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애걸복걸! 도련님의 고백: Chapter 451 - Chapter 460

565 Chapters

제451화 서늘한 고백

경호원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하시윤은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지윤정은 응급실 로비 대기석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미 상처 처치는 끝난 모양인지 얼굴에 밴드가 붙어 있었다. 상처가 그리 크지는 않아 보였지만 얼굴이라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놀란 하시윤이 달려가 물었다.“얼굴을 다친 거예요? 많이 심해요?”하시윤을 보자마자 지윤정은 다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입술을 삐죽거렸다.“두 바늘이나 꿰맸어요.”하시윤은 급히 손수건을 꺼내 지윤정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울지 마요. 눈물 들어가면 덧나니까요.”하시윤이 다시 물었다.“상대방은 어떻게 됐는데요?”“그 여자는 나보다 훨씬 더 많이 다쳤어요. 그런데 그쪽은 몸을 다쳤단 말이죠.”지윤정은 억울해 죽겠다는 듯 독기를 품고 덧붙였다.“그쪽이 먼저 손찌검했어요. 내가 오늘 컨디션만 좋았어도 아주 박살을 냈을 텐데.”하시윤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그 남자는요? 윤정 씨를 이 지경으로 만든 그 인간은 지금 어디 있어요?”지윤정은 대답 대신 고개를 홱 돌려 한쪽을 가리켰다. 하시윤이 시선을 따라가니 약 봉투를 든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남자는 지윤정을 향해 똑바로 걸어왔다. 그리고 하시윤을 보더니 아는 체를 해야 할지 말지 망설이는 눈치였다.그는 하시윤에게 인사를 건네는 대신 지윤정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약 다 받아왔어. 이제 가자.”하시윤이 남자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지윤정과 비슷한 또래에 인상은 꽤 순박해 보였다.지윤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하시윤의 팔을 꽉 껴안았다. 그리고 남자에게 싸늘하게 쏘아붙였다.“약은 나한테 주고 넌 그냥 가.”지윤정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나 지금 너 보고 싶지 않거든.”남자는 입술을 깨물며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지었다.“내 설명 좀 들어주면 안 될까? 정말 속이려던 게 아니야. 그 여자랑은 진작에 끝났어. 오늘 왜 찾아와서 난리를 피웠는지 나도 진짜 모르겠다고. 그 계정 내 거 아니야. 진짜 아니라고. 못 믿겠으면 내 휴대폰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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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2화 천륜을 저버린 자가 그뿐이랴

하시윤은 서무열과 원정희가 손을 잡고 서경민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에서 정신을 채 차리기도 전에 그의 마지막 한마디에 완전히 얼어붙고 말았다.과거 서인준과 함께 서무열의 죽음이 서경민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추측하며 귓속말을 나눈 적은 있었다.당시 두 사람 모두 그와 무관하지 않을 거라 짐작은 했지만 그건 그저 짐작일 뿐이었다.그런데 지금 서경민이 직접 내뱉은 자백은 하시윤에게 거대한 충격으로 다가왔다.하시윤은 입술을 달싹였으나 차마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그때, 정적만이 감돌던 넓은 집 안에서 윙윙거리는 진동 소리가 울려 퍼졌다.휴대폰 진동 소리였다.하시윤은 저도 모르게 자신의 주머니를 뒤졌지만 소리의 근원지는 그녀의 주머니가 아니었다.서경민이 휴대폰을 꺼내 확인하더니 피식 웃으며 화면을 하시윤 쪽으로 돌렸다.“지혁이의 전화네요.”화면에는 서지혁의 이름이 떠 있었다.하시윤은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지혁 씨가 내가 여기 온 걸 알아요?”그렇다면 서지혁이 왜 자신에게 전화하지 않고 서경민에게 전화를 했을까.서경민은 휴대폰을 무음으로 돌리고는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어젯밤에도 전화를 했더군요. 내가 받지 않았을 뿐이죠.”그제야 하시윤은 상황이 이해가 갔다.조인경과 서시은의 실종 사건에 대해 서지혁은 서경민에게 직접 따져 묻겠다고 했었다.서경민이 어제 전화를 받지 않았으니 오늘 다시 전화를 건 것이 분명했다.하시윤도 그 일이 떠올라 서경민을 쏘아보며 물었다.“그럼 어제 일, 정말 회장님이 한 짓인 거예요?”이제 와서 숨길 게 없다는 듯 서경민이 시원하게 인정했다.“나 맞아요.”그가 덧붙여 물었다.“많이 놀랐나 보군요?”그의 말투는 너무나 가벼워서 어제의 일이 그저 사소한 농담이나 장난조차 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하시윤은 이를 악물었다. 증오심이 다시금 들끓었다.“제정신이세요? 그 어린애를 상대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별일 없지 않았나요.”서경민이 말을 받았다.“나도 생각이 있어서 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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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3화 미안해, 내 불찰이야

