문 쪽 병실도 조용해졌다. 병문안 왔던 사람들이 하나둘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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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7화 경고

서지혁은 점심쯤 병원에 도착했다.한효진의 상태는 아주 나빴다. 발악은커녕 이제 말 한마디 내뱉을 기력조차 없어 보였다. 산소호흡기를 낀 그녀는 거친 숨을 내쉴 때마다 마스크에 허연 김이 서리며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났다.그는 침대 곁에 서서 가정부에게 물었다.“아빠는 오셨어요?”“오전에 어르신을 여기 모셔다만 주시고 바로 나가셨어요. 그 뒤로는 안 오셨고요.”가정부는 잠시 생각하더니 덧붙였다.“아, 참. 연 대표님이 한 번 다녀갔어요.”서지혁의 미간이 단번에 좁혀졌다.“누구요?”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지다 못해 서늘해지자 가정부는 움찔하며 대답했다.“그, 연 대표님이요. 그쪽 댁에서도 누가 입원하셨다더라고요.”그녀는 복도 끝을 가리켰다.“병실이 저쪽이라 멀지 않거든요. 오전에 어르신 입원하시는 거 보고 잠깐 들러서 살펴보고 가셨어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효진이 눈을 떴다. 그녀는 서지혁을 발견하자마자 다급하게 손을 휘저으며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내뱉었다.서지혁이 몸을 굽혀 귀를 가까이 댔다.“할머니, 왜 그러세요?”한효진의 목소리는 뚝뚝 끊겼지만 힘겹게 조합한 문장은 분명히 들렸다.“원정희 그년이 돌아왔어. 나를 저승으로 끌고 가려고 찾아왔단 말이다...”서지혁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그럴 리 없습니다.”그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마음 편히 먹고 기운 차리세요. 할머니 기력이 약해지면 그 환각이 계속 괴롭히겠지만 할머니가 다시 일어서시면 감히 찾아오지도 못할 겁니다.”한효진은 눈을 부릅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말이 먹힌 건지 한참 뒤에야 알겠다는 듯 힘겹게 소리를 냈다.서지혁이 가정부에게 말했다.“여기 잘 지키고 계세요. 앞으로 연재윤 그놈이 또 오면 바로 저한테 전화하시고요.”가정부는 그의 서슬 퍼런 태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서지혁은 그대로 병실을 나와 복도 맞은편으로 향했다. 이 층은 최고급 VIP 병동이라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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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8화 사진

서지혁은 병실에 잠시 더 머물렀으나 딱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밖으로 나왔다.엘리베이터로 향하던 찰나, 주머니 속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발신 번호를 확인한 그는 비상계단 쪽으로 몸을 돌려 전화를 받았다.“알아냈어?”상대방이 그렇다고 대답했다.“해당 카드는 대포폰이라 명의 확인은 안 됐지만 개통한 대리점을 찾아냈습니다. 인근 CCTV를 확인해 보니 정체가 나오더군요.”서지혁이 짧게 명령했다.“영상 보내.”전화를 끊고 몇 초 지나지 않아 짧은 영상 하나가 도착했다. 20초 남짓한 분량이었지만 피사체의 얼굴은 소름 돋을 정도로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영상을 끝까지 확인한 그는 지체 없이 삭제한 뒤 엘리베이터에 올랐다.텅 빈 엘리베이터 안, 그는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1층에 도착해 문이 열리자 서지혁은 느릿하면서도 절도 있는 걸음걸이로 로비를 가로질러 나갔다. 하지만 정문 앞에 서자마자 그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애써 유지하던 평정심이 결국 무너져 내렸다. 미간 사이로 억눌러왔던 짜증과 불쾌감이 여과 없이 삐져나왔다.그는 다시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네, 대표님. 또 지시하실 일이 있으신지요?”상대방의 물음에 서지혁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네가 해줘야 할 일이 하나 더 있어.”...심태진은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었다. 다친 다리는 거의 완쾌되어 이제 지팡이 없이도 걸을 수 있었다. 그는 과일과 채소, 싱싱한 해산물 몇 가지를 골라 계산을 마치고 마트를 나섰다.집 근처에 다다랐을 때, 아파트 정문을 앞두고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 멈춰 섰다. 다가가야 할지 말지 망설이는 사이, 발걸음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차 안에서 아파트 입구를 살피던 심연정이 백미러로 그를 발견하고는 문을 열고 내렸다.“아빠.”심태진은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어, 연정아. 웬일이야?”그가 덧붙였다.“연락도 없이 오고 말이야. 하마터면 헛걸음할 뻔했잖니.”그는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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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9화 움직임

