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해진은 순간적으로 멍해지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저, 하 대표님... 혹시 저희 전에 뵌 적이 있습니까?”하정훈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글쎄요, 기억이 잘 안 나네요.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자신이 핵심을 놓쳤다는 사실을 깨달은 윤해진은 재빨리 화제를 돌려 프로젝트 협력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기흥이 태성보다 이번 프로젝트에 더 적합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인데, 왜 갑자기 마음을 바꾸신 겁니까?”하정훈은 그의 질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눈앞에 걸린 유화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송남지의 천재적인 재능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역시 서경 미대에 수석으로 입학할 만한 실력이었다.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하얗게 피어난 치자꽃 한 송이 한 송이가 유난히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그는 난생처음으로 하얀 치자꽃을 ‘찬란하다'는 단어로 표현하고 싶어졌다.하정훈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어떻게 저런 사람을 좋아했을까?”전화기 너머 윤해진은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하 대표님,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죄송합니다만, 잘 못 들었습니다.”하정훈은 유화에서 시선을 떼고 나른하게 소파에 기대앉으며 말했다.“기흥이 태성보다 더 적합하다고요? 글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요.”윤해진은 긴장하며 말을 이었다.“기흥이 태성보다 훨씬 더 적합하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만약 하 대표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신다면, 저희 쪽에서 객관적인 데이터와 분석 자료를 준비해서...”윤해진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하정훈은 더 들을 생각이 없었다.그는 말을 끊으며 말했다.“나는 사람하고만 협력하지 짐승하고는 협력 안 해요. 적어도 태성 대표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윤해진은 김서윤의 휴대폰을 든 채 적어도 십여 초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당연히 하정훈은 그가 말하기를 기다릴 생각도 없었다.윤해진처럼 역겨운 인간에게 굳이 시간을 할애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하정훈은 냉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내 비서에
Read more