하시윤은 서경민을 똑바로 응시하며 물었다.“그래서 저를 여기까지 불러서 이런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의도가 뭐죠?”“아직도 모르겠어요?”서경민은 자세를 바로 하고 입에 문 담배꽁초를 잘게 씹으며 철제 테이블 위에 손을 얹었다.“하시윤 씨라면 제법 영리할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하시윤의 시선이 그의 손을 따라 철제 테이블로 향했다가, 그 위에 덩그러니 놓인 칼 한 자루에 머물렀다.그녀의 표정은 서서히 굳어갔다.서경민의 관찰력은 가히 경이로울 정도였다. 하시윤의 표정 변화가 미세했음에도 그는 단번에 속내를 읽어냈다.서경민이 낮게 읊조렸다.“알아들었으면 됐어요.”그가 말을 이었다.“하시윤 씨도 알아야 할 게 있어요. 내가 하시윤 씨를 건드리지 못하는 게 아니에요. 지혁이 체면을 봐서 선택지를 준 것뿐이죠. 하시윤 씨가 그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그 선택지마저 내가 직접 끊어버릴 수도 있어요.”하시윤이 물었다.“회장님이 이런 짓을 하는 거, 지혁 씨도 알아요? 나중에 지혁 씨가 회장님을 원망하게 될까 봐 두렵지도 않아요?”서경민은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원망하라죠. 우리 부자 관계는 대대로 그런 식이었으니까요.”그는 담배를 철제 테이블에 비벼 껐다.“솔직히 말해서 하시윤 씨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지혁이를 꽤 높게 평가했었어요. 우리 서씨 가문의 사업 규모는 실로 방대하거든요. 그룹사 외에도 손을 대는 사업이 많아서 원래는 그 모든 걸 지혁이에게 물려줄 생각이었죠.”말을 내뱉는 그의 얼굴에 언뜻 아쉬움이 스쳤다.“안타깝게도 하시윤 씨가 등장한 이후로 지혁이가 말을 듣지 않더군요. 난 내 핏줄이라 해도 말 안 듣는 인간은 딱 질색이라서 말이죠.”하시윤은 이 말이 자신을 겁주기 위해 서지혁을 방패 삼아 협박하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그녀는 최대한 표정을 관리하며 물었다.“저한테 할 말이 더 남았어요? 회장님이 저질렀던 그 악랄한 짓거리에 대해 몇 마디 더 해보지 그래요. 저에게 겁을 더 주면 제가 아주 수월하게 떠나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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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4화 마사지