심연정이 몸을 돌려 심태진을 빤히 쳐다보았다.“겨우 사진 한 장인데, 좀 보면 안 돼요? 그 사진은 왜 신발장에 처박아둔 거예요?”심태진은 사진을 등 뒤로 감춘 채 단호하게 말했다.“함부로 뒤지지 마.”그는 숨을 고르며 변명을 덧붙였다.“네 엄마랑 찍은 사진이야. 내가 워낙 사진 찍는 걸 싫어해서 남은 거라곤 네 엄마랑 찍은 것뿐이더구나. 이혼하면서 챙겨오긴 했는데 현관에 두자니 모양새가 좀 그런 것 같아서 그냥 신발장에 넣어둔 거야.”사실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허술한 변명이었다. 정말 정경란과 찍은 사진이라면 딸에게 못 보여줄 이유가 없었고, 발견됐다고 해서 저렇게까지 사색이 되어 가로막을 일도 아니었다.심연정은 한참 동안 아버지를 응시하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안 보면 되잖아요.”그녀는 미련 없이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심태진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뒤따라 나왔다. 여전히 액자를 등 뒤에 숨긴 채였다. 조금 전 자신의 말투가 너무 날카로웠다는 걸 깨달은 그는 부드럽게 목소리를 깔았다.“아빠가 조만간 취미반에 좀 등록해 볼지 고민 중이야. 맨날 집에만 있는 것도 못 할 짓이라 서예나 그림이라도 배워볼까 싶구나. 학원에 가면 집에 없을 수도 있으니까 다음에 올 때는 미리 연락하고 오렴. 헛걸음하면 안 되잖니.”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심연정은 아버지를 등진 채 건성으로 대답했다.“네.”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그녀는 안으로 들어가 몸을 돌렸다. 부녀는 짧은 거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섰지만 두 사람의 얼굴에는 그 어떤 감정도 서려 있지 않았다.심태진은 분위기를 만회하려는 듯 한층 더 다정한 목소리로 덧붙였다.“다음에 오면 아빠가 맛있는 밥 해줄게.”심연정은 대답 대신 살짝 웃어 보였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기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1층에 도착해 건물 밖으로 나온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단지를 빠져나갔다. 동시에 휴대폰을 꺼내 연락처를 뒤지더니 아주 오랫동안 전화를 걸지 않았던 번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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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0화 패를 까다

차는 외곽으로 빠져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 달린 끝에 어느 좁다란 골목 입구에 멈춰 섰다.골목이 워낙 비좁아 차가 들어갈 수 없자 서지혁은 차 문을 열고 내려 느릿느릿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이곳은 본래 재개발 예정지였으나 몇몇 알 박기 세력이 연합해 보상금을 터무니없이 높여 부르고 현수막을 내걸거나 친인척까지 동원해 시위를 벌이는 바람에 결국 사업이 중단된 곳이었다. 지금은 주민 대부분이 이주해 동네 전체가 거의 빈집이나 다름없었다.골목은 깊고 가로등 하나 없어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서지혁은 손전등조차 켜지 않은 채 여유로운 걸음으로 어둠 속을 헤치며 나아갔다.가장 안쪽까지 들어가니 녹슨 철문이 쇠사슬에 묶여 있는 작은 마당이 나왔다.그가 발로 철문을 툭툭 차자 적막한 밤공기를 찢는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잠시 후 안에서 사람이 달려 나와 쇠사슬을 풀고 문을 열었다.“오셨습니까.”서지혁은 대꾸 없이 안으로 발을 들였다.방 안에서 새어 나오는 빛은 아주 작고 희미해서 밖에서 보기에는 마치 촛불을 켜둔 것처럼 보였다.수하가 문을 열어주자 비로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방 안은 전등 하나 켜져 있지 않았다.유일한 광원은 탁자 위에 놓인 휴대용 랜턴뿐이었다.“이 집은 오랫동안 비어 있어 이미 단전 단수된 상태입니다.”수하의 보고에 서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만했다.그가 작은 거실을 채 둘러보기도 전에 어디선가 웅얼거리는 듯한 괴성이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한 남자가 의자에 꽁꽁 묶여 있었다. 입에는 무언가가 물려 있었고 일렁이는 불빛에 비친 그의 눈동자에는 경악이 서려 있었다.뭐가 그렇게 놀라운 건지, 서지혁은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그는 실제로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다가가 맞은편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심태진 씨, 오랜만입니다.”그가 입을 열자마자 수하 중 한 명이 심태진의 입에 처박혀 있던 냄새 나는 걸레를 낚아챘다.심태진은 구역질할 틈도 없이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서지혁? 네가... 네가 여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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