서지혁의 눈가에는 자책감이 서려 있었다.“애초에 이 건물 전체 입주민들 뒷조사까지 다 끝내고 별문제가 없어서 들어온 거였는데.”어젯밤 서지혁은 사람을 시켜 다시 한번 조사를 진행했다. 이번 사건에서 총대를 메고 나타난 남자는 결코 무고한 이가 아니었다. 조인경과 서시은이 납치되는 과정에서 그가 길잡이 노릇을 톡톡히 했었으니 말이다.그 남자는 실제로 15층 거주자의 친척이 맞았다. 15층 일가족 세 명이 집을 비운 사이, 그 남자가 며칠 머물겠다며 들어온 상태였다.무직에 거처 없이 떠돌던 건달 같은 사람이었는데 얼마 전 갑자기 적지 않은 금액이 입금된 정황이 포착되었다.해외 계좌를 통해 들어온 그 돈이 누구의 손에서 나온 것인지는 굳이 끝까지 추적하지 않아도 뻔한 일이었다.서지혁은 서경민이 이토록 먼 길을 돌아 15층 입주민의 친척까지 매수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완벽한 수 싸움에서 패배를 인정했고 이 실책은 오롯이 자신이 짊어져야 할 몫이라고 생각했다.하시윤은 그런 서지혁을 부드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달랬다.“지혁 씨는 이미 할 만큼 했어. 자책하지 마. 다른 누구였어도 지혁 씨만큼 꼼꼼하게 챙기지는 못했을 거야.”하시윤이 덧붙였다.“회장님이 그 바닥에서 구른 세월이 얼마인데 지혁 씨보다 한 수 위인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서지혁이 하시윤을 빤히 응시하며 물었다.“아빠가 또 무슨 말을 했어?”하시윤은 대답 없이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서지혁이 그녀의 손을 꽉 쥐며 다그쳤다.“말해줘. 아빠가 너한테 또 무슨 소리를 한 거야?”하시윤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생긋 웃어 보였다.“별거 없어. 그냥 우리 시은이를 해칠 생각은 없었다고만 하시더라고.”누가 봐도 진실을 숨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서지혁은 하시윤의 손을 자신의 뺨에 갖다 대며 간절하게 말했다.“우리 이사 가자. 내일 당장 짐 싸자, 응? 지난번에 봤던 그 집이 마음에 안 들면 다른 곳으로 알아보면 돼. 내가 보안 업체도 새로 부르고 사람도 더 많이 고용해서 집 안팎을 철통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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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5화 퇴원

마사지가 제대로 통하려면 안팎으로 구석구석 정성이 닿아야 하는 법이다.두 사람이 욕실에서 한바탕 소란을 피운 탓에 바닥은 온통 물바다가 되어 미끄러웠다.하시윤은 몸이 나른해진 나머지 서지혁의 몸에 완전히 매달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나가자.”서지혁이 그녀를 단단히 받쳐 안으며 대답했다.“아이들이 밖에 있잖아.”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능글맞게 농담을 던졌다.“너, 애들 교육상 안 좋다고 제일 겁내지 않았어?”하시윤이 웅얼거리며 답했다.“시은이는 잠들었으니까 괜찮아. 어떻게 배우겠어.”서시은은 잠귀가 순해서 배가 고프지 않은 한밤중에 깨는 일이 거의 없었다.서지혁은 하시윤에게 입을 맞추고는 방으로 걸어 나갔다.커튼이 반쯤 열려 있어 달빛이 스며들고 있었다.문 근처에 다다르자 하시윤이 손을 뻗어 전등 스위치를 내렸다.불이 꺼진 방 안은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다.침대 쪽으로 다가가며 하시윤이 말했다.“시은이 침대 좀 저쪽으로 밀어줘.”서지혁이 픽 웃었다.“정말 신경 안 쓰는 줄 알았더니 아니었군?”아기 침대에서 곤히 잠든 서시은을 확인한 서지혁은 한 팔로 하시윤을 안은 채 남은 손으로 아기 침대를 방문 쪽으로 밀었다.그곳에는 작은 벽장이 있어 침대 위의 상황이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였다.그제야 서지혁은 하시윤을 침대에 눕히고 그 위를 덮치듯 올라탔다. 그녀의 두 손을 머리 위로 눌러 잡은 채 한참 동안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조금 전 욕실에서는 서로 마음이 급했다. 오랫동안 굶주렸던 터라 마른 장작에 불이 붙듯 순식간에 타올랐다.한차례 열기를 쏟아낸 지금은 한결 여유롭고 느긋한 몸짓이었다.하시윤은 서지혁의 허리를 다리로 감싸안으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지혁 씨.”서지혁이 낮게 대답하며 몸을 살짝 띄워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창을 통해 들어온 달빛이 침대 위를 환히 비추었다. 서로의 실루엣은 물론, 눈동자에 서린 감정까지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다.하시윤은 먼저 몸을 일으켜 그에게 밀착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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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6화 가능성이 아닌 사실

아이들의 주의력은 다른 곳으로 돌리기가 아주 쉬웠다. 서정우는 금세 하시윤 옆으로 엉금엉금 기어가 얼굴을 들이밀었다.“동생아, 뽀뽀.”서시은은 아직 뽀뽀할 줄을 몰라서 그저 입을 크게 벌린 채 오빠의 얼굴을 침 범벅으로 만들어 놓았다.서정우는 싱글벙글 웃음을 터뜨렸다.“헤헤, 침이다. 온통 침이야.”그때 서지혁이 몸을 옆으로 돌려 휴대폰을 확인했다. 전화가 걸려 오고 있었다.서지혁이 고개를 돌리고는 말했다.“나 나가서 전화 좀 받고 올게.”서인준은 눈치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거들었다.“난 담배 한 대 피우고 올게요.”두 사람이 함께 방을 나가자 하시윤은 별일 아니라는 듯 시선을 거두고 서정우를 품으로 끌어당겨 연신 뽀뽀를 퍼부었다.서정우는 여동생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놀아주다가 불쑥 입을 뗐다.“엄마, 왕할머니는 죽은 거예요?”하시윤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아이를 바라보았다.“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해?”“그냥 짐작했어요.”서정우가 말을 이었다.“그날 병원에서 좀 무서웠거든요. 왕할머니 모습이 변해 있었잖아요. 예전에 사람들이 그러는데 모습이 변하면 곧 죽는 거래요.”아이가 고개를 들어 하시윤을 쳐다보았다.“저도 그때 모습이 변했었잖아요.”하시윤이 서둘러 대답했다.“정우는 점점 더 멋지게 변할 거야. 이제는 아주 건강해졌으니까 백 살까지 오래오래 살아야지.”서시은이 하시윤의 품에 안겨 있는 동안 서정우는 엄마에게 몸을 바짝 기대며 다시 물었다.“그래서 왕할머니는 정말 죽은 거예요?”하시윤은 아이에게 죽음의 의미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아이였기에 말이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고민 끝에 하시윤은 설명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왕할머니는 다른 세상으로 가신 거야. 거기서 정우를 계속 지켜보면서 지켜주실 거야.”서정우가 다시 물었다.“엄마는 왕할머니가 미워요?”그 질문에 하시윤은 할 말을 잃었다. 예전에는 한효진을 미워하는 정도가 아니라, 독한 마음이 들 때면 증오하기까지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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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7화 급격한 추락

성문영은 차를 몰고 단지 안으로 들어섰지만 길을 몇 번이나 빙빙 돌고 나서야 겨우 주차 자리를 하나 찾아냈다.이 아파트는 위치도 외진 데다가 고급 단지도 아니어서 편의 시설이 턱없이 부족했다. 주차 공간 또한 넉넉하지 않아 먼저 오는 사람이 임자였다.성문영은 곧바로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대신 가방에서 이혼 신고 접수증을 꺼내 펼쳐 보았다. 사진 속 그녀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무척이나 엄숙하고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사실은 조금 웃어 보이고 싶었다. 최소한 행복해 보이기라도 해서 스스로 자존심을 세우고 싶었지만 끝내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울상만 짓지 않은 것에 만족해야 했다.차 옆으로 아이들이 시끄럽게 장난을 치며 지나갔다. 장바구니를 든 아이의 어머니는 사람과 부딪히지 않게 조심히 뛰라며 큰 소리로 고함을 질러댔다.그 소리에 성문영은 번뜩 정신이 들었다. 그녀는 숨을 두어 번 몰아쉬고는 문을 열고 내려서 트렁크에 실린 짐들을 꺼냈다.짐은 진작 거의 다 옮겨둔 상태라 지금은 보석과 장신구가 담긴 여행 가방 하나뿐이었다. 원래는 꽤 많았으나 얼마 전 돈이 되는 것들은 대부분 팔아치웠고 남은 것들은 예전에 처분하려다 말았던 자잘한 것들뿐이었다.가방을 끌고 집으로 올라가 문을 열자 구수한 음식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심태진이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인기척에 심태진이 뒤를 돌아보았다.“왔어? 가서 좀 쉬고 있어. 금방 밥 먹을 수 있으니까.”성문영은 가방을 옆에 세워두고 주방에 선 남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평소 같았으면 이런 모습이 무척 따뜻하고 만족스럽게 느껴졌겠지만 오늘따라 심경에 변화가 생긴 것인지 짜증만 솟구쳤다.그녀는 잠시 서 있다가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사이 심태진은 요리를 그릇에 담아내고 있었다.앞치마를 벗으며 다가온 심태진이 성문영에게 물었다.“이혼 서류 잘 처리됐어?”성문영이 서류를 건네주었다.“도장 찍었어.”심태진은 수첩을 열어 확인하더니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덥석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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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8화 그 인간이 무서운 이유

서정우는 밥을 먹고 잠시 소화를 시킨 뒤 침대에 누웠다.졸음이 가득한 기색이었지만 아이는 침대 위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며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곁을 지키며 등을 토닥여주던 하시윤이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왜 아직 안 자?”서정우는 엄마의 옷자락을 꽉 쥐며 대답했다.“엄마랑 조금만 더 같이 있고 싶어서요.”그 말에 하시윤의 마음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말랑해졌다. 그녀는 아이에게 다가가 얼굴을 맞대며 속삭였다.“어서 자렴. 엄마가 계속 옆에 있을게.”말이 끝나기 무섭게 방문이 열리며 서지혁이 서시은을 안고 들어왔다. 문이 열리는 틈으로 아기가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울듯 말듯 짜증이 섞인 드문 목소리였다.서지혁이 들어오며 말했다.“한참을 달래도 안 자네. 인경 아주머니 말씀으로는 어디 아픈 건 아니고 잠투정하는 거래.”서지혁이 침대맡으로 다가가자 졸음을 못 이겨 눈도 제대로 못 뜨던 아기가 고개를 돌려 침대 위 두 사람을 보더니 입을 비죽이며 웃어 보였다.서지혁은 그 모습에 기가 찬 듯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결국 이거였구먼.”서지혁은 서시은을 침대에 내려놓으며 덧붙였다.“혼자 자기 싫어서 그런 거니 다 같이 자자.”그러자 신기하게도 아기는 더는 칭얼거리지 않았다. 작은 다리를 휘저으며 입속으로 무언가 중얼거리더니 이내 눈을 감았다.서정우는 몸을 돌려 여동생을 살포시 안아주었고 곧이어 그도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서지혁은 하시윤의 옆으로 다가가 그녀를 품에 안았다.“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정말 너한테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하시윤은 서지혁의 허리춤을 만지작거리다 그의 허리를 꽉 껴안았다. 그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두 아이가 깊이 잠든 것을 한참 동안 지켜보던 중, 서지혁의 휴대폰이 울렸다.진동 소리가 크지는 않았지만 그는 얼른 휴대폰을 꺼내 확인하고는 하시윤을 이끌어 일으켰다.“내려가자.”방을 나선 서지혁이 전화를 받았다. 경비실에서 손님이 왔다는 연락이었다.곧이어 전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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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9화 가식 떨기는

심태진은 단지 밖에서 기다리지 않았다.두 사람 다 술을 마신 상태라 운전을 할 수도 없어 택시를 타고 왔었다.성문영이 단지 안으로 들어가자 심태진은 밖에서 30초 정도 서성이다가 다시 택시를 타고 자리를 떴다.택시는 정현 그룹 입구에 멈춰 섰고 심태진은 차 안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그렇게 기다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심연정이 아닌 정경란이 나타났다.회사 건물에서 나오고 있던 정경란은 외부 일정이 있는지 자신의 차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비서가 급히 달려와 서류 한 뭉치를 건넸다.정경란은 걸음을 멈추고 서류를 받아 들어 고개를 숙인 채 내용을 확인했다.그녀는 머리를 단정하게 정리한 상태였다. 원래 길었던 머리는 이제 귀를 살짝 덮는 정도로 짧아졌고 세련되게 드라이가 되어 있었다. 몸에 딱 붙는 정장 차림에 검은색 하이힐을 신은 모습은 무척이나 능숙하고 당당해 보였다.심태진은 예전에도 그녀의 이런 옷차림을 자주 보았지만 그때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씩씩하고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정경란은 심태진을 보지 못했다. 비서에게 몇 가지 지시 사항을 전달한 뒤 그녀는 곧바로 차에 올라탔다.그녀의 차가 멀어지고 나서야 심태진은 차에서 내려 느긋하게 회사 로비로 들어섰다.안내 데스크에 직원이 있는 것을 보고 심태진이 다가갔다.“혜인 씨.”상대방은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한 여직원은 제자리에 굳어버렸다. 곧이어 그녀의 표정이 복잡미묘하게 변했다.“회장님, 아니, 심태진 씨, 여긴 어쩐 일이세요?”그녀가 머뭇거리며 물었다.“혹시 정 대표님을 찾아오신 건가요?”“아니.”심태진이 대답했다.“연정이 있나 해서. 연정이 보러 왔어.”여직원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곤란한 듯 물었다.“혹시 예약은 하셨나요?”심태진이 당황하자 직원이 덧붙였다.“부대표님이 얘기하셨거든요. 예약 없이는 그 누구도 들여보내지 말라고요.”말을 마친 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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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0화 꼴좋네

심태진은 정현 그룹 입구에서 한참을 더 서성이다가 자리를 떴다.그는 택시를 잡는 대신 목적지도 없이 도로변을 따라 터덜터덜 걸었다.성문영이 일이 끝나면 전화를 주기로 했으니 연락이 오면 그때 택시를 타고 그녀를 데리러 갈 생각이었다.전화를 기다리던 중, 택시 한 대가 그의 옆에 멈춰 섰다. 기사는 경적을 울리며 어디까지 가느냐고, 타지 않겠느냐고 물어왔다.택시 기사들이 흔히 쓰는 호객 수법이었기에 심태진은 별일 아니라는 듯 손을 저으며 거절했다.기사는 미련 없이 차를 조금 더 몰고 가더니 길가에 차를 세우고 손님을 기다리는 듯했다.그 찰나에 성문영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그녀는 왜 집 앞에 보이지 않느냐며, 서지혁의 집에서 이미 나왔다고 말했다.심태진은 깜짝 놀라 얼른 대답했다.“담배 한 갑 사러 잠깐 나왔어. 금방 갈게.”통화를 끝낸 그는 걸음을 재촉해 방금 그 택시에 올라타 목적지를 말했다.기사는 그를 한 번 쓱 쳐다보고는 아무 말 없이 차를 출발시켰다.그곳에서 서지혁의 집까지 가는 길은 여러 갈래였기에 심태진은 차가 어느 길로 가는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그는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휴대폰을 꺼내 미리 짜두었던 정착 계획을 훑어보았다.도시는 이미 정했으니 이제 살 집을 고를 차례였다.처음에는 당연히 월세로 시작할 생각이었다. 부동산 앱으로 본 몇몇 집은 사진상으로는 꽤 괜찮아 보였지만 주변 환경은 직접 가서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한참 동안 화면을 넘기며 집중하던 심태진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도착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고개를 들어 밖을 살피던 그는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했다.차는 서지혁의 집이 아닌 구불구불한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고 있었다.골목 양옆으로 민가가 늘어서 있었으나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오가는 사람조차 보이지 않았다.심태진이 다급하게 물었다.“여기가 어디예요? 차를 어디로 모는 겁니까?”기사는 대답도 없이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더니 문을 열고 내려 골목 밖으로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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